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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7-8. 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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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쓰다버리는 헌 신발짝이 아니다

K2코리아 지회 조합원 인터뷰

이유미 |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통계국장
K2는 잘 나가는 회사다. 원빈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광고도 하고, 아웃도어 찾는 사람들도 많아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유명한 회사다. 영업 실적도 매우 좋다. K2는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3위 기업으로, 작년 매출액이 4,000억 원을 넘었고 올해 매출액은 5,000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작년 사장 일가는 100억 원의 배당금을 챙겨갔다.
하지만 잘 나가는 회사의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형편없었다. 10년을 일해도 임금은 100만 원 남짓했다. 번듯하게 지어 올린 회사 건물에는 냉난방시설이 잘 갖춰져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지만, 생산부서가 있는 4층과 5층은 제외되었다. 에어컨도 난방시설도 없었다. 더위를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집에서 선풍기를 들고 왔고, 겨울에는 내복을 두 장씩 껴입으며 일했다. 환풍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리고 본드 냄새가 공장안을 가득 메워 눈이 아프고 목이 아팠다.
회사의 규모와 이미지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노동조건이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했는데, 노동자들에게 돌아 온 것은 정리해고였다. 쥐꼬리만한 임금 주면서 인건비 아끼겠다고 인도네시아에 생산 공장을 세워서 노동자들을 내쫓는 회사, 노동자를 헌 신발짝 취급하는 회사가 노동자를 분노하게 했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에 나선지 벌써 100일이 훌쩍 넘었다. 봄이라 따뜻해 투쟁하기 좋다던 회사 앞마당 농성장에는 어느덧 무더위가 찾아오고 있었다.
한 낮의 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 『사회운동』은 농성장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다. 여성노동자가 절반이 넘는 사업장이라 40-50대 여성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했지만,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 글은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 K2코리아 지회 최영애, 김은희, 김선자, 마은아, 방진주 조합원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관리자의 횡포

“알고 보니까 나보다 늦게 들어온 동료가 나보다 월급이 13만 원이나 더 많은 거예요.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임금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 거라고.”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의 임금이 100만 원 남짓하다는 얘기에, 터무니없이 낮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임금이 인상되는지 물어봤더니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에서 사장은 매년 노동자들의 임금을 5%씩 인상해서 책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장이 책정한 임금을 관리자에게 넘겨주면 알아서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관리자가 임금 지급권한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것이었다. 근속이 오래된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상무에게 밉보이면 임금을 올려주지 않고 잘 보인 사람은 근속과 상관없이 더 많이 줬다. 노동자들도 관리자인 상무가 임금인상을 자의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격차가 심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투쟁이 시작되고 나서 조합비를 걷으려고 급여명세서를 모으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상무에게 물질적인 것을 제공하는 것은 노동자들 사이에 관행처럼 굳어 있었다. 직접 선물을 하거나 물건을 경비실에 맡겨뒀으니 찾아가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었다고 한다. 상무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려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예전에 공과 사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상무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관리자 냉장고에 양파즙을 언제나 꽉꽉 채워놓는 언니가 있었거든. 그 언니는 양파즙 값 월급에서 받아야겠다고 동료들 끼리 농담조로 얘기 하곤 했지. 그런데 한 두 번이 아니 길래 상무에게 따졌어요. 여러 동료들이 관리자들한테 선물하고 있는데 그게 임금에 반영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냐는 취지로 말이에요. 개인에게 고맙고 그러면 밖에 나가서 밥이라도 사주거나 하면서 감사의 표시를 하면 되지, 똑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차별해서 임금을 지급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랬어요. 입바른 소리하며 따졌더니 상무가 나한테 당신도 그렇게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그러는 거야. 노골적으로. 내가 이런 식으로 입바른 소릴 많이 했더니 내 월급은 너무 짜.”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출 조퇴 결근 없이 성실하게 일한 시간이 억울한 정도였다. 한 조합원은 A형 간염에 걸려서 3주 입원했더니 그해 임금이 2%만 올랐다고 한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몸도 제대로 못 추스르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는데도 그랬다. 반면 해외여행 간다고 며칠씩 휴가 낸 사람 중 임금이 7-8% 오른 동료도 있었다. 해외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면서 관리자에게 선물을 사다주었기 때문이다. 아파서 병원 가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자신에게 선물이 기대되는 해외여행은 반기는 관리자의 치졸함에 노동자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다른 사례들도 쏟아져 나왔다.
상무는 뇌물을 챙기는데 있어 노골적인 것뿐만 아니라 매우 주도면밀했다. 그리고 뇌물 요구에 응하지 않는 직원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면박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상무가 회사 직원들 가족관계나 인적사항을 아주 꿰고 있더라고요. 내가 입사할 때 남편이 휴대폰 대리점을 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 뒀다가 1년 뒤에 나한테 와서 느닷없이 휴대폰 바꿀 때가 된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하더라고요. 나한테 새 걸로 해달라는 거지.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내버려 뒀어요. 아부 떨고 그런 거 못하거든. 그랬더니 매사에 꼬투리를 잡아 갈구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거 가지고 트집 잡고. 보다 못한 주변 동료들이 핸드폰 그냥 해줬으면 욕도 안 먹고 급여도 올랐을 텐데 왜 버텼냐고 그러더라니까.”
이처럼 상무가 자의적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행태는 노동자들끼리 충성 경쟁을 하도록 만들고, 결국 내 임금이 오르면 다른 동료의 임금이 줄어드는 상황을 초래하게 했다. 노동자들은 정확하게 사태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건 결국 다른 동료 월급 뺏기랑 같은 거예요. 에어컨 없이 땀 뚝뚝 흘리면서 다 같이 고생하는데 다른 동료 돈을 더 뺏어 먹겠다고 아부 떨고 그렇게 하냐고.”
상무는 권력을 빌미로 뇌물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찝쩍대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번에 투쟁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상무를 고소하려 했는데, 피해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아서 별 수 없었다고 한다. 찝쩍댄 여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상무가 그러고 다니는 것을 다들 뻔히 아는 사실인데 물증이 없어서 성희롱으로 성립이 안 된다는 사실에 조합원들은 분해했다.

“얼굴이 반반하다 싶으면 찝쩍대는 거예요. 상무가 월급을 조절하는 권력도 있고 하니, 거기에 넘어가는 여자들도 있고. 신랑이 외국에 나가거나 출장을 장기간 간다 싶으면 찔러보고.”
직장 내 성폭력의 전형적인 사례다. 여성 노동자보다 직급이 높은 상사가 자신의 권한을 가지고 여성들에게 성적인 요구를 하고,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염려해 거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투쟁을 계기로 뇌물에서부터 성적인 요구까지 해온 관리자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와 더불어 관리자의 행태를 바로잡는 것이 노조의 중요한 요구라고 했다.


꼼수를 부리는 회사

6월부터 인도네시아의 K2 신발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5월 31일까지 명예퇴직을 받고 신발생산부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조합원들에게는 전환배치를 공고했다. 개성공단을 비롯하여 매장판매직 등으로 조합원들을 뿔뿔이 흩어놓는 배치 안이다. 그러나 노조는 사측의 전환배치 안을 거부하고 생산라인 일부 유지와 신발 A/S부서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5월 말에 파업에 돌입해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다. 회사의 전환배치 안을 거부한 이유를 물어봤다.

“일자리 제대로 마련해 놓고 전환배치 얘기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파업도 안 해요. 회사가 꼼수 부리는 거 뻔히 알고 있으니까 파업하는 거지. 회사는 우릴 밀어내려고만 하지 어디에다 앉힐 생각이 없는 거예요. 정리해고라고 하면 언론에 이미지 나빠지니까 전환배치라고 하긴 하는데 속셈은 다른 것이거든.”

사실 3월 8일에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해 저항하고 언론에서 관심을 갖자 말을 바꿨다. 정리해고가 아니라 전환배치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측이 제시안 전환배치 안은 가관이었다. 지방으로 전근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40-50대 노동자들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인도네시아로 가라는 내용이 담길 만큼 진정성이 없었다. 이에 노조는 회사가 전환배치라고 말만 바꿨을 뿐 사실상 정리해고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투쟁이 계속되면서 회사는 조합원들을 회유하며 흔들었고 포기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명예퇴직해서 위로금을 받고 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전환배치를 수용해 대기발령을 받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기발령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회사의 본심이 드러났다.

“회사 연락을 기다리다가 언제부터 일하냐고 물어보러 찾아갔대. 그러니까 회사에서 답답하면 개성공단이라도 가서 바람 쐬고 오라고 했다는 거야. 결국 그 사람이 사표 쓰고 나왔어요.”
애당초 일을 시킬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리다 지쳐서 나가줬으면 하는 회사의 태도를 보고, 결국 대기발령을 받은 노동자가 사표를 쓰고 나온 것이다.
회사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교섭에 나와서는 진전된 안을 제시하지 않고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투쟁이 길어지자 조합원들이 지쳐서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자꾸 떠나가면 회사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바라는 대로 될 거라고 생각할거에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쟁취하려면 단결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사람들이 자꾸 나가면 안타까워요.”
처음으로 만든 노동조합, 처음으로 회사와 벌이는 투쟁, 완강한 회사의 태도, 조합원들의 동요 등 쉽지 않은 조건이지만 K2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단결이라는 구호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노동조합 하면서 [ ]가 제일 속시원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투쟁을 지속하게 힘을 주는 속 시원한 기억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관리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컸던 만큼 상무에게 대항했을 때라고 답하는 조합원이 있었다.

“교섭할 때 어떤 개새끼 하나 때문에 월급 차이가 이렇게 날 수 있냐고 말하면서 임금 명세서를 집어 던진 적이 있어요. 그리고 용역이 우리 조합원 때려가지고 병원에 입원한 날 상무가 마침 현장에 나타나서 열나게 혼쭐을 내줬지. 왜 그러냐고 하길래 그럴만한 짓을 하니까 그러지라고 했어.”

지난달 조합원들과 회사에서 고용한 용역들 간에 충돌이 있었다. 조합원들은 매일 하던 대로 선전물을 가지고 공장에 들어서려는데 용역들이 막아서며 도발을 해 발생한 일이었다. 조합원들은 실신하거나, 발등이 으스러져 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갖은 횡포를 휘둘렀고, 이제는 생산부 폐지에 앞장서는 상무가 등장하자 노동자들의 분노가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조합원은 노동조합이 단결하면 사측과도 싸워볼만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을 때 속이 시원했다고 한다.

“강남역에서 행사 할 때 무대 위에 빨간 조끼 입고 올라서 항의했어요. 행사 진행이 안 되는 걸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까 통쾌하더라고요.”
K2는 4월에 강남역에서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아웃도어 상품 홍보 행사를 개최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 아래 숨겨진 추악한 정리해고 만행을 알리기 위해 현장에 찾아간 것이다. 결국 행사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예정 시간보다 지연되었고 조합원 중 한 분은 무대 위에 조끼입고 머리띠 두르고 올라가 노래도 한 곡 시원하게 불렀다고 한다.
시민들이 K2 투쟁의 정당성에 대해서 수긍하고 지지할 때에도 힘이 난다고 했다. K2조합원들은 일상적으로 서울 각지의 매장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각자 살기에 바쁜 시민들이 관심을 잘 가져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자기가 노동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부당한 일에 힘 좀 써달라고 부탁해 보겠다면서 명함도 주고 갔어요. 홈페이지 있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회사를 욕하더라니까요.”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마지막으로 『사회운동』독자들에게 보내는 말씀을 부탁드렸다.

“한일병원 노동자들은 10명이고, 용역직인데도 그렇게 싸워서 이겼잖아요. 어떤 데는 회사가 망해서 없어도 투쟁하고, 교섭 대상이 없어도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처럼 잘 나가는 회사랑 싸우는 게 뭐가 힘드냐 싶기도 해요. 포기하지 말고 똘똘 뭉쳐서 끝까지 싸울게요.”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많은 연대 단위들이 K2 투쟁현장을 찾아왔고, 우리도 밖으로 나가 연대투쟁을 하게됐어요. 그 전까지는 몰랐었는데, 우리처럼 싸우고 있는 노동자가 정말 많더라구. 광화문이고 서울역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넘쳐나. 다 같이 연대투쟁해야지.”

“오늘 집회에서 우리랑 연대투쟁하러 온 노동자랑 똑같이 빨간 조끼 입고 집회 하니까 전부 우리 식구처럼 보이고 많아 보이잖아. 그래서 나갔던 동료들이 다시 돌아 온 것 같아서 흐뭇했어요. 함께 연대합시다.”

“투쟁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지 직접 해본 적은 없어서 몰랐는데, 정리해고 당하고 탄압받고 하니까 힘들고 속상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즐기면서 투쟁해야 길게 가겠다 싶더라고. 내 마음이 힘들면 우울증도 오게 생겼어요. 교회가면 외톨이가 된 거 같아요. 교회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는데 내가 일일이 얘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니까 내 자신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웃으면서 즐겁게 투쟁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곁에서 맞장구치던 동료 조합원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교육에서 들었다는 구호로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해주신 K2코리아 지회 최영애, 김은희, 김선자, 마은아, 방진주 조합원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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