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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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과 노동자운동

박하순 | 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
3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대비 4.7% 상승(전월대비 0.5% 상승)으로 발표되면서 물가문제가 운동진영의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실 생활물가 상승은 4.9%(2월 5.2%)로 더 높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 초기 유가가 145달러까지 폭등하고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생활물가가 폭등하자 52개 생활필수품의 가격( ‘MB 물가’)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3월 7일 발표에 따르면 MB 물가는 지난 3년간 20% 이상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1.75%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노동자, 특히 소비가 주로 생활필수품에 한정되는 저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 악화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신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물가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라마다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몇 나라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 들어 2%대(3월 2.7%)를 기록하고 있지만, 가격등락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대(3월 1.2%) 초반을 기록하고 있어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다. 그것도 2010년 1.6%(근원물가상승률 1.0%)에 비해 약간 상승한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자들은 지난 2년간 미국 정부의 정부지출 증대를 통한 경기부양정책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야기할 것이라면서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렀으며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정부채권 수익률도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러 금융시장은 보수주의자들의 미국의 정부부채에 대한 걱정을 비웃고 있다(정부채권 수익률이 낮다는 것은 미 정부가 발행하려는 정부채권을 안전자산으로 여겨 여전히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명한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사가 미 정부부채에 대해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채권 수익률은 오히려 더 떨어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애처로운 표준(Poor Standards)이라고 S&P사를 조롱하고 있을 정도이다. 즉 미국의 경우 통화증발과 재정적자를 통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지도 않고 있고, 금융시장이 미 정부의 정부부채를 걱정하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수요부족과 여기에서 비롯한 지지부진한 성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도 미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로지역의 3월 물가상승률은 2.7%이고, 유럽연합 물가상승률은 3.1%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높은 물가상승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지난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4%로 치솟았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등귀로 인한 비용인상형 물가상승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1/4분기 성장률이 9.7%로 예상보다 높아 수요견인형 물가상승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는 인도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인도는 3월 물가상승률이 9%에 이르고, 근원물가 상승률도 8%대에 이른다. 즉 인도, 중국 같은 개도국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초과수요가 오히려 문제가 된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크게 보면 미국, 유럽 등은 여전히 수요부족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낮다. 반면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은 경제위기의 영향이 덜했고 이미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초과수요 문제가 야기되면서 물가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특히 원유나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은 각국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는 주로 개도국의 경제회복에 따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해서는 가동률이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을 한 상태이지만,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해서는 여전히 경제위기의 영향권에서 확실히 탈피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초과수요로 인한 물가앙등의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해야겠다. 또한 이제까지 진행된 물가상승도 원유가 및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과 구제역 등 일시적인 원인에 의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이었고,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은 3.1%로 정부 물가 관리선을 크게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어 보인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대로 생필품 중심의 물가는 크게 올라 저임 노동자층의 생활상의 곤란은 매우 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물가관리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환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성장위주의 정책을 탈피해야 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에서도 ‘물가폭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며 암묵적으로 이에 동조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미국으로 치면 보수당인 공화당에서나 주장할 정책이다. 이런 주장은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진보진영의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장이 언제나 고용증대를 가져오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분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성장 속에서 고용이 늘거나 분배개선을 이룩할 수는 도저히 없다.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실업 및 저임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생산성 저하에서 오는 성장 및 자본축적 둔화 등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물가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서 연유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생태 문제 등을 야기할 무조건적인 성장정책을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무턱대고 지지할 수는 없겠지만, 생태친화적 성장 속에서 (시장에 의한) 고용증대와 분배개선을 도모하면서 당분간 노동자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한다면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현재 금리인상과 환율인하를 무턱대고 주장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원유나 국제원자재가의 지속적인 상승 등의 경우 적절한 환율인하는 필요할 것이나 물가인하를 위해 일부러 환율을 인하할 필요는 없다). 일종의 긴축정책인 이러한 정책은 고용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물론 저성장 속에서도 일자리 나누기나 실질 임금 보전 등을 통해서 고용문제나 저임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한다거나 이런 문제를 일정하게 개선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 노동자운동의 조직 역량으로 볼 때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러면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주장하고 투쟁해야 할까? 물가상승을 이유로, 생활물가 상승을 이유로, 그리고 MB 물가 상승을 이유로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현재 자본의 어마어마한 이윤에 비춰 봤을 때 노동자들이 상당한 임금인상을 한다고 해서 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이유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잘만 한다면 조합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 투쟁인 임금인상 투쟁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그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 내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가상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기회인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투쟁, 최저임금투쟁과 조합원들의 임금인상 투쟁의 결합, 그리고 이런 투쟁 속에서 노동자 내부의 단결의 확대 강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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