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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9.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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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의 교착상태, 누구의 책임인가?- 미국의 제네바합의 위반, 그리고 한미일 삼각공조

임필수 | 정책부장
8월 8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제네바합의의 이행" "미사일계획의 검증가능한 억제" 그리고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위협 감축" 등의 세가지 의제에 관해 북한과 협의하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였다. 이는 지난 6월 6일 발표된, 부시대통령의 북미대화 재개 선언 당시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말이, 곧 미국이 이전과는 다르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지난해 10월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의 방미 때 채택된 '조미공동코뮤니케'를 북미대화의 명시적인 전제조건으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부시정부는 출범 이래로 공동코뮤니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클린턴 정부 때 북미간에 어느 정도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부시정부는 그것을 그냥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며 새로운 행정부의 시각에서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그렇지만, 공동코뮤니케를 명시적인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고 클린턴 정부와의 단절을 강조한다고 해서, 부시정부이 갖는 대북정책의 기본틀이 이전과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윤곽이 드러난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자면, 오히려 그 이전의 정책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북미대화의 교착상태가 '온건파' 클린턴으로부터 '강경파' 부시로의 정권교체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현재 북미관계의 교착상태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 이것을 밝히는 게 본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어떤 이유로 (미사일 문제를 젖혀두고) 최근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가 북미간의 우선적인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하여 북한의 협상전략이 어떤 난관에 직면해 있는지를 검토해 볼 것이다.


1990년대 미국의 '북한붕괴론'과 경수로 건설의 지연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의 중핵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즉 핵-미사일을 동결하고 종국적으로는 해체하는 것이다.(이외 다른 것들은 그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는 그러한 미국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 북미간의 최초 합의였다. 그 핵심적 내용은 북한이 영변지역의 핵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대신에, 미국이 그것을 대체하는 경수로형 발전소 건설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완전 정상화되는 길로 나아갈 것을 양국이 약속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두가지 측면에서 고의적으로 '위반'하였다. 하나는 관계정상화의 약속을 접고, 한미 공동으로 4자회담을 역제안한 것이다.(그것은 당시 남북관계에 비해, 북미관계의 진전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김영삼 정부에게 비토권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 하나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경수로 건설을 실질적으로 지연시킨 것이다. 물론 미국이 제네바합의 이행을 고의적으로 방기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에너지-식량위기와 김주석 사망 등을 빌미로 '붕한붕괴론' 또는 '연착륙론' 등을 적극적으로 유포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책임방기의 후과로 인하여, 부시정부 등장 이후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는 양국간에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부시정부의 임기 중인) 2003년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북한으로 인도되는 해이자, 동시에, 동결된 흑연감속로를 완전히 해체하고 1994년 이전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비롯해 '과거핵'을 규명하기 위한 IAEA의 핵사찰 작업이 시작되는 해이다. 그러나 공사지연으로 인하여 미국이 2003년까지 핵심부품을 인도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질 가망성이 매우 희박해지면서 갈등의 불씨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그 최우선적인 의제는 바로 경수로 건설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 건설이 늦어질 경우 보상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면서, 현재까지는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미국은 "제네바합의에 담긴 핵 非확산의 이정표가 연기되어서는 안된다"면서, 경수로 건설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2단계 사찰활동은 합의대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지금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미국이 자신의 외교적 언술 그대로 행동하려 든다면 북미간의 큰 충돌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제네바합의 위반과 미국의 새로운 책략 : 대북전력지원과의 연계

그렇지만, 미국이 자신의 책임방기 문제를 회피하면서 2단계 핵사찰을 강행하려 한다면 북미관계는 파국적 상황으로 인도될 위험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일방적으로 북한의 요구를 묵살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제네바합의의 '개선'(수정)이라는 새로운 책략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바로 남한의 대북 전력지원 문제이다. 사실 대북 전력지원은 2000년 김대중대통령의 베를린선언과 6월 정상회담에서의 대북 경제지원과 관련된 남북간의 암묵적 합의에 있어서 핵심내용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북한의 긴급한 전력부족 상황을 이용하여, 경수로 건설지연에 대한 사실상 보상의 대체물로 남한정부의 전력지원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즉 남한의 전력지원을 대가로 경수로 건설지연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남한이 북한과의 협의하에 독자적으로 전력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여 왔고 그것이 북한과의 협상력을 저해할 것을 염려해왔다. 이에 반해, 북한은 제네바합의와 연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대북전력지원 문제를 남한과 합의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이를 통해 북한의 경제재건의 발판을 얻으면서 동시에 제네바합의 위반에 관해 미국을 강력히 압박하여, 추가적인 보상이나 정치적 조치들을 획득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남한정부에 대한 미국의 '외교'활동은―너무나도 당연히―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현재 시점에서 대북 전력지원 문제는 오리무중에 빠져있다. (전력지원에 관한 남북 실무회의에서 북한은 그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요구한 반면, 한국은 북한의 전력상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먼저 진행하자는 주장을 펼치면서 대화는 중단된 상태이다.) 그리고 이는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한 정부간 회담의 중단, 경의선철도 복원공사 중단 등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상태로 빠지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각주1-부시정부의 출범 직후, 미국은 제네바합의의 수정 및 과거 핵규명 문제에 관해, 보다 포괄적인 검토 작업을 진행하였다. 예컨대 플루토늄의 추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경수로형 원자로를 아예 화력발전소로 대체하는 문제, 사찰범위를 크게 확대한 IAEA 추가의정서에 북한이 가입하도록 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사항이 제네바합의 범위을 넘어서고 큰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검토과정에서 일단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과 북미 미사일협상의 연계

이렇듯 제네바합의 이행과 관련된 부시정부의 정책은 기존 입장을 (미국의 시각에서) '보완'하면서도, 한-미-일 3각공조체제를 통해 그 실제적인 책임을 해소하는 방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북미간의 미사일협상 문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북미간의 미사일협상은 북한의 국제협정 '위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각주2-예컨대 북미간의 핵문제 공방의 경우에는, 북한이 '국제적인' 규범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북한의 미사일의 개발 및 수출은 분명 북한이 주장하는 바대로 '자주권'의 영역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 문제를 협상 의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유인을 포함하는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은 페리보고서의 작성과정에서 북한 붕괴유도정책이나 무시(neglect)정책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협상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즉 북한의 경제난을 매개로 하여 대북 식량·경제지원 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과의 미사일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클린턴 정부 말미에 조명록 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상호방문과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 양국은 장거리미사일 관련부품 및 기술의 수출, 그리고 특정사거리의 미사일의 자체실험 및 생산의 중단문제에 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미해결된 문제는 미국이 북한 영토에 직접 들어가 '검증'(verification)하는 문제, (일본을 겨누고 있는) 이미 배치된 약 100여기의 노동미사일의 해체 문제였다.
이는 여전히 큰 갈등의 소지를 남기고 있고, 미국으로서도 아직까지 뾰족한 전략을 입안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정부는 이에 대해 '단계적인' 접근을 하자는 입장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일단은 클린턴 정부 당시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범위의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명문화된 협상타결을 이루고 그 다음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단계의 사안 중 하나인 노동미사일의 해체는 북일수교 협상과 연계하여 처리한다는 것이다.(북한의 대일정책의 요체인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문제, 즉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일본과 교전당사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전쟁배상금 처리문제)


동아시아주둔 미군의 재조정과 북한 재래식군사력 감축

마지막으로, 부시정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감축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미국은 자체적으로 1990년대 초반 입안된 '2개의 전쟁 전략'(win-and-win strategy)을 축소조정하고, 첨단 군사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동아시아에 배치된 10만명의 병력 및 기지를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대량살상능력을 갖는 보복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제거된다면, 첨단 해공군력과 신축적으로 운용되는 지상군으로도 충분히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은 자신의 대북협상 카드를 '낭비'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바, 이를 북한의 재래식전력 감축과 연계하여 효율적인 처리방식을 찾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미국의 주요 관심대상은 DMZ 주변에 대규모로 배치된 북한의 자주포·방사포 등의 재래식 화력이다. 이를 후방배치하는 문제와 남한주둔 미군 중 지상군인 기갑사단을 감축하는 문제를 협상의제화 하려는 구상인 것이다)


한-미-일 삼각공조체제와 북미협상의 전망

이처럼 부시정부가 그리고 있는 대북협상의 전략은 1990년대 대북정책의 후과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들을 보완하면서, 핵-미사일-재래식전력 등 북한의 군사력 전반의 해체로 나가기 위해서 한-미-일 삼각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 (즉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자기패권을 안정화하면서 동시에, 그에 수반되는 실제 비용은 일본과 한국 등에 떠넘기는 기본구상이 계속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시정부의 정책참모부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전략을 '빅딜'로 선전하면서, 크게 주고 크게 받는 정책이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에게 유리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한-미-일 삼각공조체제 하에서 벌어지는 대북협상의 '알짜'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즉 남한의 대북 전력지원이라든가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의 문제는 미국의 협상전략과 연계되지 않고 따로따로 타결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협상력을 크게 떨어뜨려 추가적인 보상이나 양보조치들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구상에 따르게 되면, 미국의 군사력 감축효과는 실질적으로 거의 없는 반면, 북한은 거의 무장해제와 다름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현재 염두하고 있는 경제재건 및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평화공존) 이상의 개혁·개방으로의 유도라는 문제도 남아 있다.) <각주3-그렇지만, 현재 부시정부가 내놓은 협상의제 중 일부(예컨대 제네바합의 수정, 미사일협상 일부 타결)를 북한이 수용한다면 어떤 상황이 이어질 것인가? 이 경우, 남한의 전력지원 문제에 대한 국민적 지지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김정일위원장의 방남을 김대중정부가 강력히 요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미대화의 교착상태가 해소되고 통일을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력의 밑바탕이 되는) 한-미-일 삼각동맹 구조가 해체되는 게 급선무이다. 그러나 최근의 전력지원 문제를 두고보더라도, 현재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지속되는 한에서는, 남한이 미국의 전략에 대한 추종을 거부하는 상황을 기대하기는 극히 어렵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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