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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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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남북관계, 무엇에 주목할 것인가?

임필수 | 정책기획부장, 한반도팀
무엇보다도 2001년은 남과 북, 공히 강조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해가 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문을 포함하여 총5개의 항으로 이루어진 공동선언을 통해 명시적으로 표현된 합의사항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두 정상간에 논의되었거나 교감된 여러 사항들이 어떻게 부각되고 해결될 것인가의 문제를, 올해에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6·15 공동선언이 그리는 한반도의 향후 전망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내세웠던 '햇볕정책'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관심의 초점이다. 즉 공동선언의 '이행'에 있어서 방점을 찍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이 실질적으로 진척될 것인가의 여부,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전략상에서, 이와 짝패를 이루고 있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조치들의 논의 및 합의여부는 주목할만한 대목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공동선언 발표 이후 언론의 중요한 초점이 되었던 바, 공동선언이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의 실질적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질 것인가의 여부도 올해의 여러 계기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시 새 행정부의 출범으로 인한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동폭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북한과의 가시적인 갈등의 재발이 일어날지 등의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2001년 남북관계의 변화를 전망하며, 남한 내에서 주요현안이 되고 있는 사안들을 살펴보고, 그 의미들을 검토해보도록 한다.


<b>대북 경제협력사업은 궤도에 오를 것인가?</b>

지난해 8월 22일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강종훈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서기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개성공단 경제특구 및 개성관광사업 합의서에 공식서명하였다. 이로써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인가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우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추진을 크게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기대에 매우 못미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 북한과의 경제교류협력의 양적인 증가는 대부분 KEDO, 식량을 비롯한 대북지원, 금강산개발 등 대부분 '비교역성' 물자의 반출이 급증한데 기인한 것이었다. 실질교역 부문에서는 '위탁가공' 교역만이 다소 증가한 반면, 전체적으로는 1990년대 중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또한 남한기업이 북한에 투자하기 위해 정부에 '협력사업' 승인을 요청한 것은 1999년에는 단 1건, 2000년에는 1월과 3월에 요청한 2건에 불과하였다.(즉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에는 아직 한 건도 없는 셈이다)
이처럼 대북경협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개성공단 개발은 그 돌파구를 열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를 모았던 것이다. 개성공단 개발이 본격화된다면, 이는 기존의 위탁가공 중심의 제한적 경협사업으로부터 탈피하여, '경제특구' 개발 및 공단입주를 통한 직접투자로의 질적인 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합의 직후 현대측에서는, 개성공단의 규모가 3단계개발을 통해 800만평의 공단과 1200만평의 배후도시를 합쳐 2000천만평에 이를 것이며, 850개업체가 입주해 22만명의 고용효과를 창출하고 연간 20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남쪽의 바램대로 남북경협이 순탄한 길을 걸을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다. 현대측이 밝힌 '장미빛' 그림과 달리, 개성공단은 자본측에서 볼 때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개성공단 개발문제을 놓고, 남한 자본들 내에서도 '유효한' (즉 '경제성'있는) 경협전략에 대한 논의들이 대두되고 있다.

첫째, '경제특구'로서 개성공단의 실제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직까지 '경제특구'에 대한 큰 그림의 합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협상은 남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경제특구는 특혜를 제공하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일반적 정의를 따라가 볼 때, 남한기업의 이해에 맞는 '특혜'조건들이 어떻게 짜여져야 하는가가 쟁점인 것이다.(여기에는 북한의 다른 지역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 상품과 용역에 대한 무관세 등이 포함된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시각에서 흔히 언급되는 바와 같이, 경협의 핵심이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남한자본측의 입맛에 맞게 북한노동력을 고용·관리·교육·통제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하는 게 관건적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위탁가공에서 북한노동자와의 접촉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면, 직접적 자본투자에 따르는 공단개발은 이전과는 다르게, 북한 주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허용되고 남한기업이 임금수준 및 지급방식, 인력관리 등에서 자율성을 크게 보장받아야 된다는 주장인 셈이다.

다음으로, 개성공단과 남한과의 지역적 근접성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극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현재 공단부지로 정해진 개성지역은 남한과 10km 거리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과 멕시코의 사례가 언급된다. 멕시코의 국경지역 개발프로그램이었던 '마낄라도라(Maquiladora)형' 공단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멕시코는 미국과의 국경지역에 대규모 공단을 개발하였고, 미국인 자본가는 미국과 멕시코에 2개의 쌍둥이공장을 운영하여 멕시코에서는 노동집약적 생산과정을 담당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기술 및 자본집약적 부분을 담당하여 미국제 상품을 완성하는 전략을 취하였다.(물론, 멕시코와 미국간의 무관세가 적용되었다)

따라서 이와 유사하게, 남한과 북한은 국경지역 경제개발 프로그램을 입안하여, 개성공단을 매개로 남북간의 중장기적인 파트너쉽을 확보하자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 개발의 '전략' 마련에 앞서, 그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되는 공단건설의 소요자금 조달, 북한의 결정적인 전력난의 해결, 공단에서 생산될 상품의 판로 마련이라는 엄연한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도 회피할 수 없는 쟁점이다. 공단건설의 소요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사업주체인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 때문에 이미 주도권이 토지공사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진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한의 경제위기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북한의 전력난 문제는 이미 북한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상황이므로, 그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

남한측에서 어느 정도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해서 전력지원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일 터인데, 소요자금의 마련, 남한내에서의 정치적 반발(야당 및 부시행정부의 '퍼주기식' 대북지원이라는 비난, 전력은 '전략물자'이므로 함부로 지원할 수 없다는 주장 등), 기술적 문제의 해결(남쪽의 유휴전력을 송전할 경우, 전력시스템의 차이, 사고 위험성 등) 등 여러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미국의 북한전문가를 자임하는 혹자는 북한의 전력제공 요구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한 바 있다; 로버트 매닝, '한반도 전문가 좌담', 조선일보, 2001.1.2)

마지막으로, 상품 판로의 문제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의 해소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될 상품의 유력한 판로가 될 수 있는 미국시장의 경우, (지난해 1차 경제제재 해소가 선언되었지만) 현재 북미관계 속에서는 '최혜국대우'를 획득하기까지 아주 먼 길이 남아있는 바, 최혜국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 이는 사실상 '관세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크나큰 어려움이 남아있는 셈이다. 이는 남한정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바, 전반적인 북미관계의 변화에 의존하는 사안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올해는 김대중 정부의 기대대로 남북경제협력 사업이 궤도에 오를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해 11월 2차 남북경협 실무접촉에서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청산결제·상사분쟁 등4대 합의서가 채택되고, 올 봄에서 경의선·철도 공사가 재개되고, 개성공단이 착공에 들어가는 등 단계적으로 경제협력 사업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쟁점을 통해서 (1) 과연 북한이 남한과의 경제협력 사업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가(또는 나진·선봉지구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경제특구 창설에 나설 것인가, 나아가 향후 본격적인 대외경제개방을 향한 노선을 실험하게 될 것인가), (2) 특히 경협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끌어내기 위한 대북지원에 관한 남한 내에서의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3) 남한정부와 기업은 자체적으로 전략 및 자금을 마련하여 대북투자를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인가, (4) 미국의 대북정책 조정과정은 남북경협에 대한 대내외적으로 우호적인 전망을 형성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통해서 남북경협의 중장기적 전망이 확인될 것이다.


<b>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은 합의될 것인가?</b>

지난해 9월 남한의 조성태 국방장관과 북한의 김인철 인민무력부장은 이틀에 걸쳐 국방장관회담을 열었다. 회담에 개최되기에 앞서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경의선 철도연결과 문산-개성간 4차선도로 개설에 따른 군사적 보장문제로 의제를 한정하자고 했다.(즉 철도 및 도로가 DMZ를 통과함에 따라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의 해결) 반면, 남측은 이를 포함해 포괄적인 군사신뢰구축 방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고 전해진다. 즉, 남한은 국방장관급 회담을 계기로, 이전부터 제안해왔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을 의제화하려는 전략을 취했던 셈이다. 하지만 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선언에서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 전쟁의 위험을 없애도록 공동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했다"는 추상적인 언급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한반도의 긴장완화, 평화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남북간 인식차이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결과제에 대한 북한의 전통적인 입장은, 예컨대 1988년 11월의 '포괄적 평화안'이나 1990년 5월의 '5·31 군축안' 등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미군무력 특히 핵무기의 철수, 주한미군 철수, 남북무력 감축,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축(1988년에는 '북미남간 3자회담', 1990년에는 '남북 불가침선언 및 북미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반해, 남한과 미국은 이러한 의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특히 미군무력을 포함하여 군사력의 실질적 감축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 대신, 남측 제안의 요지는 '쌍방의 군사력 규모가 유지되더라도 상대방 군사력의 변동 사항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오판으로 인한 전쟁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즉 군사력의 실질적 축소 없이 전쟁억지력을 유지한다는 입장) 따라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예컨대 직통전화의 설치, 군대배치 및 이동에 대한 통보, 군사훈련의 상호참관, 정기적인 군사회담 등 쌍방의 군사력 현황 및 변동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들을 먼저 취하고 차후에 군비축소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김대중 정부가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요구하는 신뢰구축조치는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실질적인 군사력 감축을 의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접근방식을 북측이 수용할지의 여부도 불투명하다. 최근 들어서 남한 내에서는, 북한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중대한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거나 혹은 그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따라서 남한에서 요구하는 신뢰구축조치들을 북한이 받아들일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북한이 그런 입장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바는 없다. 그리고, 북한이 전통적 입장의 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암시를 제공할 수 있는 의제가 남북 군사회담 석상에서 논의되는 것을 덜컥 받아들이리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는 부시 미국 신행정부의 자체적인 대북정책 조정과정 이후, 북미대화의 향방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여겨진다.


<b>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방은?</b>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들이 새로운 행정부의 출범에 맞추어 일어나지는 않는다. 세계적 사건들이 미국의 선거일정에 맞춰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부시의 한반도 정책은', 로버트 두자릭, 조선일보, 2000.12.6).

이러한 설명은, 그 이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 의회 내의 논의와 일본과 한국 등 주요우방과의 협의를 거쳐 수립된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변경을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관점에서 '사건'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치들이 북한에 의해 취해진다면(예컨대 1998년의 북한 '인공위성' 시험 발사) 그 대응방식은 이전의 클린턴 행정부와는 사뭇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공화당계 인사들의 전통적인 북한관, 즉 "북한은 변화를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과 남한에 대한 상호주의적인 양보에 인색할 것"이라는 관념을 크게 반영한다. 이는 곧, 공화당은 '페리프로세스'를 의심한다기보다는 북한이 페리프로세스에 응할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실패할 경우의 대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설사 그것이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거론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페리프로세스 전체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이지만) 중대한 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심심치 않게 언급되고 있다. 그 중 자주 언급되는 것은 KEDO가 북한에 건설하려는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하고, 일반적인 발전소로 대체하는 것, 제네바합의 및 금창리관련 합의수준을 뛰어넘는 북한의 핵투명성 검증조치를 요구하는 것, 북한의 미사일개발·실험·배치·수출 문제를 다룰 협상에서, 이들 조치와 대북지원 조치를 맞바꾸는 행동을 거부할 것(과학적 목적의 인공위성 실험지원 포함), 북한의 재래식전력 감축을 요구하는 것, 대북 경제지원을 경제개혁 요구와 결합하는 것 등이다.

이 요구들 중에 하나라도 미국 행정부가 제기하는 중요한 의제로 제기된다면, 이는 기존 페리프로세스의 전제 즉 '1994년의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먼저 위반조치를 행하기 전에는 북한 핵동결을 위한 중요한 합의로서 성실하게 이행되어야 하며, 또한 북한이 위협이라고 간주하는 사안들을 지렛대로 삼아 추가적인 협상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문제를 시급히 다루어야 한다'는 전제와 상충될 여지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제네바합의 자체를 변경시키자는 전략이 되거나, 북한의 핵-미사일-재래식전력의 투명성 확보 또는 감축요구를 제네바합의 이행여부와 연계시키는 전략이 되거나, 또는 단지 제네바합의를 존중하고, 그외 추가적인 협상의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구가 선결적으로 관철될 때까지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고, 만약 북한이 이에 대해 반발하는 '도발행위'를 할 경우 군사적인 응징조치를 취한다
는 '무시'(neglect) 전략으로 비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의 요구들이 부시행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표명된다면, 북미관계는 해결의 가닥을 다시 잡기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시행정부 하에서 페리프로세스의 전제와 기조가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북미관계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배치·개발 등에 대해 미국이 반대급부로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이, 그 전례가 없는만큼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페리보고서와 지난해 발표된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언급된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상에 대한 북미간 기본적인 인식차이의 문제 때문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부시행정부의 출범에 맞춰 대북정책의 조정을 제안하기 위해서 미국 내의 각종 기관에서 보고서 작성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체니(부통령)-파월(국무부장관)-럼스펠드(국방부장관)-아미티지(외교안보고문) 등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차별적인 목소리를 냈던 인물들이 새 행정부의 주요요직을 차지한만큼, 미국의 정책이 얼마나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인가 멀지 않은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b>통일방안 합의는 진척될 것인가?</b>

지난해 10월 여야영수회담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문제와 관련해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큰 반향이 일어났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절대로 지나가는 말로 들어서는 안된다", "여권이 뭔가 헌법개정 스케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는가 하면, 이회창 총재 역시 '코리아타임스' 기고를 비롯한 여러 기회를 통해 "남북의 서로다른 정치체제를 강제적으로 연결하는 `남북연합'이나 `연방제'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거부의사를 밝히곤 하였다.(그는 "한반도에 자유와 협력이 보장되고 남과 북을 가로막는 장벽이 제거되고, 양쪽 주민들의 자유왕래가 실현될 때 통일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논의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청와대에서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통일문제가 구체적으로 협의되고 논의될 때 헌법절차에 따라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가상적 장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논의들은 남북간의 '통일방안' 합의가 매우 민감한 쟁점일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지형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계기였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당선 이전 김대중씨의 통일방안 제안은 존재하였지만) 완전한 형태로 한반도통일방안을 제시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기존의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The Korean National Community)통일방안에서 제안된 남북연합(The Korean Commonwealth)은 현재 김대중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국가연합'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국가연합은 고도로 상징적인 결합체를 의미할 뿐 (예컨대 영국, 호주, 캐나다 등으로 구성된 The British Commonwealth) 온전한 의미에서의 '통일국가'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이에 비례하여 국가연합 창설은 다른 어떤 '통일방안'에 비교하여 단순한 과정이 된다.

즉 남북간의 정치·경제·군사·문화적 교류를 제도화하고(특히 정상회담 및 경제·군사·정치 각 분야별 고위급회담의 정례화), 상징적인 수준에서나마 하나의 국가임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도 단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가연합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갖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는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임을 상징적으로 선포하면서도, 동시에 실질적으로는 별도국가로서의 관계를 제도화하고 평화공존을 위한 여러 조치들을 취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6·15공동선언 2항에서 남과 북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 점은 단지 '정치적 수사'는 아니며, 객관적인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북미간 잠정평화협정이 체결되거나 남북간 평화조약이 체결되고 북미·북일수교가 이루어져 한반도에서의 교차승인 구도가 완성된다는 조건 하에서 남한정부는 북한과의 남북간의 국가연합을 정치일정상으로 끌어올릴 의사가 존재한다는 점을,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서도 재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러한 전제조건들이 짧은 시일 내에 충족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국 새 정부가 대북정책을 조정해야 할 시기와 중첩되는 데다가 국내에서의 김대중 정부의 국면주도력이 뚜렷하게 약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김대중 정부가 강력한 추동력을 이끌어낼 기반이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 통일방안 합의는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며, 남북대화는 경제협력사업을 중심으로 더딘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도, 남한정부가 미국 새 정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하는데 대해 그리고 대북경제지원 문제를 비롯하여 남한 내의 논란에 대해 얼마만큼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어느 정도는 유동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b>김대중 정부가 구상하는 6·15 공동선언의 이행은 무엇인가?</b>

지금까지 6·15 공동선언 이후 남한 내에서 주요현안이 되고 있는 남북경협,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 통일방안 합 문제와 함께 부시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 향방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 중에서, 북한 지역에서의 경제특구 개발 및 남한의 자본투자가 실행될 것인가,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또는 군비축소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질 것인가, 국가연합창설의 가능성과 현실성은 무엇인가, 페리프로세스의 변화를 추동하는 목소리는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주목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김대중 정부가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들이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즉 남한에 비교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북한지역에 비교해 볼 때 '경제성' 있는 자본투자처에 대한 요구, 실질적인 군사력축소를 수반하지 않는 전쟁억지 방안 마련, 고도로 추상적인 결사체로서의 '남북연합', 그리고 이러한 목적치를 향한 외길로 북한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국과의 정책공조(및 견제) 등. 마지막으로 이러한 남한의 각각의 요구에 대해 북한이 제기하고 있거나 그럴 수 있는 쟁점들은 무엇인가에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은 결국 6·15 공동선언의 의미가 언제 어떻게 갈라지게 될 것인가를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정치 평화 국제 민중생존권
태그
노동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회적 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