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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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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미 FTA 폐기 투쟁방향에 대하여

이상훈 | 정책위원
닥치고 한미 FTA 폐기! 하지만 어떻게?

한미 FTA 날치기 이후 분노의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수만 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거의 매일 촛불을 밝혔다.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준무효! 명박 퇴진!”을 외쳤다. 그야말로 모두가 “닥치고 한미 FTA 폐기! 명박 퇴진!”의 한목소리였다. 그만큼 민주주의를 짓밟은 정부를 향한 분노는 컸다. 하지만 정작 한미 FTA 투쟁의 정치적 목표는 총선심판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촛불집회만으로는 한미 FTA를 폐기하기 어려우니,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표로 심판하자는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의 다수진영 또한 ‘반한나라당 정권교체 후 폐기’를 한미 FTA 투쟁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한미 FTA 촛불집회는 때 이른 야당 총선 선거운동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경찰의 집회금지 원천봉쇄를 피한다는 명분까지 더해져서, 촛불집회는 아예 ‘야당 정당 연설회’, ‘야당 국회의원 연설회’로 변화되었다. 반면 이제까지 한미 FTA 투쟁을 이끌어온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촛불집회의 실무진행과 조직동원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쳤다. 정치투쟁방향은 야당들 간의 정당통합과 총선전략의 몫이 되고, 범국본은 “10만이 모이면 승리한다”, “100만이 모이면 폐기할 수 있다”는 식의 동원사업을 논의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되었다.

한미 FTA는 어떻게 폐기할 수 있는가

[표 1] 한미 FTA 제24장 5조

법 절차적으로만 보면, 한미 FTA 폐기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한미 FTA는 협정문 24장5조에 규정된 “당사국 일방의 서면통보”로 간단히 폐기된다. 정확하게는 통보시점으로부터 6개월 내에 효력이 정지된다. 하지만 이 통보는 대통령의 소관사항이고, 조약의 폐기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내년 4월 총선으로 국회 다수의석을 확보하여 ‘한미 FTA폐기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한미 FTA폐기법은 말 그대로 한미 FTA를 폐기하는 특별 법률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한미 FTA의 국내효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아야 하고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 결국 이들 법절차들은 정권교체와 국회 다수의석이 확보되어야 쓸모 있는 수단들이다.
하지만 2007년에 한미 FTA를 체결하고, 한나라당의 이번 날치기를 사실상 방조한 민주당(민주통합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한미 FTA를 폐기할 것이라고 기대할 사람은 없다. 민주통합당에게 한미 FTA는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의 호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촛불시민들이 정권교체를 한미 FTA 폐기의 가장 유력한 방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단계적인 한미 FTA 폐기론 때문이다. 일단은 국가-투자자 제소(ISD)와 같은 일부 독소조항에 대한 재협상이라도 다음정권에서 추진해보자는 입장이 상당부분 수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으로 한미 FTA를 폐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날치기 정권을 심판하고 어떻게라도 한미 FTA를 바꾸고자하는 시민들의 바람에는 진심이 있다. 한미 FTA는 그만큼 악독한 협정이다. 하지만 반MB,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의 논리는 한편으로는 “한미 FTA는 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식의 과도한 선동을 불사하면서, 정작 실제 폐기방안과 관련해서는 오로지 정권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강변할 뿐이다. 하지만 한미 FTA는 민주당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사안이면서, 또 그렇다고 제2의 을사늑약도 아니다. 민주당이라는 차악을 지지하는 정치적 희생과 후퇴를 감내하고 단계적인 재협상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 FTA가 비준발효된 이후에 이것을 폐지하는 것은 단순한 반한나라당 정치캠페인이 아니다. 그것은 전면적인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이다. 최근 추진 중인 KTX민영화, 인천공항해외매각은 한미 FTA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국내법과 정부정책에 의해 추진되던 일들이다. 여기에 한미 FTA의 렛칫(역진방지)조항이 발동되면, 한번 민영화된 부분을 합법적으로는 되돌릴 수 없게 되고, 민영화된 부분에 참여한 외국자본과 재벌에게 정부제소권한이 주어지는 특혜가 더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한미 FTA의 ISD나 렛칫조항, 네거티브 리스트규정 등과 같은 독소조항들의 폐지를 요구했던 것이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이들 독소조항들은 물론이려니와, 사유화-규제완화 관련 국내법과 정책들, 재벌정책, 노동악법을 함께 바꿔야 한다. 한미 FTA도 몇몇 독소조항만이 아니라 통채로 폐기해야, 노동자민중 생활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실제효과를 볼 수 있다.
예컨대 국토해양부는 지난 연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철도운영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토부는 현재 건설 중인 수도권 호남고속철도 KTX의 운행시점인 2015년 1월부터 수서에서 출발하는 경부선과 호남선 운영권을 민간에 넘긴다. 효율성 증대니 공공부문 선진화 운운하는 이러한 정부 정책방향은 지난 10여 년간 일관되게 추진되어온 공공부문 사유화, 선진화 계획의 연장선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계획에 따라 사유화된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KTX는 한미 FTA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와 비판에 대해 정부는 한미 FTA 날치기 이후에도 한사코 전기 가스 수도 철도 등의 필수 공공서비스들의 사유화, 해외매각, 요금폭등이 괴담에 불과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들 필수 공공서비스들이 미래유보의 대상들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공공서비스들도 모두 한미 FTA로 인한 전면적인 사유화, 규제완화의 대상들이다. 왜냐하면 이들 분야들은 한미 FTA와는 별도로 국내법상에서 이미 사유화가 진행되어 왔는데, 이렇게 (한미 FTA와 무관하게 국내법, 정책상으로) 이미 사유화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한미 FTA 해당 조항의 단서조항에서, 미래유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정부정책으로 인해 일부 운영권이 사유화된 KTX는,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공공적인 서비스이냐와 무관하게, 한미 FTA의 대상이 되고 한번 사유화된 부분은 재국유화, 재공공화 되지 못하고 ISD의 제소대상이 된다.
철도보다 더 공공적 성격이 분명하고, 이번 한미 FTA 투쟁과정에서 대표적인 요금폭등 괴담으로 지목된 바 있는 상수도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노무현 정부 내내 상수도 사유화는 멈춤 없이 진행되었고, 상수도법을 개정하여 상수도사업권 해외 위탁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에 따라 이미 2005년부터 베올리아라는 프랑스 기업은 인천의 송도·만수 하수종말처리시설을 2025년까지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인천시민 중 33만 명이 이 하수처리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베올리아는 38억 원의 순익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가 발효되면, (개정 수도법을 비집고 들어와서) 베올리아는 한국의 상수도 사업에 전면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베올리아에 이어 그 다음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영국의 템즈워터라는 세계적인 물 기업은 맥쿼리라는 호주 투자은행의 소유다. 이 맥쿼리가 세운 맥쿼리 인프라라는 회사는 이미 한국의 수많은 민자 도로, 터널, 다리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현재 추진 중인 인천국제공항 분할매각 참여 1순위 대상자이다.

[그림] 맥쿼리 인프라의 투자실적

정리해보자면, 한미 FTA는 철도, 공항, 상수도, 전기전력 등의 공공산업, 서비스사업의 해외매각과 사유화에 속도를 높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 공공부문의 사유화, 해외매각은 한미 FTA만을 손보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물사유화해외매각의 길을 터준 개정된 상수도법과 같은 국내법 제도들이 개정되어야 하고, 공공서비스 사유화, 경쟁체제도입, 선진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 또한 한미 FTA의 여러 독소조항들을 대부분 공유하는 한EU FTA나 기타 국제협정들이 함께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필수 공공서비스 산업들의 사유화와 해외매각이 미래의 골칫거리라면, 은행과 재벌은 이미 거의 모든 개방과 해외매각이 끝난 상태다. 한미 FTA 발효 이전에 우리은행을(해외매각 진행중) 제외한 국내 모든 시중은행들은 이미 해외매각 된지 오래 이고,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과 대기업의 대부분은 40-50% 이상 외국인 투자자 소유 기업이다. 더욱이 이러한 공공서비스, 금융, 투자시장의 재편은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으로 이어지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나날이 심화시킨다. 한미 FTA는 이처럼 전방위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정책들과 결합되어 그 강도를 높이고, 일단 발효된 이후에는 (이를 전면 철폐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일부만을 따로 골라서 부분적으로 손보기도 어렵거니와, 그것만으로는 실질적으로 반민중적 효과를 저지하거나 완화할 수 없다.
더욱이 한미양국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미 FTA가 정식으로 발효된 이후에 이미 유입된 투자자본의 이익과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적소유권의 기본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다. 때문에 한미 FTA를 폐기한다는 것은 아무리 작은 투자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국내외 총자본과 FTA폐기 추진세력 간의 전면적 대결이 불가피하다. 미국 측의 무역보복은 물론이려니와 한미군사동맹관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 측의 반발보다 더 극렬한 저항은 국내 재벌과 국가 관료권력으로부터 올 것이다. 이러한 싸움은 민주당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결이 아니다. 아니 애초부터 민주당은 이런 대결을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다. 그들이 말하는 한미 FTA 폐기, 비준무효는 “날치기를 자행한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과 야권통합후보를 총대선에서 지지해달라”는 선거구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당장 100만의 민중항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이유 만으로 정권교체-자유주의 선거연합이 FTA투쟁의 정치적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불가피성을 내세워 야권연대를 합리화하려는 상황논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닥친 2012년 총대선은 세계경제위기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첫 번째로 고려해야할 객관적인 정세적 조건이다.
한미 FTA는 경제위기의 파괴적 효과를 더욱 첨예하고 고통스러운 형태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며,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이 좀 더 첨예한 형태로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위기에 맞서는 계급투쟁 역량의 배가와 새로운 투쟁태세 마련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정치적 과제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아닌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명박 퇴진’을 외치는 대중의 분노를 긍정적으로 수용했다고 할 수 없는 정세인 것이다. 보수정치 세력과 근본적인 내용의 차이도 없고, 실질적인 계급정치 역량이 없는 정권교체는 작은 위기 앞에서도 (노무현정권이 그랬듯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실패하여 대중의 정치적 환멸을 증폭시킬 뿐이다. MB정부를 불러들인 것은 말로만 진보를 외치면서 계급양극화, 민생파탄을 야기한 노무현 정부였다. 세계 자본주의의 파국을 목전에 둔 ‘날치기 명박 퇴진’의 분노는 허울 좋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져야 한다. 한미 FTA폐기를 위한 진정한 로드맵은 허망한 법절차적 대안이 아니라 실질적인 계급역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이후 한미 FTA 투쟁방향: 구체적인 한미 FTA 투쟁과제들을 현장에서부터 준비해야 한다!

턱없이 적은 국회의석에도 불구하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한미 FTA 국회비준을 막는 싸움을 벌였던 우리의 목적은 한미 FTA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함으로써 전체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에 대한 계급적 저항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미 FTA 폐기를 위한 대중운동의 중심이었던 촛불집회는 연말 송구영신 집회를 기점으로 마무리되고, 한미 FTA 비준무효서명과 교육 선전사업 등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한미 FTA 투쟁은 좀 더 구체적인 지역 현장투쟁과 새롭게 결합하는 태세로 전환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동안 한미 FTA 투쟁과정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그것은 첫째, ‘날치기 무효’ 투쟁은 몇몇 독소조항만을 문제 삼는 재협상이 아니라, 명확한 한미 FTA 폐기를 향해 발전하는 대중운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 한미 FTA날치기로 촉발된 ‘명박 퇴진’의 분노는 반한나라당 정권교체, 총선심판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와 결합되어야 한다. 셋째, 구체적인 한미 FTA 투쟁과제들을 노동자운동 현장에서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촛불집회 이후 한미 FTA 투쟁방향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새로운 투쟁과제들을 고민하는 논의의 출발점이다.
아마도 한미 FTA는 2012년 내내 총대선의 중심이슈로 전면에 내걸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을사늑약이니 이완용 매국노니 하는 격렬한 정치적 비난을 사용하겠지만, 내용 없이 격렬하기만한 언동들은 십중팔구 한미 FTA를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정당화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이용되는 한미 FTA 이슈는 더 이상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역량을 강화시켜주는 대중운동의 발전과제가 아니다. 반면 촛불집회 이후 자발적으로 결성된 한미 FTA 폐기 운동들이 총대선 출마자들이 한미 FTA 폐기를 공약으로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대중행동들을 이어가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대중행동들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날치기를 사실상 방조한 민주당(혹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심판을 포함해야할 것이고, 야권선거를 지원할 뿐인 낙선운동이 아니라 한미 FTA 폐기 대중운동으로의 자기전망을 확보해 나가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미 FTA 폐기투쟁의 핵심동력은 한미 FTA로 인해 구체적인 재편이 이루어지게 될 노동자운동 현장으로부터 형성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한미 FTA의 ISD조항이나 미래의 최혜국대우, 내국민대우, 레칫 조항들은 한EU FTA나 다른 국제협약들과 즉각 연결되어, 국내재벌을 필두로 한 세계 투자자본의 강력한 보호막이 되어 곳곳에서 노동자민중을 위협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미 FTA로 인한 농업이나 제약 부문의 각종 피해효과는 1~2년 후에 다른 분야들보다 먼저 나타나겠지만, 보다 큰 규모의 변화는 전력, 가스, 수도, 우편체신, 철도와 같은 공공 서비스부문 사유화, 운영권 쪼개 팔기(경쟁체제도입), 재벌규제완화, 의료보험 사유화를 향한 단계적 재편과 영리병원 등의 문제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들 필수 공공서비스들과 수익성 있는 건강보험, 의료분야들에 대한 국내법상의 사유화, 영리화는 이미 매우 크게 진척된 상태다. 그 가운데 국내 재벌과 외국 투자자의 투자 참여가 확대되어 왔다. 여기에 한미 FTA의 각종 독소조항들이 힘을 발휘하기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규제완화나 어떤 사유화, 해외매각도 더 이상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거꾸로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사유화 이후 무슨 대형 사고가 터지건, 요금이 얼마나 오르건 해당 서비스를 재국유화하거나 재규제할 합법적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아마 이러한 방향의 변화를 공공요금 인상과 의료비 증가와 같은 직접적인 생활 상의 고통으로 실제 체험하게 되는 것은 적어도 4~5년의 시차를 가질 것이다. 또 완전한 금융자유화에 대한 법제도적 보장으로 인한 폐해는 2~3년 내로 세계 경제 악화와 관련된 경제정책 제약과 금융 불안정의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고용조건의 전반적인 악화와 법제도적 경제 체제의 변화는 그보다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예측되는 가운데, 그동안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투쟁에 앞장서왔던 노동조합들은 무너진 현장투쟁력을 시급히 복원해야 할 것이고, 전체 노동자운동 차원에서 각종 사유화 관련 정책과 재벌 규제완화 관련 대책들과의 전면적인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 의료보험이나 병원민영화의 문제는 비단 의료 관련 노조의 일자리 문제이기 이전에 전민중적인 건강권,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이니 만큼 그에 걸맞은 대응과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미 FTA 발효 이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게 될 다양한 변화들을 아직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변화를 시급하게 파악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노동자대중운동의 중장기적인 대안과 부문별 계급적 연대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한미 FTA 전면 폐기를 위한 노동자민중투쟁을 지속하면서,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역량을 키우는 길만이 대안이다. 흩어져 있는 철도민영화 저지투쟁, 공기업 해외매각 저지투쟁, 공공서비스 지키기 운동, 노동악법 폐기운동,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투쟁, 식량주권 운동들을 되살리고, 모으는 것이 대안이다. 급한 마음에 여소야대, 정권교체로 방향을 틀게 되면, 전선의 주인공이 민주당으로 바뀌면서 이들 전선이 무너진다. 한미 FTA 폐기는 더욱더 멀어진다.

한미 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한미 FTA를 발판으로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미일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하 TPP)을 추진하고 있다. TPP는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정 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2005년에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 체제로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었다. TPP는 창설 초기에 별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나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선언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통합에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과 미국을 연결해 주는 고리라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정 가입을 추진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신세계질서 전략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이 협정에는 상품 거래, 원산지 규정, 무역 구제조치, 위생검역, 무역에 있어서의 기술 장벽, 서비스 부문 무역,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및 경쟁정책 등 자유무역협정의 거의 모든 주요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2008년 2월 미국이 이 협정에 참여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고, 현재 TPP에 참가하는 나라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페루, 칠레이다. 올해 아펙회의에서 캐나다와 멕시코가 TPP에 참가의사를 내비쳤고, 11월에는 일본 총리가 TPP협상 참가 의사를 발표하였다. 일본 총리의 TPP 발표 직후에 일본농민단체들을 필두로 일본국내에는 강력한 TPP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에게 있어 한미 FTA는 TPP추진을 위한 주요한 발판이며, 일본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여 세계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새로운 세계경제전략을 구체화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에 따라 남한은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새로운 동아시아, 환태평양 세계질서의 하위 일원으로 재배치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남한의 노동자민중들은 요동치게 될 미중 간의 정치경제적 긴장의 부담뿐만 아니라, 북미관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차원의 군사적 긴장과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FTA 폐기 투쟁이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세계 민중들의 투쟁과 결합하고,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수립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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