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를 위한 入試 - 신자유주의 시대, "좋은" 대학가기의 조건
구태의연한, 그러나 달라지는 입시 풍속도
경쟁의 압력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의 자살사건. 이는 대학을 향한 경쟁이 극한에 치달은 80년대적 입시위주 교육풍토에서 발생한 처참한 사례였다. 이 밖에도 '고3병'이니 '4당5락', '3당4락' 등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의 애처로운 삶을 표현한 말들이 유행하였다. 명문대학에 많이 집어넣어야, 능력있는 교사, 괜찮은 학교라 칭송듣는 왜곡된 잣대도 기형적 입시경쟁의 산물이다. 학교교육은 입시의 메커니즘 속에서 엄격히 통제되어 왔다. 모든 교육활동은 입시에 맞추어졌고, 학교교육의 자율성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교육주체들이 대학을 가느라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 및 전형방식의 변화로, 지금의 대학가기 경쟁은 80년대식 경쟁질서와 다르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물론, 상식을 벗어난 과열경쟁 행태가 이성을 찾고 있다거나 학교교육이 정상궤도로 오르고 있다는 조짐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교육재편과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하게 벌어진 계층간 소득격차, 사교육시장의 융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입시결과에서의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1998년, 교육부가 "2002년 무시험전형"이라고 발표했던 대입전형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해찬은 담화문을 통해 첫째, 암기위주의 낡은 방식의 교육을 지속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의 멍에를 지우는 입시위주의 초·중등학교 교육이 이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창의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대학입학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를 마련하면서, 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는 교장추천제, 무시험전형제, 다양한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를 계속 억제하면서 "한 줄 세우기" 입시제도에 손질을 하여 대학간 서열완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학생들을 입시위주의 폭좁은 교육에서 벗어나 폭넓은 사고와 사고력의 증진에 힘쓰도록 고무함으로써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크게 경감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지는 무색해졌다. 사기성마저 느껴질 정도다.
달라진 전형제도는 일단 수험생과 일선의 진학지도 교사들을 애먹이고 있다. 교사들은 대학마다 다른 전형방식을 파악하기에 분주하고, 수시모집의 확대로 모집기간이 늘어나면서 1년 내내 진학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다양한 전형자료의 활용>이라는 방침 때문에 대학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갖추기만도 벅찬 형편이다. 게다가 전체 모집인원의 30-40%를 차지하는 수시모집 합격자들로 수업분위기는 어수선하다고 한다. 수험생들은 복잡해진 전형방식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과외공화국'의 면모를 확인이라도 하듯 사교육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전형방식은 당연히 구매력에 따라 교육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고만다. 교육부의 이와 같은,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계속 확대하는 정책은 특정 학생집단을 배제하는 효과를 높이지 않을까?
올해 실시된 수시모집을 둘러싸고 나타난 현상에 대해, 언론조차 지금까지보다도 더 공정하지 못한 방향으로 선발기제가 변모해가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계급간 이동이 비교적 용이했던 한국의 1세대에겐 계급구조나 의식이 뚜렷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되새겨보자. 현재 진학경쟁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이제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증거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물론,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입시에만 형평성을 기한다 한들-이것도 사실 불가능하지만- 불평등 재생산은 근원적으로 극복될 리 만무하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형평성을 결여한, 아니 매우 공정치 못한 선발방식을 마치 '교육적으로 타당한 것' 혹은 '교육문제의 해법'인 양 정당화하고 이를 제도화하여, 교육에서의 '실패'를 모조리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정부정책에는 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하다.
다양화·특성화·자율화의 진실
입시제도는 1945년 이후 지금까지, 큰 틀에서는 12차례(어떤 연구자는 15차례) 정도 개편되었으며 세부적으로는 해마다 달라질 정도로 변화가 심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한국교육의 병폐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만큼 입시는 많은 이들의 이해와 관심이 모아지는 사안이며, 교육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로 행세해 왔다. 입시는 높은 교육열이라는 한국적 풍토와 이런 교육열의 배경이 되는, 교육을 통한 지위상승 욕구와 맞물려 난제 중의 난제, 핵심 중의 핵심대우를 받아왔다. 정책입안자들은 교육과정 개편보다는 입시제도의 개편에 의해 학교교육을 바꾸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앞뒤가 바뀐 처방(평가가 과정을 압도하는)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근원은 복잡하겠지만, 문제는 교육부의 야심작인 새로운 전형제도로 인해 기존 문제들이 누그러지기는커녕,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부에서 작년 11월에 발표한 대학입학전형계획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대학은 학생선발에 필요한 다양한 자료를 선택하여 활용가능하다고 밝히면서 학교생활기록부,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별고사, 지원자 제출자료, 업적 및 경력자료, 추천서 등을 전형자료로 쓸 수 있다고 하였다. 대학별 고사의 방법으로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는 금지시켰다. 1학기 수시모집에서 드러난 바로는, 다양한 전형자료 가운데 학생부 성적보다는 구술면접이 당락을 가르는 주요변수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1학기 구술면접에서 각 대학은 문과는 영어면접, 이과는 응시과정에 대한 전공지식을 묻는 것이 주였다고 한다.
모집시기별로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유형별로는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구분된다. 일반전형은 특별한 자격기준을 설정하지 않는,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별전형은 학생의 특별한 전형이나 소질을 기준으로 하는 전형으로서, 차등적인 보상기준에 의한 전형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년처럼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하는 특차모집은 없어졌다. 새롭게 제시된 특별전형의 유형으로는 취업자 전형, 특기자 전형, 기타 대학별 독자적 기준에 의한 학생의 특별한 소질이나 경력을 기준으로 하는 특별전형(실업계고교 출신자, 학교장 추천자 등), 기타 대학별 독자적 기준에 의한 차등적인 보상기준에 의한 특별전형(소년·소녀가장, 생계곤란한 국가·독립유공자 손·자녀 등), 이 밖에 정원외 특별전형으로서 농·어촌 학생, 특수교육대상자, 재외국민과 외국인(북한이탈자 포함), 산업체 위탁학생 등이 그 대상이 된다.
교육부가 밝힌 포부-학교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경감 등-와 달리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교육개혁이 진행되면서 학교는 '붕괴'된다며 아우성이고 사교육비 지출규모는 점점 부피를 늘리고 있다. 사교육비의 전반적인 상승 속에 사교육 시장의 빈익빈부익부 현상 역시 극명해지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해마다 "이번 입시에서 과외는 사실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멘트를 되풀이했지만, 과외비를 많이 쓰는 지역(서울 강남)의 서울대 합격자가 타지역보다 월등히 높다(10배 정도)는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대 신입생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고등교육기회(특히 상위권 대학)가 갈수록 '가진 자에게 편중배분'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몇 해전부터 기미가 보였다. 이는 서울대 신입생의 배경요소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서울대가 매년 발표하는 "신입생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특정지역, 특정계층에 의해 서울대가 점차 장악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 신입생 중 '고소득전문직·고위직 부모를 둔 서울지역 학생'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출신지역도 대도시 출신자 비율이 높다. 이는 "교육기회와 입시제도가 대도시 부유층에 유리하게 변화돼 온 결과"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사교육을 받아라!
입시에 빌붙어 먹고사는 집단이 나날이 비대해지고 있다. 과외, 학원, 학습지 등에 의존한 입시준비 패턴은 갈수록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온라인 교육시장 역시, 입시를 미끼로 수시로 변하는 제도에 불안해하는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새로운 입시체제에서는 다양한 평가요소에 대비해야 하는 수험생들을 겨냥하여 사교육시장의 영역이 다양하게 개척되고 있다. "한 장에 10만원을 주면 자기소개서를 2~3일 안에 대필해 주는 사이트도 성황입니다"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이다.
과외가 금지된 1980년대에, 입시준비 부담이 모조리 학교와 교사에게 전가되던 상황은 어느 정도 종결되고 이제는 사교육시장에서의 상품구매력이 입시에서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되었다. 반면 학교(특히 고등학교)는 기껏해야 내신성적을 산출(정확히 내지는 자기유리한 방향으로 해주고 졸업장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그 기능이 축소되어 왔다. 한 마디로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평가기능만 남은 셈이다. 학교교육의 영향력 축소는 곧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입시에서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는 의미이다.
전형의 '다양화'가 여기에 한 몫 했다. 복잡(다양보다는 이 말이 어울린다)해진 전형방식에서 수능점수는 수능점수대로 관리해야 하고, 심층면접은 심층면접대로 따로 대비해야 하는 형편이다. 어디 이 뿐인가? 영어면접을 위해서는 영어회화도 따로 준비해야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양한 전형에 맞추어 다양한 사교육이 성행하는 형편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적응하기 어렵다.
새로운 선발제도는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는커녕,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공교육의 기본적인 교육과정만 받아서는 습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대학입학자격을 판단하는 준거로 수험생들에게 들이밀고 있다. 이는 상위권대학의 수시모집 전형과정에서 드러났다. 전문가들 역시 구술면접이 당락을 갈랐다며 심층면접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다. 2학기 수시모집에 응시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심층면접대비 '훈련'을 받느라 분주하다.
"문 군은 하루 3시간씩 1주일에 3번 학원에서 서울대 사회대 대학원생들이 진행하는 심층면접수업도 받고 있다. 1시간은 교수별로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요령을, 1시간은 모의심층면접을, 나머지 한 시간은 모의심층면접을 녹음해 들으면서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식이다. 문 군은 "한달 학원비가 200만원이 넘지만 들어가고 싶어도 때를 놓친 친구들이 많다"며 "그런 친구들에게 학원에서 정리해준 정보를 비싼 가격에 복사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시모집에서 심층면접이 당락의 최대변수가 되자 학원가에 일명 '심층면접 시뮬레이션 수업'이 성행하고 있다. S학원 원장 김모씨는 "1학기 수시모집에서 몇몇 학원에서 실시한 심층면접 시뮬레이션 수업이 효과를 봤다는 소문이 나자 이번 여름방학부터 이런 방식의 수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못말리는 '과외공화국'-심층면접까지 고액과외」, 한국일보 2001.08.21)
구술면접이 당락을 가른 변수였다는 사실은 현상적으로는 사교육비를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낳은 것은 물론, 심층적으로는 특정계층 아이들을 근원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문화재생산 이론에 따르면 학교에서 다루는 교육과정은 중간계층 이상에게 유리하도록 조직되어 있으며, 노동계층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저조한 이유는 바로 특정한 문화자본의 결핍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중간계급 아이들은 사건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보편적 의미체계를 구사하는 반면, 노동계급 아이들의 언어는 보다 특수한 상황에 제한돼 있고 직접적이며 기술적이다. 특히 중간계급 아이들은 `서술의 형식'에 지배되는 경향이 강하다."
"말을 좀더 잘하고 그런 테크닉을 배워서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아이들이 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게 아닌가…."(KBS 뉴스, 인터뷰 내용)
따라서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구술면접은 당연히 출신계급과 연관이 있는 문화자본의 '질' -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자면 '아비투스'- 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날 수 있다. 구술면접은 애초에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준비하기 어려운 전형방식이다. 물론 이는 '잘못된 학교교육'이라는 가당치 않은 비난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고, 평가방식의 변화로 학교교육이 차츰 이에 따라올 것이라는 폭력에 가까운 발상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꿰뚫어보아야 할 부분은 딴 데 있다.
아무리 평가의 틀을 바꾸어대도 현재 학교의 교육환경이 그대로인 한, 너나 없이 훌륭한 문화자본을 갖추게 하기란(그것도 단시일 내에, 수시로 바뀌어대는 입시에 가랑이 찢어져라 학교가 쫓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애당초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제자본과 곧바로 연결되는 문화자본을 따지고드는 이런 식의 입시하에서 고액과외에 접근할 길이 막혀있는 계층의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하리란 것은 뻔한 이치다. 게다가 문과의 경우는 수시모집에서 영어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잣대로 등장했다.
"수시모집의 시험전형은 대부분 문과의 경우는 어려운 영어 독해지문을 빠르게 해석하고 인터뷰에 영어로 대답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과의 경우는 대학에서 배울법한 전공영역을 물어본다고 합니다. (…) 웬만한 대학생들이 보는 지문보다 어려운 지문이 제출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지문을 독해하고 영어로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 정상적인 공교육과정만을 이수했을까요? (…) 이러한 시험제도가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건지, 경제적 신분을 평가하는 건 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어느 늦깍이 수험생)
위 수험생의 지적처럼, 지나칠 정도로 영어를 강조하고 그것에 목숨 걸어야 하는 현실은 결과적으로 영어라는 또다른 획일적 잣대로 줄세우기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천박하고 교육적이지 못한 행태다. 이 점에서 다양한 기준에 의한 '여러 줄 세우기'는 허망한 구호로 그치고 만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시대의 입시'는 학교 교육과정과 매우 심각한 괴리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오히려 학교교육을 무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나아가 배경이 입시에서 가지는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입시제도 변화는 고등학교 구조개편 작업과 만난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라 - 학교등급제의 시행과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
수험생간에 '괴담'이 나돌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서열이 자신의 능력에 앞서 당락을 좌우하는 주요변수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평준화가 시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학의 이러한 처사는 매우 공정치 못하다. 고등학교의 서열을 가르는 기준이 과거의 진학률이라는 점은 수험생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일임에 분명하다. 선배들이 대학을 잘 들어가면 자기도 잘 들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잘해도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1학기 1차 수시모집 결과에서 일류대학의 합격자 경우를 보면 수도권 고등학교와 비평준화 지역 특목고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 더욱이 현재 수시모집 지원자들이 제일 많이 염려하는 부분은 학교등급제에 대한 잣대이다. 이는 각 대학마다 학교등급제를 고려해서 뽑기 때문에 비평준화 지역과 특목고의 경우는 평준화 지역과 지방고등학교의 학생들보다 평점이나 석차백분율이 좋지 않아도 합격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 현재 1학기 수시모집이 끝난 일부 대학과 여러 명문 사립대에서는 1차에서 고교 등급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학교등급제에 대한 평가를 지원자들의 선배들이 어느 정도 해당 대학에 합격했는지를 놓고 그 수준을 가리는 경향이 있어, 선배들의 합격률은 후배들에게 당락의 결정이 되고 있다. 따라서 각 수시모집 사이트 상담실에는 비평준화 지역과 평준화 지역의 수험생들이 학교등급제의 뚜렷한 잣대가 무엇인지를 놓고 질문하는 수험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 대학에서 반영하는 경시대회 역시, 특목고나 특정지역의 학생들에게만 그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생들의 경우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 고등학교와 특목고의 경우는 다수의 학생들이 경시대회에 참가하여 수상 경험이 있으나 지방 고등학교의 경우는 참가 권한의 배제와 지역적으로도 불리해 非교과 평가에서 매우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 2001년 8월 21일)
현재의 고교 등급제 실시는 과도기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자립형 사립고가 도입되어 평준화 해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고교 서열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치장되어 명확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과거처럼 고등학교 진학경쟁이 거세질 것임이 예상된다. 그러나 20대 80으로 사회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평준화 해체가 그릴 그림은 "가난하지만 공부는 잘하는" 학생이 존재할 수 있었던 40년 전과 똑같을 수 없다.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교육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의 골은 더없이 깊게 패였고, 그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인용문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에 대한 Gini 계수(소득불평등도: 1이면 완전 불평등, 0이면 완전평등을 의미함)의 추이를 고찰해보면 1980년대에는 소득분배 상황이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1993년 가장 낮은 0.282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외환위기 이후 역전되어 거의 10년간 개선되었던 소득분배 상황이 크게 악화돼 1999년에는 0.320으로 1979년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를 발표한 이래 소득분배가 가장 안 좋은 상태로 떨어졌다. 이렇게 악화된 소득불평등은 경제가 크게 호전되었던 2000년 다소 개선되기는 했으나 아직도 0.317을 기록하고 있다. 1997년 대비 2000년까지의 소득점유율 변화는 저소득계층일수록 소득점유율 하락이 두드러지는 반면, 최고소득층인 10분위만이 유일하게 소득점유율이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소득10분위별 소득점유율 변화 추이는 우리경제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최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상대적 소득이 꾸준히 개선되면서 소득분배가 개선되다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최고소득층을 제외한 중산층, 저소득층의 상대적인 소득이 줄어들면서(저소득층일수록 큰 폭 하락) 소득분배 상황이 급속도로 역전,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2000년 사회통계조사(교육부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19세까지의 연령 중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교육기회를 충족시키지 못한 비율은 24.8%로 나타나는데, 1996년 조사 때보다 2.1% 늘어난 수치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충분한 교육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소득분배 악화를 심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빈곤의 대물림을 통하여 빈곤극복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우성, "외환위기 이후 소득격차와 과제", 주간경제 2001년 5월 30일)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는 와중에 등장한 입시정책을 포함한 제반 교육정책에서 복지적 관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선심쓰듯 몇 자리 챙겨주는 식의 불평등 '완화'책이 마지못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교육기회를 무작정 확대한다고 해서 빈곤의 극복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문제삼아야 할 부분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가진 '세계관' 그 자체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교육정책, 그 중에서도 입시정책은 불평등 극복은커녕 교육기회가 경제적, 문화적 자본의 소유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입시정책은 자립형 사립고 등 일련의 정책들과 함께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대물림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나라!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좋은" 대학을 가려면?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좋은 대학을 가려면 우선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대도시 지역에 거주해야 유리하다. 물론 예전에도 경제적, 문화적 뒷받침이 가능한 가정배경을 지닌 학생이 진학경쟁에서 유리했었다. 지금 문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유한 문화, 경제적 자본과 입시에서의 성패는 점점 더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교과서 지식을 습득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면, 입시에서의 성공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단순지식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단순한 입시의 '교육적' 문제점을 들어 하나둘씩 도입되기 시작한 '복잡한' 전형방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실상 가정의 엄청난 지원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쉽사리 적응하기 어렵다.
냉혹한 말일지 모르겠으나 100%까지는 아닐지라도 '수험생의 입시경쟁력'은 바로 부모로부터 나온다. 이제 안전하게 입시에 대비하려면 일단은 '귀족고등학교'를 가야 한다. 학비가 비싸고 역시 사교육을 통해 선발절차를 통과해야 하며, 학비마저 비싼 귀족 고등학교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머리를 타고나던지 운에 맡기던지 아니면 틈새(몇 자리 '소수자'를 위한 특별전형)를 노려보는 길밖에는 없다. 아무래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기대하느니 이 사회를 근본부터 바꾸는 수밖에! PSSP
경쟁의 압력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의 자살사건. 이는 대학을 향한 경쟁이 극한에 치달은 80년대적 입시위주 교육풍토에서 발생한 처참한 사례였다. 이 밖에도 '고3병'이니 '4당5락', '3당4락' 등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의 애처로운 삶을 표현한 말들이 유행하였다. 명문대학에 많이 집어넣어야, 능력있는 교사, 괜찮은 학교라 칭송듣는 왜곡된 잣대도 기형적 입시경쟁의 산물이다. 학교교육은 입시의 메커니즘 속에서 엄격히 통제되어 왔다. 모든 교육활동은 입시에 맞추어졌고, 학교교육의 자율성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교육주체들이 대학을 가느라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 및 전형방식의 변화로, 지금의 대학가기 경쟁은 80년대식 경쟁질서와 다르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물론, 상식을 벗어난 과열경쟁 행태가 이성을 찾고 있다거나 학교교육이 정상궤도로 오르고 있다는 조짐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교육재편과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하게 벌어진 계층간 소득격차, 사교육시장의 융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입시결과에서의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1998년, 교육부가 "2002년 무시험전형"이라고 발표했던 대입전형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해찬은 담화문을 통해 첫째, 암기위주의 낡은 방식의 교육을 지속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의 멍에를 지우는 입시위주의 초·중등학교 교육이 이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창의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대학입학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를 마련하면서, 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는 교장추천제, 무시험전형제, 다양한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를 계속 억제하면서 "한 줄 세우기" 입시제도에 손질을 하여 대학간 서열완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학생들을 입시위주의 폭좁은 교육에서 벗어나 폭넓은 사고와 사고력의 증진에 힘쓰도록 고무함으로써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크게 경감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지는 무색해졌다. 사기성마저 느껴질 정도다.
달라진 전형제도는 일단 수험생과 일선의 진학지도 교사들을 애먹이고 있다. 교사들은 대학마다 다른 전형방식을 파악하기에 분주하고, 수시모집의 확대로 모집기간이 늘어나면서 1년 내내 진학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다양한 전형자료의 활용>이라는 방침 때문에 대학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갖추기만도 벅찬 형편이다. 게다가 전체 모집인원의 30-40%를 차지하는 수시모집 합격자들로 수업분위기는 어수선하다고 한다. 수험생들은 복잡해진 전형방식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과외공화국'의 면모를 확인이라도 하듯 사교육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전형방식은 당연히 구매력에 따라 교육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고만다. 교육부의 이와 같은,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계속 확대하는 정책은 특정 학생집단을 배제하는 효과를 높이지 않을까?
올해 실시된 수시모집을 둘러싸고 나타난 현상에 대해, 언론조차 지금까지보다도 더 공정하지 못한 방향으로 선발기제가 변모해가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계급간 이동이 비교적 용이했던 한국의 1세대에겐 계급구조나 의식이 뚜렷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되새겨보자. 현재 진학경쟁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이제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증거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물론,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입시에만 형평성을 기한다 한들-이것도 사실 불가능하지만- 불평등 재생산은 근원적으로 극복될 리 만무하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형평성을 결여한, 아니 매우 공정치 못한 선발방식을 마치 '교육적으로 타당한 것' 혹은 '교육문제의 해법'인 양 정당화하고 이를 제도화하여, 교육에서의 '실패'를 모조리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정부정책에는 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하다.
다양화·특성화·자율화의 진실
입시제도는 1945년 이후 지금까지, 큰 틀에서는 12차례(어떤 연구자는 15차례) 정도 개편되었으며 세부적으로는 해마다 달라질 정도로 변화가 심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한국교육의 병폐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만큼 입시는 많은 이들의 이해와 관심이 모아지는 사안이며, 교육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로 행세해 왔다. 입시는 높은 교육열이라는 한국적 풍토와 이런 교육열의 배경이 되는, 교육을 통한 지위상승 욕구와 맞물려 난제 중의 난제, 핵심 중의 핵심대우를 받아왔다. 정책입안자들은 교육과정 개편보다는 입시제도의 개편에 의해 학교교육을 바꾸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앞뒤가 바뀐 처방(평가가 과정을 압도하는)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근원은 복잡하겠지만, 문제는 교육부의 야심작인 새로운 전형제도로 인해 기존 문제들이 누그러지기는커녕,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부에서 작년 11월에 발표한 대학입학전형계획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대학은 학생선발에 필요한 다양한 자료를 선택하여 활용가능하다고 밝히면서 학교생활기록부,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별고사, 지원자 제출자료, 업적 및 경력자료, 추천서 등을 전형자료로 쓸 수 있다고 하였다. 대학별 고사의 방법으로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는 금지시켰다. 1학기 수시모집에서 드러난 바로는, 다양한 전형자료 가운데 학생부 성적보다는 구술면접이 당락을 가르는 주요변수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1학기 구술면접에서 각 대학은 문과는 영어면접, 이과는 응시과정에 대한 전공지식을 묻는 것이 주였다고 한다.
모집시기별로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유형별로는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구분된다. 일반전형은 특별한 자격기준을 설정하지 않는,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별전형은 학생의 특별한 전형이나 소질을 기준으로 하는 전형으로서, 차등적인 보상기준에 의한 전형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년처럼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하는 특차모집은 없어졌다. 새롭게 제시된 특별전형의 유형으로는 취업자 전형, 특기자 전형, 기타 대학별 독자적 기준에 의한 학생의 특별한 소질이나 경력을 기준으로 하는 특별전형(실업계고교 출신자, 학교장 추천자 등), 기타 대학별 독자적 기준에 의한 차등적인 보상기준에 의한 특별전형(소년·소녀가장, 생계곤란한 국가·독립유공자 손·자녀 등), 이 밖에 정원외 특별전형으로서 농·어촌 학생, 특수교육대상자, 재외국민과 외국인(북한이탈자 포함), 산업체 위탁학생 등이 그 대상이 된다.
교육부가 밝힌 포부-학교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경감 등-와 달리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교육개혁이 진행되면서 학교는 '붕괴'된다며 아우성이고 사교육비 지출규모는 점점 부피를 늘리고 있다. 사교육비의 전반적인 상승 속에 사교육 시장의 빈익빈부익부 현상 역시 극명해지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해마다 "이번 입시에서 과외는 사실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멘트를 되풀이했지만, 과외비를 많이 쓰는 지역(서울 강남)의 서울대 합격자가 타지역보다 월등히 높다(10배 정도)는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대 신입생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고등교육기회(특히 상위권 대학)가 갈수록 '가진 자에게 편중배분'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몇 해전부터 기미가 보였다. 이는 서울대 신입생의 배경요소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서울대가 매년 발표하는 "신입생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특정지역, 특정계층에 의해 서울대가 점차 장악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 신입생 중 '고소득전문직·고위직 부모를 둔 서울지역 학생'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출신지역도 대도시 출신자 비율이 높다. 이는 "교육기회와 입시제도가 대도시 부유층에 유리하게 변화돼 온 결과"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사교육을 받아라!
입시에 빌붙어 먹고사는 집단이 나날이 비대해지고 있다. 과외, 학원, 학습지 등에 의존한 입시준비 패턴은 갈수록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온라인 교육시장 역시, 입시를 미끼로 수시로 변하는 제도에 불안해하는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새로운 입시체제에서는 다양한 평가요소에 대비해야 하는 수험생들을 겨냥하여 사교육시장의 영역이 다양하게 개척되고 있다. "한 장에 10만원을 주면 자기소개서를 2~3일 안에 대필해 주는 사이트도 성황입니다"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이다.
과외가 금지된 1980년대에, 입시준비 부담이 모조리 학교와 교사에게 전가되던 상황은 어느 정도 종결되고 이제는 사교육시장에서의 상품구매력이 입시에서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되었다. 반면 학교(특히 고등학교)는 기껏해야 내신성적을 산출(정확히 내지는 자기유리한 방향으로 해주고 졸업장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그 기능이 축소되어 왔다. 한 마디로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평가기능만 남은 셈이다. 학교교육의 영향력 축소는 곧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입시에서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는 의미이다.
전형의 '다양화'가 여기에 한 몫 했다. 복잡(다양보다는 이 말이 어울린다)해진 전형방식에서 수능점수는 수능점수대로 관리해야 하고, 심층면접은 심층면접대로 따로 대비해야 하는 형편이다. 어디 이 뿐인가? 영어면접을 위해서는 영어회화도 따로 준비해야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양한 전형에 맞추어 다양한 사교육이 성행하는 형편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적응하기 어렵다.
새로운 선발제도는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는커녕,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공교육의 기본적인 교육과정만 받아서는 습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대학입학자격을 판단하는 준거로 수험생들에게 들이밀고 있다. 이는 상위권대학의 수시모집 전형과정에서 드러났다. 전문가들 역시 구술면접이 당락을 갈랐다며 심층면접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다. 2학기 수시모집에 응시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심층면접대비 '훈련'을 받느라 분주하다.
"문 군은 하루 3시간씩 1주일에 3번 학원에서 서울대 사회대 대학원생들이 진행하는 심층면접수업도 받고 있다. 1시간은 교수별로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요령을, 1시간은 모의심층면접을, 나머지 한 시간은 모의심층면접을 녹음해 들으면서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식이다. 문 군은 "한달 학원비가 200만원이 넘지만 들어가고 싶어도 때를 놓친 친구들이 많다"며 "그런 친구들에게 학원에서 정리해준 정보를 비싼 가격에 복사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시모집에서 심층면접이 당락의 최대변수가 되자 학원가에 일명 '심층면접 시뮬레이션 수업'이 성행하고 있다. S학원 원장 김모씨는 "1학기 수시모집에서 몇몇 학원에서 실시한 심층면접 시뮬레이션 수업이 효과를 봤다는 소문이 나자 이번 여름방학부터 이런 방식의 수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못말리는 '과외공화국'-심층면접까지 고액과외」, 한국일보 2001.08.21)
구술면접이 당락을 가른 변수였다는 사실은 현상적으로는 사교육비를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낳은 것은 물론, 심층적으로는 특정계층 아이들을 근원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문화재생산 이론에 따르면 학교에서 다루는 교육과정은 중간계층 이상에게 유리하도록 조직되어 있으며, 노동계층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저조한 이유는 바로 특정한 문화자본의 결핍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중간계급 아이들은 사건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보편적 의미체계를 구사하는 반면, 노동계급 아이들의 언어는 보다 특수한 상황에 제한돼 있고 직접적이며 기술적이다. 특히 중간계급 아이들은 `서술의 형식'에 지배되는 경향이 강하다."
"말을 좀더 잘하고 그런 테크닉을 배워서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아이들이 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게 아닌가…."(KBS 뉴스, 인터뷰 내용)
따라서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구술면접은 당연히 출신계급과 연관이 있는 문화자본의 '질' -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자면 '아비투스'- 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날 수 있다. 구술면접은 애초에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준비하기 어려운 전형방식이다. 물론 이는 '잘못된 학교교육'이라는 가당치 않은 비난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고, 평가방식의 변화로 학교교육이 차츰 이에 따라올 것이라는 폭력에 가까운 발상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꿰뚫어보아야 할 부분은 딴 데 있다.
아무리 평가의 틀을 바꾸어대도 현재 학교의 교육환경이 그대로인 한, 너나 없이 훌륭한 문화자본을 갖추게 하기란(그것도 단시일 내에, 수시로 바뀌어대는 입시에 가랑이 찢어져라 학교가 쫓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애당초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제자본과 곧바로 연결되는 문화자본을 따지고드는 이런 식의 입시하에서 고액과외에 접근할 길이 막혀있는 계층의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하리란 것은 뻔한 이치다. 게다가 문과의 경우는 수시모집에서 영어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잣대로 등장했다.
"수시모집의 시험전형은 대부분 문과의 경우는 어려운 영어 독해지문을 빠르게 해석하고 인터뷰에 영어로 대답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과의 경우는 대학에서 배울법한 전공영역을 물어본다고 합니다. (…) 웬만한 대학생들이 보는 지문보다 어려운 지문이 제출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지문을 독해하고 영어로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 정상적인 공교육과정만을 이수했을까요? (…) 이러한 시험제도가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건지, 경제적 신분을 평가하는 건 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어느 늦깍이 수험생)
위 수험생의 지적처럼, 지나칠 정도로 영어를 강조하고 그것에 목숨 걸어야 하는 현실은 결과적으로 영어라는 또다른 획일적 잣대로 줄세우기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천박하고 교육적이지 못한 행태다. 이 점에서 다양한 기준에 의한 '여러 줄 세우기'는 허망한 구호로 그치고 만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시대의 입시'는 학교 교육과정과 매우 심각한 괴리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오히려 학교교육을 무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나아가 배경이 입시에서 가지는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입시제도 변화는 고등학교 구조개편 작업과 만난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라 - 학교등급제의 시행과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
수험생간에 '괴담'이 나돌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서열이 자신의 능력에 앞서 당락을 좌우하는 주요변수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평준화가 시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학의 이러한 처사는 매우 공정치 못하다. 고등학교의 서열을 가르는 기준이 과거의 진학률이라는 점은 수험생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일임에 분명하다. 선배들이 대학을 잘 들어가면 자기도 잘 들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잘해도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1학기 1차 수시모집 결과에서 일류대학의 합격자 경우를 보면 수도권 고등학교와 비평준화 지역 특목고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 더욱이 현재 수시모집 지원자들이 제일 많이 염려하는 부분은 학교등급제에 대한 잣대이다. 이는 각 대학마다 학교등급제를 고려해서 뽑기 때문에 비평준화 지역과 특목고의 경우는 평준화 지역과 지방고등학교의 학생들보다 평점이나 석차백분율이 좋지 않아도 합격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 현재 1학기 수시모집이 끝난 일부 대학과 여러 명문 사립대에서는 1차에서 고교 등급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학교등급제에 대한 평가를 지원자들의 선배들이 어느 정도 해당 대학에 합격했는지를 놓고 그 수준을 가리는 경향이 있어, 선배들의 합격률은 후배들에게 당락의 결정이 되고 있다. 따라서 각 수시모집 사이트 상담실에는 비평준화 지역과 평준화 지역의 수험생들이 학교등급제의 뚜렷한 잣대가 무엇인지를 놓고 질문하는 수험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 대학에서 반영하는 경시대회 역시, 특목고나 특정지역의 학생들에게만 그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생들의 경우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 고등학교와 특목고의 경우는 다수의 학생들이 경시대회에 참가하여 수상 경험이 있으나 지방 고등학교의 경우는 참가 권한의 배제와 지역적으로도 불리해 非교과 평가에서 매우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 2001년 8월 21일)
현재의 고교 등급제 실시는 과도기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자립형 사립고가 도입되어 평준화 해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고교 서열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치장되어 명확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과거처럼 고등학교 진학경쟁이 거세질 것임이 예상된다. 그러나 20대 80으로 사회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평준화 해체가 그릴 그림은 "가난하지만 공부는 잘하는" 학생이 존재할 수 있었던 40년 전과 똑같을 수 없다.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교육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의 골은 더없이 깊게 패였고, 그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인용문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에 대한 Gini 계수(소득불평등도: 1이면 완전 불평등, 0이면 완전평등을 의미함)의 추이를 고찰해보면 1980년대에는 소득분배 상황이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1993년 가장 낮은 0.282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외환위기 이후 역전되어 거의 10년간 개선되었던 소득분배 상황이 크게 악화돼 1999년에는 0.320으로 1979년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를 발표한 이래 소득분배가 가장 안 좋은 상태로 떨어졌다. 이렇게 악화된 소득불평등은 경제가 크게 호전되었던 2000년 다소 개선되기는 했으나 아직도 0.317을 기록하고 있다. 1997년 대비 2000년까지의 소득점유율 변화는 저소득계층일수록 소득점유율 하락이 두드러지는 반면, 최고소득층인 10분위만이 유일하게 소득점유율이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소득10분위별 소득점유율 변화 추이는 우리경제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최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상대적 소득이 꾸준히 개선되면서 소득분배가 개선되다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최고소득층을 제외한 중산층, 저소득층의 상대적인 소득이 줄어들면서(저소득층일수록 큰 폭 하락) 소득분배 상황이 급속도로 역전,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2000년 사회통계조사(교육부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19세까지의 연령 중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교육기회를 충족시키지 못한 비율은 24.8%로 나타나는데, 1996년 조사 때보다 2.1% 늘어난 수치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충분한 교육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소득분배 악화를 심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빈곤의 대물림을 통하여 빈곤극복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우성, "외환위기 이후 소득격차와 과제", 주간경제 2001년 5월 30일)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는 와중에 등장한 입시정책을 포함한 제반 교육정책에서 복지적 관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선심쓰듯 몇 자리 챙겨주는 식의 불평등 '완화'책이 마지못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교육기회를 무작정 확대한다고 해서 빈곤의 극복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문제삼아야 할 부분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가진 '세계관' 그 자체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교육정책, 그 중에서도 입시정책은 불평등 극복은커녕 교육기회가 경제적, 문화적 자본의 소유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입시정책은 자립형 사립고 등 일련의 정책들과 함께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대물림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나라!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좋은" 대학을 가려면?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좋은 대학을 가려면 우선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대도시 지역에 거주해야 유리하다. 물론 예전에도 경제적, 문화적 뒷받침이 가능한 가정배경을 지닌 학생이 진학경쟁에서 유리했었다. 지금 문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유한 문화, 경제적 자본과 입시에서의 성패는 점점 더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교과서 지식을 습득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면, 입시에서의 성공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단순지식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단순한 입시의 '교육적' 문제점을 들어 하나둘씩 도입되기 시작한 '복잡한' 전형방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실상 가정의 엄청난 지원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쉽사리 적응하기 어렵다.
냉혹한 말일지 모르겠으나 100%까지는 아닐지라도 '수험생의 입시경쟁력'은 바로 부모로부터 나온다. 이제 안전하게 입시에 대비하려면 일단은 '귀족고등학교'를 가야 한다. 학비가 비싸고 역시 사교육을 통해 선발절차를 통과해야 하며, 학비마저 비싼 귀족 고등학교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머리를 타고나던지 운에 맡기던지 아니면 틈새(몇 자리 '소수자'를 위한 특별전형)를 노려보는 길밖에는 없다. 아무래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기대하느니 이 사회를 근본부터 바꾸는 수밖에!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