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전력사태가 주는 교훈
<b>멈추어버린 캘리포니아</b>
지난 1월 18일 실리콘 밸리의 중심지인 새너제이, 프리몬트에서는 단전으로 인해 공장과 사무실이 멈췄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에서는 교통신호와 자동현금인출기도 멈추는 사태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받지 못했고 노동자들은 일손을 놓아야만 했으며 약 천만 명의 사람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었다.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공급이 쫓아가지 못하면서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의 전력 도매요금은 작년 여름 그리고 이번 겨울 몇십배로 급등하였다.
이미 1월 16일 이 지역의 전력수급 총괄기관인 캘리포니아 독립시스템운영국(ISO : Independent System Operator)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력예비율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발령하는 3단계 비상사태 조치를 2주째 시행한 바 있다. 미국 전체 GDP의 12%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신경제의 기관차인 캘리포니아 주가 전력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는 미국경제의 앞날에도 우려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b>'규제완화와 경쟁촉진으로 정부역할을 축소하겠다'</b>
경제규모만으로도 세계 6위인 캘리포니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캘리포니아의 단전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6년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전력산업의 급속한 규제완화조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은 다른 미국의 주들과 같이, 구조재편 이전 몇십년 동안 발전, 배전, 송전 등 전력산업의 모든 분야가 IOU(investor-owned utilities)라 불리는 3개의 주요한 독점적 민영전기사업자들-이들은 PG&E(Pacific Gas & Electric Company), SCE(Southern California Edison Company) , SDG&E(San Diego Gas & Electric Company)이었으며 사업지역에 따라 구분되었다-에 의해 소유, 관리되었다.
즉 사적 기업들이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송전망 관리 그리고 배전사업까지 도맡아 운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모두 PUC(Public Utilities Commission)에 의해 전력요금, 발전용량 등 운영의 모든 부문에서 강력한 규제와 관리를 받았다. 이 강력한 규제기관이 발전비용에 기초해서 전력요금을 책정하였고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관리하였으며 전기회사들은 이러한 규제시스템 하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이후 전력요금의 상승과 정부의 경제개입 축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대두되면서, 전력산업에서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으로의 정책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994년 PUC는 시장원리에 기초한 근본적인 전력산업의 구조재편을 건의한 Blue Book을 발표하였고 1995년에는 민영사업자에 의해 통합되어 운영되던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을 분할(unbundle)할 것이 공식화되었다. 결국 1996년 AB 1890(California Assembly Bill 1890)이라고 불리우는 법안이 통과되어 급진적인 산업의 구조재편이 이루어지게 된다.(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1996, The Changing Strucuture of the Electric Power Industry: An Update. U.S. Department of Energy)
이 법안은 종래 투자자소유의 기업이 관할하던 발전, 송전, 배전을 각각 분할하고 특히 발전 부문에서 경쟁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전력요금을 인하할 것을 그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이 법에 따라, IOU는 그들의 발전설비를 매각하거나 새로운 독립적인 사업자로 이전하였고, 전력이 도매로 거래되는 PX(Power Exchange)라 불리우는 도매시장이 개설되었다. 송전부문에서는, ISO(Independent System Operator)라는 독립적 서비스공급자를 설립하여 전력생산자로부터 소비자까지의 안정적이고 공평한 송전을 담당하게 하였다. 비록 송전라인은 여전히 IOU에 의해 소유되었지만, 이들은 그들 라인이 사용될 때 사용료를 받도록 하였고 이 사용료는 설비의 유지비용에 기초하여 FERC(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가 설정하도록 하였다.
결국 이전의 IOU는 전력을 도매시장에서 사서 소매로 판매하는 기업으로 변화하였다. 원래 IOU들이 사적 사업자들이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구조재편은 민영화와는 관련이 없지만, 전력산업에서 정부 역할을 획기적으로 축소하고, 전력산업, 특히 발전부문에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급속한 규제완화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발전부문에서는 PG&E, SCE가 반이상의 발전설비를 매각하는 등 기존독점사업자들이 발전설비를 매각하고 민간사업자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비영리기구인 PX(Power Exchange), ISO(Indepent System Operator)에 의해 전력도매시장과 송전시스템이 관리되었다. 정부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소매전력요금에 대해서는, 전력회사들에게 70억달러의 회사채 발행을 허용해주는 대신, 1997년 말 이후 현재요금보다 10% 할인하는 규제를 실시하였다. 단, 샌디에이고 지역을 관할하는 SDG&E에게는 1999년 중반 이 가격규제가 폐지되었다.
사실 새롭게 나타난 전력거래와 가격결정 시스템은 아주 복잡하였다. 우선 도매전력경매 시장인 전일시장(day ahead market)에서 매시간 발전업자와 구매업자가 전력수요를 고려하여 일종의 경매를 실시하고 PX가 가장 높이 비드된 가격에 기초하여 전력 가격을 설정한다. 만약 PX시장에 의해 공급된 전력이 부족하면 ISO가 예비전력을 포함한 그 차이분을 보조시장(ancillary service)에서 경매에 의해 구매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결정되는 도매(wholesale) 전력요금은 발전비용이나 또는 소비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한편, 대규모 개별사용자들은 PX를 통하지 않고 발전업자와 쌍무적(bilateral)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도 ISO에 의해 관리되는 중앙집중화된 송전시스템에 의해 전력이 송전되었다.
<b>경쟁이 확대되면서 드러난 한계점 </b>
1996년의 구조재편 이후, 초기에는 새로운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발전부문의 경우 기존 독점사업자들의 설비매각과 새로운 민간발전업자들의 진출로 인해 송배전망을 소유한 민영사업자의 발전시장에서의 비중이 크게 하락하였고 경쟁이 촉진되었다. 물론 아직도 몇몇 사업자는 10%에 가까운 시장지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과점의 우려와 발전업자들간의 담합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소매시장에서도 1998년 말 현재, 10만이 넘는 사용자가 새로운 배전회사를 선택하여 경쟁도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실제로 전력산업에서 경쟁은 특히 대규모 기업사용자시장에 있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1999년 11월 현재 피크시 500k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약 20.1%(전력사용량의 31%), 20-500kW의 전력을 사용하는 사용자 중 6.5%(전력사용량 14.6%)가 공급자를 교체하였다.
그러나 전력산업의 가정사용자를 포함한 소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소매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1999년 11월, 전력공급자를 교체한 가정용 사용자는 오직 1.6%(전략사용량의 1.9%)뿐이었다. 이렇게 경쟁촉진이 미약한 것은 소매전기요금 자체가 정부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자의 교체가 가정이나 소규모 사용자에게 그다지 큰 편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격을 확인하기 위한 미터기 설치 등 부대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구조개편 이후 캘리포니아 전력산업의 경쟁촉진이 미약한 수준이며 아직 대규모 사업자들에 의한 시장경쟁의 억압이 온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Borenstein, Severin, Bushnell, James and Wolack, Frank(2000). Diagnosing Market Power in California's Deregulated Wholesale Electricity Market. POWER(Prgoram on Workable Energy Regulation) Working paper 64. University of California Energy Institute.)
<b>시장경쟁촉진으로, 얻은 것은 부작용 뿐</b>
규제완화 이후 실질적인 경쟁촉진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반면, 전력가격의 급등과 전력부족으로 인한 단전 등 심각한 부작용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2000년 5월과 6월에 전력의 수급조정이 실패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정전사태가 터졌다. 5월 22일 ISO는 2단계 긴급사태(State 2 emregency)를 선언하여 일부 전력수요자들이 자발적으로 전력사용을 중단하였는데도, 이후 6월 14일, PG&E가 관할하는 10만에 이르는 사용자들에게 정전사태가 발생하였다.
나아가 6월 11일에서 15일까지 5일동안 샌디에이고 지역의 소매전기요금이 무려 270%나 상승하였다. SDG&E의 소매가격규제는 1999년에 끝나있었기 때문에 샌디에이고 시민들의 6월 전기료는 평소 두배로 급등하였고, SDE&E의 6월 요금수입도 전국평균의 두배에 달하였다. 이러한 전기료 급등은 저소득가계에 큰 타격을 미쳐, PUC는 저소득층을 위한 15%의 특별할인요금을 설정하였으며, FERC는 2000년 ISO 시장의 가격규제 상한을 하향조정하였다. 이러한 소매전기요금의 급등은 당연히 도매요금의 상승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2000년에는 6월의 피크 기간 동안 도매요금은 1999년 요금보다 피크시 약 10배, 비 피크시 4배에 달하였다.
실제로 1999년 6월 29일 총 전력 사용량은 763000 메가와트였고 요금은 4500만 달러였던 반면, 2000년 당일의 사용량은 795000메가와트에 요금은 무려 3억 4000만 달러에 달하였다. 사실 2000년 여름 대부분의 경우 피크시의 전력사용량은 1999년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고, 그렇다면 천연가스의 가격상승이 2배였던 것을 고려할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기요금상승은 당연하게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부분 발전회사들의 평균 100%에 이르는 이윤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볼 때, 20001년 1월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2001년 1월의 도매요금은 2000년 1월에 비해 평균요금 약 10배, 피크시 순간 최대요금이 약 30배의 급등을 기록하였다.(http://www.energy.ca.gov/electricity/wepr/2001-01/index.html) 특히 PG&E와 SCE의 경우, 아직 2002년까지 소매가격의 규제를 받고 있었으므로, 도매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이 가격인상분을 소매가격에 전가시킬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이들은 파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 PG&E와 SCE는 지난 7개월 동안 12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총 127억달러의 채무를 안고 있는 상황인데, 채무불이행에 따라 스탠다드앤푸어스(Standard & Poor's)는 SCE와 PG&E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등급인 정크본드(junk-bond status)로 낮췄다.
에디슨 인터내셔널(Edison International)과 SCE 자회사는 채권자에게 5억 9,600만달러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였으며, PG&E는 2월 중에 10억달러의 채무를 갚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주의 전력회사들이 이들에게 전력공급을 중지하자, 급기야 단전사태로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주 정부가 다른 주의 전기 공급회사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해 PG&E와 SCE에 저가에 판매하도록 하는 법안을 1월 16일 가결했다. 캘리포니아 주 수자원국은 4억달러를 긴급투입해 다른 주로부터 전기를 사들이고 있으나 하루에 사들이는 비용이 4천만 달러를 넘어, 전부 소진해버렸다.
이 상황에서 데이비스 주지사는 주정부가 부도직전의 전기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최고 1백억달러 규모의 공채발행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지난 2월 1일 간신히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주정부가 신용하락 및 현금부족으로 타주로부터 전기를 사지 못하는 전기회사를 대신해, 최장 10년간 장기 전기구매계약을 맺고 전기회사의 부채상환을 돕기 위해 최고 1백억달러의 수익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다. 이는 일종의 공적자금 투입조치로서,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산업은 다시 정부의 관할로 극적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b>캘리포니아 사태의 교훈 </b>
규제완화 이후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캘리포니아 전력사태를 살펴보면, 전력과 같은 시장에서 정부가 무책임하게 손을 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공급이 그를 따라가지 못한 데에 있다. 1996년 이후 이른바 신경제 현상과 더불어 나타난 이 지역의 경제성장은, 실리콘밸리 등의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해, 1996년에서 1999년까지 피크시의 전력수요량 증대가 5500MW에 달했지만 발전설비의 증대는 총설비의 2%에 불과한 약 670MW에 그쳤다. 또 캘리포니아 지역의 경우, 이미 55%의 벌전설비가 30년 이상의 낡은 설비이며, 10년 미만의 발전설비는 오직 7%에 불과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도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캘리포니아는 1974년의 Warren-Alquist 법 이후 에너지수요와 자원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를 지속해왔고 1980년대에는 가장 다양한 에너지원에 기초한 발전과 효율적인 에너지관리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전력산업의 구조재편과 함께,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시장지향적인 정책들이 대거 도입되면서 포괄적인 전력공급의 조정을 추구하던 자원통합계획(Integrated Resource Planning)이 폐지되어 발전의 위험을 민간부문이 떠맡게 되었고 이는 발전설비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였다. 또한 1995년에는 환경친화적인 발전사업을 지원하던 Biennial Resource Plan Update 정책을 중지하였고 재생가능한 자원에 기초한 발전에 대한 세금지원도 중단되었다.
나아가 PUC의 성과에 기초한(performance-based) 가격설정은 설비업자들이 장기투자를 외면하고 단기비용의 감축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전력산업의 경쟁을 지향하는 AB 1890의 도입 이후 고효율 에너지와 재생가능한(renewable) 에너지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는 1980년대에 비해 70%나 감소하였다. 또한 규제완화는 발전설비를 더욱 장기간 사용하게 만들어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특히 노후화된 설비의 유지보수는 전력공급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전력산업에서 정부 역할의 급속한 축소가 전력공급의 불안정을 낳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규제완화 이후 나타난 시장구조가 결코 경쟁적이지 않았고 발전업자들의 담합이 가능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전력시장에서 전기요금은 발전비용과는 무관하게 시장상황에 따라 결정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한 발전회사들의 시장조작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설계된 캘리포니아의 전력경매 시장에서는, 판매자들이 서로 담합하여 전력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높은 가격을 비드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전력수요가 비탄력적이며 높은 상황에서 전력요금은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ISO와 PX의 정보공개거부에도 불구하고, 2000년 여름 사태에 대한 보고서에서 캘리포니아대 교수이자 전력감사위원회의 의장인 Kahn은 이미 가격상승을 위한 공급자들의 담합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였다.(Kahn, Michael and Lynch, Loretta(2000). California's Electricity Options and Challenges: report to governer Gray Davis. http://www.cpuc.ca.gov/word_pdf/REPORT/report.pdf)
사실 발전기 보수의 일정 등에 대해서도 발전업자의 담합의 가능성이 있는데, 발전소들의 발전기 보수가 전력요금이 급등하였던 2000년 6월과 2001년 1월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ISO 스스로도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 시장구조가 경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ISO. 2000. Market Surveilance Committee Report. 2000)
즉, 전력수요의 급속한 증대와 공급의 부족 등 캘리포니아 전력산업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 대책없는 규제완화가 이러한 전력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경험은, 경쟁적이지 않은 전력시장에서 적절한 보완장치 없이 전개된 정부규제와 조정의 급속한 철폐는 시장지배력의 강화, 전력수급의 불안정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는 전력의 안정적이고 저렴한 공급을 위해서 사적부문과 시장논리에 대한 적절한 공공적 통제 그리고 효율적이고 공평한 시장구조의 설계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b>한국, 제 2의 캘리포니아?</b>
이미 네바다주는 캘리포니아 사태에 충격을 받고 전력시장 경쟁체제도입 법안의 실시를 연기하였고, 아칸소주도 전력시장의 경쟁도입을 최소 12년 연기하기로 하는 등 캘리포니아 사태는 전력산업의 규제완화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이미 한국전력의 민영화와 발전설비의 분할매각 등 전력산업의 급속한 규제완화에 관한 법안이 지난 겨울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며, 한국전력 노조원들은 초기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약속한 이면합의를 대가로 정부안을 받아들여 실망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실 한국전력은 1996년 에디슨 상을 수상할 정도로 경영 효율성이 전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하는 회사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부채도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며, 투자보수율의 감소도 역시 1982년 이후 오히려 전력요금이 감소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던 전력요금의 규제와 정부의 과도한 간섭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발전회사들은 외국자본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높은 투자보수율을 보장한다면 전기요금의 상승이 명확하며, 국부유출이라는 비판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경쟁 촉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전의 분할매각과 전력산업의 규제완화는, 외국자본에 매각된 발전회사간의 담합 그리고 전력요금 인상과 공급의 불안정 등 캘리포니아와 같은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충분히 예고한다.
"2010년 8월 서울. 전력 사용량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숨가쁘게 이어졌다. 전력사용량이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8월 들어서만 세번째. 전력 예비율은 하한선인 5%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국전력이 독점하던 전력시장이 경쟁체제로 바뀐 후 한국은 만성적인 전력부족에 시달렸다. 매년 10% 이상씩 전력 수요가 급증함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들은 발전소 신설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도매가격 인상과 소매요금 규제로 인해 배전회사들이 파산하고 단전과 전력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주간조선, 2. 15) 어느 보수적인 주간지가 쓴 바와 같이, 위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한전의 문제점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더욱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그리고 전력요금의 점진적인 현실화 등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며 점진적인 경영혁신을 꾀하겠다는 이전의 정부입장이 갑자기 번복된 것은, IMF 경제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압력이나 공공부문 개혁에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과시욕 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난 1월 18일 실리콘 밸리의 중심지인 새너제이, 프리몬트에서는 단전으로 인해 공장과 사무실이 멈췄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에서는 교통신호와 자동현금인출기도 멈추는 사태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받지 못했고 노동자들은 일손을 놓아야만 했으며 약 천만 명의 사람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었다.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공급이 쫓아가지 못하면서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의 전력 도매요금은 작년 여름 그리고 이번 겨울 몇십배로 급등하였다.
이미 1월 16일 이 지역의 전력수급 총괄기관인 캘리포니아 독립시스템운영국(ISO : Independent System Operator)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력예비율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발령하는 3단계 비상사태 조치를 2주째 시행한 바 있다. 미국 전체 GDP의 12%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신경제의 기관차인 캘리포니아 주가 전력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는 미국경제의 앞날에도 우려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b>'규제완화와 경쟁촉진으로 정부역할을 축소하겠다'</b>
경제규모만으로도 세계 6위인 캘리포니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캘리포니아의 단전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6년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전력산업의 급속한 규제완화조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은 다른 미국의 주들과 같이, 구조재편 이전 몇십년 동안 발전, 배전, 송전 등 전력산업의 모든 분야가 IOU(investor-owned utilities)라 불리는 3개의 주요한 독점적 민영전기사업자들-이들은 PG&E(Pacific Gas & Electric Company), SCE(Southern California Edison Company) , SDG&E(San Diego Gas & Electric Company)이었으며 사업지역에 따라 구분되었다-에 의해 소유, 관리되었다.
즉 사적 기업들이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송전망 관리 그리고 배전사업까지 도맡아 운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모두 PUC(Public Utilities Commission)에 의해 전력요금, 발전용량 등 운영의 모든 부문에서 강력한 규제와 관리를 받았다. 이 강력한 규제기관이 발전비용에 기초해서 전력요금을 책정하였고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관리하였으며 전기회사들은 이러한 규제시스템 하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이후 전력요금의 상승과 정부의 경제개입 축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대두되면서, 전력산업에서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으로의 정책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994년 PUC는 시장원리에 기초한 근본적인 전력산업의 구조재편을 건의한 Blue Book을 발표하였고 1995년에는 민영사업자에 의해 통합되어 운영되던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을 분할(unbundle)할 것이 공식화되었다. 결국 1996년 AB 1890(California Assembly Bill 1890)이라고 불리우는 법안이 통과되어 급진적인 산업의 구조재편이 이루어지게 된다.(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1996, The Changing Strucuture of the Electric Power Industry: An Update. U.S. Department of Energy)
이 법안은 종래 투자자소유의 기업이 관할하던 발전, 송전, 배전을 각각 분할하고 특히 발전 부문에서 경쟁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전력요금을 인하할 것을 그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이 법에 따라, IOU는 그들의 발전설비를 매각하거나 새로운 독립적인 사업자로 이전하였고, 전력이 도매로 거래되는 PX(Power Exchange)라 불리우는 도매시장이 개설되었다. 송전부문에서는, ISO(Independent System Operator)라는 독립적 서비스공급자를 설립하여 전력생산자로부터 소비자까지의 안정적이고 공평한 송전을 담당하게 하였다. 비록 송전라인은 여전히 IOU에 의해 소유되었지만, 이들은 그들 라인이 사용될 때 사용료를 받도록 하였고 이 사용료는 설비의 유지비용에 기초하여 FERC(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가 설정하도록 하였다.
결국 이전의 IOU는 전력을 도매시장에서 사서 소매로 판매하는 기업으로 변화하였다. 원래 IOU들이 사적 사업자들이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구조재편은 민영화와는 관련이 없지만, 전력산업에서 정부 역할을 획기적으로 축소하고, 전력산업, 특히 발전부문에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급속한 규제완화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발전부문에서는 PG&E, SCE가 반이상의 발전설비를 매각하는 등 기존독점사업자들이 발전설비를 매각하고 민간사업자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비영리기구인 PX(Power Exchange), ISO(Indepent System Operator)에 의해 전력도매시장과 송전시스템이 관리되었다. 정부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소매전력요금에 대해서는, 전력회사들에게 70억달러의 회사채 발행을 허용해주는 대신, 1997년 말 이후 현재요금보다 10% 할인하는 규제를 실시하였다. 단, 샌디에이고 지역을 관할하는 SDG&E에게는 1999년 중반 이 가격규제가 폐지되었다.
사실 새롭게 나타난 전력거래와 가격결정 시스템은 아주 복잡하였다. 우선 도매전력경매 시장인 전일시장(day ahead market)에서 매시간 발전업자와 구매업자가 전력수요를 고려하여 일종의 경매를 실시하고 PX가 가장 높이 비드된 가격에 기초하여 전력 가격을 설정한다. 만약 PX시장에 의해 공급된 전력이 부족하면 ISO가 예비전력을 포함한 그 차이분을 보조시장(ancillary service)에서 경매에 의해 구매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결정되는 도매(wholesale) 전력요금은 발전비용이나 또는 소비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한편, 대규모 개별사용자들은 PX를 통하지 않고 발전업자와 쌍무적(bilateral)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도 ISO에 의해 관리되는 중앙집중화된 송전시스템에 의해 전력이 송전되었다.
<b>경쟁이 확대되면서 드러난 한계점 </b>
1996년의 구조재편 이후, 초기에는 새로운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발전부문의 경우 기존 독점사업자들의 설비매각과 새로운 민간발전업자들의 진출로 인해 송배전망을 소유한 민영사업자의 발전시장에서의 비중이 크게 하락하였고 경쟁이 촉진되었다. 물론 아직도 몇몇 사업자는 10%에 가까운 시장지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과점의 우려와 발전업자들간의 담합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소매시장에서도 1998년 말 현재, 10만이 넘는 사용자가 새로운 배전회사를 선택하여 경쟁도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실제로 전력산업에서 경쟁은 특히 대규모 기업사용자시장에 있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1999년 11월 현재 피크시 500k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약 20.1%(전력사용량의 31%), 20-500kW의 전력을 사용하는 사용자 중 6.5%(전력사용량 14.6%)가 공급자를 교체하였다.
그러나 전력산업의 가정사용자를 포함한 소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소매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1999년 11월, 전력공급자를 교체한 가정용 사용자는 오직 1.6%(전략사용량의 1.9%)뿐이었다. 이렇게 경쟁촉진이 미약한 것은 소매전기요금 자체가 정부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자의 교체가 가정이나 소규모 사용자에게 그다지 큰 편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격을 확인하기 위한 미터기 설치 등 부대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구조개편 이후 캘리포니아 전력산업의 경쟁촉진이 미약한 수준이며 아직 대규모 사업자들에 의한 시장경쟁의 억압이 온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Borenstein, Severin, Bushnell, James and Wolack, Frank(2000). Diagnosing Market Power in California's Deregulated Wholesale Electricity Market. POWER(Prgoram on Workable Energy Regulation) Working paper 64. University of California Energy Institute.)
<b>시장경쟁촉진으로, 얻은 것은 부작용 뿐</b>
규제완화 이후 실질적인 경쟁촉진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반면, 전력가격의 급등과 전력부족으로 인한 단전 등 심각한 부작용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2000년 5월과 6월에 전력의 수급조정이 실패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정전사태가 터졌다. 5월 22일 ISO는 2단계 긴급사태(State 2 emregency)를 선언하여 일부 전력수요자들이 자발적으로 전력사용을 중단하였는데도, 이후 6월 14일, PG&E가 관할하는 10만에 이르는 사용자들에게 정전사태가 발생하였다.
나아가 6월 11일에서 15일까지 5일동안 샌디에이고 지역의 소매전기요금이 무려 270%나 상승하였다. SDG&E의 소매가격규제는 1999년에 끝나있었기 때문에 샌디에이고 시민들의 6월 전기료는 평소 두배로 급등하였고, SDE&E의 6월 요금수입도 전국평균의 두배에 달하였다. 이러한 전기료 급등은 저소득가계에 큰 타격을 미쳐, PUC는 저소득층을 위한 15%의 특별할인요금을 설정하였으며, FERC는 2000년 ISO 시장의 가격규제 상한을 하향조정하였다. 이러한 소매전기요금의 급등은 당연히 도매요금의 상승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2000년에는 6월의 피크 기간 동안 도매요금은 1999년 요금보다 피크시 약 10배, 비 피크시 4배에 달하였다.
실제로 1999년 6월 29일 총 전력 사용량은 763000 메가와트였고 요금은 4500만 달러였던 반면, 2000년 당일의 사용량은 795000메가와트에 요금은 무려 3억 4000만 달러에 달하였다. 사실 2000년 여름 대부분의 경우 피크시의 전력사용량은 1999년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고, 그렇다면 천연가스의 가격상승이 2배였던 것을 고려할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기요금상승은 당연하게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부분 발전회사들의 평균 100%에 이르는 이윤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볼 때, 20001년 1월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2001년 1월의 도매요금은 2000년 1월에 비해 평균요금 약 10배, 피크시 순간 최대요금이 약 30배의 급등을 기록하였다.(http://www.energy.ca.gov/electricity/wepr/2001-01/index.html) 특히 PG&E와 SCE의 경우, 아직 2002년까지 소매가격의 규제를 받고 있었으므로, 도매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이 가격인상분을 소매가격에 전가시킬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이들은 파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 PG&E와 SCE는 지난 7개월 동안 12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총 127억달러의 채무를 안고 있는 상황인데, 채무불이행에 따라 스탠다드앤푸어스(Standard & Poor's)는 SCE와 PG&E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등급인 정크본드(junk-bond status)로 낮췄다.
에디슨 인터내셔널(Edison International)과 SCE 자회사는 채권자에게 5억 9,600만달러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였으며, PG&E는 2월 중에 10억달러의 채무를 갚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주의 전력회사들이 이들에게 전력공급을 중지하자, 급기야 단전사태로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주 정부가 다른 주의 전기 공급회사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해 PG&E와 SCE에 저가에 판매하도록 하는 법안을 1월 16일 가결했다. 캘리포니아 주 수자원국은 4억달러를 긴급투입해 다른 주로부터 전기를 사들이고 있으나 하루에 사들이는 비용이 4천만 달러를 넘어, 전부 소진해버렸다.
이 상황에서 데이비스 주지사는 주정부가 부도직전의 전기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최고 1백억달러 규모의 공채발행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지난 2월 1일 간신히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주정부가 신용하락 및 현금부족으로 타주로부터 전기를 사지 못하는 전기회사를 대신해, 최장 10년간 장기 전기구매계약을 맺고 전기회사의 부채상환을 돕기 위해 최고 1백억달러의 수익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다. 이는 일종의 공적자금 투입조치로서,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산업은 다시 정부의 관할로 극적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b>캘리포니아 사태의 교훈 </b>
규제완화 이후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캘리포니아 전력사태를 살펴보면, 전력과 같은 시장에서 정부가 무책임하게 손을 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공급이 그를 따라가지 못한 데에 있다. 1996년 이후 이른바 신경제 현상과 더불어 나타난 이 지역의 경제성장은, 실리콘밸리 등의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해, 1996년에서 1999년까지 피크시의 전력수요량 증대가 5500MW에 달했지만 발전설비의 증대는 총설비의 2%에 불과한 약 670MW에 그쳤다. 또 캘리포니아 지역의 경우, 이미 55%의 벌전설비가 30년 이상의 낡은 설비이며, 10년 미만의 발전설비는 오직 7%에 불과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도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캘리포니아는 1974년의 Warren-Alquist 법 이후 에너지수요와 자원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를 지속해왔고 1980년대에는 가장 다양한 에너지원에 기초한 발전과 효율적인 에너지관리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전력산업의 구조재편과 함께,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시장지향적인 정책들이 대거 도입되면서 포괄적인 전력공급의 조정을 추구하던 자원통합계획(Integrated Resource Planning)이 폐지되어 발전의 위험을 민간부문이 떠맡게 되었고 이는 발전설비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였다. 또한 1995년에는 환경친화적인 발전사업을 지원하던 Biennial Resource Plan Update 정책을 중지하였고 재생가능한 자원에 기초한 발전에 대한 세금지원도 중단되었다.
나아가 PUC의 성과에 기초한(performance-based) 가격설정은 설비업자들이 장기투자를 외면하고 단기비용의 감축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전력산업의 경쟁을 지향하는 AB 1890의 도입 이후 고효율 에너지와 재생가능한(renewable) 에너지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는 1980년대에 비해 70%나 감소하였다. 또한 규제완화는 발전설비를 더욱 장기간 사용하게 만들어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특히 노후화된 설비의 유지보수는 전력공급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전력산업에서 정부 역할의 급속한 축소가 전력공급의 불안정을 낳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규제완화 이후 나타난 시장구조가 결코 경쟁적이지 않았고 발전업자들의 담합이 가능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전력시장에서 전기요금은 발전비용과는 무관하게 시장상황에 따라 결정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한 발전회사들의 시장조작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설계된 캘리포니아의 전력경매 시장에서는, 판매자들이 서로 담합하여 전력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높은 가격을 비드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전력수요가 비탄력적이며 높은 상황에서 전력요금은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ISO와 PX의 정보공개거부에도 불구하고, 2000년 여름 사태에 대한 보고서에서 캘리포니아대 교수이자 전력감사위원회의 의장인 Kahn은 이미 가격상승을 위한 공급자들의 담합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였다.(Kahn, Michael and Lynch, Loretta(2000). California's Electricity Options and Challenges: report to governer Gray Davis. http://www.cpuc.ca.gov/word_pdf/REPORT/report.pdf)
사실 발전기 보수의 일정 등에 대해서도 발전업자의 담합의 가능성이 있는데, 발전소들의 발전기 보수가 전력요금이 급등하였던 2000년 6월과 2001년 1월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ISO 스스로도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 시장구조가 경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ISO. 2000. Market Surveilance Committee Report. 2000)
즉, 전력수요의 급속한 증대와 공급의 부족 등 캘리포니아 전력산업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 대책없는 규제완화가 이러한 전력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경험은, 경쟁적이지 않은 전력시장에서 적절한 보완장치 없이 전개된 정부규제와 조정의 급속한 철폐는 시장지배력의 강화, 전력수급의 불안정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는 전력의 안정적이고 저렴한 공급을 위해서 사적부문과 시장논리에 대한 적절한 공공적 통제 그리고 효율적이고 공평한 시장구조의 설계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b>한국, 제 2의 캘리포니아?</b>
이미 네바다주는 캘리포니아 사태에 충격을 받고 전력시장 경쟁체제도입 법안의 실시를 연기하였고, 아칸소주도 전력시장의 경쟁도입을 최소 12년 연기하기로 하는 등 캘리포니아 사태는 전력산업의 규제완화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이미 한국전력의 민영화와 발전설비의 분할매각 등 전력산업의 급속한 규제완화에 관한 법안이 지난 겨울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며, 한국전력 노조원들은 초기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약속한 이면합의를 대가로 정부안을 받아들여 실망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실 한국전력은 1996년 에디슨 상을 수상할 정도로 경영 효율성이 전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하는 회사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부채도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며, 투자보수율의 감소도 역시 1982년 이후 오히려 전력요금이 감소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던 전력요금의 규제와 정부의 과도한 간섭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발전회사들은 외국자본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높은 투자보수율을 보장한다면 전기요금의 상승이 명확하며, 국부유출이라는 비판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경쟁 촉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전의 분할매각과 전력산업의 규제완화는, 외국자본에 매각된 발전회사간의 담합 그리고 전력요금 인상과 공급의 불안정 등 캘리포니아와 같은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충분히 예고한다.
"2010년 8월 서울. 전력 사용량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숨가쁘게 이어졌다. 전력사용량이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8월 들어서만 세번째. 전력 예비율은 하한선인 5%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국전력이 독점하던 전력시장이 경쟁체제로 바뀐 후 한국은 만성적인 전력부족에 시달렸다. 매년 10% 이상씩 전력 수요가 급증함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들은 발전소 신설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도매가격 인상과 소매요금 규제로 인해 배전회사들이 파산하고 단전과 전력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주간조선, 2. 15) 어느 보수적인 주간지가 쓴 바와 같이, 위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한전의 문제점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더욱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그리고 전력요금의 점진적인 현실화 등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며 점진적인 경영혁신을 꾀하겠다는 이전의 정부입장이 갑자기 번복된 것은, IMF 경제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압력이나 공공부문 개혁에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과시욕 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