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셜론을 경계하라
'감시시스템과 프라이버시 국제토론회'. 10월 18일 연세대 신상경관에서는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사회진보연대 등이 주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제목만 봐도 어떤 토론회인지 알 것 같다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정보사회의 감시통제에 대한 우려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토론회는 지금까지 감시통제와 프라이버시권 문제를 다루던 기존 토론회에 비해, 그 범위와 규모가 사뭇 다르다.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감시의 범위와 규모는 가히 '지구적(global)'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감시의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나 미시적 문제로 접근할수록 더욱 묘연해지고 예측불가능한 것이 되며 해결방향이 잡히지도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해결되는 것은 적은데, 감시기술과 방법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장감옥'에서 '공장마을'로 확대되는 과정, 즉 공장이 사회로 확장되고 노동자가 그 속에서 배제되는 현재 노동과정속에서는 감시 범위도 그만큼 확장되고 있다. 이 흐름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시장의 형성, 그리고 초국적 정치·사회·문화질서를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자본에 의한 감시기술이란 것은 한편에서는 노동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재화의 이용에 따라 돈을 매기는데 감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시는 개인적인 사안이나 일국의 사안을 넘어 지구적 이슈로 재규정될 가능성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아직까지 우리 눈에는 가능성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자본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시기술이 군사영역에서 이미 낙후된 기술을 공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군사적인, 그래서 더욱 자본주의적인 감시기술의 발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10월 18일 토론회의 주요한 주제는 이 문제의식을 반영한 지구적 감시시스템 특히, 에셜론(Echelon)시스템에 맞춰져 있다.(그러나, 20여년간 에셜론을 추적하여 최초로 이 실체를 입증한 언론인 던컨 캠벨은 이 토론회에 초청되어 올 예정이었으나 활동문제로 한국에 올 수 없었다)
UKUSA 협정과 전지국적 감시망
전지국적 감시망의 시초는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 형성되었던 미국과 영국의 첩보협력에서 비롯된다. 종전 후 그들의 감시시스템을 통합하기로 하는 'UKUSA 비밀협정'을 체결되고 여기에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가 참여하면서 초국적 감시망이 형성되었다. 1999년 3월 호주정부가 인정하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UKUSA시스템은, 세계적으로 150억~ 200억 달러규모의 산업적 활동인 Comint(Communication intelligence)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UKUSA시스템은 고도로 자동화된 전지구적 감시시스템 - 흔히 에셜론이라 불려지는 - 으로 발전하였고 현재 120여개의 에셜론 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셜론의 핵심은 전세계의 도청기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수집된 도청데이터는 고도로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는 것이다.
전지구적 감시망의 실체는, 지난 1998년 영국 언론인 '던컨 캠벨'이 유럽의회에서 '감시기술의 발달과 경제정보 남용의 위험성'이라는 에셜론 관련 보고서를 통해 폭로하면서 증명되었다. 에셜론과 같은 전지구적 감시망의 주관심사는 군사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캠벨은 냉전해체 이후 군사적 목적에서 경제적 목적으로 전이되고 있는 징후를 지적하고 있다.
1992년 미국 NSA의 지휘관은 그의 취임연설에서 다음 세기 NSA의 중요 영역이 경제분야라고 말했다. 에셜론이 경제정보에 관여했다는 사례들도 제시되었다. 1995년 일본산 고급차 수입협상, 1993년 프랑스와의 일반관세무역협정(GATT) 협상, 199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준비 등을 위해 에셜론시스템이 사용된 것이다.
셜론의 감시기술들
그렇다면 도대체 에셜론이 어떠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길래, 던컨 캠벨의 보고서 하나로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던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에셜론은 전자적으로 전달되는 모든 통신매체를 감시할 수 있다. 보고서에 발표된 감시기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SHAMROCK
1945년 이래 미국 NSA는 조직적으로 케이블회사 시스템에 도청장치를 설치하여 음성과 케이블을 도청해왔다. SHAMROCK이란 코드명이 붙여진 감시시스템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알려지기까지 30년 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다.
◆고주파라디오 감청
미국의 NSA와 영국의 GCHQ는 1945~ 1980년 초까지 고주파라디오 도청시스템을 운영해왔다. 가장 발전된 고주파감시시스템 AN/FLR-9은 직경 400m짜리 안테나로 미국, 영국, 이태리, 터키, 뉴질랜드, 캐나다 등지에 설치되어 있다.
◆감시위성
장거리 마이크로웨이브라디오 중계기(Long distance microwave radio relay links)들은 신호전송간 많은 양이 버려진다. 이들 버려진(spillover) 신호를 도청하기 위한 위성들이 발사됐다. 1968년 CANYON이란 첩보위성이 처음 발사된 후 1977년까지 7개의 CANYON이 띄워졌고 이후 발전된 CHALET, RHYOLITE, MAGNUM 과 같은 위성들이 올려졌다. 발전된 위성은 VHF, UHF와 같은 저주파라디오와 셀룰러이동전화, 삐삐 등도 도청할 수 있다. 위성으로부터 도청된 데이터는 지구기지로 쏘아 보내진다. 주기지는 미국의 덴버, 영국의 멘위스힐, 오스트레일리아, 독일에 있다.
◆해저케이블 감청
미국 NSA는 해저케이블을 도청하기 위해, 해양 깊은 곳에서도 작동하는 도청잠수함을 사용했다. 이 목적으로 고안된 첫번째 잠수함은 러시아를 도청하기 위해 1971년 일을 시작한 USS HALIBUT이었다. 이 잠수함은 오늘날까지도 케이블 도청을 위해 임무를 계속해왔다.
◆인터넷에 대한 감청
표준인터넷메세지는 '데이터그램'이란 패킷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적지와 출발지를 가리키는 인터넷의 모든 컴퓨터에 고유한 'IP address'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메세지의 출발지와 목적지의 국가,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인터넷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 있다는 시스템의 속성은, 인터넷을 통해 흐르는 데이타들이 미국의 NSA에 의해 접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NSA 전직원에 의하면, 1995년 NSA가 9개 메이저 인터넷교환점(IXP)에 스니퍼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두었다. 이들 9개의 IXP 중 FIX East, FIX West는 미국정부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연대에 대한 감시까지!
살펴본 바대로 에셜론은 주로 통신영역에서 지구적인 감시체제를 형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구적인 수준에서 자행되는 감시가 통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셜론의 존재는 최초로 증명되고 인정되었지만, 에셜론을 능가하는 감시기술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주로 국가간의 대립- UKUSA 회원국과 비회원국의 대립 -으로 부상하여 국가주권의 침해 또는 경제적 감시와 침탈의 문제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은 다소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UKUSA 회원국으로 진입(하지만 미국의 헤게모니를 인정하여야 한다)하거나, 국제적 압력을 통해 이 기술을 공개하여 일반화시키는 것으로 해소되어 왔다.
이 과정 속에서 결국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모든 감시기술이 그러했듯이, 문제는 국가 대 국가의 감시에서 국가 대 개인의 감시로 확산되는 것에 있다. 더구나 이 문제가 지구적 감시체계를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에셜론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노동자 민중의 연대에 대한 감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이 세계화되면 될수록 노동자 민중 역시 지구적으로 소통하고 단결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미 우리가 보아온 대로 시카고와 다보스, 프라하, 서울까지 노동자 민중의 지구적 연대는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IMF와 WTO같은 국제기구의 활동이 방해받을 지경에 다달았기 때문이다. 일본 JCA-NET 운영자인 토시마루 오쿠라는 에셜론시스템의 위험성을 이러한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지구적 차원의 민중운동의 발전과 민중들 간의 소통은 일국의 경계를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에서 동티모르 민족해방운동까지 포함되며 또한 IMF반대운동에서 WTO반대운동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제3세계 민중들에 대한 지지그룹들과 인권단체들에게, 에셜론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감시는 민중들간의 국제연대를 파괴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시의 세계화에 도전하는 민중의 과제
이것은 비단 세계 민중들의 국제연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이 감시체계의 아래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어떻게 이런 기술의 확산을 막고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기술의 민중적 통제를 위한 다양한 연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에 있다. 에셜론이 핵처럼 눈에 보이는 파괴력이 없다고 해서 덜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감시기술이라는 이유로 정보통신운동의 영역에 국한되는 문제도 아니다. 정보통신운동은 물론, 평화운동, 인권운동 그리고 전세계 다양한 운동진영과 연대를 통해 군사기술의 민중적 통제를 할 수 있는 기반 즉, 세계적 감시시스템에 대해 국제연대를 통한 역감시권의 형성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냉전이 해체되고 난 지금 혹자들은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마치 에셜론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저들이 벌이는 전쟁이, 자본의 세계화라는 공통요구를 지닌다는 점이다. 그 움직임만큼 저들의 안테나는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에게 쏠리게 될 것이다. 결국 에셜론의 등장은 자본이 세계화되면서 발생하는 감시의 세계화에 맞서, 노동자 민중 역시 지구적인 연대를 통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