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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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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정치공학 : 위기관리의 통치체제?

이민영 | 회원
1. 들어가며

오늘날의 변화하는 현실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IMF 구제금융 신청과 일련의 구조조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증폭되었다. 그러나 논의의 외형적인 확산에도 '신자유주의'의 구체적인 실체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를 종종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거나 단순한 시장근본주의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피상적인 이해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특성을 분석하지 못하며, 그 대안도 시장에 사회나 국가를 대립시키는 허구적인 형태를 띤다. 이로 인해 정치적 전선이나 쟁점도 모호해지며 종종 국가의 몇몇 정책개혁은 '반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심지어 사회적, 민중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지칭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그 기원을 1970년대의 구조적 위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1980년대의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와 같은 신보수주의와 구별된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소위 '국가실패론'과 이로부터 도출되는 '작은 정부론'으로 요약되는 신보수주의적 반작용에 대해 '정책개혁론'을 통해 새로운 경제정책과 통치체제(governance)를 구축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책개혁의 구체적 내용과 그것이 동반하는 정치적·사회적 제도변화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2. 구조적 위기와 정책개혁의 한계

신자유주의를 특징짓는 단어는 '위기'라는 단어다. 제3세계의 외채위기, 아시아의 외환위기, 중심부 국가들의 경제위기, 주변부 지역들에서의 종족적, 인종적 갈등과 정치위기 등 위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위기들은 최종적으로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위기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에 따른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제기하는 '정책 개혁'은 이러한 위기의 '구조적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국가의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은 정치인들과 정책입안자의 의지나 타협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은 특정한 국면에서 자본축적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으로 제안되며, 정치인들은 나름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이러한 제안을 정당화할 뿐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말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이미 레이건과 유사한 정책을 실행했으며, 이를 자신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더욱 체계적인 이데올로기를 제시한 보수주의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영국의 집권 보수당도 이와 동일하게 블레어식의 정책을 추진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붕괴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의 핵심적 지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축적위기에 놓인 자본의 금융적 확장에 조응하는 제도적 장치를 세우는 것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은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적 확장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적인 금융표준을 정립하고 IMF를 매개로 이를 전세계에 강제하는 것이다. 중심부 국가에서는 이와 함께 연금기금이나 헤지펀드와 같은 기관투자자의 활동은 적극적으로 지원되며, 이를 통해 금융의 피라미드식 확장이 뒷받침된다. 중심부 국가에서는 중산층과 노동자층까지 광범위하게 금융시장의 투자자로 진입하면서 금융적 확장의 지지대이자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3세계의 경우 이는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형태를 띠고 진행된다. 이러한 정책개혁의 전제는 남미 및 여타 반주변부 국가의 외채 및 외환 위기가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의 문제가 아니며, 더 근본적인 경제적 토대의 조정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방향은 외채 및 외환 위기라는 충격을 매개로 금융구조와 기업구조를 전환시켜서 이른바 '신흥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저금리·반인플레 정책이라는 화폐정책이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 된다. 신흥시장 창출전략은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해서 외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개혁은 두 가지 객관적인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우선 장기적인 성장의 전망을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체제다. 부채로 부채를 갚는 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처럼 성장에 대한 기대에 근거를 둔 채권 및 주식 투기가 오래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금융 투자자의 '단기주의'는 이러한 체제의 필연적 부산물이며, 그것은 종종 전세계적인 금융적 불안정성과 결합된다.
구조적 위기에 대한 '위기의 지연'의 성격을 가지는 정책개혁은 이러한 경제적 한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한계도 내포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은 끊임없이 배제되는 지역을 낳는다. 이들 지역은 어떤 투자도 배제되며, 그 결과 그 지역의 빈곤과 사회적 불안정은 심화되고, 이는 종종 인종적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중심부 국가와 금융적 확장 체제의 말단에 포섭된 '신흥시장'들 사이의 사회적 격차는 심화되고, 자국 내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된다. 많은 경우 이러한 사회적 위기는 '배제된 자들의 전쟁상태'를 낳지만, 종종 이들이 상호간의 갈등과 경쟁을 극복하고 정치적으로 조직될 때 지배체제 전반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3. 금융세계화와 정치적 위기 관리

1990년대 들어 확고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세계화에 부합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정책 지향이다. 이러한 정책적 지향에 의해 재구성된 축적체계는 항구적인 내적 불안정성에 시달리는데, 이는 정치사회적 변화와 위기를 동반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존의 민족국가와 그에 근거를 둔 정치의 관행에 결정적인 제약이 등장한다.
첫째, 금융세계화는 기존의 민족국가 내부의 도시들 사이에서, 그리고 각각의 도시 내부에서 불평등을 증폭시킨다. 세계적으로 금융적 팽창의 중심이 되는 세계 도시(global city)의 네트워크가 출현하고 있으며, 도시 내부에서도 금리 생활자 층의 독자적인 '담장 도시'가 출현하고 있다.
둘째, 기존의 정당체계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적 전망을 구조적으로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세계적인 금융표준이 전세계에 강제되면서 개별 국가의 자율적인 재정정책이나 사회정책의 폭은 지속적으로 협소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이 존재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새로운 통치전략을 내포하게 된다. 그것은 먼저 기존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재구성한다. 즉 이른바 국가실패론이나 작은 정부론에 대한 대안이 제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는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사회적 투자국가'로 재규정된다. 국가는 일종의 '투자'라는 관점에서 각종 사회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의 단적인 예는 복지정책의 변화인데, 이제 복지정책은 사회적 권리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필요 노동력에 대한 투자가 된다.
이와 같은 국가의 변화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정당의 활동 방식의 변화와 밀접히 연관된다. 구조적인 위기와 위기의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개혁 속에서 지배적 정당은 장기적 전망이나 정치 이념보다는 항상적으로 발생하는 위기에 대한 미봉적 대응을 통해 상호경쟁 한다. 즉 다양한 이념의 정당들이 대중적인 이슈에 그 때 그 때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다른 정당과 스스로를 구별시켜내는 이른바 무지개 정당(catch all party) 혹은 국민정당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변화는 국가와 정당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사회세력과 이익 집단이 자신의 이해를 위해 직접행동을 조직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당이 다양한 사회세력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접합시켜내기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국가가 더 이상 안정적인 사회보장 정책과 기관을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직접행동의 과정에서 몇몇 사회운동 조직은 종종 공익을 내세우며 위기의 표피적 현상을 관리한다. 즉 과거 국가기구에 의해 관리되던 사회정책의 일부를 사회운동 조직이 대행하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전세계적 현상으로 등장한 NGO의 활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4. '발전의 위기'와 구조조정의 정치학

20세기 중반 미국 헤게모니와 냉전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유세계'의 국가는 언젠가는 미국과 같은 풍요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했다. 즉 반공의 대가는 발전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공·발전주의'는 금융세계화와 함께 종언을 고했다. 빈발하는 외채위기와 외환위기는 저발전 국가와 발전 도상국가에게 '발전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구조조정은 단순한 경제적 위기와 이에 대한 경제정책적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발전'과 같은 사회통합적 이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경제적 정책개혁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을 요구하며, 이는 기존 지배연합 및 통치형태의 변화를 동반한다.
무엇보다 먼저 발전의 위기와 동반된 구조조정은 하나의 정치이념으로서 '금융적 발전'이라는 매우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를 동반한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세계적 표준에 걸맞게 금융제도를 개혁하여 세계적인 금융적 확장과 그에 따른 '발전'의 부산물을 획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금융적 불안정과 국부의 유출, 금융관련 부패의 확산,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 등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구조조정에 부합하는 정치적·사회적 제도변화에 대한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소위 국가의 '배태된 자율성' 명제에 입각해서 권위주의적 국가주도 경제성장의 긍정성을 표명했던 발전국가론자들은 최근 국가-(시민)사회 시너지 효과라는 새로운 국가-사회 관계의 정립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제3세계 민주화 이행이나 동유럽 체제 이행을 연구했던 이들은 구조조정이라는 '눈물의 계곡'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불만을 관리할 수 있는 중도 좌파 정부 혹은 파퓰리즘 정부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이 뜻하는 바는 지속적인 구조조정 상황에 부합하는 정치 형태로 일종의 '위기관리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기 관리 국가는 취약한 재정 속에서도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정·관리할 수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어떤 일관된 정책보다는 빈번한 사회적 문제를 기동성 있게 봉합할 수 있는 정당체계가 요구된다.
이와 동시에 구조조정의 지지자이자 갈등의 효율적 관리자로서 NGO의 적극적인 활용이 요구된다. 국가-사회의 시너지 효과가 가리키는 바는 위기관리 국가와 NGO의 결합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위기 관리는 금융적 이해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취약한 자원을 상황에 따라 배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종종 법률적 절차, 전문적 지식, 미디어의 활용을 동반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은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미봉책의 연속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잃어버린 10년'을 돌이켜 볼 때 위기관리 국가는 사실 '항구적인 위기'를 전제로 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어떤 정권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며, 그 결과 지속적인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위기는 지속된다. 이 속에서 기존의 모든 정치세력들에 대한 대중적 불신은 증가하고, 정치적 과정은 희화화된다.

5. 맺으며

오늘날의 경제적 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 상의 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구조적 위기이며, 이에 따른 세계체계 전반의 위기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여 한편으로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적 확장에 조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정책적 전망을 표명한다. 또한 그것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위기 관리를 위한 다양한 정치적 기관의 활용을 동반한다.
그러한 이러한 금융적 확장과 위기 관리의 전략은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배제와 포섭'의 기제를 발전시킨다. 세계의 많은 지역들이 '버려진 땅'으로 배제되며, 개별 국가 내에서도 지역적, 계급적 배제와 포섭의 양상이 일반화된다. 정치적 위기 관리는 배제의 과정을 관리하고 선별적인 포섭의 기제를 작동시키며, 지속적으로 민중적 주도성을 침식하는 경향이 있다. 구조적 위기와 이에 대한 해결책의 부재 속에서 정치적 현실에 대한 대중적 토론의 부재는 현실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 우리는 최근의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접하면서 이러한 정치의 비극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정치세력도 위기를 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단화된 대중의 환멸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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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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