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빈곤과 유색인종의 질환 AIDS, 바로 지금이 싸워야 할 때!
AIDS: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재앙
90만 명의 우리나라 인구 중에서 25%가 HIV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약회사의 탐욕으로 '삭제'되고 있습니다.(Dr. Phetsile Kholekile Dlamini, 스와질랜드 보건복지부 장관)
작년, 짐바브웨의 수도인 하라레의 시의회는 문닫은 시간 이후에도 계속 도착하는 AIDS환자들의 주검을 처리하기 위해서 시립 공동묘지를 24시간 열도록 요구했다. 올해 시의회는 시체를 묻을 곳이 모자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거주자들에게 다음 가족을 묻을 수 있도록 먼저 묻는 사람을 충분히 깊게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임산부의 30%, 군인의 45%, 세계최고의 AIDS 감염율이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금 18살인 아이들 중 50%만이 서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4일 아시아 국가들의 성인 사망률이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인해 향후 10년간 40%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다쿠이 중국 위생부 부부장은 23일 “중국내 AIDS 감염자 수는 지난해 말까지 60만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6%인 3만여명이 불법적인 매혈과정에서 감염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AIDS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 유병율이 낮은 질환이다. 이 상황은 AIDS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적잖이 감소시키며 AIDS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을 수정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고 국제적인 AIDS 재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1999년 현재 전세계의 AIDS/HIV감염환자 수는 3백3십만명이고, 이들 중 95%가 저개발국에 존재한다. AIDS에 의해서 '하루'에 사망하는 환자는 무려 8,000명에 이른다. 10초에 한명 꼴이다.
처음에 AIDS는 일반적으로 게이남성, 성노동자, 그리고 정맥을 통한 마약투여자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다가, 이 HIV 감염율이 일정한 단계에 다다르면 그 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의 해일로 돌변한다. 경제활동연령의 사람들이 완전히 제거되며, 그 나라는 '고아'와 '노인'만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된다.
AIDS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는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구소련과 동유럽 등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나며, 아시아권만 봐도 일본과 한국은 감염율이 낮은 반면, 태국이나 미얀마, 인도와 같은 저개발국들에서는 매우 높은 빈도로 발생하고 있다. 전세계 사망자 300만명 중 사하라 남부아프리카 거주자가 240만명, 북미 사망자 수는 2만명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소수민족에 속한다. 일국 내에서도 차별받는 집단에 AIDS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질병의 발생과 치료 및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계급, 인종, 성별, 그리고 지리적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AIDS가 저개발국과 일국 내 소수자 집단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AIDS는 수세기에 걸쳐 구조화되어 있는 차별적·지구적 질서를 '시각화'시켜주는 놀라운 상징물로 기능하면서 다른 단일 질환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으로 세계적 불평등의 형태를 지적하고 있다는 데에 중요한 점이 있다.
"Dollar, Debts, and Drugs" (돈, 외채, 그리고 약물)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2000년 6월 23일, 주로 뉴욕과 워싱턴, 필라델피아지역의 AIDS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각국에서 온 NGO 대표들과 정치단체 등 2천여명의 사람들이 뉴욕의 워싱턴스퀘어공원에 모여들었다.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UN본부에서 이루어질 HIV/AIDS에 대한 특별총회에 압력을 행사하고자 대규모의 집회와 행진이 기획되었던 것이다. 이 특별총회는 AIDS환자 및 HIV 감염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하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주로 저개발국에 만연되어 있는 AIDS와 열대병을 치료하기 위한 국제기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집회의 핵심 구호는 "Dollar, Debts, and Drugs" (돈, 외채, 그리고 약물)이었고, 이 집회에 참가한 단체들 중 그날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쥬빌리의 미국 지부였다. 지금까지의 반세계화운동 과정에서 외채는 더 이상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착취와 종속의 지구적 구조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임이 분명해져 왔고, 이에 따라 논의도 '용서'에서 '탕감' 그리고 '배상'으로 이동해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AIDS 운동과 외채 운동간의 실천적 연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지구적 AIDS 재앙에 대해 책임질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것이다.
아프리카와 다른 개발도상지역들에서 지속불가능한 외채와 약화된 보건 체계는 많은 부분 지난 20년 동안 국제적 채권자들에 의해 강제된 경제 정책 상황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1차 의료에서 "본인 부담금"의 강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공공 보건 서비스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성병 감염율을 증가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더욱 일반적으로 공공부문 축소는 보건 전문인들을 사적 부문이나 해외로 이동시키고 보건의료 전달체계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켰다. 세계 은행과 IMF에 의해 조정되는 집합적 경제적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채권자들은 더욱 더 많은 빈국의 공공 보건 및 기타 정책들에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채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경제적 강권 정책(diktat)이 빈자보다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지렛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1)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자본의 세계화와 이에 기인한 지구적 불평등, 그리고 빈곤은 AIDS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4월, 나이지리아에서 아프리카 정상들은 국가 예산의 최소 15%(현재 수준의 2-3배)를 보건부문에 편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외채를 갚는 데에 우선권을 주도록 강요받는 국제질서에서 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AIDS에 대해 이들 나라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고, 따라서 더욱 퍼져가는 AIDS에 의해 경제활동인구가 점점더 사라져간다면 빈곤은 악순환을 이루며 심화되기만 할 것이다.
지금 이들 나라에서 AIDS는 그렇지 않아도 무너져가는 국가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 있는 실제적 위협이다. AIDS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이 필요한데, 파산한 국가가 지불하기에 이들 약물의 가격은 너무나 비싸다.
AIDS 약물에 대한 접근성과 의료적 아파르트헤이트
일반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제(anti-retrovirals)라고 불리워지는 AIDS 약물들을 칵테일요법2)으로 복용하는 경우, 수명을 2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20대에 감염, 30대에 발병한다고 해도 50-60세까지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북미지역과 유럽지역에서는 끔찍한 사망선고였던 이 질환이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저개발국에 살고 있는 95%의 AIDS 환자들은 너무나도 높은 가격 때문에 AIDS약물을 복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AIDS와 관련된 약가는 1992-98년도 사이에 평균 434%나 상승했으며 미국이나 유럽의 에이즈환자 중 85%가 AZT를 복용하고 있는 반면 백만명으로 추정되는 태국의 보균자 중 이 약을 사먹을 수 있는 사람은 채 1%도 안 된다.3)
케냐의 경우 HIV에 감염된 사람이 23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HIV로 인한 감염으로 인해 하루에 700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다. 현재 케냐에서 AIDS 치료제와 다른 필수 의약품을 투여 받고 있는 환자들은 단지 1000-2000명(0.043-0.086%)에 불과하다.4)
AIDS치료를 위한 칵테일요법을 위해 거대 제약회사들의 약물을 이용하는 경우, 1년에 평균 1만 달러 정도5)가 소요되는데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1인당 GNP가 1천5백달러를 밑도는 최빈국들이며, 반 이상의 나라는 1인당 GNP 수준이 1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약값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만을 계산한 것이며, AIDS의 각종 합병증 등에 대한 약물까지 고려하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합병증 중 하나인 결핵, 특히 기존의 여러 결핵약에 듣지 않는 다제내성결핵균을 치료하기 위해서만도 추가적인 5천2백달러가 소요된다.6)
그런데, AIDS 약물에 대한 접근성은 단지 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더욱 큰 중요성이 있다. AIDS약물에 대한 접근 정도가 예방의 가능성과 수준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약이 없다는 것은 결국 사망선고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죽을 것 알고 죽느니, 모르고 죽겠다고 생각한다. AIDS 검사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AIDS 약물이 없는 상황은 결국 누가 AIDS 환자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AIDS는 그러한 무지 속에서 무섭게 번져가고 있다.7)
특허에 의한 살인
특허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독점시장을 형성해줌으로써 제약회사가 시장에 팔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맘대로 값을 정하게 해주는 것. 북미, 유럽, 일본시장을 합친 것이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전체 아프리카가 1.5%밖에 차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약산업의 우선순위는 이미 정해졌다: 북반구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을, 나머지들에게는 죽음을.
Health Action International에 의해 이루어진 한 연구8)는 이러한 제약회사의 우선순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연구에서 사용된 11가지 약물들의 18가지 제형 중 자료를 구할 수 있었던 15가지 모두의 가격이 OECD보다 저개발국에서 더 높았던 것이다. 사적 제약산업에 의해서 지배되는 의약품 시장에서 생명의 가치는 '구매력'으로 측정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구적 재앙을 앞에 두고, 제약회사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거짓' 가정을 이용해서 수백만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있다.:
① 제약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십억의 이윤은 신약의 연구개발을 위한 것이다.
② 의약품은 생산하는 데에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사실은 가정과 다르다. 최근 Public Citizen에서 발표한 보고서9)에 따르면 약물의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비용의 1/5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잔탁과 프로작을 포함하는 5개의 블록버스터 약물의 개발 비용 중 평균 85%를, 제약회사가 아니라 세금과 외국 학술기관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들은 거의 특허를 출원하지 않고 특허를 이윤에 비하면 거의 공짜인 가격에 제약회사에 판다. 특허를 매개로 공적인 노력을 통해 개발된 의약품이 제약회사의 배타적 재산으로 쉽게 전환된다.
AIDS의 합병증 중 하나인 카포시 육종에 사용되는 탁솔이라는 항암제의 개발은 특허권자인 BMS (BristolMyersSquibb)가 아니라 정부에 소속된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6개 중 5개의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의 발견이나 임상실험 단계에서 공적자금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Glaxo-Wellcome의 AZT는 공익기구인 미시건암재단에서 최초 합성한 물질이며, BMS의 ddI는 미국의 공공기관인 국립보건원에서 개발한 제품이다.
더 중요하게, 제약회사는 신약 개발을 주로 하는 회사가 아니다. 제약회사가 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분은 마케팅이고, 이것이 제약회사의 전체 지출구조 중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는 부분이다.
1998년 한 해 동안 쉐링이 자사의 알러지약인 클래리틴의 광고에 지출한 금액은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지출한 전체 금액보다 많고, 안하우저-부시가 버드와이저 광고를 위해 지출한 전체 금액보다 많다.10)
그렇다면 약을 만드는 데는 돈이 얼마나 들까? 2001년 초, 인도의 일반약 회사인 Cipla는 에이즈 칵테일 요법을 할 수 있는 3가지의 약물을 1년에 3백5십달러에 제공하겠다고 밝혀, 전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같은 약물을 거대제약회사의 제품으로 구매했다면 연간 1만5천달러, 즉 Cipla가 제공하는 가격의 '28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약물을 생산하는 데에 드는 '진짜' 비용에 대한 베일이 걷혔고, 그 때부터 세상은 이전과 달라졌다.
강제실시: 충분히 사용되지 못한 돌파구
거대 제약회사의 '자선'에 의존해서 세계적인 AIDS 재난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은 고작해야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접근성은 획득되지 않는다. WTO가 계속해서 20년 동안의 독점적 특허권을 요구하는 이상,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이, 점증하는 공공보건의 압력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약품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의 독점적 이윤이 아니라 민주적 필요에 의해 공급되는 체계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위 50위까지의 제약회사가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엄청난 독점상황을 파괴해야 한다. 결국 이 독점상황이 특허에 기반한 것이라면, 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TRIPs 협정11) 내부에 제한적인 보호수단이 존재한다. 주로 논쟁이 되는 것은 31조의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ing 또는 other use without authorization of the right holder)이다. 국가는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고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일반약 회사)에게 그 상품을 생산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로열티는, 그 국가의 보건과 경제적 이익에 비하면 매우 작다. 미국의 경우 로열티를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TRIPs 수준으로 개정되어 있는 한국 특허법을 보면 강제실시권의 발동요건은,
① 특허권자가 이유없이 실시하지 않을 때,
② 실시를 했으나 충분하지 않을 때,
③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을 때,
④ 사법행정 절차에 의해 불공정거래행위로 판정된 때
이다. 그런데, 이들 중 ③과 ④의 경우에는 특허권자와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 중 공공의 비상업적 목적이 특허를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한 조건이다. 원칙적으로는 공공의 비상업적 목적인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특허에 상관없이 의약품이든 뭐든 생산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1969년에서 1992년 사이에만 613건의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권이 허가된 바 있고, 미국 내에서 허가된 강제실시권은 문자 그대로 수만 건에 이른다. US Manufacturers Aircraft Association Inc.와 관련된 단 한 건에서 강제실시된 특허만도 1천5백개이다.12)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실시(8월22일 브라질 정부가 발표한 강제실시: 필자 주)를 최근에만도 수십개 해 왔는데, 이에 포함되는 기술은 견인차, 컴퓨터 테크놀러지, 소프트웨어, 옥수수 germplasm, hemophilia 유전자에 대한 권리, dicyclomine 정제 등에 이른다.13)14)
유럽연합과, 캐나다 미국 정부는 문자 그대로 수만건의 강제실시를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 중에는 지난 2001년 8월 22일 브라질이 발표한 강제실시가 최초이다. 우리나라도 한번도 강제실시를 발동한 적이 없다.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에서 본 불평등은 무역협정의 적용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이 강제실시를 발동한다는 것은 미국으로부터의 위협과 공격, WTO와 WIPO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인 해석에 기반한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 나라들이 강제실시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소송비용과 무역 제재와 WTO 분쟁조절기구의 압력 등을 감당해내야만 한다. 브라질의 강제실시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세계최초였던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15)
다가오는 9월 19일, 재산권과 건강권에 대한 중요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지난 6월 20일, 짐바브웨는 TRIPs Council16)에서 특별한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 회의는 지난 4월 2-6일 사이에 있었던 TRIPs Council에서 아프리카 국가 대표의 전원발의에 의해 소집된 것으로 '건강과 의약품의 접근성에 대한 특허의 영향'에 대한 논의만을 특별히 진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었다. 이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남반부 국가들의 강력한 연대와 유럽연합 및 캐나다의 지지에 기반하여, 생산가능한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TRIPs 협정의 이행방식을 주요하게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때로 스위스와 함께, 국제 무역협정에 대해서 어떠한 변경이나 명징화도 필요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모든 참석자들을 실망시켰다.
이 회의에서 제출된 개발도상국의 발제문17)은 다음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회의는 TRIPs가 회원국의 공중보건에 대한 주권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지속적인 과정의 일부여야 한다.
공중보건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에서 회원국의 주권을 명확히 했으며 TRIPs 협정의 어떤 것도 이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TRIPs 조항에는 회원국의 강제실시권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 전혀 없다.
병행수입18)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될 수 있는 '권리소진'의 적용조건을 회원국의 상황에 맞게 법제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5-2006년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TRIPs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문제 등을 포함하여 필요한 논의들이 회원국에 의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에 있을 9월 19일 회의에서 초안을 작성하여 11월에 카타르에서 있을 WTO 각료회의에서 TRIPs 협정이 회원국들의 공중보건에 대한 법적권리를 침해할 수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다양한 논쟁 지점들 중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제실시된 약물의 수출에 관련된 부분이다. TRIPs 협정에는 강제실시된 약물이 주로 국내적(predominantly domestic)으로 소비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은 각각의 약물에 대해서 공장을 모두 따로 지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강제실시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는 생산자에게 생산허가를 내고, 나머지 나라들은 이 회사에서 약물을 수입하면 된다. 회의에서 유럽연합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관점에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TRIPs 협정에 있어 현재 WTO와 미국이 고수하고 있는 모호한 입장은 강제실시된 의약품의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필수의약품을 특허에서 제외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미 무역관리들은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을 뿐이다. 최빈국에 대한 유예기간 연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나라도 세계에서 미국 하나 뿐이다.
바로 지금이 투쟁해야 할 때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글리벡과 관련된 논란은 위에서 본 의약품 접근성에 관련된 문제, 특허에 의해 의약품을 제약회사가 독점하고, 이 독점에 근거하여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성과 반쪽짜리 의료보험제도에 기인하는,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본인부담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와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대량실업과 비정규화 붐 속에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은 경제적 기반이 불안정해지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더 비싼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비싼 지역의료보험을 꼬박꼬박 내면서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의약품을 구하게 되거나, 보험료를 내지 못하여 의료와 의약품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상태 때문에 더욱 쉽게 질병에 걸리고, 경제적 장벽 때문에 병을 악화시켜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에 대해, 유럽 여러 나라나 브라질이 이미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무상공급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특허 문제는 비켜갈 수 없다. 단순히 강제실시한 약물이 더 싸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금을 거대 제약회사의 이윤으로 고스란히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제실시와 병행수입의 범위를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진정한 호기가 지금 형성되고 있다. 더디고 힘든 20년간의 싸움과 남반구 민중들의 목숨 값으로, 미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 다음 TRIPs Council인 9월 19-21일을 겨냥해서 국제적인 연대와 투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의 활동가들은 9월 17-18일 사이 세계 각지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들 집회는 미 대사관, 제약회사, 또는 다른 적당한 상징물들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쟁은 11월 카타르에서의 각료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이 때 제약회사와 TRIPs 개정에 초점을 맞추어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에서의 집회를 계획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TRIPs에 대한 개정 논의를 우리나라 내에서 환기시키고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를 확대하기 위한 운동을 계획하는 흐름이 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이 바로 행동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급박한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바로 당신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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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의 UN 특별총회와 7월의 G8 정상회담에서는 AIDS와 열대병 치료를 위한 국제기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제기금에 대한 주로 논쟁 지점만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정혜주, 「UNGASS(UN General Assembly) 보고서」에서 발췌)
i) 치료를 할 것인가 예방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미국 및 1세계의 입장은, 만들어진 기금은 치료에는 사용하지 않고 예방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치료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으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 자체가 대단히 인종차별적인 견해라는 점이다. 치료는 안 되고 예방만 하자는 것은 지금 AIDS에 걸려있는 300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죽어도 좋다는 것인데, 만약 미국민, 특히 백인 300만명이 AIDS에 걸려있었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USAID의 Andrew Natsios는 최근에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평생 시계를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약을 줘봤자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는 발언을 해서 전세계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는 그의 인종차별적이고 극도로 조야한 세계관을 명확히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ii) 오리지널약을 살 것인가 일반약을 살 것인가?: 미국 정부는 기금에 의해 형성된 자금은 일반약을 사는 데에는 사용할 수 없고 오리지널약 구매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반약의 가격이 최대 1/68(항진균제인 플루코나졸의 국제 가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적어도 70배로 많은 환자들에게 약물을 투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리지널약만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은 1세계 국민들의 세금으로 형성된 fund를, 1세계에 기반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을 축적하는 데에 사용하겠다는 의도이다. 기금은 특허 상황과 오리지널/일반약에 상관없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물론 질적 측면이 보장되어야 하겠지만)을 제시하는 회사로부터 약을 구매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iii) 누가 기금을 운영할 것인가?: UN에서는 기금의 운영을 NGO에게 맡기겠다고 하고 있으나, 그 NGO들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이 국제 제약협회(제약회사사장들의 국제적인 모임)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NGO 등에 의해 만들어져 있는 국제적 혹은 국가적 수준의 의약품 수급체계들을 구미에 맞게 재편하고자 하고 있다. PSSP
1) Salih Booker and William Minter, 「Global Apartheid」, The Nations, 2001년 7월 9일
2) 칵테일 치료법(the triple cocktail treatment) 또는 고활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HAART). 다음 세 가지 카테고리의 AIDS 약물을 각각 하나씩 선택해서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으로서 HIV의 복제를 각기 다른 단계에서 저해함으로서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ohn Henkel, 「ATTACKING AIDS WITH A `COCKTAIL' THERAPY」, FDA Consumer, 1999년 7-8월호)
◎ 역전사효소 저해제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 nucleoside analog: AZT, ddi, ddc, D4T, 3TC, Ziagen(abacavir), Combivir(AZT+3TC)
○ 비-nucleoside analog: nevirapine, delavirdine, efavirenz
◎ 단백분해효소 저해제 (protease inhibitors): saquinavir, ritonavir, indinavir, nelfinavir, amprenivir
3) 정혜주, 「TRIPs와 의약품의 접근성」, WTO와 민중의 건강 토론회 자료집(2000년 10월 27일)에서 재인용
4) 공공의약팀, 「의약품과 지적재산권」, 2001년 민중의료연합 보건의료아카데미 자료집, 2001년 8월 18일에서 재인용
5) Philippe Rivie, Southern Sickness, Northern Medicine - Patently wrong, Le Monde Diplomatique, 2001년 7월 21일
6) Eric Goemaere, 「Can Existing Drugs and Stratagies Control TB?」, "Belgium MSF/WHO Workshop on "Drugs for Communicable Diseases, Stimulating Development and Securing Availability" Paris, October 14-15, 1999
7) 보통 터부시되는, 진정으로 AIDS에 취약한 계급-계층이 HIV 검사와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인식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AIDS를 더욱 급속도로 번져가게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지만, 이 문서의 중심내용에서 벗어나므로 본문에서는 서술하지 않는다.
○ HIV-양성인 여성은 심지어 살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들이 양성이라는 것이 나타나면 신체적, 감정적으로 학대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와줄루에서 Gugu Dlamini는 세계 AIDS의 날 용기있게 자신을 드러낸 후, 자기 동네의 젊은 남성에게 돌로 맞아 죽었다. (UNIFEM, Gender and HIV/AIDS-Facts and statistics)
○ 과테말라에서는 복장도착 성노동자들 3명의 살해 사건이 1997년에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이 취약 그룹들에 대한 의약품의 접근성은 훨씬 더 감소했다. (UNDP, Dying of Sadness: Gender, Sexual Violence and the HIV Epidemic)
○ 자마이카에서는 감옥 내에서 콘돔을 배포하자는 시위가 있었다. 이때 간수가 걸어 들어왔고, 이후 일어난 폭력과정에서 남성 사이에 성행위가 있었을 거라는 추정에 기반해서, 단지 게이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16명이 살해당했다. (UNDP, Dying of Sadness: Gender, Sexual Violence and the HIV Epidemic)
8) K Bala and Kiran Sagoo, Patents and Prices, HAINEWS NUMBER 112, APRIL/MAY 2000
9) Public Citizen, 「Rx R&D Myths: The Case Against The Drug Industry’s R&D "Scare Card"」2001년 7월
10) Harris, Gardiner, 「Drug Firms, Stymied in the Lab, Become Marketing Machines」, The Wall Street Journal, 2000년 7월 6일
11) Agreements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의 약자로서 WTO체제 하의 지적재산권제도를 의미한다. 이 협정에서는 특허의 보호기가을 20년으로 늘리고, 모든 나라가 늦어도 2005-2006년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자국 특허법을 개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12) Carlos M. Correa,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and the use of compulcory licenses : options for developing countries」
13) James Love, Comment on Reporting in Brazil compulsory licensing case, Pharm-policy mailing list, 2001년 8월 24일
14) 관련해서 군대용 적외선 고글에 대한 강제실시도 최근에 있었다. 이런 예들을 열거하는 것은 이러한 실시가 완전히 '비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필수'적인 강제실시들의 필요성은 굳이 이런 실시예들과 비교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5) 일부에서 잘못 보도된 것과는 달리, 브라질의 이번 강제실시 발표는 Roche가 가격을 더욱 인하하도록 하기 위한 압력의 수준이 아니다. 브라질의 국영 제약회사인 Far-Manguinhos는 넬피나비어의 일반약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있으며, 8월 말에 생물학적동등성 시험(bioequivalence test)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Roche는 브라질 보건부와 계약이 만료되는 올해 12월까지 약물을 공급하고, 내년 2월부터는 이 국영 제약회사가 공급할 계획이다. 강제실시를 통해 약값은 40%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 보건국의 넬피나비어 특허 강제실시에 대한 8월 22일 성명서에서 일부 발췌)
16) TRIPs 협정을 관리하기 위한 WTO산하의 조직체로서, 특히 이 협정의 실시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이다. 원칙적으로 3달에 한번씩 개최된다. (TRIPs 협정 제 68조에 의거함)
17) http://www.wto.org/english/tratop_e/trips_e/paper_develop_w296_e.htm
18) 국제적인 의약품 가격의 차이를 이용하여 자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오리지널 약물을 더 싼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것.
90만 명의 우리나라 인구 중에서 25%가 HIV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약회사의 탐욕으로 '삭제'되고 있습니다.(Dr. Phetsile Kholekile Dlamini, 스와질랜드 보건복지부 장관)
작년, 짐바브웨의 수도인 하라레의 시의회는 문닫은 시간 이후에도 계속 도착하는 AIDS환자들의 주검을 처리하기 위해서 시립 공동묘지를 24시간 열도록 요구했다. 올해 시의회는 시체를 묻을 곳이 모자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거주자들에게 다음 가족을 묻을 수 있도록 먼저 묻는 사람을 충분히 깊게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임산부의 30%, 군인의 45%, 세계최고의 AIDS 감염율이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금 18살인 아이들 중 50%만이 서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4일 아시아 국가들의 성인 사망률이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인해 향후 10년간 40%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다쿠이 중국 위생부 부부장은 23일 “중국내 AIDS 감염자 수는 지난해 말까지 60만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6%인 3만여명이 불법적인 매혈과정에서 감염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AIDS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 유병율이 낮은 질환이다. 이 상황은 AIDS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적잖이 감소시키며 AIDS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을 수정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고 국제적인 AIDS 재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1999년 현재 전세계의 AIDS/HIV감염환자 수는 3백3십만명이고, 이들 중 95%가 저개발국에 존재한다. AIDS에 의해서 '하루'에 사망하는 환자는 무려 8,000명에 이른다. 10초에 한명 꼴이다.
처음에 AIDS는 일반적으로 게이남성, 성노동자, 그리고 정맥을 통한 마약투여자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다가, 이 HIV 감염율이 일정한 단계에 다다르면 그 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의 해일로 돌변한다. 경제활동연령의 사람들이 완전히 제거되며, 그 나라는 '고아'와 '노인'만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된다.
AIDS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는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구소련과 동유럽 등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나며, 아시아권만 봐도 일본과 한국은 감염율이 낮은 반면, 태국이나 미얀마, 인도와 같은 저개발국들에서는 매우 높은 빈도로 발생하고 있다. 전세계 사망자 300만명 중 사하라 남부아프리카 거주자가 240만명, 북미 사망자 수는 2만명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소수민족에 속한다. 일국 내에서도 차별받는 집단에 AIDS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질병의 발생과 치료 및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계급, 인종, 성별, 그리고 지리적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AIDS가 저개발국과 일국 내 소수자 집단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AIDS는 수세기에 걸쳐 구조화되어 있는 차별적·지구적 질서를 '시각화'시켜주는 놀라운 상징물로 기능하면서 다른 단일 질환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으로 세계적 불평등의 형태를 지적하고 있다는 데에 중요한 점이 있다.
"Dollar, Debts, and Drugs" (돈, 외채, 그리고 약물)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2000년 6월 23일, 주로 뉴욕과 워싱턴, 필라델피아지역의 AIDS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각국에서 온 NGO 대표들과 정치단체 등 2천여명의 사람들이 뉴욕의 워싱턴스퀘어공원에 모여들었다.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UN본부에서 이루어질 HIV/AIDS에 대한 특별총회에 압력을 행사하고자 대규모의 집회와 행진이 기획되었던 것이다. 이 특별총회는 AIDS환자 및 HIV 감염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하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주로 저개발국에 만연되어 있는 AIDS와 열대병을 치료하기 위한 국제기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집회의 핵심 구호는 "Dollar, Debts, and Drugs" (돈, 외채, 그리고 약물)이었고, 이 집회에 참가한 단체들 중 그날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쥬빌리의 미국 지부였다. 지금까지의 반세계화운동 과정에서 외채는 더 이상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착취와 종속의 지구적 구조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임이 분명해져 왔고, 이에 따라 논의도 '용서'에서 '탕감' 그리고 '배상'으로 이동해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AIDS 운동과 외채 운동간의 실천적 연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지구적 AIDS 재앙에 대해 책임질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것이다.
아프리카와 다른 개발도상지역들에서 지속불가능한 외채와 약화된 보건 체계는 많은 부분 지난 20년 동안 국제적 채권자들에 의해 강제된 경제 정책 상황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1차 의료에서 "본인 부담금"의 강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공공 보건 서비스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성병 감염율을 증가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더욱 일반적으로 공공부문 축소는 보건 전문인들을 사적 부문이나 해외로 이동시키고 보건의료 전달체계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켰다. 세계 은행과 IMF에 의해 조정되는 집합적 경제적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채권자들은 더욱 더 많은 빈국의 공공 보건 및 기타 정책들에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채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경제적 강권 정책(diktat)이 빈자보다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지렛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1)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자본의 세계화와 이에 기인한 지구적 불평등, 그리고 빈곤은 AIDS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4월, 나이지리아에서 아프리카 정상들은 국가 예산의 최소 15%(현재 수준의 2-3배)를 보건부문에 편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외채를 갚는 데에 우선권을 주도록 강요받는 국제질서에서 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AIDS에 대해 이들 나라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고, 따라서 더욱 퍼져가는 AIDS에 의해 경제활동인구가 점점더 사라져간다면 빈곤은 악순환을 이루며 심화되기만 할 것이다.
지금 이들 나라에서 AIDS는 그렇지 않아도 무너져가는 국가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 있는 실제적 위협이다. AIDS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이 필요한데, 파산한 국가가 지불하기에 이들 약물의 가격은 너무나 비싸다.
AIDS 약물에 대한 접근성과 의료적 아파르트헤이트
일반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제(anti-retrovirals)라고 불리워지는 AIDS 약물들을 칵테일요법2)으로 복용하는 경우, 수명을 2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20대에 감염, 30대에 발병한다고 해도 50-60세까지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북미지역과 유럽지역에서는 끔찍한 사망선고였던 이 질환이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저개발국에 살고 있는 95%의 AIDS 환자들은 너무나도 높은 가격 때문에 AIDS약물을 복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AIDS와 관련된 약가는 1992-98년도 사이에 평균 434%나 상승했으며 미국이나 유럽의 에이즈환자 중 85%가 AZT를 복용하고 있는 반면 백만명으로 추정되는 태국의 보균자 중 이 약을 사먹을 수 있는 사람은 채 1%도 안 된다.3)
케냐의 경우 HIV에 감염된 사람이 23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HIV로 인한 감염으로 인해 하루에 700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다. 현재 케냐에서 AIDS 치료제와 다른 필수 의약품을 투여 받고 있는 환자들은 단지 1000-2000명(0.043-0.086%)에 불과하다.4)
AIDS치료를 위한 칵테일요법을 위해 거대 제약회사들의 약물을 이용하는 경우, 1년에 평균 1만 달러 정도5)가 소요되는데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1인당 GNP가 1천5백달러를 밑도는 최빈국들이며, 반 이상의 나라는 1인당 GNP 수준이 1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약값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만을 계산한 것이며, AIDS의 각종 합병증 등에 대한 약물까지 고려하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합병증 중 하나인 결핵, 특히 기존의 여러 결핵약에 듣지 않는 다제내성결핵균을 치료하기 위해서만도 추가적인 5천2백달러가 소요된다.6)
그런데, AIDS 약물에 대한 접근성은 단지 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더욱 큰 중요성이 있다. AIDS약물에 대한 접근 정도가 예방의 가능성과 수준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약이 없다는 것은 결국 사망선고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죽을 것 알고 죽느니, 모르고 죽겠다고 생각한다. AIDS 검사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AIDS 약물이 없는 상황은 결국 누가 AIDS 환자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AIDS는 그러한 무지 속에서 무섭게 번져가고 있다.7)
특허에 의한 살인
특허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독점시장을 형성해줌으로써 제약회사가 시장에 팔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맘대로 값을 정하게 해주는 것. 북미, 유럽, 일본시장을 합친 것이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전체 아프리카가 1.5%밖에 차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약산업의 우선순위는 이미 정해졌다: 북반구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을, 나머지들에게는 죽음을.
Health Action International에 의해 이루어진 한 연구8)는 이러한 제약회사의 우선순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연구에서 사용된 11가지 약물들의 18가지 제형 중 자료를 구할 수 있었던 15가지 모두의 가격이 OECD보다 저개발국에서 더 높았던 것이다. 사적 제약산업에 의해서 지배되는 의약품 시장에서 생명의 가치는 '구매력'으로 측정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구적 재앙을 앞에 두고, 제약회사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거짓' 가정을 이용해서 수백만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있다.:
① 제약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십억의 이윤은 신약의 연구개발을 위한 것이다.
② 의약품은 생산하는 데에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사실은 가정과 다르다. 최근 Public Citizen에서 발표한 보고서9)에 따르면 약물의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비용의 1/5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잔탁과 프로작을 포함하는 5개의 블록버스터 약물의 개발 비용 중 평균 85%를, 제약회사가 아니라 세금과 외국 학술기관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들은 거의 특허를 출원하지 않고 특허를 이윤에 비하면 거의 공짜인 가격에 제약회사에 판다. 특허를 매개로 공적인 노력을 통해 개발된 의약품이 제약회사의 배타적 재산으로 쉽게 전환된다.
AIDS의 합병증 중 하나인 카포시 육종에 사용되는 탁솔이라는 항암제의 개발은 특허권자인 BMS (BristolMyersSquibb)가 아니라 정부에 소속된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6개 중 5개의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의 발견이나 임상실험 단계에서 공적자금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Glaxo-Wellcome의 AZT는 공익기구인 미시건암재단에서 최초 합성한 물질이며, BMS의 ddI는 미국의 공공기관인 국립보건원에서 개발한 제품이다.
더 중요하게, 제약회사는 신약 개발을 주로 하는 회사가 아니다. 제약회사가 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분은 마케팅이고, 이것이 제약회사의 전체 지출구조 중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는 부분이다.
1998년 한 해 동안 쉐링이 자사의 알러지약인 클래리틴의 광고에 지출한 금액은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지출한 전체 금액보다 많고, 안하우저-부시가 버드와이저 광고를 위해 지출한 전체 금액보다 많다.10)
그렇다면 약을 만드는 데는 돈이 얼마나 들까? 2001년 초, 인도의 일반약 회사인 Cipla는 에이즈 칵테일 요법을 할 수 있는 3가지의 약물을 1년에 3백5십달러에 제공하겠다고 밝혀, 전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같은 약물을 거대제약회사의 제품으로 구매했다면 연간 1만5천달러, 즉 Cipla가 제공하는 가격의 '28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약물을 생산하는 데에 드는 '진짜' 비용에 대한 베일이 걷혔고, 그 때부터 세상은 이전과 달라졌다.
강제실시: 충분히 사용되지 못한 돌파구
거대 제약회사의 '자선'에 의존해서 세계적인 AIDS 재난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은 고작해야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접근성은 획득되지 않는다. WTO가 계속해서 20년 동안의 독점적 특허권을 요구하는 이상,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이, 점증하는 공공보건의 압력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약품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의 독점적 이윤이 아니라 민주적 필요에 의해 공급되는 체계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위 50위까지의 제약회사가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엄청난 독점상황을 파괴해야 한다. 결국 이 독점상황이 특허에 기반한 것이라면, 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TRIPs 협정11) 내부에 제한적인 보호수단이 존재한다. 주로 논쟁이 되는 것은 31조의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ing 또는 other use without authorization of the right holder)이다. 국가는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고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일반약 회사)에게 그 상품을 생산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로열티는, 그 국가의 보건과 경제적 이익에 비하면 매우 작다. 미국의 경우 로열티를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TRIPs 수준으로 개정되어 있는 한국 특허법을 보면 강제실시권의 발동요건은,
① 특허권자가 이유없이 실시하지 않을 때,
② 실시를 했으나 충분하지 않을 때,
③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을 때,
④ 사법행정 절차에 의해 불공정거래행위로 판정된 때
이다. 그런데, 이들 중 ③과 ④의 경우에는 특허권자와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 중 공공의 비상업적 목적이 특허를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한 조건이다. 원칙적으로는 공공의 비상업적 목적인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특허에 상관없이 의약품이든 뭐든 생산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1969년에서 1992년 사이에만 613건의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권이 허가된 바 있고, 미국 내에서 허가된 강제실시권은 문자 그대로 수만 건에 이른다. US Manufacturers Aircraft Association Inc.와 관련된 단 한 건에서 강제실시된 특허만도 1천5백개이다.12)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실시(8월22일 브라질 정부가 발표한 강제실시: 필자 주)를 최근에만도 수십개 해 왔는데, 이에 포함되는 기술은 견인차, 컴퓨터 테크놀러지, 소프트웨어, 옥수수 germplasm, hemophilia 유전자에 대한 권리, dicyclomine 정제 등에 이른다.13)14)
유럽연합과, 캐나다 미국 정부는 문자 그대로 수만건의 강제실시를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 중에는 지난 2001년 8월 22일 브라질이 발표한 강제실시가 최초이다. 우리나라도 한번도 강제실시를 발동한 적이 없다.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에서 본 불평등은 무역협정의 적용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이 강제실시를 발동한다는 것은 미국으로부터의 위협과 공격, WTO와 WIPO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인 해석에 기반한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 나라들이 강제실시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소송비용과 무역 제재와 WTO 분쟁조절기구의 압력 등을 감당해내야만 한다. 브라질의 강제실시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세계최초였던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15)
다가오는 9월 19일, 재산권과 건강권에 대한 중요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지난 6월 20일, 짐바브웨는 TRIPs Council16)에서 특별한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 회의는 지난 4월 2-6일 사이에 있었던 TRIPs Council에서 아프리카 국가 대표의 전원발의에 의해 소집된 것으로 '건강과 의약품의 접근성에 대한 특허의 영향'에 대한 논의만을 특별히 진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었다. 이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남반부 국가들의 강력한 연대와 유럽연합 및 캐나다의 지지에 기반하여, 생산가능한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TRIPs 협정의 이행방식을 주요하게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때로 스위스와 함께, 국제 무역협정에 대해서 어떠한 변경이나 명징화도 필요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모든 참석자들을 실망시켰다.
이 회의에서 제출된 개발도상국의 발제문17)은 다음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회의는 TRIPs가 회원국의 공중보건에 대한 주권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지속적인 과정의 일부여야 한다.
공중보건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에서 회원국의 주권을 명확히 했으며 TRIPs 협정의 어떤 것도 이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TRIPs 조항에는 회원국의 강제실시권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 전혀 없다.
병행수입18)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될 수 있는 '권리소진'의 적용조건을 회원국의 상황에 맞게 법제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5-2006년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TRIPs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문제 등을 포함하여 필요한 논의들이 회원국에 의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에 있을 9월 19일 회의에서 초안을 작성하여 11월에 카타르에서 있을 WTO 각료회의에서 TRIPs 협정이 회원국들의 공중보건에 대한 법적권리를 침해할 수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다양한 논쟁 지점들 중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제실시된 약물의 수출에 관련된 부분이다. TRIPs 협정에는 강제실시된 약물이 주로 국내적(predominantly domestic)으로 소비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은 각각의 약물에 대해서 공장을 모두 따로 지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강제실시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는 생산자에게 생산허가를 내고, 나머지 나라들은 이 회사에서 약물을 수입하면 된다. 회의에서 유럽연합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관점에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TRIPs 협정에 있어 현재 WTO와 미국이 고수하고 있는 모호한 입장은 강제실시된 의약품의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필수의약품을 특허에서 제외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미 무역관리들은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을 뿐이다. 최빈국에 대한 유예기간 연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나라도 세계에서 미국 하나 뿐이다.
바로 지금이 투쟁해야 할 때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글리벡과 관련된 논란은 위에서 본 의약품 접근성에 관련된 문제, 특허에 의해 의약품을 제약회사가 독점하고, 이 독점에 근거하여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성과 반쪽짜리 의료보험제도에 기인하는,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본인부담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와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대량실업과 비정규화 붐 속에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은 경제적 기반이 불안정해지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더 비싼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비싼 지역의료보험을 꼬박꼬박 내면서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의약품을 구하게 되거나, 보험료를 내지 못하여 의료와 의약품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상태 때문에 더욱 쉽게 질병에 걸리고, 경제적 장벽 때문에 병을 악화시켜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에 대해, 유럽 여러 나라나 브라질이 이미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무상공급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특허 문제는 비켜갈 수 없다. 단순히 강제실시한 약물이 더 싸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금을 거대 제약회사의 이윤으로 고스란히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제실시와 병행수입의 범위를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진정한 호기가 지금 형성되고 있다. 더디고 힘든 20년간의 싸움과 남반구 민중들의 목숨 값으로, 미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 다음 TRIPs Council인 9월 19-21일을 겨냥해서 국제적인 연대와 투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의 활동가들은 9월 17-18일 사이 세계 각지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들 집회는 미 대사관, 제약회사, 또는 다른 적당한 상징물들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쟁은 11월 카타르에서의 각료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이 때 제약회사와 TRIPs 개정에 초점을 맞추어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에서의 집회를 계획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TRIPs에 대한 개정 논의를 우리나라 내에서 환기시키고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를 확대하기 위한 운동을 계획하는 흐름이 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이 바로 행동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급박한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바로 당신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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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의 UN 특별총회와 7월의 G8 정상회담에서는 AIDS와 열대병 치료를 위한 국제기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제기금에 대한 주로 논쟁 지점만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정혜주, 「UNGASS(UN General Assembly) 보고서」에서 발췌)
i) 치료를 할 것인가 예방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미국 및 1세계의 입장은, 만들어진 기금은 치료에는 사용하지 않고 예방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치료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으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 자체가 대단히 인종차별적인 견해라는 점이다. 치료는 안 되고 예방만 하자는 것은 지금 AIDS에 걸려있는 300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죽어도 좋다는 것인데, 만약 미국민, 특히 백인 300만명이 AIDS에 걸려있었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USAID의 Andrew Natsios는 최근에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평생 시계를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약을 줘봤자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는 발언을 해서 전세계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는 그의 인종차별적이고 극도로 조야한 세계관을 명확히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ii) 오리지널약을 살 것인가 일반약을 살 것인가?: 미국 정부는 기금에 의해 형성된 자금은 일반약을 사는 데에는 사용할 수 없고 오리지널약 구매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반약의 가격이 최대 1/68(항진균제인 플루코나졸의 국제 가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적어도 70배로 많은 환자들에게 약물을 투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리지널약만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은 1세계 국민들의 세금으로 형성된 fund를, 1세계에 기반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을 축적하는 데에 사용하겠다는 의도이다. 기금은 특허 상황과 오리지널/일반약에 상관없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물론 질적 측면이 보장되어야 하겠지만)을 제시하는 회사로부터 약을 구매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iii) 누가 기금을 운영할 것인가?: UN에서는 기금의 운영을 NGO에게 맡기겠다고 하고 있으나, 그 NGO들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이 국제 제약협회(제약회사사장들의 국제적인 모임)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NGO 등에 의해 만들어져 있는 국제적 혹은 국가적 수준의 의약품 수급체계들을 구미에 맞게 재편하고자 하고 있다. PSSP
1) Salih Booker and William Minter, 「Global Apartheid」, The Nations, 2001년 7월 9일
2) 칵테일 치료법(the triple cocktail treatment) 또는 고활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HAART). 다음 세 가지 카테고리의 AIDS 약물을 각각 하나씩 선택해서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으로서 HIV의 복제를 각기 다른 단계에서 저해함으로서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ohn Henkel, 「ATTACKING AIDS WITH A `COCKTAIL' THERAPY」, FDA Consumer, 1999년 7-8월호)
◎ 역전사효소 저해제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 nucleoside analog: AZT, ddi, ddc, D4T, 3TC, Ziagen(abacavir), Combivir(AZT+3TC)
○ 비-nucleoside analog: nevirapine, delavirdine, efavirenz
◎ 단백분해효소 저해제 (protease inhibitors): saquinavir, ritonavir, indinavir, nelfinavir, amprenivir
3) 정혜주, 「TRIPs와 의약품의 접근성」, WTO와 민중의 건강 토론회 자료집(2000년 10월 27일)에서 재인용
4) 공공의약팀, 「의약품과 지적재산권」, 2001년 민중의료연합 보건의료아카데미 자료집, 2001년 8월 18일에서 재인용
5) Philippe Rivie, Southern Sickness, Northern Medicine - Patently wrong, Le Monde Diplomatique, 2001년 7월 21일
6) Eric Goemaere, 「Can Existing Drugs and Stratagies Control TB?」, "Belgium MSF/WHO Workshop on "Drugs for Communicable Diseases, Stimulating Development and Securing Availability" Paris, October 14-15, 1999
7) 보통 터부시되는, 진정으로 AIDS에 취약한 계급-계층이 HIV 검사와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인식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AIDS를 더욱 급속도로 번져가게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지만, 이 문서의 중심내용에서 벗어나므로 본문에서는 서술하지 않는다.
○ HIV-양성인 여성은 심지어 살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들이 양성이라는 것이 나타나면 신체적, 감정적으로 학대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와줄루에서 Gugu Dlamini는 세계 AIDS의 날 용기있게 자신을 드러낸 후, 자기 동네의 젊은 남성에게 돌로 맞아 죽었다. (UNIFEM, Gender and HIV/AIDS-Facts and statistics)
○ 과테말라에서는 복장도착 성노동자들 3명의 살해 사건이 1997년에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이 취약 그룹들에 대한 의약품의 접근성은 훨씬 더 감소했다. (UNDP, Dying of Sadness: Gender, Sexual Violence and the HIV Epidemic)
○ 자마이카에서는 감옥 내에서 콘돔을 배포하자는 시위가 있었다. 이때 간수가 걸어 들어왔고, 이후 일어난 폭력과정에서 남성 사이에 성행위가 있었을 거라는 추정에 기반해서, 단지 게이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16명이 살해당했다. (UNDP, Dying of Sadness: Gender, Sexual Violence and the HIV Epidemic)
8) K Bala and Kiran Sagoo, Patents and Prices, HAINEWS NUMBER 112, APRIL/MAY 2000
9) Public Citizen, 「Rx R&D Myths: The Case Against The Drug Industry’s R&D "Scare Card"」2001년 7월
10) Harris, Gardiner, 「Drug Firms, Stymied in the Lab, Become Marketing Machines」, The Wall Street Journal, 2000년 7월 6일
11) Agreements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의 약자로서 WTO체제 하의 지적재산권제도를 의미한다. 이 협정에서는 특허의 보호기가을 20년으로 늘리고, 모든 나라가 늦어도 2005-2006년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자국 특허법을 개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12) Carlos M. Correa,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and the use of compulcory licenses : options for developing countries」
13) James Love, Comment on Reporting in Brazil compulsory licensing case, Pharm-policy mailing list, 2001년 8월 24일
14) 관련해서 군대용 적외선 고글에 대한 강제실시도 최근에 있었다. 이런 예들을 열거하는 것은 이러한 실시가 완전히 '비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필수'적인 강제실시들의 필요성은 굳이 이런 실시예들과 비교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5) 일부에서 잘못 보도된 것과는 달리, 브라질의 이번 강제실시 발표는 Roche가 가격을 더욱 인하하도록 하기 위한 압력의 수준이 아니다. 브라질의 국영 제약회사인 Far-Manguinhos는 넬피나비어의 일반약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있으며, 8월 말에 생물학적동등성 시험(bioequivalence test)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Roche는 브라질 보건부와 계약이 만료되는 올해 12월까지 약물을 공급하고, 내년 2월부터는 이 국영 제약회사가 공급할 계획이다. 강제실시를 통해 약값은 40%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 보건국의 넬피나비어 특허 강제실시에 대한 8월 22일 성명서에서 일부 발췌)
16) TRIPs 협정을 관리하기 위한 WTO산하의 조직체로서, 특히 이 협정의 실시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이다. 원칙적으로 3달에 한번씩 개최된다. (TRIPs 협정 제 68조에 의거함)
17) http://www.wto.org/english/tratop_e/trips_e/paper_develop_w296_e.htm
18) 국제적인 의약품 가격의 차이를 이용하여 자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오리지널 약물을 더 싼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