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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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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투쟁의 정세적 의미와 방향

최석진 | 인천지부 집행위원
<b>20년전보다 더 열악한 상황</b>

정부는 노조가 농성에 들어간지 사흘만인 지난 달 19일, 4천2백명의 공권력을 투입하여 농성대오 600여명을 해산시켰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부평과 창원, 군산 소재 대우차 생산공장의 조업은 재개되었다. 회사측 발표대로라면 '정상가동'인 셈이다. 그러나 경인선 부평역 광장에서부터 갈산동 대우차 공장까지는 지금도 수천명의 전투경찰이 배치되어 있고, 그만큼의 병력이 대우차 공장 안에도 있다. 공장 안에 있는 2식당과 조합사무실이 있던 건물의 소극장은 전투경찰의 숙소로 둔갑하였다.

노동조합 사무실 역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자는 조합원자격이 인정됨'에도 해고조합원의 조합사무실 출입은 전경에 의해 제지당하고 있다. 지금 인천에는 대우자동차 공장을 지키는 임무를 띤 전투경찰의 숫자가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의 숫자보다 많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풍경, 그러나 상황은 더 복잡하다. IMF 3년, 김대중정권 3년 동안 대우자동차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b>대우차 부실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b>

대우차는 1998년 4/4분기에 이미 외환차입 중단으로 인한 심각한 자금사정 악화와 내수침체로 인해 사실상 부도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김우중 전회장은 분식회계를 통해 적자를 흑자로 조작하고, 한편으로는 대우차 지분 50%와 경영권을 두고 GM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은 해였고, GM 또한 자국의 미시건주 플린트(Flint)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파업사태로 인해 대우차는 신규자금 유입과 지분매각협상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자금사정은 호전되지 않았고 대우자동차는 결국, 1999년 8월 26일 워크아웃 사업장이 되었다. 산업자원부에서 '일시적 공기업화'방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였지만 기각되었다. 이 때부터 대우차는 기업회생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적인 워크아웃과 다른 과정, 즉 해외매각을 통한 채권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단 관리기업이 되었다.

2000년 6월 29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포드사가 석 달만에 인수포기선언을 하게 되면서 정부는 세 가지 문제를 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실사과정에서 드러난 우발채무의 부담, 매각실패에 대한 책임, 고용과 부품업체에 대한 포드사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동의서 국면과 청산협박을 통해 부도의 책임을 노조로 떠넘기는데 성공하였고, 자금력이 있는 우량 부품사가 아닌 경우에는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상당수가 부도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대우차는 우발채무의 부담이 없는 '법정관리'상태로 안착했다. 이후 회사는 6,884명에 대한 인원감축을 추진하면서 잔여인원 1,75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하였다.

2년 6개월 동안 대우차의 부채규모는 초기 11조 가량에서 현재 19조를 육박하고, 매출액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대우차의 부실은 발단에 해당하는 무리한 차입경영, 이를 심화시킨 분식회계, 그리고 결국 처리불능의 상태에 이르게 한 정부의 매각정책이 순차적으로 개입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b>대우차 해외매각을 위한 정부와 채권단의 변명</b>

대우차의 워크아웃 기간 동안 정부는 해외매각(외자유치)이 가져다주는 국가적 이익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하였으며 이는 대우차 처리에 국한되지 않는 소위 '구조개혁'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모든 사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특히, 공황상태에서 출발한 경제상황이 작년 초반까지 일정부분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이 미사여구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정부는 시장기능의 회복에 충당되는 비용과 조달경로를 고통분담 논리로 은폐하였고, 초국적 자본의 직접지배는 외자유치의 이득으로 상쇄되고 있다고 강변하였다.
이렇게 대우그룹차원의 위기는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면서 재벌총수의 손을 떠나 정부와 채권단에 넘어오게 되었는데, 김우중 전회장과 측근들은 이 위기의 원인을 '일시적인 유동성위기'로 보고 있고, 입장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반면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차 부실의 원인을 재벌체제의 비합리성에서 찾았고, 이는 구조개혁 일반의 정당성으로 치환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에 의해 추진되던 해외매각 시도도 포드사의 돌연한 포기선언으로 난관에 봉착하였는데, 이 당시는 김대중 정부가 정권주도권을 상실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총선에서 과반수의석을 획득하는데 실패한데다 자민련의 몰락, 공동여당의 불협화음 심화, 2차 구조조정마저 순탄치 못한 과정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각종 개혁입법조차 실종되는 그야말로 친여 후견세력부터 보수야당에게까지 협공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정권이 동의서 국면을 연출한 나름대로의 절박한 상황이 여기에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지만 김대중 정권은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개혁노선을 한층 강화하는 방법으로 정국주도권을 재탈환하고자 했다. 정부가 대우차 해외매각 방침을 고수했던 전후배경에는 이렇듯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 기업으로서의 대우차 처리를 상회하고 있었다.


<b>진보진영의 동요</b>

여기서 지난 시기 대우차 투쟁에서 진보진영의 동요와 혼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석차이, 더 냉정하게 말해서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공기업화론과 해외매각 반대에서 보인 접근경로와 제기배경의 상이함은 안타깝게도 핵심슬로건의 혼선을 초래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 공기업화에 대한 입장은 구조조정이 시장기능의 회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시장적 국가개입, 즉 부실이 시장에서 청산되지 않고 그 비용이 사회적으로 분담되고 있으면서도 그 성과는 국내 독점자본과 초국적자본의 이윤회복에 투입되는 것에 대한 폭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논자들에 의해 공기업화 주장은 기업소유형태로 제한된 채 주장되었고, 그 결과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대안취급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당장에 대우차 해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민주노총과 대우차 노조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 공기업화 투쟁이 갖는 의미를 총선국면을 활용해 획득되는 것 정도로 치부하고, 대정부교섭을 통해 타협이 가능하리라는 판단과 군중동원을 통한 교섭촉구투쟁으로 일관했던 지난 시기를 기억한다면, 공기업화론에 대한 이러한 입장차이를 대중조직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전술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반면에 현장투쟁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공기업화 쟁취투쟁이 계급타협의 산물인 것처럼 사고하고, 결국에는 생존권 투쟁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내용없는 원칙들도 또 하나의 편향이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b>대우차는 어디로 가는가</b>

포드의 인수포기 이후 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정된 것은 정리해고를 포함하여 6,884명에 이르는 인원을 감축한 것 외에는 없다. 기껏해야 채권단의 추가자금지원이 올해 상반기까지 가능하다는 것 뿐. GM도 지금까지 '대우차에 대한 관심' 이상의 발언을 한 적이 없는 상태다.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대로 GM이 4월 이사회에서 판단을 하더라도 그것은 '인수의향서' 제출을 결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인수의향서 제출은 말 그대로 '인수에 뜻이 있다'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않는다. 또 인수의향서 제출 후에도 실사과정으로 몇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고, 정밀실사가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가격협상을 해야 한다.
모든 과정이 정부와 채권단의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대우차 매각일정은 최소한 5∼6개월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대로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부평공장 폐쇄논란이 매각의 전제조건으로 남아있고 대우차 노조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부평공장 폐쇄와 관련한 '아더 앤더슨 한국지사(Arthur Andersen Korea)'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는데, 이는 GM이 부평공장까지 포함한 일괄인수에 부정적이라는 점이 (비)공식적인 발언을 통해 이미 확인되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회사가 부평공장을 폐쇄하게 될 경우 재차 정리해고 결정을 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투쟁은 더욱 폭발적 양상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우차를 GM에 매각하기 위해서, 회사는 부평공장을 폐쇄하거나 아니면 매각 후 폐쇄가 용이하게 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렇듯 회사측의 입장은 점점 난감해지는 반면, 협상이 지체될수록 인수조건이 유리해지는 GM은 대우차 인수결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부평공장의 병력배치 사실과 그 전후배경을 모를 리 없는 GM이, 노조에 대한 부담과 대우차 구조조정의 배후로 지목되는 것을 받아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수들도 절대적이지 않아서 GM의 판단은 세계적 경기변동추이, 특히 미국경기의 '하향적 위험성' 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하며, 따라서 대우차에 대한 판단도 여기에 부속될 뿐이다.


<b>GM, 대우차를 인수하는가</b>

대우자동차를 GM이 인수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예측은 아직 아무도 정확하게 하고 있지 못하다. 정작 인수여부의 결정조건처럼 생각되는 GM회장의 의지는 실상 인수여부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기준이 되는 것은 '대우차 인수결정이 미치는 GM의 주가 변화'이고, 4월 이사회의 판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 GM이 대우차와 인수협상을 벌이는 기간동안에는 단 한번도 주가가 상승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지난번 포드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주가가 반등했었던 것으로 미루어, GM은 대우차 인수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인수조건으로 대가를 보상받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사정에서 김대중 정권이 현재의 정책기조를 포기하지 않은 채, 인수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한국의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탄압하고 이를 과시하는 길, 초국적 자본의 투자여건을 조성해주는 것 외에는 없다. 이는 GM이 자국의 공장을 점진적으로 폐쇄해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b>구조조정 3년, 참혹한 현실</b>

넉달 전 동의서 국면을 통해 전화위복을 꾀한 정부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과잉진압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대우차 처리의 난감함 외에도 '외자유치, 고통분담, 선진 경영기법 도입, 기술이전, 고용창출' 등 IMF 3년 동안 대우차에 국한되지 않고 유포된 미사여구의 설득력이 소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권 집권 3년 동안, 늘어난 외환보유고만큼 초국적 자본의 직접지배력은 확대되었고 그만큼 국가의 정책개입력은 약화되었다. IMF초기의 실업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대치되었으며, 비정규직이란 고용과 실업을 넘나드는 준실업 상태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준실업인구가 전체 고용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대우차 정리해고 확정발표가 있던 날, 정부에서는 2월 실업인구 100만을 우려하는 발표를 하였다. 정부통계 산출방식의 허점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실업은 장기실업 양상을 띠며 IMF 초기에 발생한 실업증가와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11조원을 투입하고 9천억에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한 '제일은행'의 경우처럼,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던 선진금융기법의 도입이라는 것이 '수익성우선 경영방침'과 같은 은행의 공적기능을 포기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었고, 게다가 작년 연말까지의 2천억 흑자기록마저 풋-백옵션에 의한 공적자금의 지속적 투입의 결과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렇듯 지난 시기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가 반영한 참혹한 현실은 더 이상 장밋빛 미래로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개혁이 미진한 탓을 하고 더욱 강력한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해법이고 개혁이라 외쳐대고 있다.


<b>대우차 투쟁의 정세적 의미와 방향</b>

정리해고 반대투쟁으로 촉발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지난 IMF 3년 동안 위장된 '신자유주의'의 폭력적 면모는 결국 맨 얼굴을 드러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자본합리화 프로그램이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구조화하고 심화하는 과정이었음이 대우차 투쟁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 달 중순 이후 격렬한 가두투쟁으로 전화하면서 어느덧 한달 이상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3월 7일, 부평공장이 병영화(兵營化)를 통해 재가동되면서 투쟁은 장기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이를 소강국면으로 단정짓거나 여타의 투쟁과 병렬적으로 배치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6일 민주노총 1차 중앙위에서 '정권퇴진'을 결의했음에도 다시 3월 15·16일 중앙위에서는 '3월 집중상경투쟁, 5월 총력투쟁, 12월 총파업'을 결정하면서 이런 의구심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형식화되다시피한 '상반기 총력투쟁, 하반기 총파업과 제도개선 투쟁'을 되돌아 볼 때, 더군다나 작년 12월 총파업의 무기력함을 상기시킨다면 이러한 혐의가 해명수준으로 쉽게 불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비판적 흐름과 의심들을 최근의 민주노총의 결의를 폄하하려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대우차 투쟁이 격렬한 양상으로 촉발된 데는 지난 3년간 후퇴를 거듭한 노동자 민중의 삶이 더 이상 물러설 곳도, 타협으로 내어줄 것도 없음이 대중적인 분노로 나타난 결과였던 것처럼, 지금까지의 투쟁방식에 대한 비판이 민주노총 지도부에 국한되거나 일부 입장에 대한 공격에 머무는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표피적 진보성에 기대어 대중투쟁을 기만한 일군의 세력들이고 이들에 동조하는 행동이다.

정작 이들은 지금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과 공권력의 지속적인 만행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침묵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파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실체인 것처럼 각각의 생존권 투쟁 또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김대중 정권조차 더 이상 차별과 고립으로 저항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있고, 폭력적 진압이 지속될수록 정권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끝장내기 위해, 대우자동차 투쟁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결합하고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결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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