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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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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아라파트 제거를 위한 진짜 의도

R. S. 자하르나 |
비록 너무 늦었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개입한 진짜 의도를 고백해야할 시간이다.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에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들은 '테러리즘'을 중단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라파트를 제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내전을 초래하게 될 것이고 이는 다시 이스라엘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재점령의 핑계를 주게 된다. 이러한 전략에 기반을 둔 작전들이 진행중인데,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에 군사적 조치를 취한 이후 더욱 급속히 강화되어 왔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아라파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2000년 7월 캠프데이비드 회담의 좌절은 아라파트를 고립시키고 권력에서 제거하려는 목적을 둔 계획들의 첫 번째 단계를 반영한다. 팔레스타인의 지도자[아라파트]는 캠프데이비드 회담에 참가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그가 그곳에 참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라파트는 클린턴의 압력으로 캠프데이비드에 참가했다. 팔레스타인의 지도자가 만약에 있을 회담의 실패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미국의 반복적인 보증에도, 실제로 그러한 사태가 벌어졌다. 즉, 아라파트 개인이 캠프데이비드 회담의 실패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부각되었다. 한달 뒤 미국의 관료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그것은 이스라엘 대표들이 발뺌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라파트를 제거하려는 음모는 이미 시작되었다.
2000년 9월 새로운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폭동이 발생했을 때, 또다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새로운 폭력을 선동하는 자로 낙인찍혔다. 여전히도 유사한 일들이 발생했을 때, 마치 수도꼭지처럼,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조절할 수 있었다.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부각시켜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지속적인 군사적 점령과 이러한 군사적 점령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각성을 왜곡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의 '폭력'에 초점을 맞추면 맞출수록 이스라엘은 군사적 점령의 잔인한 현실을 숨길 수 있었다.
에후드 바락(Ehud Barak)에서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으로 이스라엘 총리가 바뀜으로서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아라파트를 고립시키고 제거하려는 작전은 한층 심화되었다. 샤론과 아라파트 사이의 적대감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전략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50년대 팔레스타인 게릴라 제거를 위한 101 부대 창설과 60년대 가자 지구를 평정할 때, 그리고 당시 PLO의 본부가 있던 레바논을 이스라엘이 1982년 침공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샤론이 권력을 잡았을 때 나타난 것은 팔레스타인의 '폭력'에서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으로 점차적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의심할 필요 없이 테러리즘은 폭력보다 더욱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하다. 만약 바락이 '전쟁'과 싸운다고 한다면, 샤론은 '테러리즘'과 싸우고 있었다. 9월 11일자 U.S Post지의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테러리즘이라는 말에 영향을 받은 시민들을 고려할 때 합법적인 군사적 행위의 범주와 개입의 원칙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아라파트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테러리즘'과 관련된 것으로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은 보다 더 군사적 개입과 팔레스타인 주민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은폐할 수 있었다. 사실 2001년 이른 봄, 이스라엘의 행동은 확실히 다층적이며 장기적인 것으로서, 전략적 목적인 안보 유지를 위한 것으로 제안되었다.
첫째, 이스라엘은 주요한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격리시키고 통제망을 설치하고 방어 진지를 설치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이스라엘 주민들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당국의 권위는 제한된 통제 구역 안으로 줄어들었다.
둘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구역을 밀어내 버렸다. 또다시 핑계는 안보였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과 영토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진지로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스라엘이 편리한 거점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 자체로 그것은 미래의 군사적 공격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에 대한 반복된 공격은 군사적 행위의 충격적 측면에 대해 국제적 여론을 마비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를 낳았다.
셋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도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첫번째 공격은 2000년 11월 이전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미국의 압력과 국제적인 압력 이후, 이러한 여론들은 늦은 봄 보다 더 강력한 새로운 충격으로 간단히 진정되었다. 8월 시민의 죽음이 보도된 이후, 또 다시 국제적인 감시에도 불구하고 암살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9월 11일이 되었다. 논쟁은 다른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고민들과 마찬가지로 침묵했다.
이스라엘의 작전 중 어느 것도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줄이지 못했고 이스라엘의 안보도 증진시키지 못했다. 사실 그것들은 반대 결과를 낳았다. 팔레스타인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단단한 통제는 팔레스타인 경제를 마비시켰고 절망에 빠진 주민들의 수를 더욱 증가시켰다. 군사적 침략은 팔레스타인 영토와 주민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의 권력을 허물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오슬로 협정(Oslo Accord)에서 얻어낼 수 있는 외교적인 소득을 삭감시켰다. 팔레스타인 지도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암살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해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하였고 서로의 보복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작전은 폭력의 순환을 영구화시켰다. 그러나 아라파트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이 자행한 모든 폭력들은 아라파트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것은 효과적인 미디어 덕택이었다. 미디어를 이용함으로써 인식을 통제한다면, 실제 상황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중요한 점은 아라파트가 모든 폭력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다.
현실은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살 폭탄과 공격을 중지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이스라엘이 계속 팔레스타인 지구를 군사 점령한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스라엘의 점령이 계속되는 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서도 이스라엘의 점령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착민과 군인들은 특별히 지속되는 팔레스타인의 공격을 받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점령의 수단과 도구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스라엘의 작전이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더욱 격렬하게 만든다면, 그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의 능력을 침식시킬 것이다. 논리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팔레스타인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과 땅에 대한 보호할 수 없다.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은 합법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항상 이스라엘의 공격과 팔레스타인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익에 대해 반응할 수 없고 정부는 권위를 상실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통제하고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아라파트의 능력에 대한 판단은 중동과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왔다. Jane's Intelligence Digest라는 주요 군사 정보처는 "우리가 몇 달 동안이나 경고해왔듯이 아라파트는 지금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진술했다.("Middle East Peace?" June 15, 2001)
만약 아라파트가 "폭력을 통제할 수 없다면," 왜 그에게 그러한 압력을 계속해서 넣고 있는 걸까? 만약 이러한 작전을 전략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최종 결과는 똑같을 뿐이다. 아라파트가 폭력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한 폭력을 중단시키라는 압력은 계속될 것이다.
만약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군인들(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저항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을 체포하라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다면, 아라파트는 권좌에서 실각하게 될 것이고 팔레스타인 내전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아라파트가 모든 군인들을 체포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향한 계획을 계속 진행할 것이고 심지어는 더욱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또다시 그 결과는 내전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에 개입하는 사태로 이어지는 불안정 상태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이스라엘의 개입에 의한 것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의한 내부의 반란으로 제거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만약 아라파트가 그의 주민들과 대립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를 제거해야만 한다. 어쨌든 아라파트는 실권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시 점령해야만 한다는 구실을 이스라엘에게 주는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아라파트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압력보다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압력에 따라왔다. 이스라엘은 지금 아라파트를 제거하기 위한 최적의 기회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공격과 빈 라덴을 법정에 세우려는 그들의 모습은 이스라엘에게 그러한 행동을 취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론을 제공해왔다.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의 제거 정책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지도자"와 "리더쉽"의 구분은 전략적인 것이다. 일단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목표로 삼아 테러리즘과 관련시켜 제거하고 나면, 팔레스타인의 "리더쉽"을 목표로 제거하는 단계로 뛰어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테러리즘과 전쟁"의 와중의 한 주말에 있었던 샤론과 부시의 언급은 놀랄 정도로 유사한데, 그것들은 정말 꼭 같다. 둘 모두 테러리즘의 즉각적인 종식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둘 모두 테러리즘과 전쟁에 필요한 조치들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부시에게 있어서 오사마 빈 라덴이 있다면, 샤론에게는 아라파트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부시가 지적했듯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주제어
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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