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실업운동의 진전을 위하여[3]
'실업극복국민운동'과 실업운동의 전망
최근 '실업극복국민운동'의 해산 및 기금운용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1998년 금융위기에 따른 대량실업의 발생으로 인하여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위기감이 사회적으로 유포되었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와 실직가정의 빠른 붕괴는 이들에 대한 지원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 막대한 실업기금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조성된 1200억의 민간실업기금을 바탕으로 이 운영을 담당하는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는 실업자 긴급구호 및 실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전국 100여개의 실업자지원센터가 설립되어 활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는 남아있는 500억원의 사용계획 및 2001년 사업의 계속 전개 여부를 논의 중에 있다. 특히 이번 논의가 주목되는 이유는 기금 자체의 사용영역을 새롭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0월까지 제출된 안은 1)재단으로의 전화 2)기금소진 3)정보센터건립 등이다. 이중에는· 장기 실직자들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초기에 수급대상에서 탈락되는 저소득층을 위한 하반기 민간 공공근로사업(100억원)·실업계 고교를 포함, 비영리 민간직업훈련기관 시설의 훈련용 기자재 확충지원(200억원)·북한 근로자 직업능력개발원 설립지원(100억원)·국민운동사업 수행경험이 있는 단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사회안전망 구축 제안사업(100억원) 등에 기금을 이용하자는 안이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실업과는 무관한 곳에 기금이 쓰여질 수도 있다.
'실업'극복을 위한 '민간기금'이라는 기금의 성격규명, 2년여동안 실업극복국민운동 사업이 미친 영향에 대한 부정적, 긍정적 측면의 평가를 뒤로 미루더라도 기금과 '실업극복국민운동'이 실업운동진영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았다.
2000년 초, 실업률 저하 등 실업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아지고 '실업극복국민운동'의 해체에 대한 논의가 암묵적으로 진행되면서, 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실업운동단체들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년 약정사업의 계속 지원 여부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기금의 지원 여부로 실업운동의 성격과 전망에 대한 논의를 강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때문에 단체의 유지존속을 위한 새로운 상을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계기가 무엇이건 실업운동의 성격과 전망논의는 전국실업단체연대회의(이하 전실연)를 중심으로 다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실업운동의 목표 및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활동을 명실상부한 '실업운동'으로 정립해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리고 다시 논의를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와 기금 및 '실업극복국민운동'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실업운동의 현황과 조직사업의 문제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졸속 시행 및 실업대책예산의 대폭 축소로 시행초기부터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각 단체로 수급권 탈락자들이 밀려들고 있으며, 수급권자에 선정되었더라도 생계급여의 축소로 2명이 비관 자살한 상황에 이르렀다. 자활후견기관에 지정된 단체는 당장 조건부수급권자에 대한 일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방조례재정 및 민관협의체 구성 등 넘어야 할 산이 한 두개가 아니다. 4단계 공공근로 및 2001년 예산 중 공공근로사업의 비중은 정부가 공공근로사업을 계속 진행할 의지가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공공근로의 10%를 차지하게 되어있는 민간위탁공공근로는 발표하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며 그나마 민간단체들간의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그동안 진행해왔던 생계비지원사업이 종료되고, 민간위탁 공공근로가 대폭 축소되면서 실업운동단체들은 실업자들과의 접촉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재된 문제에 대한 쟁점을 선도하지도 못하고 이끌려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화의 과정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한번 되짚어 보자. 조직화의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면서 보여지는 현상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실업운동=실업자조직화' -> '실업자조직화=상조회, 자활공동체(사업), 민간위탁공공근로 등의 사업' -> '사업=재정' -> '재정=실업극복국민운동,정부,자활후견기관선정' 이라는 도식적 단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업단체 생성초기에 '조직화'라는 언명조차 기피되었던 상황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업운동의 목표속에서 정확히 배치되지 못한 사업은 그 자체의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를 위한 조직화'가 되거나 '조직화의 유효한 매개'로 포장된 재정확보사업이라는 딱지를 떼기 힘들 듯하다.
현실적인 조직화 방안과 실천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실업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명확히 하며, 끊임없이 재확인해야 한다. 아직까지 실업운동진영이 이에 대해 풍부하게 공유되고 확인되지 못한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실업'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이를 인식하고 정치전선의 주체로 서기 위한 과제,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과제, 실업운동의 주체를 세우기 위한 과제를 중심으로 현실 쟁점을 재구성해야 한다. 2001년 실업운동의 과제 역시, 실업운동의 활동주체의 인식지반에 대한 확인으로부터 실업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사업과 결합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실업 노동자를 실업 운동의 주체로
그동안 주장하고자 하였던 바는 실업운동이 자주성과 연대성에 기반한 사회운동으로서 발전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즉, "떳떳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통해 인간답게 노동하며 살고자 하는" 실업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걸고 전체 노동대중의 편에서 국가와 맞서 싸워나갈 때, 실업 노동자의 생존권은 쟁취될 수 있다. 나아가 실업의 원인 자체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업단체들이 벌여온 활동들이 위와 같은 의미의 사회운동으로서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업단체들이 여러 활동을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업 노동자를 실업운동의 주체로 세워내는 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최근까지도 대다수 실업단체들의 활동은, 실업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을 향상시키고 이들과 함께 투쟁하기보다는 물질적 혜택을 전달하고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선에 그치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실업단체들이 포괄하고 있는 실업 노동자들이란 매개가 되는 물질적 지원의 부침에 따라 '친밀'과 '소원'의 관계를 반복할 뿐이며, 그나마 지원의 범위 밖에 있는 실업 대중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최소한의 운동의 주체로서 자리잡기 위한 전략이 부족한 채 지원만을 매개로 실업 대중을 포괄해 온 것이다. 앞에서도 수차 강조했듯이, 이 경우 정권과 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실업 대중에 대한 관리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위험성은 항상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이 해결해야 하는 주요한 과제 중 하나는 "어떻게 실업 노동자를 실업운동의 주체로 세워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정확하게 인식과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원론적인 운동론을 되풀이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이 과제가 왜 해결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평가하고 이에 입각한 계획의 수립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실업운동 활동가가 현실에서 어떠한 활동을 벌여내야 하는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실업 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한 논의들은 대체로 실용적인 수준을 뛰어넘지 못해왔다. 그동안 실업 노동자들을 조직해야한다는 주장은 빈번하게 제기되었지만, 실제 조직화에 있어 실업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워내려는 노력은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 결과 실업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언제나 일시적이고 실용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업 노동자들과 운동 조직의 관계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나는 관계를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조직화는 운동의 출발이 될 수는 있어도, 운동이 활성화되고 강화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실업 운동 단체를 찾는 10명의 실업 노동자보다 각성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1명의 실업 노동자가 더 큰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물론 양자가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의식화를 동반하지 않는 조직화는 맹목적인 조직화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실업자를 조직하는가 보다는, 각성된 실업 노동자을 얼마나 내실있게 조직화가 중요하다.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과 총체적 정치선전
현재 실업 노동자 운동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DJ정권의 성격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 실업 노동자 운동은 '신자유주의'와 '금융 세계화' 등과 같은 구조적 변화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석이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훨씬 진일보한 인식 지반을 확보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간 실용적이고 관료적인 실업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이마저도 왜곡되고 굴절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 속에서 실업 운동 활동가들의 기풍의 문제 역시 하나의 과제로서 제시될 수 있으며 집단적으로 운동의 기풍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벌일 때 좀 더 발전된 운동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유구한 민중운동의 역사를 볼 때 1970년대이건, 1980년대이건 언제나 거대한 운동의 물결은 집단적 기풍의 확립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들의 기풍 쇄신과 함께 실업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가장 기본적인 조직화 과정에서 어떻게 의식화를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형식적인 교육만으로 이러한 활동을 펼칠 수 없으며, 창발적이면서도 실업 노동자들의 자주적 참여를 확보할 수 있는 교육활동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모범을 창출해내야 한다. 때문에,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 방향과 실업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그 내용들을 담을 수 있는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적 선전과 선동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ASEM 회의를 계기로 진행된 실업자 대회와 이후의 행진에서, 실업운동진영은 어느 누구도 ASEM의 문제점에 대해 체계적인 정치적 폭로를 수행하지 못했다. 구호는 무성했지만, 그와 관련된 체계적인 이해 없이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득력있게 말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에게든 정치적 행동과 결단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생생한 폭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가장 구체적이고 전형적인 사례에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학습도 살아있는 경험보다 못한 것일 수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나아가 다양한 열린 정치적 공간에서 실업 노동자의 정치적 경험을 더욱 의식적인 것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계획을 차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의 과제 정립을 위하여
실업 노동자 운동은 2001년 한 해 동안 목적의식적인 조직화가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활동가들의 관점 재확립, 실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총체적인 정치선전이 필요하다. 이는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의 핵심적인 목표로서, 실업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세워냄으로써 이 운동 자체를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제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방향에 입각한 구체적인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은 대중적인 요구에 기반하여, 국가를 상대로 강력한 요구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업에 대한 책임은 실업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바로 국가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실업예산 대폭확충'과 '공공근로 확대 및 상시화'라는 현실적인 계기를 통하여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 창출'을 강력하게 요구하여야 하며, 이 요구를 중심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활발한 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요구를 현실화시켜내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은 전선운동의 일주체로서 서기 위한 독자적인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정권은 IMF 졸업을 선언하였지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한 전체 국민들의 생활수준 하락이 직접적인 생활고로 체감되고 있다. 따라서 실업 노동자 운동은 사회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구조적 심화에 대한 대사회적인 발언력을 높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실업 노동자 운동은 명실상부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일주체로 서게 될 것이다.
지난 시기, 역사상 초유의 대량실업 사태를 맞이하며 수많은 단체들이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실업자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아직 부족하지만 실업자들을 대중적 기초로 하는 조직화의 기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많은 수의 단체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실업운동"을 하겠다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적·전국적 조직을 강화시키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이렇듯 실업관련 단체들이 겪어온 궤적을 따라 우리 또한 미흡하나마 일정한 활동들을 벌여왔다. 그동안 실업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업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입장을 개진하며, 실업운동 활동가들과의 교류를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실업운동의 주체로서 실업 노동자들을 세우고 이를 통해 전선운동의 주체로서 실업운동의 전진확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롭게 준비되는 2001년은, 실업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 기대되는 때가 아니라 될 것이다.
최근 '실업극복국민운동'의 해산 및 기금운용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1998년 금융위기에 따른 대량실업의 발생으로 인하여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위기감이 사회적으로 유포되었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와 실직가정의 빠른 붕괴는 이들에 대한 지원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 막대한 실업기금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조성된 1200억의 민간실업기금을 바탕으로 이 운영을 담당하는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는 실업자 긴급구호 및 실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전국 100여개의 실업자지원센터가 설립되어 활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는 남아있는 500억원의 사용계획 및 2001년 사업의 계속 전개 여부를 논의 중에 있다. 특히 이번 논의가 주목되는 이유는 기금 자체의 사용영역을 새롭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0월까지 제출된 안은 1)재단으로의 전화 2)기금소진 3)정보센터건립 등이다. 이중에는· 장기 실직자들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초기에 수급대상에서 탈락되는 저소득층을 위한 하반기 민간 공공근로사업(100억원)·실업계 고교를 포함, 비영리 민간직업훈련기관 시설의 훈련용 기자재 확충지원(200억원)·북한 근로자 직업능력개발원 설립지원(100억원)·국민운동사업 수행경험이 있는 단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사회안전망 구축 제안사업(100억원) 등에 기금을 이용하자는 안이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실업과는 무관한 곳에 기금이 쓰여질 수도 있다.
'실업'극복을 위한 '민간기금'이라는 기금의 성격규명, 2년여동안 실업극복국민운동 사업이 미친 영향에 대한 부정적, 긍정적 측면의 평가를 뒤로 미루더라도 기금과 '실업극복국민운동'이 실업운동진영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았다.
2000년 초, 실업률 저하 등 실업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아지고 '실업극복국민운동'의 해체에 대한 논의가 암묵적으로 진행되면서, 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실업운동단체들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년 약정사업의 계속 지원 여부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기금의 지원 여부로 실업운동의 성격과 전망에 대한 논의를 강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때문에 단체의 유지존속을 위한 새로운 상을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계기가 무엇이건 실업운동의 성격과 전망논의는 전국실업단체연대회의(이하 전실연)를 중심으로 다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실업운동의 목표 및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활동을 명실상부한 '실업운동'으로 정립해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리고 다시 논의를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와 기금 및 '실업극복국민운동'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실업운동의 현황과 조직사업의 문제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졸속 시행 및 실업대책예산의 대폭 축소로 시행초기부터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각 단체로 수급권 탈락자들이 밀려들고 있으며, 수급권자에 선정되었더라도 생계급여의 축소로 2명이 비관 자살한 상황에 이르렀다. 자활후견기관에 지정된 단체는 당장 조건부수급권자에 대한 일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방조례재정 및 민관협의체 구성 등 넘어야 할 산이 한 두개가 아니다. 4단계 공공근로 및 2001년 예산 중 공공근로사업의 비중은 정부가 공공근로사업을 계속 진행할 의지가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공공근로의 10%를 차지하게 되어있는 민간위탁공공근로는 발표하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며 그나마 민간단체들간의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그동안 진행해왔던 생계비지원사업이 종료되고, 민간위탁 공공근로가 대폭 축소되면서 실업운동단체들은 실업자들과의 접촉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재된 문제에 대한 쟁점을 선도하지도 못하고 이끌려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화의 과정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한번 되짚어 보자. 조직화의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면서 보여지는 현상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실업운동=실업자조직화' -> '실업자조직화=상조회, 자활공동체(사업), 민간위탁공공근로 등의 사업' -> '사업=재정' -> '재정=실업극복국민운동,정부,자활후견기관선정' 이라는 도식적 단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업단체 생성초기에 '조직화'라는 언명조차 기피되었던 상황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업운동의 목표속에서 정확히 배치되지 못한 사업은 그 자체의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를 위한 조직화'가 되거나 '조직화의 유효한 매개'로 포장된 재정확보사업이라는 딱지를 떼기 힘들 듯하다.
현실적인 조직화 방안과 실천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실업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명확히 하며, 끊임없이 재확인해야 한다. 아직까지 실업운동진영이 이에 대해 풍부하게 공유되고 확인되지 못한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실업'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이를 인식하고 정치전선의 주체로 서기 위한 과제,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과제, 실업운동의 주체를 세우기 위한 과제를 중심으로 현실 쟁점을 재구성해야 한다. 2001년 실업운동의 과제 역시, 실업운동의 활동주체의 인식지반에 대한 확인으로부터 실업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사업과 결합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실업 노동자를 실업 운동의 주체로
그동안 주장하고자 하였던 바는 실업운동이 자주성과 연대성에 기반한 사회운동으로서 발전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즉, "떳떳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통해 인간답게 노동하며 살고자 하는" 실업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걸고 전체 노동대중의 편에서 국가와 맞서 싸워나갈 때, 실업 노동자의 생존권은 쟁취될 수 있다. 나아가 실업의 원인 자체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업단체들이 벌여온 활동들이 위와 같은 의미의 사회운동으로서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업단체들이 여러 활동을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업 노동자를 실업운동의 주체로 세워내는 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최근까지도 대다수 실업단체들의 활동은, 실업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을 향상시키고 이들과 함께 투쟁하기보다는 물질적 혜택을 전달하고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선에 그치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실업단체들이 포괄하고 있는 실업 노동자들이란 매개가 되는 물질적 지원의 부침에 따라 '친밀'과 '소원'의 관계를 반복할 뿐이며, 그나마 지원의 범위 밖에 있는 실업 대중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최소한의 운동의 주체로서 자리잡기 위한 전략이 부족한 채 지원만을 매개로 실업 대중을 포괄해 온 것이다. 앞에서도 수차 강조했듯이, 이 경우 정권과 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실업 대중에 대한 관리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위험성은 항상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이 해결해야 하는 주요한 과제 중 하나는 "어떻게 실업 노동자를 실업운동의 주체로 세워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정확하게 인식과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원론적인 운동론을 되풀이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이 과제가 왜 해결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평가하고 이에 입각한 계획의 수립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실업운동 활동가가 현실에서 어떠한 활동을 벌여내야 하는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실업 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한 논의들은 대체로 실용적인 수준을 뛰어넘지 못해왔다. 그동안 실업 노동자들을 조직해야한다는 주장은 빈번하게 제기되었지만, 실제 조직화에 있어 실업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워내려는 노력은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 결과 실업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언제나 일시적이고 실용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업 노동자들과 운동 조직의 관계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나는 관계를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조직화는 운동의 출발이 될 수는 있어도, 운동이 활성화되고 강화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실업 운동 단체를 찾는 10명의 실업 노동자보다 각성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1명의 실업 노동자가 더 큰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물론 양자가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의식화를 동반하지 않는 조직화는 맹목적인 조직화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실업자를 조직하는가 보다는, 각성된 실업 노동자을 얼마나 내실있게 조직화가 중요하다.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과 총체적 정치선전
현재 실업 노동자 운동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DJ정권의 성격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 실업 노동자 운동은 '신자유주의'와 '금융 세계화' 등과 같은 구조적 변화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석이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훨씬 진일보한 인식 지반을 확보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간 실용적이고 관료적인 실업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이마저도 왜곡되고 굴절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 속에서 실업 운동 활동가들의 기풍의 문제 역시 하나의 과제로서 제시될 수 있으며 집단적으로 운동의 기풍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벌일 때 좀 더 발전된 운동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유구한 민중운동의 역사를 볼 때 1970년대이건, 1980년대이건 언제나 거대한 운동의 물결은 집단적 기풍의 확립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들의 기풍 쇄신과 함께 실업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가장 기본적인 조직화 과정에서 어떻게 의식화를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형식적인 교육만으로 이러한 활동을 펼칠 수 없으며, 창발적이면서도 실업 노동자들의 자주적 참여를 확보할 수 있는 교육활동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모범을 창출해내야 한다. 때문에,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 방향과 실업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그 내용들을 담을 수 있는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적 선전과 선동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ASEM 회의를 계기로 진행된 실업자 대회와 이후의 행진에서, 실업운동진영은 어느 누구도 ASEM의 문제점에 대해 체계적인 정치적 폭로를 수행하지 못했다. 구호는 무성했지만, 그와 관련된 체계적인 이해 없이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득력있게 말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에게든 정치적 행동과 결단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생생한 폭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가장 구체적이고 전형적인 사례에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학습도 살아있는 경험보다 못한 것일 수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나아가 다양한 열린 정치적 공간에서 실업 노동자의 정치적 경험을 더욱 의식적인 것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계획을 차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의 과제 정립을 위하여
실업 노동자 운동은 2001년 한 해 동안 목적의식적인 조직화가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활동가들의 관점 재확립, 실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총체적인 정치선전이 필요하다. 이는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의 핵심적인 목표로서, 실업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세워냄으로써 이 운동 자체를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제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방향에 입각한 구체적인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은 대중적인 요구에 기반하여, 국가를 상대로 강력한 요구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업에 대한 책임은 실업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바로 국가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실업예산 대폭확충'과 '공공근로 확대 및 상시화'라는 현실적인 계기를 통하여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 창출'을 강력하게 요구하여야 하며, 이 요구를 중심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활발한 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요구를 현실화시켜내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2001년 실업 노동자 운동은 전선운동의 일주체로서 서기 위한 독자적인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정권은 IMF 졸업을 선언하였지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한 전체 국민들의 생활수준 하락이 직접적인 생활고로 체감되고 있다. 따라서 실업 노동자 운동은 사회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구조적 심화에 대한 대사회적인 발언력을 높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실업 노동자 운동은 명실상부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일주체로 서게 될 것이다.
지난 시기, 역사상 초유의 대량실업 사태를 맞이하며 수많은 단체들이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실업자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아직 부족하지만 실업자들을 대중적 기초로 하는 조직화의 기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많은 수의 단체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실업운동"을 하겠다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적·전국적 조직을 강화시키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이렇듯 실업관련 단체들이 겪어온 궤적을 따라 우리 또한 미흡하나마 일정한 활동들을 벌여왔다. 그동안 실업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업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입장을 개진하며, 실업운동 활동가들과의 교류를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실업운동의 주체로서 실업 노동자들을 세우고 이를 통해 전선운동의 주체로서 실업운동의 전진확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롭게 준비되는 2001년은, 실업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 기대되는 때가 아니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