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짧은 고찰
<b>프롤로그</b>
인간이란, 태어날 때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죽어간다.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죽음은 한 인간에게 가장 고유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같이할 수도 대신할 수도 없는 것, 오직 혼자서 마주해야 하는 것이므로,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므로.
그러나, 죽음 그 자체는 한 인간에게 홀로 귀속되는 것일지라도,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이 죽음도 세상과 그리고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죽음은 아픈 별 위의 분화구처럼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여기, 최근의 몇몇 죽음과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b>쥐에 뜯어먹힌 시체</b>
7일 아침 7시. 노숙자 김종식(48)씨는 거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침운동을 하던 한 시민이 서울 동대문야구장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김씨를 발견했을 때, 그는 주변상가가 내다버린 쓰레기더미에 덮여 있었다. 사망원인은 영양실조와 추위였다. 얇은 이불과 스티로폼만으로는 술에 찌들고 허기진 몸을 꽃샘추위로부터 막아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발견 당시 김씨는 얼굴과 손의 살점이 대부분 뜯겨나간 상태였다. 경찰은 "최소한 보름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동안 주변 쥐들이 주검을 갉아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화려한 동대문 패션상가와 온갖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하루 유동인구만 수십만명에 이르는 도심 한복판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여러날 동안 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난 한달간 1400여명이 김씨 주검이 발견된 공중전화부스를 이용했다고 한국통신은 밝혔다. 이들도 바로 옆 쓰레기더미에 묻힌 김씨를 신경쓰지 않았다.
이날 오후 서울 을지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김씨의 동생 김종수(44)씨는 차라리 체념한 듯 담담했다.
"가난했어요. 그 기억밖에 없습니다. 전북 익산의 빈농에서 4남3녀가 태어나 누구도 중학교를 가지 못했어요. 형도 초등학교를 미처 마치지 못하고 농사를 거들어야 했죠. 가진 땅이 없어 언제나 남의 논에서 일을 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김씨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려 새로 시작한 것은 1990년. 대전에서 조경업을 했고, 1995년에는 결혼도 하려 했다. 그러나 결혼을 미끼로 접근한 유부녀에게 속아 5천만원을 빼앗겼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구제금융 사태까지 닥쳐 사업도 접어야 했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그가 술병을 끼고 서울거리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고 한다. 동생 김씨는 "최근 몇년 동안엔 아예 가족들과 연락도 끊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보름전 쯤으로 추정되는 어느 날, 김씨는 힘겨웠던 이승의 삶을 끝냈다. 빈농의 아들을 참담하게 했던 이 세상은 그의 죽음 앞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를 덮고있던 쓰레기더미는 말끔히 치워졌고, 무심한 인파는 이날도 동대문 패션가에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출처 : 3월 8일 한겨레 사회면>
<b>자살 사이트</b>
지난 4일 전남 목포시내 한 여관에서 동반자살한 남녀 3명은 인터넷 자살사이트 회원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이들은 이 사이트대화방에 `죽고 싶다'는 글을 자주 올린 뒤 구체적인 자살방법 등을 논의한 끝에 동반자살의 길을 택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목포경찰서에 따르면 동반자살한 곽모(31.경기도 수원시), 이모(20.서울시 강서구)씨와 박모(19.광주광역시 서구)양은 인터넷 ㈜다음사카페에 개설된 자살 사이트 '이리로 22'의 회원이었다. 경찰은 이들이 자살한 후 삭제된 대화방 토론내용을 복구하는데 성공, 이 자료를 토대로 이들이 어떻게 만나 자살했는지 등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관들은 "대화방 자료에는 이들이 회원들과 나눴던 자살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은 물론 자살을 충동질하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특히 '죽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제목에는 술먹고 동사하기, 수산화나트륨 정맥주사법 등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경찰은 서로 사는 곳과 나이, 직업, 성별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만나 목포까지 와서 자살했는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하려 했으나 지난 9일 같은 사이트의 한 회원이 이들이 자살 사이트 회원이었다는 내용을 제보함에 따라 수사가 급진전됐다. 목포경찰서는 이 자살 사이트 개설자와 다음사 등을 상대로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조사중이다.
너희들이 '충격 그 자체'를 받으면 수사대상이니?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을 상상하고 또 실행하면 수사대상이니? 이 훌륭한 세상 살 이유 못찾는 사람들끼리 허심탄회 모여 고통없이 떠날 얘기 나누는 게, 수사대상이니? 그저 '충동질'하고 방조한 것만 수사대상이니? 왜 자살하려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꿈꾸는지, 고통없는 예쁜 자살을 꿈꾸는지, 그건 수사대상 아니니?<출처 : 3월 13일 한 개인 홈페이지>
<b>어느 노동자의 죽음</b>
사상 최대규모 정리해고로 노동자 가정이 잇따라 파탄나고 있는 대우자동차에서 40대 후반의 노동자가 구조조정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2월 23일 오전 9시쯤 부산시 연제구 거제2동 모아파트 103동 20층 계단에서 대우자동차 금사공장 부품과 조장으로 22년간 근무하던 47살 박모씨가, 1층 바닥으로 뛰어내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경찰은, 박씨가 최근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퇴직금 지급마저 불투명하자 이를 고민해 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구조조정 등 회사문제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22년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생산직 조장이 되었다면 어지간히 뼈골 빠지게 일했겠지요. 자신을 돌보지 않는 '대우가족'이 돼 얼마나 분골쇄신 일해왔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날부터 월급도 안나오고 퇴직금도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에다, 부평에서는 1,750명의 가정을 파탄내는 사상 최대의 정리해고가 자행됐습니다.
박씨가 자살한 23일엔 대우자동차를 오늘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수십조원을 해외로 빼돌려 호화생활하고 있는 김우중을 잡기 위해 '김우중 체포결사대'가 프랑스로 출발한 날입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고생하다 못해 자살하는데 김우중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정부는 왜 그를 잡아들이지 못하나요? 김우중이 빼돌린 20조대의 돈만 회수해도 노동자 1만명이 70년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김우중을 잡아들이고 빼돌린 돈을 회수해 회사를 제대로 돌리면 안됩니까? 정 안되면 최소한 노동자들 밀린 임금이며 퇴직금이라도 주면 안됩니까? 그도저도 안되면 제발 가정파탄 내는 정리해고만은 피하는 수단으로 쓰면 안되겠습니까? 김우중 잡아오면 '검은 리스트'가 까여 정치권이 줄줄이 엮이는 핵폭탄이 터질까봐 못 잡아옵니까?
민주노총은 고(故) 박 조합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정부와 가진 자들이 진심으로 이 참혹한 노동자 현실을 바로 보고 대책을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투쟁하고 노력하겠습니다.<출처 : 2월 2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성명서>
<b>왕회장의 영결식 중계</b>
신화를 만들어낸 거인, 강원도 시골소년에서 세계적 기업가로 성장했던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모든 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평화 속에 잠들었다.
고(故) 정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25일 오전 10시 서울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대운동장에서 7천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고인의 육성녹음 청취, 추모사, 헌시,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은 대형 멀티비전으로 중계된 생전 육성녹음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생각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유창순 전경련 명예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인명은 재천이며 인수는 유한하다 하지만 유명을 달리 해야 하는 자연의 섭리가 못내 안타깝고 서러울 따름"이라며 "이승에서의 모든 번뇌와 슬픔을 털어버리고 안심왕생하라"고 애통해 했다. 김상하 전 대한상의 회장은 "경륜과 지혜를 모두 갖춘 경제인이 드문 요즘, 고인은 기업인 뿐 아니라 일반인의 존경과 추앙을 한몸에 받던 재계의 거목이요 선구자였다"고 강조했다.
고인과 오랜 교분이 있는 원로시인 구상씨는 탤런트 최불암씨가 대신 읽은 추모시에서 "하늘의 부르심을 어느 누가 피하랴만/ 천하를 경륜하신 그 웅지 떠올리니/ 겨레의 모든 가슴이 허전하기 그지없네"라고 추모했다.
영결식에는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신국환 산업자원부장관, 김각중 전경련 회장,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 김학준 사장, 이홍구 전 총리, 한승주 전 외무장관, 서영훈 대한적십자 총재, 손학규 의원, 박홍 전 서강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유해는 이날 낮 1시께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으로 운구돼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땅에 묻혔다. 장지에는 휴일을 맞아 고인이 안장된 검단산으로 등산을 온 시민 200여명이 찾아 분향하며 고인의 별세를 함께 애도하기도 했다.
한편 영결식 하루전인 24일에는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조문단 4명이 직항편으로 서울에 와 청운동 빈소를 방문, 조문했다. 북한이 조문단을 보낸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현대측은 이날까지 서울 청운동 빈소와 북한을 포함, 국내외에 설치된 110개의 분향소에 모두 33만여명이 조문했다고 밝혔다.<출처 : 3월 25일 연합뉴스>
<b>에필로그</b>
한 노숙자가 죽었다. 보름 동안 쥐들이 그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러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의 삶은 수많은 쥐들에게 뜯어먹히고 있었다. 빈곤, 무학, 사기, 다시 빈곤의 악순환…. 세상이 바로 그의 삶을 뜯어먹는 쥐들이었다. 그의 존재는 그렇게 조금씩 갉아먹히면서 서서히 없어져갔다. 도심 한가운데 놓인 시체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는 뜯어먹혀 없어진 존재였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동반자살했다. 그들은 자살 사이트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살을 하기 위해 자살 사이트를 찾았을 뿐이다. 자살 사이트가 없었더라면 차마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그러니까 문제는 자살 사이트에 있다는 논리는 앞뒤가 전도된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도 죽을만큼의 괴로움과 슬픔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내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삶과 사회의 고리를 따라 우리에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슬픔들. 그러나 사회는 중세의 마녀재판처럼 자살 사이트에 모든 불행의 책임을 덮어씌운다.
한 노동자가 까마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삶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없게 되었다. 그 자신의 잘못도 아니요, 그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어떠한 이유도 제시되지 않은 채.
당황한 그에게 돌아올 대답이라면,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거요, 몰랐소?'일 뿐.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만 삶을 유지하라는 정언명령을 내려놓고, 그 명령을 따라 충실하게 살던 노동자에게 일별도 없이 또 제멋대로 노동력을 팔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노동력을 판매하지 못하게 된, 따라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그는, 죽을 수밖에.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뉴스 속보에서부터 영결식 때까지 언론은 그의 장례식을 중계하다시피 했다. 그의 생애가 신문에 연재되고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으며, 울산의 '현대가족'이라는 한 아주머니는 뉴스 카메라 앞에서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서울로 달려올라가고 싶지요"라며 울먹였다. 그러나 그 뒷편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의 찬란한 업적으로 가득찬 생애의 뒷면은 곧 한국 현대사의 모순이며, 현대가족의 다른 얼굴은 무자비한 탄압에 짓밟혀온 노동자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서는 입을 떼지 않는다. 고인에 대한 '예의'.
죽은 사람은 저 홀로 자박자박 하늘길을 떠난다. 그는 삶의 고리를 풀어놓고 오직 자신만의 오롯한 죽음 속으로 간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 삶의 고리들 속에 매여 있다. 죽은 자가 남기고 간 고리들,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고리들, 그리고 산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고리들, 그것들을 풀고 또 새롭게 묶고, 그렇게 발버둥치며 애쓰는 것이, 바로 살아 있음이다.
인간이란, 태어날 때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죽어간다.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죽음은 한 인간에게 가장 고유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같이할 수도 대신할 수도 없는 것, 오직 혼자서 마주해야 하는 것이므로,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므로.
그러나, 죽음 그 자체는 한 인간에게 홀로 귀속되는 것일지라도,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이 죽음도 세상과 그리고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죽음은 아픈 별 위의 분화구처럼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여기, 최근의 몇몇 죽음과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b>쥐에 뜯어먹힌 시체</b>
7일 아침 7시. 노숙자 김종식(48)씨는 거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침운동을 하던 한 시민이 서울 동대문야구장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김씨를 발견했을 때, 그는 주변상가가 내다버린 쓰레기더미에 덮여 있었다. 사망원인은 영양실조와 추위였다. 얇은 이불과 스티로폼만으로는 술에 찌들고 허기진 몸을 꽃샘추위로부터 막아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발견 당시 김씨는 얼굴과 손의 살점이 대부분 뜯겨나간 상태였다. 경찰은 "최소한 보름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동안 주변 쥐들이 주검을 갉아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화려한 동대문 패션상가와 온갖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하루 유동인구만 수십만명에 이르는 도심 한복판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여러날 동안 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난 한달간 1400여명이 김씨 주검이 발견된 공중전화부스를 이용했다고 한국통신은 밝혔다. 이들도 바로 옆 쓰레기더미에 묻힌 김씨를 신경쓰지 않았다.
이날 오후 서울 을지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김씨의 동생 김종수(44)씨는 차라리 체념한 듯 담담했다.
"가난했어요. 그 기억밖에 없습니다. 전북 익산의 빈농에서 4남3녀가 태어나 누구도 중학교를 가지 못했어요. 형도 초등학교를 미처 마치지 못하고 농사를 거들어야 했죠. 가진 땅이 없어 언제나 남의 논에서 일을 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김씨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려 새로 시작한 것은 1990년. 대전에서 조경업을 했고, 1995년에는 결혼도 하려 했다. 그러나 결혼을 미끼로 접근한 유부녀에게 속아 5천만원을 빼앗겼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구제금융 사태까지 닥쳐 사업도 접어야 했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그가 술병을 끼고 서울거리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고 한다. 동생 김씨는 "최근 몇년 동안엔 아예 가족들과 연락도 끊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보름전 쯤으로 추정되는 어느 날, 김씨는 힘겨웠던 이승의 삶을 끝냈다. 빈농의 아들을 참담하게 했던 이 세상은 그의 죽음 앞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를 덮고있던 쓰레기더미는 말끔히 치워졌고, 무심한 인파는 이날도 동대문 패션가에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출처 : 3월 8일 한겨레 사회면>
<b>자살 사이트</b>
지난 4일 전남 목포시내 한 여관에서 동반자살한 남녀 3명은 인터넷 자살사이트 회원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이들은 이 사이트대화방에 `죽고 싶다'는 글을 자주 올린 뒤 구체적인 자살방법 등을 논의한 끝에 동반자살의 길을 택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목포경찰서에 따르면 동반자살한 곽모(31.경기도 수원시), 이모(20.서울시 강서구)씨와 박모(19.광주광역시 서구)양은 인터넷 ㈜다음사카페에 개설된 자살 사이트 '이리로 22'의 회원이었다. 경찰은 이들이 자살한 후 삭제된 대화방 토론내용을 복구하는데 성공, 이 자료를 토대로 이들이 어떻게 만나 자살했는지 등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관들은 "대화방 자료에는 이들이 회원들과 나눴던 자살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은 물론 자살을 충동질하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특히 '죽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제목에는 술먹고 동사하기, 수산화나트륨 정맥주사법 등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경찰은 서로 사는 곳과 나이, 직업, 성별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만나 목포까지 와서 자살했는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하려 했으나 지난 9일 같은 사이트의 한 회원이 이들이 자살 사이트 회원이었다는 내용을 제보함에 따라 수사가 급진전됐다. 목포경찰서는 이 자살 사이트 개설자와 다음사 등을 상대로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조사중이다.
너희들이 '충격 그 자체'를 받으면 수사대상이니?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을 상상하고 또 실행하면 수사대상이니? 이 훌륭한 세상 살 이유 못찾는 사람들끼리 허심탄회 모여 고통없이 떠날 얘기 나누는 게, 수사대상이니? 그저 '충동질'하고 방조한 것만 수사대상이니? 왜 자살하려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꿈꾸는지, 고통없는 예쁜 자살을 꿈꾸는지, 그건 수사대상 아니니?<출처 : 3월 13일 한 개인 홈페이지>
<b>어느 노동자의 죽음</b>
사상 최대규모 정리해고로 노동자 가정이 잇따라 파탄나고 있는 대우자동차에서 40대 후반의 노동자가 구조조정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2월 23일 오전 9시쯤 부산시 연제구 거제2동 모아파트 103동 20층 계단에서 대우자동차 금사공장 부품과 조장으로 22년간 근무하던 47살 박모씨가, 1층 바닥으로 뛰어내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경찰은, 박씨가 최근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퇴직금 지급마저 불투명하자 이를 고민해 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구조조정 등 회사문제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22년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생산직 조장이 되었다면 어지간히 뼈골 빠지게 일했겠지요. 자신을 돌보지 않는 '대우가족'이 돼 얼마나 분골쇄신 일해왔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날부터 월급도 안나오고 퇴직금도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에다, 부평에서는 1,750명의 가정을 파탄내는 사상 최대의 정리해고가 자행됐습니다.
박씨가 자살한 23일엔 대우자동차를 오늘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수십조원을 해외로 빼돌려 호화생활하고 있는 김우중을 잡기 위해 '김우중 체포결사대'가 프랑스로 출발한 날입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고생하다 못해 자살하는데 김우중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정부는 왜 그를 잡아들이지 못하나요? 김우중이 빼돌린 20조대의 돈만 회수해도 노동자 1만명이 70년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김우중을 잡아들이고 빼돌린 돈을 회수해 회사를 제대로 돌리면 안됩니까? 정 안되면 최소한 노동자들 밀린 임금이며 퇴직금이라도 주면 안됩니까? 그도저도 안되면 제발 가정파탄 내는 정리해고만은 피하는 수단으로 쓰면 안되겠습니까? 김우중 잡아오면 '검은 리스트'가 까여 정치권이 줄줄이 엮이는 핵폭탄이 터질까봐 못 잡아옵니까?
민주노총은 고(故) 박 조합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정부와 가진 자들이 진심으로 이 참혹한 노동자 현실을 바로 보고 대책을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투쟁하고 노력하겠습니다.<출처 : 2월 2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성명서>
<b>왕회장의 영결식 중계</b>
신화를 만들어낸 거인, 강원도 시골소년에서 세계적 기업가로 성장했던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모든 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평화 속에 잠들었다.
고(故) 정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25일 오전 10시 서울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대운동장에서 7천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고인의 육성녹음 청취, 추모사, 헌시,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은 대형 멀티비전으로 중계된 생전 육성녹음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생각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유창순 전경련 명예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인명은 재천이며 인수는 유한하다 하지만 유명을 달리 해야 하는 자연의 섭리가 못내 안타깝고 서러울 따름"이라며 "이승에서의 모든 번뇌와 슬픔을 털어버리고 안심왕생하라"고 애통해 했다. 김상하 전 대한상의 회장은 "경륜과 지혜를 모두 갖춘 경제인이 드문 요즘, 고인은 기업인 뿐 아니라 일반인의 존경과 추앙을 한몸에 받던 재계의 거목이요 선구자였다"고 강조했다.
고인과 오랜 교분이 있는 원로시인 구상씨는 탤런트 최불암씨가 대신 읽은 추모시에서 "하늘의 부르심을 어느 누가 피하랴만/ 천하를 경륜하신 그 웅지 떠올리니/ 겨레의 모든 가슴이 허전하기 그지없네"라고 추모했다.
영결식에는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신국환 산업자원부장관, 김각중 전경련 회장,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 김학준 사장, 이홍구 전 총리, 한승주 전 외무장관, 서영훈 대한적십자 총재, 손학규 의원, 박홍 전 서강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유해는 이날 낮 1시께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으로 운구돼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땅에 묻혔다. 장지에는 휴일을 맞아 고인이 안장된 검단산으로 등산을 온 시민 200여명이 찾아 분향하며 고인의 별세를 함께 애도하기도 했다.
한편 영결식 하루전인 24일에는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조문단 4명이 직항편으로 서울에 와 청운동 빈소를 방문, 조문했다. 북한이 조문단을 보낸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현대측은 이날까지 서울 청운동 빈소와 북한을 포함, 국내외에 설치된 110개의 분향소에 모두 33만여명이 조문했다고 밝혔다.<출처 : 3월 25일 연합뉴스>
<b>에필로그</b>
한 노숙자가 죽었다. 보름 동안 쥐들이 그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러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의 삶은 수많은 쥐들에게 뜯어먹히고 있었다. 빈곤, 무학, 사기, 다시 빈곤의 악순환…. 세상이 바로 그의 삶을 뜯어먹는 쥐들이었다. 그의 존재는 그렇게 조금씩 갉아먹히면서 서서히 없어져갔다. 도심 한가운데 놓인 시체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는 뜯어먹혀 없어진 존재였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동반자살했다. 그들은 자살 사이트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살을 하기 위해 자살 사이트를 찾았을 뿐이다. 자살 사이트가 없었더라면 차마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그러니까 문제는 자살 사이트에 있다는 논리는 앞뒤가 전도된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도 죽을만큼의 괴로움과 슬픔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내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삶과 사회의 고리를 따라 우리에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슬픔들. 그러나 사회는 중세의 마녀재판처럼 자살 사이트에 모든 불행의 책임을 덮어씌운다.
한 노동자가 까마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삶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없게 되었다. 그 자신의 잘못도 아니요, 그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어떠한 이유도 제시되지 않은 채.
당황한 그에게 돌아올 대답이라면,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거요, 몰랐소?'일 뿐.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만 삶을 유지하라는 정언명령을 내려놓고, 그 명령을 따라 충실하게 살던 노동자에게 일별도 없이 또 제멋대로 노동력을 팔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노동력을 판매하지 못하게 된, 따라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그는, 죽을 수밖에.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뉴스 속보에서부터 영결식 때까지 언론은 그의 장례식을 중계하다시피 했다. 그의 생애가 신문에 연재되고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으며, 울산의 '현대가족'이라는 한 아주머니는 뉴스 카메라 앞에서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서울로 달려올라가고 싶지요"라며 울먹였다. 그러나 그 뒷편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의 찬란한 업적으로 가득찬 생애의 뒷면은 곧 한국 현대사의 모순이며, 현대가족의 다른 얼굴은 무자비한 탄압에 짓밟혀온 노동자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서는 입을 떼지 않는다. 고인에 대한 '예의'.
죽은 사람은 저 홀로 자박자박 하늘길을 떠난다. 그는 삶의 고리를 풀어놓고 오직 자신만의 오롯한 죽음 속으로 간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 삶의 고리들 속에 매여 있다. 죽은 자가 남기고 간 고리들,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고리들, 그리고 산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고리들, 그것들을 풀고 또 새롭게 묶고, 그렇게 발버둥치며 애쓰는 것이, 바로 살아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