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결국 패배할 것이다 : 약탈전쟁과 세계적 인종주의, 아메리카니즘의 모멸
이제 미국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테러리즘은 그 자체가 정치적 이념도 아니고 어떤 조직과 동일시될 수도 없다. 그것은 하나의 수단이며, 역사적으로 관례화된 '재래식전쟁'(conventional warfare)과 구별되는 군사행동 방식이다. 따라서 미국이 선언한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애매한 표현이다. 오히려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미국의 항구적인 통제권을 부정하는 세력, 혹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두 축으로 하는 미국의 對중동 패권전략을 거부하는 세력들 중 '일부'와의 전쟁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그 표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게 가해진 가장 의미심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이번 사건의 극적인 요소들 때문이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 미국인들의 관념을 지배하던 '안전한 전쟁'(safe war)이라는 우상의 붕괴, 미국을 향한 중심없는 공격의 재발의 가능성, 미국 영토를 일종의 전장(戰場)으로 만드는 테러의 "영구화"라는 위험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표현에는 테러라는 방식이 제거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영화로운 시대로 복귀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집단적 심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1)
'안전한 전쟁'이라는 우상의 파괴와 미국의 '무감각'에 대한 공격
걸프전 이후로 미국인들은 매혹적이지만, 그 자체로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표현을 탐닉하게 되었다. '안전한 전쟁', 곧 '미국인의 희생이 없는 깨끗한 전쟁'이라는 우상이 바로 그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된 전쟁은, 마치 위생적으로 처리된 공간에서, 인간을 대체하여 비인격적인 무기체계들간에 자웅을 겨루는 일종의 게임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치르는 전쟁은, 미국의 보통 시민들과는 관계가 없고, '외주'를 받은 전문가들의 수행하는 특화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미국인들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것은 두 가지 믿음 때문이었다. 첫째는 미국의 군사 기술의 압도적 우월성 즉 스텔스폭격기와 순항미사일로 대변되는 미국의 첨단 군사력은 어떤 적이라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감히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기 전, 세계의 대다수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가 주도하는 국제적인 분쟁과 그 결과에 대해 - 다소 불편한 심기를 갖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 철저히 무관심하였다. (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는 외교문제가 아예 순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미국이 당면한 외교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의 경우 1위는 "모른다"였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이라크에서 계속되는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사들은 발생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누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단의 제약공장을 화학무기 생산기지로 오인하였던 순항미사일 공격이, 그 이후 백신 부족사태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에 관해 추적한 보도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이번 공격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무감각'에 대한 공격이라고 평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치명적인 폭력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비대칭적으로) 태평하기 짝이 없는 미국인들도 그 고통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적 상흔과 '보복전쟁의 승리'라는 맹목
따라서, 이번 공격은 미국 본토가 항구적 '전장'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에게 주는 정신적 타격은 역사상 초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아도 이러한 종류의 공격을 100 퍼센트 사전에 인지하여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그 압박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는 향후 미국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고비이다.
하지만 대통령 부시를 필두로 하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왜' 미국에 대한 증오가 누적되어 왔으며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결코 자문하지 않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보이는 일차적 반응은,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헤게모니에 무언가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인상이 세계적 범위에서 각인될까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과잉되게) 과시함으로써, 무너진 우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심리가 집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2)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핵)미사일, 항공모함전투단, 보병 및 기갑사단을 포함하는 지상군, 특수부대, 첩보전 등등 어떤 수단이라도 가능하다면 총동원하여, 가장 '스펙타클'한 전쟁의 승리를 연출하고 싶어할 것이다. 즉 '화려한' 공격에 상응하는 '화려한' 보복만이 무너진 자존심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막의 폭풍'과 같은 대규모 전쟁계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즉 미국이 전쟁을 펼치고자 하는 빈 라덴과 그와 연루된 느슨한 범지역적 네트워크 조직은 어떤 '정부'가 아니다. 따라서 이라크와 같이 분명하고 고정된 목표물을 갖지도 않는다. 펜타곤과 같은 지휘통제본부도, 대규모 군사시설도, 정보기관도 없으며, 발전소나 방송국과 같은 주요시설도 없다. 미국이 아무리 공중폭격을 통해 전략적 타격을 가하고 싶다고 해도, 뚜렷한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은 빈 라덴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재정지원이나 병참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폭격도 라덴 및 그와 연루된 조직들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이는 또한 관련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닌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이 시작될 시에 제2, 제3의 보복 테러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도 가리킨다.)
이처럼 미국이 처한 현실적 악조건들과 전쟁이 갖는 고유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전쟁시나리오에 관해 선뜻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9월 11일 이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군사적 행동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한다'는 것을 이번 전쟁의 승리를 판가름하는 1차적 잣대로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호언장담하고 있는 이상, 극한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여러 악조건들로 인해,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압박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신병 인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경우, 미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길 수순뿐이다. 일단은 특수부대를 이용한 군사작전을 시도하겠지만, 이것이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할 겨우 지상군 투입으로의 확대는 예정된 결과가 될 것이다. (실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직접적인 수색 활동을 하지 않으면 단시일 내에 신병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집착과 범세계적 '공안정국'
한편 미국의 군사적 대응방향이 이와 같이 가닥이 잡혀간다는 것은,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점하고 있던 기존의 패권에 대한 집착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미국의 채취산업(석유, 가스, 광산, 목재 등) 부문의 자본가들이 강력한 부시 지지자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현 정권이 중동지역에서의 이해관계에 더욱 민감할 것이라는 점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역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의 對중동전략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중동과 미국의 오랜 적대관계는 크게 세 가지의 역사적·정치적 이유들에 기인한다. 미국 정치권에 대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압력, 중동의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 그리고 냉전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이스라엘 문제를 양도받을 때, 미국이 갈등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중동지역에 유대국가의 건설이 가져올 엄청난 분쟁과 충돌을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미국 정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주로 정치자금의 문제와 관련되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요구를 결코 회피할 수 없었다. 또 한편, 미국으로서는 중동의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갖기 위해서는 유력한 거점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헌신적인' 지원은 사실 이러한 거점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냉전이라는 세계적 조건 속에서, 주요 산유국들이 소련의 영향 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쿠데타 및 왕정 복고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중동 내의 친미국가들을 확보해갔다. 빈 라덴의 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우디는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석유보유량의 1/4을 소유하고 있는바, 사우디는 서방세계의 저렴하고 풍부한 주유소 역할을 해왔다.) 이 사우디와 미국과의 관계는 1945년 양국간의 정치적 합의로부터 출발했다. 이 합의의 골자는 사우디의 석유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영구적인 접근을 허용해주면, 미국은 사우디 왕족을 내외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 혁명이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이 사우디 왕정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의 사용을 불사해 왔다. 또한 1981년 사우디 내부 반란의 경우에도 왕정 수호에 전력을 다했다. (레이건 왈, "우리는 사우디가 이란과 같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은, 결국 '이스라엘 편향'과 '사우디 편향'이라는 미국의 對중동정책의 근간을 형성해 왔다.
따라서,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집착이 강화될수록, 미국이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은 범세계적 공안정국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이미 미국은 아랍의 여러 국가들을 차례차례로 테러 비호국으로 지목하여 전반적인 공포분위기를 유도하거나, 각각의 국가들에 거점을 두고 있는 조직들의 소탕 작전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요구하면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3)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도가 중동지역에서의 기본적인 모순과 갈등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보복전쟁과 폭력의 연쇄순환
테러 사건 직후, 미국의 대응방향의 큰 기조는 '피의 보복'으로 신속히 결정되었다. 미국은 그 결과가 '상처뿐인 승리'가 될지라도, 관성에 따라 앞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태의 양상이 전개되더라도, 미국은 깊은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이다. 특히 현재 미국이 계획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승리가 존재할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은 전쟁의 초점이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상황의 종료와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보도에 따르면 빈 라덴은 느슨한 네트워크의 재정적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할 뿐, 각각의 조직을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번 테러 사건도 빈 라덴의 직접적인 사주가 있었는지도 불확실하다. (단지 빈 라덴의 궐석재판 하루 전날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를 추앙하는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빈 라덴이 죽거나 생포되어도 미국 영토가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기화로 하여 상황이 확대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불운한 현실이다.
둘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영토가 여러 형태의 테러에 대해 극히 취약하다는 점이 세계적으로 각인되었다. 일례로, 오늘날 미국이 국경통제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인구와 상품들이 매일마다 3700개의 정류장과 301개의 항구를 통해 미국을 드나들며, 전국적으로 일년간 약 1640만대의 트럭 및 500만개의 컨테이너가 미국 내에 진입한다. 이를 제대로 검색하기 위해서는, 12미터 짜리 컨테이너의 경우, 최소한 5명의 인원이 3시간 동안 검색해야 한다. 그러나 운송이 정체될 경우 들어가는 비용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결국 한대의 트럭을 검색하는 데 투여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6초∼20초 사이 뿐이다. 미국 영토가 일종의 전장이 되어 중심없는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면, 현재까지 미국을 지탱해 온 사회시스템 전체가 유지될 수 없다.
셋째, 분명히 테러는 그 집단의 정치적 무능력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정치·군사적 약자의 수단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따라서 이는 일단 개시된 테러 공격은 항구화, 영속화될 공산이 크다. 결국 테러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집단에게 승리란 불가능하지만, 역으로 그것을 막는 입장에서도 완벽한 승리는 불가능하다. 단지 쌍방간의 정치적 역량의 소진과 그 전쟁터의 황폐화만을 부추길 뿐이다.
약탈전쟁과 인종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폭력
하지만, 미국이 결국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전쟁의 '기술적' 특징 때문이 아니다. 이는 마치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영국 제국주의가 보어전쟁의 결과로 얻게된 '상처뿐인 승리'와 동일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자국의 헤게모니의 쇠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남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채취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살육적인 전쟁에 뛰어 들었다.4) 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의 야만성이 국제적인 문제로 부상하였고, 그 결과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국내외적인 도전은 오히려 공공연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미국이, 지금 스스로 공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보복전쟁의 '승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 양상은 과거의 경험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미국이 걸프지역의 채취차원인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잔인무도한 군사적 수단 외에는 동원할게 바닥나 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중동에서의 미국이라는 존재의 정치적 의미는 벌거벗겨질 것이다.
또한 미국은 초기에 '테러리즘과의 전쟁'의 개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번 전쟁을 '성전'(holy war)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결정적인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부시정부는 이미 대중적으로 유포된 이미지를 다시 수습하고자 했지만, 결국은 엎질러진 물일뿐이다.) 성전이라는 말 자체가 특정 인종에 대한 공격 또는 특정 문명에 대한 공격을 반드시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는 세계적인 차원의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는 단지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질적인 집단들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킴으로써, '문명충돌론'을 자연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던 자신의 인종주의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결과도 낳게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아랍계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 행위는 그것의 매우 위험한 전조이다.)
게다가 미국의 현 상황은 단지 인종주의적 공격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테러 보복을 위한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자는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상황은 분명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다. (물론 여기에는 육체적 폭력의 위협도 개입된다.) 따라서 이는 미국이 스스로에 대한 모멸을 누적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전쟁이 야기하는 폭력의 다양한 측면들이다. 이로써, 우리는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폭력의 다양한 측면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극단화될 것인가를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 출현하게 되는 상황은 미국의 이번 보복전쟁의 '승리'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인가?
1) 미국은 보복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누가 미국의 진정한 우방인가" 확인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조응하여, 9월 24일 김대중 정부는 전투병력 파병을 제외한 전투지원, 의료지원, 수송지원 등 포괄적인 군사적인 지원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지난 90-91년 걸프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분담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받은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데, 한국 정부도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2) 물론 보복전쟁을 반대하는 미국 내의 여론도 존재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1) 빈 라덴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는 점, (2) 이번 전쟁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UN 안보이사회의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테러공격에 대해 비난했지만, 군사력 사용-특히 일방적인-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보복공격은 자위권의 수준을 분명히 넘어선다), (3) 전쟁은 테러공격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집단을 제거할 수 없다는 점(설사 빈 라덴이 이번 공격과 연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공중폭격을 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4) 전쟁은 무고한 수많은 인민들을 죽게 만들 것이라는 점(직접적인 공격과 경제제재), (5) 전쟁은 미국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미국 영토 내부 및 해외의 무고한 미국인들이 테러위협에 처할 수 있다) 등이다. 물론 이러한 근거는 테러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서의 '전쟁'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뿐이다. 즉 미국의 어떤 행동들이 누적된 증오를 불러일으켜 왔는가라는 문제가 삭제된 것이다.
3) 세계적인 '공안정국'이 조성된다면, 미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對아랍 폭력이 속출될 위험도 존재한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의 응징 방침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팔레스타인의 테러 근거지도 없애야 한다"며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테러사건이 일어난 직후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도시들에 탱크와 병력을 투입했고, 15∼16일에도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4) 1867년 발견된 남아프리카 트란스발의 금광과 오렌지강변의 다이아몬드를 약탈하기 위해, 영국은 네델란드계의 보어인들이 세운 나라와 두차례의 전쟁을 치른다. 1899년부터 시작된 2차 전쟁에서 영국은 주력부대를 격퇴했지만 그 이후 장기적인 게릴라전이 지속되자, 영국은 최종적 승리를 위해 철저한 '전멸' 전법을 취하였다. 인구 50만 명에 총동원 병력 약 7만의 보어인을 정복하기 위하여, 영국은 45만 군인을 동원하여 보어인의 전답·가옥을 불사르고, 21만의 비전투원을 강제적으로 집단수용소에 집어넣었다. (이 강제수용소의 설비와 대우는 최악의 상태로서 모두 약 2만의 사망자를 내기까지 하였다.) 이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문제제기를 불러 일으켰고, (레닌이 그 이론적 중요성을 인정한) 홉슨의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1902)라는 저작의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그 표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게 가해진 가장 의미심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이번 사건의 극적인 요소들 때문이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 미국인들의 관념을 지배하던 '안전한 전쟁'(safe war)이라는 우상의 붕괴, 미국을 향한 중심없는 공격의 재발의 가능성, 미국 영토를 일종의 전장(戰場)으로 만드는 테러의 "영구화"라는 위험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표현에는 테러라는 방식이 제거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영화로운 시대로 복귀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집단적 심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1)
'안전한 전쟁'이라는 우상의 파괴와 미국의 '무감각'에 대한 공격
걸프전 이후로 미국인들은 매혹적이지만, 그 자체로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표현을 탐닉하게 되었다. '안전한 전쟁', 곧 '미국인의 희생이 없는 깨끗한 전쟁'이라는 우상이 바로 그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된 전쟁은, 마치 위생적으로 처리된 공간에서, 인간을 대체하여 비인격적인 무기체계들간에 자웅을 겨루는 일종의 게임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치르는 전쟁은, 미국의 보통 시민들과는 관계가 없고, '외주'를 받은 전문가들의 수행하는 특화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미국인들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것은 두 가지 믿음 때문이었다. 첫째는 미국의 군사 기술의 압도적 우월성 즉 스텔스폭격기와 순항미사일로 대변되는 미국의 첨단 군사력은 어떤 적이라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감히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기 전, 세계의 대다수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가 주도하는 국제적인 분쟁과 그 결과에 대해 - 다소 불편한 심기를 갖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 철저히 무관심하였다. (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는 외교문제가 아예 순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미국이 당면한 외교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의 경우 1위는 "모른다"였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이라크에서 계속되는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사들은 발생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누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단의 제약공장을 화학무기 생산기지로 오인하였던 순항미사일 공격이, 그 이후 백신 부족사태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에 관해 추적한 보도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이번 공격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무감각'에 대한 공격이라고 평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치명적인 폭력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비대칭적으로) 태평하기 짝이 없는 미국인들도 그 고통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적 상흔과 '보복전쟁의 승리'라는 맹목
따라서, 이번 공격은 미국 본토가 항구적 '전장'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에게 주는 정신적 타격은 역사상 초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아도 이러한 종류의 공격을 100 퍼센트 사전에 인지하여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그 압박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는 향후 미국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고비이다.
하지만 대통령 부시를 필두로 하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왜' 미국에 대한 증오가 누적되어 왔으며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결코 자문하지 않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보이는 일차적 반응은,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헤게모니에 무언가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인상이 세계적 범위에서 각인될까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과잉되게) 과시함으로써, 무너진 우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심리가 집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2)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핵)미사일, 항공모함전투단, 보병 및 기갑사단을 포함하는 지상군, 특수부대, 첩보전 등등 어떤 수단이라도 가능하다면 총동원하여, 가장 '스펙타클'한 전쟁의 승리를 연출하고 싶어할 것이다. 즉 '화려한' 공격에 상응하는 '화려한' 보복만이 무너진 자존심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막의 폭풍'과 같은 대규모 전쟁계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즉 미국이 전쟁을 펼치고자 하는 빈 라덴과 그와 연루된 느슨한 범지역적 네트워크 조직은 어떤 '정부'가 아니다. 따라서 이라크와 같이 분명하고 고정된 목표물을 갖지도 않는다. 펜타곤과 같은 지휘통제본부도, 대규모 군사시설도, 정보기관도 없으며, 발전소나 방송국과 같은 주요시설도 없다. 미국이 아무리 공중폭격을 통해 전략적 타격을 가하고 싶다고 해도, 뚜렷한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은 빈 라덴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재정지원이나 병참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폭격도 라덴 및 그와 연루된 조직들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이는 또한 관련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닌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이 시작될 시에 제2, 제3의 보복 테러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도 가리킨다.)
이처럼 미국이 처한 현실적 악조건들과 전쟁이 갖는 고유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전쟁시나리오에 관해 선뜻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9월 11일 이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군사적 행동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한다'는 것을 이번 전쟁의 승리를 판가름하는 1차적 잣대로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호언장담하고 있는 이상, 극한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여러 악조건들로 인해,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압박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신병 인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경우, 미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길 수순뿐이다. 일단은 특수부대를 이용한 군사작전을 시도하겠지만, 이것이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할 겨우 지상군 투입으로의 확대는 예정된 결과가 될 것이다. (실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직접적인 수색 활동을 하지 않으면 단시일 내에 신병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집착과 범세계적 '공안정국'
한편 미국의 군사적 대응방향이 이와 같이 가닥이 잡혀간다는 것은,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점하고 있던 기존의 패권에 대한 집착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미국의 채취산업(석유, 가스, 광산, 목재 등) 부문의 자본가들이 강력한 부시 지지자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현 정권이 중동지역에서의 이해관계에 더욱 민감할 것이라는 점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역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의 對중동전략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중동과 미국의 오랜 적대관계는 크게 세 가지의 역사적·정치적 이유들에 기인한다. 미국 정치권에 대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압력, 중동의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 그리고 냉전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이스라엘 문제를 양도받을 때, 미국이 갈등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중동지역에 유대국가의 건설이 가져올 엄청난 분쟁과 충돌을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미국 정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주로 정치자금의 문제와 관련되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요구를 결코 회피할 수 없었다. 또 한편, 미국으로서는 중동의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갖기 위해서는 유력한 거점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헌신적인' 지원은 사실 이러한 거점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냉전이라는 세계적 조건 속에서, 주요 산유국들이 소련의 영향 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쿠데타 및 왕정 복고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중동 내의 친미국가들을 확보해갔다. 빈 라덴의 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우디는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석유보유량의 1/4을 소유하고 있는바, 사우디는 서방세계의 저렴하고 풍부한 주유소 역할을 해왔다.) 이 사우디와 미국과의 관계는 1945년 양국간의 정치적 합의로부터 출발했다. 이 합의의 골자는 사우디의 석유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영구적인 접근을 허용해주면, 미국은 사우디 왕족을 내외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 혁명이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이 사우디 왕정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의 사용을 불사해 왔다. 또한 1981년 사우디 내부 반란의 경우에도 왕정 수호에 전력을 다했다. (레이건 왈, "우리는 사우디가 이란과 같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은, 결국 '이스라엘 편향'과 '사우디 편향'이라는 미국의 對중동정책의 근간을 형성해 왔다.
따라서,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집착이 강화될수록, 미국이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은 범세계적 공안정국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이미 미국은 아랍의 여러 국가들을 차례차례로 테러 비호국으로 지목하여 전반적인 공포분위기를 유도하거나, 각각의 국가들에 거점을 두고 있는 조직들의 소탕 작전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요구하면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3)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도가 중동지역에서의 기본적인 모순과 갈등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보복전쟁과 폭력의 연쇄순환
테러 사건 직후, 미국의 대응방향의 큰 기조는 '피의 보복'으로 신속히 결정되었다. 미국은 그 결과가 '상처뿐인 승리'가 될지라도, 관성에 따라 앞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태의 양상이 전개되더라도, 미국은 깊은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이다. 특히 현재 미국이 계획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승리가 존재할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은 전쟁의 초점이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상황의 종료와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보도에 따르면 빈 라덴은 느슨한 네트워크의 재정적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할 뿐, 각각의 조직을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번 테러 사건도 빈 라덴의 직접적인 사주가 있었는지도 불확실하다. (단지 빈 라덴의 궐석재판 하루 전날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를 추앙하는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빈 라덴이 죽거나 생포되어도 미국 영토가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기화로 하여 상황이 확대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불운한 현실이다.
둘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영토가 여러 형태의 테러에 대해 극히 취약하다는 점이 세계적으로 각인되었다. 일례로, 오늘날 미국이 국경통제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인구와 상품들이 매일마다 3700개의 정류장과 301개의 항구를 통해 미국을 드나들며, 전국적으로 일년간 약 1640만대의 트럭 및 500만개의 컨테이너가 미국 내에 진입한다. 이를 제대로 검색하기 위해서는, 12미터 짜리 컨테이너의 경우, 최소한 5명의 인원이 3시간 동안 검색해야 한다. 그러나 운송이 정체될 경우 들어가는 비용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결국 한대의 트럭을 검색하는 데 투여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6초∼20초 사이 뿐이다. 미국 영토가 일종의 전장이 되어 중심없는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면, 현재까지 미국을 지탱해 온 사회시스템 전체가 유지될 수 없다.
셋째, 분명히 테러는 그 집단의 정치적 무능력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정치·군사적 약자의 수단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따라서 이는 일단 개시된 테러 공격은 항구화, 영속화될 공산이 크다. 결국 테러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집단에게 승리란 불가능하지만, 역으로 그것을 막는 입장에서도 완벽한 승리는 불가능하다. 단지 쌍방간의 정치적 역량의 소진과 그 전쟁터의 황폐화만을 부추길 뿐이다.
약탈전쟁과 인종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폭력
하지만, 미국이 결국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전쟁의 '기술적' 특징 때문이 아니다. 이는 마치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영국 제국주의가 보어전쟁의 결과로 얻게된 '상처뿐인 승리'와 동일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자국의 헤게모니의 쇠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남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채취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살육적인 전쟁에 뛰어 들었다.4) 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의 야만성이 국제적인 문제로 부상하였고, 그 결과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국내외적인 도전은 오히려 공공연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미국이, 지금 스스로 공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보복전쟁의 '승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 양상은 과거의 경험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미국이 걸프지역의 채취차원인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잔인무도한 군사적 수단 외에는 동원할게 바닥나 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중동에서의 미국이라는 존재의 정치적 의미는 벌거벗겨질 것이다.
또한 미국은 초기에 '테러리즘과의 전쟁'의 개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번 전쟁을 '성전'(holy war)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결정적인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부시정부는 이미 대중적으로 유포된 이미지를 다시 수습하고자 했지만, 결국은 엎질러진 물일뿐이다.) 성전이라는 말 자체가 특정 인종에 대한 공격 또는 특정 문명에 대한 공격을 반드시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는 세계적인 차원의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는 단지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질적인 집단들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킴으로써, '문명충돌론'을 자연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던 자신의 인종주의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결과도 낳게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아랍계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 행위는 그것의 매우 위험한 전조이다.)
게다가 미국의 현 상황은 단지 인종주의적 공격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테러 보복을 위한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자는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상황은 분명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다. (물론 여기에는 육체적 폭력의 위협도 개입된다.) 따라서 이는 미국이 스스로에 대한 모멸을 누적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전쟁이 야기하는 폭력의 다양한 측면들이다. 이로써, 우리는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폭력의 다양한 측면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극단화될 것인가를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 출현하게 되는 상황은 미국의 이번 보복전쟁의 '승리'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인가?
1) 미국은 보복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누가 미국의 진정한 우방인가" 확인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조응하여, 9월 24일 김대중 정부는 전투병력 파병을 제외한 전투지원, 의료지원, 수송지원 등 포괄적인 군사적인 지원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지난 90-91년 걸프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분담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받은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데, 한국 정부도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2) 물론 보복전쟁을 반대하는 미국 내의 여론도 존재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1) 빈 라덴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는 점, (2) 이번 전쟁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UN 안보이사회의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테러공격에 대해 비난했지만, 군사력 사용-특히 일방적인-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보복공격은 자위권의 수준을 분명히 넘어선다), (3) 전쟁은 테러공격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집단을 제거할 수 없다는 점(설사 빈 라덴이 이번 공격과 연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공중폭격을 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4) 전쟁은 무고한 수많은 인민들을 죽게 만들 것이라는 점(직접적인 공격과 경제제재), (5) 전쟁은 미국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미국 영토 내부 및 해외의 무고한 미국인들이 테러위협에 처할 수 있다) 등이다. 물론 이러한 근거는 테러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서의 '전쟁'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뿐이다. 즉 미국의 어떤 행동들이 누적된 증오를 불러일으켜 왔는가라는 문제가 삭제된 것이다.
3) 세계적인 '공안정국'이 조성된다면, 미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對아랍 폭력이 속출될 위험도 존재한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의 응징 방침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팔레스타인의 테러 근거지도 없애야 한다"며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테러사건이 일어난 직후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도시들에 탱크와 병력을 투입했고, 15∼16일에도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4) 1867년 발견된 남아프리카 트란스발의 금광과 오렌지강변의 다이아몬드를 약탈하기 위해, 영국은 네델란드계의 보어인들이 세운 나라와 두차례의 전쟁을 치른다. 1899년부터 시작된 2차 전쟁에서 영국은 주력부대를 격퇴했지만 그 이후 장기적인 게릴라전이 지속되자, 영국은 최종적 승리를 위해 철저한 '전멸' 전법을 취하였다. 인구 50만 명에 총동원 병력 약 7만의 보어인을 정복하기 위하여, 영국은 45만 군인을 동원하여 보어인의 전답·가옥을 불사르고, 21만의 비전투원을 강제적으로 집단수용소에 집어넣었다. (이 강제수용소의 설비와 대우는 최악의 상태로서 모두 약 2만의 사망자를 내기까지 하였다.) 이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문제제기를 불러 일으켰고, (레닌이 그 이론적 중요성을 인정한) 홉슨의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1902)라는 저작의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