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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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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선제 정치적 반동성과 정치체제의 보수화

홍석만 | 편집실장
국민경선제 도입 과정

때는 2001년 10월 25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대패(大敗)한다. 칠룡이라 하면서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던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제각기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며 분열하고 대립한다. 그러자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당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비판은 민주당 내 최대 주주인 동교동계의 음모적이고 비민주적인 당운영 방식으로 집중되었다.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동교동계는 구파와 신파로 분열되고, 초· 재선의원이 중심이 된 쇄신파가 형성되어 민주당의 개혁과 김대중 대통령 책임론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바로 이 때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화살을 거꾸로 돌리는 긴급처방을 단행한다. 2001년 11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다.
주인이 집을 나간 민주당.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와 당의 분열 가능성 그리고 이용호 게이트 사건으로 금융비리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며 사태 무마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용호 게이트 사건에 대해선 특별검사 도입을 결정하고, 당내 쇄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한다. 이어 민주당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개혁특위]는 1개월에 걸쳐 5가지 정치개혁 방안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대권과 당권의 분리, 총재직 폐지, 6명의 선출직 최고위원과 원내총무와 사무총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는 집단 지도체제, 미국식 예비선거제를 도입해 모든 공직을 상향식으로 공천한다는 내용의 쇄신 방안을 내 놓았다. 그 중에서 미국식 예비선거제도의 도입, 그것이 바로 국민경선제이다.
이제 상황은 한나라당과 이회창을 압박하는 것으로 역전되었다. 정당개혁과 국민경선제 수용에 대한 공세가 한나라당 안팎으로 강화되면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군도 분열, (박근혜의 탈당으로 나아가면서) 한나라 당 또한 모든 공직자 선거를 국민경선제를 통해 시행하도록 하였다. 결국, 양대 정당이 모두 경선제를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된 것이다.

개혁주의와 새로운 비판적지지론의 등장

이러한 국민경선제를 놓고, 부르주아 정치권은 '1인 지배의 보스정치에 도전하는 정치 쿠데타'라 하기도 하고, '지역주의 타파와 3김 청산의 시발점'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당원중심의 정당에서 국민참여형 정당 즉, 국민정당으로 변화하는 한 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현실적인지 아닌지는 아래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더 차분히 따져보아야 할 것은 이 가운데 형성되고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의 현실적인 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국민경선제가 돈 선거, 미디어 선거를 확산시켜 선거와 정치를 TV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이들은 국민경선제를 보완하여 진정으로 국민이 정치와 선거과정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로써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국민경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쪽에서는 어차피 양대 정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이 현실인 바에는 가급적 양대 정당의 후보를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사람으로 선출하여 대통령이 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논리로 국민경선제에 힘을 실어 주려고 개혁세력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른바 386세대의 정치주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정치개혁과 정당민주주의를 위한 국민경선 2030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국민경선제에 대한 국민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또한, 친여 성향의 종교계·학계·문화계·시민사회단체·청년단체 등 각계 인사 1025명은 지난 2월 15일 `정치개혁과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국민경선참여운동본부'를 발족하였다.
이중에서 386세대들이 말하는 국민경선제는 더욱 솔직하다. 가령, 전대협 1기 의장이었던 이인영은 "87년 직선제 개헌이 민주화 혁명의 시작이듯 2002년의 상향식 공천과 국민참여경선제의 도입은 정당혁명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것은 불완전한 정당혁명이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87년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의 물꼬를 텄던 청년세대가 이번에 다시 한번 정치개혁의 거대한 물결을 이루기 위해 모였다"며 국민경선제 참여의 의미에 색칠을 더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정당/정치개혁이란 문자 그대로 보스정치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하여 이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보 선출단계에서부터 민심과 여론을 반영할 수 있어 국민들은 정치개혁을 위한 핵심적 제도"라고 하는 국민경선제를 통해 도대체 누구를 후보로 선출하라는 것인가? 민주당 7룡 중 가장 민심과 여론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이회창 대신에 박근혜를 선택하라는 것인가?
웃지 못할 일은 국민경선제를 둘러싸고 87년의 논쟁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를 두고 민주개혁세력의 후보단일화를 목놓아 외치고 있다. 학생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임종석은 "지난 87년 국민들의 폭발적인 민주화의 열기와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쟁취한 직선제를 놓고 그 천재일우의 기회에 대통령후보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역사의 전진을 10년 이상 늦췄던 양 김씨의 역사적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는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민주당내의 민주개혁세력이 하나가 되는 것은 모두가 이기는 길이자 전진하는 역사를 쓰는 길이기도 합니다"라며 민주개혁세력의 후보 단일화를 외치고 있다.
뿐만아니라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지지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며칠 전 광주전남 각계인사 501명은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바로 개혁을 바라고, 참된 복지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승리"라며 "민주개혁 통합세력의 정통성을 가지고 일관된 철학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국민통합, 남북화해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노무현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무현 지지선언은 부산경남과 제주에 이어 지역으로는 세 번째 있는 일이다.
이처럼 국민경선제는 민주당내 개혁세력의 단일화와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혹은 적극적) 지지론으로 수렴되어 가면서 국민의 정치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그것도 15년 전 87년 대선과 유비해서 말이다.

정치의 보수화와 반동화

그러나 마치 대통령선거로 착각하게 만드는 국민경선제의 이 마력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 투쟁했던 민중이 군사독재를 압박하여 당시의 정치지형을 형성시켰던 것과 현재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도 민주당 내부라는 울타리 속에서 외치는 후보단일화와 개혁세력의 연합은 사실상 아무런 정치발전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국민경선제는 정치체제를 고착화하고 보수화 한다는 점에서 그 고유한 반동성이 존재한다. 만약 경선제가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눈을 돌려 일본의 사례를 보아야 한다.
모리 전 총리 재임시 일본의 자민당은 당내 내분과 부패 스캔들로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급기야 모리 총리가 사임하였고 새 총리를 선출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몰렸다. 이 상황에서 제일당인 자민당은 관행대로 각 계파의 보스들이 밀실에 모여 적당한 인물을 낙점하는 방식으로 총리를 지명하려 했다. 그러자 자민당 내 소장파 의원들과 여론은 보스중심의 총리선출 방식에 강력하게 저항하였고 결국, 총리 경선을 실시하게 된다. 이때 이러한 개혁(?)을 주도했던 고이즈미는 당당히 총리 후보로 나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다.
그러나 이렇게 당선된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나까소네 이후 가장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일본 총리로 손꼽히고 있다. 국기·국가에 관한 법을 만들어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걱정을 확산시켜 놓더니만, 전쟁 뒤 총리로는 최초로 신사참배를 감행했으며, 미국의 반테러전쟁에 힘입어 자위대의 해외파병과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비록 일본의 총리 경선이 국민참여형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처럼 경선제 그 자체는 민주주의와 정치발전과 아무 상관없다. 비록 경선제가 지지세력이 약하거나 중앙정치의 경험이 없는 정치파벌의 세력확대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도, 모든 선거인단-당원이건,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이건-은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 경쟁력 있는 후보라는 것은 표를 더 많이 얻는 후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시행초기에는 더 개혁적인 후보를 선출하게 될지 몰라도 횟수를 거듭하면서 더 보수적인 후보를 선출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의 예비선거제 도입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68년 미국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민주당내 급진파인 맥거번은 대통령 후보의 밀실공천을 문제삼았다. 그 결과 민주당은 예비선거제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대선에서 맥거번은 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표 차이로 닉슨에게 대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카터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은 집권에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미국 민주당은 1960년대 혼란기에 성장한 흑인, 청년, 여성, 스페인계 등이 당내에서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하고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신흥중간계층을 포괄하여 새로운 지지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된다. 결국 민주당은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통해서야 집권이 가능하였다. 중도보수의 기치를 내건 클린턴은 "무조건 식권을 나누어주는 정책은 중단한다"고 말하며 보수주의적 정책을 선별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러한 클린턴의 공약은 그의 당선을 통해 민주당의 새로운 노선으로 인정받았고, '신민주당'의 흐름은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게다가, 경선제는 정치체제를 더욱 보수적인 구조로 만든다. 앞서 지적했지만 지금의 국민경선제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다. 그러나, 경선제는 당선 가능한 후보는 양대 정당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며, 대선 이전에 이미 경선제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결국 국민이 양당에 참여하여 좀더 국민적인 후보 혹은 민주개혁세력의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양당제도의 고착화이다. 미국 또한 경선제의 도입으로 미국식 양당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제도화하였고, 이제는 정치체제를 바꾸는 것이 좀처럼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와 국민경선제

그러나 이들의 의도대로 국민경선제가 국민적 참여 하에 국민의 정치적 열망을 수렴시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글머리에서 서술한 몇 달 동안의 정치사를 살펴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유는 국민경선제는 민주당의 위기로부터 파생되었으나, 근본적으로 지배세력 내부의 정치 위기가 낳은 산물-보수정치에 대한 민중의 불신-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그리고 수평적 정권교체는 다양한 세력과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영남 고립을 목표로 한 호남과 충청세력의 지역연합(영남헤게모니에 대항한 지역연합) 그리고 보수와 개혁 연합인 DJP연합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386세대와 시민운동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는 핵심적인 주도세력으로 신자유주의 지지연합을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집권과 동시에 추진한 재벌개혁을 통해 미국식 기업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을 구축하고 주식시장과 벤처의 육성을 통해 경제적으로 이를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이 위기에 처하면서 이를 수행하는 정치적 결사체로서 민주당의 위기는 예견된 일이었다.
민주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발표와 북한특수를 앞세우고 2000년 총선을 맞이한다. 그러나 1999년부터 터져 나온 각종 신자유주의적 부정부패 사건과 경제위기의 확산으로 인해 총선에서 두드러진 약진을 하지 못한다. 그 때부터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주도권은 점차로 약화되어 386세대와 시민운동을 등에 업고 휘날린 개혁주의의 깃발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현재의 상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대중의 실리주의적 기대가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정치적 지지를 철회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주식투기-벤쳐 열풍의 붕괴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주요 수혜자였던 중상층의 절대적 지지가 쇠퇴한 계기가 되었으며,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로 지목된 수출산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은 만성적 불황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을 전반적으로 확대했다. 결국 이 상황은 2001년 재보선의 패배로 이어졌다. 여기에 불을 보듯 자명한 권력재창출에 대한 위기의식, 이회창 대세론의 확산에 따라 부르주아 정치세력 관계의 전변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국민경선제가 단지 민주당의 위기가 아닌 부르주아 정치 전반의 위기를 반영하는 이유는 반DJ-보수세력도 동일한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료보험 재정통합 1년 6개월 유예, 남북관계 관련 3법 개정 등을 통해 김대중 정권의 정책개혁 중 일부를 실질적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교원정년 1년 연장, 법인세 1% 인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실질적인 정책효과보다는 보수세력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함이다. 전반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조 전반을 역전하기보다는, 몇 가지 주요 쟁점들을 중심으로 김대중 정권과 대립점을 대중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이다. 결국 한나라당과 이회창, 자민련, TK로 압축되는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김대중 정권과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달리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보수화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따라서 IMF 구제금융협약/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나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배분파를 대체하려는 반DJ-보수세력의 정치적 성격은 대단히 모호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이 DJ의 신자유주의 지배분파를 대체하여 새로운 지배연합을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갈등(TK의 정치적 준동)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속된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반동성에 따른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 상황이 국민경선제와 같은 정치체제의 형식적 변화를 강제(!)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위기 즉, 민중에 의한 광범위한 정치 불신을 국민경선제라는 형식적 체제의 변화로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 때문에 이 변화는 결코 '진보'이거나 혹은 '개혁'인 것조차 아니다. 나아가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 동조하면서 집시법 개악은 물론 테러방지법 제정을 시도하고, 월드컵과 선거를 전후로 하여 각종의 계급타협적, 애국주의적 준동으로 지배세력의 반동적, 보수적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의 보수화, 반동화 경향은 현재 '강화'되고 있다.

경선제,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가

지배세력에게 이번 선거는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위기관리라는 역사적 책무를 수행할 지배분파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가장 관건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현재 계급적 세력관계는 부르주아 계급의 압도적 우위처럼 보이지만, 1980년대 말 3저 호황 때와 같은 물질적 뒷받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정치적 우위는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정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부르주아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근본적인 취약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결국 마지막 방편으로 '정치개혁/정당개혁'의 불가피성이 대두되는 한편, 부르주아 권력체계를 안정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개헌 논의도 공론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편도 2002년 선거라는 기제를 통해서만 그 현실적인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위기관리 국가의 위기' 즉, 신자유주의 지지연합의 이완과 해체,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선거는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위기 관리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국민경선제는 선거를 발판으로 하나의 위기관리 기술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지지연합의 재구축과 국민대중의 정치참여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획기적이라 할만한 반부패 캠페인 및 정당개혁에 있어서도 국민의 관심과 참여는 매우 취약하다. 국민경선제에 드러난 국민적 냉담은 바로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부르주아 내부의 정치적 통합력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력한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정치의 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만약, 반DJ-보수세력에 의한 가장 반동적인 형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정치적 위기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계급갈등 역시 증폭될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의식과 행동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의 국면에서 개혁주의 대 보수주의의 대립으로 전면화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르주아 진영의 이러한 공방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체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놀음에 지친 노동자 민중이 부르주아 정치에 대해 환멸하고 좌절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설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경선제에 참여할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경선제를 필두로 한 정치적 보수화와 개혁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이 전선의 주체로 나서는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경선제와 같은 형식적 정치개혁에도 정치가 더 보수화 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라는 것이며, 그 균열의 폭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국민경선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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