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함'시킬 것인가? '제외'시킬 것인가? - WTO 체제에 맞선 두 개의 대응전략
1999년 시애틀에서,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는 3만여명의 조합원을 동원하여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를 주장하며 WTO 각료회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란 말 그대로, 노동보호기준을 무역에 '연계'시키자는 뜻이다. 자유무역이 노동자의 권리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노총산별회의는 "노동기준이 WTO 체제내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어야 하고, 노동기준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WTO가 무역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국제자유노련(ICFTU)의 공식견해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NGO가 자유무역협정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이는 '사회적조항' 노선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논리의 핵심은 자유무역협정이나 국제적 기구들이 '경제적 측면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 즉 노동·환경기준 등을 구속력있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꽤 현실성있게 보인다. 특히 국제적인 노동기준을 관할하는 국제노동기구(ILO)가 각국에 어떠한 강제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반면에, WTO는 무역제재조치라는 엄청난 강제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사회적조항 노선의 역사성
'사회적 조항'이란 일반적으로 노동,환경,인권 기준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항들을 국제적인 자유무역협정에 삽입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남반구와 북반구 정부들간, 노동조합들에 진행된 논쟁의 역사는 꽤 유래가 깊다. 이에 대한 추적은 현재 전개되는 WTO대응전략을 enffjTKs 논쟁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 북반구 노동자들은 자국 자본가들의 제3세계 자연자원과 민중들에 대한 약탈과 초과착취에 의한 이윤을 간접적인 수준에서나마 분배받았다. 물론 북반구 노동자와 민중들 전체라기보다는 그 중 상층부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임금수준 등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마감되고, 위기탈출을 위한 자본가들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북반구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탈국가화/탈지역화된 기업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고, 남반구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지지하는 것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북반구 국가들 또한 자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비관세장벽이라 일컬어지는 노동기준, 환경기준의 준수를 남반구 국가들에 요구하게 된다. 북반구 국가들은 '사회적 조항'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의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아무튼 북반구 정부, 기업, 노동조합 할 것 없이 이들 모두는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사회적 조항'이 포함되어야 함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는 곧바로 남북정부들간, 그리고 노동자들간에 첨예한 쟁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 노동조합과 정부들은 사회적 조항을 강력히 지지하며, 남반구 국가들-정부, 고용주, 노동조합 모두-은 완강한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각자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다기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핵심적인 쟁점은 간단하다.
북반구 국가들(및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볼 때, 극도로 싼 임금노동에 의해 생산된 남반구의 생산품들이 수입됨으로써 불공정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결과 높은 임금과 현재의 고용수준을 유지하는 데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싼 임금의 유혹은 자국의 자본들이 남반구로 옮겨가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그것은 자신들의 고용수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에 반해 남반구 국가들(및 노동조합)은 국제적인 교환에 있어서, 낮은 임금은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국가들은 임금, 고용조건,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쟁점은 국가주권의 문제들이며,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한다. 특히 민족해방투쟁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남반구 노동자들이 북반구 국가들에 의한 간섭을(설사 그것이 아무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 국가들과 고용주들, 수출업자들간의 사회적 조항과 관련한 대립이 대다수 노동자들과의 이해관계나 그들의 권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편협한 이기주의에 의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북반구 노동자들의 남반구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사회적조항'으로 표현된 노동조건, 임금수준 등-은 많은 부분 그들의 협소한 이해에서 비롯되었음-비록 북반구 자본가들의 추동이 있었지만-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남반구 노동자들은 자국 정부의 민족주의적 동원 등에 흽쓸리면서, 토착 자본가계급의 든든한 동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회적조항과 관련된 남북국가들,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의 이러한 논쟁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지점은, 양자 모두 국내적인 차원의 사회적 분화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없다는 점이다. 북반구 노동자들은 남반구의 싼 노동으로부터의 경쟁에 직면하지 않은 산업에서도 다운사이징에 의해 서서히 직장을 잃어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남반구 노동계급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있어서 그들 토착 자본가들이 그들만의 보다 높은 이익이라는 협소한 이해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준 구조적인 불행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현재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그 과정이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사회적조항이 기득권-남북 국가 및 자본가들 모두-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환경기준 편입 주장의 문제점
노동·환경기준을 편입시키자는 미국노총산별회의의 주장은 두가지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번째로, WTO에 편입된 노동기준이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사실 노동·환경 기준이 자유무역협정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것은 그 악명높은 나프타가 최초이다. 그런데, 이 부설협약은 현실적으로 노동·환경 보호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일례로, 미국계 스프린트(Sprint)사의 불법적 노동행위에 대해 통신 노동자들의 청원으로, 나프타 노동사무국이 조사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나프타는 그 회사에 약간의 벌금형을 내리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기업가의 경우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프타의 부설노동협약이 제 역할을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두 번째로, 무역과 노동·환경기준 연계 주장은 정치적으로 'WTO 개혁'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준다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있다.
즉, 노동·환경기준을 WTO에 편입시킴으로써, 얻을 것으로 예상하는 일정한 진보성 혹은 잠재적인 가치보다는 그에 의해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미치는 손상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다른 대응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조항'을 편입시키는 전통적인 전략은 사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에 일정한 수정을 가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국제 사회운동진영에서도 다른 대응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된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거부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대중적·인식적 토대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에서 그 단초가 마련되게 된다.
1998년 10월, '문화적 예외'라는 주장이 주요 일간지를 장식했다. MAI의 협상에서 프랑스 정부가 주장한 내용이다. 문화만큼은 MAI 체제에서 '예외'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서 철수했고, MAI협상은 중단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주장과 더불어, 국제사회 NGO에서부터 생태그룹, 노동조합, 급진적 정당운동세력까지 모두 MAI 반대를 외친 것이다. 이는 과거 자유무역협정들에 대한 투쟁과는 확실히 다른 양상이었다.
이는 MAI 협정 속에 최소한의 '사회적조항'을 삽입하는 것 자체도 사실상 무의미하며, 불가능할 정도로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극단적으로 강변하고 있는 협정이었다는 점에 기인한 바 크다. 또한 자유무역협정에 포괄되어 있는 노동·환경 기준의 이행을 감시·통제하는 부설기구들이 유명무실하다는 현실도, '반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실제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강력한 형태로 알려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도 노동, 환경 기준을 감시하는 부설기구가 존재하지만, 그것의 활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강제력도 발휘되지 못했다.
또한 일국적·지방적 수준의 '연대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제안이 초국적인 수준의 통제 대책과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노동·환경·인권 기준들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 남북 국가들, 자본가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의 기준 및 권리의 보장이 모든 국가들의 경제활동 영역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MAI 반대투쟁의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대안들 속에서, 초국적금융자본 통제와 민중의 기본권 획득을 위한 일국적·지방적 수준의 정책들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조항'을 둘러싼 악무한적인 논쟁의 역사에 비교하면 진보적인 측면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다자간투자협정 반대 투쟁은 국제적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에게 또 다른 전략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즉, 이것은 국제협정 전체를 해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배제(예외)'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해체'를 목표로 한 '예외' 주장!
'해체론자'들은 확실히 국제연대운동에 있어서 시민권을 획득했다. 사실 1990년대 국제금융기구 및 WTO체제에 대한 '해체' 주장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소수 급진론자들의 관념적 주장으로 치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 세계화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개혁주의적 입장이 기존 경향을 제어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면서, '해체론'은 국제연대운동 내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결정적으로 MAI 반대투쟁을 계기로 형성되었다. 극단적으로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MAI 앞에서, 보수적 NGO들은 그 내에 어떠한 사회적조항조차 편입시킬 여지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도 초국적자본 및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들을 제기함으로써, MAI 체결 반대론자들과 함께 했다. 이러한 경향은 시애틀 투쟁과 워싱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국제금융기구 해체/모든 추가적인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 체결 반대/WTO체제 해체 등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해체론자'들의 부상과 더불어, 당연히 '대안'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된다.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재편에 대한 대안적 전략은 크게 두가지 수준으로 구별지을 수 있다.
하나는 UN(및 그 산하기구들)을 활용한 자본의 국제적 통제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체제로부터의 '이탈' 전략이다. 위의 양자(兩者) 모두, 현존 기구들의 해체(최소한으로 '기존 권력 강화 반대'), 추가적인 무역 및 투자 자유화 협상 중단 등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해체/반대 이후'에 대한 상은 차별적이다. 전자(前者)의 입장이 명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UNCTAD NGO 포럼이다. 이 포럼에서, 월덴 벨로를 비롯한 'WTO 해체론자'들의 일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UNCTAD에 무역관련 협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후자(候者)의 경향은, 보다 일국(一國)에 기반을 둔 전략이다. 이들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각국 정부의 '자본에 대한 통제력'의 완전 상실에 주목한다. 이에 일국적 차원의 통제 권한 회복과 급진적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은, '농업'협정을 포함하여, '필수서비스, 문화, 생명특허' 등을 WTO 체제로부터 제외시키고자 하는 흐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외채 거부', '자본통제 정책' 등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일국과 지역대중투쟁에 기반하지 않은 국제연대투쟁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국제주의적 시야와 전략 속에서 배치되지 못한 국내투쟁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국제주의적 전략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민주주의-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스무살이 된 사람이 국제주의자가 아니라면 장차 비싼 값을 치를 것이다. 국제주의자가 되고 모든 비판적 사회운동과 연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또 나아가 아주 중요한 것들―문화, 문학, 과학 등―을 생존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이다. 인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국제세력으로써만 통제 가능한 눈먼 국제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삐에르 부르디외
이 주장은 국제자유노련(ICFTU)의 공식견해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NGO가 자유무역협정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이는 '사회적조항' 노선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논리의 핵심은 자유무역협정이나 국제적 기구들이 '경제적 측면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 즉 노동·환경기준 등을 구속력있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꽤 현실성있게 보인다. 특히 국제적인 노동기준을 관할하는 국제노동기구(ILO)가 각국에 어떠한 강제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반면에, WTO는 무역제재조치라는 엄청난 강제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사회적조항 노선의 역사성
'사회적 조항'이란 일반적으로 노동,환경,인권 기준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항들을 국제적인 자유무역협정에 삽입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남반구와 북반구 정부들간, 노동조합들에 진행된 논쟁의 역사는 꽤 유래가 깊다. 이에 대한 추적은 현재 전개되는 WTO대응전략을 enffjTKs 논쟁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 북반구 노동자들은 자국 자본가들의 제3세계 자연자원과 민중들에 대한 약탈과 초과착취에 의한 이윤을 간접적인 수준에서나마 분배받았다. 물론 북반구 노동자와 민중들 전체라기보다는 그 중 상층부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임금수준 등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마감되고, 위기탈출을 위한 자본가들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북반구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탈국가화/탈지역화된 기업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고, 남반구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지지하는 것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북반구 국가들 또한 자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비관세장벽이라 일컬어지는 노동기준, 환경기준의 준수를 남반구 국가들에 요구하게 된다. 북반구 국가들은 '사회적 조항'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의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아무튼 북반구 정부, 기업, 노동조합 할 것 없이 이들 모두는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사회적 조항'이 포함되어야 함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는 곧바로 남북정부들간, 그리고 노동자들간에 첨예한 쟁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 노동조합과 정부들은 사회적 조항을 강력히 지지하며, 남반구 국가들-정부, 고용주, 노동조합 모두-은 완강한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각자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다기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핵심적인 쟁점은 간단하다.
북반구 국가들(및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볼 때, 극도로 싼 임금노동에 의해 생산된 남반구의 생산품들이 수입됨으로써 불공정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결과 높은 임금과 현재의 고용수준을 유지하는 데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싼 임금의 유혹은 자국의 자본들이 남반구로 옮겨가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그것은 자신들의 고용수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에 반해 남반구 국가들(및 노동조합)은 국제적인 교환에 있어서, 낮은 임금은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국가들은 임금, 고용조건,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쟁점은 국가주권의 문제들이며,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한다. 특히 민족해방투쟁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남반구 노동자들이 북반구 국가들에 의한 간섭을(설사 그것이 아무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 국가들과 고용주들, 수출업자들간의 사회적 조항과 관련한 대립이 대다수 노동자들과의 이해관계나 그들의 권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편협한 이기주의에 의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북반구 노동자들의 남반구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사회적조항'으로 표현된 노동조건, 임금수준 등-은 많은 부분 그들의 협소한 이해에서 비롯되었음-비록 북반구 자본가들의 추동이 있었지만-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남반구 노동자들은 자국 정부의 민족주의적 동원 등에 흽쓸리면서, 토착 자본가계급의 든든한 동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회적조항과 관련된 남북국가들,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의 이러한 논쟁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지점은, 양자 모두 국내적인 차원의 사회적 분화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없다는 점이다. 북반구 노동자들은 남반구의 싼 노동으로부터의 경쟁에 직면하지 않은 산업에서도 다운사이징에 의해 서서히 직장을 잃어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남반구 노동계급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있어서 그들 토착 자본가들이 그들만의 보다 높은 이익이라는 협소한 이해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준 구조적인 불행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현재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그 과정이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사회적조항이 기득권-남북 국가 및 자본가들 모두-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환경기준 편입 주장의 문제점
노동·환경기준을 편입시키자는 미국노총산별회의의 주장은 두가지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번째로, WTO에 편입된 노동기준이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사실 노동·환경 기준이 자유무역협정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것은 그 악명높은 나프타가 최초이다. 그런데, 이 부설협약은 현실적으로 노동·환경 보호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일례로, 미국계 스프린트(Sprint)사의 불법적 노동행위에 대해 통신 노동자들의 청원으로, 나프타 노동사무국이 조사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나프타는 그 회사에 약간의 벌금형을 내리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기업가의 경우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프타의 부설노동협약이 제 역할을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두 번째로, 무역과 노동·환경기준 연계 주장은 정치적으로 'WTO 개혁'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준다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있다.
즉, 노동·환경기준을 WTO에 편입시킴으로써, 얻을 것으로 예상하는 일정한 진보성 혹은 잠재적인 가치보다는 그에 의해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미치는 손상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다른 대응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조항'을 편입시키는 전통적인 전략은 사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에 일정한 수정을 가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국제 사회운동진영에서도 다른 대응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된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거부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대중적·인식적 토대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에서 그 단초가 마련되게 된다.
1998년 10월, '문화적 예외'라는 주장이 주요 일간지를 장식했다. MAI의 협상에서 프랑스 정부가 주장한 내용이다. 문화만큼은 MAI 체제에서 '예외'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서 철수했고, MAI협상은 중단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주장과 더불어, 국제사회 NGO에서부터 생태그룹, 노동조합, 급진적 정당운동세력까지 모두 MAI 반대를 외친 것이다. 이는 과거 자유무역협정들에 대한 투쟁과는 확실히 다른 양상이었다.
이는 MAI 협정 속에 최소한의 '사회적조항'을 삽입하는 것 자체도 사실상 무의미하며, 불가능할 정도로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극단적으로 강변하고 있는 협정이었다는 점에 기인한 바 크다. 또한 자유무역협정에 포괄되어 있는 노동·환경 기준의 이행을 감시·통제하는 부설기구들이 유명무실하다는 현실도, '반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실제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강력한 형태로 알려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도 노동, 환경 기준을 감시하는 부설기구가 존재하지만, 그것의 활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강제력도 발휘되지 못했다.
또한 일국적·지방적 수준의 '연대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제안이 초국적인 수준의 통제 대책과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노동·환경·인권 기준들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 남북 국가들, 자본가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의 기준 및 권리의 보장이 모든 국가들의 경제활동 영역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MAI 반대투쟁의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대안들 속에서, 초국적금융자본 통제와 민중의 기본권 획득을 위한 일국적·지방적 수준의 정책들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조항'을 둘러싼 악무한적인 논쟁의 역사에 비교하면 진보적인 측면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다자간투자협정 반대 투쟁은 국제적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에게 또 다른 전략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즉, 이것은 국제협정 전체를 해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배제(예외)'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해체'를 목표로 한 '예외' 주장!
'해체론자'들은 확실히 국제연대운동에 있어서 시민권을 획득했다. 사실 1990년대 국제금융기구 및 WTO체제에 대한 '해체' 주장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소수 급진론자들의 관념적 주장으로 치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 세계화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개혁주의적 입장이 기존 경향을 제어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면서, '해체론'은 국제연대운동 내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결정적으로 MAI 반대투쟁을 계기로 형성되었다. 극단적으로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MAI 앞에서, 보수적 NGO들은 그 내에 어떠한 사회적조항조차 편입시킬 여지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도 초국적자본 및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들을 제기함으로써, MAI 체결 반대론자들과 함께 했다. 이러한 경향은 시애틀 투쟁과 워싱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국제금융기구 해체/모든 추가적인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 체결 반대/WTO체제 해체 등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해체론자'들의 부상과 더불어, 당연히 '대안'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된다.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재편에 대한 대안적 전략은 크게 두가지 수준으로 구별지을 수 있다.
하나는 UN(및 그 산하기구들)을 활용한 자본의 국제적 통제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체제로부터의 '이탈' 전략이다. 위의 양자(兩者) 모두, 현존 기구들의 해체(최소한으로 '기존 권력 강화 반대'), 추가적인 무역 및 투자 자유화 협상 중단 등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해체/반대 이후'에 대한 상은 차별적이다. 전자(前者)의 입장이 명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UNCTAD NGO 포럼이다. 이 포럼에서, 월덴 벨로를 비롯한 'WTO 해체론자'들의 일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UNCTAD에 무역관련 협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후자(候者)의 경향은, 보다 일국(一國)에 기반을 둔 전략이다. 이들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각국 정부의 '자본에 대한 통제력'의 완전 상실에 주목한다. 이에 일국적 차원의 통제 권한 회복과 급진적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은, '농업'협정을 포함하여, '필수서비스, 문화, 생명특허' 등을 WTO 체제로부터 제외시키고자 하는 흐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외채 거부', '자본통제 정책' 등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일국과 지역대중투쟁에 기반하지 않은 국제연대투쟁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국제주의적 시야와 전략 속에서 배치되지 못한 국내투쟁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국제주의적 전략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민주주의-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스무살이 된 사람이 국제주의자가 아니라면 장차 비싼 값을 치를 것이다. 국제주의자가 되고 모든 비판적 사회운동과 연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또 나아가 아주 중요한 것들―문화, 문학, 과학 등―을 생존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이다. 인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국제세력으로써만 통제 가능한 눈먼 국제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삐에르 부르디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