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세계화하고, 희망을 세계화하자!- 포르토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을 다녀와서
<b>포르토 알레그레 VS 다보스포럼</b>
올해 최고의 TV 생방송 토론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단연 지난 1월 28일 일요일 위성중계된 남반구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legre)에서의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과 북반구 스위스 다보스에서의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 다보스포럼이라 불리워왔던 참석자 대표간의 토론일 것이다. 이 토론은 우리나라에서 중계되지는 않았지만, 올 2001년이 '가진자'와 '못 가진자', '북반구와 남반구', '부의 집중과 가난의 세계화'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관심의 초점인 두 조류의 정상회의와 그들의 토론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b>'그들을 로켓에 태워 우주공간으로 보내자'</b>
월든 벨로(교수, Focus on the Grobal South)가 이렇게 후일담으로 정리한 토론은, 바깥의 비판에 대해 언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세계경제포럼 측에서의 대답 그대로 성사 자체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계경제포럼의 대표로 4명이 나서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기의 대명사 조지 소로스와 전세계 100개국에 15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ABB의 Njad Eldlund,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 보좌관인 John Ruggie, 개발을 위해서는 기업의 세계화가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만 '부의 재분배'라는 단어는 모르는 유엔개발기구(INDP)의 Marc Molloch-Brown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진정 이웃에 대한 관심없이 TV쇼와 소위 민중의 소리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나선 것처럼 보였다. 필기도구나, 통계나 어떠한 제안을 할 준비도 없이 나선 모습 때문이다.
그간의 나쁜 이미지를 바꿔보기 위해 '분리를 극복(Bridging the Divide)'하자는 올해 세계경제포럼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맨먼저 포르토 알레그레의 여성참여자가 질문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돈이 금융시장을 돌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빚 때문에 죽어가는지 아느냐?" 이 질문에 조지 소로스는 "둘 다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거의 가학적인 대답을 했다. 이어 브라질 MST(땅없는 자의 행진)의 Joao Stedile가 "가난을 줄이기 위해 농지는 경작할 농민에게,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위해 지역시장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자, 느닷없이 유엔대표 Ruggie가 아주 심각하게 아주 적절한 예(?)를 들면서 나섰다.
"여기 스위스 다보스는 100년 전에는 아주 조그만 시골이었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 아주 잘 사는 도시"라고 짤막한 상징적 어구로 대답에 갈음했다. 그는 스위스는 기업의,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고 농민은 서비스업종으로 전환하여 잘 살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경찰에 쫓기면서 다보스 주변을 맴돌면서 투쟁하는, 거의 자발적으로 모인 1500명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의 주요한 수입원이 검은 돈의 세탁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브라질과는 확실히 상황이 다르니까.
금융과세연합(ATTAC)의 베르나르 까센(Bernard Cassen)이 조세피난처를 없애고 부채를 없애기 위해 토빈세(tobin tax)를 도입하는 데 응해줄 것을 제안하자 조지 소로스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거절해 버렸다.
지난 4월 워싱턴에서 IMF·세계은행 반대투쟁을 주도했던 '50년이면 충분하다'라는 단체의 Njoki Njoroge Njuhu는 유엔과 유엔개발기구 대표에게 "유엔이 공식적으로 부채를 탕감하고 세계화를 중지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것은 유엔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며, 여러 국가들이 부채를 줄이는 데 동의하였고 그 몫으로 교육과 건강에 잘 쓰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그렇다고 그들이 선진국들이 실제 부채를 탕감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줄였는지 그리고 그 댓가가 구조조정과 서비스 민영화였으며 그 결과 더 많은 부채를 지게되고 자원이 고갈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b>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b>
재작년 시애틀에서의 전세계 노동자·민중 그리고 여성, 환경, 인권, 학생운동 또한 원주민, 동성애자 등의 투쟁은 단지 WTO뉴라운드를 출범하기 위한 각료회의를 저지한 것 그 자체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1960년대 말 그리고 1970년대 초의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전략은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도를 더해왔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의 위기로 전가하는 데 반대하는 투쟁은 수세적이고 또한 일국적, 국지적이었다. 이러한 소모적 투쟁에 쐐기를 박은 것이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투쟁이었다.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는 날, 멕시코 민중에게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라며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 봉기를 일으킨 사파티스타. 그들은 그 이듬해 '신자유주의반대 대륙간 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 원주민운동에 기초한 게릴라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국지전적인 그들의 투쟁을 지구적 수준으로 정당화함으로서 지구적인 수준에서의 회의를 조직하게 되는 탁월함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가슴깊이 다가오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 미테랑 전대통령의 부인을 포함한 전세계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참가한 이 회의를 통하여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하였다. 그간의 일국적이고 산발적인 투쟁으로 점철되던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의 투쟁이 지구적인 투쟁으로 전화해야 함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보스 투쟁은 시작되었다.
1971년 '유럽인 경영심포지움'으로 출발하여, 정치인과 관료, 학자, 언론인 등과 해마다 모여 포럼을 개최하여 세계 경제흐름을 좌우하고 지구적 통치(Global Goverence)를 구상하는, 세계 1000대 기업의 세계경제포럼이라는 초국적기업의 사교클럽에 대한 투쟁. 여기서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전면화된 실업자운동이 단지 일국적 문제가 아니듯 유럽 각국의 실업자들이 실업의 문제를 알리고 그들 스스로를 조직하기 위한 행진을 하는 '유로마치'는, 1998년 독일의 쾰른으로 행진하여 G8 정상회담에서 외채탕감을 요구하는 인간띠잇기에 나서게 된다. 한편 IMF와 국제금융기구(IFI) 그리고 선진제국들이 채무를 담보로 시장개방, 구조조정(SAPs)과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강제함으로서 더욱 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슬을 끊기 위해 구조적인 외채를 탕감하자는 운동(Jubilee 2000, Jubilee South)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투기적인 금융자본에 대한 과세를 하여 그 세금을 제3세계 빈국에 돌려주자는 금융거래과세운동(ATTAC)이 전개됨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자본의 세계화와 관련한 문제점의 핵심이랄 수 있는 사안을 중심으로 지구적 수준의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업과 투쟁의 성과가 시애틀 투쟁이었으며, 자본만 놀란 것이 아니라 투쟁의 전면에 나선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진영 스스로 믿기 어려운 대사건이었다. 그 직후인 2000년 2월 태국에서는 UNTARD회의 이전의 사회운동회의에서 WTO체제에 대한 대안적 사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시애틀 투쟁을 잇는 연속적 투쟁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것이 워싱턴, 프라하에서의 IMF, 세계은행 반대투쟁, 멜버른에서의 세계경제포럼아시아·태평양회의 저지투쟁, 니스에서의 유럽정상회의 반대투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에서의 아셈반대투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자본의 일정에 따른 투쟁과 토론을 벗어나, 그간 지속적으로 외쳐왔던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명제 아래 대안적 전망을 모아내고 투쟁을 기획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 이번 포르토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이었다. 기업의 세계화를 외치는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세계화를 전망하는 세계사회포럼이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열기로 합의하고 내년은 다시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포르토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은 지속적인 개최 자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의 반세계화 투쟁을 한 단계 진전시킨 사건이다.
<b>'대지의 땅없는 사람들'</b>
포르토 알레그레 카톨릭대학(PUC) 구내 건물 안에 임시로 만들어진 대강당에서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되었다. 계속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쳐대는 전세계 40개국 80개 농민조직으로 구성된 비아 캄페시나(Via compasina-농민의 길)의 농민들을 포함하여 믿기지 않을만큼 많은 참가자들의 소란을 비집고 브라질 전통북소리가 장내를 흔들며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각국 참가자들이 알파벳 순으로 소개되자 서로 환호와 박수로 맞이한다. 그 중 사람들이 쿠바 대표단에 보인 반응은 남달랐다. 참가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남미사람들에게 쿠바는 체 게바라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듯 보였다. 콜럼비아, 멕시코 등 남미국가들에 대한 소란스럽기까지 한 환영분위기는 남미전체가 하나의 대륙이자 하나의 국가라는 느낌마저 주는 것에서 게바라의 혁명역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조직위의 대표격인 리오그랑데 두 술 주지사, 포르토 알레그레 시장, 그리고 ATTAC를 대표한 베르나르 까센의 발언에 이어, 브라질의 원주민과 노동자·민중의 피착취, 반역의 역사를 표현하는 창작극이 이어졌다. 톱날로 만든 현악기와 전통타악기의 처절함, 끓어오르며 들썩이게 하는 배경음악은 사람의 키보다 큰 나무가지에 실을 매어 퉁기면서 소리를 내는 고유악기와 함께, 개막식에 이은 시위에도 그리고 포럼 진행 중에도 마지막의 폐막식까지 남녀노소 불문한 그들의 춤과 함께 계속되었다.
포럼장은 그 자체로 장터를 방불케 했다. 50-60개나 될 듯한 부스에서는 포럼의 중심주체인 브라질노총(CUT), 브라질노동자당(PT), 땅없는 자들의 운동(MST), 원주민, 파울로프레이리 연구소, 브라질공산당(PSTU) 그리고 물 문제, 여성 문제 등을 다루는 단체들이 들어서 각자의 브로셔를 나누고 자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 단연 최고인기품목은 회의장 건물 바깥 노점에서 파는 체 게바라 사진이 박힌 모자, 티셔츠, 가방, 배지, 목걸이 그리고 게바라전기를 포함한 운동서적들이었다. 게바라 자신이 그 정도의 상품성을 가지는지 알고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게바라평전 바람과는 다른, 운동이 혁명이 오고가는 상품이었다면 과한 감상일까?
값싼 비행기로 가느라 28시간의 비행시간과 10시간의 대기시간 그리하여 총 38시간이 걸려 도착한 브라질은 황당한 땅이었다. 영어가 안 통하다니!
도착한 이후 내내 거의 반벙어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초기 식민지를 개척했던 포르투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라틴계열 인종들이 앵글로계통에 대한 인종적 감정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곳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지만 미국에의 종속을 우려하여 거의 아무도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에서 만난 노동자당 당원의 이런 얘기는 과장이 있을지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하면서도 반미로 점철된 남미 민중투쟁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나마 영어로 동시통역을 하는 오전의 주요토론회는 참석할 수 있었지만 오후 워크숍은 참석해도 소용이 없었다. 영어를 안 쓰니까. 굳이 워크숍을 참석하려면 영어로 통역해줄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워크숍에서 영어통역 안 하냐고 물으면 눈을 내리깔고 이상하게 쳐다본다.
세계사회포럼은 리오그란데 두 술이라는 주와 그 안의 포르토 알레그레시를 브라질 노동자당에서 집권함으로서 가능했다. 시에서 포럼 예산의 절반을 분담한 것은 물론, 매일 저녁 문화제를 개최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신경질날 정도로 지역TV가 세계사회포럼만을 방송하다시피 했다. 회의장 주변은 우리로 따지면 특공경찰 정도되는 시커먼 복장들이 도열해서 지키고 있으며, 참석자의 주요이동로에는 시정부가 대여한 무료관광버스가 운행되는 관제행사(?)가 세계사회포럼이었다. 브라질을 포함한 전세계 참석자가 4천명 정도(?)이지만 출입증을 발급받은 준참가자를 포함하여 2만명이 참가하는 포럼이라 수많은 주요토론과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정식 참가자만이 참석하는 오전의 주요토론은 매일 4개 주제로 4군데서 열리고, 모든 참석자가 참가 가능한 워크숍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동안 익숙하던 주제를 넘어서 아마존의 밀림, 혁명이나 개량이냐, 여성과 정보통신과 같이 보통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주제들도 많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에 문제제기하는 시위도 있었다.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여성문제에 대한 소흘함을 지적하면서 여성들이 행사장 안에서 구호를 외치고 시위하기도 하고, '땅없는 자들의 운동'(Moviemento Sim Terra, MST, Landress' movement)은 프로그램이 노동 중심으로 짜여진 것에 대해 무언의 항의로 농민참석자들을 편도 3시간이 걸리는 MST교육관 견학으로 돌리기도 하였다.
브라질은 일찍이 산업화가 되었지만 최근의 운동역정은 우리와 비슷하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사정합의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어용노총이 아닌 현 시점 기준으로 600만 민주노총을 세워내고, 이에 카톨릭을 포함한 종교운동과 빈민운동이 주도하여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게 된다. 그 기조는 계속 유지되어 최근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자당(PT)이 당선근접권에 들어가게 되고 190여개 시에서 집권하게 된 것만 다르다면 다르다.
한편 브라질은 남미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일찍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3천2백만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6천만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2%의 인구가 50%의 토지를 3%의 인구가 80%의 토지를 소유할 만큼 빈부격차와 자본 집중도가 높다. 아울러 그만큼 경제적 대안을 만들어가는 운동도 빠르다. 그 대안운동 중 최근 천만명이 참가하는 외채탕감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이 주목할 만하며, 대표적 조직운동으로는 MST를 꼽을 수 있다.
'농지를 농민에게'라는 구호 아래 땅없는 그들은 경작하지 않는 대지주의 토지를 침입(invade)하여 가족과 함께 점거(occupy), 정착하여(stick) 자리를 잡으면 흩어져 확산하는(spill)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점거당한 토지는 오랜 씨름 끝에 결국은 정부가 지주로부터 수용하여 점유를 인정받게 되었다. 프랑스의 실업수당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놓는 이 과정은 가족과 함께 이루어지므로, 아이들이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체 교육관을 두어 그 정당성을 확인하고 남녀구분이 없는 - 브라질은 법적으로 여성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 철저한 공동체생활을 영위한다. 당연히 교육은 그들 스스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이 브라질운동의 저력이자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는 힘일 것이다.
<b>불평등의 연대를 위하여 </b>
세계사회포럼과 함께 브라질과 유럽의회의원들 200여명으로 구성된 세계의원포럼(World Parliamentary Forum)은 이틀간의 회의에서 사회운동을 지지하고, 사회운동이 기획하는 부채탕감, 자본의 투기적 운동에 대한 과세, 조세피난처 저지, WTO의 원천적 개혁과 같은 수많은 이슈들에 연대할 것을 굳게 확인했다.
그러나 잔치판에는 항상 구설수가 따르는 법. 까센이 초대한 프랑스 전직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이 그들이 지난 날 수행했던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미국이 주도한 걸프전을 지원했던 경력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시위 선두에 서고 TV에서 그들이 마치 대표나 된 듯한 모습. 그리고 위성토론을 통해서 밝혀진 것이지만 월든 벨로가 작년에는 다보스포럼에 참여했었다는 사실 등은 쓴 맛을 남기게 했다.
그 와중에서도 주목할만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맥도날드 지점을 부수고 구속되어 프랑스의 조그만 소도시에 7만 농민을 동원함으로써 전세계 농민운동의 우상이 되어버린 조세보배가 브라질 정부에 의해 강제출국 당하려다 풀려나왔다는 소식, 포럼에 맞추어 MST가 5군데의 토지를 점거하였다는 소식과 피노체트가 구속되었다는 사회자의 연이은 멘트. 세계사회포럼은 참가자들의 환호 속에, 인류와 자연이 우리의 중심적 관심사이며 이는 금융과 투자보다 우선하는 것임을 확인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4월 17-22일 캐나다 퀘벡에서 열리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반대투쟁으로서의 민중정상회담, 9월말 10월초 미국 워싱턴에서의 IMF·세계은행연례회의 반대투쟁 그리고 11월초 카타르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 등 몇가지 중요한 투쟁에 함께 할 것을 결의하였다.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를 거부할 것이라는 결의문에 기초한다면, 한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투쟁도 여기에 함께 연대해야 할 것이다. 4월 캐나다에서의 투쟁 이전인 4월 6-7일 아르헨티나에서 반(反)전미자유무역협정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한편 멕시코 폭스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파티스타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평화협상이 진행되어, 구속된 사파티스타 게릴라들이 풀려나고 대치 중인 7군데 기지 중 4군데에서 정부군이 철수하는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후속조치가 계속되면 사파티스타 게릴라들이 3월 하순 전국순회행진을 하여 수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의 상징인 사파티스타가 3월 하순에 멕시코를 순회하고 4월 초순 아르헨티나에서 전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이 이어진다면, 4월 하순 캐나다 민중정상회담은 상당한 열기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한미·한일투자협정이 스크린쿼터와 노동문제로 지연되자 바로 자유무역협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양국정부에서 나오고 있으며,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이 이를 우회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올해 최고의 TV 생방송 토론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단연 지난 1월 28일 일요일 위성중계된 남반구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legre)에서의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과 북반구 스위스 다보스에서의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 다보스포럼이라 불리워왔던 참석자 대표간의 토론일 것이다. 이 토론은 우리나라에서 중계되지는 않았지만, 올 2001년이 '가진자'와 '못 가진자', '북반구와 남반구', '부의 집중과 가난의 세계화'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관심의 초점인 두 조류의 정상회의와 그들의 토론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b>'그들을 로켓에 태워 우주공간으로 보내자'</b>
월든 벨로(교수, Focus on the Grobal South)가 이렇게 후일담으로 정리한 토론은, 바깥의 비판에 대해 언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세계경제포럼 측에서의 대답 그대로 성사 자체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계경제포럼의 대표로 4명이 나서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기의 대명사 조지 소로스와 전세계 100개국에 15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ABB의 Njad Eldlund,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 보좌관인 John Ruggie, 개발을 위해서는 기업의 세계화가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만 '부의 재분배'라는 단어는 모르는 유엔개발기구(INDP)의 Marc Molloch-Brown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진정 이웃에 대한 관심없이 TV쇼와 소위 민중의 소리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나선 것처럼 보였다. 필기도구나, 통계나 어떠한 제안을 할 준비도 없이 나선 모습 때문이다.
그간의 나쁜 이미지를 바꿔보기 위해 '분리를 극복(Bridging the Divide)'하자는 올해 세계경제포럼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맨먼저 포르토 알레그레의 여성참여자가 질문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돈이 금융시장을 돌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빚 때문에 죽어가는지 아느냐?" 이 질문에 조지 소로스는 "둘 다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거의 가학적인 대답을 했다. 이어 브라질 MST(땅없는 자의 행진)의 Joao Stedile가 "가난을 줄이기 위해 농지는 경작할 농민에게,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위해 지역시장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자, 느닷없이 유엔대표 Ruggie가 아주 심각하게 아주 적절한 예(?)를 들면서 나섰다.
"여기 스위스 다보스는 100년 전에는 아주 조그만 시골이었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 아주 잘 사는 도시"라고 짤막한 상징적 어구로 대답에 갈음했다. 그는 스위스는 기업의,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고 농민은 서비스업종으로 전환하여 잘 살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경찰에 쫓기면서 다보스 주변을 맴돌면서 투쟁하는, 거의 자발적으로 모인 1500명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의 주요한 수입원이 검은 돈의 세탁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브라질과는 확실히 상황이 다르니까.
금융과세연합(ATTAC)의 베르나르 까센(Bernard Cassen)이 조세피난처를 없애고 부채를 없애기 위해 토빈세(tobin tax)를 도입하는 데 응해줄 것을 제안하자 조지 소로스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거절해 버렸다.
지난 4월 워싱턴에서 IMF·세계은행 반대투쟁을 주도했던 '50년이면 충분하다'라는 단체의 Njoki Njoroge Njuhu는 유엔과 유엔개발기구 대표에게 "유엔이 공식적으로 부채를 탕감하고 세계화를 중지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것은 유엔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며, 여러 국가들이 부채를 줄이는 데 동의하였고 그 몫으로 교육과 건강에 잘 쓰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그렇다고 그들이 선진국들이 실제 부채를 탕감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줄였는지 그리고 그 댓가가 구조조정과 서비스 민영화였으며 그 결과 더 많은 부채를 지게되고 자원이 고갈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b>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b>
재작년 시애틀에서의 전세계 노동자·민중 그리고 여성, 환경, 인권, 학생운동 또한 원주민, 동성애자 등의 투쟁은 단지 WTO뉴라운드를 출범하기 위한 각료회의를 저지한 것 그 자체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1960년대 말 그리고 1970년대 초의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전략은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도를 더해왔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의 위기로 전가하는 데 반대하는 투쟁은 수세적이고 또한 일국적, 국지적이었다. 이러한 소모적 투쟁에 쐐기를 박은 것이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투쟁이었다.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는 날, 멕시코 민중에게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라며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 봉기를 일으킨 사파티스타. 그들은 그 이듬해 '신자유주의반대 대륙간 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 원주민운동에 기초한 게릴라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국지전적인 그들의 투쟁을 지구적 수준으로 정당화함으로서 지구적인 수준에서의 회의를 조직하게 되는 탁월함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가슴깊이 다가오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 미테랑 전대통령의 부인을 포함한 전세계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참가한 이 회의를 통하여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하였다. 그간의 일국적이고 산발적인 투쟁으로 점철되던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의 투쟁이 지구적인 투쟁으로 전화해야 함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보스 투쟁은 시작되었다.
1971년 '유럽인 경영심포지움'으로 출발하여, 정치인과 관료, 학자, 언론인 등과 해마다 모여 포럼을 개최하여 세계 경제흐름을 좌우하고 지구적 통치(Global Goverence)를 구상하는, 세계 1000대 기업의 세계경제포럼이라는 초국적기업의 사교클럽에 대한 투쟁. 여기서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전면화된 실업자운동이 단지 일국적 문제가 아니듯 유럽 각국의 실업자들이 실업의 문제를 알리고 그들 스스로를 조직하기 위한 행진을 하는 '유로마치'는, 1998년 독일의 쾰른으로 행진하여 G8 정상회담에서 외채탕감을 요구하는 인간띠잇기에 나서게 된다. 한편 IMF와 국제금융기구(IFI) 그리고 선진제국들이 채무를 담보로 시장개방, 구조조정(SAPs)과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강제함으로서 더욱 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슬을 끊기 위해 구조적인 외채를 탕감하자는 운동(Jubilee 2000, Jubilee South)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투기적인 금융자본에 대한 과세를 하여 그 세금을 제3세계 빈국에 돌려주자는 금융거래과세운동(ATTAC)이 전개됨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자본의 세계화와 관련한 문제점의 핵심이랄 수 있는 사안을 중심으로 지구적 수준의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업과 투쟁의 성과가 시애틀 투쟁이었으며, 자본만 놀란 것이 아니라 투쟁의 전면에 나선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진영 스스로 믿기 어려운 대사건이었다. 그 직후인 2000년 2월 태국에서는 UNTARD회의 이전의 사회운동회의에서 WTO체제에 대한 대안적 사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시애틀 투쟁을 잇는 연속적 투쟁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것이 워싱턴, 프라하에서의 IMF, 세계은행 반대투쟁, 멜버른에서의 세계경제포럼아시아·태평양회의 저지투쟁, 니스에서의 유럽정상회의 반대투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에서의 아셈반대투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자본의 일정에 따른 투쟁과 토론을 벗어나, 그간 지속적으로 외쳐왔던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명제 아래 대안적 전망을 모아내고 투쟁을 기획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 이번 포르토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이었다. 기업의 세계화를 외치는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세계화를 전망하는 세계사회포럼이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열기로 합의하고 내년은 다시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포르토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은 지속적인 개최 자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의 반세계화 투쟁을 한 단계 진전시킨 사건이다.
<b>'대지의 땅없는 사람들'</b>
포르토 알레그레 카톨릭대학(PUC) 구내 건물 안에 임시로 만들어진 대강당에서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되었다. 계속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쳐대는 전세계 40개국 80개 농민조직으로 구성된 비아 캄페시나(Via compasina-농민의 길)의 농민들을 포함하여 믿기지 않을만큼 많은 참가자들의 소란을 비집고 브라질 전통북소리가 장내를 흔들며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각국 참가자들이 알파벳 순으로 소개되자 서로 환호와 박수로 맞이한다. 그 중 사람들이 쿠바 대표단에 보인 반응은 남달랐다. 참가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남미사람들에게 쿠바는 체 게바라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듯 보였다. 콜럼비아, 멕시코 등 남미국가들에 대한 소란스럽기까지 한 환영분위기는 남미전체가 하나의 대륙이자 하나의 국가라는 느낌마저 주는 것에서 게바라의 혁명역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조직위의 대표격인 리오그랑데 두 술 주지사, 포르토 알레그레 시장, 그리고 ATTAC를 대표한 베르나르 까센의 발언에 이어, 브라질의 원주민과 노동자·민중의 피착취, 반역의 역사를 표현하는 창작극이 이어졌다. 톱날로 만든 현악기와 전통타악기의 처절함, 끓어오르며 들썩이게 하는 배경음악은 사람의 키보다 큰 나무가지에 실을 매어 퉁기면서 소리를 내는 고유악기와 함께, 개막식에 이은 시위에도 그리고 포럼 진행 중에도 마지막의 폐막식까지 남녀노소 불문한 그들의 춤과 함께 계속되었다.
포럼장은 그 자체로 장터를 방불케 했다. 50-60개나 될 듯한 부스에서는 포럼의 중심주체인 브라질노총(CUT), 브라질노동자당(PT), 땅없는 자들의 운동(MST), 원주민, 파울로프레이리 연구소, 브라질공산당(PSTU) 그리고 물 문제, 여성 문제 등을 다루는 단체들이 들어서 각자의 브로셔를 나누고 자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 단연 최고인기품목은 회의장 건물 바깥 노점에서 파는 체 게바라 사진이 박힌 모자, 티셔츠, 가방, 배지, 목걸이 그리고 게바라전기를 포함한 운동서적들이었다. 게바라 자신이 그 정도의 상품성을 가지는지 알고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게바라평전 바람과는 다른, 운동이 혁명이 오고가는 상품이었다면 과한 감상일까?
값싼 비행기로 가느라 28시간의 비행시간과 10시간의 대기시간 그리하여 총 38시간이 걸려 도착한 브라질은 황당한 땅이었다. 영어가 안 통하다니!
도착한 이후 내내 거의 반벙어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초기 식민지를 개척했던 포르투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라틴계열 인종들이 앵글로계통에 대한 인종적 감정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곳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지만 미국에의 종속을 우려하여 거의 아무도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에서 만난 노동자당 당원의 이런 얘기는 과장이 있을지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하면서도 반미로 점철된 남미 민중투쟁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나마 영어로 동시통역을 하는 오전의 주요토론회는 참석할 수 있었지만 오후 워크숍은 참석해도 소용이 없었다. 영어를 안 쓰니까. 굳이 워크숍을 참석하려면 영어로 통역해줄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워크숍에서 영어통역 안 하냐고 물으면 눈을 내리깔고 이상하게 쳐다본다.
세계사회포럼은 리오그란데 두 술이라는 주와 그 안의 포르토 알레그레시를 브라질 노동자당에서 집권함으로서 가능했다. 시에서 포럼 예산의 절반을 분담한 것은 물론, 매일 저녁 문화제를 개최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신경질날 정도로 지역TV가 세계사회포럼만을 방송하다시피 했다. 회의장 주변은 우리로 따지면 특공경찰 정도되는 시커먼 복장들이 도열해서 지키고 있으며, 참석자의 주요이동로에는 시정부가 대여한 무료관광버스가 운행되는 관제행사(?)가 세계사회포럼이었다. 브라질을 포함한 전세계 참석자가 4천명 정도(?)이지만 출입증을 발급받은 준참가자를 포함하여 2만명이 참가하는 포럼이라 수많은 주요토론과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정식 참가자만이 참석하는 오전의 주요토론은 매일 4개 주제로 4군데서 열리고, 모든 참석자가 참가 가능한 워크숍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동안 익숙하던 주제를 넘어서 아마존의 밀림, 혁명이나 개량이냐, 여성과 정보통신과 같이 보통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주제들도 많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에 문제제기하는 시위도 있었다.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여성문제에 대한 소흘함을 지적하면서 여성들이 행사장 안에서 구호를 외치고 시위하기도 하고, '땅없는 자들의 운동'(Moviemento Sim Terra, MST, Landress' movement)은 프로그램이 노동 중심으로 짜여진 것에 대해 무언의 항의로 농민참석자들을 편도 3시간이 걸리는 MST교육관 견학으로 돌리기도 하였다.
브라질은 일찍이 산업화가 되었지만 최근의 운동역정은 우리와 비슷하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사정합의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어용노총이 아닌 현 시점 기준으로 600만 민주노총을 세워내고, 이에 카톨릭을 포함한 종교운동과 빈민운동이 주도하여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게 된다. 그 기조는 계속 유지되어 최근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자당(PT)이 당선근접권에 들어가게 되고 190여개 시에서 집권하게 된 것만 다르다면 다르다.
한편 브라질은 남미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일찍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3천2백만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6천만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2%의 인구가 50%의 토지를 3%의 인구가 80%의 토지를 소유할 만큼 빈부격차와 자본 집중도가 높다. 아울러 그만큼 경제적 대안을 만들어가는 운동도 빠르다. 그 대안운동 중 최근 천만명이 참가하는 외채탕감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이 주목할 만하며, 대표적 조직운동으로는 MST를 꼽을 수 있다.
'농지를 농민에게'라는 구호 아래 땅없는 그들은 경작하지 않는 대지주의 토지를 침입(invade)하여 가족과 함께 점거(occupy), 정착하여(stick) 자리를 잡으면 흩어져 확산하는(spill)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점거당한 토지는 오랜 씨름 끝에 결국은 정부가 지주로부터 수용하여 점유를 인정받게 되었다. 프랑스의 실업수당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놓는 이 과정은 가족과 함께 이루어지므로, 아이들이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체 교육관을 두어 그 정당성을 확인하고 남녀구분이 없는 - 브라질은 법적으로 여성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 철저한 공동체생활을 영위한다. 당연히 교육은 그들 스스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이 브라질운동의 저력이자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는 힘일 것이다.
<b>불평등의 연대를 위하여 </b>
세계사회포럼과 함께 브라질과 유럽의회의원들 200여명으로 구성된 세계의원포럼(World Parliamentary Forum)은 이틀간의 회의에서 사회운동을 지지하고, 사회운동이 기획하는 부채탕감, 자본의 투기적 운동에 대한 과세, 조세피난처 저지, WTO의 원천적 개혁과 같은 수많은 이슈들에 연대할 것을 굳게 확인했다.
그러나 잔치판에는 항상 구설수가 따르는 법. 까센이 초대한 프랑스 전직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이 그들이 지난 날 수행했던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미국이 주도한 걸프전을 지원했던 경력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시위 선두에 서고 TV에서 그들이 마치 대표나 된 듯한 모습. 그리고 위성토론을 통해서 밝혀진 것이지만 월든 벨로가 작년에는 다보스포럼에 참여했었다는 사실 등은 쓴 맛을 남기게 했다.
그 와중에서도 주목할만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맥도날드 지점을 부수고 구속되어 프랑스의 조그만 소도시에 7만 농민을 동원함으로써 전세계 농민운동의 우상이 되어버린 조세보배가 브라질 정부에 의해 강제출국 당하려다 풀려나왔다는 소식, 포럼에 맞추어 MST가 5군데의 토지를 점거하였다는 소식과 피노체트가 구속되었다는 사회자의 연이은 멘트. 세계사회포럼은 참가자들의 환호 속에, 인류와 자연이 우리의 중심적 관심사이며 이는 금융과 투자보다 우선하는 것임을 확인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4월 17-22일 캐나다 퀘벡에서 열리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반대투쟁으로서의 민중정상회담, 9월말 10월초 미국 워싱턴에서의 IMF·세계은행연례회의 반대투쟁 그리고 11월초 카타르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 등 몇가지 중요한 투쟁에 함께 할 것을 결의하였다.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를 거부할 것이라는 결의문에 기초한다면, 한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투쟁도 여기에 함께 연대해야 할 것이다. 4월 캐나다에서의 투쟁 이전인 4월 6-7일 아르헨티나에서 반(反)전미자유무역협정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한편 멕시코 폭스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파티스타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평화협상이 진행되어, 구속된 사파티스타 게릴라들이 풀려나고 대치 중인 7군데 기지 중 4군데에서 정부군이 철수하는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후속조치가 계속되면 사파티스타 게릴라들이 3월 하순 전국순회행진을 하여 수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의 상징인 사파티스타가 3월 하순에 멕시코를 순회하고 4월 초순 아르헨티나에서 전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이 이어진다면, 4월 하순 캐나다 민중정상회담은 상당한 열기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한미·한일투자협정이 스크린쿼터와 노동문제로 지연되자 바로 자유무역협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양국정부에서 나오고 있으며,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민중 그리고 사회운동이 이를 우회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