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정부의 동아시아 군사전략, 재검토의 향방-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군사벨트의 확대
지난 5월 17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공식적으로 천명한데 이어서, 향후 20∼30년간의 군사전략을 결정하기 위한 전면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의회에 보고하였다. 21개의 각종 위원회가 미군의 전술, 전략, 편제, 장비, 병력, 무기체계, 해외기지, 공격용 및 방어용 미사일, 우주계획 등 군사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 직전 한국을 방문했던 아미티지 국무차관은 향후 미군의 군사전략이 신속배치 능력 강화, 정보체계 우위 유지, 기동성 강화 및 경량화, 아시아로의 전략 중심축 이동 등 4가지 기조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최근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윈-앤-윈'(win-and-win) 전략의 폐기와 동아시아 전력의 재조정 문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 변화의 흐름들이 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의 군사전략의 재검토 작업의 의미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특히 부시 정부가 동아시아의 현 상황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이 군사전략에는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를 위해서, 1990년대 미국의 전형적인 군사전략 모델로부터 부시정부의 윈-앤-윈 전략의 수정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부시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동아시아 정치질서의 재편 방향에 대해서도 검토될 것이다.
<b>클린턴정부의 군사전략 모형</b>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출범하였던 클린턴정부의 군사안보정책의 핵심적 전제는 미국이 바라보는 세계 현실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핵전력 및 재래식전력에서 직접적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적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더군다나, 빠른 시일 내에 소련을 대체할 세계적 수준의 적국(global power)이 등장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행복한' 고민 속에서, 다만 다음과 같은 이슈에 대해 미국정부가 유의할 것이 요구되었다.
첫째, 냉전의 붕괴가 오히려 핵-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의 세계적 확산으로 이어지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핵미사일에 대한 통제권이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독립국가들로 넘어가고, 관련기술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된다면 냉전 때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중심부 및 신흥시장 지역 특히 유럽-중동 및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그 지역국가들간의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중동과 함께 특히 동아시아가 문제인데, 북한-남한 및 중국-대만의 분쟁발발은 동아시아 신흥시장의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국익에 비추어보았을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지역의 불안정성이 중요한 지역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주변부에서 발발하는 분쟁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평화유지작전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 하에서 부각된 미국의 전략적 개념이 바로 '지역강국'(regional power)이라는 것이었다. 과거 소련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대규모 재래식전력과 초보적인 핵-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적대 국가가 등장하여 지역적 수준에서의 패권을 잡게되는 상황을 강력하게 억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은 중국, 축소된 러시아, 인도 등이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를 1990년대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의 진정한 주적으로 명시적으로 부각시키지는 않았고, 다만 이 국가들과의 군사적 충돌을 대비해 미국의 핵전력과 재래식전력, 해외주둔 전력의 핵심을 계속 유지·발전시키는 길을 채택했다.
하지만, 1990년대 미국이 주적으로 삼은 국가들은 오히려 이라크, 북한 등의 이른바 '악당국가'들이었다. 기실, 1980년대까지 미국의 군사모델은 오직 '고강도전쟁'과 '저강도전쟁'이라는 두가지 모델밖에 없었다. 고강도전쟁은 유럽전역에서 나토 동맹국가들과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국가들간의 대규모 전면전을 상정한 것이었으며, 저강도전쟁은 제3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던 게릴라투쟁이나 '민족해방'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수립된 것이었다. (물론 고강도전쟁 전략에는 핵전쟁에 대비해 핵무기의 선제사용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저강도전쟁의 경우에는 반란 지원 또는 반공폭동의 지원, 군대파견 등이 포함되었다.)
1980년대 말 냉전의 붕괴는 이러한 군사전략 모형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요구하였다. 즉 소련이 붕괴하고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된 마당에 '고강도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대규모 전력을 유지할 근거가 사라졌으며, 만약 '저강도전쟁'만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이는 당시 미군의 10분의 1의 규모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비교적 대규모의 재래식전력과 초보적인 핵·화학·미사일 능력을 갖추었거나 갖추리라 추측되는 '지역 강국'들을 주목하면서 이른바 '중강도전쟁'이라는 군사전략 개념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미국의 군사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묘사되기에 시의적절했고, 걸프전쟁을 걸치면서 90년대 이후의 미국의 군사정책은 이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결국 미국은 걸프전쟁과 북한 핵개발 의혹을 지렛대로 삼아서, 미국의 군사력 재조정의 모티브를 발견한 셈이었다. 미국은 이들과의 군사적 대결을 위한 '중강도전쟁' 모형을 고안하고, 당장 이라크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윈-앤-윈 전략, 즉 북한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발발하는 주요지역전쟁(major regional war)에서 동시에 승리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특히 윈-앤-윈 전략은 미국의 對이라크전쟁 계획이었던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미국이 1개의 지역에서 '사막의 폭풍' 급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력의 최소규모는 육군 4-5개 사단(6만-10만), 해병대 4-5개 여단(1만2천-2만5천), 공군 10개 전투비행단(720개의 전투기), 100개의 공군 폭격기, 그리고 4-5개 해군 항공모함전투단 등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그 전쟁 시나리오는 이러한 대규모 군사력을 바탕으로, 초기 전쟁의 결과로 동맹국이 상실한 영토를 복구하고, 적국을 향해 진격하여 적국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상정하였다.
<b>부시정부의 윈-앤-윈 전략의 수정의 배경</b>
현재 그 단편이 드러나고 있는 부시 정부의 군사정책을 살펴본다면 클린턴 정부의 대전제 즉 냉전 이후의 미국에게 심각한 적수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다만 냉전이 붕괴된 이후 10여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의 안보환경의 변화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 미국의 안보정책의 초점이 되었던 이라크와 북한의 군사적 약체화와 미국의 군사기술적 발전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997년 <4개년 국방 검토보고서>(QDR) 발표 이후, 2개의 전쟁전략 즉 윈-앤-윈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미국 정가 및 군부 내에서 다수 제출되었다. 예컨대 1997년 미국 의회가 임명한 국방위원단은 "2개의 지역전쟁이라는 구상은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는 유용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2010-2020년에 요구하게 될 군사력을 달성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즉 윈-앤-윈 전략은 실질적인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 국방부의 조직적 요구와 관련된 관료적 고안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코헨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구성된 국가안보/21세기 위원회가 2000년에 제출한 보고서 역시 "2개의 전쟁이라는 척도는 현재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커질 다양하고 복합적인 우발성에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현재 2개의 전쟁전략에 대한 미국내의 비판적 평가들의 근거들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필요하다. 이라크는 사막의 폭풍 이후 군사력이 실질적으로 1/2 이하로 약화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제재가 유지될 경우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은 전쟁을 치루지는 않았지만 10여년간의 경제악화로 군사력의 상당 부분이 무력화되었다. (중국-대만간의 분쟁 역시 미국의 우위는 분명하다.)
둘째, 과도하다. 2개의 전쟁전략은 동맹국의 지원을 최소화한 가운데 미국 독자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상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동지역의 경우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은 확실하다. 또한 남한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군사력이 개선되고 있다. 또한, 미-일 군사동맹의 군사력 증강은 괄목할만하며, 일본의 평화헌법이 개정될 경우 일본의 직접적인 군사지원은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2개의 전쟁전략은 미국의 군사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한다. 미국의 해공군력의 우월성, 특히 정밀타격 능력 및 전략적 수송 능력의 개선은 미국의 전쟁승리 가능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셋째, 위험하다. 2개의 전쟁전략을 계속 고수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선점해야 할 과제들을 뒤로 미루게 된다(정보전, 우주전 등),
이러한 논거들은 클린턴 정부 당시 상정했던 윈-앤-윈 전략의 군사력 수준 이하로도 이라크 및 북한에 대한 억지력 유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따라서, 윈-앤-윈 전략의 재검토가 궁극적으로 지시하는 방향은 미국의 군사력의 절대적 감축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테크놀로지의 초우위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 특히 군사정보 영역과 우주의 군사화라는 과제를 미국이 선점해 나간다는 것, 미국의 해공군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동맹국들의 군사력 구조(군사전략 및 무기체계)를 재편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b>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남진: 동아시아 군사벨트의 형성</b>
미국은 앞서 윈-앤-윈 전략의 재조정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태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축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 우발적 사태가 무엇인가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대만 분쟁, 인도네시아에서의 내부 갈등의 분출, 난사군도에서의 충돌 등을 분명히 염두해 두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처럼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전략을 재고하게 되는 또다른 이유는 러시아의 약체화도 이미 확고한 사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러시아가 동아시아 질서를 교란할 수 있는 카드가 남아 있다면, 최근 러시아가 첨단무기를 중국에게 판매하는 것 정도인 듯하다. Su-27 전투기, 킬로급 잠수함, SA-10 대공미사일, 소브레멘누이급 구축함, 공중조기경보체계(AWACS) 등이 최근 중국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무기수출이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경제적 곤궁함 때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 및 서방경제로의 통합을 지렛대로 삼아서,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북방영토 분쟁도 하나의 변수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푸틴 대통령의 '실용적' 사고에 따라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이러한 사실이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남진(南進)할 수 있는 계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초점이 동북아시아 지역(특히 소련과 북한)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 중동-인도-동남아-대만-한국-일본에 걸치는 포괄적인 미국의 군사벨트 형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 이미 전진배치된 군사기지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한편, 새로운 군사기지의 창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미공군의 용역으로 작성된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준'항구적인 한국과 일본의 전진작전기지(FOLs, Forward Operating Locations)와 싱가포르-태국 뿐만 아니라, 공군기지를 필리핀과 베트남(!)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상은 중국-대만 분쟁 및 인도네시아 분쟁에 등에 대한 군사투사능력 강화를 위한 미국의 군사기지 벨트 확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b>미국의 남진의 조건: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b>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미국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미국-일본-한국 3각 군사동맹의 공고화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 즉 자위대를 정규군화하고, 일본 영토 밖에서 미국과의 공동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1978년의 미일 방위가이드라인 및 1998년 신 방위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드러난 바와 같이, 미국의 매우 일관된 방침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이 초점을 맞추는 문제는, 해외작전을 위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을 확대할 것(공중급유기, 장거리수송기 등 장거리 군사작전 능력을 대폭 개선하는 무기체계 확대), 미국과의 공동 군사훈련을 확대할 것, UN 평화유지 작전에 일본이 더욱 많이 참여할 것 등이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원활하게 촉진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 한국간의 오래된 역사적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 양국에 모두 미군주둔을 지속해야 하며, 이를 매개로 한일간의 군사훈련 및 정보교류를 더욱 심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빠른 시기 내에 중국-대만간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는 것도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랜드보고서에서 권고한 중국-대만 문제 관련된 해법은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미국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즉 중국의 대만침공은 군사력을 동원해 격퇴할 것이지만 역으로 대만의 독립선언 역시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공개적 지지.)
랜드보고서는 '전략적 모호성'과 같은 현상유지 정책은 중국에게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대만으로 하여금 사실상의 독립국가로서의 현상을 정상화하고 대만의 독립성을 공고화하려는 시도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원주민 출신 정치 지도자는 이럴 위험성이 더 크다.) 따라서 미국은 대만의 대중국투자, 양국간의 직접교역, 여행 및 통신의 확대를 통해 대만에서 친중국적 정책이 수립되도록 유도하며, 또한 중국 정치시스템의 개혁과 민주화를 유도해 중국에 대한 대만인들의 관점을 개선할 것을 촉구하였다. (랜드보고서는 중국-대만의 통일이 중국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도록, 대만에게는 유쾌한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는 중국-대만 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력충돌에 대비한 군사력의 증강(일본군의 정규화, 동남아지역 군사벨트 형성,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계속하되, 단기간에 중국과의 갈등이 불필요하게 고조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최대한 회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b>주한미군의 재조정 전망</b>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윈-앤-윈 전략의 수정과 동아시아에서의 미군의 남진 계획 속에는 주한미군의 군사력 재조정 문제가 다각도로 언급되고 있다.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재래식전력의 많은 부분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분석은 어느 정도 공통적인 듯하다. 하지만 현재 북미관계의 핵심적 쟁점인 핵-미사일이라는 대량살상무기의 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오히려 미국은 자신의 동아시아 군사력의 재조정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더욱 완고한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을 듯이다.
얼마 전 미국 외교관교협의회 한반도문제 특별팀이 발표한 정책권고안도 이러한 예상을 강화시킨다. (이들은 1998년 김대중정부의 출범 무렵 미국의 대북정책 및 한국의 햇볕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끼친 [한반도에서의 변화의 관리]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여러 가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2000년 말 클린턴정부 당시 북한과 미국은 모든 장거리 미사일 및 관련 부품의 수출 중지, 특정 사거리의 미사일의 자체 실험 및 생산 금지에 대해서 까지는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추가적인 요구, 즉 이미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일본을 겨누고 있는 약 100기의 노동 미사일을 포함)의 제거, 북한 지역 내에서 미국이 직접 검증하는 방식의 수용, 북한의 미사일 개발의 기원에 대한 정보제공 등에 대해서 북한이 즉각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 협상 중단의 원인이 된 듯하다.
특별팀이 부시대통령에게 권고한 내용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의 하한선은 장거리미사일 및 관련부품의 수출 중단, 그리고 '특정' 범위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 및 생산의 중단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검증, 이미 배치된 장거리 미사일의 제거(특히 노동미사일), 모종의 대북지원 제공에 민감한 기술 이전은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긴장완화 및 재래식무기 감축을 위한 실제적인 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보고서들은 미국의 의도대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재조정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제2의 한국전쟁 발발 가능성이 크게 감소된다면 지상군의 전략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신속배치능력 및 정밀타격능력의 개선, 즉 해공군력의 강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주요 철수 대상은 DMZ 주변에 배치된 제2기갑사단 및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가 될 것이다. 특히 제2기갑사단은 전략적 기동능력이 떨어지므로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의 신속배치도 힘들기 때문에, 전략적 효용성이 낮다고 평가한다. 또한 한국 내의 2개의 핵심 공군기지(오산 및 군산) 중 1개의 폐쇄, 4개 전투비행대대 중 1∼2개의 후방철수(괌 또는 하와이)의 철수까지도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는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이미 접근권이 보장된 '준'항구적인 미군기지를 완전히 폐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면, 일본에서의 완전 철수 요구도 동시에 커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미국이 염두해 둔 대중국 동아시아 군사벨트의 일환이자,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보전을 위해 미군의 주둔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본-한국 양국에 미군이 동시 주둔한다는 방침은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모으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의 구상이 주한미군의 '감축'이라기 보다는, 정확히 말해 군사배치태세의 재조정 또는 그 형태의 변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군사력 재배치 구상을 보지 않은 채, 한반도에서의 미군 주둔 형태의 변화를 놓고 미국의 영향력의 단계적 이완-해소와 동일시하는 접근틀은 문제의 해결방향 자체를 오리무중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쌍무적 동맹관계와 그것을 매개로 하는 '게임의 법칙'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b>미국의 군사적 강고함과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위기</b>
지금까지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미국의 군사적 강고함은 전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윈-앤-윈 전략의 성공적 수행과 동아시아에서의 남진, 2020∼30년까지 첨단 군사력을 발전시킨다는 그들의 구상만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유례없는 군사적 강고함이 곧 세계자본주의 및 미국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군사적 강고함의 이면에서, 세계자본주의의 경제적·정치적 위기는 심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군사전략은 세계자본주의 내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경계선을 반영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경계선은 중심부 국가 및 신흥시장에 대한 적극적 포섭과 주변부 지역에 대한 배제와 온정적 관리로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 이에 조응하여 미국의 군사전략은 중심부와 신흥시장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역 군사동맹을 형성하고 지역패권국의 등장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한편, 세계경제의 배제된 지역의 경우에는 평화유지라는 이름하에 선별적인 관리책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는 '사후적'인 대책일 뿐이며, 미국이 군사전략이 신자유주의 정책·전략이 야기하는 경제적 불안정성과 빈곤의 확산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이 자신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 변화의 흐름들이 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의 군사전략의 재검토 작업의 의미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특히 부시 정부가 동아시아의 현 상황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이 군사전략에는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를 위해서, 1990년대 미국의 전형적인 군사전략 모델로부터 부시정부의 윈-앤-윈 전략의 수정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부시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동아시아 정치질서의 재편 방향에 대해서도 검토될 것이다.
<b>클린턴정부의 군사전략 모형</b>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출범하였던 클린턴정부의 군사안보정책의 핵심적 전제는 미국이 바라보는 세계 현실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핵전력 및 재래식전력에서 직접적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적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더군다나, 빠른 시일 내에 소련을 대체할 세계적 수준의 적국(global power)이 등장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행복한' 고민 속에서, 다만 다음과 같은 이슈에 대해 미국정부가 유의할 것이 요구되었다.
첫째, 냉전의 붕괴가 오히려 핵-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의 세계적 확산으로 이어지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핵미사일에 대한 통제권이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독립국가들로 넘어가고, 관련기술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된다면 냉전 때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중심부 및 신흥시장 지역 특히 유럽-중동 및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그 지역국가들간의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중동과 함께 특히 동아시아가 문제인데, 북한-남한 및 중국-대만의 분쟁발발은 동아시아 신흥시장의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국익에 비추어보았을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지역의 불안정성이 중요한 지역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주변부에서 발발하는 분쟁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평화유지작전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 하에서 부각된 미국의 전략적 개념이 바로 '지역강국'(regional power)이라는 것이었다. 과거 소련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대규모 재래식전력과 초보적인 핵-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적대 국가가 등장하여 지역적 수준에서의 패권을 잡게되는 상황을 강력하게 억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은 중국, 축소된 러시아, 인도 등이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를 1990년대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의 진정한 주적으로 명시적으로 부각시키지는 않았고, 다만 이 국가들과의 군사적 충돌을 대비해 미국의 핵전력과 재래식전력, 해외주둔 전력의 핵심을 계속 유지·발전시키는 길을 채택했다.
하지만, 1990년대 미국이 주적으로 삼은 국가들은 오히려 이라크, 북한 등의 이른바 '악당국가'들이었다. 기실, 1980년대까지 미국의 군사모델은 오직 '고강도전쟁'과 '저강도전쟁'이라는 두가지 모델밖에 없었다. 고강도전쟁은 유럽전역에서 나토 동맹국가들과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국가들간의 대규모 전면전을 상정한 것이었으며, 저강도전쟁은 제3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던 게릴라투쟁이나 '민족해방'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수립된 것이었다. (물론 고강도전쟁 전략에는 핵전쟁에 대비해 핵무기의 선제사용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저강도전쟁의 경우에는 반란 지원 또는 반공폭동의 지원, 군대파견 등이 포함되었다.)
1980년대 말 냉전의 붕괴는 이러한 군사전략 모형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요구하였다. 즉 소련이 붕괴하고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된 마당에 '고강도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대규모 전력을 유지할 근거가 사라졌으며, 만약 '저강도전쟁'만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이는 당시 미군의 10분의 1의 규모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비교적 대규모의 재래식전력과 초보적인 핵·화학·미사일 능력을 갖추었거나 갖추리라 추측되는 '지역 강국'들을 주목하면서 이른바 '중강도전쟁'이라는 군사전략 개념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미국의 군사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묘사되기에 시의적절했고, 걸프전쟁을 걸치면서 90년대 이후의 미국의 군사정책은 이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결국 미국은 걸프전쟁과 북한 핵개발 의혹을 지렛대로 삼아서, 미국의 군사력 재조정의 모티브를 발견한 셈이었다. 미국은 이들과의 군사적 대결을 위한 '중강도전쟁' 모형을 고안하고, 당장 이라크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윈-앤-윈 전략, 즉 북한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발발하는 주요지역전쟁(major regional war)에서 동시에 승리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특히 윈-앤-윈 전략은 미국의 對이라크전쟁 계획이었던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미국이 1개의 지역에서 '사막의 폭풍' 급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력의 최소규모는 육군 4-5개 사단(6만-10만), 해병대 4-5개 여단(1만2천-2만5천), 공군 10개 전투비행단(720개의 전투기), 100개의 공군 폭격기, 그리고 4-5개 해군 항공모함전투단 등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그 전쟁 시나리오는 이러한 대규모 군사력을 바탕으로, 초기 전쟁의 결과로 동맹국이 상실한 영토를 복구하고, 적국을 향해 진격하여 적국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상정하였다.
<b>부시정부의 윈-앤-윈 전략의 수정의 배경</b>
현재 그 단편이 드러나고 있는 부시 정부의 군사정책을 살펴본다면 클린턴 정부의 대전제 즉 냉전 이후의 미국에게 심각한 적수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다만 냉전이 붕괴된 이후 10여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의 안보환경의 변화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 미국의 안보정책의 초점이 되었던 이라크와 북한의 군사적 약체화와 미국의 군사기술적 발전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997년 <4개년 국방 검토보고서>(QDR) 발표 이후, 2개의 전쟁전략 즉 윈-앤-윈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미국 정가 및 군부 내에서 다수 제출되었다. 예컨대 1997년 미국 의회가 임명한 국방위원단은 "2개의 지역전쟁이라는 구상은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는 유용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2010-2020년에 요구하게 될 군사력을 달성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즉 윈-앤-윈 전략은 실질적인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 국방부의 조직적 요구와 관련된 관료적 고안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코헨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구성된 국가안보/21세기 위원회가 2000년에 제출한 보고서 역시 "2개의 전쟁이라는 척도는 현재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커질 다양하고 복합적인 우발성에 대응하기 위한 능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현재 2개의 전쟁전략에 대한 미국내의 비판적 평가들의 근거들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필요하다. 이라크는 사막의 폭풍 이후 군사력이 실질적으로 1/2 이하로 약화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제재가 유지될 경우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은 전쟁을 치루지는 않았지만 10여년간의 경제악화로 군사력의 상당 부분이 무력화되었다. (중국-대만간의 분쟁 역시 미국의 우위는 분명하다.)
둘째, 과도하다. 2개의 전쟁전략은 동맹국의 지원을 최소화한 가운데 미국 독자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상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동지역의 경우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은 확실하다. 또한 남한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군사력이 개선되고 있다. 또한, 미-일 군사동맹의 군사력 증강은 괄목할만하며, 일본의 평화헌법이 개정될 경우 일본의 직접적인 군사지원은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2개의 전쟁전략은 미국의 군사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한다. 미국의 해공군력의 우월성, 특히 정밀타격 능력 및 전략적 수송 능력의 개선은 미국의 전쟁승리 가능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셋째, 위험하다. 2개의 전쟁전략을 계속 고수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선점해야 할 과제들을 뒤로 미루게 된다(정보전, 우주전 등),
이러한 논거들은 클린턴 정부 당시 상정했던 윈-앤-윈 전략의 군사력 수준 이하로도 이라크 및 북한에 대한 억지력 유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따라서, 윈-앤-윈 전략의 재검토가 궁극적으로 지시하는 방향은 미국의 군사력의 절대적 감축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테크놀로지의 초우위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 특히 군사정보 영역과 우주의 군사화라는 과제를 미국이 선점해 나간다는 것, 미국의 해공군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동맹국들의 군사력 구조(군사전략 및 무기체계)를 재편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b>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남진: 동아시아 군사벨트의 형성</b>
미국은 앞서 윈-앤-윈 전략의 재조정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태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축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 우발적 사태가 무엇인가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대만 분쟁, 인도네시아에서의 내부 갈등의 분출, 난사군도에서의 충돌 등을 분명히 염두해 두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처럼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전략을 재고하게 되는 또다른 이유는 러시아의 약체화도 이미 확고한 사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러시아가 동아시아 질서를 교란할 수 있는 카드가 남아 있다면, 최근 러시아가 첨단무기를 중국에게 판매하는 것 정도인 듯하다. Su-27 전투기, 킬로급 잠수함, SA-10 대공미사일, 소브레멘누이급 구축함, 공중조기경보체계(AWACS) 등이 최근 중국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무기수출이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경제적 곤궁함 때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 및 서방경제로의 통합을 지렛대로 삼아서,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북방영토 분쟁도 하나의 변수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푸틴 대통령의 '실용적' 사고에 따라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이러한 사실이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남진(南進)할 수 있는 계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초점이 동북아시아 지역(특히 소련과 북한)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 중동-인도-동남아-대만-한국-일본에 걸치는 포괄적인 미국의 군사벨트 형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 이미 전진배치된 군사기지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한편, 새로운 군사기지의 창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미공군의 용역으로 작성된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준'항구적인 한국과 일본의 전진작전기지(FOLs, Forward Operating Locations)와 싱가포르-태국 뿐만 아니라, 공군기지를 필리핀과 베트남(!)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상은 중국-대만 분쟁 및 인도네시아 분쟁에 등에 대한 군사투사능력 강화를 위한 미국의 군사기지 벨트 확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b>미국의 남진의 조건: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b>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미국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미국-일본-한국 3각 군사동맹의 공고화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 즉 자위대를 정규군화하고, 일본 영토 밖에서 미국과의 공동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1978년의 미일 방위가이드라인 및 1998년 신 방위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드러난 바와 같이, 미국의 매우 일관된 방침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이 초점을 맞추는 문제는, 해외작전을 위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을 확대할 것(공중급유기, 장거리수송기 등 장거리 군사작전 능력을 대폭 개선하는 무기체계 확대), 미국과의 공동 군사훈련을 확대할 것, UN 평화유지 작전에 일본이 더욱 많이 참여할 것 등이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원활하게 촉진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 한국간의 오래된 역사적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 양국에 모두 미군주둔을 지속해야 하며, 이를 매개로 한일간의 군사훈련 및 정보교류를 더욱 심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빠른 시기 내에 중국-대만간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는 것도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랜드보고서에서 권고한 중국-대만 문제 관련된 해법은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미국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즉 중국의 대만침공은 군사력을 동원해 격퇴할 것이지만 역으로 대만의 독립선언 역시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공개적 지지.)
랜드보고서는 '전략적 모호성'과 같은 현상유지 정책은 중국에게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대만으로 하여금 사실상의 독립국가로서의 현상을 정상화하고 대만의 독립성을 공고화하려는 시도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원주민 출신 정치 지도자는 이럴 위험성이 더 크다.) 따라서 미국은 대만의 대중국투자, 양국간의 직접교역, 여행 및 통신의 확대를 통해 대만에서 친중국적 정책이 수립되도록 유도하며, 또한 중국 정치시스템의 개혁과 민주화를 유도해 중국에 대한 대만인들의 관점을 개선할 것을 촉구하였다. (랜드보고서는 중국-대만의 통일이 중국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도록, 대만에게는 유쾌한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는 중국-대만 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력충돌에 대비한 군사력의 증강(일본군의 정규화, 동남아지역 군사벨트 형성,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계속하되, 단기간에 중국과의 갈등이 불필요하게 고조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최대한 회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b>주한미군의 재조정 전망</b>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윈-앤-윈 전략의 수정과 동아시아에서의 미군의 남진 계획 속에는 주한미군의 군사력 재조정 문제가 다각도로 언급되고 있다.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재래식전력의 많은 부분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분석은 어느 정도 공통적인 듯하다. 하지만 현재 북미관계의 핵심적 쟁점인 핵-미사일이라는 대량살상무기의 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오히려 미국은 자신의 동아시아 군사력의 재조정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더욱 완고한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을 듯이다.
얼마 전 미국 외교관교협의회 한반도문제 특별팀이 발표한 정책권고안도 이러한 예상을 강화시킨다. (이들은 1998년 김대중정부의 출범 무렵 미국의 대북정책 및 한국의 햇볕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끼친 [한반도에서의 변화의 관리]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여러 가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2000년 말 클린턴정부 당시 북한과 미국은 모든 장거리 미사일 및 관련 부품의 수출 중지, 특정 사거리의 미사일의 자체 실험 및 생산 금지에 대해서 까지는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추가적인 요구, 즉 이미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일본을 겨누고 있는 약 100기의 노동 미사일을 포함)의 제거, 북한 지역 내에서 미국이 직접 검증하는 방식의 수용, 북한의 미사일 개발의 기원에 대한 정보제공 등에 대해서 북한이 즉각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 협상 중단의 원인이 된 듯하다.
특별팀이 부시대통령에게 권고한 내용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의 하한선은 장거리미사일 및 관련부품의 수출 중단, 그리고 '특정' 범위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 및 생산의 중단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검증, 이미 배치된 장거리 미사일의 제거(특히 노동미사일), 모종의 대북지원 제공에 민감한 기술 이전은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긴장완화 및 재래식무기 감축을 위한 실제적인 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보고서들은 미국의 의도대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재조정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제2의 한국전쟁 발발 가능성이 크게 감소된다면 지상군의 전략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신속배치능력 및 정밀타격능력의 개선, 즉 해공군력의 강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주요 철수 대상은 DMZ 주변에 배치된 제2기갑사단 및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가 될 것이다. 특히 제2기갑사단은 전략적 기동능력이 떨어지므로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의 신속배치도 힘들기 때문에, 전략적 효용성이 낮다고 평가한다. 또한 한국 내의 2개의 핵심 공군기지(오산 및 군산) 중 1개의 폐쇄, 4개 전투비행대대 중 1∼2개의 후방철수(괌 또는 하와이)의 철수까지도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는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이미 접근권이 보장된 '준'항구적인 미군기지를 완전히 폐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면, 일본에서의 완전 철수 요구도 동시에 커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미국이 염두해 둔 대중국 동아시아 군사벨트의 일환이자,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보전을 위해 미군의 주둔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본-한국 양국에 미군이 동시 주둔한다는 방침은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모으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의 구상이 주한미군의 '감축'이라기 보다는, 정확히 말해 군사배치태세의 재조정 또는 그 형태의 변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군사력 재배치 구상을 보지 않은 채, 한반도에서의 미군 주둔 형태의 변화를 놓고 미국의 영향력의 단계적 이완-해소와 동일시하는 접근틀은 문제의 해결방향 자체를 오리무중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쌍무적 동맹관계와 그것을 매개로 하는 '게임의 법칙'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b>미국의 군사적 강고함과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위기</b>
지금까지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미국의 군사적 강고함은 전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윈-앤-윈 전략의 성공적 수행과 동아시아에서의 남진, 2020∼30년까지 첨단 군사력을 발전시킨다는 그들의 구상만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유례없는 군사적 강고함이 곧 세계자본주의 및 미국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군사적 강고함의 이면에서, 세계자본주의의 경제적·정치적 위기는 심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군사전략은 세계자본주의 내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경계선을 반영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경계선은 중심부 국가 및 신흥시장에 대한 적극적 포섭과 주변부 지역에 대한 배제와 온정적 관리로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 이에 조응하여 미국의 군사전략은 중심부와 신흥시장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역 군사동맹을 형성하고 지역패권국의 등장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한편, 세계경제의 배제된 지역의 경우에는 평화유지라는 이름하에 선별적인 관리책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는 '사후적'인 대책일 뿐이며, 미국이 군사전략이 신자유주의 정책·전략이 야기하는 경제적 불안정성과 빈곤의 확산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이 자신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