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어디까지 왔나
1980년대 이후 지구라는 행성을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은, 제국주의와 초국적자본에 의한, 초국적자본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각국 민중들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강요에 짓눌려, 조금씩 그것에 '적응'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대세는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스스로가 갖고 있는 극단적인 이윤추구욕으로 인해, 세계 도처에 '자신의 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의 토지점거투쟁, 각국 노동자들의 민영화반대투쟁 등 일국적인 수준에서부터,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 시애틀·워싱턴·프라하 투쟁 등 국제적인 연대 투쟁까지, 각국 민중들의 도전은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세계 민중들에게 금융세계화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세계화는 필연적이며 불가피하다'는 이데올로기적 강요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초국적자본만큼이나 우리의 투쟁도 초국적이어야 한다'는 구호아래, 국제연대투쟁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제주의는 더 이상 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고루한 문구가 아니라, 현실 투쟁 속에서 점차 구현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주요한 계기들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의 성과와 한계를 개괄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다.
분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물결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
1998년 10월, 선진국들의 클럽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다자간투자협정(MAI) 협상 중단을 선언해야만 했다. 1995년부터 각국 국회의원들도 모르는 채로 진행되었던 국제투자규범인 MAI가 결국 좌초된 것이다. 이는 피상적으로 '문화만큼은 개방할 수 없다'는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 주장으로 인한 미국과 프랑스의 갈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전세계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의 강력한 저항이 존재했다. 1998년 2월부터 인터넷에 배포된 'MAI에 대한 NGO공동성명서'에는 약 68개국 565개 단체들이 서명하여 광범위한 저항이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MAI는 시민·민중들의 권리, 생태계 등 그 어느 것보다도 해외투자자의 권리를 절대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기까지 합법화시키는 '투자'에 대한 포괄적 정의, 해외투자자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금지하는 이행의무부과금지조항, 해외투자자를 주권국가의 위상으로 격상시킨 '해외투자자의 국가에 대한 직접제소 권한' 등은 MAI가 누구를 위한 규범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각국 민중들의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고, 결국 OECD는 협정체결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연대투쟁을 한단계 발전시키고,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각국 민중들은 무기력을 극복하고, 그들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투쟁의 전개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국제적인 교류와 연대는 그 이후 저항운동세력간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유력한 무기로 활용되었다. 결론적으로 MAI반대 투쟁은 1999년 '시애틀 전투'의 토대가 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한 수단들인 국제협정 및 기구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쥬빌리 캠페인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
1998년 11월, 로마에서는 38개국 주빌리2000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쥬빌리2000캠페인'을 발족시켰다. 이들의 요구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는 것이었다. 쥬빌리 운동은 제3세계 국가가 외채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여 그들이 세계경제체제에서 동일한 조건 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 캠페인은 1999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G7+1 정상회담에서 '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계획'이 채택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외채탕감운동의 방향' 및 '중채무빈국 외채탕감계획'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남반구와 북반구로 분화되었다. 1999년 11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브라질, 필리핀, 남아공 등의 사회운동세력이 중심이 되서 쥬빌리남반구(Jubilee South)를 구성했다. 쥬빌리 사우스는 모든 외채의 완전 탕감, 구조조정 반대 그리고 외채 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요구했다. 이 운동은 앞으로 외채상환 거부운동으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외채탕감운동은 현재 남반구와 북반구로 분화되어 있지만, 국제연대투쟁의 활성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99년 G7+1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외채탕감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국제적으로 전개된 외채탕감캠페인이 선진 제국에 일정한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물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금융투기반대 운동
금융자본의 횡포에 맞선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지난 1998년 6월 결성된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은 아일랜드, 그리스, 세네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금융시장 지배체제는 전세계 민중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야기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미 IMF 위기를 거치면서 그것의 파괴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고용파괴, 공공영역의 해체, 주식시장의 투기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TTAC은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의 첫걸음으로는 토빈세(Tobin Tax)를 포함한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정책적 대안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캠페인은 대중적 기반이 강한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캐나다와 핀란드 의회 차원에서는 토빈세 도입 호소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금융거래과세운동은 금융시장이 일정 수준이상으로 발달되어 있는 북반구 국가 중심의 운동이라는 한계성이 존재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적 특질을 이루는 금융시장 독재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ATTAC은 제3세계의 외채탕감운동, 구조조정 반대운동과의 연대도 활발하게 제기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투자협정/WTO 반대운동
지난 1995년 출범하여 IMF, 세계은행과 더불어 세계화를 주도한 WTO는 자유무역이란 이름 아래 초국적기업의 확장과 운영에 방해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그 장애물이란 대부분 노동권, 인권, 환경권, 건강권, 공동체 등 국민경제적·사회적 필요에 따른 정책들을 의미했다. 또한 WTO는 서비스(GATs)와 지적재산권(TRIPs)를 자신의 휘하에 포함시키고, 분쟁해결절차를 비약적으로 강화시킴으로써, 제국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더욱 강화시켰다.
WTO는 출범이후 남반구와 북반구간, 일국 내에서의 계급·계층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제3세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율적인 경제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도 심각히 제한시켰다. 세계화의 실질적 지휘자인 WTO는 각국 민중들의 또 다른 투쟁 타깃으로 등장했다. 이는 상징적으로 지난 1999년 시애틀에서 폭발되었다. 하지만, WTO반대투쟁에 있어서, 모든 입장이 단일한 것은 아니다. 미국 노총산별회의(AFL-CIO) 처럼 무역과 노동기준을 연계시켜, WTO를 개혁하자는 입장이 있는 반면, 농민운동단체들과 사회운동단체들은, 인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생명특허·문화·공공서비스 등은 WTO 체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과 시애틀 투쟁을 경과하면서, 양 입장 중 WTO 체제의 장기적인 해체를 목표로 하는 후자의 입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아직은 멀고도 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이번 회의는 다른 회의들과는 달랐다'.
이것이 우리가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 도착하기 전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재상상'이라는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화자들이 들었던 말이다. 거기 모인 대표자들(5월달 3일동안 약1천여명이 참석했다)에게 연설하면서 우리는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지구적 기업주의에 맞선 운동을 이끄는 '일치된 전망과 전술'의 부재라는 문제이다. -나오미클라인, [세계화반대운동의 전망], The Nation, 2000.6.
전술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에 동감하는 국제연대의 흐름들은 특정부문 이슈(환경, 여성, 인권, 소비자, 건강 등)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세력들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각자 자신의 시각을 갖고 특정 다국적기업이나 특정 산업 혹은 새로운 무역기구 등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서로 다른 문제들이 모두 하나의 의제, 즉 권력과 자본을 더 소수에 집중시키는 세계화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을 공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감에 기반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대응, 국제금융기구 및 자유무역협정 '해체'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남반구 NGO 및 사회운동세력들간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최근 국제연대투쟁의 또 다른 특징들이다. 게다가 인터넷상에서 NGO와 사회단체가 서로의 웹사이트를 연결함으로써,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관료적 구조나 위계질서의 영향을 최소화하며 대중적 동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크의 형성, 자율적 동원체제의 발전은 최근 국제연대운동에 날개를 달아준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상당히 많은 대중들이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참여했고, 풀뿌리 운동이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신들의 투쟁을 세계화시키고 바로 국제연대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얻어낸 국제연대운동의 조직적, 정치적 성과들을 온존히 보존하고 향후 더큰 투쟁을 예비하기 위해서 몇가지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제1세계와 제3세계, 북반구와 남반구를 아우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 동맹세력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간 전통적으로 국제적인 연대행동은 북반구 NGO들에 의해 주도되어왔지만, 최근에는 남반구 사회운동 및 대중운동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구 중심의 NGO운동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는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견해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의 요구를 형성해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국제정치무대에서 NGO와 사회운동세력들이 주요 주체로 등장하면서 NGO의 우경화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나 초국적자본 역시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 아래 사회적 불만을 흡수하고 포섭해내기 위해 NGO를 정치적 일주체로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에서 보여지고 있으며, 거대 노동조합이나 NGO의 경우 제1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는 향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을 해나감에 있어서, 공통된 투쟁의 요구를 마련하기 위한 인식지반을 형성하는 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외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우려는, 장기적으로 국제연대운동을 진전시키고자 할 때, 각국 정상들의 회의를 따라다니는 이벤트성 시위에 너무 많은 기대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물론, 현재 조건에서 정확하게 투쟁해야 할 기구와 회의에 반대하는 행동을 명시화하는 투쟁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시애틀에서 직접행동 전술은 경찰을 경악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WTO체제에 맞선 구체적 반대행동을 조직했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행동전술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능동적인 국제연대행동의 계획을 수립하고 이끌어갈 논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중운동이 세계 국제연대운동에서 갖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국내 민중운동세력들 간 국제연대운동에 있어서 쟁점화된 문제들에 대해 논의와 합의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세계화의 영향에 대한 전면적 평가와 검토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러한 논의 속에서 현재 세계경제질서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한국 민중운동의 위상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국제질서 및 무역구조에 대한 대안적 모색,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된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때만이 국제연대운동의 흐름, 그리고 한국사회 민중운동은 더욱 더 강력하게 이어질 것이다.
#참고문헌:
박하순, [방콕운크타드 회의보고], 2000.3.
이창근, [세계화반대 국제연대투쟁의 흐름과 쟁점], 노동자기업경영연구소, 2000.5.
멕시코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의 토지점거투쟁, 각국 노동자들의 민영화반대투쟁 등 일국적인 수준에서부터,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 시애틀·워싱턴·프라하 투쟁 등 국제적인 연대 투쟁까지, 각국 민중들의 도전은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세계 민중들에게 금융세계화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세계화는 필연적이며 불가피하다'는 이데올로기적 강요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초국적자본만큼이나 우리의 투쟁도 초국적이어야 한다'는 구호아래, 국제연대투쟁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제주의는 더 이상 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고루한 문구가 아니라, 현실 투쟁 속에서 점차 구현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주요한 계기들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의 성과와 한계를 개괄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다.
분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물결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
1998년 10월, 선진국들의 클럽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다자간투자협정(MAI) 협상 중단을 선언해야만 했다. 1995년부터 각국 국회의원들도 모르는 채로 진행되었던 국제투자규범인 MAI가 결국 좌초된 것이다. 이는 피상적으로 '문화만큼은 개방할 수 없다'는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 주장으로 인한 미국과 프랑스의 갈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전세계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의 강력한 저항이 존재했다. 1998년 2월부터 인터넷에 배포된 'MAI에 대한 NGO공동성명서'에는 약 68개국 565개 단체들이 서명하여 광범위한 저항이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MAI는 시민·민중들의 권리, 생태계 등 그 어느 것보다도 해외투자자의 권리를 절대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기까지 합법화시키는 '투자'에 대한 포괄적 정의, 해외투자자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금지하는 이행의무부과금지조항, 해외투자자를 주권국가의 위상으로 격상시킨 '해외투자자의 국가에 대한 직접제소 권한' 등은 MAI가 누구를 위한 규범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각국 민중들의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고, 결국 OECD는 협정체결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연대투쟁을 한단계 발전시키고,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각국 민중들은 무기력을 극복하고, 그들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투쟁의 전개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국제적인 교류와 연대는 그 이후 저항운동세력간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유력한 무기로 활용되었다. 결론적으로 MAI반대 투쟁은 1999년 '시애틀 전투'의 토대가 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한 수단들인 국제협정 및 기구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쥬빌리 캠페인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
1998년 11월, 로마에서는 38개국 주빌리2000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쥬빌리2000캠페인'을 발족시켰다. 이들의 요구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는 것이었다. 쥬빌리 운동은 제3세계 국가가 외채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여 그들이 세계경제체제에서 동일한 조건 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 캠페인은 1999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G7+1 정상회담에서 '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계획'이 채택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외채탕감운동의 방향' 및 '중채무빈국 외채탕감계획'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남반구와 북반구로 분화되었다. 1999년 11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브라질, 필리핀, 남아공 등의 사회운동세력이 중심이 되서 쥬빌리남반구(Jubilee South)를 구성했다. 쥬빌리 사우스는 모든 외채의 완전 탕감, 구조조정 반대 그리고 외채 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요구했다. 이 운동은 앞으로 외채상환 거부운동으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외채탕감운동은 현재 남반구와 북반구로 분화되어 있지만, 국제연대투쟁의 활성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99년 G7+1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외채탕감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국제적으로 전개된 외채탕감캠페인이 선진 제국에 일정한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물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금융투기반대 운동
금융자본의 횡포에 맞선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지난 1998년 6월 결성된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은 아일랜드, 그리스, 세네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금융시장 지배체제는 전세계 민중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야기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미 IMF 위기를 거치면서 그것의 파괴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고용파괴, 공공영역의 해체, 주식시장의 투기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TTAC은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의 첫걸음으로는 토빈세(Tobin Tax)를 포함한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정책적 대안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캠페인은 대중적 기반이 강한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캐나다와 핀란드 의회 차원에서는 토빈세 도입 호소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금융거래과세운동은 금융시장이 일정 수준이상으로 발달되어 있는 북반구 국가 중심의 운동이라는 한계성이 존재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적 특질을 이루는 금융시장 독재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ATTAC은 제3세계의 외채탕감운동, 구조조정 반대운동과의 연대도 활발하게 제기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투자협정/WTO 반대운동
지난 1995년 출범하여 IMF, 세계은행과 더불어 세계화를 주도한 WTO는 자유무역이란 이름 아래 초국적기업의 확장과 운영에 방해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그 장애물이란 대부분 노동권, 인권, 환경권, 건강권, 공동체 등 국민경제적·사회적 필요에 따른 정책들을 의미했다. 또한 WTO는 서비스(GATs)와 지적재산권(TRIPs)를 자신의 휘하에 포함시키고, 분쟁해결절차를 비약적으로 강화시킴으로써, 제국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더욱 강화시켰다.
WTO는 출범이후 남반구와 북반구간, 일국 내에서의 계급·계층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제3세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율적인 경제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도 심각히 제한시켰다. 세계화의 실질적 지휘자인 WTO는 각국 민중들의 또 다른 투쟁 타깃으로 등장했다. 이는 상징적으로 지난 1999년 시애틀에서 폭발되었다. 하지만, WTO반대투쟁에 있어서, 모든 입장이 단일한 것은 아니다. 미국 노총산별회의(AFL-CIO) 처럼 무역과 노동기준을 연계시켜, WTO를 개혁하자는 입장이 있는 반면, 농민운동단체들과 사회운동단체들은, 인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생명특허·문화·공공서비스 등은 WTO 체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과 시애틀 투쟁을 경과하면서, 양 입장 중 WTO 체제의 장기적인 해체를 목표로 하는 후자의 입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아직은 멀고도 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이번 회의는 다른 회의들과는 달랐다'.
이것이 우리가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 도착하기 전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재상상'이라는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화자들이 들었던 말이다. 거기 모인 대표자들(5월달 3일동안 약1천여명이 참석했다)에게 연설하면서 우리는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지구적 기업주의에 맞선 운동을 이끄는 '일치된 전망과 전술'의 부재라는 문제이다. -나오미클라인, [세계화반대운동의 전망], The Nation, 2000.6.
전술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에 동감하는 국제연대의 흐름들은 특정부문 이슈(환경, 여성, 인권, 소비자, 건강 등)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세력들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각자 자신의 시각을 갖고 특정 다국적기업이나 특정 산업 혹은 새로운 무역기구 등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서로 다른 문제들이 모두 하나의 의제, 즉 권력과 자본을 더 소수에 집중시키는 세계화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을 공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감에 기반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대응, 국제금융기구 및 자유무역협정 '해체'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남반구 NGO 및 사회운동세력들간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최근 국제연대투쟁의 또 다른 특징들이다. 게다가 인터넷상에서 NGO와 사회단체가 서로의 웹사이트를 연결함으로써,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관료적 구조나 위계질서의 영향을 최소화하며 대중적 동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크의 형성, 자율적 동원체제의 발전은 최근 국제연대운동에 날개를 달아준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상당히 많은 대중들이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참여했고, 풀뿌리 운동이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신들의 투쟁을 세계화시키고 바로 국제연대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얻어낸 국제연대운동의 조직적, 정치적 성과들을 온존히 보존하고 향후 더큰 투쟁을 예비하기 위해서 몇가지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제1세계와 제3세계, 북반구와 남반구를 아우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 동맹세력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간 전통적으로 국제적인 연대행동은 북반구 NGO들에 의해 주도되어왔지만, 최근에는 남반구 사회운동 및 대중운동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구 중심의 NGO운동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는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견해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의 요구를 형성해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국제정치무대에서 NGO와 사회운동세력들이 주요 주체로 등장하면서 NGO의 우경화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나 초국적자본 역시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 아래 사회적 불만을 흡수하고 포섭해내기 위해 NGO를 정치적 일주체로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에서 보여지고 있으며, 거대 노동조합이나 NGO의 경우 제1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는 향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을 해나감에 있어서, 공통된 투쟁의 요구를 마련하기 위한 인식지반을 형성하는 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외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우려는, 장기적으로 국제연대운동을 진전시키고자 할 때, 각국 정상들의 회의를 따라다니는 이벤트성 시위에 너무 많은 기대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물론, 현재 조건에서 정확하게 투쟁해야 할 기구와 회의에 반대하는 행동을 명시화하는 투쟁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시애틀에서 직접행동 전술은 경찰을 경악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WTO체제에 맞선 구체적 반대행동을 조직했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행동전술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능동적인 국제연대행동의 계획을 수립하고 이끌어갈 논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중운동이 세계 국제연대운동에서 갖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국내 민중운동세력들 간 국제연대운동에 있어서 쟁점화된 문제들에 대해 논의와 합의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세계화의 영향에 대한 전면적 평가와 검토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러한 논의 속에서 현재 세계경제질서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한국 민중운동의 위상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국제질서 및 무역구조에 대한 대안적 모색,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된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때만이 국제연대운동의 흐름, 그리고 한국사회 민중운동은 더욱 더 강력하게 이어질 것이다.
#참고문헌:
박하순, [방콕운크타드 회의보고], 2000.3.
이창근, [세계화반대 국제연대투쟁의 흐름과 쟁점], 노동자기업경영연구소, 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