사회진보연대


2024 겨울.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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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겪으며, 헌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임필수 | 편집장
연남동에서
비상계엄을 겪으며, 헌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애초 편집진은 ‘2025년 정세전망’을 특집 주제로 삼았다. 대부분의 원고는 11월 중에 검토했다. 그러나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다. 사회진보연대는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사회진보연대 성명」을 시작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면에 맞춰 입장을 발표했다. 「여전히 “뭐가 문제냐”는 대통령, 제정신인가」(12월 5일), 「드러나는 계엄 선포의 전모, 윤석열 대통령을 즉각 탄핵 소추하고 내란죄로 수사하라」(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헌정 복원을 위한 국회와 시민의 노력이 절실하다」(12월 9일), 「참담한 네 번째 대통령 담화, 즉각 탄핵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헌정 복원을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12월 13일). 12월 14일에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윤 대통령 권한이 정지됐다. 

편집진은 기왕에 기획했던 한국헌정사 연재와 함께 탄핵소추 가결 이후 한국사회가 마주하게 된 과제에 관한 시론을 묶어 ‘한국헌정사와 헌정위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내기로 했다. 특집 원고를 비롯해 12·3 비상계엄 전에 쓰인 글은 대부분 비상계엄에 대해 최소한의 언급을 덧붙이거나, 그 이전에 완성된 대로 내기로 했다. 내년 3월에 발간되는 기관지나 그 이전에 여러 차례 발간될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앞으로 계속 심층적인 분석과 입장을 발표하겠다.

먼저 기획 ‘한국헌정사와 헌정위기’의 첫 번째 글, 임필수의 「사법의 시간, 그렇다면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탄핵소추안 가결 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와 수사기관의 내란죄 수사로 ‘사법의 시간’이 도래한 듯 보이지만, 어떻게 비상계엄이란 극단적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가를 반추하고,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숙고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대통령 본인의 개인적 결함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성과 자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하지만, 이는 왜 우리 사회는 정치인 개개인을 검증하거나, 또는 바람직한 덕성과 자질을 갖추도록 키워내는 정치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했느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성숙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우리의 정치시스템은 특정 개인이 정치권력의 최정상에 진입한 후 이를 견제할 만한 수단이 부족하다. 1987년 헌법에 내장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은 1963년에 시행된 박정희 시대의 3공화국 헌법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그 자신의 권력을 견제하게 할 수단을 배제한 제왕적 대통령은 오히려 실패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고 정당정치, 의회정치를 뿌리내리게 할 제도적 변화, 즉 개헌이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덧붙여, 제도적 변화 못지않게 정치문화의 성숙도 필요하다. 1980~90년대에 민주화로 점진적으로 이행한 사례를 보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만큼이나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정치양극화라는 조건에서 선거불복의 정치문화는 만성적인 헌정위기를 낳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87년 이후, 특히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에 터져 나왔던 개헌 논의가 왜 결국 결실을 얻지 못했느냐는 문제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1987년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보자는 개헌 논의는 본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의 거부 때문에, 또는 개헌 논의를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현직 대통령의 무시 때문에 어떤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 이처럼 익숙한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 시민과 사회운동이 불과 6~7년 전에 있었던 개헌의 실패를 얼마나 무겁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기획의 두 번째 글, 김성균의 「헌정주의를 결여한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지난 가을호 기사 「헌정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헌정주의의 의미와 원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에 두고 한국헌정사를 검토한다. 대통령제가 처음 시작한 제헌 시기에서 시작해, 유일한 내각제 정부였던 제2공화국 시기,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을 거쳐 2018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의 폐기까지 다룬다. 한국헌정사의 주된 분석 대상은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다. 한국 정치의 결함을 제도의 결함으로 환원할 수는 없겠지만, 제왕적 대통령제가 구조로서 존재하면서 여러 질곡을 낳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의제의 근간을 흔드는 인민주의 정치가의 등장에도 취약하다. 심지어 최근에는 1인의 권력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헌정질서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은 불가피하다. 필자는 한국헌정사에 관한 검토가 이런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 심화하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특집 ‘2025년 정세전망’은 다섯 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임지섭의 「구조적 위기와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세계경제」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장기저성장이 지속하는 가운데 끈적한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로 인해 세계경제는 명확하지만 그 해법은 마땅치 않은 구조적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세계경제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모두 부채 규모가 이미 막대하고 그 증가세가 지나치게 가파른데, 이는 국내 경제에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불안정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트럼프의 귀환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전후 규칙 기반 질서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다자간 공조가 더욱 퇴조하면서 분쟁과 혼란이 커지고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필자는 사회운동 일각이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에 주목하면서, 이를 곧바로 미국 헤게모니가 몰락하고 대안적 세계가 도래하는 시대라고 여긴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브릭스가 그리는 다극질서라는 미래가 과연 진정으로 평등과 호혜에 기반한 대안적 세계질서일지는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이 글은 브릭스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면서, 사회운동이 오늘날 국제정세에서 대안세계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트럼프주의와 다극질서가 제기하는 위협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아림의 「2025년 한국경제 전망과 제약 조건」은 2025년 한국경제가 마주한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가 처한 객관적 제약 조건을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먼저, 코로나19 위기를 기점으로 초저성장이 고착한 한국경제는 2024년 하반기 들어 모든 기관에서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수정할 만큼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특히 내수 부진이 심각한데, 코로나19로 타격받은 내수 서비스업이 과거 추세로 회복하지 못한 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주저앉아버린 형국이다. 게다가 2024년 말부터 시작된 금리 인하 기조가 순조롭게 이어질지 미지수다. 수출 경기 역시 트럼프식 관세전쟁이 현실화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편, 필자는 2025년 경제 상황을 전망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가 처한 제약 조건을 잠재성장률 하락, 가계부채·기업부채·정부부채의 급격한 상승, 수출 대기업의 한계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회운동이 이 엄연한 제약 조건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경기침체에 따른 대중의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성진의 「트럼프 인민주의 정권은 미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트럼프주의의 향후 방향성과 그것이 미국 경제와 정치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며 사회운동의 과제를 논한다. 2024년 미국 대선은 경제, 이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슈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심판하는 성격의 선거였다. 그러나 트럼프주의 경제정책은 미국 노동자계급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어렵고,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를 가중시키며,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다. 행정부 운영에서 트럼프주의는 대통령에게 모든 행정권을 집중시키자는 단일행정부론을 주장하나, 이는 헌정주의를 훼손할뿐더러, 행정부의 역량을 파괴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편, 대중운동으로서 트럼프주의가 급진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현대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인민주의를 차용한 전통주의’ 경향이 확산할 위험이 있다. 글은 트럼프주의가 가하는 여러 차원의 위협에 맞서, 사회운동이 현실의 문제와 경제구조를 분석하며 트럼프주의의 한계를 납득시키고,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킬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유와 평등, 헌정주의를 수호하며 트럼프주의 운동이 전통주의로 급진화하는 것을 저지하자고 요청한다.

김진영의 「2025년 국제·한반도 정세전망」은 트럼프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이 휴전 내지 종전에 이를 가능성이 있으나, 그 과정이 아주 순탄하거나 해당 지역의 장기적 평화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의 종전안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휴전에 합의했고 하마스와도 논의하는 중이나, 시리아 개입을 확대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와 함께 핵 시설 공격을 포함하여 대이란 압박을 강화하고자 한다. 한편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시사하고,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며 북러가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미일동맹은 트럼프의 귀환뿐만 아니라 한일 정부의 위기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고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서기에는 국력과 소프트 파워가 부족한 상태에서, 국내 경제, 정치 위기 관리에 나섰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역사를 돌아보고, ‘트럼프의 귀환과 미국 없는 세계’가 낳을 미래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함께, 핵무기 전면 철폐 운동에 나설 필요를 제기한다.

이소형의 「2025년 노동 정세전망」은 장기 경제 침체와 초고령 사회 진입이 예정된 현재, 양질의 일자리 축소와 고용 불안이 심화하고,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노동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년 65세 법제화, 연금 개혁, 돌봄 통합 지원법, 해외노동력 유입 정책 등 노동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슈들이 갈등적인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해 구조개혁 추진은 중단되었지만, 객관적인 경제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정책들은 내년에도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한편, 올해 여야 정치권에서 발의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나 ‘노동 약자 기본법’은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을 노동법에 포괄할 수 있을지를 두고 노동계와 대립점을 형성하고 있다. 필자는 경제 침체와 인구 감소, 플랫폼 노동 등의 정세 변화에 대해 노동운동의 입장과 행보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제들은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고,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을 입증하는 이슈들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어렵더라도 이를 직면하여 정책 대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상중계로는 정지현의 「2024 민주노총 정책대회 참관기」를 싣는다. 지난 11월 27~29일에 열린 민주노총 정책대회에는 2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활기찬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산별노조운동’, ‘새 시대 대응전략’이 주요 토론주제였다. 필자는 주제별로 진행된 강의와 토론을 소개하며 쟁점과 과제를 도출한다. 

사회주의 역사 읽기는 지난 호에 이어 이진호의 「‘스탈린 신화’를 파헤치다 ②」를 실었다. 지난 글에서는 스탈린이 당내 반대파에 대한 테러를 개시하며 권력을 차지하고, 폭력적인 농업집단화 속에서 ‘계급의 적’에 대한 테러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번 글은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대숙청과 2차 세계전쟁부터 말년의 스탈린까지 살펴본다.

책 소개로는 양자오의 『미국 헌법을 읽다』를 소개하는 이형호의 「헌법, 자유와 민주주의 보장을 위한 설계도」를 담았다. 이는 ‘한국헌정사’와 짝을 이루는 기획이었는데, 한국과 미국이 처한 최근 현실을 볼 때, 헌정에 관한 기초적 이해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회원칼럼으로는 소영호의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소감」서보람의 「나는 노동조합의 희망을 만들고 있는가」를 실었다. 소중한 글을 보낸 회원께 감사드린다. 

이번 비상사태를 겪으며 어느 곳에서나 ‘헌정’이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헌정파괴, 헌정위기, 헌정질서 수호, 헌정복원 등등. 누구나 습관적으로 헌정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우리 사회가 명확하게 공유하는 헌정의 의미나 원리는 무엇일까. 지난 호에 실린 「헌정주의란 무엇인가」에서는 국가의 자의적 권력행사로 인한 개인의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해 권력의 “자의적 권한행사를 법으로, 정치제도와 관습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그동안 다소 막연하게 느꼈던 헌정, 헌정주의의 의미와 원리를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기관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고자 한다.
 
2024년 12월 20일
임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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