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불법'복제는 과연 해적질인가?
<b>21세기 새로운 메카시즘</b>
1998년, 미 의회는 더 이상 정보 고속도로가 '해적들의 천국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작권법인 디지털밀레니엄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시장 원리에 근거해 국가 정보기반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자국의 법률변화를 WTO·TRIPs를 통해 제3세계에 강제하고 있으며, 그 첨병에 서 있는 한국은 재빠르게 법안을 개정하고 인터넷상의 해적들을 무작위로 잡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8일 국내 4대 음반사들은 '소리바다'(www.soribada.com)를 불법복제 유통혐의로 형사고발하였다. 소리바다는 인터넷에 접속된 일반사용자들이 음악파일을 개인과 개인 사이에 교환할 수 있도록(이러한 방식을 P2P<peer-to-peer>방식이라 한다)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두달 뒤인 3월 8일부터 정부합동대책반은 대대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 단속을 수행하였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사회단체를 비롯한 전국 컴퓨터 사용자들은 일순간에 해적의 혐의를 받게되었고 이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한 정부의 불법적 단속에도 몇몇 사회단체를 제외하고는 이의조차 제기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한 마디로 '매카시즘'의 경제적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불법복제' 단속논리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다수 노동자-민중의 해적질로 인해, Micro$oft사(이하 M$) 혹은 거대음반사와 같은 일부 '양심적인(?)' 독점기업의 재산이 침해받기 때문에 해적들(대다수 노동자-민중)들의 해적질을 막아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b>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었다 </b>
과거 책이 매우 희소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책은 희소했지만 그 책을 훔쳐가는 사람을 도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치량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으로 결정되는 데 이는 상품을 재생산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지식·정보가 상품이 되었을 때 그 가치는 지식·정보를 재생산하는 즉, 복제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의미하므로 그 가치량은 급속히 사라지게 된다. 공기와 같이 교환가치가 없고 그 양이 무한한 것을 서로 나누어 쓰는 행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이것이 책(정확하게는 contents)도둑이 도둑이 아닌 첫 번째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지식을 생산하고 이용하는 노동은 개별 유형노동이라기보다 사회문화적으로 습득한 비물질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수필을 쓰거나 발명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의 지적 업적은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남긴 지적 업적이나 비 지적인 업적이 없었다면 당신의 지적 성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당신의 선생님이나 부모도 포함되며, 당신의 지적 업적에 밑바탕을 제공했던 앞서간 작가나 발명자도 들어간다.
그리고 이론적, 현실적 차원에서 아이디어와 기술에 관해 토론하고 이것을 사용하고 당신의 공적에 문화적인 배경을 제공한 많은 이들도 있어야 한다.' 이미 사회화된 생산물의 경우 그 생산물을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근거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책(contents) 도둑은 도둑이 아닌 두 번째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은 희소하지도 않은 디지털 지식·정보를 허락 없이 복제하거나 이동만 해도 도둑이 된다. 그 이유는 자명하게도 정보·지식이 이미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노동자-자본간의 역관계상 노동자들이 밀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보·지식 상품으로 팔리는 정보·지식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지적재산권)와 기술적 장치의 강화, 그 독점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유포, 그리고 그 제도를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국가의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5월,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는 "독점력 추구는 신경제를 이끌어가는 기본원동력"이라고 공공연히 독점의 정당성을 유포하고 다녔으며, 이용자들의 저항이 컸을 때 M$에서 생산한 소프트웨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되었다는 점을 보자. 게다가 지적재산권을 전세계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WTO-WIPO에서의 횡포들을 보자. 새로운 정보·지식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로 하여금 지적재산권을 폭력적으로 강제하여 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아들, 딸들까지 도적질하는 해적으로 몰아가는 최근 미국과 한국 정부의 행태는 이를 잘 확인시켜준다.
더욱 문제인 것은 현재 지적재산권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식·정보, 즉 전혀 창의적이지도 않은 지식·정보를 독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소위 '신 지적재산권')들이 입안되고 있으며, 그 논리는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 보호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라는 신자유주의 구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b>지적재산권의 부정은 자유로운 생산자를 위한 것</b>
이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불법복제 단속 정당화 주장 중에 강력하게 제기되는 주장이 있다. 바로, 이용자들의 불법복제가 생산자의 창작욕구를 저하시킨다고 한다는 것과 더 심하게 정보·지식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생산자들의 창작욕구가 과연 그 대가에서 비롯된 것인가? 언제부터 자본주의가 생산노동자에게 이토록 배려했던가? 이는 정보·지식의 생산과정에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생산자와 이용자, 즉 노동자와 민중을 대립시켜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정보·지식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바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은 음악을 가장 많이 들을 것이고,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사람은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정보·지식의 순수한 이용자라 할지라도 이용 도중에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표출하거나(불량분석), 필요한 요구사항(상품기획)을 제시한다. 이러한 불만과 요구사항은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게 접수되어 새로운 정보·지식을 만들어 내므로, 순수한 이용자들이라고 해도 넓은 의미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한다고 할 수 있다. 정보·지식 생산에 관한한 생산자와 이용자의 관계는 허물어진다. 이러한 관계를 인정한다면 불법복제가 창작욕구를 저하시킨다는 논리는, 정보지식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생산(이용)자들이 불법복제함으로써 생산(이용)자의 창작욕구를 저하시킨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론적으로 정보·지식의 자유로운 이용은 생산노동자로 하여금 자유로운 생산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근본적으로 정보·지식의 생산은 그 정보·지식을 이용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용)가치가 부가되고 발전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특허제도 초기에 '모방이야말로 산업에 결정적인 추진력을 준다'는 이유로 특허를 반대하는 반특허이론이 강력하게 제기된 것도, 베토벤이 음악 공유를 주장하며 '음악창고'를 제기한 이유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X-선 발견을 공유한 뢴트겐도 이러한 자유로운 생산을 위해서 자신의 정보·지식을 공유하려 하였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정보 공유를 주장하는 Copyleft운동도 인터넷에서 소프트웨어를 창작하고 생산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적재산권의 걸림돌을 해체하고 자유롭게 생산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보·지식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보·지식 생산에 가장 걸림돌은 불법복제가 아니라 정보·지식을 독점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용하고 생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정보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의 생계문제를 거론하며 지적재산권 강화 주장이 간혹 제기된다. 이 부분은 지적재산권 보호논의를 벗어난 논의이다. 지적재산권이 강화된다고 정보·지식 노동자들의 생계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일 뿐더러, 지적재산권 자체가 정보·지식의 생산자들의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도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지적재산권은 생산 노동자가 아닌 M$와 같은 독점자본의 소유이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으로 생산 노동자들의 생계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문제는 정보·지식의 생산자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력(知力)을 자본가에게 팔 수밖에 없는 시스템, 그러하기에 자본가들이 요구하는 정보·지식만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시스템, 지식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력을 팔지 않으면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더 문제인 것이다.
<b>자유로운 생산과 이용을 위하여 </b>
정보·지식의 공유를 위한, 그리고 자유로운 생산을 위한 저항은 다채롭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자본에 의해 포섭될 운명에 놓여있지만 개인과 개인을 연결시켜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해주는 냅스터와 소리바다가 있고, 경제적·정치적 검열 없는 자유로운 네트워크인 FreeNet도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공유의 Copyleft정신으로 잘 알려진 리눅스라는 운영체계는 M$ Window 시장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Copyleft정신으로 생산한 소프트웨어를 일반적으로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라고 하는데, 이때 자유란 지적재산권이라는 정보·지식에 둘러싸인 장벽을 뚫고 '자유롭게 생산하고 이용하자'라는 의미이다.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보·지식 생산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은 불법복제와 Copyleft운동이 아니라, 정보·지식을 독점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용하고 생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이용자들의 '불법복제'는 해적질이 아니라 현재 지적재산권으로 왜곡되어 가고있는 정보·지식의 본질을 바로잡으려는 자연스러운 노동자-민중(생산자-이용자)의 자생적 저항으로 볼 수 있으며, Copyleft운동은 이용자와 생산 노동자가 같이 생산과정에 참여하여 자본의 기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산하고 이용하기 위한 운동의 출발이다.
1998년, 미 의회는 더 이상 정보 고속도로가 '해적들의 천국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작권법인 디지털밀레니엄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시장 원리에 근거해 국가 정보기반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자국의 법률변화를 WTO·TRIPs를 통해 제3세계에 강제하고 있으며, 그 첨병에 서 있는 한국은 재빠르게 법안을 개정하고 인터넷상의 해적들을 무작위로 잡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8일 국내 4대 음반사들은 '소리바다'(www.soribada.com)를 불법복제 유통혐의로 형사고발하였다. 소리바다는 인터넷에 접속된 일반사용자들이 음악파일을 개인과 개인 사이에 교환할 수 있도록(이러한 방식을 P2P<peer-to-peer>방식이라 한다)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두달 뒤인 3월 8일부터 정부합동대책반은 대대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 단속을 수행하였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사회단체를 비롯한 전국 컴퓨터 사용자들은 일순간에 해적의 혐의를 받게되었고 이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한 정부의 불법적 단속에도 몇몇 사회단체를 제외하고는 이의조차 제기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한 마디로 '매카시즘'의 경제적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불법복제' 단속논리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다수 노동자-민중의 해적질로 인해, Micro$oft사(이하 M$) 혹은 거대음반사와 같은 일부 '양심적인(?)' 독점기업의 재산이 침해받기 때문에 해적들(대다수 노동자-민중)들의 해적질을 막아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b>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었다 </b>
과거 책이 매우 희소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책은 희소했지만 그 책을 훔쳐가는 사람을 도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치량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으로 결정되는 데 이는 상품을 재생산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지식·정보가 상품이 되었을 때 그 가치는 지식·정보를 재생산하는 즉, 복제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의미하므로 그 가치량은 급속히 사라지게 된다. 공기와 같이 교환가치가 없고 그 양이 무한한 것을 서로 나누어 쓰는 행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이것이 책(정확하게는 contents)도둑이 도둑이 아닌 첫 번째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지식을 생산하고 이용하는 노동은 개별 유형노동이라기보다 사회문화적으로 습득한 비물질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수필을 쓰거나 발명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의 지적 업적은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남긴 지적 업적이나 비 지적인 업적이 없었다면 당신의 지적 성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당신의 선생님이나 부모도 포함되며, 당신의 지적 업적에 밑바탕을 제공했던 앞서간 작가나 발명자도 들어간다.
그리고 이론적, 현실적 차원에서 아이디어와 기술에 관해 토론하고 이것을 사용하고 당신의 공적에 문화적인 배경을 제공한 많은 이들도 있어야 한다.' 이미 사회화된 생산물의 경우 그 생산물을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근거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책(contents) 도둑은 도둑이 아닌 두 번째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은 희소하지도 않은 디지털 지식·정보를 허락 없이 복제하거나 이동만 해도 도둑이 된다. 그 이유는 자명하게도 정보·지식이 이미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노동자-자본간의 역관계상 노동자들이 밀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보·지식 상품으로 팔리는 정보·지식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지적재산권)와 기술적 장치의 강화, 그 독점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유포, 그리고 그 제도를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국가의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5월,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는 "독점력 추구는 신경제를 이끌어가는 기본원동력"이라고 공공연히 독점의 정당성을 유포하고 다녔으며, 이용자들의 저항이 컸을 때 M$에서 생산한 소프트웨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되었다는 점을 보자. 게다가 지적재산권을 전세계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WTO-WIPO에서의 횡포들을 보자. 새로운 정보·지식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로 하여금 지적재산권을 폭력적으로 강제하여 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아들, 딸들까지 도적질하는 해적으로 몰아가는 최근 미국과 한국 정부의 행태는 이를 잘 확인시켜준다.
더욱 문제인 것은 현재 지적재산권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식·정보, 즉 전혀 창의적이지도 않은 지식·정보를 독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소위 '신 지적재산권')들이 입안되고 있으며, 그 논리는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 보호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라는 신자유주의 구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b>지적재산권의 부정은 자유로운 생산자를 위한 것</b>
이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불법복제 단속 정당화 주장 중에 강력하게 제기되는 주장이 있다. 바로, 이용자들의 불법복제가 생산자의 창작욕구를 저하시킨다고 한다는 것과 더 심하게 정보·지식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생산자들의 창작욕구가 과연 그 대가에서 비롯된 것인가? 언제부터 자본주의가 생산노동자에게 이토록 배려했던가? 이는 정보·지식의 생산과정에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생산자와 이용자, 즉 노동자와 민중을 대립시켜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정보·지식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바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은 음악을 가장 많이 들을 것이고,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사람은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정보·지식의 순수한 이용자라 할지라도 이용 도중에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표출하거나(불량분석), 필요한 요구사항(상품기획)을 제시한다. 이러한 불만과 요구사항은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게 접수되어 새로운 정보·지식을 만들어 내므로, 순수한 이용자들이라고 해도 넓은 의미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한다고 할 수 있다. 정보·지식 생산에 관한한 생산자와 이용자의 관계는 허물어진다. 이러한 관계를 인정한다면 불법복제가 창작욕구를 저하시킨다는 논리는, 정보지식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생산(이용)자들이 불법복제함으로써 생산(이용)자의 창작욕구를 저하시킨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론적으로 정보·지식의 자유로운 이용은 생산노동자로 하여금 자유로운 생산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근본적으로 정보·지식의 생산은 그 정보·지식을 이용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용)가치가 부가되고 발전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특허제도 초기에 '모방이야말로 산업에 결정적인 추진력을 준다'는 이유로 특허를 반대하는 반특허이론이 강력하게 제기된 것도, 베토벤이 음악 공유를 주장하며 '음악창고'를 제기한 이유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X-선 발견을 공유한 뢴트겐도 이러한 자유로운 생산을 위해서 자신의 정보·지식을 공유하려 하였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정보 공유를 주장하는 Copyleft운동도 인터넷에서 소프트웨어를 창작하고 생산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적재산권의 걸림돌을 해체하고 자유롭게 생산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보·지식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보·지식 생산에 가장 걸림돌은 불법복제가 아니라 정보·지식을 독점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용하고 생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정보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의 생계문제를 거론하며 지적재산권 강화 주장이 간혹 제기된다. 이 부분은 지적재산권 보호논의를 벗어난 논의이다. 지적재산권이 강화된다고 정보·지식 노동자들의 생계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일 뿐더러, 지적재산권 자체가 정보·지식의 생산자들의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도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지적재산권은 생산 노동자가 아닌 M$와 같은 독점자본의 소유이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으로 생산 노동자들의 생계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문제는 정보·지식의 생산자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력(知力)을 자본가에게 팔 수밖에 없는 시스템, 그러하기에 자본가들이 요구하는 정보·지식만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시스템, 지식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력을 팔지 않으면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더 문제인 것이다.
<b>자유로운 생산과 이용을 위하여 </b>
정보·지식의 공유를 위한, 그리고 자유로운 생산을 위한 저항은 다채롭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자본에 의해 포섭될 운명에 놓여있지만 개인과 개인을 연결시켜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해주는 냅스터와 소리바다가 있고, 경제적·정치적 검열 없는 자유로운 네트워크인 FreeNet도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공유의 Copyleft정신으로 잘 알려진 리눅스라는 운영체계는 M$ Window 시장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Copyleft정신으로 생산한 소프트웨어를 일반적으로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라고 하는데, 이때 자유란 지적재산권이라는 정보·지식에 둘러싸인 장벽을 뚫고 '자유롭게 생산하고 이용하자'라는 의미이다.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보·지식 생산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은 불법복제와 Copyleft운동이 아니라, 정보·지식을 독점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용하고 생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이용자들의 '불법복제'는 해적질이 아니라 현재 지적재산권으로 왜곡되어 가고있는 정보·지식의 본질을 바로잡으려는 자연스러운 노동자-민중(생산자-이용자)의 자생적 저항으로 볼 수 있으며, Copyleft운동은 이용자와 생산 노동자가 같이 생산과정에 참여하여 자본의 기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산하고 이용하기 위한 운동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