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29차 전국 대의원 대회를 참가하여
출발에 앞서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을 포함한 전교조 중앙집행위원회의 "2001년 하반기 사업 계획(안)"이 제출되면서 논쟁은 가열되고 있었다. 전교조 홈페이지(http://www.eduhope.net) '교사목소리'에서는 여러 논객들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며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평소 100에도 미치지 못하던 게시물 조회수는 300을 넘기기 일쑤였다.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에서 "파업을 불사한"을 삭제하자는 수정 동의안이 제출되면서 논쟁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2001년 9월 6일 목요일. 평일에 대의원 대회가 열리는 관계로 연가를 내고 대의원 대회에 참여했다. 서울지부에서 마련한 버스 안에서 대의원들은 전날 배부된 전교조 신문(2001년 9월 5일 발행 제280호)의 기사를 돌려보며 긴장된 표정이었다.
지금은 살 떨리는 갈림길, 총파업으로 사생결단에 나서자 - 정은교(「교육비평」편집인, 금옥여중)
과반수 동참해야 파업 성립, 충분한 준비 없이는 심각한 타격 - 황호영(한천중 분회장)
사상 초유의 교사 파업! 그렇다! 지금 전교조는 파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단체행동권이 유보된 반쪽짜리, 아니 단체행동권이 박탈된 껍데기 노동조합이 지금 알을 깨고 나오려는 것이다.
하반기에 온 몸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의 대회사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뜨거웠던 6월의 뙤약볕 아래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18일간 삭발, 단식으로 사립학교법 개정 투쟁을 이끌었던 이수호 위원장은 "이제 우리는 노동조합답게 싸우는 길만이 남아 있다. 하반기에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투쟁을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본의 길과 인간의 길과의 최전선에 우리 전교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인간의 길을 찾고 지켜야 할 것이다. … 위원장 본인은 하반기에 온 몸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고 있다."며 결의를 표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 11시 50분.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격려사와 내빈 소개가 이어졌다. 단결투쟁가가 울려 퍼지고 잠시 점심 식사를 위한 정회가 선포되었다. 식사 후 확인된 성원은 재적 대의원 486명 중 341명 참석. 70%가 넘는 유례 없는 참석률은 대의원 대회에 쏠린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6개의 안건, 그리고 하나의 안건
대의원 대회에 제출된 안건은 모두 여섯 개였다.
[제1호 의안] 2001년 상반기 감사 보고서 승인에 관한 건
[제2호 의안] 2001년 상반기 사업 평가(안) 승인 및 하반기 사업 계획(안) 심의 의결의 건
[제3호 의안] 투쟁 기금 및 희생자 구제 기금 조성 및 운용 방안 심의 의결의 건
[제4호 의안] 특수교육위원회(준), 보건위원회(준)의 상설위원회 설치에 관한 심의 의결의 건
[제5호 의안] 결의문 채택의 건
[제6호 의안] 교과서에 나타난 왜곡된 현대사를 민족 민주 진영 연대를 통해 올바른 현대사 만들기 투쟁 계획 심의 의결의 건
그러나 대의원들의 관심은 제2호 의안, 특히 하반기 사업 계획(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미 "하반기 사업 계획 중 파업을 불사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제2차 교육 주체 결의 대회'를 포함한 이후 투쟁 전술을 위력적인 대중 투쟁 전술로 재조정"하여 달라는 수정 동의안이 충남, 전북, 광주, 대구지부 대의원 동지 5인의 연서명으로 제출된 상태였다. 이에 더하여 당일 대의원 대회장에서 전남지부 대의원 동지 5인이 "전국 집중 지회장단 연가 투쟁(2일) 및 학교별 농성 돌입"을 내용으로 재수정 동의안을 다시 제출하였다.
하반기 총력 투쟁이 '파업 투쟁' 수준으로 끌어 올려져야 한다
본부 정책실장의 발제가 계속되었다.
- 교육 시장화 정책의 전방위적 공세
▶ 수요자의 학교 선택권 보장을 내세우면서 교사, 학생, 학교를 등급화하는 정책(7차 수준별 수업, 자립형 사립 학교/이상적 공립 학교 도입, 학교 단위 책임 경영제 등)
▶ 공공 교육 재정을 감축하며, 교원 노동을 유연화하는 '구조 조정' 정책(GDP 대비 감축, 교육 자치 단체와 지방 자치 단체의 통합, 교원 종합 대책안, 사범대 폐지 등)
▶ 교원의 양성, 임용, 수급, 교육 과정, 평가, 단위 학교 운영 등 교육 전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상황(7차 교육 과정/자립형 사립고/교직 개방 등)
이 때문에 교육 주체의 '대응' 역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2001년은 여러 측면에서 '파업'까지 포함하는 강력한 투쟁이 당위적으로 요구됩니다. 첫째, 2002년부터 고등학교의 7차 교육 과정이 시작됩니다. 교육 시장화의 핵심 중의 핵심은 '평준화 제도'를 골간으로 한 기존 공교육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자립형 사립고와 소위 '교과목 선택제'가 평준화 파괴의 '경향성'을 갖습니다. 특별히 2001년도에 전면적 투쟁을 통해 저지되어야 할 '당위성'이 도출됩니다. 둘째, 한완상 부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7차 교육 과정 '시행'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7차 교육 과정 수정 고시' 요구에 대한 반응입니다. 언론사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또 교육부 발행 신문을 통하여 전교조의 '문제 제기'를 항목별로 반박할 정도입니다. 이는 7차 교육 과정이 '개혁 명분'의 마지막 '교두보'이며, 교육 시장화 정책의 '핵심'이 됨을 반증합니다. 다양성과 선택권의 '포장지'가 완전히 뜯겨지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강행할 것입니다. 셋째, 내년도는 상반기 지자체장 선거, 하반기 대통령 선거의 시기입니다. 각 정당과 정파의 '선거 구도'는 올 하반기에 짜여지게 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정책을 '중단'하느냐 '지속'하느냐의 '결정'시기가 올 하반기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했을 때, 하반기 총력 투쟁이 '파업 투쟁' 수준으로 끌어 올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 사설에 이어 세계일보 사설을 읽겠다고?
수정 동의안을 찬성하는 대의원들의 발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반기 교육 정세의 엄중함에는 동의하지만 지금은 파업을 할 시기가 아니다. 10만 조합원이라고 하지만 의식의 편차가 크다. 파업의 주체인 조합원 교사들은 아직 파업을 결심하지 못했다. 조합원과 함께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교사의 파업은 정부와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파업 불가를 외치는 소리가 대의원 대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귀에 익은 그러나 진부한 주장들.
급기야 한 대의원에 의해 보수 수구 언론의 하나인 동아일보 사설이 전교조 대의원 대회장에서 낭독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망연자실한 대의원 앞에서 다시 같은 날짜의 세계일보 사설을 읽겠다고 했을 때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우 익숙한 이 소리들.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내게 들려주던 소리가 아닌가?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하던 소리가 아닌가? 이 가뭄에 웬 파업,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지 마라. 지하철 노동자 동지들에게, 조종사 노동자 동지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던 말들이 이제 전교조 대의원의 입에서 나에게, 전교조에게 퍼부어진단 말인가!
위원장의 제지로 세계일보 사설은 읽혀지지 않았다. 대의원 대회장은 술렁이고 있었다.
159:175
10분간의 정회를 거쳐 회의가 속개되었다. 수정 동의안과 재수정 동의안은 하나로 합쳐졌다. 내용은 간단했다.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에서 "파업을 불사한"을 삭제한다.』 단지 문제는 파업이었던 것이다. 먼저 수정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5시 45분. 토론은 세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먼저 수정 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었다. 당시 재석 대의원 수는 336명. 169명 이상이 동의하면 통과되는 상황이었다. 찬반 토론 과정에서 원안 찬성 발언은 숫적으로 수정안에 대해서 밀리고 있었다. 거의 3:1 수준으로 파업을 불사한 투쟁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놀랍게도 159명 찬성. 수정 동의안의 부결이었다. 결과가 발표되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숫자를 셌느냐는 질문이 이어지더니 끝내 원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요구되었다. 수정 동의안이 부결된 상황에서의 원안 표결. 전교조 역사상 유례 없는 사건이었다. 만약 원안 마저 부결되면?
긴장된 순간에서 위원장은 원안의 표결을 선포하였다. 팽팽한 긴장이 대의원 대회장을 휘감았다. 원안 표결 결과 찬성 175명. 과반수 169명을 가까스로 6명 넘기는 찬성이었다.
위원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저는 지금 몹시 착잡합니다. 앞으로 159명의 대의원 동지들의 마음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전술을 계획하고 어떻게든지 함께 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의는 막을 내렸다. 아직 4개의 안건이 남았지만, 이로써 회의는 장을 마감했다. 만장일치로 투쟁 기금 조성과 상설위원회 설치, 왜곡된 교과서의 현대사 바로잡기, 전교조 운동의 민주화 운동 인정에 대한 특별 결의문 채택이 통과되었다.
전교조는 아직 파업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스스로 먼저 파업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업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무장 해제를 스스로 선언할 수는 없다. 수정 동의안은 우리의 투항을 주장하고 있었다. 노벨 평화상이 발표되던 그 날 진행된 청와대 진격 투쟁.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정부 종합 청사 안마당을 점거하며 진행된 선봉 투쟁. 알몸 수사로 이어진 저들의 탄압. 분노한 교사들은 비 내리는 서울역에 조퇴, 연가를 내며 전국에서 7000명이 집결하여 투쟁했다. 2001년 단협에서 교육부 관리들은 노골적으로 파업권 없는 전교조를 업신여기고 있지 않은가? 고작 전국 지회장(대체로 도 지부의 경우 군 단위, 특별시·광역시 지부의 경우 구 단위) 200여명의 2일간 연가 투쟁으로 하반기 투쟁을 총력 투쟁이라 부를 것인가.
그러나 아직 전교조는 파업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을 할 것을 결의한 것 뿐이다. 파업이 요구되면 사양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투쟁을 벌일 것을 선포한 것일 뿐, 그러나 이것은 아직 파업이 아니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할 일은 많다. 조합원 교사들에 대한 대대적 교선. 교육 시장화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파업에 대한 결의 추동. 학생, 사대·교대생, 대학생, 교수, 대학 강사, 교직원, 학부모 등의 교육 주체를 하나로 묶어 세우는 일. 제반 노동운동·민중운동의 연대 전선을 조직하는 일. 정권과 수구·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맞서기 위하여 전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전교조는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교사 파업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파업은 10월 말, 11월 초에 다시 소집될 대의원 대회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하여 결정될 것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대대적 공세와 교육 시장화(공교육 말살, 교육 황폐화, 민중의 교육적 권리 박탈)에 맞서 교사들은 투쟁을 선포했다. 89년 공안 정국 속에서 끝내 전교조를 건설하고 지켜왔던 10년의 투쟁. 이제 그 10년을 뛰어 넘는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전교조는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의 전선에 다시 다가서고 있다.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을 포함한 전교조 중앙집행위원회의 "2001년 하반기 사업 계획(안)"이 제출되면서 논쟁은 가열되고 있었다. 전교조 홈페이지(http://www.eduhope.net) '교사목소리'에서는 여러 논객들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며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평소 100에도 미치지 못하던 게시물 조회수는 300을 넘기기 일쑤였다.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에서 "파업을 불사한"을 삭제하자는 수정 동의안이 제출되면서 논쟁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2001년 9월 6일 목요일. 평일에 대의원 대회가 열리는 관계로 연가를 내고 대의원 대회에 참여했다. 서울지부에서 마련한 버스 안에서 대의원들은 전날 배부된 전교조 신문(2001년 9월 5일 발행 제280호)의 기사를 돌려보며 긴장된 표정이었다.
지금은 살 떨리는 갈림길, 총파업으로 사생결단에 나서자 - 정은교(「교육비평」편집인, 금옥여중)
과반수 동참해야 파업 성립, 충분한 준비 없이는 심각한 타격 - 황호영(한천중 분회장)
사상 초유의 교사 파업! 그렇다! 지금 전교조는 파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단체행동권이 유보된 반쪽짜리, 아니 단체행동권이 박탈된 껍데기 노동조합이 지금 알을 깨고 나오려는 것이다.
하반기에 온 몸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의 대회사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뜨거웠던 6월의 뙤약볕 아래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18일간 삭발, 단식으로 사립학교법 개정 투쟁을 이끌었던 이수호 위원장은 "이제 우리는 노동조합답게 싸우는 길만이 남아 있다. 하반기에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투쟁을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본의 길과 인간의 길과의 최전선에 우리 전교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인간의 길을 찾고 지켜야 할 것이다. … 위원장 본인은 하반기에 온 몸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고 있다."며 결의를 표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 11시 50분.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격려사와 내빈 소개가 이어졌다. 단결투쟁가가 울려 퍼지고 잠시 점심 식사를 위한 정회가 선포되었다. 식사 후 확인된 성원은 재적 대의원 486명 중 341명 참석. 70%가 넘는 유례 없는 참석률은 대의원 대회에 쏠린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6개의 안건, 그리고 하나의 안건
대의원 대회에 제출된 안건은 모두 여섯 개였다.
[제1호 의안] 2001년 상반기 감사 보고서 승인에 관한 건
[제2호 의안] 2001년 상반기 사업 평가(안) 승인 및 하반기 사업 계획(안) 심의 의결의 건
[제3호 의안] 투쟁 기금 및 희생자 구제 기금 조성 및 운용 방안 심의 의결의 건
[제4호 의안] 특수교육위원회(준), 보건위원회(준)의 상설위원회 설치에 관한 심의 의결의 건
[제5호 의안] 결의문 채택의 건
[제6호 의안] 교과서에 나타난 왜곡된 현대사를 민족 민주 진영 연대를 통해 올바른 현대사 만들기 투쟁 계획 심의 의결의 건
그러나 대의원들의 관심은 제2호 의안, 특히 하반기 사업 계획(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미 "하반기 사업 계획 중 파업을 불사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제2차 교육 주체 결의 대회'를 포함한 이후 투쟁 전술을 위력적인 대중 투쟁 전술로 재조정"하여 달라는 수정 동의안이 충남, 전북, 광주, 대구지부 대의원 동지 5인의 연서명으로 제출된 상태였다. 이에 더하여 당일 대의원 대회장에서 전남지부 대의원 동지 5인이 "전국 집중 지회장단 연가 투쟁(2일) 및 학교별 농성 돌입"을 내용으로 재수정 동의안을 다시 제출하였다.
하반기 총력 투쟁이 '파업 투쟁' 수준으로 끌어 올려져야 한다
본부 정책실장의 발제가 계속되었다.
- 교육 시장화 정책의 전방위적 공세
▶ 수요자의 학교 선택권 보장을 내세우면서 교사, 학생, 학교를 등급화하는 정책(7차 수준별 수업, 자립형 사립 학교/이상적 공립 학교 도입, 학교 단위 책임 경영제 등)
▶ 공공 교육 재정을 감축하며, 교원 노동을 유연화하는 '구조 조정' 정책(GDP 대비 감축, 교육 자치 단체와 지방 자치 단체의 통합, 교원 종합 대책안, 사범대 폐지 등)
▶ 교원의 양성, 임용, 수급, 교육 과정, 평가, 단위 학교 운영 등 교육 전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상황(7차 교육 과정/자립형 사립고/교직 개방 등)
이 때문에 교육 주체의 '대응' 역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2001년은 여러 측면에서 '파업'까지 포함하는 강력한 투쟁이 당위적으로 요구됩니다. 첫째, 2002년부터 고등학교의 7차 교육 과정이 시작됩니다. 교육 시장화의 핵심 중의 핵심은 '평준화 제도'를 골간으로 한 기존 공교육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자립형 사립고와 소위 '교과목 선택제'가 평준화 파괴의 '경향성'을 갖습니다. 특별히 2001년도에 전면적 투쟁을 통해 저지되어야 할 '당위성'이 도출됩니다. 둘째, 한완상 부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7차 교육 과정 '시행'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7차 교육 과정 수정 고시' 요구에 대한 반응입니다. 언론사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또 교육부 발행 신문을 통하여 전교조의 '문제 제기'를 항목별로 반박할 정도입니다. 이는 7차 교육 과정이 '개혁 명분'의 마지막 '교두보'이며, 교육 시장화 정책의 '핵심'이 됨을 반증합니다. 다양성과 선택권의 '포장지'가 완전히 뜯겨지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강행할 것입니다. 셋째, 내년도는 상반기 지자체장 선거, 하반기 대통령 선거의 시기입니다. 각 정당과 정파의 '선거 구도'는 올 하반기에 짜여지게 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정책을 '중단'하느냐 '지속'하느냐의 '결정'시기가 올 하반기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했을 때, 하반기 총력 투쟁이 '파업 투쟁' 수준으로 끌어 올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 사설에 이어 세계일보 사설을 읽겠다고?
수정 동의안을 찬성하는 대의원들의 발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반기 교육 정세의 엄중함에는 동의하지만 지금은 파업을 할 시기가 아니다. 10만 조합원이라고 하지만 의식의 편차가 크다. 파업의 주체인 조합원 교사들은 아직 파업을 결심하지 못했다. 조합원과 함께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교사의 파업은 정부와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파업 불가를 외치는 소리가 대의원 대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귀에 익은 그러나 진부한 주장들.
급기야 한 대의원에 의해 보수 수구 언론의 하나인 동아일보 사설이 전교조 대의원 대회장에서 낭독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망연자실한 대의원 앞에서 다시 같은 날짜의 세계일보 사설을 읽겠다고 했을 때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우 익숙한 이 소리들.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내게 들려주던 소리가 아닌가?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하던 소리가 아닌가? 이 가뭄에 웬 파업,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지 마라. 지하철 노동자 동지들에게, 조종사 노동자 동지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던 말들이 이제 전교조 대의원의 입에서 나에게, 전교조에게 퍼부어진단 말인가!
위원장의 제지로 세계일보 사설은 읽혀지지 않았다. 대의원 대회장은 술렁이고 있었다.
159:175
10분간의 정회를 거쳐 회의가 속개되었다. 수정 동의안과 재수정 동의안은 하나로 합쳐졌다. 내용은 간단했다.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에서 "파업을 불사한"을 삭제한다.』 단지 문제는 파업이었던 것이다. 먼저 수정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5시 45분. 토론은 세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먼저 수정 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었다. 당시 재석 대의원 수는 336명. 169명 이상이 동의하면 통과되는 상황이었다. 찬반 토론 과정에서 원안 찬성 발언은 숫적으로 수정안에 대해서 밀리고 있었다. 거의 3:1 수준으로 파업을 불사한 투쟁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놀랍게도 159명 찬성. 수정 동의안의 부결이었다. 결과가 발표되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숫자를 셌느냐는 질문이 이어지더니 끝내 원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요구되었다. 수정 동의안이 부결된 상황에서의 원안 표결. 전교조 역사상 유례 없는 사건이었다. 만약 원안 마저 부결되면?
긴장된 순간에서 위원장은 원안의 표결을 선포하였다. 팽팽한 긴장이 대의원 대회장을 휘감았다. 원안 표결 결과 찬성 175명. 과반수 169명을 가까스로 6명 넘기는 찬성이었다.
위원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저는 지금 몹시 착잡합니다. 앞으로 159명의 대의원 동지들의 마음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전술을 계획하고 어떻게든지 함께 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의는 막을 내렸다. 아직 4개의 안건이 남았지만, 이로써 회의는 장을 마감했다. 만장일치로 투쟁 기금 조성과 상설위원회 설치, 왜곡된 교과서의 현대사 바로잡기, 전교조 운동의 민주화 운동 인정에 대한 특별 결의문 채택이 통과되었다.
전교조는 아직 파업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스스로 먼저 파업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업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무장 해제를 스스로 선언할 수는 없다. 수정 동의안은 우리의 투항을 주장하고 있었다. 노벨 평화상이 발표되던 그 날 진행된 청와대 진격 투쟁.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정부 종합 청사 안마당을 점거하며 진행된 선봉 투쟁. 알몸 수사로 이어진 저들의 탄압. 분노한 교사들은 비 내리는 서울역에 조퇴, 연가를 내며 전국에서 7000명이 집결하여 투쟁했다. 2001년 단협에서 교육부 관리들은 노골적으로 파업권 없는 전교조를 업신여기고 있지 않은가? 고작 전국 지회장(대체로 도 지부의 경우 군 단위, 특별시·광역시 지부의 경우 구 단위) 200여명의 2일간 연가 투쟁으로 하반기 투쟁을 총력 투쟁이라 부를 것인가.
그러나 아직 전교조는 파업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파업을 불사한 총력 투쟁을 할 것을 결의한 것 뿐이다. 파업이 요구되면 사양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투쟁을 벌일 것을 선포한 것일 뿐, 그러나 이것은 아직 파업이 아니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할 일은 많다. 조합원 교사들에 대한 대대적 교선. 교육 시장화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파업에 대한 결의 추동. 학생, 사대·교대생, 대학생, 교수, 대학 강사, 교직원, 학부모 등의 교육 주체를 하나로 묶어 세우는 일. 제반 노동운동·민중운동의 연대 전선을 조직하는 일. 정권과 수구·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맞서기 위하여 전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전교조는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교사 파업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파업은 10월 말, 11월 초에 다시 소집될 대의원 대회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하여 결정될 것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대대적 공세와 교육 시장화(공교육 말살, 교육 황폐화, 민중의 교육적 권리 박탈)에 맞서 교사들은 투쟁을 선포했다. 89년 공안 정국 속에서 끝내 전교조를 건설하고 지켜왔던 10년의 투쟁. 이제 그 10년을 뛰어 넘는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전교조는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의 전선에 다시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