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공동체 그리고 제국: 반제국주의 노동전략을 향하여
*Class, Community, and Empire: Toward an Anti-Imperialist Strategy for Labor
좌파와 노동,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의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 과정에서 미국의 새로운 정치적 운동들은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적 기획과의 재융합을 위한 매우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제안의 핵심적인 전략적 전제는, 미국 내외부의 억압받는 국가들과 민중들의 자결권을 인식하는, 다-인종적이고 다-민족적인 노동자 계급에 의한 광범위한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의 구성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는 미 제국주의와의 공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특히 냉전 동안 더욱 두드러졌으나 제국주의와의 협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클린턴 행정부는 두 가지 공인된 목적들에 대한 자신의 외교정책을 형성해가고 있다. 하나는 세계의 모든 시장에 대한 미국 자본주의의 확장―이에 대한 타파는 "문호개방정책"으로 포장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자기결정[민족자결]에 남겨져 있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질서들을 단속하기 위한 세계적인 군사동맹으로서 NATO의 재건이다.
조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제국주의적 전략계획에 대해 아직 반대하고 있지는 않고, 초민족적 자본가 협력체, 민주당, AFL-CIO 관료주의와의 분명한 연계가 존재한다. 이는 1997년 AFL-CIO 정기총회에서 분명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많은 대의원들이 NAFTA의 다음 회의에 대한 자신의 조급한 제안들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점차 공격적으로 되어갔다. 그는 "이것은 세계의 4%의 인구가 세계의 22%의 부를 계속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하여 자신의 무역정책들의 정당성을 대의원들에게 주장하였다. AFL-CIO의 스위니(Sweeny)派는 클린턴의 제안들을 무효화하기 위하여 소수파의 리더인 리차드 게파르트(R. Gephardt)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 복지체계를 끝장내기" 위해 여성들과 아이들을 길거리로 막 내던져버린 대통령에게 "4년 더"라고 외치면서 총회 대의원들은 [클린턴의] '구애 파티'에 참가하였다.
AFL-CIO 내부에 좌파는 어디에 있는가? 클린턴에 반대하는 시위, 즉 클린턴의 입후보에 대한 지지/지원을 저지하는 활동들, 인도네시아에서 미국 원조하에 행해지는 고문, 클린턴 행정부의 유엔의 제반 생태적 규제 및 인권에 관한 협정의 수용 거부에 대한 의회투쟁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분노는 말할 것도 없이 자유주의자들이 한번쯤은 표현했을 그러한 비판은 존재하는가?
미국 제국주의의 원대하고 공격적인 행위들은 기업 회의실에서 공장, 작업장, 공동체 등에 이르는, 오늘날 세계의 전체적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 국가와 대중 조직들을 관통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문화 산업을 통해 정신을 식민화하고 있다. 따라서 반제투쟁의 구성 요소로서 국내 계급투쟁을 분석하는 것만큼이나 미국에서 제국주의적 동학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미국의 좌파는 제국주의가 계급투쟁의 전략들이 구성되어야 하는 정황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투쟁이 지역적이어야 하는지, 민족적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국제적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좌파 내에서의 논쟁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분명히 많은 투쟁의 장소들이 존재한다: 작업장, 공동체, 민족, 국제적 격투장(arena) 등. 더욱이 오늘날의 조건에서, 심지어 가장 지역적인 투쟁조차도 그것의 세계적인 지점(setting)으로부터 분리하기 어려우며 노동운동을 위한 정치적 전략의 진정한 시험대는 다양한 수준의 투쟁들을 통합하는 그들의 능력에 있다. 인종-맹족적인(color-blind) 계급투쟁은 효과가 없으며 확실히 제국주의적 지배와 연루되지 않은 것, 심지어 중립적인 경향을 가진 것조차 없다. 이는 특히 미국에서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곳에서 국내 계급투쟁은 인종주의와 민족적 억압의 틀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의미는 전략적인 것임과 동시에 윤리적인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투쟁들이 주변의 공동체로 넘쳐나가면서, 오늘날의 매우 지역적인 국내 투쟁들이 보다 거대한 국제적 역량을 포함할 것처럼 보이며 노동자들은 연대를 원하고 다른 국가들에서의 노동운동들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그들 자신의 지역적 공동체들, 특히 전형적으로는 미국의 다인종적 공동체들과의 동맹들을 꾀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공동체의 지지/지원이 다른 국가들의 투쟁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포함한다는 사실 또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된 노동운동이 여타 근로 인민들을 경쟁자로 취급하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살 행위이다.
<b>작업장으로부터 제국으로: Van Nuys시(市)에서 GM의 사례</b>
반제국주의적 전략의 잇점은 United Auto Workers(이하 UAW) 645지부의 캠페인, 즉 GM Van Nuys의 공장가동을 유지하라는 캠페인에서 드러났다. 1981년에서 1987년까지, Van Nuys의 GM 공장 자동차 조립공이자 혁명적 투쟁연맹(맑스-레닌주의)의 성원으로서 나는 이 캠페인의 조정자로 일했다. 캠페인은 5,000명의 노동자―그 중 2,500명은 라틴계였고 750명은 흑인이었으며 750명은 여성이었다―를 해고하려는 시도를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 다인종적, 다민족적 노동자 운동과 로스엔젤레스의 흑인 및 라틴계 공동체에 뿌리를 둔 피억압 민족운동을 통일시킴으로써, 우리는 미국에서 공장 폐쇄를 막아내는 거의 유일한 성공적 캠페인을 조직했다. 우리의 주요 전술은 경제적 투쟁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역에 투사하는 것으로, 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GM 불매 위협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Van Nuys시의 GM을 유지하자'라는 캠페인을 위해 노동자/공동체 제휴를 창조했고, 당시 GM 최고경영자인 제임스 맥도날드로 하여금 정치적 운동―지역적으로 위치한 그러나 노동조합으로 한정되지 않는―과 협상하도록 강제했으며, 10년 동안 공장 가동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이 시기 전반에 걸쳐 우리의 전략은 국제 UAW의 지도부의 전략과 직접적으로 충돌했다. 1980년대 동안에 UAW와 대다수 민주당 지도부는, 노조로 조직된 일자리의 대규모 상실을 고통스럽지만 필수불가결한 '다운사이징'으로 설명했다. 일본, 독일, 멕시코 수입품으로 가득찬 멋진 신세계에서 미국이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일본산 실업(Unemployment―Made in Japan)." UAW 노동자들은 매우 격앙되어 주차장에서 도요타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나는 공장내에서 매우 대중적인 조직책인 마크 마사오카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당시 계급적 전략의 핵심적 쟁점은 노동계급 내에 만연한 반-일본인 인종혐오주의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선진적인 노동자들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 노동자들에게, 종종 물리적 안전에 위협을 받으면서 국제적 노조가 미국 자본가들로부터 투쟁을 굴절시키기 위해 반-일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으며, 1년 이상의 조직화를 통해서 그러한 대중적이고 반동적인 히스테리를 최소한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느 누가 그러한 투쟁들을 회피하고 "작업현장"을 대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혹은 이기주의적인 캠페인들만이 노동자 계급을 통일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노조 지부에서 평조합원들의 반란, 흑인 및 시카노(Chicano) 민족 해방 운동, 그리고 반제국주의 전략을 좌파적 지도력과 통합시킨 것은 1980년대에 몇 안되는 노동운동의 승리들 중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국제 UAW와 GM 간의 노동관리 협력 전략에 반대하는 전략과 우리 지역에 대한 그들의 합동 공격은 1992년 공장의 최종폐쇄로 귀결되었다.
<b>로스엔젤레스 버스승객조합: 계급투쟁의 다양한 장소들</b>
Van Nuys시에서의 상황에 대응하면서, 우리는 1989년에 다인종적인 '싱크탱크-액트탱크'로 노동자/공동체 전략 센터를 조직했다. 이는 첫째, 국제 UAW로부터 독립하고 그것을 통해 국제 UAW의 압력을 차단하기 위한 맥락을 갖는 'Van Nuys시의 GM을 유지하자'라는 캠페인을 계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둘째, 초민족적 기업들과 자본주의 국가에 저항하는 투쟁의 다른 장소들에 대한 다인종적 노동-공동체 노동-계급 봉기들의 새로운 형태에 관한 실험들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계급, 공동체, 반-제국주의적 투쟁 사이의 상호연계를 구축하는 센터의 시험적 캠페인은 실험적인 정치적 노동계급 조합인 로스엔젤레스 버스승객조합(LA Bus Riders Union: 이하 BRU)이었다. 그것은 대중적이고 반-인종주의적인 조직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염이 심하고 자동차 의존적인 지역에서 최상의 청정한 연료와 공적 운송 체계의 형태 속에서 시민권을 요구하며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이었다. BRU는 '전략 센터의 전략적 조직화를 위한 전국 학교'에서 훈련받은 활동가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조직되었다.… BRU는 노동계급 조합의 새로운 형태였다. 그것은 저임금 노동자들, 특히 여성, 유색 인종, 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에서의 이민노동자들, 그리고 대다수 실업자들과 불안정 취업층(underemployed) 등의 대중정치(mass political) 조직으로서, 초국적 법인기업, 정부의 법인화(corporatization) 및 민영화, 국내 공공 정책에서의 인종주의, 제3세계에서 미국의 역할 등에 반대하는 대중적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BRU는 민주적 조직이다.
그것은 12인의 선출된 계획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며, 기층 직접행동 작업은 또다른 15인의 조직위원회에 의해 인도된다. 우리는 200명의 활동적인 일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50-70명은 대체로 매월 정기모임에 참석한다. 우리는 1,500명의 회비납부(dues-paying)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적어도 35,000명의 버스 운전사들이 우리의 뉴스 리플렛을 읽고, 버튼을 달며, BRU 성원과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의 계급 및 인종 투쟁의 즉각적 초점은 로스엔젤레스 도시교통청(MTA)의 30억 달러 예산을 버스 체계의 재구축에 사용하라는 것과 MTA가 모든 경전차(light rail)와 지하철 건설에 지불유예하라는 요구였다. 여기서 "버스를 위한 수십억, 인종주의를 가로질러 싸우자"라는 캠페인은 다음과 같은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MTA의 승객 94%는 버스 체계를 이용하지만 그것은 MTA 기금의 30%밖에 받지 않는 반면, 6%만이 이용하는 철도 체계는 보다 풍요하고 주로 백인인 교외 거주자만이 이용하지만 70%의 기금을 받는다.
때때로 좌파의 일이 원래부터 대중의 인식 외부에 그리고 오직 비판의 영역에만 있지만, 리오단파, 클린턴파 그리고 스위니파는 "현실세계"에 있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우 BRU는 그 이름보다 더욱 확장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BRU는 저임금 노동계급, 라틴계, 흑인, 아시아인, 노인, 학생, 장애인, 실업자, 복지 수혜자의 권리를 위한 매우 전투적이며 가시적이고 영향력인 정치적 세력이었다. 우리는 고도로 가시적인 미디어 전략을 발전시켰다; <워싱턴 포스트>, <기독교 과학 모니터> 그리고 ABC의 <오늘의 세계 뉴스>에 잦은 기사들, 주마다 그리고 때때로 날마다 로스엔젤레스의 유력한 신문들과 텔레비전 채널들, 게릴라 포스터 캠페인,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하스켈 웩슬러에 의한 다큐멘터리 제작도 있었다.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BRU는 수많은 전술을 이용해왔다. 우리는 수 시간동안 도로 점거, 연좌 농성 등 직접행동을 채택하는 전투적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시민권 소송 사건의 결과, 우리는 LA 버스 승객의 '협상 기구'가 되었다. 그들은 합의 판결을 통해 로스엔젤레스의 버스 승객을 위한 주요한 개선―버스요금의 인하, 많은 새로운 버스의 도입, 과수용 승객수 감축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의 분할적이고 불평등한 교통체계의 인종차별적 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지역에서 서비스 실시―에 동의했다. 나아가 법원은 BRU를 350,000의 버스 승객에 대한 '계급 대표자'로 구축했다. 제도화된 Joint Working Group(JWG) 내에서 BRU는 MTA의 반대 관계들로 기능했다.
JWG는 미래의 버스 노선, 버스정류장들을 위한 기금 마련, 과밀승객 감축 그리고 미래의 로스엔젤레스 운송체계의 다른 어떤 양상들을 갖고 싸우기 위해 매주 만났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협상 대표로서 우리의 새로운 역할은 우리 자신의 노조 내에서 주도성과 책임성을 가지는 민주적이고 노동-계급적인 구조의 구축을 형성시켜 왔다.
<b>버스승객조합/노조 제휴</b>
BRU는 독특한 데,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조합 운동의 강력한 지원과 참여를 얻는 공동체 기반의 지역적 정치 운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계급 조직의 다면적 영역에서 실험을 진행 중이다.
BRU는 많은 회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다수는 라틴계 이민자들이며 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투쟁―UNITE, SEIU의 Justice for Janitors 그리고 HERE―에서도 활동적이다. 우리는 종종 노조에 우호적이지만 공적 서비스 영역에서 보수적인 라틴계 정치 지도자에 의존하는 지역 노조 지도부와 차이를 보여왔다. 경비원들, 가정부들, 의류노동자들 그리고 이들 노조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 회원들을 위한 야간버스 서비스에 대한, BRU의 잘 알려진 싸움들은 적극적인 제휴들로 이어졌다.
게다가 전체 노동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주요 정치쟁점(예컨대, 이민, 올바른 행위, 범죄, 경찰, 죄수들의 권리들 그리고 세금정책)에 대해, BRU는 종종 기존 노조 지도부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해왔고 BRU는 AFL-CIO에 대한 대안이자 경쟁적인 정치적 중심인 것처럼 보여졌다.
예를 들어 AFL의 로스엔젤스 지부와 HERE는 보수적인 공화당원인 메이어 리차드 리오디언(뉴욕에서 AFL-CIO는 리오디언의 짝인 루디 길리아니를 추천했다)을 추천했다.… 그러나 BRU는 리오디안과 톰 해이든 의원 모두 추천하지 않았고, 우리의 양 지배적 정당에 대한 일반적인 중립성 때문일 뿐만 아니라 헤이든에 대한 많은 동의할 수 없는 점들 때문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BRU는 버스 노선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강력한 입장을 취해왔다. 반면, 미국운수노조(UTU)는 MTA의 13개 노선의 사유화 협상에 서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협상에서 우리가 "자가-민영화(self-privatization)" 협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서명했다. 이 협상은 UTU가 앞으로 비노조, 사유화된 버스회사들과 경쟁하고,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노조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확연하게 낮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몇몇 전투적 버스 운전사들은 전략 센터에 찾아왔고, 우리는 그들이 민영화에 반대하기 위해 평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을 도왔다.
동시에 BRU는 평조합원이자 UTU의 조합원들인 버스 운전수들과 훌륭한 관계를 유지한다. 우리의 조직책들은 조직화에 최선을 다하는데, 그들이 하는 일 가운데 최우선은 항상 운전사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종종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운전을 할 때 과밀승객으로 괴롭지는 않은지 등을 체크한다. 대다수 운전사들은 BRU를 사랑한다. 우리는 결국 더 많은 버스, 더 많은 운전사, 더 많은 기계장비, 더 많은 정비공, 깨끗한 연료, 더 좋은 휠체어 리프트,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운전사들은 마이크를 붙잡고 승객들에게 말한다. "여기가 BRU입니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UTU는 수년간 우리와 접촉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 내부의 전투적 조합원들에 따르면, 그것은 "UTU는 BRU가 자신들보다 더 열심히 투쟁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는 Wilmington에서 우리의 조직화 작업을 통해 발생했다. 거기에서 전략 센터는 환경 감시조직을 구축했다. 이 조직은 놀라운 수준의 유독 가스 유출에 노출된 저임금, 라틴계 노동계급 공동체의 공중 보건을 위해 투쟁하기 위한 것이었다. Texaco와 여타 유해 정유소와의 투쟁 속에서, 우리는 석유화학원자력노조와 수많은 제휴 시도를 해왔다. 그것은 우리의 캠페인에 반대하며 심지어 우리의 행진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지만, 만약 지역 공동체가 유독가스의 위험성을 알게 되고 그것의 격감을 주장할 경우 그로 인한 정유소 폐쇄와 일자리 상실을 두려워하는 노조와의 연대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버스-적격 기금(bus-eligible funds) 유용에 반대했을 당시, 우리는 로스엔젤레스의 SEIU 660지부의 관료적 지도부와 매우 가시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것은 사회적 서비스를 위한 싸움이었다.
악화되어 가고 있는 병원들에 대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던 SEIU의 지도부들은 우리의 주장, 즉 기업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할 것과 형무소 증설을 감축하자는 주장을 거부했다. 우리의 주장과 달리, 그들은 버스 승객들이 형무소 관리인 노조와 거대 기업들보다 약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업에 대한 새로운 과세나 형무소의 축소보다는 버스 기금 유용을 선택했다. BRU는 우리 조합원들이 병원과 버스 서비스 양자에 대해, 보다 많은 기금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줄 분열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SEIU의 지도부와 민주당을 질책하면서 "<우리를 갈라놓지 마라> 캠페인"으로 반격했다. 우리는 […] 유용되는 돈을 3억 5천만달러에서 5천만 달러로 감축할 수 있었다. 법원은 대부분의 돈을 교통기금에서 불법적 공금유용으로 판결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비극적이었다. 정유 노동자들은 유독한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고, 지방 노동자들은 그들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필사적 노력 속에서 새로운 민영화의 물결에 빌붙고 있다.
<b>지역적 계급투쟁에서 반제국주의적 국제주의로</b>
우리 작업의 상당수는 우리 회원의 일상적인 계급적 요구들―배차시간을 지키는 버스 서비스, 잘 작동되는 휠체어 리프트, 과밀승객의 극적인 감소―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 계급의 일상적 필요에 대한 이와 같은 초점은 우리를, 어쩌면 대표적인 전투적이고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노동조합과 매우 유사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하고 확장하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계급투쟁이 보다 거대한 정치적 쟁점, 특히 미 제국주의 주변을 선회하는 쟁점들과 교차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는 격화된 내적 갈등을 낳았다.
첫 번째 정치적 도전은 이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논쟁에서 나왔다. 1996년 공화당은 일련의 인종주의적 법안들―누군가 똑똑하게도 "조국을 구하는" 발의라고 칭한―을 제안했다. 이들의 187번 법안은 국가로 하여금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의료, 교육, 식량 구제를 제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노조 관료들은 공화당의 법안발의에 맞서는 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의 반대는 캐슬린 브라운의 선출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피트 윌슨에 반대하여 주지사에 입후보하였고 그 법안발의의 후원자였다.
자유주의적 민주당 의원들인 복서와 파인스틴은 보다 많은 INS 요원들을 멕시코 국경에 배치함을 통해 국제적인 노동의 이동을 법률로 금지하자고 제안한 데 반해, 라틴계와 노동조합과 함께하는 브라운 선거운동본부측에서는 "187 법안은 이민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전략 센터는 "이민자들의 권리들과 잘못들"이라는 제목의 논쟁글을 썼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민자들의 완전한 권리를 논증하고 이민자들을 등에 엎고 민주당원들을 선출시키려는 감상적인 노력 속에서 원주민 보호주의에 빌붙는 노조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의 BRU 조합원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1996년 10월, 많은 이민자의 권리 그룹들은 "187법안 반대" 집회를 조직했고 우리의 살바도르 및 멕시코 이민 회원들은 우리가 행진을 위해 조직한 BRU 대표단들의 행동을 주도했다. 이는 우리 조직의 발전과 관련한 논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다른 성원들, 주로 흑인과 백인이었던 그들은 그들도 187법안에 반대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분리적 쟁점들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이민자 권리는 버스 체계를 개선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몇몇 라틴계 회원들은 BRU와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위협했고, 다른 흑인과 백인 회원들은 우리가 행진에 참여하면 그들은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Pat Elmore라는 공산주의적이고 흑인 민족주의적 배경을 가진 흑인 여성은, 만약 BRU가 어떤 회원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설득했다. 그녀는 흑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 라틴계를 공격하는 것과 관련된 시민권을 위한 싸움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다.
나는 투표가 진행되면서 많은 회원들의 정신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최종 투표는 75명의 찬성과 10명의 반대로 끝이 났다. 행동을 반대한 대다수 성원들은 떠났다. 그러나 조직은 그 투표에 의해 형성되고 내 견해로는 투표에 의해 구원되었다. 그것은 즉자적인 자기-이해를 넘어서는 노동계급 정치로의 지향을 표상했다.
이제 우리는 이민자들의 권리들을 포함하는 BRU의 내규 뿐만 아니라 단결의 원칙을 갖고 있다. 전체 조직은 우리의 국제적 이해의 주요한 확장을 통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1997년, 우리는 멕시코 시티의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독립 좌파 노동조합인 SUTAUR 100의 Jorge Cuellar Valdez를 로스엔젤레스와 멕시코의 사유화에 맞선 투쟁에 관해 토론하는 대중적인 BRU 회의에 연사로 초청하였다. 그 후에, 마틴 에르난데스와 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 시티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멕시코 정부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전세계의 힘들을 모았다.
싸빠띠스타(ELZN)의 대의원들과 함께 멕시코의 독립 노조의 대표자들이 함께한 그 회의에서, AFL-CIO로부터의 지지/지원의 결핍은 고통스럽게도 매우 명백했다. 나는 전체회의 발제문에서, PRI로 하여금 미국의 초민족적 투자자들의 이해를 차단하고 있는 버스체계와 다른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클린턴 정부를 비판하였다. 또한 중요한 투쟁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AFL-CIO(그들은 단지 극히 린다 차베즈 톰슨으로부터의 불충분한 지지의 편지만을 보냈을 뿐이다)를 비판하고, 왜 시위를 조직하지 않는지 그리고 현실에서의 투쟁이 균형상태에 있는 때에 왜 이렇게 중요한 국제회의에 적어도 수백명의 대의원들을 데려오지 않았는지를 질문하였다.
그날 우리는 버스 체계의 민영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간 수감되어 있던 8명의 SUTAUR 지도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우리의 대의원들을 멕시코 시티의 Zocolo로 데려오고 있었다. 그 때, 우리의 버스는 멕시코 경찰에 의해 둘러싸였고 두시간 동안 붙들려 있었다. 그날 저녁, 2만 5천여명 이상의 버스운전사들과 그들의 가족의 행렬이 있었는데 우리는 진정으로 국제적인 연대의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때 2000여명이 넘는 멕시코 경찰 대대가 우리의 시위를 공격했고 이 당시 우리는 질서있게 도로들을 점거하고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대열을 갖추었다.
경찰이 우리는 공격하던 그 때를 통틀어,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질문을 하였다. 빌어먹을 미국 노동조합들은 어디에 있는가?
1년 이상의 파업 과정에서 일주일내에 SUTAUR 운동은 대중적인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으며 그 조합원들은 쇠약한 채로 일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은 노조의 해체에 동의하는 것이었으며, 3개의 버스 노선을 맡는 협조적인 노동자로서 자신을 재구성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자신의 조합원들의 절반과 노동조합 모두를 잃는 것과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조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 멕시코 시티 연방 구 선거에서 온건진보주의적인 Cuauhtemoc Cardenas를 선출했고 결국 노조 지도자들은 석방되었다.
이러한 멕시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우리들의 참여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국제적 행동에 개입하고 있다. Rita Burgos가 막 쿠바에서 돌아왔으며, 우리는 쿠바 봉쇄에 반대하는 활동에 시간을 투자할 자원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많은 전략센터와 BRU의 멤버들은 치아파스에서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멕시코 민주화를 위한 전국회의(NCDM)에서 일하고 있으며, 많은 NCDM 멤버들은 BRU와 함께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정책들 때문이다.
전략 센터에서 우리는 미국 전역의 조직가들과 노동계급 국제주의에 기반한 캠페인을 통해 투쟁 중이다. 쿠바 봉쇄를 강화하는 헬름스-버튼 법의 철폐, IMF에 대한 의회의 기부에 반대하고 제3세계 구조조정 계획을 역전시키는 법안, 부채 탕감 등.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뚜렷하게, 우리의 작업을 국제적인 맥락에서 이론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b>결론</b>
제국의 이익이 더욱 깊어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이데올로기적이고 물질적인 지주들과 맞서야 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변혁적 좌파 정치가 대표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좌파 노동계급 정치를 위한 새로운 전망을 욕망하는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 조합, 시민권 운동, 공동체 활동가들은 이 둘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노동에 대한 지향을 결합시켜야만 할 것이다.
좌파와 노동,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의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 과정에서 미국의 새로운 정치적 운동들은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적 기획과의 재융합을 위한 매우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제안의 핵심적인 전략적 전제는, 미국 내외부의 억압받는 국가들과 민중들의 자결권을 인식하는, 다-인종적이고 다-민족적인 노동자 계급에 의한 광범위한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의 구성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는 미 제국주의와의 공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특히 냉전 동안 더욱 두드러졌으나 제국주의와의 협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클린턴 행정부는 두 가지 공인된 목적들에 대한 자신의 외교정책을 형성해가고 있다. 하나는 세계의 모든 시장에 대한 미국 자본주의의 확장―이에 대한 타파는 "문호개방정책"으로 포장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자기결정[민족자결]에 남겨져 있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질서들을 단속하기 위한 세계적인 군사동맹으로서 NATO의 재건이다.
조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제국주의적 전략계획에 대해 아직 반대하고 있지는 않고, 초민족적 자본가 협력체, 민주당, AFL-CIO 관료주의와의 분명한 연계가 존재한다. 이는 1997년 AFL-CIO 정기총회에서 분명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많은 대의원들이 NAFTA의 다음 회의에 대한 자신의 조급한 제안들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점차 공격적으로 되어갔다. 그는 "이것은 세계의 4%의 인구가 세계의 22%의 부를 계속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하여 자신의 무역정책들의 정당성을 대의원들에게 주장하였다. AFL-CIO의 스위니(Sweeny)派는 클린턴의 제안들을 무효화하기 위하여 소수파의 리더인 리차드 게파르트(R. Gephardt)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 복지체계를 끝장내기" 위해 여성들과 아이들을 길거리로 막 내던져버린 대통령에게 "4년 더"라고 외치면서 총회 대의원들은 [클린턴의] '구애 파티'에 참가하였다.
AFL-CIO 내부에 좌파는 어디에 있는가? 클린턴에 반대하는 시위, 즉 클린턴의 입후보에 대한 지지/지원을 저지하는 활동들, 인도네시아에서 미국 원조하에 행해지는 고문, 클린턴 행정부의 유엔의 제반 생태적 규제 및 인권에 관한 협정의 수용 거부에 대한 의회투쟁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분노는 말할 것도 없이 자유주의자들이 한번쯤은 표현했을 그러한 비판은 존재하는가?
미국 제국주의의 원대하고 공격적인 행위들은 기업 회의실에서 공장, 작업장, 공동체 등에 이르는, 오늘날 세계의 전체적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 국가와 대중 조직들을 관통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문화 산업을 통해 정신을 식민화하고 있다. 따라서 반제투쟁의 구성 요소로서 국내 계급투쟁을 분석하는 것만큼이나 미국에서 제국주의적 동학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미국의 좌파는 제국주의가 계급투쟁의 전략들이 구성되어야 하는 정황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투쟁이 지역적이어야 하는지, 민족적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국제적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좌파 내에서의 논쟁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분명히 많은 투쟁의 장소들이 존재한다: 작업장, 공동체, 민족, 국제적 격투장(arena) 등. 더욱이 오늘날의 조건에서, 심지어 가장 지역적인 투쟁조차도 그것의 세계적인 지점(setting)으로부터 분리하기 어려우며 노동운동을 위한 정치적 전략의 진정한 시험대는 다양한 수준의 투쟁들을 통합하는 그들의 능력에 있다. 인종-맹족적인(color-blind) 계급투쟁은 효과가 없으며 확실히 제국주의적 지배와 연루되지 않은 것, 심지어 중립적인 경향을 가진 것조차 없다. 이는 특히 미국에서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곳에서 국내 계급투쟁은 인종주의와 민족적 억압의 틀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의미는 전략적인 것임과 동시에 윤리적인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투쟁들이 주변의 공동체로 넘쳐나가면서, 오늘날의 매우 지역적인 국내 투쟁들이 보다 거대한 국제적 역량을 포함할 것처럼 보이며 노동자들은 연대를 원하고 다른 국가들에서의 노동운동들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그들 자신의 지역적 공동체들, 특히 전형적으로는 미국의 다인종적 공동체들과의 동맹들을 꾀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공동체의 지지/지원이 다른 국가들의 투쟁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포함한다는 사실 또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된 노동운동이 여타 근로 인민들을 경쟁자로 취급하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살 행위이다.
<b>작업장으로부터 제국으로: Van Nuys시(市)에서 GM의 사례</b>
반제국주의적 전략의 잇점은 United Auto Workers(이하 UAW) 645지부의 캠페인, 즉 GM Van Nuys의 공장가동을 유지하라는 캠페인에서 드러났다. 1981년에서 1987년까지, Van Nuys의 GM 공장 자동차 조립공이자 혁명적 투쟁연맹(맑스-레닌주의)의 성원으로서 나는 이 캠페인의 조정자로 일했다. 캠페인은 5,000명의 노동자―그 중 2,500명은 라틴계였고 750명은 흑인이었으며 750명은 여성이었다―를 해고하려는 시도를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 다인종적, 다민족적 노동자 운동과 로스엔젤레스의 흑인 및 라틴계 공동체에 뿌리를 둔 피억압 민족운동을 통일시킴으로써, 우리는 미국에서 공장 폐쇄를 막아내는 거의 유일한 성공적 캠페인을 조직했다. 우리의 주요 전술은 경제적 투쟁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역에 투사하는 것으로, 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GM 불매 위협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Van Nuys시의 GM을 유지하자'라는 캠페인을 위해 노동자/공동체 제휴를 창조했고, 당시 GM 최고경영자인 제임스 맥도날드로 하여금 정치적 운동―지역적으로 위치한 그러나 노동조합으로 한정되지 않는―과 협상하도록 강제했으며, 10년 동안 공장 가동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이 시기 전반에 걸쳐 우리의 전략은 국제 UAW의 지도부의 전략과 직접적으로 충돌했다. 1980년대 동안에 UAW와 대다수 민주당 지도부는, 노조로 조직된 일자리의 대규모 상실을 고통스럽지만 필수불가결한 '다운사이징'으로 설명했다. 일본, 독일, 멕시코 수입품으로 가득찬 멋진 신세계에서 미국이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일본산 실업(Unemployment―Made in Japan)." UAW 노동자들은 매우 격앙되어 주차장에서 도요타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나는 공장내에서 매우 대중적인 조직책인 마크 마사오카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당시 계급적 전략의 핵심적 쟁점은 노동계급 내에 만연한 반-일본인 인종혐오주의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선진적인 노동자들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 노동자들에게, 종종 물리적 안전에 위협을 받으면서 국제적 노조가 미국 자본가들로부터 투쟁을 굴절시키기 위해 반-일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으며, 1년 이상의 조직화를 통해서 그러한 대중적이고 반동적인 히스테리를 최소한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느 누가 그러한 투쟁들을 회피하고 "작업현장"을 대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혹은 이기주의적인 캠페인들만이 노동자 계급을 통일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노조 지부에서 평조합원들의 반란, 흑인 및 시카노(Chicano) 민족 해방 운동, 그리고 반제국주의 전략을 좌파적 지도력과 통합시킨 것은 1980년대에 몇 안되는 노동운동의 승리들 중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국제 UAW와 GM 간의 노동관리 협력 전략에 반대하는 전략과 우리 지역에 대한 그들의 합동 공격은 1992년 공장의 최종폐쇄로 귀결되었다.
<b>로스엔젤레스 버스승객조합: 계급투쟁의 다양한 장소들</b>
Van Nuys시에서의 상황에 대응하면서, 우리는 1989년에 다인종적인 '싱크탱크-액트탱크'로 노동자/공동체 전략 센터를 조직했다. 이는 첫째, 국제 UAW로부터 독립하고 그것을 통해 국제 UAW의 압력을 차단하기 위한 맥락을 갖는 'Van Nuys시의 GM을 유지하자'라는 캠페인을 계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둘째, 초민족적 기업들과 자본주의 국가에 저항하는 투쟁의 다른 장소들에 대한 다인종적 노동-공동체 노동-계급 봉기들의 새로운 형태에 관한 실험들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계급, 공동체, 반-제국주의적 투쟁 사이의 상호연계를 구축하는 센터의 시험적 캠페인은 실험적인 정치적 노동계급 조합인 로스엔젤레스 버스승객조합(LA Bus Riders Union: 이하 BRU)이었다. 그것은 대중적이고 반-인종주의적인 조직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염이 심하고 자동차 의존적인 지역에서 최상의 청정한 연료와 공적 운송 체계의 형태 속에서 시민권을 요구하며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이었다. BRU는 '전략 센터의 전략적 조직화를 위한 전국 학교'에서 훈련받은 활동가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조직되었다.… BRU는 노동계급 조합의 새로운 형태였다. 그것은 저임금 노동자들, 특히 여성, 유색 인종, 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에서의 이민노동자들, 그리고 대다수 실업자들과 불안정 취업층(underemployed) 등의 대중정치(mass political) 조직으로서, 초국적 법인기업, 정부의 법인화(corporatization) 및 민영화, 국내 공공 정책에서의 인종주의, 제3세계에서 미국의 역할 등에 반대하는 대중적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BRU는 민주적 조직이다.
그것은 12인의 선출된 계획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며, 기층 직접행동 작업은 또다른 15인의 조직위원회에 의해 인도된다. 우리는 200명의 활동적인 일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50-70명은 대체로 매월 정기모임에 참석한다. 우리는 1,500명의 회비납부(dues-paying)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적어도 35,000명의 버스 운전사들이 우리의 뉴스 리플렛을 읽고, 버튼을 달며, BRU 성원과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의 계급 및 인종 투쟁의 즉각적 초점은 로스엔젤레스 도시교통청(MTA)의 30억 달러 예산을 버스 체계의 재구축에 사용하라는 것과 MTA가 모든 경전차(light rail)와 지하철 건설에 지불유예하라는 요구였다. 여기서 "버스를 위한 수십억, 인종주의를 가로질러 싸우자"라는 캠페인은 다음과 같은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MTA의 승객 94%는 버스 체계를 이용하지만 그것은 MTA 기금의 30%밖에 받지 않는 반면, 6%만이 이용하는 철도 체계는 보다 풍요하고 주로 백인인 교외 거주자만이 이용하지만 70%의 기금을 받는다.
때때로 좌파의 일이 원래부터 대중의 인식 외부에 그리고 오직 비판의 영역에만 있지만, 리오단파, 클린턴파 그리고 스위니파는 "현실세계"에 있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우 BRU는 그 이름보다 더욱 확장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BRU는 저임금 노동계급, 라틴계, 흑인, 아시아인, 노인, 학생, 장애인, 실업자, 복지 수혜자의 권리를 위한 매우 전투적이며 가시적이고 영향력인 정치적 세력이었다. 우리는 고도로 가시적인 미디어 전략을 발전시켰다; <워싱턴 포스트>, <기독교 과학 모니터> 그리고 ABC의 <오늘의 세계 뉴스>에 잦은 기사들, 주마다 그리고 때때로 날마다 로스엔젤레스의 유력한 신문들과 텔레비전 채널들, 게릴라 포스터 캠페인,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하스켈 웩슬러에 의한 다큐멘터리 제작도 있었다.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BRU는 수많은 전술을 이용해왔다. 우리는 수 시간동안 도로 점거, 연좌 농성 등 직접행동을 채택하는 전투적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시민권 소송 사건의 결과, 우리는 LA 버스 승객의 '협상 기구'가 되었다. 그들은 합의 판결을 통해 로스엔젤레스의 버스 승객을 위한 주요한 개선―버스요금의 인하, 많은 새로운 버스의 도입, 과수용 승객수 감축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의 분할적이고 불평등한 교통체계의 인종차별적 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지역에서 서비스 실시―에 동의했다. 나아가 법원은 BRU를 350,000의 버스 승객에 대한 '계급 대표자'로 구축했다. 제도화된 Joint Working Group(JWG) 내에서 BRU는 MTA의 반대 관계들로 기능했다.
JWG는 미래의 버스 노선, 버스정류장들을 위한 기금 마련, 과밀승객 감축 그리고 미래의 로스엔젤레스 운송체계의 다른 어떤 양상들을 갖고 싸우기 위해 매주 만났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협상 대표로서 우리의 새로운 역할은 우리 자신의 노조 내에서 주도성과 책임성을 가지는 민주적이고 노동-계급적인 구조의 구축을 형성시켜 왔다.
<b>버스승객조합/노조 제휴</b>
BRU는 독특한 데,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조합 운동의 강력한 지원과 참여를 얻는 공동체 기반의 지역적 정치 운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계급 조직의 다면적 영역에서 실험을 진행 중이다.
BRU는 많은 회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다수는 라틴계 이민자들이며 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투쟁―UNITE, SEIU의 Justice for Janitors 그리고 HERE―에서도 활동적이다. 우리는 종종 노조에 우호적이지만 공적 서비스 영역에서 보수적인 라틴계 정치 지도자에 의존하는 지역 노조 지도부와 차이를 보여왔다. 경비원들, 가정부들, 의류노동자들 그리고 이들 노조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 회원들을 위한 야간버스 서비스에 대한, BRU의 잘 알려진 싸움들은 적극적인 제휴들로 이어졌다.
게다가 전체 노동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주요 정치쟁점(예컨대, 이민, 올바른 행위, 범죄, 경찰, 죄수들의 권리들 그리고 세금정책)에 대해, BRU는 종종 기존 노조 지도부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해왔고 BRU는 AFL-CIO에 대한 대안이자 경쟁적인 정치적 중심인 것처럼 보여졌다.
예를 들어 AFL의 로스엔젤스 지부와 HERE는 보수적인 공화당원인 메이어 리차드 리오디언(뉴욕에서 AFL-CIO는 리오디언의 짝인 루디 길리아니를 추천했다)을 추천했다.… 그러나 BRU는 리오디안과 톰 해이든 의원 모두 추천하지 않았고, 우리의 양 지배적 정당에 대한 일반적인 중립성 때문일 뿐만 아니라 헤이든에 대한 많은 동의할 수 없는 점들 때문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BRU는 버스 노선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강력한 입장을 취해왔다. 반면, 미국운수노조(UTU)는 MTA의 13개 노선의 사유화 협상에 서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협상에서 우리가 "자가-민영화(self-privatization)" 협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서명했다. 이 협상은 UTU가 앞으로 비노조, 사유화된 버스회사들과 경쟁하고,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노조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확연하게 낮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몇몇 전투적 버스 운전사들은 전략 센터에 찾아왔고, 우리는 그들이 민영화에 반대하기 위해 평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을 도왔다.
동시에 BRU는 평조합원이자 UTU의 조합원들인 버스 운전수들과 훌륭한 관계를 유지한다. 우리의 조직책들은 조직화에 최선을 다하는데, 그들이 하는 일 가운데 최우선은 항상 운전사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종종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운전을 할 때 과밀승객으로 괴롭지는 않은지 등을 체크한다. 대다수 운전사들은 BRU를 사랑한다. 우리는 결국 더 많은 버스, 더 많은 운전사, 더 많은 기계장비, 더 많은 정비공, 깨끗한 연료, 더 좋은 휠체어 리프트,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운전사들은 마이크를 붙잡고 승객들에게 말한다. "여기가 BRU입니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UTU는 수년간 우리와 접촉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 내부의 전투적 조합원들에 따르면, 그것은 "UTU는 BRU가 자신들보다 더 열심히 투쟁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는 Wilmington에서 우리의 조직화 작업을 통해 발생했다. 거기에서 전략 센터는 환경 감시조직을 구축했다. 이 조직은 놀라운 수준의 유독 가스 유출에 노출된 저임금, 라틴계 노동계급 공동체의 공중 보건을 위해 투쟁하기 위한 것이었다. Texaco와 여타 유해 정유소와의 투쟁 속에서, 우리는 석유화학원자력노조와 수많은 제휴 시도를 해왔다. 그것은 우리의 캠페인에 반대하며 심지어 우리의 행진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지만, 만약 지역 공동체가 유독가스의 위험성을 알게 되고 그것의 격감을 주장할 경우 그로 인한 정유소 폐쇄와 일자리 상실을 두려워하는 노조와의 연대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버스-적격 기금(bus-eligible funds) 유용에 반대했을 당시, 우리는 로스엔젤레스의 SEIU 660지부의 관료적 지도부와 매우 가시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것은 사회적 서비스를 위한 싸움이었다.
악화되어 가고 있는 병원들에 대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던 SEIU의 지도부들은 우리의 주장, 즉 기업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할 것과 형무소 증설을 감축하자는 주장을 거부했다. 우리의 주장과 달리, 그들은 버스 승객들이 형무소 관리인 노조와 거대 기업들보다 약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업에 대한 새로운 과세나 형무소의 축소보다는 버스 기금 유용을 선택했다. BRU는 우리 조합원들이 병원과 버스 서비스 양자에 대해, 보다 많은 기금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줄 분열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SEIU의 지도부와 민주당을 질책하면서 "<우리를 갈라놓지 마라> 캠페인"으로 반격했다. 우리는 […] 유용되는 돈을 3억 5천만달러에서 5천만 달러로 감축할 수 있었다. 법원은 대부분의 돈을 교통기금에서 불법적 공금유용으로 판결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비극적이었다. 정유 노동자들은 유독한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고, 지방 노동자들은 그들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필사적 노력 속에서 새로운 민영화의 물결에 빌붙고 있다.
<b>지역적 계급투쟁에서 반제국주의적 국제주의로</b>
우리 작업의 상당수는 우리 회원의 일상적인 계급적 요구들―배차시간을 지키는 버스 서비스, 잘 작동되는 휠체어 리프트, 과밀승객의 극적인 감소―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 계급의 일상적 필요에 대한 이와 같은 초점은 우리를, 어쩌면 대표적인 전투적이고 민주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노동조합과 매우 유사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하고 확장하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계급투쟁이 보다 거대한 정치적 쟁점, 특히 미 제국주의 주변을 선회하는 쟁점들과 교차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는 격화된 내적 갈등을 낳았다.
첫 번째 정치적 도전은 이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논쟁에서 나왔다. 1996년 공화당은 일련의 인종주의적 법안들―누군가 똑똑하게도 "조국을 구하는" 발의라고 칭한―을 제안했다. 이들의 187번 법안은 국가로 하여금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의료, 교육, 식량 구제를 제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노조 관료들은 공화당의 법안발의에 맞서는 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의 반대는 캐슬린 브라운의 선출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피트 윌슨에 반대하여 주지사에 입후보하였고 그 법안발의의 후원자였다.
자유주의적 민주당 의원들인 복서와 파인스틴은 보다 많은 INS 요원들을 멕시코 국경에 배치함을 통해 국제적인 노동의 이동을 법률로 금지하자고 제안한 데 반해, 라틴계와 노동조합과 함께하는 브라운 선거운동본부측에서는 "187 법안은 이민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전략 센터는 "이민자들의 권리들과 잘못들"이라는 제목의 논쟁글을 썼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민자들의 완전한 권리를 논증하고 이민자들을 등에 엎고 민주당원들을 선출시키려는 감상적인 노력 속에서 원주민 보호주의에 빌붙는 노조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의 BRU 조합원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1996년 10월, 많은 이민자의 권리 그룹들은 "187법안 반대" 집회를 조직했고 우리의 살바도르 및 멕시코 이민 회원들은 우리가 행진을 위해 조직한 BRU 대표단들의 행동을 주도했다. 이는 우리 조직의 발전과 관련한 논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다른 성원들, 주로 흑인과 백인이었던 그들은 그들도 187법안에 반대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분리적 쟁점들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이민자 권리는 버스 체계를 개선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몇몇 라틴계 회원들은 BRU와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위협했고, 다른 흑인과 백인 회원들은 우리가 행진에 참여하면 그들은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Pat Elmore라는 공산주의적이고 흑인 민족주의적 배경을 가진 흑인 여성은, 만약 BRU가 어떤 회원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설득했다. 그녀는 흑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 라틴계를 공격하는 것과 관련된 시민권을 위한 싸움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다.
나는 투표가 진행되면서 많은 회원들의 정신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최종 투표는 75명의 찬성과 10명의 반대로 끝이 났다. 행동을 반대한 대다수 성원들은 떠났다. 그러나 조직은 그 투표에 의해 형성되고 내 견해로는 투표에 의해 구원되었다. 그것은 즉자적인 자기-이해를 넘어서는 노동계급 정치로의 지향을 표상했다.
이제 우리는 이민자들의 권리들을 포함하는 BRU의 내규 뿐만 아니라 단결의 원칙을 갖고 있다. 전체 조직은 우리의 국제적 이해의 주요한 확장을 통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1997년, 우리는 멕시코 시티의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독립 좌파 노동조합인 SUTAUR 100의 Jorge Cuellar Valdez를 로스엔젤레스와 멕시코의 사유화에 맞선 투쟁에 관해 토론하는 대중적인 BRU 회의에 연사로 초청하였다. 그 후에, 마틴 에르난데스와 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 시티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멕시코 정부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전세계의 힘들을 모았다.
싸빠띠스타(ELZN)의 대의원들과 함께 멕시코의 독립 노조의 대표자들이 함께한 그 회의에서, AFL-CIO로부터의 지지/지원의 결핍은 고통스럽게도 매우 명백했다. 나는 전체회의 발제문에서, PRI로 하여금 미국의 초민족적 투자자들의 이해를 차단하고 있는 버스체계와 다른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클린턴 정부를 비판하였다. 또한 중요한 투쟁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AFL-CIO(그들은 단지 극히 린다 차베즈 톰슨으로부터의 불충분한 지지의 편지만을 보냈을 뿐이다)를 비판하고, 왜 시위를 조직하지 않는지 그리고 현실에서의 투쟁이 균형상태에 있는 때에 왜 이렇게 중요한 국제회의에 적어도 수백명의 대의원들을 데려오지 않았는지를 질문하였다.
그날 우리는 버스 체계의 민영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간 수감되어 있던 8명의 SUTAUR 지도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우리의 대의원들을 멕시코 시티의 Zocolo로 데려오고 있었다. 그 때, 우리의 버스는 멕시코 경찰에 의해 둘러싸였고 두시간 동안 붙들려 있었다. 그날 저녁, 2만 5천여명 이상의 버스운전사들과 그들의 가족의 행렬이 있었는데 우리는 진정으로 국제적인 연대의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때 2000여명이 넘는 멕시코 경찰 대대가 우리의 시위를 공격했고 이 당시 우리는 질서있게 도로들을 점거하고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대열을 갖추었다.
경찰이 우리는 공격하던 그 때를 통틀어,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질문을 하였다. 빌어먹을 미국 노동조합들은 어디에 있는가?
1년 이상의 파업 과정에서 일주일내에 SUTAUR 운동은 대중적인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으며 그 조합원들은 쇠약한 채로 일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은 노조의 해체에 동의하는 것이었으며, 3개의 버스 노선을 맡는 협조적인 노동자로서 자신을 재구성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자신의 조합원들의 절반과 노동조합 모두를 잃는 것과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조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 멕시코 시티 연방 구 선거에서 온건진보주의적인 Cuauhtemoc Cardenas를 선출했고 결국 노조 지도자들은 석방되었다.
이러한 멕시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우리들의 참여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국제적 행동에 개입하고 있다. Rita Burgos가 막 쿠바에서 돌아왔으며, 우리는 쿠바 봉쇄에 반대하는 활동에 시간을 투자할 자원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많은 전략센터와 BRU의 멤버들은 치아파스에서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멕시코 민주화를 위한 전국회의(NCDM)에서 일하고 있으며, 많은 NCDM 멤버들은 BRU와 함께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정책들 때문이다.
전략 센터에서 우리는 미국 전역의 조직가들과 노동계급 국제주의에 기반한 캠페인을 통해 투쟁 중이다. 쿠바 봉쇄를 강화하는 헬름스-버튼 법의 철폐, IMF에 대한 의회의 기부에 반대하고 제3세계 구조조정 계획을 역전시키는 법안, 부채 탕감 등.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뚜렷하게, 우리의 작업을 국제적인 맥락에서 이론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b>결론</b>
제국의 이익이 더욱 깊어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이데올로기적이고 물질적인 지주들과 맞서야 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변혁적 좌파 정치가 대표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좌파 노동계급 정치를 위한 새로운 전망을 욕망하는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 조합, 시민권 운동, 공동체 활동가들은 이 둘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노동에 대한 지향을 결합시켜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