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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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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② 두 사람, 같은 시대 다른 길] 대담 조선민중의 진로

장용경 |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졸
1. 대담

1) 들어가며

제국은 중국의 심장부를 전광석화처럼 점령하더니, 마침내 영미에 대한 전쟁을 개시했다. 동아의 신질서가, 아니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조선인은 이 거대한 사실이 열어 놓은 풍경에 현기증을 느낀다. 조선인은 과연 하나의 민족으로서 존재하겠는가? 과거 사회운동과 일본제국에 대한 태도는 如何(여하)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 사회운동이나 민족운동에서 다년 활약했던 여러 분들을 모시고 비상시국에 처한 우리들은 조선민중의 진로에 대하여 의견을 듣기로 한다.

2) 현실인식과 우리의 태도

이정우 : 우리 조선의 중견층인 청년들이 과거에 범한 과오의 가장 근본적 요소는 '조선을 위해'라고 절규하면서도, 바르게 조선을 연구하고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은 것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들은 조선을 충분히 연구하고 조선인에게 행복과 번영을 가져올 방법을 조선 자체가 가진 천혜적인 내용으로부터 구하지 않고 헛되이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비관적인 일면만을 포착하고 정치경제의 變改(변개)를 說(설)했던 잘못에 빠진 것이다.

한상건 : 동감이다. 유물적 역사관이 패퇴한 직후 조선 사상계는 확실히 허탈과 체관과 아유와 현실 맹종이라고 하는 인간 의지의 소극적인 면만이 湧出(용출)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패잔병에게는 최후의 게릴라전을 의욕한 유일의 급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의 우연이라고도, 데포메이션이라고도 본 것은 뜻밖에도 역사의 本道(본도)이고, 또 새로운 건설을 위한 지반이었다. 수많은 역사의 면박은 그들을 침묵에, 혹은 신사태의 정당한 인식과 이것에 적극적 참가의 길을 열었다. 조선의 젊은 청년이 진실하게 자기와 자신의 토지를 사랑하고 그것의 구원과 번영을 생각한다면 먼저 조선이 처한 역사적 현실을 정시하고 이에 달라붙어 피나는 고투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정식 :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또 긍정하고 이 현실 밑에서 가능한 최대의 행복을 구하려는 것이 조선인의 운명에 문제에 있어서의 넘을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조선인이 나아갈 유일의 정치적 노선으로서 내선일체의 문제가 제시되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조선인의 정치적 불평 내지 불만을 일소하고 조선인으로 하여금 일본제국의 대륙정책에 백퍼센트의 성의와 정열을 가지고 협동케 하기 위해서는 내지인과 동등한 국민적 의무를 다하게 한 후 내지인과 동등한 정치적 자격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현영섭 : 나도 내선일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서는 그 가능성을 확신하는 한 사람이다.

방청자 : 내지인의 경우에는 전향으로 그 애국적 정열을 생기게 할 수 있지만 우리들의 경우에는 종래 주의 운동에 바쳤던 정열을 향할 방향을 잃고 몰락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종래의 애국적 정열을 자극할 지도원리를 과연 어디에서 구하면 좋을까?

현영섭 : 모든 민족적 편견을 버리고 내선일체로 日鮮(일선) 양 민족이 신일본 민족을 창생하고 신일본 국가를 건설하리라는 의욕을 가지는 지점에 조선인이 도달하는 것이 우리의 지도원리이다. 우리 조선인은 차별 받는 존재로서의 조선인의 지위를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 자유 및 독립을, 일본과 멀어진 길에서가 아니라, 일본과 일체가 되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물론 우리들은 같은 조선에 살아도 內鮮人間(내선인간)의 대우의 차가 있는 것을 인식한다. 조선인이 전부 일본인이 될 때 조선인이 완전히 일본민족이 되어서 내선의 구별이 없어질 때 이 차별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방청자 : 일본인은 그 이념이 잘되었건 못되었건 일본을 위해서 죽는다, 천황을 위해 죽는다는 명분을 스스로 내세울 여지가 있음에 반해, 우리 조선 학도병들은 "누구를 위해 죽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현영섭 :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길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이상을 실현함에 의해서이므로 조선인은 일본에 대해 타협적 태도가 아니라 일체를 바치는 종교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이성보다는 더욱 깊은 지점에 들어간 세계, 감정에 뿌리를 둔 세계로부터 '純潔無汚(순결무오)'하게 과거를 청산하는 데서 시작한다.

인정식: 신일본 민족에로 통일된다는 것은 결코 조선인이 그의 민족적인 고유성 전반을 상실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조선민족의 고유한 언어, 문화전통, 민족정신 등 이러한 것은 새로이 형성되는 신일본 민족의 생활의 일면으로서 끝까지 보존되고 발달되어야 한다. 내선일체라 하면 곧 조선어의 폐지, 조선 의복의 禁用(금용)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런 무지한 도배야말로 생각 없는 인간들이다. 조선인이 한 개의 틀림없는 민족을 형성하여 왔기 때문에 금일의 당면한 내선일체의 문제는 조선인의 측으로 보아서 확실히 한 개의 민족문제로서 성립되는 것이다. 웨(왜) 그러냐 하면 내선일체의 문제는 언어, 민족문화, 민족전통 등 민족으로서의 조선인의 전 생활상의 고유한 속성을 어느 정도까지 지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긔(여기)에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말하는 지양이란 것은 민족 속성의 단순한 포기 폐지와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현영섭 : 민족 속성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언어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언어와 풍속에 반도인이 사수할 개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언어는 사상의 전부가 아니고 그 표현수단이고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조선인이 國語(국어)를 이해 못하기 때문에 봉착하는 문제는 새로운 일본어를 창조하는 방향이 진보적인 방향이다.

金史良 : 지방문화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고도로 발전되어 가지고 그 결과로 전일본 문화라는 것이 넓은 '널비'와 깊은 '기피'와 또 강도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방문화의 특수성 가운데는 별개의 전통의 흘음(흐름)이 있다. 이 전통이라는 것은 형상을 살리는 것, 말하자면 감정이오, 형상의 배후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을 가진 문화가 딴 문화와 교섭을 도모하는 경우 내용을 잡아넣지 아니하고 형식만을 취하여 오기 때문에 개성을 일키 쉬운 것이다.

현영섭 : 내선일체를 위해서 조선 문화가 장애가 된다면,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외에 살길을 알지 못한다면 일본 국토 내지 동양에 살아서는 안 된다. 자살하던가 아니면 반항하여 형무소에 살던가,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자살이다. 참으로 일본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약간의 위선자가 되기보다는 자살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자살을 원하지 않는다면, 일본 국가를 사랑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남선 : 말히기 어려운 이 고민을 몰래 하소연하여 오는 청년을 많이 만나보고서 한 가지 고개를 숙이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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