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및 고용정책' 비판
들어가며
이 글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개량주의적인 임금, 고용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에 있어 '개량'과 관련된 계급투쟁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개량의 한계를 밝히기 위함이다.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보고서는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하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본인은 민주노총의 보고서를 둘러싸고 있는 노자간의 계급투쟁, 즉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라는 계급정세를 명확히 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공세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대해 가하는 무차별적 공격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무장한 자본가계급은 2차대전 후 계급타협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내에서 확장된 국가의 경제개입을 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개입이 사적 경제의 효율성을 낮추므로 기업활동에 대한 탈규제와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의 축소, 공기업의 사유화, 제 3세계의 경제적 개방 및 자유화를 요구하게 된다. 아울러, 개인적 욕구들과 사적 책임에 기초하는 시장경쟁적 관계를 모든 사회생활의 조직원리로 상승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즉 '작지만 강력한 정부', '사회보장지출의 축소', '탈규제와 공기업 사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사적 소유와 시장경쟁원리를 강조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은 노조탄압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대노동정책과 공기업 혁신과 사유화로 대표되는 공공부문 정책으로 나타난다.
본인은 한국사회에서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적 정세를 염두에 두면서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고용정책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일단 우리는 1987년 이후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이 점차 개량주의 노선과 계급대립주의 노선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판단해보기에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는 그냥 발족된 것이 아니라, 1990년 초부터 잠재화된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내에서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을 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1990년 전노협 결성을 통해 전국적 조직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본가계급과 국가의 총체적인 공격에 대해 전투적으로 대응함으로서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계급성을 보존하여 왔다. 그러나 동시에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의 성장과정은 전노대 결성 이후 업종회의 및 대기업 노조의 참여과정을 통해, 계급협조주의와 노조관료주의적 경향을 지니는 개량주의 노동운동노선의 개입을 동반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개량주의적 노동운동세력들은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결성과정에서, 기존의 계급대립주의적 세력들과 대립하며 노동운동이 취해야 할 이념 및 조직방식을 둘러싸고 지속적 갈등을 유발하였던 것이다. 또한 개량주의적 노동운동세력은 1996년에 들어 민주노총 1기 집행부를 장악하여, 1997년에 자생적으로 발생된 노동대중들의 총파업 투쟁을 노사정위원회의 참여 및 자본과의 양보교섭으로 교란하였다. 또한 1997년 대통령 선거과정과 2000년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사민주의적 정당을 창당함으로서 자신의계급 협조적 성격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전체적 틀 내에는 개량주의적 경향과 계급주의적 경향이 대립·공존하고 있으며, 노동자정당과 민주노총의 역할 그리고 산별노조 건설방식에 대한 양 세력들간의 대립과정은 단사수준의 작업장 투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내의 노선분화 및 각 세력간의 계급투쟁 속에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개량주의적 '전략보고서'가 정확히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및 고용정책이 토대하고 있는 개량주의적 측면을 논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서술순서를 취하겠다.
첫째, 개량주의노선과 계급대립주의노선은 자본주의 체제내의 '개량'투쟁의 위상을 어떻게 차별적으로 바라보는가를 원론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각 노선에서 노동운동의 이념, 대자본가계급에 대한 정책, 노동조합의 조직방식의 차이를 살펴보겠다.
둘째, 앞서 살펴본 노동운동론에 입각하여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임금정책과 고용정책의 개량주의적 측면을 분석해보겠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개량투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정책대안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개량투쟁에 관련된 안건들이다. 따라서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개량이라는 영역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계급투쟁이 이루어지는 장(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우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개량'투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자본가는 절대 자선가가 아니다. 개량은 항상 자본가계급에 의해 자발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요구투쟁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자본간의 경쟁체계는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들에게 단지 정상이윤만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초과이윤을 착취하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초과착취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점점 악화될 뿐이다. 즉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개량'을 위한 투쟁은 상태를 더 높은 단계로 개선하기 위해서이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가계급의 '개량' 조치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노동자계급 및 민중투쟁의 성과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축적체제는 자본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절대적 궁핍화를 경향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 자체의 철폐를 중심으로 투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개량투쟁을 통해 달성된 노동자 상태의 개선은 자본의 공격에 의해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다.
반면에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개량'투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혁명의 가능성을 저지하기 위해 개량을 이용한다. 개량적 조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의해 자본가계급(또는국가)에게 강요되지만, 결국 그 실행자가 자본가계급인 이상, 개량은 자본주의 틀내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이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개량이 아니라 혁명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초기에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투쟁(부분적 요구투쟁)에서 출발한다. 이때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투쟁을 임시방편적인 경제투쟁에 국한하여 불안정한 개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임노동관계의 착취적 본질을 노동자 대중에게 알려내고 이를 국가권력의 쟁취라는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에 있어 노동자의 '혁명을 위한 투쟁'을 '개량을 위한 투쟁'으로 대체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재생산의 가장 중요한 계급투쟁 영역인 것이다.
앞서 살펴본 '개량'을 둘러싼 계급투쟁상황에서 노동운동노선내에서는 맑스주의적 노동운동노선과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으로 나뉘어진다. 여기서 각 노선의 결정적인 차이는 '개량'투쟁의 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개량주의 노동운동노선은 개량의 점진적인 집적을 통해 노동자들이 착취와 예속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본다.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에게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교섭권리 및 제도를 요구하게 되며, 나아가 이를 노동대중에 강제할 관료주의적 노조조직을 설계하게 된다. 반면에 맑스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은 자본주의 틀내에서 개량이 아무리 이루어진다해도 착취관계 자체는 폐절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노동자의 궁극적 해방을 위해서는 열려진 '개량'투쟁의 공간 내에서 노동대중에게 개량주의의 한계성을 폭로하고, 나아가 임노동관계 자체를 폐지하기 위한 정치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차별적인 노동운동노선의 이념은 이를 실현시킬 1. 자본가 계급과의 관계(교섭정책과 교섭방식)와 2. 노동조합내의 조합간부와 조합원간의 관계(조직방식과 활동방식)에 상이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첫째, 개량주의 노선에게 나타나는 노동운동의 목적은 1. 자본주의 체제의 '게임의 룰'을 인정한 상태에서 노동자의 지위향상을 추구하여 사실상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2. 단체협상제도 및 노사정 합의제도 자체만의 존속을 강조하여 이에 참여하는 노동조합 간부의 '책임성 있는' 역할을 중시하고 결국 노동대중의 요구를 자본주의 체제내로 통제한다는 점으로 집중된다.
그들은 계급협조적 목적에 근거하여 노동조합의 조직 및 활동방식을 관료제적 조직방식, 노조간부의 협상을 위한 전문가주의와 정책주의, 그리고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협상내용을 받아들이도록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쉽을 주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보기에 노동대중의 자발적인 파업행동은 단기적, 분파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전문적이고 정책지향적인 노조간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조합의 비용-효익을 파악하여 가장 효율적인 타협대안을 적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 경제의 영역에서 노자간의 이익대립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운동의 목적이 계급협조적 개량주의일 경우, 노조 간부의 권력원천은 평조합원의 집합적이고 자발적 활동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 원천은 결국 자본과의 우호적인 교섭관계와 이를 담지할 수 있는 노조간부의 전문가적 관료주의성, 그리고 관료주으적 산별노조조직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반면에 계급대립적인 맑스주의 노동운동노선에서는 이념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철폐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집중적 조직 및 참여적 운영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계급대립적 운동노선에서는 개량주의적 노선이 중시하는 단체교섭제도 및 사회적 합의제도가 노동자의 실제적 이익을 궁극적으로 실현시킬 수 없는 제도라고 본다. 왜냐하면 자본 및 국가는 이러한 협상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조직화된 전투성을 체제내로 흡수하여 자본주의의 착취적 사회관계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기에, 노조조직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진정한 힘은 조합간부의 전문가적 리더쉽속성과 정교한 단체협상제도 그리고 산별노조조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작업현장에서 분출하는 평조합원의 일상적 투쟁을 기반으로 한 정치투쟁에서 나오며, 노동운동의 간부는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행사할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노선은 그 급진적인 노동운동의 목적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를 뛰어넘는 평조합원의 광범위한 요구를 정식화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동대중의 급진적 의식과 적극적 참여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급진주의적 노동운동의 목적은 민주집중제와의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 즉, 노조정책의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 평조합원으로 하여금 능동적이고 집합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노조민주주의의 확장은 노동운동의 급진적 목적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노조간부의 전문적 협상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즉, 조합원 자신의 집합적 투쟁을 통해 요구를 관철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집합적 이익과 관점이 명확해지며 요구의 수준이 더욱 높은 단계로 높여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앞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운동의 이념과 조직방식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긴밀한 영향관계에 있다. 나아가 이는 노동운동의 중요한 성과물인 노동운동조직의 확대발전과 노동자의 실질적 이익증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민주노총 전략발전위원회의 임금, 고용정책에 대한 비판
1) 임금정책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가 제출한 임금정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1.임금수준과 2. 임금체계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가계급은 대개 임금수준의 결정에 있어, 노동자계급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정도보다 더 적게 주려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에게 그 사회의 평균적인 노동력 재생산비보다 적게 임금을 줌으로써 초과이윤을 획득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투쟁을 통해 임금과 괴리된 노동력 재생산비까지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임노동관계를 폐절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자본가계급은 임금체계의 구성에 있어서, 성과에 근거한 임금체계를 선호하여 개별노동자들을 분할하고 경쟁시키며 그 결과 개별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고도화시키고자 한다. 반면에 노동자계급은 평등주의적 임금체계를 선호함으로서 노동자간의 단결을 촉진시켜 투쟁의 힘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임금정책은 1. 신자유주의 시기에 임금투쟁 및 임노동관계 철폐보다는 임금교섭제도만을 중시한다는 점, 2. 따라서 자본과의 교섭파트너로 인정받기 위해 임금수준 및 임금체계를 양보교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간의 분할'이라는 커다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임금정책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98년도 금속연맹내의 개량주의 노동운동노선이 제출한 '산별단일교섭을 위한 임금체계협약안'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당시에 제출된 임금체계안의 골격은 "생활급(최저생계비)+직무급(숙련과 연결하여 승진체계에 반영)+능률급(생산성과 기업별 부가가치)"이었다. 이러한 임금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자본가 계급이 그토록 원했던 '능력주의적 임금체계'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말만 다르지, 금속연맹의 대안은 사실 자본가계급이 제출한 능력주의적 임금체계대안인 "생활급+직능급+성과연동적 보너스"와 동일한 것이다.
한국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영합리화 전략을 통해, 전투적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저지하고자 했으며 이 전략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능력주의적 임금체계(인사고과를 통한 사이비능력급화와 평가를 통한 노동자경쟁적 집단성과급)였다. 당시 임금체계의 능력주의적 개편을 통해 자본가가 노리는 바는, 기업 전체총노무비의 삭감과 노동자간의 경쟁강화를 통해 노조의 집단교섭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본가계급은 비능률과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서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팀제를 도입하여 의사결정단계를 축소하고 팀장을 중심으로 한 현장통제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적은 수의 노동자에게 단순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시키기 위해 사이비다기능화와 임의적 배치전환을 시도하였다.
또한 인사제도상의 측면에서 자본은 능력과 업적에 따른 신인사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팀간 경쟁과 팀의 책임을 확립하고,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노동자의 자본축적 능력을 스스로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결국 당시 금속연맹의 임금체계안은 자본가계급이 원하던 성과-능력-인사고과-임금-승진간의 연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노동자적 이유로 인해 금속연맹의 임금체계안은 초기부터 현장노동자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노동대중의 힘으로 수면 밑에 가라앉은 것이다.
그러나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은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그들의 안은 이번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다시 재생하여 '숙련지향적 임금체계'라는 새로운 버젼으로 탄생한 것이다. 우선 그들은 현장노동자의 저항을 고려하여 '금속연맹안'에서의 실태생계비 수준에 비해 신생계비에 기초한 생활급의 대폭적 상승을 시도했으며 말도 많던 '능률급'은 뺐다. 하지만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은 자신의 계급협조주의적 신념에 투철하기 때문에, 양보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숙련에 기반한 직무급'은 이번에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첫째, '신생계비'에 근거한 임금수준정책을 평가해보자.
-● 제출내용: 민주노총에서는 단순한 물량적 소비를 넘어 주거, 환경, 노동내용, 가족건강, 사회의 공정성, 취미, 안전 등을 감안하여 노동자가족 생활전반에 걸친 영역을 포괄하는 '신생계비'라는 노동력 재생산비 개념에 근거하여 제출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우선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이 확립되어야 하며 산별노조별로 '신생계비'에 근거한 임금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 ●평가 및 비판: 노동자적 관점에서 임금수준정책에 개입할 때 가장 중요한 지침은 투쟁을 통한 실질임금의 대폭적 상승이다. 그래도 자본은 정상이윤을 챙긴다. '신생계비'개념은 노동력 재생산비 개념을 사용함으로서, 금속연맹안에서 보였던 경총의 실태생계비를 그대로 모방한 과오를 극복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제출한 임금수준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신생계비'에 근거한 임금수준의 상승을 가능케하는 수단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실천적 비약을 거쳐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제도만으로 집중한다는 점이다. 앞서 논했듯이 신자유주의적 정세내에서 노동력 재생산비로의 임금수준의 결정은 치열한 계급투쟁의 현장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투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임금상승은 자본가와의 산별교섭제도와 이를 위한 산별조직형태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의 상층간부와 이데올로그들에게는 개량투쟁을 통한 노동자의 실질적 개선, 나아가 이를 위한 투쟁의 조직화보다는 '개량'을 위한 자본가와의 안정적인 교섭기구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반면에 계급대립적 노동운동노선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자본가들은 오히려 임금수준을 낮추어야 할 자본간의 경쟁압력하에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경향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단결을 통한 힘의 집중, 그리고 노동대중에 대한 궁극적 대안의 설득을 필요로 하며 전술적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교섭 및 조직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숙련지향적 임금체계 정책을 평가해 보자.
-●제출내용: 일단 민주노총에서는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의 필요성을 청년노동자의 숙련과 승진에 대한 욕구로부터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대안적 임금체계로 진정한 노동력 가치를 반영하는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에 대한 적극적 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숙련적 임금체계의 정의는 '교육훈련을 통해 노동자의 숙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그것을 임금과 승진체계에 연계하는 임금체계'라고 한다. 이러한 숙련과 임금승진체계간의 연계는 숙련에 대한 노자간의 객관적 평가, 즉 인사고과에 최종적으로 연동된다. 민주노총은 현장노동자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현장통제의 핵심기제인 인사고과를 부활시키기 위해 절충해 들어간다.
즉 민주노총은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의 구성을 위해, 노동조합이 자본과 더불어 숙련형성과정과 평가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염두하는 이러한 개입공간은 개별기업 수준이 아니라 산업수준에서의 노·자·정 3자로 구성된 '교육훈련위원회'이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교육훈련위원회'에 참가하여 자본과 양보교섭하면서 노동자들을 교육훈련시키며 자격증을 주는 것이고, 이 자격증에 근거하여 사회전체수준에서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의 구성을 꿈꾸는 것이다.
- ●평가 및 비판: 노동자적 관점에서 임금체계에 개입할 때 가장 중요한 지침은 투쟁의 대오를 통일·확대시키기 위해 임금격차를 최소로 하는 것이다. 이번 민주노총이 제시한 '숙련지향적' 임금체계는 유달리 청년노동자의 승진 및 숙련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이는 자본이 1990년 초에 능력주의적 인사관리제도를 도입하면서 투쟁대오에서 청년노동자들을 분할하기 위해 써먹던 논법이다. 하지만 당시 청년노동자들은 선배노동자와의 통일투쟁을 위해, 그리고 자신도 나이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연공급이라는 임금체계요구로 단일화되었다. 당시 자본가계급은 '숙련향상'이라는 스스로 지키지 못할 미끼로(왜냐하면 탈숙련화는 자본에 중요한 통제방식임) 노동자 분할통치적 능력주의 인사관리제도를 도입하였다.
실제로 벌어진 것은 다음과 같다.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에게 '숙련'을 주는 것은 자본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에게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통제를 위해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으로 노동자들을 탈숙련화했던 것이다. 즉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포섭하기 위해 설사 임금은 양보하더라도, 절대로 노동자에게 숙련이라는 노동과정 통제권(이는 경영권이라 표현됨)을 양보하지 않는다. 노동운동내에서 '숙련'이 최초로 화두가 된 것은 1980년대를 풍미한 유연화논쟁과 일본식 생산방식에 대한 논쟁이었다. 당시 개량주의적 노동과정론자들은 극소전자혁명으로 인한 '탈포드주의'하에서 노동자의 '재숙련화'를 통해 사이비노동해방을 주장하고 노동자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교란시켰다.
자본이 극소전자혁명을 이용하는 방식은 초테일러리즘인 일본식 생산방식으로 귀결되었다. 상황이 이럴진데 민주노총은 왜 '숙련'이라는 화두를 재차 던진 것일까? 그 이유는 민주노총이 '숙련을 통한 노동자의 인간화'보다는 오히려 사회전체수준에서의 노사정 '교육훈련위원회'라는 제도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기에 '교육훈련위원회'에 참석한 노조간부는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노동자 분할적인 '인사고과에 의한 숙련단계결정'를 양보교섭하고 이를 관료주의적 산별조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노동자적 관점에서의 임금체계는 대폭적인 임금수준 상승을 기본으로 하여 노동자간의 임금차이를 축소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간의 단결투쟁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주의적 임금체계 및 진정한 숙련화 또한 결국 첨예한 계급투쟁의 사안이다.
2) 고용정책
- ●제출내용: 민주노총은 현재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일방적'이라 비판하며 "사회통합적이고 고용유지적이며 민주적 구조개혁정책"(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의 차이는 무엇일까?)으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나아가 구조개혁의 진정한 의의는 경영합리화,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서비스 질 향상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정책 논리와 마찬가지로, 고용정책에서도 민주적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노사정 사회적 협의의 장(합의의 장도 아닌)을 추천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현재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자본가계급의 공격내용은 인정한 것이다. 다만 공격방식인 절차상의 문제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이후 정리해고문제, 비정규직문제, 노동시간문제, 실업문제를 바라보는데 있어 개량주의를 토대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다.
첫째, 민주노총은 현재의 정리해고제를 인정하고 있다. 단지 정리해고를 진행함에 있어서 법률상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고제한법을 제정하여 정리해고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해고회피노력에 대한 구체적 기준으로 정리해고에 앞서 경영합리화, 인력재배치, 근로시간 단축, 교육훈련 등을 인정함으로써 개별자본가의 현장통제강화전략을 열어놓고 있다. 이 또한 이미 자본가계급이 정리해고법안 통과 이전에 해왔던 방식이다.
둘째, 민주노총은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싸고 자본가계급과의 양보교섭을 허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 특별법의 제정을 제안하면서 그 속에 '노동시간 단축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조치의 규정', '노사협약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시 조세, 금융, 사회보험 상의 특별지원',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교육, 훈련, 여가시설에 대한 지원', '노동시간 단축을 지원하는 민간단체,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등에 대한 지원조치'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같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만약 노동자계급의 실질적인 투쟁이 담보되지 못하고 상층교섭중심으로 귀결되면, 자본가 계급은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계급투쟁의 장에서 '노동시간의 유연화'라는 성과물 뿐만 아니라 '노동대중의 세금을 통한 지원'이라는 성과물까지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세째, 민주노총은 자본주의 경제의 주기적인 경기변동으로 인해 실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강력한 거시경제정책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내수진작을 위해 금융, 재정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거시경제 운용을 통해 실물경제를 진작하고 고용창출을 도모하며 중기적으로는 재정건전화와 금융부문 개혁을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를 유도하여야 함"으로 규정되고 있다. 즉 민주노총은 실업의 문제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활성화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은 '사회적 안전망 완비',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사업 전개', '적극적 고용창출 정책 실시', '실업대책에 노동조합 참여' 등의 정책사업을 하도록 제안되고 있다. 특히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사업'은 앞서 살펴본 임금체계정책에서의 교육훈련위원회와 깊숙히 연계된다.
이제는 알았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본연의 역할을 버리고 자본가계급을 대신해서 정규직과 실업자의 '교육, 훈련'을 담당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경기회복과 산업, 기업의 건전화에 따른 고용창출에 있음을 감안하여 이를 위한 경제정책을 추진하여야 할 것임"을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이다.
- ●평가 및 비판: 민주노총의 고용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사회통합적이고 고용유지적이며 민주적인 구조개혁정책으로 전환"이라는 번드르르한 말을 할지라도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와 실업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투쟁의 성격을 자본주의 체제내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강고한 현장노동자의 투쟁 없이 단지 노조간부와 자본가 계급간의 상층교섭 테이블의 안건으로만 올려지게 되면, 결국 '사회통합적 구조개혁'은 자본측의 전리품이 될 수밖에 없게 되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노동자계급이 자본에 지속적으로 얽매이게 되는 이중의 통제구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적 관점에서의 고용정책은 노동자 대중투쟁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정리해고와 변형노동시간 무력화, 비정규직 철폐, 관련 법제도 철폐라는 요구로 집중되어 야 한다.
마치며
앞서 본인이 제기, 비판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자관계는 구조적 적대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결국 투쟁이 없다면 노동자의 상태는 절대적 궁핍화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특히 자본가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심화될 때 노동조합이 국가 및 자본가에 대해 계급대립적 이념을 지닐수록, 장기적 측면에서 노동자의 실제적인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이러한 계급대립적 이념은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간 관계에 있어 민주주의의 실질적 측면을 강화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 경영진과 노동자간의 대립관계에서 노동자의 유일한 권력 원천은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간의 조직적 유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적 정세하에서 노동조합이 개량주의적 이념하에 국가와 경영진에 대해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노동자의 조직적 도전정도는 하락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가 및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핵심은,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기제의 구축이며 이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노동자의 조직적 도전정도는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개량주의적 노동조합 간부는 자신의 권력원천을 국가와 경영진으로부터 찾고, 조합원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으로 대하여 조합원의 실제적 요구를 억압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 하에서 본인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및 고용정책'의 개량주의적 성격을 분석,비판하였다. 본 글에서는 본인의 능력와 지면의 한계상 '산별노조조직정책'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서 약술한 이념-정책-조직간의 연관성을 토대로 분석해 본다면, 개량주의적 임금과 고용정책은 반드시 '관료주의적 산별노조조직 건설안'으로 귀결되어 노동자의 자생적 투쟁을 억압하게 되는 조직형식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조직발전안'이 투쟁기조와 노선 차원에서 접근되지 않고, 단지 실무적인 관점에서 몇몇 제도와 형식을 보완하는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는 바에서 나타나고 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지금같은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국내외 자본가계급의 권력이 집중된 국가기구로 대정부 투쟁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전체적인 모순적 구조들에 문제제기하며 전체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를 가능케하는 이념과 정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점인 저항조직의 구성을 사고해야 한다. 따라서 조직발전에서 담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은 '현장의 요구와 분노를 조직적으로 대변하고, 투쟁으로 조직하는 민주노총의 상 확립'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한 전국적 전산업적 투쟁의 구심으로서의 민주노총 강화'이다.
이 글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개량주의적인 임금, 고용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에 있어 '개량'과 관련된 계급투쟁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개량의 한계를 밝히기 위함이다.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보고서는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하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본인은 민주노총의 보고서를 둘러싸고 있는 노자간의 계급투쟁, 즉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라는 계급정세를 명확히 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공세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대해 가하는 무차별적 공격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무장한 자본가계급은 2차대전 후 계급타협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내에서 확장된 국가의 경제개입을 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개입이 사적 경제의 효율성을 낮추므로 기업활동에 대한 탈규제와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의 축소, 공기업의 사유화, 제 3세계의 경제적 개방 및 자유화를 요구하게 된다. 아울러, 개인적 욕구들과 사적 책임에 기초하는 시장경쟁적 관계를 모든 사회생활의 조직원리로 상승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즉 '작지만 강력한 정부', '사회보장지출의 축소', '탈규제와 공기업 사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사적 소유와 시장경쟁원리를 강조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은 노조탄압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대노동정책과 공기업 혁신과 사유화로 대표되는 공공부문 정책으로 나타난다.
본인은 한국사회에서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적 정세를 염두에 두면서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고용정책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일단 우리는 1987년 이후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이 점차 개량주의 노선과 계급대립주의 노선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판단해보기에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는 그냥 발족된 것이 아니라, 1990년 초부터 잠재화된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내에서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을 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1990년 전노협 결성을 통해 전국적 조직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본가계급과 국가의 총체적인 공격에 대해 전투적으로 대응함으로서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계급성을 보존하여 왔다. 그러나 동시에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의 성장과정은 전노대 결성 이후 업종회의 및 대기업 노조의 참여과정을 통해, 계급협조주의와 노조관료주의적 경향을 지니는 개량주의 노동운동노선의 개입을 동반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개량주의적 노동운동세력들은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결성과정에서, 기존의 계급대립주의적 세력들과 대립하며 노동운동이 취해야 할 이념 및 조직방식을 둘러싸고 지속적 갈등을 유발하였던 것이다. 또한 개량주의적 노동운동세력은 1996년에 들어 민주노총 1기 집행부를 장악하여, 1997년에 자생적으로 발생된 노동대중들의 총파업 투쟁을 노사정위원회의 참여 및 자본과의 양보교섭으로 교란하였다. 또한 1997년 대통령 선거과정과 2000년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사민주의적 정당을 창당함으로서 자신의계급 협조적 성격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전체적 틀 내에는 개량주의적 경향과 계급주의적 경향이 대립·공존하고 있으며, 노동자정당과 민주노총의 역할 그리고 산별노조 건설방식에 대한 양 세력들간의 대립과정은 단사수준의 작업장 투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내의 노선분화 및 각 세력간의 계급투쟁 속에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개량주의적 '전략보고서'가 정확히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및 고용정책이 토대하고 있는 개량주의적 측면을 논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서술순서를 취하겠다.
첫째, 개량주의노선과 계급대립주의노선은 자본주의 체제내의 '개량'투쟁의 위상을 어떻게 차별적으로 바라보는가를 원론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각 노선에서 노동운동의 이념, 대자본가계급에 대한 정책, 노동조합의 조직방식의 차이를 살펴보겠다.
둘째, 앞서 살펴본 노동운동론에 입각하여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임금정책과 고용정책의 개량주의적 측면을 분석해보겠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개량투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정책대안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개량투쟁에 관련된 안건들이다. 따라서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개량이라는 영역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계급투쟁이 이루어지는 장(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우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개량'투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자본가는 절대 자선가가 아니다. 개량은 항상 자본가계급에 의해 자발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요구투쟁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자본간의 경쟁체계는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들에게 단지 정상이윤만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초과이윤을 착취하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초과착취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점점 악화될 뿐이다. 즉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개량'을 위한 투쟁은 상태를 더 높은 단계로 개선하기 위해서이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가계급의 '개량' 조치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노동자계급 및 민중투쟁의 성과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축적체제는 자본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절대적 궁핍화를 경향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 자체의 철폐를 중심으로 투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개량투쟁을 통해 달성된 노동자 상태의 개선은 자본의 공격에 의해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다.
반면에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개량'투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혁명의 가능성을 저지하기 위해 개량을 이용한다. 개량적 조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의해 자본가계급(또는국가)에게 강요되지만, 결국 그 실행자가 자본가계급인 이상, 개량은 자본주의 틀내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이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개량이 아니라 혁명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초기에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투쟁(부분적 요구투쟁)에서 출발한다. 이때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투쟁을 임시방편적인 경제투쟁에 국한하여 불안정한 개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임노동관계의 착취적 본질을 노동자 대중에게 알려내고 이를 국가권력의 쟁취라는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에 있어 노동자의 '혁명을 위한 투쟁'을 '개량을 위한 투쟁'으로 대체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재생산의 가장 중요한 계급투쟁 영역인 것이다.
앞서 살펴본 '개량'을 둘러싼 계급투쟁상황에서 노동운동노선내에서는 맑스주의적 노동운동노선과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으로 나뉘어진다. 여기서 각 노선의 결정적인 차이는 '개량'투쟁의 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개량주의 노동운동노선은 개량의 점진적인 집적을 통해 노동자들이 착취와 예속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본다.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에게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교섭권리 및 제도를 요구하게 되며, 나아가 이를 노동대중에 강제할 관료주의적 노조조직을 설계하게 된다. 반면에 맑스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은 자본주의 틀내에서 개량이 아무리 이루어진다해도 착취관계 자체는 폐절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노동자의 궁극적 해방을 위해서는 열려진 '개량'투쟁의 공간 내에서 노동대중에게 개량주의의 한계성을 폭로하고, 나아가 임노동관계 자체를 폐지하기 위한 정치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차별적인 노동운동노선의 이념은 이를 실현시킬 1. 자본가 계급과의 관계(교섭정책과 교섭방식)와 2. 노동조합내의 조합간부와 조합원간의 관계(조직방식과 활동방식)에 상이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첫째, 개량주의 노선에게 나타나는 노동운동의 목적은 1. 자본주의 체제의 '게임의 룰'을 인정한 상태에서 노동자의 지위향상을 추구하여 사실상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2. 단체협상제도 및 노사정 합의제도 자체만의 존속을 강조하여 이에 참여하는 노동조합 간부의 '책임성 있는' 역할을 중시하고 결국 노동대중의 요구를 자본주의 체제내로 통제한다는 점으로 집중된다.
그들은 계급협조적 목적에 근거하여 노동조합의 조직 및 활동방식을 관료제적 조직방식, 노조간부의 협상을 위한 전문가주의와 정책주의, 그리고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협상내용을 받아들이도록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쉽을 주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보기에 노동대중의 자발적인 파업행동은 단기적, 분파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전문적이고 정책지향적인 노조간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조합의 비용-효익을 파악하여 가장 효율적인 타협대안을 적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 경제의 영역에서 노자간의 이익대립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운동의 목적이 계급협조적 개량주의일 경우, 노조 간부의 권력원천은 평조합원의 집합적이고 자발적 활동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 원천은 결국 자본과의 우호적인 교섭관계와 이를 담지할 수 있는 노조간부의 전문가적 관료주의성, 그리고 관료주으적 산별노조조직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반면에 계급대립적인 맑스주의 노동운동노선에서는 이념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철폐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집중적 조직 및 참여적 운영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계급대립적 운동노선에서는 개량주의적 노선이 중시하는 단체교섭제도 및 사회적 합의제도가 노동자의 실제적 이익을 궁극적으로 실현시킬 수 없는 제도라고 본다. 왜냐하면 자본 및 국가는 이러한 협상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조직화된 전투성을 체제내로 흡수하여 자본주의의 착취적 사회관계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기에, 노조조직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진정한 힘은 조합간부의 전문가적 리더쉽속성과 정교한 단체협상제도 그리고 산별노조조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작업현장에서 분출하는 평조합원의 일상적 투쟁을 기반으로 한 정치투쟁에서 나오며, 노동운동의 간부는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행사할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노선은 그 급진적인 노동운동의 목적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를 뛰어넘는 평조합원의 광범위한 요구를 정식화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동대중의 급진적 의식과 적극적 참여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급진주의적 노동운동의 목적은 민주집중제와의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 즉, 노조정책의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 평조합원으로 하여금 능동적이고 집합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노조민주주의의 확장은 노동운동의 급진적 목적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노조간부의 전문적 협상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즉, 조합원 자신의 집합적 투쟁을 통해 요구를 관철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집합적 이익과 관점이 명확해지며 요구의 수준이 더욱 높은 단계로 높여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앞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운동의 이념과 조직방식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긴밀한 영향관계에 있다. 나아가 이는 노동운동의 중요한 성과물인 노동운동조직의 확대발전과 노동자의 실질적 이익증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민주노총 전략발전위원회의 임금, 고용정책에 대한 비판
1) 임금정책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가 제출한 임금정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1.임금수준과 2. 임금체계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가계급은 대개 임금수준의 결정에 있어, 노동자계급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정도보다 더 적게 주려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에게 그 사회의 평균적인 노동력 재생산비보다 적게 임금을 줌으로써 초과이윤을 획득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투쟁을 통해 임금과 괴리된 노동력 재생산비까지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임노동관계를 폐절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자본가계급은 임금체계의 구성에 있어서, 성과에 근거한 임금체계를 선호하여 개별노동자들을 분할하고 경쟁시키며 그 결과 개별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고도화시키고자 한다. 반면에 노동자계급은 평등주의적 임금체계를 선호함으로서 노동자간의 단결을 촉진시켜 투쟁의 힘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임금정책은 1. 신자유주의 시기에 임금투쟁 및 임노동관계 철폐보다는 임금교섭제도만을 중시한다는 점, 2. 따라서 자본과의 교섭파트너로 인정받기 위해 임금수준 및 임금체계를 양보교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간의 분할'이라는 커다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제출한 임금정책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98년도 금속연맹내의 개량주의 노동운동노선이 제출한 '산별단일교섭을 위한 임금체계협약안'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당시에 제출된 임금체계안의 골격은 "생활급(최저생계비)+직무급(숙련과 연결하여 승진체계에 반영)+능률급(생산성과 기업별 부가가치)"이었다. 이러한 임금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자본가 계급이 그토록 원했던 '능력주의적 임금체계'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말만 다르지, 금속연맹의 대안은 사실 자본가계급이 제출한 능력주의적 임금체계대안인 "생활급+직능급+성과연동적 보너스"와 동일한 것이다.
한국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영합리화 전략을 통해, 전투적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저지하고자 했으며 이 전략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능력주의적 임금체계(인사고과를 통한 사이비능력급화와 평가를 통한 노동자경쟁적 집단성과급)였다. 당시 임금체계의 능력주의적 개편을 통해 자본가가 노리는 바는, 기업 전체총노무비의 삭감과 노동자간의 경쟁강화를 통해 노조의 집단교섭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본가계급은 비능률과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서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팀제를 도입하여 의사결정단계를 축소하고 팀장을 중심으로 한 현장통제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적은 수의 노동자에게 단순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시키기 위해 사이비다기능화와 임의적 배치전환을 시도하였다.
또한 인사제도상의 측면에서 자본은 능력과 업적에 따른 신인사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팀간 경쟁과 팀의 책임을 확립하고,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노동자의 자본축적 능력을 스스로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결국 당시 금속연맹의 임금체계안은 자본가계급이 원하던 성과-능력-인사고과-임금-승진간의 연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노동자적 이유로 인해 금속연맹의 임금체계안은 초기부터 현장노동자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노동대중의 힘으로 수면 밑에 가라앉은 것이다.
그러나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은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그들의 안은 이번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에서 다시 재생하여 '숙련지향적 임금체계'라는 새로운 버젼으로 탄생한 것이다. 우선 그들은 현장노동자의 저항을 고려하여 '금속연맹안'에서의 실태생계비 수준에 비해 신생계비에 기초한 생활급의 대폭적 상승을 시도했으며 말도 많던 '능률급'은 뺐다. 하지만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은 자신의 계급협조주의적 신념에 투철하기 때문에, 양보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숙련에 기반한 직무급'은 이번에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첫째, '신생계비'에 근거한 임금수준정책을 평가해보자.
-● 제출내용: 민주노총에서는 단순한 물량적 소비를 넘어 주거, 환경, 노동내용, 가족건강, 사회의 공정성, 취미, 안전 등을 감안하여 노동자가족 생활전반에 걸친 영역을 포괄하는 '신생계비'라는 노동력 재생산비 개념에 근거하여 제출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우선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이 확립되어야 하며 산별노조별로 '신생계비'에 근거한 임금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 ●평가 및 비판: 노동자적 관점에서 임금수준정책에 개입할 때 가장 중요한 지침은 투쟁을 통한 실질임금의 대폭적 상승이다. 그래도 자본은 정상이윤을 챙긴다. '신생계비'개념은 노동력 재생산비 개념을 사용함으로서, 금속연맹안에서 보였던 경총의 실태생계비를 그대로 모방한 과오를 극복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제출한 임금수준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신생계비'에 근거한 임금수준의 상승을 가능케하는 수단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실천적 비약을 거쳐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제도만으로 집중한다는 점이다. 앞서 논했듯이 신자유주의적 정세내에서 노동력 재생산비로의 임금수준의 결정은 치열한 계급투쟁의 현장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투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임금상승은 자본가와의 산별교섭제도와 이를 위한 산별조직형태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개량주의적 노동운동노선의 상층간부와 이데올로그들에게는 개량투쟁을 통한 노동자의 실질적 개선, 나아가 이를 위한 투쟁의 조직화보다는 '개량'을 위한 자본가와의 안정적인 교섭기구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반면에 계급대립적 노동운동노선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자본가들은 오히려 임금수준을 낮추어야 할 자본간의 경쟁압력하에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경향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단결을 통한 힘의 집중, 그리고 노동대중에 대한 궁극적 대안의 설득을 필요로 하며 전술적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교섭 및 조직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숙련지향적 임금체계 정책을 평가해 보자.
-●제출내용: 일단 민주노총에서는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의 필요성을 청년노동자의 숙련과 승진에 대한 욕구로부터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대안적 임금체계로 진정한 노동력 가치를 반영하는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에 대한 적극적 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숙련적 임금체계의 정의는 '교육훈련을 통해 노동자의 숙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그것을 임금과 승진체계에 연계하는 임금체계'라고 한다. 이러한 숙련과 임금승진체계간의 연계는 숙련에 대한 노자간의 객관적 평가, 즉 인사고과에 최종적으로 연동된다. 민주노총은 현장노동자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현장통제의 핵심기제인 인사고과를 부활시키기 위해 절충해 들어간다.
즉 민주노총은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의 구성을 위해, 노동조합이 자본과 더불어 숙련형성과정과 평가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염두하는 이러한 개입공간은 개별기업 수준이 아니라 산업수준에서의 노·자·정 3자로 구성된 '교육훈련위원회'이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교육훈련위원회'에 참가하여 자본과 양보교섭하면서 노동자들을 교육훈련시키며 자격증을 주는 것이고, 이 자격증에 근거하여 사회전체수준에서 '숙련지향적' 임금체계의 구성을 꿈꾸는 것이다.
- ●평가 및 비판: 노동자적 관점에서 임금체계에 개입할 때 가장 중요한 지침은 투쟁의 대오를 통일·확대시키기 위해 임금격차를 최소로 하는 것이다. 이번 민주노총이 제시한 '숙련지향적' 임금체계는 유달리 청년노동자의 승진 및 숙련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이는 자본이 1990년 초에 능력주의적 인사관리제도를 도입하면서 투쟁대오에서 청년노동자들을 분할하기 위해 써먹던 논법이다. 하지만 당시 청년노동자들은 선배노동자와의 통일투쟁을 위해, 그리고 자신도 나이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연공급이라는 임금체계요구로 단일화되었다. 당시 자본가계급은 '숙련향상'이라는 스스로 지키지 못할 미끼로(왜냐하면 탈숙련화는 자본에 중요한 통제방식임) 노동자 분할통치적 능력주의 인사관리제도를 도입하였다.
실제로 벌어진 것은 다음과 같다.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에게 '숙련'을 주는 것은 자본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에게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통제를 위해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으로 노동자들을 탈숙련화했던 것이다. 즉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포섭하기 위해 설사 임금은 양보하더라도, 절대로 노동자에게 숙련이라는 노동과정 통제권(이는 경영권이라 표현됨)을 양보하지 않는다. 노동운동내에서 '숙련'이 최초로 화두가 된 것은 1980년대를 풍미한 유연화논쟁과 일본식 생산방식에 대한 논쟁이었다. 당시 개량주의적 노동과정론자들은 극소전자혁명으로 인한 '탈포드주의'하에서 노동자의 '재숙련화'를 통해 사이비노동해방을 주장하고 노동자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교란시켰다.
자본이 극소전자혁명을 이용하는 방식은 초테일러리즘인 일본식 생산방식으로 귀결되었다. 상황이 이럴진데 민주노총은 왜 '숙련'이라는 화두를 재차 던진 것일까? 그 이유는 민주노총이 '숙련을 통한 노동자의 인간화'보다는 오히려 사회전체수준에서의 노사정 '교육훈련위원회'라는 제도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기에 '교육훈련위원회'에 참석한 노조간부는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노동자 분할적인 '인사고과에 의한 숙련단계결정'를 양보교섭하고 이를 관료주의적 산별조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노동자적 관점에서의 임금체계는 대폭적인 임금수준 상승을 기본으로 하여 노동자간의 임금차이를 축소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간의 단결투쟁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주의적 임금체계 및 진정한 숙련화 또한 결국 첨예한 계급투쟁의 사안이다.
2) 고용정책
- ●제출내용: 민주노총은 현재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일방적'이라 비판하며 "사회통합적이고 고용유지적이며 민주적 구조개혁정책"(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의 차이는 무엇일까?)으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나아가 구조개혁의 진정한 의의는 경영합리화,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서비스 질 향상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정책 논리와 마찬가지로, 고용정책에서도 민주적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노사정 사회적 협의의 장(합의의 장도 아닌)을 추천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현재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자본가계급의 공격내용은 인정한 것이다. 다만 공격방식인 절차상의 문제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이후 정리해고문제, 비정규직문제, 노동시간문제, 실업문제를 바라보는데 있어 개량주의를 토대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다.
첫째, 민주노총은 현재의 정리해고제를 인정하고 있다. 단지 정리해고를 진행함에 있어서 법률상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고제한법을 제정하여 정리해고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해고회피노력에 대한 구체적 기준으로 정리해고에 앞서 경영합리화, 인력재배치, 근로시간 단축, 교육훈련 등을 인정함으로써 개별자본가의 현장통제강화전략을 열어놓고 있다. 이 또한 이미 자본가계급이 정리해고법안 통과 이전에 해왔던 방식이다.
둘째, 민주노총은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싸고 자본가계급과의 양보교섭을 허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 특별법의 제정을 제안하면서 그 속에 '노동시간 단축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조치의 규정', '노사협약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시 조세, 금융, 사회보험 상의 특별지원',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교육, 훈련, 여가시설에 대한 지원', '노동시간 단축을 지원하는 민간단체,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등에 대한 지원조치'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같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만약 노동자계급의 실질적인 투쟁이 담보되지 못하고 상층교섭중심으로 귀결되면, 자본가 계급은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계급투쟁의 장에서 '노동시간의 유연화'라는 성과물 뿐만 아니라 '노동대중의 세금을 통한 지원'이라는 성과물까지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세째, 민주노총은 자본주의 경제의 주기적인 경기변동으로 인해 실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강력한 거시경제정책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내수진작을 위해 금융, 재정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거시경제 운용을 통해 실물경제를 진작하고 고용창출을 도모하며 중기적으로는 재정건전화와 금융부문 개혁을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를 유도하여야 함"으로 규정되고 있다. 즉 민주노총은 실업의 문제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활성화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은 '사회적 안전망 완비',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사업 전개', '적극적 고용창출 정책 실시', '실업대책에 노동조합 참여' 등의 정책사업을 하도록 제안되고 있다. 특히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사업'은 앞서 살펴본 임금체계정책에서의 교육훈련위원회와 깊숙히 연계된다.
이제는 알았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본연의 역할을 버리고 자본가계급을 대신해서 정규직과 실업자의 '교육, 훈련'을 담당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경기회복과 산업, 기업의 건전화에 따른 고용창출에 있음을 감안하여 이를 위한 경제정책을 추진하여야 할 것임"을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이다.
- ●평가 및 비판: 민주노총의 고용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사회통합적이고 고용유지적이며 민주적인 구조개혁정책으로 전환"이라는 번드르르한 말을 할지라도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와 실업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투쟁의 성격을 자본주의 체제내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강고한 현장노동자의 투쟁 없이 단지 노조간부와 자본가 계급간의 상층교섭 테이블의 안건으로만 올려지게 되면, 결국 '사회통합적 구조개혁'은 자본측의 전리품이 될 수밖에 없게 되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노동자계급이 자본에 지속적으로 얽매이게 되는 이중의 통제구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적 관점에서의 고용정책은 노동자 대중투쟁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정리해고와 변형노동시간 무력화, 비정규직 철폐, 관련 법제도 철폐라는 요구로 집중되어 야 한다.
마치며
앞서 본인이 제기, 비판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자관계는 구조적 적대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결국 투쟁이 없다면 노동자의 상태는 절대적 궁핍화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특히 자본가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심화될 때 노동조합이 국가 및 자본가에 대해 계급대립적 이념을 지닐수록, 장기적 측면에서 노동자의 실제적인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이러한 계급대립적 이념은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간 관계에 있어 민주주의의 실질적 측면을 강화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 경영진과 노동자간의 대립관계에서 노동자의 유일한 권력 원천은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간의 조직적 유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적 정세하에서 노동조합이 개량주의적 이념하에 국가와 경영진에 대해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노동자의 조직적 도전정도는 하락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가 및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핵심은,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기제의 구축이며 이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노동자의 조직적 도전정도는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개량주의적 노동조합 간부는 자신의 권력원천을 국가와 경영진으로부터 찾고, 조합원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으로 대하여 조합원의 실제적 요구를 억압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 하에서 본인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임금 및 고용정책'의 개량주의적 성격을 분석,비판하였다. 본 글에서는 본인의 능력와 지면의 한계상 '산별노조조직정책'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서 약술한 이념-정책-조직간의 연관성을 토대로 분석해 본다면, 개량주의적 임금과 고용정책은 반드시 '관료주의적 산별노조조직 건설안'으로 귀결되어 노동자의 자생적 투쟁을 억압하게 되는 조직형식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민주노총 발전전략위원회의 '조직발전안'이 투쟁기조와 노선 차원에서 접근되지 않고, 단지 실무적인 관점에서 몇몇 제도와 형식을 보완하는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는 바에서 나타나고 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지금같은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국내외 자본가계급의 권력이 집중된 국가기구로 대정부 투쟁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전체적인 모순적 구조들에 문제제기하며 전체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를 가능케하는 이념과 정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점인 저항조직의 구성을 사고해야 한다. 따라서 조직발전에서 담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은 '현장의 요구와 분노를 조직적으로 대변하고, 투쟁으로 조직하는 민주노총의 상 확립'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한 전국적 전산업적 투쟁의 구심으로서의 민주노총 강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