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상시개혁체제의 실체와 본질- 상시 기업·금융개혁 시스템을 중심으로 -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이제는 상시개혁체제로 전환가동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나날이 장기침체, 만성적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같은 오늘의 현실은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유일대안인 구조조정'이 실제로는 위기극복은 고사하고 '위기심화와 구조조정의 반복'을 구조화시키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무능하고 반민중적인 정책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결국 "1년반만 참으면" "내년 2월까지만 참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김대중의 호언장담은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종교적 맹신을 표현하는 헛된 주문이었거나, '상시적 고통전가 시스템구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양해의 부탁이었던 것이다. 상시적 고통전가를 위한 "구조조정의 일상화" ! 이것이야말로 김대중의 진정한 목표이다.
<b>상시개혁체제의 특징과 내용</b>
일정한 기간과 목표치를 가지고 정부책임하에 진행되던 1, 2차 구조조정과 달리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이란 정해진 시한도, 구체적인 목표치도 없다. 금융, 기업 등 주요 시장주체가 소위 '투명한 책임경영'을 통해 시장에 책임을 지며, 시장의 일상적인 평가를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부실기업과 금융부실을 그때그때 알아서 털어내는 '영구-자동적인 개혁체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목표이다. 다만, 이같은 상시개혁이 작동되는데 필요한 제반제도와 환경을 구축하는 일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특히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전문 투자회사인 CRV, CRC 등의 설립과 M&A시장활성화 및 정크본드(투기등급채권)시장육성,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을 상시개혁체제를 위한 올해의 핵심추진과제로 삼고 있다. 또한 상시개혁체제 추진과제에는 이같은 기업 외부감시시스템 외에도 내부감시스템으로서 사외이사제 및 소액주주권 강화-지원, 지난 1,2차 구조조정을 통해 마무리하지 못한 5개 공기업 36개 자회사에 대한 민영화와 공적자금투입은행의 민영화를 내년까지 마무리짓는 일, 근로자파견제의 완전정착, 노동시간단축과 일상적 해고-비정규직화를 위한 노동법 개악 등이 포함된다.
<b>상시개혁체제 작동의 실제</b>
아직까지 상시개혁체제가 전체적인 모습을 완비한 가운데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CRV, CRC설립관련 법규들이 이미 지난해에 입법되긴 했으나 실제설립 상황이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아니며, M&A시장과 정크본드시장 역시 아직 분명하게 자리잡지 못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4월말부터 M&A전용 사모(私募)펀드 설립이 자유화되었으며, 하반기까지 정크본드시장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각 경제부처 책임자들의 공언을 놓고 볼 때, 상시개혁체제의 본격적 가동준비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각 채권금융기관들이 주동하게 될 '상시위험평가시스템', 즉 상시기업퇴출체제는 이미 5월중에 약 500개 잠재부실기업을 대상으로 한 퇴출심사작업에 본격돌입하였다. 각 채권금융기관들은 해마다 2차례(9월말과 4월말) 매달 체크해온 거래기업의 신용위험정도를 기준으로, 회생가능기업과 정리대상기업을 분류, 처리하게된다. 이때 신용위험평가에서 회생가능하다고 결정된 기업 중 특별관리가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여신거래재무약정(MOU)을 맺고 그 이행상황을 금융기관이 직접 수시점검하거나 CRV, CRC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거친다. 반면, 회생불가능 판정을 받은 기업은 신속히 퇴출, 정리시키게 된다. 그 구체적인 작동의 모습을 정부는 아래 <그림1>과 같이 설명한다.
<b>강화된 외부견제장치 : M&A시장 활성화의 의미</b>
정부는 지난 4월17일 국무회의에서 M&A전용펀드(M&A전용 사모뮤추얼펀드와 M&A간접지원 공모펀드) 설립허용과 관련된 증권관련법 시행령개정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내에서는 전무했던 적대적 M&A가 가능해질 뿐 아니라 기업이 합법적으로 주가관리에 나설 수 있게 되었으며, M&A전용펀드를 통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전에도 모든 M&A, 즉 기업인수합병이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불특정다수인을 상대로 공모하는 투신사펀드나 뮤추얼펀드(Mutual Fund)에는 유가증권투자한도가 있어 기업경영권 지배가 가능한 수준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었고(동일종목 동일회사의 투자한도 제한), 49인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뮤추얼펀드가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지배할 수 있는 정도의 지분을 보유할 경우, 그 의결권의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한 이른바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조항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M&A전용펀드에 대해 이같은 조항의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적대적 M&A를 포함한 모든 M&A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게된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M&A전면 자유화와 관련된 이같은 변화를 '시장에 의한 사회적 통제'를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이를 통해 기업의 책임투명경영을 외적으로 강제하고 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기술개발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더욱 강화된 기업활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기업을 팔고사는 M&A시장의 활성화를 기업경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사회적 통제'의 강화라고 볼 수는 없다. M&A시장이 활성화된 경제하에서 기업은 생산력이 아니라 주가 또는 기업시장에서의 기업가치로만 평가된다.
기업 자체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의 한 구성부분이 될 뿐이며, 기업과 산업의 국민경제적 의미와 역할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기업, 주식시장에서의 거래에 의해 기술개발이 촉진된다는 바램 역시, 한낱 공상에 불과하다. 말이 좋아 '규모의 경제'이지, 초민족적 '독점화'를 이루는 가운데 제국의 거대기업에 흡수통합되거나 금융자본의 빠른 손놀림에 잘게 쪼개어져 되팔리는 격랑 속에서 현란한 금융투기기법과 약육강식의 비정한 정글법칙 말고 무슨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고 배운단 말인가?
한편 정부는 소위 그린메일(Green Mail)을 ― 주식을 매집한 후 인수대상기업이나 제3자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단기간내 매도하여 차익을 추구하는 행위 ― 막기 위해 M&A목적의 주식취득 후 6개월간은 주식매각을 금지하는 조치를 부가함으로써 M&A 전용펀드가 기업가치의 증대 없이 경제적 비용만을 증대시키는 무분별한 투기로 흐를 것을 막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헛된 바램이거나 교묘한 속임수이다. 그린메일과 같은 명명백백한 금융투기행위도 문제이겠지만, M&A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행위 자체가 거대한 금융사기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외부에서 M&A 전용펀드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게 되는 펀드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점은 보다 명백해진다.
그들은 언제나 과감한 비용절감과 신속하고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선호하며, 사실 그것말고는 별다르게 자신들의 투자이득을 남길 방법을 찾지못한 사람들(대부분은 법인, 기관들)이다.
M&A시장 활성화는 새로운 M&A관련 종목들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기업경영권의 공격·방어에 필요한 새로운 수요기반을 마련하는 직접적 효과와 더욱 강도높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새로운 차원의 금융투기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결국 초민족적 금융자본들의 투기이득을 보장해주는 대신 국민경제와 고용안정을 내바치는 꼴이다.
<b>내부견제장치 강화 : 투명책임경영의 실체</b>
우리는 그동안 누차에 걸쳐 사외이사제와 소액주주권 강화를 요체로 하는 투명 책임경영제는, 경제민주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금융화된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의 정착에 다름아님을 지적하고 비판해왔다. 이는 또한 노동자의 단결에 기초한 운동을 파괴하고, 그 대신 자본시장 활성화와 경제의 투기화를 지탱해주는 주주행동주의로 운동을 대체한다. 그리하여 '성공한 노동자'는 있어도 '노동자의 성공'은 없는,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고용·노동조건을 구조화시키는데 일조하게될 위험을 지닌다. '소유·경영의 분리'와 '감독·경영의 분리'는 전형적인 미국식 이사회구조의 기본조직원리이다. 즉 이사회의 경영기능은 CEO(최고 경영자)와 CFO(재무담당임원)등의 집행임원(executive officer)에게 전적으로 맡겨지고, 이사회 회장(Chairman)과 사외이사들로 이루어진 이사회(또는 감사회)는 집행임원들의 경영을 감독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주주총회-감사(사외이사로 이루어진 감독기관)-이사회(집행기능)간의 역할분담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구조는 이처럼 주주들의 집단적 이해를 '투명'하게 반영-감독하고, '책임감 있게' 대변하는 집행기관간의 역할분담과 결합으로 짜여지는 것이다.
이같은 조직구성하에서 노동자는 '투명하게' 반영되는 집단적인 주주이익과(대주주의 독단적 전횡만이 아니라) 이를 '책임감있게' 실행하는 경영자에 대해 오직 자신이 맡은 작업실적만으로 평가되고 배치-제거되는 무력한 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설령 일부 노동자대표가 사외이사의 자격으로 경영감독권을 행사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대표가 경영감독권의 전권를 차지할 수도 없으며, 사외이사의 감독권이란 주주가치/기업가치를 증대시킬 목적을 가지는 가치경영 수행에 대한 감독권한이기 때문이다. 또, 사외이사의 권한이 어디까지나 감독권한인 한에서, 사외이사의 의 실제 경영정보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미국식 이사회구조의 문제점은 미국과는 달리 이원적 이사회구조를 갖는 서구유럽의 노동자 경영참가의 경우에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한때 가장 강력한 노동자 경영참가권을 가지고있었던 독일에서조차 경영참가 노동자대표들의 역할을 통해서, 노동자의 이익과 배치되는 결정적인 회사방침을 노동자이사들의 힘으로 막아낸 사례는 거의 ?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최근 독일과 북유럽 사회복지국가들의 기업경영조직들이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거치고있는 상황에서 '투명책임경영'의 실체는 더욱 분명해 보인다.
위 <그림1>에 표시된 공시제도 강화, 분기별수익성지표 발표는 얼핏 보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일반적이고, 부패척결/정경유착해소에 필수적인 민주적 과제들로 보인다. 그러나 공시제도의 강화, 공시내용의 확대, 국제회계기준의 적용, 감사인의 독립성 강화와 전자공시제도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기업·금융의 투명성은 (금융)시장중심적인 경제구조를 갖추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설비이다. 위 그림에서도 역시 기업·금융의 투명성 강화는 '시장의 압력'과 상호작용하여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부패와 정경유착 근절이라는 본연의 민주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압력을 전제로 한 투명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압력의 해체가 필요하며, 시장을 지배하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중적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난 재벌지배체제가 노정한 시장의 불투명성과 부패성이 민주와 개혁을 빙자하여 투명한 도박매너를 지닌 거대금융자본의 약탈성으로 대체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한다.
<b>CRV, CRC를 통한 구조조정</b>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Corporate Restructuring Vehicle)란 워크아웃기업 처리를 위한 펀드형태의 페이퍼컴퍼니이고,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는 기업구조조정을 전문으로 설립되는 상법상의 주식회사다. 둘 다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설립되지만 CRV가 한개의 워크아웃기업을 맡는 한시적인 기업인 반면, CRC는 영속적으로 존재하며 상대적으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구조조정 경영전문가와 펀드매니저들로 구성되며, 채권금융기관으로부터 워크아웃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의 주식, 채권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전문경영인을 파견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
그렇게해서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기업가치와 주가를 회복시켜 이익을 올리는 것이다. 채권단은 스스로 별도의 CRV를 설립하거나 CRC를 통해 구조조정의 위험부담을 넘기고 채권단간 이해상충을 피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반면 CRV, CRC에게 있어 구조조정은 이익을 남기는 일상적인 사업수단이기 때문에, 워크아웃대상기업의 경영진이나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거리낌도 없이 누구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신속히 수행한다. 청부살인으로 살아가는 전문킬러가 '왜? 직업이니까'라며 아무 거리낌없이 일을 처리하듯 말이다.
이제 구조조정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하고 한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국민총생산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인 경제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역할이 비단 CRV, CRC만의 몫은 아니다. 구조조정 리츠(RIETs)라고 불리는 구조조정 전문부동산투자 뮤추얼펀드나 M&A전용 공모, 사모펀드 등도 부실자산, 부실기업을 사들여 구조조정하여 되파는 직간접적 업무를 업으로 수행한다. 또한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투기등급 고수익채권인 정크본드(Junk bond)시장을 활성화하여 회사채시장을 정상화하고 기업자금난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정크본드시장은 중소영세기업들도 자기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실, 이 또한 원활한 부실기업퇴출과 부실기업대상의 공격적 M&A시장을 뒷받침하여 상시적 구조조정체제의 부대시설을 갖추겠다는 의도이다. 정크본드를 직역하면 말그대로 쓰레기채권이다. 쓰레기채권은 그만큼의 위험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는다. 이것은 뒷골목의 고리대금-폭력업을 양성화시켜주고, 그것을 제도화된 기업·금융 구조조정 작업에 동원하겠다는 것 이상이 아닌 것이다.
<b>상시개혁의 이름 아래 무너지는 한국 경제</b>
살펴본 바대로 김대중 정권의 상시개혁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다. 첫째, 기업의 내외적 견제를 통해 금융자산가들의 이해에 맞게 (금융)시장중심적인 기업지배구조의 형성. 둘째, 기업청부살인업자인 CRV, CRC를 통해 구조조정시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채권단의 이해를 최대화하는 체제. 그러나, 이것이 기업의 금융적 가치를 중대시켜줄지언정 생산력의 증대와 확장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오히려 경제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체제는 결코 아닌 것이다. 또한, 정부가 그동안 노동권의 후퇴, 불안정노동의 일상화 등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 아래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상시개혁체제 역시 그 계급적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기업청부살인업자를 내세워 시장의 이름 뒤편으로 몸을 숨기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직접개입에 따른 노동자의 필연화된 저항을 호도하고 은폐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시개혁체제는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는 물론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 경제를 더 큰 위기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체제이며,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불안정노동을 더욱 가속화, 일상화시키는 체제인 것이다.
<b>상시개혁체제의 특징과 내용</b>
일정한 기간과 목표치를 가지고 정부책임하에 진행되던 1, 2차 구조조정과 달리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이란 정해진 시한도, 구체적인 목표치도 없다. 금융, 기업 등 주요 시장주체가 소위 '투명한 책임경영'을 통해 시장에 책임을 지며, 시장의 일상적인 평가를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부실기업과 금융부실을 그때그때 알아서 털어내는 '영구-자동적인 개혁체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목표이다. 다만, 이같은 상시개혁이 작동되는데 필요한 제반제도와 환경을 구축하는 일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특히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전문 투자회사인 CRV, CRC 등의 설립과 M&A시장활성화 및 정크본드(투기등급채권)시장육성,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을 상시개혁체제를 위한 올해의 핵심추진과제로 삼고 있다. 또한 상시개혁체제 추진과제에는 이같은 기업 외부감시시스템 외에도 내부감시스템으로서 사외이사제 및 소액주주권 강화-지원, 지난 1,2차 구조조정을 통해 마무리하지 못한 5개 공기업 36개 자회사에 대한 민영화와 공적자금투입은행의 민영화를 내년까지 마무리짓는 일, 근로자파견제의 완전정착, 노동시간단축과 일상적 해고-비정규직화를 위한 노동법 개악 등이 포함된다.
<b>상시개혁체제 작동의 실제</b>
아직까지 상시개혁체제가 전체적인 모습을 완비한 가운데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CRV, CRC설립관련 법규들이 이미 지난해에 입법되긴 했으나 실제설립 상황이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아니며, M&A시장과 정크본드시장 역시 아직 분명하게 자리잡지 못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4월말부터 M&A전용 사모(私募)펀드 설립이 자유화되었으며, 하반기까지 정크본드시장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각 경제부처 책임자들의 공언을 놓고 볼 때, 상시개혁체제의 본격적 가동준비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각 채권금융기관들이 주동하게 될 '상시위험평가시스템', 즉 상시기업퇴출체제는 이미 5월중에 약 500개 잠재부실기업을 대상으로 한 퇴출심사작업에 본격돌입하였다. 각 채권금융기관들은 해마다 2차례(9월말과 4월말) 매달 체크해온 거래기업의 신용위험정도를 기준으로, 회생가능기업과 정리대상기업을 분류, 처리하게된다. 이때 신용위험평가에서 회생가능하다고 결정된 기업 중 특별관리가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여신거래재무약정(MOU)을 맺고 그 이행상황을 금융기관이 직접 수시점검하거나 CRV, CRC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거친다. 반면, 회생불가능 판정을 받은 기업은 신속히 퇴출, 정리시키게 된다. 그 구체적인 작동의 모습을 정부는 아래 <그림1>과 같이 설명한다.
<b>강화된 외부견제장치 : M&A시장 활성화의 의미</b>
정부는 지난 4월17일 국무회의에서 M&A전용펀드(M&A전용 사모뮤추얼펀드와 M&A간접지원 공모펀드) 설립허용과 관련된 증권관련법 시행령개정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내에서는 전무했던 적대적 M&A가 가능해질 뿐 아니라 기업이 합법적으로 주가관리에 나설 수 있게 되었으며, M&A전용펀드를 통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전에도 모든 M&A, 즉 기업인수합병이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불특정다수인을 상대로 공모하는 투신사펀드나 뮤추얼펀드(Mutual Fund)에는 유가증권투자한도가 있어 기업경영권 지배가 가능한 수준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었고(동일종목 동일회사의 투자한도 제한), 49인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뮤추얼펀드가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지배할 수 있는 정도의 지분을 보유할 경우, 그 의결권의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한 이른바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조항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M&A전용펀드에 대해 이같은 조항의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적대적 M&A를 포함한 모든 M&A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게된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M&A전면 자유화와 관련된 이같은 변화를 '시장에 의한 사회적 통제'를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이를 통해 기업의 책임투명경영을 외적으로 강제하고 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기술개발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더욱 강화된 기업활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기업을 팔고사는 M&A시장의 활성화를 기업경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사회적 통제'의 강화라고 볼 수는 없다. M&A시장이 활성화된 경제하에서 기업은 생산력이 아니라 주가 또는 기업시장에서의 기업가치로만 평가된다.
기업 자체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의 한 구성부분이 될 뿐이며, 기업과 산업의 국민경제적 의미와 역할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기업, 주식시장에서의 거래에 의해 기술개발이 촉진된다는 바램 역시, 한낱 공상에 불과하다. 말이 좋아 '규모의 경제'이지, 초민족적 '독점화'를 이루는 가운데 제국의 거대기업에 흡수통합되거나 금융자본의 빠른 손놀림에 잘게 쪼개어져 되팔리는 격랑 속에서 현란한 금융투기기법과 약육강식의 비정한 정글법칙 말고 무슨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고 배운단 말인가?
한편 정부는 소위 그린메일(Green Mail)을 ― 주식을 매집한 후 인수대상기업이나 제3자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단기간내 매도하여 차익을 추구하는 행위 ― 막기 위해 M&A목적의 주식취득 후 6개월간은 주식매각을 금지하는 조치를 부가함으로써 M&A 전용펀드가 기업가치의 증대 없이 경제적 비용만을 증대시키는 무분별한 투기로 흐를 것을 막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헛된 바램이거나 교묘한 속임수이다. 그린메일과 같은 명명백백한 금융투기행위도 문제이겠지만, M&A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행위 자체가 거대한 금융사기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외부에서 M&A 전용펀드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게 되는 펀드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점은 보다 명백해진다.
그들은 언제나 과감한 비용절감과 신속하고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선호하며, 사실 그것말고는 별다르게 자신들의 투자이득을 남길 방법을 찾지못한 사람들(대부분은 법인, 기관들)이다.
M&A시장 활성화는 새로운 M&A관련 종목들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기업경영권의 공격·방어에 필요한 새로운 수요기반을 마련하는 직접적 효과와 더욱 강도높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새로운 차원의 금융투기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결국 초민족적 금융자본들의 투기이득을 보장해주는 대신 국민경제와 고용안정을 내바치는 꼴이다.
<b>내부견제장치 강화 : 투명책임경영의 실체</b>
우리는 그동안 누차에 걸쳐 사외이사제와 소액주주권 강화를 요체로 하는 투명 책임경영제는, 경제민주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금융화된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의 정착에 다름아님을 지적하고 비판해왔다. 이는 또한 노동자의 단결에 기초한 운동을 파괴하고, 그 대신 자본시장 활성화와 경제의 투기화를 지탱해주는 주주행동주의로 운동을 대체한다. 그리하여 '성공한 노동자'는 있어도 '노동자의 성공'은 없는,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고용·노동조건을 구조화시키는데 일조하게될 위험을 지닌다. '소유·경영의 분리'와 '감독·경영의 분리'는 전형적인 미국식 이사회구조의 기본조직원리이다. 즉 이사회의 경영기능은 CEO(최고 경영자)와 CFO(재무담당임원)등의 집행임원(executive officer)에게 전적으로 맡겨지고, 이사회 회장(Chairman)과 사외이사들로 이루어진 이사회(또는 감사회)는 집행임원들의 경영을 감독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주주총회-감사(사외이사로 이루어진 감독기관)-이사회(집행기능)간의 역할분담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구조는 이처럼 주주들의 집단적 이해를 '투명'하게 반영-감독하고, '책임감 있게' 대변하는 집행기관간의 역할분담과 결합으로 짜여지는 것이다.
이같은 조직구성하에서 노동자는 '투명하게' 반영되는 집단적인 주주이익과(대주주의 독단적 전횡만이 아니라) 이를 '책임감있게' 실행하는 경영자에 대해 오직 자신이 맡은 작업실적만으로 평가되고 배치-제거되는 무력한 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설령 일부 노동자대표가 사외이사의 자격으로 경영감독권을 행사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대표가 경영감독권의 전권를 차지할 수도 없으며, 사외이사의 감독권이란 주주가치/기업가치를 증대시킬 목적을 가지는 가치경영 수행에 대한 감독권한이기 때문이다. 또, 사외이사의 권한이 어디까지나 감독권한인 한에서, 사외이사의 의 실제 경영정보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미국식 이사회구조의 문제점은 미국과는 달리 이원적 이사회구조를 갖는 서구유럽의 노동자 경영참가의 경우에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한때 가장 강력한 노동자 경영참가권을 가지고있었던 독일에서조차 경영참가 노동자대표들의 역할을 통해서, 노동자의 이익과 배치되는 결정적인 회사방침을 노동자이사들의 힘으로 막아낸 사례는 거의 ?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최근 독일과 북유럽 사회복지국가들의 기업경영조직들이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거치고있는 상황에서 '투명책임경영'의 실체는 더욱 분명해 보인다.
위 <그림1>에 표시된 공시제도 강화, 분기별수익성지표 발표는 얼핏 보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일반적이고, 부패척결/정경유착해소에 필수적인 민주적 과제들로 보인다. 그러나 공시제도의 강화, 공시내용의 확대, 국제회계기준의 적용, 감사인의 독립성 강화와 전자공시제도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기업·금융의 투명성은 (금융)시장중심적인 경제구조를 갖추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설비이다. 위 그림에서도 역시 기업·금융의 투명성 강화는 '시장의 압력'과 상호작용하여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부패와 정경유착 근절이라는 본연의 민주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압력을 전제로 한 투명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압력의 해체가 필요하며, 시장을 지배하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중적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난 재벌지배체제가 노정한 시장의 불투명성과 부패성이 민주와 개혁을 빙자하여 투명한 도박매너를 지닌 거대금융자본의 약탈성으로 대체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한다.
<b>CRV, CRC를 통한 구조조정</b>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Corporate Restructuring Vehicle)란 워크아웃기업 처리를 위한 펀드형태의 페이퍼컴퍼니이고,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는 기업구조조정을 전문으로 설립되는 상법상의 주식회사다. 둘 다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설립되지만 CRV가 한개의 워크아웃기업을 맡는 한시적인 기업인 반면, CRC는 영속적으로 존재하며 상대적으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구조조정 경영전문가와 펀드매니저들로 구성되며, 채권금융기관으로부터 워크아웃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의 주식, 채권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전문경영인을 파견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
그렇게해서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기업가치와 주가를 회복시켜 이익을 올리는 것이다. 채권단은 스스로 별도의 CRV를 설립하거나 CRC를 통해 구조조정의 위험부담을 넘기고 채권단간 이해상충을 피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반면 CRV, CRC에게 있어 구조조정은 이익을 남기는 일상적인 사업수단이기 때문에, 워크아웃대상기업의 경영진이나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거리낌도 없이 누구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신속히 수행한다. 청부살인으로 살아가는 전문킬러가 '왜? 직업이니까'라며 아무 거리낌없이 일을 처리하듯 말이다.
이제 구조조정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하고 한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국민총생산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인 경제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역할이 비단 CRV, CRC만의 몫은 아니다. 구조조정 리츠(RIETs)라고 불리는 구조조정 전문부동산투자 뮤추얼펀드나 M&A전용 공모, 사모펀드 등도 부실자산, 부실기업을 사들여 구조조정하여 되파는 직간접적 업무를 업으로 수행한다. 또한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투기등급 고수익채권인 정크본드(Junk bond)시장을 활성화하여 회사채시장을 정상화하고 기업자금난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정크본드시장은 중소영세기업들도 자기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실, 이 또한 원활한 부실기업퇴출과 부실기업대상의 공격적 M&A시장을 뒷받침하여 상시적 구조조정체제의 부대시설을 갖추겠다는 의도이다. 정크본드를 직역하면 말그대로 쓰레기채권이다. 쓰레기채권은 그만큼의 위험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는다. 이것은 뒷골목의 고리대금-폭력업을 양성화시켜주고, 그것을 제도화된 기업·금융 구조조정 작업에 동원하겠다는 것 이상이 아닌 것이다.
<b>상시개혁의 이름 아래 무너지는 한국 경제</b>
살펴본 바대로 김대중 정권의 상시개혁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다. 첫째, 기업의 내외적 견제를 통해 금융자산가들의 이해에 맞게 (금융)시장중심적인 기업지배구조의 형성. 둘째, 기업청부살인업자인 CRV, CRC를 통해 구조조정시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채권단의 이해를 최대화하는 체제. 그러나, 이것이 기업의 금융적 가치를 중대시켜줄지언정 생산력의 증대와 확장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오히려 경제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체제는 결코 아닌 것이다. 또한, 정부가 그동안 노동권의 후퇴, 불안정노동의 일상화 등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 아래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상시개혁체제 역시 그 계급적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기업청부살인업자를 내세워 시장의 이름 뒤편으로 몸을 숨기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직접개입에 따른 노동자의 필연화된 저항을 호도하고 은폐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시개혁체제는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는 물론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 경제를 더 큰 위기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체제이며,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불안정노동을 더욱 가속화, 일상화시키는 체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