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바쳐라?
<b>복거일의 용감한(?) 주장</b>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계화. 세계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많은 얘기들 중에 이른바 '英語公用化'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다. 요즘에는 조금 시들해졌지만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무게를 생각할 때 완전히 끝난 문제일 수는 없다. 사실 '세계화'라고 하면 공기업 해외매각이나 무슨무슨 시장개방 같은 것이 떠오른다. 언어의 문제는 자존심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어찌 생각하면 절박한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것이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관, 정서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어 공용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이야말로 주장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세계화라는 '과제'에 임하는 우리 사회의 이러저러한 시각을 잘 드러내주었던 논쟁이 아니었나 싶다.
아시다시피 논쟁은 1998년 6월 소설가 복거일씨가 {국제어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에서 '영어공용어화'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복씨 주장의 요는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거친 민족주의를 길들일'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민족주의를 제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삼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용감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그야말로 거센 반발이 있었다.
우선 남영신이라는 분이 '우리 문화와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며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한영우 교수 또한 '우리 역사에서 경제논리와 극단적 합리주의가 나라를 망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복씨가 '모든 사물을 경제논리로 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반론을 폈다. 소설가 이윤기씨도 '어머니가 문둥이라고 할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며 유감을 나타냈다.
포항공대의 박이문 교수는 '탈민족주의에는 찬성하지만 영어 공용어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하대 국문과의 최원식 교수는 '영어공용화론은 서구패권주의 연장'이며, 복씨의 영어론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규율해왔던, 민족주의적 동력에 근거한 국가주의를 해체하고 서구, 특히 미국의 시장주의를 한국에 이식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우상과 시장의 우상을 함께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의 탐색'이라고 주장했다.
<b>세계화에 대한 미묘한 차이</b>
한편 복거일씨를 지지 혹은 옹호하는 입장도 더러 있었다. 충남대 불문과 정과리 교수는 복씨가 촉구하는 것은 '세계화의 이중적 상황에서 한국인에게 요구되는 불가피한 생존조건에 대한 성찰'일 뿐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한글과 영어의 공존방식에 대한 토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의 함재봉 교수도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가'이며, '영어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차원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지 반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논쟁은 뜨겁게 진행되었고 그러다보니 논지가 조금씩 왜곡되기도 했다. 복거일씨는 자기 주장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늘 그렇듯 조금 왜곡된 논쟁이었다. 그러나 비판과 변론의 지점이 서로 딱딱 맞는 그런 논쟁이 어디 있겠는가? 그 정도면 어쨌든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대세라는 점을 양편 모두 인정한 점, '거친 민족주의'를 경계한 점, 영어의 중요성을 인정한 점 등을 보면 결국 같은 얘기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비록 미묘할지라도 양쪽의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는 영어의 공용어화, 나아가 세계화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잠잠했던 논쟁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00년 벽두였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에서 영어를 제2공용어로 채택할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부터였다. 사실 1999년 여름에 이미 아사히(朝日)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편집위원이 언론기고문을 통해 영어공용어론을 들고나온 바 있었다. 이 때도 한국 언론에 소개되어 어느 정도 관심을 끌었던 바 있었다.
새천년 1월 일본에서 총리 자문기관인 '21세기 일본의 구상간담회'가 영어를 제2공용어로 만들기 위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사회에는 다시 한번 영어 공용어화의 논의가 몰아치게 된 것이다. 이어 태국에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었고, 그 뒤로 한참 동안 싱가포르가 어떠니, 말레이지아는 어떠니하며 그야말로 논의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기회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b>우리나라가 거쳐온 세계화(?)의 역사</b>
세계화라는 말이 나온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이지만, 지금처럼 생존(?)의 문제로 절실하게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IMF사태 이후였다. 그 후 몇년간은 세계화를 주장하는 쪽이나 세계화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쪽이나, IMF 위기라는 가쁜 숨에서 자유롭기 힘든 시절이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한숨 돌렸다는 증거인지 몰라도, 얼마 전부터는 신앙처럼 全사회를 뒤덮고 있던 세계화의 논리를 상대화시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문화비평가 조형준씨는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자'는 장난기 어린 제안을 했다. 아예 '자진 상납'을 해버리면 '나랏말싸미 미귁에 달아' 고통을 겪는 일도 없을 거라는 얘기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미국병에 걸린 세태를 비꼰 야유지만,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지금의 장난 아닌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조씨의 제안은 단순한 장난을 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사실 이런 주장의 원조는 소장철학자 탁석산씨다.
탁씨는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책에서 우리 민족 앞에 놓여있는 길을 '자력갱생의 길',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 '현지고용인', '강대국의 길',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국가'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영어공용어화 등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국가'를 우리 민족이 택해야 할 길로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이라. 참 재밌는 발상이다. 미국이 받아줄까를 생각해 보면 더 재미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가 한 때, 미국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한 부분이었던 적이 있기는 했다. 물론 자진 상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이완용 등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자진 상납이라고 해석될 소지도 있다).
일본도 1920년대를 넘어서면서 최소한 군사력에 있어서는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3강에 끼었던 나라였다. 우리 조선도 그 나라에 엮여 본의 아니게 꽤나 세계화되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지
지금의 서울역에 가면 북경, 상해는 물론 모스크바를 거쳐 런던까지 갈 수 있는 기차표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만주에는 엄청나게 많은 조선인들이 옮겨살고 있었다. 1932년 만주국이 생긴 후에는 더 많은 조선인들이 관리로 임명되거나 혹은 사업상의 이유로 만주국의 철도를 타고 각지로 흩어졌다.
이것까지 세계화라고 하면 좀 불경스러운 얘기가 되겠지만,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던 식민지 말기에는 전선의 확대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보내졌다. 해방 후 해외로부터 한국으로 돌아온 이는 수백만명이었다. 물론 징용이나 징병에 끌려나갔던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었지만, 유학이나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 혹은 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사업차 해외에 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도 주위의 60∼70대 어르신 들 중 심심치 않게 고향이 상해다, 장춘이다, 오사까다 하는 분들을 많이 뵐 수 있다. 물론 요새도 아버지 따라서 어렸을 때 미국 살았다는 사람들 종종 있지만 내 생각에는 전자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아뭏튼 그 시절도 일본이랑 엮여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다.
<b>일본어전용론과 영어공용화론의 닮은 꼴</b>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식민지 말기의 잡지에서 지금의 영어 공용화론과 쌍둥이처럼 닮은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상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고, 제2공용어 정도가 아니라 조선어 사용을 금하고 일본어를 전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또한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는 일제의 번뜩이는 총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야말로 전시총동원체제하의 식민지 치하였다는 점은 분명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영어 공용화 논쟁의 공간도 순수한 진공의 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참고로 영어의 모국인 미국과 영국은 합동하여 얼마전 이라크를 폭격했다. 물론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식민지기 아나키스트로 활동하다 이른바 일본주의자로 전향한 현영섭이라는 사람이 1940년경에 펼친 주장을 한 번 보자.
'일본어가 동아시아의 공용어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일본어를 통해 조선인의 미묘한 감정,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조선문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복거일씨는 자신을 비판하는 글에 대해 반론을 펴며 '영어 공용어는 대세다'라는 제목을 붙인 바 있다. 영어가 전세계의 공용어로 되어가는 '대세'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현영섭의 논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일본어가 동아시아의 공용어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대세'와 '상황'. 예나 지금이나 이 '객관성'의 무게를 이겨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또한 '일본어를 통해' '조선문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참으로 낯이 익다. 여기서 '거의 모든 知的 산물들은 영어로 씌어지거나 번역돼서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복씨의 주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영섭의 주장을 조금 더 보자.
'조선의 문화와 정서도 일본어를 통해 능히 표현될 수 있으며, 조선어도 역사연구를 위한 고전언어로서는 존속할 것이다'
고전언어라. 현영섭은 고전언어라는 말을 사용했다. 복씨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경우 한국어는 점차 '박물관 언어'로 남게 될 것으로 예견한 바 있다. 완전 소멸되기보다는 학자들에 의해 보존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복씨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을 선택할 권리를 자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자손선택론'을 펴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일찍이 현영섭씨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동양전체는 일본의 지도를 받고 일본어는 동양의 공통어가 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자손에게 유년부터 일본어를 교수하여 본능적으로 습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주장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시대를 달리한 두 사람의 의견이 상당히 유사한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물론 미국과 일본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화가 사실상 미국화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당시의 일본화는 조선인에게 있어 곧 세계화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영섭은 말했다.
'장래의 세계어가 될 일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것은 일대진보다.'
'동양의 공통어인 일본어를 일상어로 하여 칠천만의 內地동포(일본인-인용자), 全동양민족에게 반도인의 개성을 보이며 그 개성에 상당한 지위를 얻자. 그것은 세계성을 띤 일본인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의 재능, 성의, 진실에 상응한 지위를 획득하게 됨을 의미한다.'
<b>대세와 상황이 강제하는 논리를 곱씹어보자</b>
당시에도 이와 같은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 거센 반발이 있었다. 조선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던 인정식이라는 이는 현영섭의 논리를 '소아병적 이론'으로 몰아붙였다. 사회주의자로 이름높다 전향한 김명식이라는 이는 현영섭의 주장을 '무분별한 개화주의'라며 비판했다. 사실 이 사람들도 이른바 '친일파'라는 점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식민지 조선의 일본화라는 전체적인 추세나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방식과 속도에 있어 의견을 달리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겉으로는 같은 친일파였지만, 딛고있는 가치관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의 입장은 세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세계화 그러니까 영어 공용어화 등에는 반대하는 이른바 '열린 민족주의자'라고나 할까 하는 부류와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이거, 열린 민족주의자들을 친일파에다 비교하다니, 정말 큰일날 소리지만 아무튼 그런 구석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 공용화론자나 세계화론자들이 친일파와 똑같이 다루어질 수는 없다. 지금 미국이 총칼 들고 영어공용화를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의 무게가 아직 강대국간의 서열다툼이 한창이던 시절의 일본과 같을 수도 없다. 다만 영어콤플렉스라는 이 땅 백성들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며 다가오는, 정말 틀린 구석 하나 없이 구구절절히 맞는 말만 늘어놓는 영어공용화론자의 절절한 호소를 잠깐 비켜서서 볼 필요는 있다.
일단 세계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이른바 세계의 '대세'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들에게 앞서간 선각자들의 그야말로 한 발 앞선 주장을 일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전향 대 비전향, 민족 대 반민족이라는 식민지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흑백논리적인 시각을 나 역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리높여 일본에의 同化를 주장하고 皇軍에 나아가 목숨을 바칠 것을 선동한 이들을 칭찬할 수는 없다. 지금의 우리에게 이른바 세계화론자들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한번 곱씹어 볼 능력과 여유가 없다면, 식민지기 일본제국의 웅비라는 '객관적' 상황에 보조를 맞출 것을 호소했던 '합리적' 주장들을 어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b>세계화의 주술을 깨어버리자</b>
'대세'는 물론 존재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을 거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공용화를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미국이 언제까지 일류국가로 남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은 '대세'에 대한 예측이 다를 뿐 논리구조에 있어서는 사실 비판의 대상과 서로 차이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화라는 가장 '합리적'인 담론이 감추고 있는 너무나 '비합리적'인 현실을 들춰내는 일이다. 이것만이 '합리'와 '객관'의 주술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일 것이다.
노동자가 실업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노숙자가 가정 파탄의 슬픔을 호소할 때 이 사회의 교양인들은 '세계화의 절박함'으로 화답한다. 이러한 동문서답이 힘을 발휘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세계화'는 기업의 투명한 경영이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하나의 명백한 정치적 이념이다.
모든 것을 바치고 조금만 더 참으면 커다란 영광이 돌아올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구호가 그러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세계화'는 모든 것을 바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영어공용화론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토록 정겨운 우리말마저 '세계화'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바쳐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정녕 세계화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 세계화하지 말자. 더 이상 확실치도 않은 미래를 위해 애꿎은 현실을 갖다바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계화. 세계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많은 얘기들 중에 이른바 '英語公用化'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다. 요즘에는 조금 시들해졌지만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무게를 생각할 때 완전히 끝난 문제일 수는 없다. 사실 '세계화'라고 하면 공기업 해외매각이나 무슨무슨 시장개방 같은 것이 떠오른다. 언어의 문제는 자존심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어찌 생각하면 절박한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것이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관, 정서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어 공용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이야말로 주장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세계화라는 '과제'에 임하는 우리 사회의 이러저러한 시각을 잘 드러내주었던 논쟁이 아니었나 싶다.
아시다시피 논쟁은 1998년 6월 소설가 복거일씨가 {국제어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에서 '영어공용어화'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복씨 주장의 요는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거친 민족주의를 길들일'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민족주의를 제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삼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용감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그야말로 거센 반발이 있었다.
우선 남영신이라는 분이 '우리 문화와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며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한영우 교수 또한 '우리 역사에서 경제논리와 극단적 합리주의가 나라를 망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복씨가 '모든 사물을 경제논리로 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반론을 폈다. 소설가 이윤기씨도 '어머니가 문둥이라고 할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며 유감을 나타냈다.
포항공대의 박이문 교수는 '탈민족주의에는 찬성하지만 영어 공용어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하대 국문과의 최원식 교수는 '영어공용화론은 서구패권주의 연장'이며, 복씨의 영어론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규율해왔던, 민족주의적 동력에 근거한 국가주의를 해체하고 서구, 특히 미국의 시장주의를 한국에 이식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우상과 시장의 우상을 함께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의 탐색'이라고 주장했다.
<b>세계화에 대한 미묘한 차이</b>
한편 복거일씨를 지지 혹은 옹호하는 입장도 더러 있었다. 충남대 불문과 정과리 교수는 복씨가 촉구하는 것은 '세계화의 이중적 상황에서 한국인에게 요구되는 불가피한 생존조건에 대한 성찰'일 뿐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한글과 영어의 공존방식에 대한 토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의 함재봉 교수도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가'이며, '영어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차원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지 반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논쟁은 뜨겁게 진행되었고 그러다보니 논지가 조금씩 왜곡되기도 했다. 복거일씨는 자기 주장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늘 그렇듯 조금 왜곡된 논쟁이었다. 그러나 비판과 변론의 지점이 서로 딱딱 맞는 그런 논쟁이 어디 있겠는가? 그 정도면 어쨌든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대세라는 점을 양편 모두 인정한 점, '거친 민족주의'를 경계한 점, 영어의 중요성을 인정한 점 등을 보면 결국 같은 얘기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비록 미묘할지라도 양쪽의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는 영어의 공용어화, 나아가 세계화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잠잠했던 논쟁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00년 벽두였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에서 영어를 제2공용어로 채택할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부터였다. 사실 1999년 여름에 이미 아사히(朝日)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편집위원이 언론기고문을 통해 영어공용어론을 들고나온 바 있었다. 이 때도 한국 언론에 소개되어 어느 정도 관심을 끌었던 바 있었다.
새천년 1월 일본에서 총리 자문기관인 '21세기 일본의 구상간담회'가 영어를 제2공용어로 만들기 위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사회에는 다시 한번 영어 공용어화의 논의가 몰아치게 된 것이다. 이어 태국에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었고, 그 뒤로 한참 동안 싱가포르가 어떠니, 말레이지아는 어떠니하며 그야말로 논의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기회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b>우리나라가 거쳐온 세계화(?)의 역사</b>
세계화라는 말이 나온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이지만, 지금처럼 생존(?)의 문제로 절실하게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IMF사태 이후였다. 그 후 몇년간은 세계화를 주장하는 쪽이나 세계화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쪽이나, IMF 위기라는 가쁜 숨에서 자유롭기 힘든 시절이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한숨 돌렸다는 증거인지 몰라도, 얼마 전부터는 신앙처럼 全사회를 뒤덮고 있던 세계화의 논리를 상대화시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문화비평가 조형준씨는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자'는 장난기 어린 제안을 했다. 아예 '자진 상납'을 해버리면 '나랏말싸미 미귁에 달아' 고통을 겪는 일도 없을 거라는 얘기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미국병에 걸린 세태를 비꼰 야유지만,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지금의 장난 아닌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조씨의 제안은 단순한 장난을 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사실 이런 주장의 원조는 소장철학자 탁석산씨다.
탁씨는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책에서 우리 민족 앞에 놓여있는 길을 '자력갱생의 길',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 '현지고용인', '강대국의 길',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국가'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영어공용어화 등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국가'를 우리 민족이 택해야 할 길로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이라. 참 재밌는 발상이다. 미국이 받아줄까를 생각해 보면 더 재미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가 한 때, 미국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한 부분이었던 적이 있기는 했다. 물론 자진 상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이완용 등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자진 상납이라고 해석될 소지도 있다).
일본도 1920년대를 넘어서면서 최소한 군사력에 있어서는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3강에 끼었던 나라였다. 우리 조선도 그 나라에 엮여 본의 아니게 꽤나 세계화되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지
지금의 서울역에 가면 북경, 상해는 물론 모스크바를 거쳐 런던까지 갈 수 있는 기차표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만주에는 엄청나게 많은 조선인들이 옮겨살고 있었다. 1932년 만주국이 생긴 후에는 더 많은 조선인들이 관리로 임명되거나 혹은 사업상의 이유로 만주국의 철도를 타고 각지로 흩어졌다.
이것까지 세계화라고 하면 좀 불경스러운 얘기가 되겠지만,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던 식민지 말기에는 전선의 확대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보내졌다. 해방 후 해외로부터 한국으로 돌아온 이는 수백만명이었다. 물론 징용이나 징병에 끌려나갔던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었지만, 유학이나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 혹은 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사업차 해외에 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도 주위의 60∼70대 어르신 들 중 심심치 않게 고향이 상해다, 장춘이다, 오사까다 하는 분들을 많이 뵐 수 있다. 물론 요새도 아버지 따라서 어렸을 때 미국 살았다는 사람들 종종 있지만 내 생각에는 전자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아뭏튼 그 시절도 일본이랑 엮여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다.
<b>일본어전용론과 영어공용화론의 닮은 꼴</b>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식민지 말기의 잡지에서 지금의 영어 공용화론과 쌍둥이처럼 닮은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상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고, 제2공용어 정도가 아니라 조선어 사용을 금하고 일본어를 전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또한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는 일제의 번뜩이는 총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야말로 전시총동원체제하의 식민지 치하였다는 점은 분명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영어 공용화 논쟁의 공간도 순수한 진공의 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참고로 영어의 모국인 미국과 영국은 합동하여 얼마전 이라크를 폭격했다. 물론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식민지기 아나키스트로 활동하다 이른바 일본주의자로 전향한 현영섭이라는 사람이 1940년경에 펼친 주장을 한 번 보자.
'일본어가 동아시아의 공용어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일본어를 통해 조선인의 미묘한 감정,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조선문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복거일씨는 자신을 비판하는 글에 대해 반론을 펴며 '영어 공용어는 대세다'라는 제목을 붙인 바 있다. 영어가 전세계의 공용어로 되어가는 '대세'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현영섭의 논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일본어가 동아시아의 공용어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대세'와 '상황'. 예나 지금이나 이 '객관성'의 무게를 이겨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또한 '일본어를 통해' '조선문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참으로 낯이 익다. 여기서 '거의 모든 知的 산물들은 영어로 씌어지거나 번역돼서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복씨의 주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영섭의 주장을 조금 더 보자.
'조선의 문화와 정서도 일본어를 통해 능히 표현될 수 있으며, 조선어도 역사연구를 위한 고전언어로서는 존속할 것이다'
고전언어라. 현영섭은 고전언어라는 말을 사용했다. 복씨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경우 한국어는 점차 '박물관 언어'로 남게 될 것으로 예견한 바 있다. 완전 소멸되기보다는 학자들에 의해 보존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복씨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을 선택할 권리를 자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자손선택론'을 펴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일찍이 현영섭씨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동양전체는 일본의 지도를 받고 일본어는 동양의 공통어가 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자손에게 유년부터 일본어를 교수하여 본능적으로 습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주장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시대를 달리한 두 사람의 의견이 상당히 유사한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물론 미국과 일본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화가 사실상 미국화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당시의 일본화는 조선인에게 있어 곧 세계화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영섭은 말했다.
'장래의 세계어가 될 일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것은 일대진보다.'
'동양의 공통어인 일본어를 일상어로 하여 칠천만의 內地동포(일본인-인용자), 全동양민족에게 반도인의 개성을 보이며 그 개성에 상당한 지위를 얻자. 그것은 세계성을 띤 일본인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의 재능, 성의, 진실에 상응한 지위를 획득하게 됨을 의미한다.'
<b>대세와 상황이 강제하는 논리를 곱씹어보자</b>
당시에도 이와 같은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 거센 반발이 있었다. 조선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던 인정식이라는 이는 현영섭의 논리를 '소아병적 이론'으로 몰아붙였다. 사회주의자로 이름높다 전향한 김명식이라는 이는 현영섭의 주장을 '무분별한 개화주의'라며 비판했다. 사실 이 사람들도 이른바 '친일파'라는 점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식민지 조선의 일본화라는 전체적인 추세나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방식과 속도에 있어 의견을 달리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겉으로는 같은 친일파였지만, 딛고있는 가치관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의 입장은 세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세계화 그러니까 영어 공용어화 등에는 반대하는 이른바 '열린 민족주의자'라고나 할까 하는 부류와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이거, 열린 민족주의자들을 친일파에다 비교하다니, 정말 큰일날 소리지만 아무튼 그런 구석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 공용화론자나 세계화론자들이 친일파와 똑같이 다루어질 수는 없다. 지금 미국이 총칼 들고 영어공용화를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의 무게가 아직 강대국간의 서열다툼이 한창이던 시절의 일본과 같을 수도 없다. 다만 영어콤플렉스라는 이 땅 백성들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며 다가오는, 정말 틀린 구석 하나 없이 구구절절히 맞는 말만 늘어놓는 영어공용화론자의 절절한 호소를 잠깐 비켜서서 볼 필요는 있다.
일단 세계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이른바 세계의 '대세'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들에게 앞서간 선각자들의 그야말로 한 발 앞선 주장을 일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전향 대 비전향, 민족 대 반민족이라는 식민지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흑백논리적인 시각을 나 역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리높여 일본에의 同化를 주장하고 皇軍에 나아가 목숨을 바칠 것을 선동한 이들을 칭찬할 수는 없다. 지금의 우리에게 이른바 세계화론자들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한번 곱씹어 볼 능력과 여유가 없다면, 식민지기 일본제국의 웅비라는 '객관적' 상황에 보조를 맞출 것을 호소했던 '합리적' 주장들을 어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b>세계화의 주술을 깨어버리자</b>
'대세'는 물론 존재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을 거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공용화를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미국이 언제까지 일류국가로 남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은 '대세'에 대한 예측이 다를 뿐 논리구조에 있어서는 사실 비판의 대상과 서로 차이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화라는 가장 '합리적'인 담론이 감추고 있는 너무나 '비합리적'인 현실을 들춰내는 일이다. 이것만이 '합리'와 '객관'의 주술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일 것이다.
노동자가 실업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노숙자가 가정 파탄의 슬픔을 호소할 때 이 사회의 교양인들은 '세계화의 절박함'으로 화답한다. 이러한 동문서답이 힘을 발휘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세계화'는 기업의 투명한 경영이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하나의 명백한 정치적 이념이다.
모든 것을 바치고 조금만 더 참으면 커다란 영광이 돌아올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구호가 그러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세계화'는 모든 것을 바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영어공용화론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토록 정겨운 우리말마저 '세계화'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바쳐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정녕 세계화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 세계화하지 말자. 더 이상 확실치도 않은 미래를 위해 애꿎은 현실을 갖다바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