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b>대우자동차는 경찰들이 만드는가?</b>
지난 2월 19일, 헬기와 포크레인을 동원한 4천여명의 전경들이 돌과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6백여 노동자들을 내몰고 공장을 점령한지 이제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한달 사이 바뀌어 버린 부평공장 안과 그 일대의 풍경. 공장 안에는 수십여대에 이르는 전경차가 들어서 있고, 순찰도는 경찰병력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물론 이조차도 먼발치에서나마, 혹은 지나치는 버스 차창을 통해 확인되는 것들이다. 정문과 동문을 중심으로 공장 담벼락을 빙 둘러싸고 대략 10미터 간격으로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탓에, 무심히 지나치는 '시민'이 아니라면 공장에 접근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유혈폭력으로 입성에 성공한 점령군들은 점령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하는 것인지,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장 구(舊)식당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며 '살아남은' 대우 노동자들의 출퇴근길을 마중하고 환송한다. 심지어 공장 곳곳에서 족구를 하는 점령군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공장이 재가동되기 시작한 지난 3월 7일 이후, 부평공장에서는 레간자와 매그너스가 정상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럼, 대우자동차는 경찰들이 만드는 것인가?
<b>차라리 일체의 국민된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라</b>
<b>- 모든 집회는 불허되고 있다 </b>
기선은 이미 제압되어 있었다. 2월 19일, 공장을 침탈하던 전투경찰들의 그 거침없는 행동으로 이후의 상황은 이미 예견되었다. 4천2백명의 전투경찰, 7대의 포크레인을 앞세운 지상공격으로는 성이 안찼는지, 헬기까지 2대 동원되었다. 그 날 이후 인천에서는 대우차 문제와 관련한 모든 집회는 불허되고 있다.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은 산재관련 집회였다. 이는 산재요양중인 노동자들이 일부 정리해고에 포함된 것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내린 조치이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정부와 경찰측의 입장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집회 및시위에 관한 어떠한 '법'에도 근거하지 않는다. 그 무법의 시간동안 연행된 노동자·시민의 수는 7백여명에 이른다.
그중 대우차 노조 최종학 대변을 비롯한 구속자 수가 20여명, 불구속 80여명, 즉심 130여명, 훈방 440여명에 이른다. 수치만으로도 '계엄상황'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기간, 인천의 상황이 어느 정도는 그려진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통계가 그렇듯 현실은 수치를 훨씬 초월한다. 700이라는 수치만 가지고는 난무했던 폭력과 인권유린 행태를 도저히 담을 수 없다.
<b>- 불법검문, 폭력연행이 판을 치고 있다</b>
시민들에게조차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은 무엇보다 불법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검문이다. 공장이 소재에 있는 부평인근의 전철역인 부평역, 갈산역은 지금도 수백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들 역을 전후로 한 백운역, 동암역, 대학과 인접한 제물포역, 주안역(이렇게 따지면, 인천을 지나는 국철구간은 거의 다!)에도 지나는 시민보다도 많은 전경들이 배치된다.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 날의 검문은 거의 연행을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관행처럼, 집회에 갈 조짐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과 연행이 아니라, 집회에 가지 않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연행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 말은 한번 찍히면 연행되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름, 소속, 검문사유를 사전에 고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상부의 지시'라는 그나마도 고상한 말이 아닌, 으르고 협박하고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곤봉과 군화발 속에 코푼 휴지만도 못한 것이 된다. 폭력의 의도성도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연행과정에서의 방패로 내려 찍고, 팔을 꺾는 등의 과도한 폭력, 저항이 가능하지 않는 호송차 안에서조차도 목을 비틀고 짓누르는 폭력이 가해졌다. 수집된 사례들만 보아도 이러한 마구잡이식 검문과 폭력연행의 초법성은 한눈에 드러난다. 대부분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신변의 위협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고, 신분증을 내보였다. 지갑과 트렁크를 열어보이며, 잠바 안주머니를 열어보이고, 심지어는 화염병 투척의 혐의를 벗기 위해 두손을 그들의 면전에 가져다 놓아야 했던 것이다.
<b>- 빠지지 않았던 강압수사, 알몸수사</b>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공권력의 폭력성과 개인 인권의 유린은 연행 후의 수사과정에서도 가감없이 나타난다. 검문과 연행의 일상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묵비권의 행사가 피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우차투쟁 연행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자격조차 없었다. 묵비권행사를 방해하는 것 자체가 위법조사이건만, 한술 더 떠 묵비권의 행사가 구속사유가 된다는 식의 좋게 말해 직권남용, 사실상의 공갈·협박이 판을 쳤다. 피켓시위를 하다 연행된 한 조합원은 담당수사관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구속사유까지 된다'고 겁주며 진술을 유도하여, 즉심판결에서 벌금 10만원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작년 전교조교사들과 보건의료노조 차수련위원장을 비롯한 시위관련 많은 연행자들을 통해 폭로된 알몸수사 역시 빠지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들의 법적대응 끝에 법원은 "흉악범 또는 마약사범도 아닌 피의자를 상대로 유치장에서 알몸수색을 실시하는 것은 과도한 공권력 집행", "긴급체포 후 경찰에 구금되는 과정에서 알몸수색을 당한 여성피의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경찰청장 역시 "자해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옷을 착용한 상태에서 신체검사를 실시하겠다"는 가자회견을 가졌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우투쟁과정에서 상당수 자행된 알몸수사, 속옷만 입고 진행된 수사, 그 상태로 강요된 '앉았다 일어섰다'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팽겨쳐진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는 노동자들은 흉악범이라는 말인가?
정리해고 직전까지도 무급순환휴직안을 내놓고, 명예퇴직자들 대한 퇴직금의 50%를 분담하겠다던, 벼랑 끝에 선 1750명 노동자의 생존을 정리해고통지서 한통으로 짓밟아버린 경찰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노동자들이 흉악범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차라리 그들의 국민된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라. 생존권을 빼앗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서 함부로 발길질하고, 인신을 구속하고, 알몸을 드러내라 하며, 그들의 일체의 국민된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라.
<b>공권력 가는 길에 성역은 없었다</b>
인권유린의 종합전시장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일련의 폭력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해고노동자 부인과 아이들, 장애인과 같은 방어능력이 약한 사회적 약자들에게까지 무차별적 폭력은 여지없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대우차노조 홈페이지에만 가도 당장 확인할 수 있다. 한 해고자부인은 아이를 업고 출근투쟁에 나왔었는데, 여경들이 아이를 등에서 떼어내 먼저 닭장차에 싣는 바람에 연행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날 집회장소에 있었던 한 해고자부인은 여경들에 의해 머리채가 잡히고 사지가 잡혀 끌려가는 과정에서 웃옷이 거의 벗겨지기도 했는데, 그 날의 모멸감과 충격 끝에 유산을 하였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공장이 재가동되던 7일 출근투쟁에서 어린아이가 전경들의 군화발에 짓밟히기도 하였고, 어떤 아이는 방패에 떠밀리는 충격을 경험한 끝에 평소 앓던 심장판막증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 중이다. 집회장소로 자주 사용되었던 부평역 일대와 대우차공장일대에서는 시민들에 대한 일상적인 검문의 와중에 장애인들이 겪은 폭력도 여러 건 있었다. 그 중 한 장애인은 검문하는 경찰에게 장애인증을 내보였는데, 되돌아온 것이라곤 "경찰도 장애인수첩있는 사람 있다"는 말같지 않은 소리와 주먹질, 발길질뿐이었다.
이 밖에도 유치장에 연행된 해고자 부인에게 수갑을 채워 가족면회를 하게 한 것, 훈방되는 연행자들에게 이후 집회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근거없는 각서를 종용한 것 등 공권력의 불법적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어디 그 뿐인가? 아버지뻘 되는 조합원들에게 전경들이 내뱉은 각종 욕설이나, 감시자를 밖에 세워두고 문을 연 채로 소변을 보게 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도 이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권력 가는 길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양심의 자유도, 어떠한 성역도 없었다.
<b>경찰의 폭력은 공익을 위한 정당한 조치인가?</b>
작년에 경찰은 폭력과격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참가 배제와 질서유지선 침범시 처벌 강화, 주말공휴일 도심지에서의 대규모 집회 및 시위제한, 질서유지각서의 법규정 명문화 등을 골자로 하는 집시법개정을 추진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개정 움직임에 맞서 운동진영은 국민의 기본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실상 집회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이번 대우차투쟁 과정에서의 난무하는 폭력들을 통해 우리는 굳이 법개정이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법만으로도, 아니 법 없이도 사정거리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복할 수 있는 공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확인하였다.
최근 인천에서의 모든 시위가 불허되고 있는 근거는, '귀 단체가 신고한 ○월 ○일의 집회에서의 화염병과 폭력충돌로 인해 다수의 인명피해, 차량전소, 건조물 피해가 있었기에', '귀 단체가 신고한 ○월 ○일의 집회가 불법폭력시위가 명백하므로 집시법 제5조 제①항의 2호(집단적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에 의거해 금지통보'라는 내용의 공문 몇 장이다. 이미 찍혔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집회시 질서유지선이 만들어지면서 나타난 여경들의 역할은 격렬시위, 폭력연행 때마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논란을 입막음하기 위한 확실한 안정장치였다. 그리고 그 난무했던 폭력은 폭력시위자들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자 공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따름이었다.
<b>다만 중요한 것은 모두의 빼앗긴 인권이다!</b>
공익과 사회질서를 빙자한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어느새 개인의 일상을 감시·통제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각종 장치에까지 와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온라인공간에서의 온갖 통제장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기나긴 파시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합의에 근거한, 합리적인 공권력의 운용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전철을 타기 위해 경찰들에게 가방을 내맡겨야 하고,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으면 군말 없이 연행에 응해야 하고, 매맞는 노동자가 안쓰러워 항의 한번 하려면 무차별적 폭력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일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1750명 노동자를 거리낌없이 정리해고하는 배짱좋은 정권이라면 이 정도 저항쯤은 각오했어야 했다. 강요된 의원퇴직, 임금체불, 구속과 수배의 일방적 희생 끝에 받아든 것이 정리해고통지서인 노동자들이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당연히 예상했어야 한다. 그런데, 독재정권 시절을 방불케하는, 폭력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김대중정권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얻어맞고, 밟히고, 벌거벗겨진 사람들, 어른들의 우악스러운 손과 발에 팔이 꺾이고 몸을 짓밟힌 어린 아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의 빼앗긴 인권이고 인간된 존엄이다. 지난 한달 동안 이 곳 인천에서 노동자의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2월 19일, 헬기와 포크레인을 동원한 4천여명의 전경들이 돌과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6백여 노동자들을 내몰고 공장을 점령한지 이제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한달 사이 바뀌어 버린 부평공장 안과 그 일대의 풍경. 공장 안에는 수십여대에 이르는 전경차가 들어서 있고, 순찰도는 경찰병력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물론 이조차도 먼발치에서나마, 혹은 지나치는 버스 차창을 통해 확인되는 것들이다. 정문과 동문을 중심으로 공장 담벼락을 빙 둘러싸고 대략 10미터 간격으로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탓에, 무심히 지나치는 '시민'이 아니라면 공장에 접근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유혈폭력으로 입성에 성공한 점령군들은 점령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하는 것인지,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장 구(舊)식당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며 '살아남은' 대우 노동자들의 출퇴근길을 마중하고 환송한다. 심지어 공장 곳곳에서 족구를 하는 점령군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공장이 재가동되기 시작한 지난 3월 7일 이후, 부평공장에서는 레간자와 매그너스가 정상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럼, 대우자동차는 경찰들이 만드는 것인가?
<b>차라리 일체의 국민된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라</b>
<b>- 모든 집회는 불허되고 있다 </b>
기선은 이미 제압되어 있었다. 2월 19일, 공장을 침탈하던 전투경찰들의 그 거침없는 행동으로 이후의 상황은 이미 예견되었다. 4천2백명의 전투경찰, 7대의 포크레인을 앞세운 지상공격으로는 성이 안찼는지, 헬기까지 2대 동원되었다. 그 날 이후 인천에서는 대우차 문제와 관련한 모든 집회는 불허되고 있다.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은 산재관련 집회였다. 이는 산재요양중인 노동자들이 일부 정리해고에 포함된 것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내린 조치이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정부와 경찰측의 입장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집회 및시위에 관한 어떠한 '법'에도 근거하지 않는다. 그 무법의 시간동안 연행된 노동자·시민의 수는 7백여명에 이른다.
그중 대우차 노조 최종학 대변을 비롯한 구속자 수가 20여명, 불구속 80여명, 즉심 130여명, 훈방 440여명에 이른다. 수치만으로도 '계엄상황'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기간, 인천의 상황이 어느 정도는 그려진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통계가 그렇듯 현실은 수치를 훨씬 초월한다. 700이라는 수치만 가지고는 난무했던 폭력과 인권유린 행태를 도저히 담을 수 없다.
<b>- 불법검문, 폭력연행이 판을 치고 있다</b>
시민들에게조차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은 무엇보다 불법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검문이다. 공장이 소재에 있는 부평인근의 전철역인 부평역, 갈산역은 지금도 수백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들 역을 전후로 한 백운역, 동암역, 대학과 인접한 제물포역, 주안역(이렇게 따지면, 인천을 지나는 국철구간은 거의 다!)에도 지나는 시민보다도 많은 전경들이 배치된다.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 날의 검문은 거의 연행을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관행처럼, 집회에 갈 조짐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과 연행이 아니라, 집회에 가지 않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연행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 말은 한번 찍히면 연행되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름, 소속, 검문사유를 사전에 고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상부의 지시'라는 그나마도 고상한 말이 아닌, 으르고 협박하고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곤봉과 군화발 속에 코푼 휴지만도 못한 것이 된다. 폭력의 의도성도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연행과정에서의 방패로 내려 찍고, 팔을 꺾는 등의 과도한 폭력, 저항이 가능하지 않는 호송차 안에서조차도 목을 비틀고 짓누르는 폭력이 가해졌다. 수집된 사례들만 보아도 이러한 마구잡이식 검문과 폭력연행의 초법성은 한눈에 드러난다. 대부분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신변의 위협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고, 신분증을 내보였다. 지갑과 트렁크를 열어보이며, 잠바 안주머니를 열어보이고, 심지어는 화염병 투척의 혐의를 벗기 위해 두손을 그들의 면전에 가져다 놓아야 했던 것이다.
<b>- 빠지지 않았던 강압수사, 알몸수사</b>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공권력의 폭력성과 개인 인권의 유린은 연행 후의 수사과정에서도 가감없이 나타난다. 검문과 연행의 일상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묵비권의 행사가 피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우차투쟁 연행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자격조차 없었다. 묵비권행사를 방해하는 것 자체가 위법조사이건만, 한술 더 떠 묵비권의 행사가 구속사유가 된다는 식의 좋게 말해 직권남용, 사실상의 공갈·협박이 판을 쳤다. 피켓시위를 하다 연행된 한 조합원은 담당수사관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구속사유까지 된다'고 겁주며 진술을 유도하여, 즉심판결에서 벌금 10만원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작년 전교조교사들과 보건의료노조 차수련위원장을 비롯한 시위관련 많은 연행자들을 통해 폭로된 알몸수사 역시 빠지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들의 법적대응 끝에 법원은 "흉악범 또는 마약사범도 아닌 피의자를 상대로 유치장에서 알몸수색을 실시하는 것은 과도한 공권력 집행", "긴급체포 후 경찰에 구금되는 과정에서 알몸수색을 당한 여성피의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경찰청장 역시 "자해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옷을 착용한 상태에서 신체검사를 실시하겠다"는 가자회견을 가졌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우투쟁과정에서 상당수 자행된 알몸수사, 속옷만 입고 진행된 수사, 그 상태로 강요된 '앉았다 일어섰다'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팽겨쳐진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는 노동자들은 흉악범이라는 말인가?
정리해고 직전까지도 무급순환휴직안을 내놓고, 명예퇴직자들 대한 퇴직금의 50%를 분담하겠다던, 벼랑 끝에 선 1750명 노동자의 생존을 정리해고통지서 한통으로 짓밟아버린 경찰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노동자들이 흉악범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차라리 그들의 국민된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라. 생존권을 빼앗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서 함부로 발길질하고, 인신을 구속하고, 알몸을 드러내라 하며, 그들의 일체의 국민된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라.
<b>공권력 가는 길에 성역은 없었다</b>
인권유린의 종합전시장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일련의 폭력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해고노동자 부인과 아이들, 장애인과 같은 방어능력이 약한 사회적 약자들에게까지 무차별적 폭력은 여지없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대우차노조 홈페이지에만 가도 당장 확인할 수 있다. 한 해고자부인은 아이를 업고 출근투쟁에 나왔었는데, 여경들이 아이를 등에서 떼어내 먼저 닭장차에 싣는 바람에 연행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날 집회장소에 있었던 한 해고자부인은 여경들에 의해 머리채가 잡히고 사지가 잡혀 끌려가는 과정에서 웃옷이 거의 벗겨지기도 했는데, 그 날의 모멸감과 충격 끝에 유산을 하였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공장이 재가동되던 7일 출근투쟁에서 어린아이가 전경들의 군화발에 짓밟히기도 하였고, 어떤 아이는 방패에 떠밀리는 충격을 경험한 끝에 평소 앓던 심장판막증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 중이다. 집회장소로 자주 사용되었던 부평역 일대와 대우차공장일대에서는 시민들에 대한 일상적인 검문의 와중에 장애인들이 겪은 폭력도 여러 건 있었다. 그 중 한 장애인은 검문하는 경찰에게 장애인증을 내보였는데, 되돌아온 것이라곤 "경찰도 장애인수첩있는 사람 있다"는 말같지 않은 소리와 주먹질, 발길질뿐이었다.
이 밖에도 유치장에 연행된 해고자 부인에게 수갑을 채워 가족면회를 하게 한 것, 훈방되는 연행자들에게 이후 집회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근거없는 각서를 종용한 것 등 공권력의 불법적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어디 그 뿐인가? 아버지뻘 되는 조합원들에게 전경들이 내뱉은 각종 욕설이나, 감시자를 밖에 세워두고 문을 연 채로 소변을 보게 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도 이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권력 가는 길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양심의 자유도, 어떠한 성역도 없었다.
<b>경찰의 폭력은 공익을 위한 정당한 조치인가?</b>
작년에 경찰은 폭력과격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참가 배제와 질서유지선 침범시 처벌 강화, 주말공휴일 도심지에서의 대규모 집회 및 시위제한, 질서유지각서의 법규정 명문화 등을 골자로 하는 집시법개정을 추진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개정 움직임에 맞서 운동진영은 국민의 기본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실상 집회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이번 대우차투쟁 과정에서의 난무하는 폭력들을 통해 우리는 굳이 법개정이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법만으로도, 아니 법 없이도 사정거리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복할 수 있는 공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확인하였다.
최근 인천에서의 모든 시위가 불허되고 있는 근거는, '귀 단체가 신고한 ○월 ○일의 집회에서의 화염병과 폭력충돌로 인해 다수의 인명피해, 차량전소, 건조물 피해가 있었기에', '귀 단체가 신고한 ○월 ○일의 집회가 불법폭력시위가 명백하므로 집시법 제5조 제①항의 2호(집단적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에 의거해 금지통보'라는 내용의 공문 몇 장이다. 이미 찍혔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집회시 질서유지선이 만들어지면서 나타난 여경들의 역할은 격렬시위, 폭력연행 때마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논란을 입막음하기 위한 확실한 안정장치였다. 그리고 그 난무했던 폭력은 폭력시위자들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자 공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따름이었다.
<b>다만 중요한 것은 모두의 빼앗긴 인권이다!</b>
공익과 사회질서를 빙자한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어느새 개인의 일상을 감시·통제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각종 장치에까지 와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온라인공간에서의 온갖 통제장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기나긴 파시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합의에 근거한, 합리적인 공권력의 운용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전철을 타기 위해 경찰들에게 가방을 내맡겨야 하고,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으면 군말 없이 연행에 응해야 하고, 매맞는 노동자가 안쓰러워 항의 한번 하려면 무차별적 폭력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일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1750명 노동자를 거리낌없이 정리해고하는 배짱좋은 정권이라면 이 정도 저항쯤은 각오했어야 했다. 강요된 의원퇴직, 임금체불, 구속과 수배의 일방적 희생 끝에 받아든 것이 정리해고통지서인 노동자들이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당연히 예상했어야 한다. 그런데, 독재정권 시절을 방불케하는, 폭력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김대중정권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얻어맞고, 밟히고, 벌거벗겨진 사람들, 어른들의 우악스러운 손과 발에 팔이 꺾이고 몸을 짓밟힌 어린 아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의 빼앗긴 인권이고 인간된 존엄이다. 지난 한달 동안 이 곳 인천에서 노동자의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