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즉각 중단해야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가 시행된 지 꼭 두 달이 지난 지금, 본 조치의 위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한 여름이었던 지난 8월 22일,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시작되었다. 여름철, 냉방도 하지 않는 서울역은 마치 온실과 같기에 대다수 거리 홈리스들은 비가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서울역을 잠자리로 선택하지 않았다. 서울역은 이런 시기적 특성을 고려해 여름철을 퇴거시기로 잡았다. 저항하는 이들도 적거니와 겨울에 이르기까지 “서울역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학습효과가 홈리스들에게 생길 시간을 벌자는 계산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구 육상 선수권대회, 구(舊) 서울역사 문화관 개관 행사 등 외부적 요인도 적잖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여하튼 현재 서울역에서 내몰린 홈리스들은 밤이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간다. 그로 인해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인구는 약 2.5배 증가하였고, 시청역, 을지로입구역 등 인근 역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지난 9월 23일, 국정감사장에 나와 “일부 단체들은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노숙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단지 서울역에서 홈리스들이 잘 수 있느냐 없느냐 뿐 아니라, 철도공사의 상업화에서 기인하는, 홈리스에 대한 전방위적인 배제와 폭력과 관계된 보다 심각하고 중첩된 문제다.
왜, 노숙인 퇴거조치인가?
철도공사는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의 원인으로 1)임계점에 다다른 높은 민원 2)테러 위협을 들고 있다. 서울역이 노숙인을 내몰고 싶어서 내모는 것이 아니라 ‘고객님’ 들의 요청을 단순히 수행할 뿐이라는 것인데, 과연 사실일까?
우선, ‘민원’을 보자. 홈리스에 대한 이용객의 민원은 대개 ‘노숙 생활’ 자체가 야기하는 민원이다. 냄새, 더러움 따위가 그것인데, 이는 노숙생활을 종결짓지 못하는 한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역 측은 거리홈리스들이 청결유지를 위해 화장실에서 세면이라도 할라치면 철도경찰과 역무원들을 동원해 내치기 일쑤였다. 오히려 철도공사 스스로 민원을 키워 온 꼴이다. 또 한편, 일부 홈리스에게서 발생하는 구걸이나 소란행위에 따른 민원은 그간 철도안전법 등 관련법을 통해 서울역 내 상주하는 철도경찰이 상시적으로 대응해 왔다. 오히려 사망사고와 같은 철도경찰의 과잉대응이 문제였지, 범죄 행위에 대한 현장 억지력 부재가 도마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번째, 홈리스로 인해 테러 위험이 있다는 철도공사의 주장은 어떤가? 철도공사는 면담자리에서 “서울역은 테러의 0 순위”라며 지난 5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물품보관함 사제폭탄 사건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위 사건은 홈리스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지, 당시 언론들은 “노숙자 차림”이라는 표현을 쓰며 용의자를 특정하였다. 철도공사는 이렇듯 검증되지 않은 홈리스에 대한 범죄자적 낙인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다.
과연 홈리스는 위험한가? 철도공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2개 상해사건을 언급하며, 홈리스들은 위험하고 테러 위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집단을 특정한 부정적 정보는 수집자체만으로도 사회적 낙인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타 집단과의 비교조차 없이, “노숙인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라는 식의 보도는 어떠한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통계도 근거도 될 수 없다. 오히려 홈리스들은 범죄 행위에 있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적 위치에 서는 경우가 많다.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단체들에서 2006년 190명의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그들 중 43%가 폭행, 신분도용과 같은 범죄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범죄 피해를 당한 이들의 절반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 역시 사건 해결에 도움을 받은 경우는 불과 9%에 불과하였다. 이미 홈리스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말을 믿거나, 적법하게 대변하지 않을 것이란 패배감을 공유하고 있다.
이렇듯, 코레일은 “청결하고 안전한 서울역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기 위한” 것으로 강제퇴거 방침의 불가피성을 설명하지만, 이는 지난 2월 광명역 탈선사고를 비롯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철도사고, 원인도 파악되지 않은 KTX 2단계 구간의 장애, 대책 없는 인력감축과 정비축소와 같은 파행적 철도 운영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감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또한 민자 역사로 대표되듯, 철도공사가 상업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해 사전정리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그 스스로도 이윤추구를 위해 구매력 없는 홈리스들을 정리하여 품격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기실, 철도공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여객 만족’, ‘청정 서울역’이 아니라 ‘노숙인’이라는 ‘공공의 적’ 을 공격하는 것이다.
서울역 퇴거 조치의 파장
서울역 퇴거조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홈리스에 대한 생존권 위협이다. 홈리스들의 사망률은 전체인구 집단 사망률의 2~3배에 이르며, 여름과 겨울철에 정점을 이룬다. 그만큼 홈리스들의 건강상태는 열악하며, 기온 변화에도 취약하다.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듯 지난 13일, 서울 마천동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거리홈리스 박모씨가 차량 4대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나마의 온기라도 얻으려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렇듯, 철도역사와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밀려난 홈리스들의 선택은 사유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사적공간은 공공장소보다 안전이나 환경면에서 더 열악할 수밖에 없어 제2, 제3의 박씨와 같은 참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서울역의 선례는 여타 공공장소로도 이전되기 마련인데 그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푸른 도시국 간부회의를 통해 서울시내 공원 노숙행위를 단속하기로 하였다. 또한 용산역은 소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30여 명의 거리홈리스들에게 철거를 명령하였고, 서울역 구름다리 천막촌에도 철거 명령을 내건 상태다.
두 번째 문제는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해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를 후퇴시킨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퇴거 후속대책의 하나로 ‘자유카페’를 설치하기로 한 바 있다. 서울역을 대체할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아직 건물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 임대업자들이 ‘노숙인’들에게는 건물을 내 줄 수 없다고 계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바로 철도공사 주도로 유포한 홈리스에 대한 낙인에 서울시조차 곤혹을 당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들어 거리 홈리스에 대한 집단 린치가 빈번한 것 역시 우려되는 점이다. 홈리스에 대한 심야시간대 집단 린치 사건이 며칠 상간으로 제보되고 있는데, 폭행당한 홈리스가 기절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그 정도 또한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여성과 장애인, 청소년 등 이중의 위기에 처한 홈리스들은 보다 더 심각한 위협에 처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으로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한 할머니는 “서울역 안에 있으면 경찰 같은 사람도 있어 뭔가 보호받는 거 같았는데 새벽에 나와 있으려니 너무 무섭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서울역이 문을 닫는 새벽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여성 등 위기집단이 아무런 보호도 없이, 취약시간 대 홀로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특히 거리 여성홈리스를 위한 지원기관조차 단 한 곳도 없는 현실에서 서울역에서 쫓겨난 여성들은 말 그대로 뜬 눈으로 서성이며 밤을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이 이럼에도 철도공사는 강제퇴거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6일, “코레일은 역사 맞이방이 색다른 문화 공간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선물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서울역 대합실에서 관현악 공연을 열었다. 마치 홈리스로부터 서울역을 탈환했다는 승전가를 울리듯 말이다.
허구적인 서울시의 후속대책
서울시는 서울역의 퇴거조치가 주목을 받자 서둘러 ‘후속대책’을 내놓으며 지탄을 면하고자 하였다. 후속대책은 임시주거지원 100호, 50인 입소 규모의 응급 구호방, 특별자활근로 일자리 200개 증편, 자유카페 등을 골자로 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미 올해 사업으로 기 편성된 것들이다.
거리홈리스들에게 쪽방, 고시원 등을 3~4개월 간 지원하는 임시 주거지원 사업은 작년 200호였던 것을 올 해 100호로 축소 편성한 것이다. 당초 이 사업은 민간의 지속적인 실시요구에도 묵살되었다가 작년 G20 개최를 위한 거리 정화정책으로 최초 실시되었다. 물량이 태부족(현재 서울지역 거리홈리스의 숫자는 1,350명 선)하기 때문에 이 사업은 강제퇴거가 실시되기도 전에 모두 종결됐다. 특별자활근로 역시 올해 예산은 작년보다 100명이 삭감된 채로 책정되었는데 200명을 더 늘려 매월 700명에게 일자리를 지원한다고 한다. 결국 겨울철 예산을 선집행하는 것인데, 이는 가을까지는 특별자활근로를 해서 노숙을 벗어나고 겨울철에는 다시 거리로 쏟아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특별자활근로의 급여는 월 38만원으로 월세방을 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응급 구호방 역시 겨울철 예산을 선집행한 것에 불과하며, 앞서 언급했듯 ‘자유카페’는 공간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철도공사는 9월 초 서울역 퇴거조치와 서울시의 후속대책으로 서울역 인근 노숙인구가 100명 이상 줄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구는 오히려 퇴거조치 전보다 20명 가량 증가한 상황이다. 서울시의 후속대책이 탈노숙에 있어 해답이 되지 못하는 사이, 신규 홈리스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역을 통해 유입되는 홈리스만 한 해 800명에 이르고 있다.
철도 역사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철도 역사는 홈리스를 포함한 다양한 위기계층의 유입로가 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편의시설과 교통, 정보, 인력시장 등 생존을 위한 조건이 철도 역사를 중심으로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도 역사는 이런 기능을 인정하고, 그들을 단지 ‘아웃’ 시킬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나마 ‘세이프’ 하게 해주고, 복지 자원 연계를 통해 보다 나은 삶으로 ‘출루’ 할 수 있게 한다면 위기계층 지원에 상당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공역사의 역할이 홈리스 지원에 얼마나 결정적인지는 해외 사례를 통해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2006년 철도노조는 파업투쟁의 성과로 철도공사와 역사 공공성 관련 합의를 이룬 바 있다. 합의는 “사회위기계층 보호를 위해 코레일 아웃리치 봉사팀을 운영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서울역에 노숙인 진료소 설치를 추진하고, 연차적으로 전국 주요 역에 확대 운영되도록 노력”, “역사 공공성 확보를 위해 노사공동위원회 관련 심의절차를 상의하는 소위원회를 설치하여 구체적 방안을 토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시민사회단체 참관의 형태로 ‘역사공공성 소위원회’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허준영 체제의 철도공사는 위 합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를 복원할 생각도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렇듯 철도공사가 스스로의 합의를 무시하고,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까지 ‘노숙인 퇴거’조치를 고수하는 데는 철도공사에 대한 수익 창출 요구와 민자 역사로 대표되는 상업자본의 이윤 창출을 뒷받침해야 하는 이중의 압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역사 공공성에 대한 요구는 이미 민자 역사 공간의 약 90%가 상업시설에 점유당한 현 상황에서 정말 따내기 어려운 요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공공 역사가 철도공사의 전유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공공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 그에 따라 철도 역사의 상업시설 입점과 같은 영리행위를 규제하고, 사회위기계층 지원과 같은 공공의 기능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울역 홈리스들의 저항은 그리 집단적이지도 단단하지도, 거세지도 않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의 침탈에 저항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철도공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지난 9월 23일, 국정감사장에 나와 “일부 단체들은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노숙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단지 서울역에서 홈리스들이 잘 수 있느냐 없느냐 뿐 아니라, 철도공사의 상업화에서 기인하는, 홈리스에 대한 전방위적인 배제와 폭력과 관계된 보다 심각하고 중첩된 문제다.
왜, 노숙인 퇴거조치인가?
철도공사는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의 원인으로 1)임계점에 다다른 높은 민원 2)테러 위협을 들고 있다. 서울역이 노숙인을 내몰고 싶어서 내모는 것이 아니라 ‘고객님’ 들의 요청을 단순히 수행할 뿐이라는 것인데, 과연 사실일까?
우선, ‘민원’을 보자. 홈리스에 대한 이용객의 민원은 대개 ‘노숙 생활’ 자체가 야기하는 민원이다. 냄새, 더러움 따위가 그것인데, 이는 노숙생활을 종결짓지 못하는 한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역 측은 거리홈리스들이 청결유지를 위해 화장실에서 세면이라도 할라치면 철도경찰과 역무원들을 동원해 내치기 일쑤였다. 오히려 철도공사 스스로 민원을 키워 온 꼴이다. 또 한편, 일부 홈리스에게서 발생하는 구걸이나 소란행위에 따른 민원은 그간 철도안전법 등 관련법을 통해 서울역 내 상주하는 철도경찰이 상시적으로 대응해 왔다. 오히려 사망사고와 같은 철도경찰의 과잉대응이 문제였지, 범죄 행위에 대한 현장 억지력 부재가 도마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번째, 홈리스로 인해 테러 위험이 있다는 철도공사의 주장은 어떤가? 철도공사는 면담자리에서 “서울역은 테러의 0 순위”라며 지난 5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물품보관함 사제폭탄 사건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위 사건은 홈리스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지, 당시 언론들은 “노숙자 차림”이라는 표현을 쓰며 용의자를 특정하였다. 철도공사는 이렇듯 검증되지 않은 홈리스에 대한 범죄자적 낙인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다.
과연 홈리스는 위험한가? 철도공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2개 상해사건을 언급하며, 홈리스들은 위험하고 테러 위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집단을 특정한 부정적 정보는 수집자체만으로도 사회적 낙인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타 집단과의 비교조차 없이, “노숙인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라는 식의 보도는 어떠한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통계도 근거도 될 수 없다. 오히려 홈리스들은 범죄 행위에 있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적 위치에 서는 경우가 많다.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단체들에서 2006년 190명의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그들 중 43%가 폭행, 신분도용과 같은 범죄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범죄 피해를 당한 이들의 절반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 역시 사건 해결에 도움을 받은 경우는 불과 9%에 불과하였다. 이미 홈리스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말을 믿거나, 적법하게 대변하지 않을 것이란 패배감을 공유하고 있다.
이렇듯, 코레일은 “청결하고 안전한 서울역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기 위한” 것으로 강제퇴거 방침의 불가피성을 설명하지만, 이는 지난 2월 광명역 탈선사고를 비롯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철도사고, 원인도 파악되지 않은 KTX 2단계 구간의 장애, 대책 없는 인력감축과 정비축소와 같은 파행적 철도 운영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감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또한 민자 역사로 대표되듯, 철도공사가 상업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해 사전정리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그 스스로도 이윤추구를 위해 구매력 없는 홈리스들을 정리하여 품격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기실, 철도공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여객 만족’, ‘청정 서울역’이 아니라 ‘노숙인’이라는 ‘공공의 적’ 을 공격하는 것이다.
서울역 퇴거 조치의 파장
서울역 퇴거조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홈리스에 대한 생존권 위협이다. 홈리스들의 사망률은 전체인구 집단 사망률의 2~3배에 이르며, 여름과 겨울철에 정점을 이룬다. 그만큼 홈리스들의 건강상태는 열악하며, 기온 변화에도 취약하다.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듯 지난 13일, 서울 마천동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거리홈리스 박모씨가 차량 4대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나마의 온기라도 얻으려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렇듯, 철도역사와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밀려난 홈리스들의 선택은 사유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사적공간은 공공장소보다 안전이나 환경면에서 더 열악할 수밖에 없어 제2, 제3의 박씨와 같은 참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서울역의 선례는 여타 공공장소로도 이전되기 마련인데 그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푸른 도시국 간부회의를 통해 서울시내 공원 노숙행위를 단속하기로 하였다. 또한 용산역은 소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30여 명의 거리홈리스들에게 철거를 명령하였고, 서울역 구름다리 천막촌에도 철거 명령을 내건 상태다.
두 번째 문제는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해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를 후퇴시킨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퇴거 후속대책의 하나로 ‘자유카페’를 설치하기로 한 바 있다. 서울역을 대체할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아직 건물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 임대업자들이 ‘노숙인’들에게는 건물을 내 줄 수 없다고 계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바로 철도공사 주도로 유포한 홈리스에 대한 낙인에 서울시조차 곤혹을 당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들어 거리 홈리스에 대한 집단 린치가 빈번한 것 역시 우려되는 점이다. 홈리스에 대한 심야시간대 집단 린치 사건이 며칠 상간으로 제보되고 있는데, 폭행당한 홈리스가 기절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그 정도 또한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여성과 장애인, 청소년 등 이중의 위기에 처한 홈리스들은 보다 더 심각한 위협에 처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으로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한 할머니는 “서울역 안에 있으면 경찰 같은 사람도 있어 뭔가 보호받는 거 같았는데 새벽에 나와 있으려니 너무 무섭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서울역이 문을 닫는 새벽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여성 등 위기집단이 아무런 보호도 없이, 취약시간 대 홀로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특히 거리 여성홈리스를 위한 지원기관조차 단 한 곳도 없는 현실에서 서울역에서 쫓겨난 여성들은 말 그대로 뜬 눈으로 서성이며 밤을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이 이럼에도 철도공사는 강제퇴거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6일, “코레일은 역사 맞이방이 색다른 문화 공간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선물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서울역 대합실에서 관현악 공연을 열었다. 마치 홈리스로부터 서울역을 탈환했다는 승전가를 울리듯 말이다.
허구적인 서울시의 후속대책
서울시는 서울역의 퇴거조치가 주목을 받자 서둘러 ‘후속대책’을 내놓으며 지탄을 면하고자 하였다. 후속대책은 임시주거지원 100호, 50인 입소 규모의 응급 구호방, 특별자활근로 일자리 200개 증편, 자유카페 등을 골자로 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미 올해 사업으로 기 편성된 것들이다.
거리홈리스들에게 쪽방, 고시원 등을 3~4개월 간 지원하는 임시 주거지원 사업은 작년 200호였던 것을 올 해 100호로 축소 편성한 것이다. 당초 이 사업은 민간의 지속적인 실시요구에도 묵살되었다가 작년 G20 개최를 위한 거리 정화정책으로 최초 실시되었다. 물량이 태부족(현재 서울지역 거리홈리스의 숫자는 1,350명 선)하기 때문에 이 사업은 강제퇴거가 실시되기도 전에 모두 종결됐다. 특별자활근로 역시 올해 예산은 작년보다 100명이 삭감된 채로 책정되었는데 200명을 더 늘려 매월 700명에게 일자리를 지원한다고 한다. 결국 겨울철 예산을 선집행하는 것인데, 이는 가을까지는 특별자활근로를 해서 노숙을 벗어나고 겨울철에는 다시 거리로 쏟아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특별자활근로의 급여는 월 38만원으로 월세방을 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응급 구호방 역시 겨울철 예산을 선집행한 것에 불과하며, 앞서 언급했듯 ‘자유카페’는 공간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철도공사는 9월 초 서울역 퇴거조치와 서울시의 후속대책으로 서울역 인근 노숙인구가 100명 이상 줄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구는 오히려 퇴거조치 전보다 20명 가량 증가한 상황이다. 서울시의 후속대책이 탈노숙에 있어 해답이 되지 못하는 사이, 신규 홈리스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역을 통해 유입되는 홈리스만 한 해 800명에 이르고 있다.
철도 역사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철도 역사는 홈리스를 포함한 다양한 위기계층의 유입로가 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편의시설과 교통, 정보, 인력시장 등 생존을 위한 조건이 철도 역사를 중심으로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도 역사는 이런 기능을 인정하고, 그들을 단지 ‘아웃’ 시킬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나마 ‘세이프’ 하게 해주고, 복지 자원 연계를 통해 보다 나은 삶으로 ‘출루’ 할 수 있게 한다면 위기계층 지원에 상당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공역사의 역할이 홈리스 지원에 얼마나 결정적인지는 해외 사례를 통해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2006년 철도노조는 파업투쟁의 성과로 철도공사와 역사 공공성 관련 합의를 이룬 바 있다. 합의는 “사회위기계층 보호를 위해 코레일 아웃리치 봉사팀을 운영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서울역에 노숙인 진료소 설치를 추진하고, 연차적으로 전국 주요 역에 확대 운영되도록 노력”, “역사 공공성 확보를 위해 노사공동위원회 관련 심의절차를 상의하는 소위원회를 설치하여 구체적 방안을 토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시민사회단체 참관의 형태로 ‘역사공공성 소위원회’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허준영 체제의 철도공사는 위 합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를 복원할 생각도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렇듯 철도공사가 스스로의 합의를 무시하고,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까지 ‘노숙인 퇴거’조치를 고수하는 데는 철도공사에 대한 수익 창출 요구와 민자 역사로 대표되는 상업자본의 이윤 창출을 뒷받침해야 하는 이중의 압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역사 공공성에 대한 요구는 이미 민자 역사 공간의 약 90%가 상업시설에 점유당한 현 상황에서 정말 따내기 어려운 요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공공 역사가 철도공사의 전유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공공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 그에 따라 철도 역사의 상업시설 입점과 같은 영리행위를 규제하고, 사회위기계층 지원과 같은 공공의 기능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울역 홈리스들의 저항은 그리 집단적이지도 단단하지도, 거세지도 않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의 침탈에 저항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철도공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