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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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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대응

노동권 박탈, 노동조합 탄압의 공세에 맞서야 한다

구준모 | 정책위원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을 빌미로 노동권을 강력하게 제약하고 노사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가 2009년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2월 29일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단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1년 6개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6개월 유예하여 시행하는 것이 합의안의 골자다. 동시 시행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었지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한나라당과 노동부의 입장이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타임오프 대상 업무의 경우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업무에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유지 및 관리업무’가 추가되었다. 창구단일화의 경우 교섭대표를 우선 노조 간 자율로 결정하고, 자율 협상에 실패할 경우 과반수노조에 대표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노조별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한다. 단 10% 미만 노조는 공동교섭대표단에서 제외된다. 논란이 되었던 초기업노조의 창구단일화 제외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노동부의 현행법 시행 방침

한편 노동부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12월 28일 △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대한 행정고시 △복수노조 관련 부당노동행위 업무처리 규정을 행정예고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경우 기존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고시가 필요하지 않다.) 12월 31일까지 노동조합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관보에 게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11월 25일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나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노동부는 현행법이 내년 1월 1일 발효되는 것을 전제로 산업현장의 혼란을 줄일 시행 방안을 준비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11월 10일에도 임태희 장관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고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법에는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노동부 장관이 마련토록 위임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명시해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회 입법조사처는 행정법규를 통해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겠다는 노동부의 방침에 대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하는 것은 노동자와 노조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근거해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사항은 상위법령인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있다. 따라서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고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행한다면 헌법에 위배된다.
또한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법의 부칙에 명시되어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조항이 자동 삭제됨에 따라 교섭창구 단일화 없이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법 부칙 5310호 5조 3항에는 “노동부장관은 2009년 12월 31일까지 …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단체교섭의 방법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입법조사처는 이 조항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한 규정도 아니고, 노동부 장관에게 교섭창구 단일화의 방법과 절차를 위임한 것도 아니라고 해석했다. 법률 시행을 위해 준비를 하고 정책 수립을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노동부의 입장과는 완전히 반대의 해석이다. 민주노총의 경우에도 법 개정 없이 시행령을 통해 창구단일화를 강행하려고 할 경우 행정소송 및 법적 절차를 통해 노동부의 고시를 무력화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복수노조에 대한 사측의 대응 계획

정부와 자본은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지렛대 삼아서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나아가 민주노조 운동의 리더십을 교체하려고 시도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민주노조 운동이 요구한 복수노조 허용을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쟁점으로 변화시키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연결시켰다. 이렇게 한다면 복수노조 허용이 보장하는 노동권의 확장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총은 복수노조 허용의 ‘폐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철저히 금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월간 경영계」 2009년 9월호).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현재보다 전임자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타임오프 제도 역시 우회적으로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부의 안에서 창구단일화의 1단계로 추진하게 되어있는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도 반대한다. 노조 간의 자율적 합의 과정에서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교섭대표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면 각 노조 간 이해관계 및 의견 차이로 교섭단 구성 과정이 장기화되고, 다수의 조합원 확보를 위한 선명성 경쟁으로 현장 노사관계를 투쟁적 노조가 주도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논지다. 이에 더해 사업장 단위에서의 교섭창구 단일화가 하나의 기업에서 다수의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1기업 1교섭만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의 허용은 한국 노사관계의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사측의 입장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으로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지, 노무관리 비용이 증가할지 여부가 큰 관심사다. 한 연구에 따르면 복수노조 허용 이후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예측할 수 있다(「복수노조 갈등」, 『노동정책연구』 2009년 9권 2호). 첫째, 한국의 노조 가입률이 1989년 19.8%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10%대에 머물고 있다. 노조는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중소기업은 노조가 설립될 여지는 있지만 지불 능력이 낮아 이미 설립되어 있는 기존 노조도 운영상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는 노조에 가입할 만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입해 포화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노조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복수노조 허용으로 노조 가입률이 높아지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둘째, 지불 능력이 좋은 대기업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특히 기존의 노조가 정파 간의 주도권 확보나 운동노선의 추구로 ‘정치주의’ 성향을 띠는 경우 새로운 노조가 설립되어 복수노조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치주의에 대한 조합원의 지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탈정치주의를 표방하는 노조가 새롭게 건설되거나, 정치주의를 표방하더라도 노선이 달라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노조와 새 노조의 조합원 수가 비슷한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는 노조간의 갈등을 격화시킬 것이다. 셋째, 대기업 중에서 노동자의 인적 구성이 지역, 직종, 근무형태 등에서 상이한 경우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생산직과 사무직 노조가 분리되거나 생산직 중에서 특수한 자격 및 숙련도가 요구되는 직종이 분리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넷째, 상급단체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양분되어 있고 이들이 조직 확대를 위해 직접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복수노조 설립이 상급단체에 의해서 주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어떤 사업장에서 한 상급단체의 노조가 설립되면 다른 사업장에서 경쟁 상급단체가 노조를 설립하는 식으로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다섯째, 교섭창구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보면 노조끼리 상호협력적인 관계에 놓이는 경우보다 경쟁적인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측이 복수노조 설립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이런 상황을 피하거나 그 부담을 줄이고자 할 것이다. 사측의 대응 방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기된다. 첫째,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노조와의 교섭비용이 증가한다고 보고 하나의 사업(장)에 하나의 노조가 전체 조합원을 대변하는 교섭구조를 요구할 것이다. 현재 사측과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둘째, 노무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법제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셋째, 노조의 설립 요건 강화를 요구할 것이다. 넷째, 노조에 대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노무관리 비용을 가급적 줄이고자 할 것이다. 다섯째, 복수노조로 인한 인건비 상승, 작업 몰입도 감소를 우려하여 작업규율을 강화하는 등 개별적 근로관계의 강화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노동3권 제약과 기업별 노사관계 강화 시도

정부와 사측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복수노조 허용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복수노조로 인한 ‘비용’과 ‘혼란’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12월 29일 현재 환노위 위원장과 한나라당, 노동부가 합의한 안이나 노동부의 안은 복수의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고, 자율적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에는 과반수 노조에 대표권을 부여하며,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도록 한다(그러나 10% 미만 노조에는 이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애초에 복수노조 허용의 취지로 논의되었던 단결의 자유는 크게 침식된다. 노조를 설립해도 실질적으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단결의 의미가 반감된다. 그런데 자본가 단체들은 공익위원안의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는 물론이고,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조차도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며 더욱 개악된 형태로 복수노조 허용을 밀어붙이려고 한다.
한편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는 결과적으로 산별교섭을 무력화하고 기업별 노사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현재 환노위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안이나 노동부의 안 같은 경우에 산별노조, 지역(일반)노조와 같은 초기업노조의 경우에도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고 있다. 산별노조의 특정 사업장에 대한 대각선 교섭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다수노조로 승인되지 않은 소수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할 수 없다. 현재 산별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라 할지라도 사업장에서 다수노조의 지위를 상실하였을 경우에는 산별교섭에 대한 참여의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2008년 말 기준으로 한국 노조 조합원의 52.9%가 산별 및 업종별 노조의 조합원이고, 민주노총의 경우 77.6%가 산별노조 조합원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산별노조의 지회나 분회까지 포함하여 모든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경우 현재도 안착화하지 못한 산별교섭은 아예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측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기업별 노사관계를 강화하고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귀속감을 고취시켜 현장에 대한 노조의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업별 노사관계가 강화될 경우 어용노조를 통해 사측의 현장장악 능력이 배가될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사측이 어용노조를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 1950~70년대 일본에서는 사측이 제2노조(어용노조)를 결성하여 총평으로 대표되는 투쟁적인 민주노조를 파괴했다. 일부 자본이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고 교섭창구가 단일화되면 복수노조 허용을 수용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데는 이러한 계산도 깔려 있다.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파업과 같은 격렬한 대립의 국면에서 강경노조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측이 당장 무리하게 어용노조 설립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측은 현재와 같이 기존 노조의 대의원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이용해서 투쟁적인 집행부를 흔드는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무리하게 어용노조를 만들면 조합원의 반발감이 거세지고, 기존 노조가 강력한 투쟁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합원의 동요가 커지는 시기, 즉 기존 노조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어용노조로 조합원을 결집시키는 전술을 사용하면 기업별 수준에서 노조운동의 틀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즉각적인 제2노조 결성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난 여름 쌍용차 파업과정에서 사측이 사용한 전술을 이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관철된다면 노동권과 노조 활동이 크게 제약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3권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서 논의된 복수노조 허용을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수단으로 전환시켰다. 정부는 국회를 우회해서 사태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사측과 자본가 단체들은 더욱 강경한 안을 밀어붙여서 최소한 현재의 노동부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법 개악을 막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법 개정은 노조 활동 전반을 변화시키고 노동기본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에 매년 반복되는 국회 대응 투쟁과 같을 수 없다. 또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의 시행이 일정 기간 유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010년에도 격렬한 논란과 투쟁이 지속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미래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복수노조와 관련한 사회적 쟁점의 첫 단추를 잘 끼운다는 측면에서 현재 어떤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각 개별 노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실익을 계산하는 방식으로는 노조 전체와 노동기본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에 맞설 수 없을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문제를 노동3권을 침해하고 노조활동을 제약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라는 점에서 바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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