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중계아울렛 이랜드노조
파업 96일, 투쟁의 고삐를 다시 당기며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집회에 참석할 때면 항상 긴장된다. 몇백, 몇천씩 모이는 큰 집회장에서 느낄 수 없는 소규모 집회의 낯섬, 긴장감. 그리고 몇 안돼는 대오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눈초리는, 조합원들이 몇번씩 손을 쳐들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러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서먹함을 느끼게 한다. 비정규직노조의 집회는 그래서인지 더 치열하고 절절하게 느껴진다.
중계동 2001아울렛은 사방을 둘러싼 아파트단지 안에 위압감을 자랑하며 서 있다. 아울렛매장 1층 현관 앞에 둘러쳐진 작은 천막. '파업투쟁 96일'이라고 쓰인 천막에는 "악덕기업인 (주)이랜드의 상품을 사지 맙시다!" "(주)이랜드가 운영하는 아울렛을 이용하지 맙시다!"라는 플랭카드까지 걸려있다. 이미 지역단체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천막 안팎에 조합원들이 옹기종기 모였고, 삼삼오오 짝을 이룬 대오가 속속 모여 금방 40여명의 대오가 된다. 같은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 102일째 파업투쟁을 진행중인 스위스그랜드호텔노조, 학생들까지 연대감은 더 커져만 간다. 집회대오 옆에 같이 자리를 잡으니, 조합원들이 모두 내 언니, 이모 또래다.
"임금도 못받으면서 파업투쟁한지 석달째, 외쳐봅시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그렇게 '이랜드부당노동행위 규탄 및 성실한 교섭촉구를 한 결의대회'는 시작되었다.
담배와 술은 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팔고 산다
-불법파견노동자 직접고용! 최소생활임금 보장!
주식회사 이랜드. 1980년 출범하여 기독교기업윤리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랜드문화를 만들어냈고, 198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성장하여 브렌따노, 쉐인, 스코필드, 헌트 등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있을 법한 의류브랜드를 모두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기업은 소속되어 있는 직원의 생계와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합니다. 일자리를 많이 마련함으로써 고용을 증대하는 것도 이익을 내야 하는 큰 이유… 성실과 검소를 통해 얻은 이익들을 사회사업과 선교사업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이랜드의 경영이념만을 믿고 입사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규직과 같이 일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506,000원의 임금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상여금도 없으며 명절 때는 오천원짜리 도서상품권을 한 명의 정규직 관리자로부터 일렬로 줄서서 받는데도, 1999년 순이익 300억을 챙긴 회사는 506,000원의 임금에선 더이상 못 올려주겠다고 고집한다. 부곡, 안산, 중계분회 할 것 없이, 노보에 가득찬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차라리 처절하기까지 하다.
'입사년도가 3년이 다 넘었는데 기본급 55만원이 왠말인가?' '임금초임 506,000원에서 726,000원으로 인상' '불법 도급 전면 철회! 일방적 계약해지 금지!' '부곡물류창고… 냉장고보다도 더 추운 그 현장에서 헌 잠바 하나로 겨울을 보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운 여름을 허름한 면T로… 한달을 야근으로 만근을 해봐야 506,000원이 전부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우리를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용역회사에 넘기려고 했다.… 말도 없이, 일방적인 회사의 마음대로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대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7년을 같이 일하고 밤도 새우며, 한솥밥을 먹던 그 동료가 내게 4번째 천막 철거를 하며, 욕설과 악을 쓰며 내게 회사를 나가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내게 나가라며, 나의 권리를 짓밟을 수가 있느냐는 거다. 그들이 나의 입장이라면 과연 회사가 하라는 대로 그렇게 다른 회사로 팔려갔을까?'
노동자를 발아래로 보는 이랜드는 각성하라
-노조탄압 중지! 부당징계 철회!
이날 집회에서는 아울렛 중계지부 이은애 판매지부장을 필두로 회사측에 대한 항의방문이 이어졌다. 불법대체근로, 불법파견근로로 인한 파업장기화에 대한 책임을 묻고, 8월 7일 서비스직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진 군부대 서비스교육(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 그리고 노조탄압 중지/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항의방문이 진행되는 사이, 집회 대오는 매장순례를 시작했다. 자신이 평소 일하던 사업장에, 평소 근무하던 매장 한층한층마다 구호가 울려퍼진다. "비정규직 노예제도 노동자 다죽인다" "노동자를 무시하는 이랜드는 각성하라"
매장순례 이후, 어둑해진 거리에서 다시 듣는 항의방문 보고. 바로 옆에서 보면 순진하게만 보이는 이은애 판매지부장은 책상을 엎고 나왔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차장이 앉아있으면서도 과장이 나서서 사장면담을 요구하는 우릴 비웃습니다. 역시나 관리자들은, 가진 자들은 노동하는 사람들을 자기 발아래로 보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무시하는 이랜드는 각성하라! 노동조합 탄압하는 박성수를 구속하라!"
회사는 비정규직이 무슨 노동조합이냐고 비정규직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파업조차 불법파업으로 매도해왔다. 공권력과 결탁하여 경찰과 상호계획 하에 조합간부 2명 구속, 조합원 56명 무더기 연행, 불구속했으며, 기독교 신문 등 대외적으로 노동조합을 폭도·악마·불온단체로 매도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노조에 대한 박성수의 입장은 '자기는 오너'라는 것 뿐입니다. 노조가 빨갱이란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노조가 이렇게 강성으로 나가지는 않았죠. 탄압이 거세지니까 조합활동도 치열해진 겁니다. 회사측의 그릇된 노무관에 쐐기를 박고 뿌리뽑기 위해, 다시는 노조를 꺾지 못하도록 계속 투쟁해 나갈 겁니다." 집회 후 만난 이은애 지부장은 다음날 조회투쟁을 준비하며 말했다.
이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날
조합원들에게 노조탈퇴하면 인사이동시켜 주겠다는 이랜드. 파견가능업종이 아닌데도, 불법적인 대체근로와 파견근로를 자행하는 이 곳, 기독교기업윤리를 가진다면서도 군부대가서 군인들과 놀아주라는 상식이하의 서비스교육이 일어나는 곳이 이랜드다. 용역깡패에 맞서기 위한 방어마저 폭력으로 취급되어 구속된 노동조합원들…. 그러나, 파견철폐공대위, 상급노조, 시민단체 지역분회마다 연대망이 형성되어 여론지지의 가능성이 크다는 이 지부장의 말에서 이만큼 투쟁을 사수해온 노조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기도 한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지만, 다시는 일방적 계약해지 못하게 하고 조합활동(기존단협) 개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이랜드 노동조합.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인 노동3권마저 탄압하는 이랜드에 맞서 최소한의 생존권이나마 보장받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근무지인 매장에서 구호를 외칠 그들의 바램은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이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날, 그러나 다시 일터를 떠나지 않을 날, 그날을 위해서도 아울렛매장의 휘황한 불빛 아래 파업천막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힘없는 아줌마라고 무시하지 마라, 우리 권리는 우리가 지킨다!●
이랜드(2001아울렛 시흥점) 김숙영, 문선희 조합원
9월 19일 서울 중계동 2001아울렛 중계점 앞에서 5시부터 진행된 '이랜드부당노동행위 규탄 및 성실 교섭촉구를 위한 결의대회'는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저녁 8시무렵까지 진행된 집회와 항의방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다른 지역의 조합원들이 속속 지원결합하고 있다.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아울렛 시흥점에서 중계동까지 지원결합온 김숙영, 문선희 조합원을 만났다.
"아울렛 입사한지 6년차에요.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기독교 교인으로서 사장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고, 경영이념 1순위로 기독교정신을 선택한 게 정말 마음에 들어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IMF가 닥치니까 평소에 입버릇처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경영하고 이윤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데 쓸거다'라던 말은 간 곳이 없더군요. 정말 배신감이 컸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 참아왔는데, 정작 회사가 어려워지니 당장 사람부터 자르겠다니…. 그때 바로 인원감축조치에 맞서기 위해 시흥점 노조를 결성했지요."
그렇게 어렵게 인원감축을 무효화하는 소중한 투쟁의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시흥점은 전체직원의 90% 정도가 노조에 가입했다.
"사실 예전에는 비조합원과 조합원간의 차이점이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관리직들이 노조를 두려워할 정도였지요. 이번에 파업에 돌입할 때도 파업이 필요한가 생각도 했죠. 시흥점에서는 다른 곳보다 비교적 조합원이 많지만, 다른 곳에서 비일비재한 부당노동행위를 이야기하고 설득해나갔습니다. 직원들이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대체되는 현실이 어떻게 남의 일이겠어요?" 말하는 문선희 조합원의 눈이 또렷하다.
파업과정에서 회사관리자들의 비인간적 행태가 속속 드러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언젠간 나아지겠지, 그래도 도는 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주부여성사원이고 어머님들 또래인 아울렛에서 오히려 관리자들은 당당하게 나왔다. 8월 30일 8시 당산동아울렛에서는 그날도 조합원들이 매장순례를 위해 매장에 들어섰다. 그러자 관리자들이 셔터를 내려고는 셔터 한쪽만 열어서 손님들을 내보내고 자신들도 빠져나가더니 바로 경찰들이 투입되었다.
"노조원들이 전원연행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죠. 우리는 항상 평화적 시위를 해왔기 때문에 전경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는데 아니었습니다. 경고나 해산하라는 사전조치도 없이, 노조원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죠. 나중에서야 이게 의도된 계획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획서'라는 게 있더라구요. 모두 짜여진 각본으로 만들어진…."
김숙영 조합원은 눈을 적시며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조서과정에서 아이들과 남편이름을 묻는데, 내가 무슨 못할 짓을 했다고 경찰서에서 남편 이름을 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경찰마저도 조서하면서 '내 권리 내가 찾겠다'하면, 아줌마라고 무시하고….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이젠 그런 부당한 처우를 참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회사측에서 입발린 소리도 안해요. 노골적으로 대놓고 무시하죠. 그동안 투쟁하면서 힘들었던 과정은 오히려 단련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회사의 본질을 아는 계기가 되었지요."
새벽에 2개씩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파업투쟁에 참여하면서도 한마디 불만도 토로하지 않는 주부조합원들, 그만큼 그들은 회사에 분노가 크다. 이들은 조금씩 다른 생각으로 파업에 임했지만, 이제 모두의 생각은 같다. "물론 힘들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습니다. 회사가 어디까지 노동자들을 우롱할 것인지 두고 볼 겁니다." 비정규직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이랜드 조합원들의 바램. 약해보이지만, 굳건한 의지의 조합원들이 있기에, 아직 먼길이지만 헤쳐나가야 할 파업투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집회에 참석할 때면 항상 긴장된다. 몇백, 몇천씩 모이는 큰 집회장에서 느낄 수 없는 소규모 집회의 낯섬, 긴장감. 그리고 몇 안돼는 대오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눈초리는, 조합원들이 몇번씩 손을 쳐들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러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서먹함을 느끼게 한다. 비정규직노조의 집회는 그래서인지 더 치열하고 절절하게 느껴진다.
중계동 2001아울렛은 사방을 둘러싼 아파트단지 안에 위압감을 자랑하며 서 있다. 아울렛매장 1층 현관 앞에 둘러쳐진 작은 천막. '파업투쟁 96일'이라고 쓰인 천막에는 "악덕기업인 (주)이랜드의 상품을 사지 맙시다!" "(주)이랜드가 운영하는 아울렛을 이용하지 맙시다!"라는 플랭카드까지 걸려있다. 이미 지역단체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천막 안팎에 조합원들이 옹기종기 모였고, 삼삼오오 짝을 이룬 대오가 속속 모여 금방 40여명의 대오가 된다. 같은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 102일째 파업투쟁을 진행중인 스위스그랜드호텔노조, 학생들까지 연대감은 더 커져만 간다. 집회대오 옆에 같이 자리를 잡으니, 조합원들이 모두 내 언니, 이모 또래다.
"임금도 못받으면서 파업투쟁한지 석달째, 외쳐봅시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그렇게 '이랜드부당노동행위 규탄 및 성실한 교섭촉구를 한 결의대회'는 시작되었다.
담배와 술은 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팔고 산다
-불법파견노동자 직접고용! 최소생활임금 보장!
주식회사 이랜드. 1980년 출범하여 기독교기업윤리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랜드문화를 만들어냈고, 198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성장하여 브렌따노, 쉐인, 스코필드, 헌트 등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있을 법한 의류브랜드를 모두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기업은 소속되어 있는 직원의 생계와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합니다. 일자리를 많이 마련함으로써 고용을 증대하는 것도 이익을 내야 하는 큰 이유… 성실과 검소를 통해 얻은 이익들을 사회사업과 선교사업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이랜드의 경영이념만을 믿고 입사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규직과 같이 일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506,000원의 임금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상여금도 없으며 명절 때는 오천원짜리 도서상품권을 한 명의 정규직 관리자로부터 일렬로 줄서서 받는데도, 1999년 순이익 300억을 챙긴 회사는 506,000원의 임금에선 더이상 못 올려주겠다고 고집한다. 부곡, 안산, 중계분회 할 것 없이, 노보에 가득찬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차라리 처절하기까지 하다.
'입사년도가 3년이 다 넘었는데 기본급 55만원이 왠말인가?' '임금초임 506,000원에서 726,000원으로 인상' '불법 도급 전면 철회! 일방적 계약해지 금지!' '부곡물류창고… 냉장고보다도 더 추운 그 현장에서 헌 잠바 하나로 겨울을 보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운 여름을 허름한 면T로… 한달을 야근으로 만근을 해봐야 506,000원이 전부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우리를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용역회사에 넘기려고 했다.… 말도 없이, 일방적인 회사의 마음대로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대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7년을 같이 일하고 밤도 새우며, 한솥밥을 먹던 그 동료가 내게 4번째 천막 철거를 하며, 욕설과 악을 쓰며 내게 회사를 나가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내게 나가라며, 나의 권리를 짓밟을 수가 있느냐는 거다. 그들이 나의 입장이라면 과연 회사가 하라는 대로 그렇게 다른 회사로 팔려갔을까?'
노동자를 발아래로 보는 이랜드는 각성하라
-노조탄압 중지! 부당징계 철회!
이날 집회에서는 아울렛 중계지부 이은애 판매지부장을 필두로 회사측에 대한 항의방문이 이어졌다. 불법대체근로, 불법파견근로로 인한 파업장기화에 대한 책임을 묻고, 8월 7일 서비스직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진 군부대 서비스교육(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 그리고 노조탄압 중지/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항의방문이 진행되는 사이, 집회 대오는 매장순례를 시작했다. 자신이 평소 일하던 사업장에, 평소 근무하던 매장 한층한층마다 구호가 울려퍼진다. "비정규직 노예제도 노동자 다죽인다" "노동자를 무시하는 이랜드는 각성하라"
매장순례 이후, 어둑해진 거리에서 다시 듣는 항의방문 보고. 바로 옆에서 보면 순진하게만 보이는 이은애 판매지부장은 책상을 엎고 나왔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차장이 앉아있으면서도 과장이 나서서 사장면담을 요구하는 우릴 비웃습니다. 역시나 관리자들은, 가진 자들은 노동하는 사람들을 자기 발아래로 보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무시하는 이랜드는 각성하라! 노동조합 탄압하는 박성수를 구속하라!"
회사는 비정규직이 무슨 노동조합이냐고 비정규직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파업조차 불법파업으로 매도해왔다. 공권력과 결탁하여 경찰과 상호계획 하에 조합간부 2명 구속, 조합원 56명 무더기 연행, 불구속했으며, 기독교 신문 등 대외적으로 노동조합을 폭도·악마·불온단체로 매도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노조에 대한 박성수의 입장은 '자기는 오너'라는 것 뿐입니다. 노조가 빨갱이란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노조가 이렇게 강성으로 나가지는 않았죠. 탄압이 거세지니까 조합활동도 치열해진 겁니다. 회사측의 그릇된 노무관에 쐐기를 박고 뿌리뽑기 위해, 다시는 노조를 꺾지 못하도록 계속 투쟁해 나갈 겁니다." 집회 후 만난 이은애 지부장은 다음날 조회투쟁을 준비하며 말했다.
이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날
조합원들에게 노조탈퇴하면 인사이동시켜 주겠다는 이랜드. 파견가능업종이 아닌데도, 불법적인 대체근로와 파견근로를 자행하는 이 곳, 기독교기업윤리를 가진다면서도 군부대가서 군인들과 놀아주라는 상식이하의 서비스교육이 일어나는 곳이 이랜드다. 용역깡패에 맞서기 위한 방어마저 폭력으로 취급되어 구속된 노동조합원들…. 그러나, 파견철폐공대위, 상급노조, 시민단체 지역분회마다 연대망이 형성되어 여론지지의 가능성이 크다는 이 지부장의 말에서 이만큼 투쟁을 사수해온 노조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기도 한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지만, 다시는 일방적 계약해지 못하게 하고 조합활동(기존단협) 개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이랜드 노동조합.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인 노동3권마저 탄압하는 이랜드에 맞서 최소한의 생존권이나마 보장받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근무지인 매장에서 구호를 외칠 그들의 바램은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이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날, 그러나 다시 일터를 떠나지 않을 날, 그날을 위해서도 아울렛매장의 휘황한 불빛 아래 파업천막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힘없는 아줌마라고 무시하지 마라, 우리 권리는 우리가 지킨다!●
이랜드(2001아울렛 시흥점) 김숙영, 문선희 조합원
9월 19일 서울 중계동 2001아울렛 중계점 앞에서 5시부터 진행된 '이랜드부당노동행위 규탄 및 성실 교섭촉구를 위한 결의대회'는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저녁 8시무렵까지 진행된 집회와 항의방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다른 지역의 조합원들이 속속 지원결합하고 있다.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아울렛 시흥점에서 중계동까지 지원결합온 김숙영, 문선희 조합원을 만났다.
"아울렛 입사한지 6년차에요.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기독교 교인으로서 사장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고, 경영이념 1순위로 기독교정신을 선택한 게 정말 마음에 들어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IMF가 닥치니까 평소에 입버릇처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경영하고 이윤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데 쓸거다'라던 말은 간 곳이 없더군요. 정말 배신감이 컸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 참아왔는데, 정작 회사가 어려워지니 당장 사람부터 자르겠다니…. 그때 바로 인원감축조치에 맞서기 위해 시흥점 노조를 결성했지요."
그렇게 어렵게 인원감축을 무효화하는 소중한 투쟁의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시흥점은 전체직원의 90% 정도가 노조에 가입했다.
"사실 예전에는 비조합원과 조합원간의 차이점이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관리직들이 노조를 두려워할 정도였지요. 이번에 파업에 돌입할 때도 파업이 필요한가 생각도 했죠. 시흥점에서는 다른 곳보다 비교적 조합원이 많지만, 다른 곳에서 비일비재한 부당노동행위를 이야기하고 설득해나갔습니다. 직원들이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대체되는 현실이 어떻게 남의 일이겠어요?" 말하는 문선희 조합원의 눈이 또렷하다.
파업과정에서 회사관리자들의 비인간적 행태가 속속 드러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언젠간 나아지겠지, 그래도 도는 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주부여성사원이고 어머님들 또래인 아울렛에서 오히려 관리자들은 당당하게 나왔다. 8월 30일 8시 당산동아울렛에서는 그날도 조합원들이 매장순례를 위해 매장에 들어섰다. 그러자 관리자들이 셔터를 내려고는 셔터 한쪽만 열어서 손님들을 내보내고 자신들도 빠져나가더니 바로 경찰들이 투입되었다.
"노조원들이 전원연행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죠. 우리는 항상 평화적 시위를 해왔기 때문에 전경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는데 아니었습니다. 경고나 해산하라는 사전조치도 없이, 노조원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죠. 나중에서야 이게 의도된 계획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획서'라는 게 있더라구요. 모두 짜여진 각본으로 만들어진…."
김숙영 조합원은 눈을 적시며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조서과정에서 아이들과 남편이름을 묻는데, 내가 무슨 못할 짓을 했다고 경찰서에서 남편 이름을 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경찰마저도 조서하면서 '내 권리 내가 찾겠다'하면, 아줌마라고 무시하고….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이젠 그런 부당한 처우를 참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회사측에서 입발린 소리도 안해요. 노골적으로 대놓고 무시하죠. 그동안 투쟁하면서 힘들었던 과정은 오히려 단련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회사의 본질을 아는 계기가 되었지요."
새벽에 2개씩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파업투쟁에 참여하면서도 한마디 불만도 토로하지 않는 주부조합원들, 그만큼 그들은 회사에 분노가 크다. 이들은 조금씩 다른 생각으로 파업에 임했지만, 이제 모두의 생각은 같다. "물론 힘들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습니다. 회사가 어디까지 노동자들을 우롱할 것인지 두고 볼 겁니다." 비정규직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이랜드 조합원들의 바램. 약해보이지만, 굳건한 의지의 조합원들이 있기에, 아직 먼길이지만 헤쳐나가야 할 파업투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