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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4.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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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놓고 벌어진 싸움에서 누가 승리해왔는가?: 마이클 애플 초청 강연회 후기

손지희 | 편집위원,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실장
<b>우연한 기회로 개최한 토론회</b>

2001년 2월 26일, 진보교육연구소는 <세계화 시대의 한국교육개혁과 진보적 교육운동의 길찾기>라는 다소 긴 제목의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강연자는 [교육과 권력], [교육과 이데올로기]의 저자로 국내에 알려진 미국의 비판적 교육학자 마이클 애플이었다. 이들 저서는 1980년대에 한국에 번역되어 당시 교육사회학계는 물론, 교육운동진영의 이론서 구실을 하기도 했다.

강연회 개최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성사된 것이었다.(실은 타단체의 초청으로 '어부지리'로 강연을 열게 되었다) 어부지리로 잡은 기회를 대충 때우지 않고 적극적으로(재정지출이 당초 예상을 크게 넘어서고 말았다!) 이용하려고 애쓴 이유는 우선 그가 견지해온 진보적 관점을 신뢰한 때문이었다. 이메일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그가 우리에게 - 한국이라는 쬐그만 나라, 거기서도 정말 조그만 연구소일 뿐인- 보여준 성의있는 태도에 일단 안심했다. 그리고 최근 연구물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그리고 교육 시장화에 대해 그가 어떤 관점-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을 견지해왔는지를 파악하고 난 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란 확신이 섰다. 먼저 강연자였던 애플에 대해 간단히 짚어본다.


<b>비판적 교육학자이며 활동가인 마이클 애플</b>

노동계급(인쇄공) 출신인 그는 교육학자가 되기 이전에 초·중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였으며, 교원노조의 대표를 맡아 활동한 적도 있다. 이런 독특한 생애사적 배경은 이후 그의 이론작업 및 정치적 활동에서 방향타 구실을 한 듯하다.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애플의 중심테마이다. 이른바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즉 교육과정사회학이 그의 주된 연구분야이다. 커리큘럼을 포함한 학교교육의 과정은 제도교육 바깥의 더 넓은 사회적 힘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 이것이 그의 저작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그의 글에는 '정치학politics'이라는 용어가 매우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힘의 관계'와 그 역동에 대해 그가 가진 관심의 자연스런 결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사회적 실재의 구성은 모두 모종의 역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정치'를 인간의 행위 선택 및 배제과정, 혹은 이러한 행위선택을 강제하는 구조의 압력행사로 본다면, 교육연구에서 '정치학'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해서 그리 어색할 것도 없다.

그의 논의는 기존의 교육과정사회학 논의나 경제적·문화적 재생산이론의 계보를 잊고 있지만 이를 '脫재생산 논의'로 연결시키려 했으며, 계급결정론 등의 환원주의적 설명틀이 안고있는 난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는 기존의 재생산이론이 제도교육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인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해명함에 있어서, 구조기능론적 시각과 다를 바 없이 현실에 대한 숙명론으로 이해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그는 학교에서 아무런 갈등과 저항 없이 불평등의 재생산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이 묘사했던 기존의 재생산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교육학자이다. 그의 특징은 한마디로 '매우 정치적'이라는 점인데, 많은 교육이론서들이 '설명'에 그치는 감이 있다면, 그는 교육주체들의 실천전략을 구체적인 수준에서 언급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실천전략을 그 자신이 실행에 옮겨왔다는 점에서 그저 책상물림만은 아닌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가졌다.

교육내 모순은 계급은 물론, 성이나 인종에서의 불평등한 관계가 갖는 사회모순과도 접합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애플은 네오맑시즘적 입장을 취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주의자들이 너무 간단하게 폐기해버린 감이 있는 '거대담론'을 견지하면서 이론활동과 정치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포스트주의자'들과는 구별된다.
이처럼 비판적 교육과정 논의를 중심으로, 자신의 학문세계를 구축해온 교육학자이자 활동가인 애플은 '소수자'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이들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한 도구로서 비판적 교육학이라는 '연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의 저작 곳곳에서 현재 위협받고 있는 '평등주의적 관점'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레이건에서 부시로 이어지는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그 기조는 별 차이없이 지속되어온 미국 교육개혁이 갖는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가하고 있다. 특히 교육 시장화와 여기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는 불평등 심화의 문제를 특유의 '정치학'을 가지고 분석한다. 현재 미국의 사회흐름은 '보수회귀'로 표현되는 우파 제휴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으로 공교육에서 그나마 유지되어온 사민주의적 합의가 철저히 와해되고 있음을 갈파한다.


<b>상식을 놓고 벌어진 싸움에서 누가 승리해왔는가?</b>

강연회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여 당초 예정시간(3시간)을 1시간 넘게 초과하고 말았다! 예정보다 길게 진행했지만, 쏟아진 질문들을(통역에 걸린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모두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가 간만에 연출되었다. 참여인원은 250명을 웃돌았다. 물론 이 자리에 오지 않은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지만.
그의 대중강연 실력은 탁월했다. 애플은 초장부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주최측조차 놀랄 정도였는데, 그는 강연의 의의를 "연대"의 차원에 부여한다고 언급한 뒤 이어서 "노근리 학살"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기회를 매우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시민들을 대표하여 노근리에서 이루어졌던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고 싶습니다. 미국 정부는 사죄하지 않지만, 미국내 수백만의 시민들은 이에 대해 사죄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박수가 터져나왔다.(물론 대부분의 청중은 통역을 듣고 나서 박수를 쳤다. 필자 역시…)

그의 강연을 통해 현재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임을 재확인했다. 그는 교육이 매우 정치적인 분야라는 인식하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정치학적' 관점에 더하여, 지금 미국 및 전세계 국가의 교육주도권을 누가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그람시의 이론을 많이 활용했는데,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국가차원의 '전면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시민사회차원의 '진지전'에서도 지배집단이-저항헤게모니 세력이 아니라- 얼마나 '잘' 싸우고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더불어, '상식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교육, 경제, 민주주의 등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과연 '누구'의 상식이 장악해왔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경종을 울렸다. 그러면, '미국 교육 개혁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강연 내용을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b>이데올로기 우산 - 新헤게모니 블록의 주도권 장악</b>

지금은 '상식을 놓고 벌이는 다툼'에서 우파가 승리하는 국면이다. 그들은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있다. 보다 민주적인 교육과 교원노조를 위해서는 지금 시기는 매우 위험천만한 시기이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에 맞서는 학교의 투쟁에서 몇 가지 성공사례를 제시할 것인데, 우리의 목적은 비판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대안헤게모니 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정치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육(제도교육을 의미하는 듯)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에 기여하기는 하지만, 계급적 재생산 및 성적 분할의 재생산 구실도 하고 있다.

둘째, 교육과정 역시 정치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어떤 집단의 지식은 공식적인 것이 되고 어떤 집단의 지식은 취급조차 되지 않는다. 특히 지배계급의 지식이 공식적 지식이 된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비공식적 측면들이 계급에 따른 그리고 성에 따른 분할을 계속하고 있다.

셋째, 가르치는 행위 자체도 정치적이다. 교수행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학생의 피부색, 성별, 출신계층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임이 발견된다. 다음으로, 재정지원 및 관료적 의사결정 구조 역시 매우 정치적이다. 예컨대, 현재 미국에서는 교육재정이 컴퓨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지붕은 비가 새고, 책상과 교재는 부족한 상황에서도 돈은 컴퓨터를 사는데 쓰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기술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많은 학생들, 교사들, 지역공동체가 위협에 처해있다. 지금 자본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처럼 교육은 매우 정치적인 분야인데, 새로운 헤게모니 세력들이 매우 보수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이끌어가는 상태다. 그들은 국가차원에서 승리하려면 시민사회차원에서 승리해야 함을 마치 인식하는 듯 행동해왔다. 그들은 광범위한 차원에서 우익들간에 동맹세력을 형성하면 사회전체를 보수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을 마치 아는 것 같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산'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이다. 현재 지배세력들의 목적은 "지금 비가 오고 있다. 내 우산 밑에 와서 비를 피해라"라고 이야기해서 여러 분파들을 그들의 우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형성한 우산 속으로는 늘상 의견일치를 보이는 집단만 들어오는 건 아니다. 이처럼 우익세력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 우산', 다시 말해서 일종의 연대질서를 창출하는데, 나는 이를 '보수적 현대화' 세력이라 부른다. 현재 미국내에서 이러한 '보수적 현대화'를 위해 제휴하고 있는 집단은 크게 네 가지다.


<b>신자유주의: 자본은 결코 공짜로 선물을 주지 않는다 </b>

① 신자유주의자. 이들은 '약한 국가'와 '민영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를 " 공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악이고, 사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선이다."라며 이를 정당화한다. 이들은 학교를 시장개념으로 생각한다. '경쟁'을 통해 민주적인 학교구조가 형성되리라고 생각한다. '우산'의 손잡이를 바로 이들이 쥐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약한 국가'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옳고 부분적으로는 아니다. 시장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강한 정부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그들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자, 기준에 도달하지 못 하는 자는 감옥에 넣는 걸 처방으로 삼는다. 그래서 감옥을 짓고 유지하는데 그토록 많은 돈을 쓴다.

신자유주의에서 합리성의 잣대는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경제적인 합리성의 잣대이다. 학생들은 오직 인적자원(자본)으로만 인식된다. 교육의 목적은 오직 하나. 경제를 돕기 위한 것. 효율성만이 최우선의 유일가치이다. 이것은 중립적인 가치판단이 아니라 특정계급의 가치판단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이 사고 팔 수 있는 자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의 관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지금 현재 진행하고 있는 '투쟁'은 매우 중요한 기준들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적 인식을 바꾸려는 투쟁이다. 그리고 이는 많은 나라들에서 특정한 기준들을 바라볼 때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가장 핵심적 단어는 민주주의다.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통적 인식은 그것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민중들은 집단적 행동과 수십년간의 민중들의 투쟁을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교원노조원들은 민주적 학교와 집단적인 우리의 기본권, 권리에 대한 투쟁이었다고 할 것. 신자유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인 기준, 관점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전환시키려고 한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단순히 소비관행으로 축소된다.
그리하여 세계는 거대한 시장으로 보이게 된다. 학생들, 교사들, 학교들은 시장에 내던져져야 한다. '탈집단화'. 탈집단화라는 의미는 자신을 노조원으로서 계급의 일원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비를 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일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인데, 왜냐하면 실제 세계에서는 슈퍼마켓이 존재를 하고 거기에 들어가서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실제 세계에서는 훨씬 더 많은, 계속 더 증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슈퍼마켓 밖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적 개념들은 실제 학교와 실제 교육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 학교가 시장에 내던져진 몇몇 나라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몇 가지 결과들이 있다. 계급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증거가 여럿 있다. 민영화된 학교에서는 조직화된 교직원들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일종의 교육에서의 격리책(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바우처 프로그램을 위한 여러 제안들이 실시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어떠한 학교에도 갈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역할 축소와 공공재정 축소를 주장한다. 빈민지역에 살고있는 가난한 학부모라면, 그리고 융통성이 전혀 없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아니면 더 좋은 학교 가까이로 이사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학교를 고르러 돌아다니는 데 쓸 차도 없다. 그래서 '허구적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너에게 선택권을 줬지만 너는 자식을 그 학교에 머무르도록 했다. 너의 잘못이다. 국가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신자유주의는 계급간 갈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가부장적이다. 국가가 축소되면서, 예전에 공공서비스로 취급되던 부분이 이제는 그대로 국민들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그리고 지역사회로 전가되었고 대부분 여성들에게 전가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오로지 보수를 받는 노동력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이므로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유지는 상당부분은 여성들의 가사노동에 의존함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시장 중심으로 사고하는데,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추구되고 있는 교육개혁은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측면을 보여준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학교에 대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지만, 사회 양극화는 매년 7%정도씩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의 교육활동을 지원받기 위해 많은 학교들이 자본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시장개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채널 1' 이 그 극적인 예다. 미국내 학교 중 40%는 '채널 1' 도입 반대 싸움에서 졌다. '채널1'은 자기자신을 민주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당신들의 자녀들은 한국과 일본의 자녀들과 경쟁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국제적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경제전쟁에서는 오직 전문적 지식을 갖춘 아이들만 이길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를 어떠한 면에서도 민주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학교들은 '채널1'을 선택하도록 내몰린다. 많은 학부모들은 '채널1' 도입을 찬성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가에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학부모와 교사들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의 교사에 대한 공격방법은 다양하다. 현재 가장 심각한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이 모든 걸 시장개념에 의존하는 신자유주의이다.
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민주적 질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매우 조심스럽게 대한다. 자유주의의 특정한 부분은, 이를테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 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지금 현재에도 사회운동들이 그런 자유주의적 개념들을 끌고 와서 그것들을 급진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그렇다. 자유주의가 말했듯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한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페미니즘은 그러한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조직화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운동을 형성하여 급진화하여 역행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창출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유주의의 진보적 측면, 긍정적 측면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며 이러한 주제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모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적 움직임을 급진화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애플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b>신보수주의: 강한 국가의 통제 아래 줄을 맞추라</b>

② 신보수주의자들이 그 다음 세력. 이들은 매우 '강한 국가'를 원한다. '진짜' 지식, 신체에 대한 강한 통제, 더 높은 교육적 기준을 중시한다. 이들의 생각은 사회진화론적(사회적 다위니즘)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신보수주의는 강한 국가에 기반을 둔다. 많은 통제를 할 수 있는 교육과정, 국가차원의 시험을 이들은 주장한다. 집단문화, 공동문화에 대해 그들은 매우 호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통문화, 집단문화에 대한 민주적 관점에서의 대안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적인 세력들의 공통문화, 집단문화를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미국내에서 '서구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압력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미국)은 하나다'라고 떠들어대지만, 생각해보라. 어디 미국이 하나인가? 흑인, 여성, 빈민….

이들이 주장하는 바들은 계열화, 서열화가 학교의 목적이라는 인식하에 가능하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교육과정이 있어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위로부터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국가차원의 교육과정 정책의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특정한 이데올로기들을 복귀시키려고, 특정한 이해관계를 복귀시키려고 노력한다.


<b>권위주의적 대중주의: 권력과 지배를 위한 종교</b>

③ 권위주의적 대중주의(authoritarian populist). 미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집단이다. 이들은 종교에 대한 매우 보수적인 인식체계를 갖고 있다. 학교 그리고 교육이 자신의 보수적, 종교적 색채를 띠기를 바란다. 이들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이 아담 스미스와 얘기를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는 하나님의 경제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에게 종교는 민주주의와 해방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지배를 위해 활용될 뿐이다.


<b>전문직 중산층: 경영과 평가로 모든 걸 측정하라</b>

④ 새로운 중산층으로 부상하는 전문직 중산층. 부르디외를 인용하자면 이들은 특수한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즉, 경영과 평가에 있어서의 전문적 지식이 그것이다. 이들은 국가의 요직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국가에 대한 통제를 가하는 것이 이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 미국에서는 이 집단이 "모-든 걸 측정하라"는 오직 하나의 믿음만을 품고 실천한다고 비꼰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가를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들의 기술적 노하우를 무기로 보수적 제휴를 만들어나간다.
(…)


<b>국가의 내외를 넘나드는 연대가 필요하다</b>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는 지금 손잡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가차원의 교육과정, 국가차원의 시험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장확장과 신자유주의를 위해서는 이것들이 필수적이다. 이것 없이 어떻게 '좋은' 학교, '나쁜' 학교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것 없이 어떻게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보다 더 심한 경쟁질서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시된다.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도입하기에는 한국이 더 용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교원노조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파괴적이다.
하지만 또한, 각 국가에서는 매우 강력한 저항헤게모니 창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저항헤게모니의 창출을 돕는데 참여하고 있다. 진보적인 교육가들의 생각을 확산시키기 위해 출판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업계를 자본이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 교육가들은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실패의 사례가 아니라 성공의 사례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고립된 상태에서 한 개인차원에서만 일할 수밖에 없다. 신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잘 조직되어 있는 만큼 우리도 잘 조직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비판적, 진보적 교육활동의 사례를 "민주학교"(Dmocratic Schools)라는 책에 담았고, 무보수로 발간에 참여했다. 세계적으로 지금은 교사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이다. 모든 국가에서 비판적 교육에 대해 교사들이 소통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는 한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b>상식을 놓고 싸움을 벌이자!</b>

그는 "영-원한 연대"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또한 교사의 역할에 매우 큰 의의를 부여한다. 바로 교실은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며, 계급 및 성별모순이 투영되고 있는 곳이다. 애플은 말한다. 교사인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하는가?
진보교육연구소는 기획의도를 크게 두 가지로 설정했었다. 하나는 '연대'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기획의도이다. 다음은 교육연구의 안목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지난 몇년간, 한국내 신자유주의 반대 움직임을 보면서 얻은 중요한 교훈 한 가지는 '연대'의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애플 교수는 진보적 교육운동가들의 국제적 연대를 실제로 실천하는 듯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를 위해 활발한 강연활동을 여러 나라에서 벌이고 있다.
애플 교수의 '상식을 두고 벌어진 싸움'에서 신헤게모니 블록이 주도권을 장악해버렸다는 지적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매우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머릿속을 들여다보라. 어느 틈엔가 민주주의, 자율성, 다양성, 공공성 '개념'들이 비집고 들어와 머릿속에서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가?

각 사회집단은 '공공성'은 어딘가 처박아두고, 갈래갈래 쪼개져 이기적 행위선택을 아무런 가책 없이 하고 있다. 때로는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소비자라는 이름을 내세워. 그것이 결국은 누군가의 착취 위에 세워지는 '안락'임은 생각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 '공공성'을 삭제하고 '자율성'(특정한 의미에 지나지 않는, 즉 사적 소유에 있어서의 자유)을 그 위에 덮어씌운 채. 이미 많은 사람들은 '고객'으로 대접받겠다는 의식을 내면화(소비자주권론)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소비자'라는 틀 안에 가두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흐름은 분명히 있어왔고 여전히 이어지고는 있지만, '시장화'와 '경쟁력 강화만이 살 길이다'를 감히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흐름에 편승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분노를 자아낸다. 특히 '일부' 지식인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제공해왔고, '개혁'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진보'를 퇴물취급하고 있다.

진보교육연구소는 이번 강연을 치루면서 '상식을 놓고 진지전'을 벌이기로 작당했다. 그리고 진보교육연구소를 신자유주의 반대의 '진지'로 구축하기로 했다. 물론 이는 '전면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상적 실천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에게 싸움을 건다.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누구의' 상식이 당신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가?

<font color="##003366">※진보교육연구소 홈페이지 http://jinboedu.jinbo.net, E-mail: jinboedu@jinboedu.jinbo.net
마이클 애플(58) 교수는 1992년 UCLA 대학이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에게 주는‘공로메달’을 수상한 저명한 교육학자다. 전미교육학협회의‘평생업적상’을 수상했고, '서구교육학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저술가 50인’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1970년 콜럼비아 대학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민주적학교(Democratic Schools·1999년)’,‘이데올로기와 교육과정(Ideology and Curriculum·86년)’등 30여권의 저서가 있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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