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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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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와 자유무역협정(FTA)

FTA 글로벌 네트워크는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나

류주형 | 정책위원장
한미 FTA 재협상이 2010년 12월 타결되어 2011년 중 양국 의회 비준을 앞두고 있다. 양국의 여러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로 발효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협정문 한글본 번역 오류가 잇따라 발견되고 정부가 잠정발효 시점을 2011년 7월로 EU와 구두합의한 것이 확인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는 한EU FTA도 조만간 국회 비준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칠레,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미국, 유럽연합(EU) 등 모두 44개국과 FTA를 체결한 상황이다. 최근 3월 21일에는 한페루 FTA 협정문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현재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터키, 콜롬비아, 캐나다, 걸프협력회의(GCC), 멕시코 등 12개국과의 FTA도 조속한 타결을 추진 중이다. 그밖에도 정부는 시장 선점과 자원협력을 위해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FTA 추진국을 지속적으로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한일, 한중 FTA와 환태평양파트너십(TPP)도 검토 중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은 노무현 정부의 선진통상국가론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정부의 주장은, 무역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활로는 오직 수출경쟁력의 확보와 세계경제의 분업화 추세에 적응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997년 경제위기ㆍ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특히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각국이 경기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이러한 논리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FTA가 한국 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무역·금융 자유화와 산업의 서비스화를 가속화할 FTA는 금융세계화의 파괴적 효과를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운동과 전문가들이 한미 FTA의 부정적 효과를 비판했는데, 대개는 국가 간 통상전략과 부문별 이해득실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글은 1997년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면서 2007년 이후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여 FTA가 야기할 효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FTA 추진 과정

1992년 EU의 출범과 1994년 NAFTA의 발효를 계기로 지역적 조건에 따라 세계화를 구체화하려는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경제위기·외환위기 극복이 절대 과제였던 김대중 정부는 세계적인 지역주의 확산으로 인한 대외 수출 여건의 악화를 방지하는 동시에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FTA를 추진했다.
이러한 한국의 FTA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선진형 통상국가론’으로 본격화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개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여 발효함으로써 각 협상 별로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하여 전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2003년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수립한다. 동시다발적 FTA 전략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미주, 유럽, 남미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탈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FTA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1997년 이후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었다는 사정이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력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고 중국과 같은 후발 경쟁국들의 급성장으로 인해 한국경제의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정체되어가는 상황에서 FTA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FTA 전략의 정점은 한미 FTA였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능동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 선진 제도를 받아들이고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하여 국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인식했다. 즉, 한미 FTA가 ▲선진기술 및 자본의 도입을 통한 혁신선도 업종의 성장 및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 ▲비교우위를 지니거나 성장잠재력 및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지닐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동시에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했다.
한미 FTA를 정점으로 하는 FTA 추진 전략은 단순히 재화의 원활한 거래뿐 아니라, 자본 및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와 서비스의 이동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이는 곧 세계화의 심화와 가속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상품분야의 관세철폐뿐만 아니라 투자, 서비스,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을 WTO의 관련 기준과 일치시키는 포괄적 FTA를 지향한다. 포괄적 FTA 전략은 WTO 체제가 다루는 범주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WTO 플러스’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협상 상대국(선진국)의 기준이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사회 전반에 도입하여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2007-09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경제가 대외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한국경제는 2008년 4/4분기부터 2010년 3/4분기 사이에 1분기 평균 5.7%의 GDP 손실을 기록하면서 성장세가 장기추세선을 이탈한다.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충격으로 장기 성장추세를 이탈한 데 이어 2007-09년 위기로 다시 한 번 성장추세를 이탈한 것이다. 한국경제는 위기 이후 급락하다가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지만, 이는 상당 부분 대규모 재정투입에 기인한다(한국 재정적자 규모는 2008년 GDP 대비 1.5%에서 2009년 4.1%로 급증했다). 또한 위기 시기 한국의 경제성장률 변동성은 OECD 국가 중 9번째를 기록했다.
위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사상최대의 무역흑자가 발생하자 수출이 한국경제를 지탱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한다. 또한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감소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는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한미 FTA의 조속한 발효가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재협상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EU FTA를 체결함으로써 미국의 한미 FTA 비준을 압박하는 동시에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FTA 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대체로 계승하면서도 체결 대상을 다면화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즉, 미국, EU와 같은 거대경제권 외에도 자원부국(걸프협력협의회(GCC), 호주, 뉴질랜드, 페루, 콜롬비아 등), 동북아 국가, 대륙별 거점 국가(터키, 러시아, 이스라엘, SACU(남아공, 보츠나와, 레소토, 나미비아, 스와질랜드))와 FTA를 체결함으로써 자유무역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 등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확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유무역이 국민경제에 ▲소비자의 후생 증가 ▲자원의 재배분을 통한 경제의 효율성 증대 ▲규모의 경제 실현 ▲경쟁 강화를 통한 효율성의 증가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은, 한미 FTA는 향후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약 6.0% 증가시키며, 대미 무역흑자는 46억 달러 확대시키고, 약 33만 5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 이들은 한EU FTA가 체결되면 장기적으로 실질 GDP가 약 5.6% 증가하고, 15년간 대EU 무역흑자가 연평균 3.61달러 확대되며, 취업자가 25만 3천 명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1997년 위기와 장기 침체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대로 FTA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1997년 이후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처한 원인을 분석해보자.
아래 <그림 1>에 나타나 있듯이, 한국경제는 1979-80년과 1997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또 2001년과 2009년에도 각각 미국의 신경제 거품과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이 급락하였다. 추세적으로 보면 1980년대까지 8%를 상회하던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0년대에는 4% 내외에서 진동한다는 사실도 관찰된다.
그럼 이제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근원적 추세를 분석해보자. <그림 2>에서는 1979-80년 위기와 1997년 위기를 전후하여 이윤율 및 자본생산성의 하락, 노동생산성 및 임금의 둔화, 그리고 자본-노동 비율의 증가가 관찰된다. 이를 순환적 위기와 구별하여 구조적 위기로 지칭할 수 있다. 자본에 대한 이윤의 비율로 정의되는 이윤율의 하락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한계이자 ‘공황의 궁극적 필연적 원인’이다. 이윤율은 자본생산성과 이윤분배율의 곱으로 분해되는데, 이윤율 하락은 대개 추세적 요소로서 자본생산성 저하와 관련된다.
1979-80년 위기는 1970년대 재벌 중심의 중화학공업화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채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자유무역은 생산력 격차에 따른 부등가교환을 본질로 하고 무역적자의 누적으로 현상한다. 후진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차관 같은 방식으로 외채를 도입한다(자본수입). 그래서 누적되는 무역수지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로 보전해야 하는데, 그런 외채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바로 외채위기인 것이다.
1997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촉진하면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고평가 정책을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한국경제는 1997년 환율이 폭등하여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인위적인 고평가 정책의 이면에서 한국경제와 미국·일본경제 사이의 생산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율의 폭력적 조정이 일어난 것이었다.
1997년 이후 이윤율은 하락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자본축적률 하락과 구조적 실업을 야기한다. 아래 <그림 3>에서 보듯이 1997년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10년 이상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파악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편 환율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800원에서 1900원으로 폭등하다가 1998년 말에 1200원까지 하락한다. 그 후 환율은 계속 하락하여 1999-2003년에는 1200원, 2004년에는 1100원, 2005년에는 1000원, 2006-07년에는 900원에 도달한다(<그림 4> 참고). 외환위기가 진정되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환율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수입과 무역흑자를 통해 달러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은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이는 또 다른 모순을 파생했다. 한국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그런데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금융자유화에 따라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확대되면서 평가절상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역흑자나 환율하락(평가절상)은 일시적인 현상으로서, 결코 한국경제의 생산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2006-07년에 환율이 900원으로 하락하고 2008년에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하자 무역수지도 적자로 반전되었다. 또 2004년부터 증시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구가하자 외국인은 매도세를 지속하는데, 시가총액 중 외국인 비중이 2004년 40%대에서 2008년 20%대 후반으로 하락했다(<그림 5>). 그 결과 다시 환율상승(평가절하) 압력이 가중됐다.


금융자유화와 금융위기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를 구조적 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효과라는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 금융자유화, 수출-재벌 주도 성장 전략, 산업의 서비스화라는 측면에서 FTA가 미칠 효과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997년 이후 한국경제는 금융시장 자유화를 통해 ‘신흥시장’으로 변모한다. 앞의 <그림 5>에 나타나 있듯이 1997년 위기 이후 외국계 기관투자가와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급속히 확대되는데, 이는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 확대(1997.12)와 폐지(1998.5)에 따른 결과다. 이로 인해 국부유출과 자본도피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아래 국제투자대조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외국인이 소유하는 국내자산이 ‘국부유출’의 지표가 된다면, 내국인이 소유하는 국외자산은 ‘자본도피’의 지표가 된다. 내국인의 대외투자에서 외국인의 국내투자를 제한 값인 순국제투자는 1997년 이후 큰 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그림 6> 참고).
<표 1> 국제투자대조표(IIP)는 ‘일정 시점에서 한 나라 거주자의 비거주자에 대한 금융자산(대외투자) 및 금융부채(외국인투자) 잔액’을 보여준다. 국제투자대조표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변동한다. 하나는 경상거래 및 자본·금융거래와 같은 거래적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환율 및 가격의 변동에 따른 비거래적 요인이다. 국제투자대조표는 국제수지표(BOP) 중 금융계정 항목과 개념 및 포괄범위가 일치하므로 거래적 요인만 고려한다면 순국제투자는 국제수지 상의 경상수지 변동분만큼만 증감할 것이다. 아래 <표 2>에서 2002-10년 중 경상수지 누계가 약 1,740억달러 흑자이므로 거래적 요인에 의한 변동만 반영할 경우 2001년 순국제투자 약 -560억 달러는 2010년 약 1,180억 달러가 되어야 하나 실제 잔액은 약 -1,370억 달러다. 이 둘의 차액 약 2,550억달러는 비거래적 요인, 즉 환율·가격 변동에 의한 것이다. 이 액수는 곧 외국인의 국내투자 평가이익과 내국인의 해외투자 평가이익의 차액을 의미하는데, 같은 기간 중 발생한 무역흑자 누계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한편 <그림 7>에서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임을 알 수 있다. 증권투자의 경우 성장유발효과가 극히 제한적인데 반해 변동성이 커서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자본유입 형태별 성장 파급효과는 직접투자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직접투자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투자유발효과가 낮아지는 추세다. 이는 직접투자의 성격이 최근 들어 단기자금화하고 M&A형 유입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는 장기적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증가시킴에도 불구하고 자본축적률을 증가시키지 않을뿐더러 자본 이동의 불안정성으로 오히려 축적률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증가된 생산성이 실물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축적률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분배의 악화만 가져올 뿐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임금을 감소시키고 비정규직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현재와 같은 성격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장기적인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특히 외국인의 투자 행태가 단기화되고 대외여건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 외국인 투자 자금의 빈번한 유출입이 금융시장 및 거시경제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 자금 흐름의 불안정성 확대는 기초 경제 여건에 관계없이 국제수지 및 환율의 급변을 초래함으로써 거시경제의 불안정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FTA 금융서비스 부문 협상은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된 금융개방 기조를 재확인하는 한편 국내 금융제도·규제체제를 재정비하는 수준에서 타결되었다. 이러한 금융자유화 조치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FTA 체제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 새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파생금융상품을 금융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제조,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노무현 정부하에서 제정되고 이명박 정부 들어 발효되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는 원칙적으로 금융서비스 관련 수량규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융규제 방안에 많은 제약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컨대, FTA를 통한 투자 자유화 확대는 한국경제의 성장·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국부유출 및 자본도피 경향을 강화할 우려가 높다.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금융세계화 기조를 유지·강화하는 FTA는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금융위기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무역자유화와 수출-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

1997년 이후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따라 한국의 무역규모가 급증한다. 수출입을 합한 한국의 무역규모는 1997년 2천 8백억 달러에서 2002년 3천7백억달러, 2007년 7천 2백억 달러, 2010년 8천 9백억 달러로 급증하였다(<그림 8> 참고).
1997년 이후 무역규모의 가파른 성장에 따라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도 심화됐다. 2000년대 전반까지 70% 대에서 등락하던 무역의존도는 2006년 최초로 80%를 돌파한 이후 2007년 86%, 2008년 111%, 2009년 99%로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그림 9> 참고).
동시에 1970-80년대 40-50% 수준으로 유지되던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1990년대 전반기까지 내수 확대로 다소 감소세를 보이다, 2001년 이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 수치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41%, 111%, 93%, 69%, 73%, 64%로 대단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그림 10> 참고). 이상의 사실로부터 한국경제가 무역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수출을 주도한 산업은 무엇인가? 아래 <표 3>을 보면 1990년대 후반 이후 반도체, 자동차의 수출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2000년 이후에는 선박, 자동차, IT 제품이 꾸준히 수출 상위 5대 품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출 상위 5대 품목의 수출비중이 1990년대 30%대에서 2000년대에는 40%대로 상승한 것을 볼 때, 주요 품목에 대한 의존도도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에 따라 국내 산업구조가 국제적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 위주로 재편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반도체·자동차·IT 등 선도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출-재벌이 크게 성장한 반면, 여타 산업이나 중소기업은 성장이 지체됐다.
한편 1997년 이후 국내자본의 해외 직접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림 11> 참고).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앞서 확인했듯이 국내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국외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1997년 이후 자본 이동 자유화 조치에 따라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자본축적률을 하락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를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이 2009년 말 현재 전체의 41.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이 46.0%를 차지하는데,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저임금 활용 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 목적을 시계열로 살필 때 가장 특징적인 점은 현지시장 진출의 비중이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하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현지법인의 대 한국 수입이 한국의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기준 30%에 달한다. 반대로 현지법인의 대 한국 수출은 한국의 총수입의 11.9%에 달한다. 이러한 현지법인과의 수출입은 큰 폭의 흑자를 유지하여 전체 무역수지 흑자 기조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해외 생산의 확대로 인한 기업 내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수출이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990년 0.68에서 1995년 0.70으로 증가하였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생산이 확대되면서 2000년 0.63, 2003년 0.62, 2008년 0.53으로 하락하고 있다. 부품·소재 산업의 기반이 취약하여 기초소재 및 조립가공 제품을 중심으로 수입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저하되는 요인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수출기업의 호조가 내수기업의 성과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생산 현지화는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대기업의 가격경쟁력과 매출액을 제고하는 데 효과적이나 1, 2차 기업의 동반 해외 진출로 수출이 감소하고 국내 산업 공동화를 낳는다. 대기업의 해외 조달 확대는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반면 범용 부품의 수입 증가로 인해 1, 2차 내수 경쟁의 격화를 낳는다. 또 고환율 정책은 완제품 수출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지만 원자재와 핵심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원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로부터 수출 재벌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소득, 고용이 호전되지 않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FTA가 체결되면 생산기지의 국외 이전이 더욱 촉진될 것이다. FTA는 투자 자유화를 위해 투자자의 소유권을 대폭 보장하는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자동차 부문의 경우 국외 현지생산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때 기존 한국 공장의 수출 물량은 미국 내 수요 증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맞추어지기 때문에 생산 신축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그리고 생산 신축성을 위해 비정규직 고용 유인이 더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FTA의 관세철폐 효과로 무역이 증진되어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미공개 보고서인 「기발효 FTA와 한미 FTA 발효 시 경제적 효과 분석」(2009.9)은 이전의 주장과 달리 한미 FTA 발효 15년 후 대미 무역수지가 71억 달러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기존 정부 주장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또 각국 정부의 FTA 경제성장 효과 예측이 대단히 자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한미 FTA로 인한 자동차 부문의 수출 증대효과는 2007년 원안 타결 당시에도 크지 않았는데 지난 연말 재협상으로 인해 그 효과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요컨대, FTA를 통한 무역자유화의 확대는 수출-재벌 주도의 세계화를 가속화한다. 수출 재벌과 국민경제의 괴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FTA가 발효될 경우 한국경제의 성장,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정부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서비스산업 개방과 선진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결과, 2009년 현재 한국의 무역흑자 규모는 세계 흑자국 중 7위, 아시아 신흥국 중에서는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2009년 G20 피츠버그 정상회의는 세계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을 위한 협력 체계’에 합의했다. 세계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무역적자국인 미국의 수입 축소와 흑자국인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의 내수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내에서는 한국경제의 중장기 발전전략으로 내외수 균형성장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내수 비중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출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소득유발 효과를 높여 수출과 내수 간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자는 것이다(수출호조→소득확대→소비진작→투자확대). 그러나 앞서 살폈듯이 최근 수출 산업은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감소하고 있다. 이는 수출산업이 제조업에 국한되며, 제조업 부문에서는 산업고도화 및 기술발전으로 인한 취업유발효과 제고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논리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결과 서비스산업 비중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고 생산성도 대단히 낮다는 사실이다. 도소매·음식숙박업 등의 비중이 높고 보건의료·금융 등 고부가가치 업종의 비중이 낮음에 따라 생산성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고 제조업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2000-07년 평균 제조업 대비 54.7%)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정부는 FTA를 통해 서비스 시장을 개방할 경우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실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산업간 융합이 늘어나고 제조업 생산과 서비스 부문에 대한 상호 투입의 비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서비스산업의 발전은 제조업을 비롯한 전 분야의 경쟁력 강화의 선순환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수익성 있는 공공부문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간주하여 개방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낳는다. 1970-80년대 중심부 국가에서 서비스산업의 빠른 팽창을 주도한 것은 고기술의 지식집약적 서비스 부문, 그중에서도 주로 생산자 서비스 부문이었다. 반면 유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부문은 낮은 성장을 보이며 고용 비중 또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때문에 교육수준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는 높은 실업률 하에서 오히려 노동시장 접근 기회가 줄어들었다. 또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서비스 산업에 대한 새로운 통제 기법이 도입된 결과, 과거에 비해 높아진 숙련요구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산업의 변화는 고용형태의 변화를 초래하여 파트타임, 기간제, 교대제, 임시직 등 불안전 고용의 증가를 초래했다. 특히 파견근로제가 정착함에 따라, 기업의 핵심적 업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쉽게 분리될 수 있는 경비, 청소, 식당 등의 업무 영역에서 고용불안이 확산된다. 또한 서비스 노동과정에 대한 내적 통제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헌신을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이는 고객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진 것과 연관된다. 다른 한편으로 복지 관련 사회서비스가 시장화되면서 감정노동이나 돌봄노동과 관련한 젠더 문제가 파생되기도 한다.
서비스산업 개방과 관련해서는, 특히 초민족적으로 활동하는 제약회사ㆍ보험회사와 관련된 보건의료 개방이 핵심적 문제다. 한미 FTA는 금융서비스 협정을 통해 민간보험 상품을 포괄적 허용(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EU FTA도 한미 FTA와 유사하게 금융부문 협상을 마무리했다. FTA가 발효되면 현재 무규제 상태에 놓은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공적 건강보험이 침해될 가능성은 물론,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피소 가능성,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의 존재 자체로 인한 정부 규제 위축 효과 가능성도 있다. 한편 한미 FTA는 보건의료서비스를 ‘미래 유보’로 인정하고 있으나, 경제자유구역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한 관련 특례는 예외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 FTA가 통과되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영리병원, 약국 혹은 이와 유사한 시설이 설치될 경우 이에 관한 규제 조치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또한 한미 FTA는 초민족적 제약회사의 이해에 적극 부합하는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의약품 접근권을 심각히 침해한다. 한미 FTA는 의약품의 보험 적용과 가격 산정 기준을 명문화하고 모든 특허의약품의 ‘혁신성’을 인정함으로써 약가 상승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또 지적재산권 관련 대표적 독소조항인 허가-특허 연계 제도에 따라 의약품 특허권자의 권리가 대폭 보장되는 반면 의약품 접근권이 제한된다.


사회운동의 대응

지금까지 우리는 금융자유화, 수출-재벌 중심 성장 전략, 서비스 개방을 중심으로 FTA가 한국경제에 끼칠 부정적 효과를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심화와 가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재 정부·여당은 FTA 체제의 중핵을 이루는 한미 FTA와 한EU FTA를 조속히 국회 비준하려고 한다. 민주당은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협정안에 대해서는 ‘선대책 후비준’이라는 기존의 당론을 유지하되 2010년 타결된 재협상안을 ‘굴욕·밀실·기만·불평등·퍼주기 협상’으로 규정하여 폐기하자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미 FTA범국본은 4월 임시국회에서 한EU FTA 국회 비준에 대응하는 한편 한미 FTA 국회 비준이 시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6월에 투쟁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그런데 범국본은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대중투쟁의 동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FTA 대응 기조를 ‘이명박식 졸속 재협상 반대’로 설정함으로써 민주당을 한미 FTA 반대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민주당이 ‘반FTA’ 공조 대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운동은 당면한 한EU FTA,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막아내기 위해 투쟁 흐름을 살려야 한다. 민주노총이나 전농, 진보정당 등 주요 사회운동 조직들은 5-6월 FTA를 이슈로 집중 투쟁 계획을 세우고 다시 한 번 교육·선전과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대중적 투쟁을 통해 FTA 반대 여론을 확산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운동은 ‘FTA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특정 FTA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일부 진보학계와 사회운동에서 거론되는 대안적 지역주의나 공정무역론은 대안이 될 수 있나.
우선, 한미 FTA에 반대하면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와 같은 대안적 지역통합을 주장하는 논자들이 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지역통합이 가능하려면, 우선 유럽연합(EU)에서 독일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 헤게모니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중일 3국의 민족 갈등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이는 현재로서 무망하다. 무엇보다 한중일 3국이 대미 수출 달러 환류를 통해 미국의 이중적자 구조를 지지하는 상황, 특히 미국이 ‘개방적 지역주의 구상’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이와 같은 구상은 현실성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지역통합 모델(ALBA-TCP)이 한국이나 동아시아에 적용될 수도 없다. ALBA의 경우, 단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석유지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2008년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신통상법(‘Trade 법안’)을 참고삼아 한국에서도 통상 관련한 원칙과 기준을 법제화하자는 구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되는 ‘공정무역’이 바람직한 무역의 원리를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공정무역’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수출되는 품목에 대해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자’는 소비자운동에서 ‘공정무역’ 개념이 사용된다. 둘째, 미국이 1980년대 이후 기존의 역개방 정책을 철회하면서 ‘상대방이 개방하는 만큼 우리도 개방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때 ‘공정무역’ 개념이 동원된다. 그런데 무역에서 ‘불평등교환’이 발생하는 것은 (경제외적 요소를 제외한다면) 국가 간 기술력·생산력 격차에 따라 부등가교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역에서 부등가교환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술 격차가 축소되어야 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해) 국가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함으로써 후진국의 기술진보를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소비자운동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공정무역론은 부등가교환을 지양하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의 의제에 미달한다. 또한 ‘쌍방의 동등한 개방’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되는 공정무역론은 개방 부문과 수위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 갈등에 휘말리는 매개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만일 이러한 발상을 실행에 옮기려 할 경우 2011년 국회 비준 과정 또는 2012년 총선·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권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실행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 무역이나 통상과 관련한 대안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려면 무엇보다 노동자 농민 등 대중운동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매개로 대중투쟁을 활성화하면서 정세의 주도성을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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