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신자유주의 반대 국제연대 운동, 세계사회포럼에서 조망한다
"민중의 생활 조건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세계 사회운동들인 우리 수 만 명은 포르투알레그레 제2차 세계사회포럼에 모였다. 우리는 우리의 연대를 깨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모였다.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대한 우리의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지난 사회포럼의 결의를 되새기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기 위해 여기에 다시 모였다." - 제2차 세계사회포럼 결의문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 평화와 사회정의를 위하여' 중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개최된 제2차 세계사회포럼에는 130여 개 국 5,000개 단체의 5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모여 800여 개 회의, 세미나와 워크샵을 통해 다양한 의제들을 토론했다. 세계사회포럼이 지난 수년 간 급성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운동의 집약적 성과이고,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2001년도는 세계 지배계급과 전세계 운동진영 모두에게 희망과 절망 둘 다 가져온 해였다. 제노아 G8 반대시위에 3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반신자유주의 시위대가 모였고, 한 명의 시위자가 살해당했다. 9월 11일에는 '막강' 미국이 공격당했고 이에 보복한답시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 위협을 서슴치 않고 있다. WTO 각료회의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 자유무역의 반민중성과 제3세계에 대한 착취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으며, 그 와중에서 초국적 기업 엔론이 몰락해 금융세계화의 무정부성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연말에 결국 파산 선포를 한 아르헨티나는 IMF의 구조조정과 외채의 악순환이 어떻게 한 국가를 몰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으며,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로 번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우여곡절의 파노라마가 각 국 또는 국제적 수준에서 사회운동들에게 절망과 희망 모두를 가져다줬고, 이 사건들은 2001년도 사회운동들에게 중요한 국면이 되었으며 세계사회포럼에서 주요 논의 지점이 되었다. 이 글은 지난해를 거듭나면서 국제연대운동에 대해 진행되었던 이러한 평가와 논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세계사회포럼이 전세계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회합이었던 만큼, 농민운동이든 빈민운동이든 각자의 운동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고 전망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대규모 행사라 그 어느 누구도 '전부'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이며, 여기에서도 필자가 직접 참여한 몇 가지 세미나와 회의를 기반으로 쟁점들을 정리하고 평가를 하도록 하겠다.
필자가 참여한 세미나와 회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이틀 간 진행된 '사회운동들의 평가 및 전망'으로서, 남아메리카 사회과학연구소 연합(CLACSO),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WFA), 세계여성행진, 제노아사회포럼, 사미르 아민, 월든 벨로 등 여러 단체, 네트워크와 개인들이 개최했다. 여러 명의 발제자들이 나와 자국 내에서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소개하거나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를 제시하는 등, 일국적 투쟁과 국제적 투쟁 모두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수위에서 진행되었다. 또 다른 축으로는 결의문(call to action)을 작성해나가는 과정으로 개최된 일련의 회의들이며, 제1차 세계사회포럼의 결의문이 만들어졌던 같은 과정이다. 이 과정은 비아 깜페시나, 남반구포커스와 아탁이 주관했는데, 2월 1일 '사회운동들의 첫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결의문에 넣고 싶은 다양한 의제들을 자유롭게 제기하였고, 그 자리에서 구성된 '결의문 작성위원회(drafting committee)'는 제기된 바를 기반으로 이틀 간 결의문을 직접 만들었다. 2일과 3일에는 공개 회의가 지속적으로 열리면서 결의문이 수정되었고, 2월 4일 '사회운동들의 마지막 회의'에서 최종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워낙 다양한 세력이 모여 하나의 결의문을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현 국제연대운동의 성과와 더불어 한계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확산과 대중화
가장 자주 언급된 2001년도 국제연대 운동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는 제노아 투쟁이었다. 7월 제노아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30만 명이라는 역사에 남을 엄청난 인원이 집결했다는 점은 전세계 모두에게 매우 가슴 벅찬 일이었다. 제노아 투쟁은 시애틀 투쟁 뒤로 꾸준히 확산되고 확대되어 간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한 청년의 죽음은 시위대를 더욱 분노하게 했으며 이탈리아 경찰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제노아 투쟁의 후과로 이탈리아에서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전국적 대중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활동가가 힘주면서 말했다. 지역별로 130개의 '사회포럼'이 조직되어 2-3개월마다 전국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분명한 성과이기도 하고 다양한 운동간 연대를 꾀하고 안정화하는 장치로서 자리잡은 세계 및 지역 '사회포럼'의 성과이기도 하다. 한편, 시위 뒤로 '블랙 블록'을 위시로 한 '소수의 폭력'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는데,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소수의 폭력'에 대한 명백한 규탄과 그들을 운동에서 분리시켜내려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테러리즘' vs. '테러리스트 행위'
9.11 사태 뒤로 미국을 선두로 제국주의 국가가 벌인 '대테러 전쟁'도 사회운동에게 큰 논쟁 지점이었다. 우선, 9.11 뒤로 각종 '반테러' 조치로 사회운동을 범죄화 하려는 시도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점이 큰 성과로 지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폭발한 반전평화운동, 제3세계에서 붉어져 나온 반미반제운동 그리고 반신자유주의 운동 간 상호 연대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고, 이러한 연대 가 북반구 중산층 중심의 기존 평화운동을 급진화하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회운동의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고,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전쟁 반대, 제국주의 반대'라는 구호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운동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참가자 대부분은 '대테러 전쟁'은 사실상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술책이라는 큰 틀에서는 동의를 했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지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을 테러리즘(terrorism)이라 규정할 것인가, 테러리스트 행위(terrorist act)라 규정할 것인가 아니면 범죄 행위(act of crime)라 규정할 것인가? 필자가 결합했던 결의문 작성위원회에서 이 논쟁이 가장 핵심을 이루었다. 결국 '테러 행위'라는 표현이 모두에게 그나마 만족스러운 표현인 것으로 결론지어졌고, 대신 미국이 아프간에 대해 '테러리스트적 방법terrorist method)'을 사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결국 양쪽 모두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또한 아프간에 대한 공습을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위라 할 것인가 아니면 전지구적 자본 축적을 쫓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이라 부를 것인가를 놓고 늦은 밤까지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한 논쟁은 더욱 확대되어, 대륙별 또는 지역별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들(인도/파키스탄 분쟁, 바스크 독립운동 등)을 어떠한 개념으로 포괄할 것인가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즉,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분쟁의 근원을 모두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뭉뚱그린 채 넘어갔다.
여성주의 없이 또 다른 세계는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이든 군사주의이든, 가장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저임금) 노동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또한 여성은 전세계적인 보수화, 우경화 추세의 희생자가 되고 있으며, 탈레반 못지 않게 반여성적이고 무자비한 북부동맹의 악몽을 겪어야 하는 것도 결국 여성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반여성적 속성 때문에 여성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국제연대를 꾀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여성들의 국제적인 조직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발전했고 이러한 발전은 세계사회포럼에서 잘 드러났다. 여성들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토론이든, 전쟁 반대 시위이든, 대안에 대한 논쟁이든, 이 모든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체로 나섰으며 이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에 있어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일보진전'이다.
브라질여성연합, 경제 변혁을 위한 라틴아메키라 여성연합(REMTE), 세계여성행진(WMW) 등 페미니스트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여성주의적 대안에 관한 세미나와 워크샵을 개최하면서 가부장제와 더불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2월 2일, 여성의 빈곤화와 폭력을 규탄하는 집회, 문화 퍼포먼스와 낙태권 캠페인 등 세계사회포럼 동안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여성주의 없이 또 다른 세계가 불가능하고, 세계가 변해야 여성의 삶도 변한다'라는 기치로 세계사회포럼 조직위원회에 가입해있는 세계여성행진은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운동을 평가하거나 조망하는 모든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운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기도 했다. 실제로 세계여성행진의 촉구 및 '감시' 덕분에 각 세미나 주최측은 최소한 발제자의 남녀비율을 맞추는 데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올해 '외채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이 개최되었듯이, 내년에는 '여성폭력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개최가 계획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대운동에서 '주류'와 '비주류'
마지막으로, 그다지 큰 논쟁 지점으로 발전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필자의 머리 속에 맴돌고 있는 문제는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엔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상징적인 대규모 시위에 작지만 소중한 투쟁이 묻히고 있다는 걱정이 핵심이다. 특히 시애틀에서 최근 제노아 투쟁까지, 그 상징적 투쟁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모두 북반구에서 열렸었다는 점은 이 문제가 단순히 '규모'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 운동은 '사회운동'의 다양성을 장려하고 남반구의 전투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 영감을 받지만, 여전히 북반구 중심의 운동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힘들었다. 세계사회포럼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참여도가 여전히 미미하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사회운동에 대한 각종 회의에나, 필자가 결합했던 '결의문 작성위원회(drafting committee)'에 아시아 및 아프리카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다양성과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의 주최 단체 활동가들(주로 백인)이 매우 애를 썼고, 이러한 노력은 긍정적임에도 현실을 그대도 나타내기 때문에 씁쓸하기도 했다. 국가별, 대륙별 사회포럼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아시아 지역 연대의 필요성이 점점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풀려나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 국제연대'라는 관점이 견지되지 않으면 국제연대운동은 결국 몇몇의 북반구 출신 국제적 '명망가' 또는 '상층부'만의 운동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세계'를 위한 실험의 장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은 2월 4일 '사회운동의 마지막 회의'에서 기본적 민주주의 쟁취, 외채 탕감과 배상, 토빈세 등 투기 금융 통제, 여성권 증진 등을 주장하는 가운데,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4월 17일 세계 소농의 날, 5월 1일 세계 노동자의 날을 주요 국제 기념일에, 그리고 3월 15일 유럽연합 정상회담(스페인), 민주노총이 제안한 5월 31일 '평화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가칭)', 9월의 리우+10(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특정 계기와 국제 회의가 있는 시기에 국제연대 투쟁을 진행할 것을 결의했다.
130여 개 국에서 5만 명을 집결시킨 세계사회포럼은 1999년 뒤로 폭발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 운동의 집약된 성과이자,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기도 하다. 참가자 대부분은 이번 회의도 성공이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에스끼벨, 멘추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소말리아 ILO 사무총장,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등 국제적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것은 세계사회포럼, 나아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대중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 동안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대안이나 어떠한 제도적 기반도 없는 맹목적 비판이었다는 '누명'을 씻게 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이제 이 운동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세계사회포럼의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걱정과 한계에도, 세계사회포럼은 분명히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에 균열을 내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세계사회포럼은 이 두 세계 사이의 경계에 있는, 하나의 '장'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투쟁과 열린 토론의 여러 가지 공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큰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에 모였던 5만 명은 서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적 지향도 다르고, '다른 세계'에 대한 상도 다르다. 그럼에도 함께 '신자유주의 반대'와 '전쟁 반대'를 외쳤다. 세계경제포럼이 신자유주의의 첨병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고 다수를 빈곤의 굴레 속에 빠뜨리기 위한 전략을 짜는 연례 행사라면, 세계사회포럼은 이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등이 실현될 수 있는, 자본이 아닌 민중 중심의 대안적 세계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한 실험의 광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개최된 제2차 세계사회포럼에는 130여 개 국 5,000개 단체의 5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모여 800여 개 회의, 세미나와 워크샵을 통해 다양한 의제들을 토론했다. 세계사회포럼이 지난 수년 간 급성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운동의 집약적 성과이고,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2001년도는 세계 지배계급과 전세계 운동진영 모두에게 희망과 절망 둘 다 가져온 해였다. 제노아 G8 반대시위에 3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반신자유주의 시위대가 모였고, 한 명의 시위자가 살해당했다. 9월 11일에는 '막강' 미국이 공격당했고 이에 보복한답시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 위협을 서슴치 않고 있다. WTO 각료회의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 자유무역의 반민중성과 제3세계에 대한 착취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으며, 그 와중에서 초국적 기업 엔론이 몰락해 금융세계화의 무정부성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연말에 결국 파산 선포를 한 아르헨티나는 IMF의 구조조정과 외채의 악순환이 어떻게 한 국가를 몰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으며,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로 번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우여곡절의 파노라마가 각 국 또는 국제적 수준에서 사회운동들에게 절망과 희망 모두를 가져다줬고, 이 사건들은 2001년도 사회운동들에게 중요한 국면이 되었으며 세계사회포럼에서 주요 논의 지점이 되었다. 이 글은 지난해를 거듭나면서 국제연대운동에 대해 진행되었던 이러한 평가와 논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세계사회포럼이 전세계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회합이었던 만큼, 농민운동이든 빈민운동이든 각자의 운동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고 전망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대규모 행사라 그 어느 누구도 '전부'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이며, 여기에서도 필자가 직접 참여한 몇 가지 세미나와 회의를 기반으로 쟁점들을 정리하고 평가를 하도록 하겠다.
필자가 참여한 세미나와 회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이틀 간 진행된 '사회운동들의 평가 및 전망'으로서, 남아메리카 사회과학연구소 연합(CLACSO), 대안을 위한 세계포럼(WFA), 세계여성행진, 제노아사회포럼, 사미르 아민, 월든 벨로 등 여러 단체, 네트워크와 개인들이 개최했다. 여러 명의 발제자들이 나와 자국 내에서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소개하거나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를 제시하는 등, 일국적 투쟁과 국제적 투쟁 모두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수위에서 진행되었다. 또 다른 축으로는 결의문(call to action)을 작성해나가는 과정으로 개최된 일련의 회의들이며, 제1차 세계사회포럼의 결의문이 만들어졌던 같은 과정이다. 이 과정은 비아 깜페시나, 남반구포커스와 아탁이 주관했는데, 2월 1일 '사회운동들의 첫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결의문에 넣고 싶은 다양한 의제들을 자유롭게 제기하였고, 그 자리에서 구성된 '결의문 작성위원회(drafting committee)'는 제기된 바를 기반으로 이틀 간 결의문을 직접 만들었다. 2일과 3일에는 공개 회의가 지속적으로 열리면서 결의문이 수정되었고, 2월 4일 '사회운동들의 마지막 회의'에서 최종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워낙 다양한 세력이 모여 하나의 결의문을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현 국제연대운동의 성과와 더불어 한계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확산과 대중화
가장 자주 언급된 2001년도 국제연대 운동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는 제노아 투쟁이었다. 7월 제노아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30만 명이라는 역사에 남을 엄청난 인원이 집결했다는 점은 전세계 모두에게 매우 가슴 벅찬 일이었다. 제노아 투쟁은 시애틀 투쟁 뒤로 꾸준히 확산되고 확대되어 간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한 청년의 죽음은 시위대를 더욱 분노하게 했으며 이탈리아 경찰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제노아 투쟁의 후과로 이탈리아에서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전국적 대중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활동가가 힘주면서 말했다. 지역별로 130개의 '사회포럼'이 조직되어 2-3개월마다 전국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분명한 성과이기도 하고 다양한 운동간 연대를 꾀하고 안정화하는 장치로서 자리잡은 세계 및 지역 '사회포럼'의 성과이기도 하다. 한편, 시위 뒤로 '블랙 블록'을 위시로 한 '소수의 폭력'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는데,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소수의 폭력'에 대한 명백한 규탄과 그들을 운동에서 분리시켜내려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테러리즘' vs. '테러리스트 행위'
9.11 사태 뒤로 미국을 선두로 제국주의 국가가 벌인 '대테러 전쟁'도 사회운동에게 큰 논쟁 지점이었다. 우선, 9.11 뒤로 각종 '반테러' 조치로 사회운동을 범죄화 하려는 시도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점이 큰 성과로 지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폭발한 반전평화운동, 제3세계에서 붉어져 나온 반미반제운동 그리고 반신자유주의 운동 간 상호 연대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고, 이러한 연대 가 북반구 중산층 중심의 기존 평화운동을 급진화하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회운동의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고,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전쟁 반대, 제국주의 반대'라는 구호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운동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참가자 대부분은 '대테러 전쟁'은 사실상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술책이라는 큰 틀에서는 동의를 했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지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을 테러리즘(terrorism)이라 규정할 것인가, 테러리스트 행위(terrorist act)라 규정할 것인가 아니면 범죄 행위(act of crime)라 규정할 것인가? 필자가 결합했던 결의문 작성위원회에서 이 논쟁이 가장 핵심을 이루었다. 결국 '테러 행위'라는 표현이 모두에게 그나마 만족스러운 표현인 것으로 결론지어졌고, 대신 미국이 아프간에 대해 '테러리스트적 방법terrorist method)'을 사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결국 양쪽 모두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또한 아프간에 대한 공습을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위라 할 것인가 아니면 전지구적 자본 축적을 쫓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이라 부를 것인가를 놓고 늦은 밤까지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한 논쟁은 더욱 확대되어, 대륙별 또는 지역별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들(인도/파키스탄 분쟁, 바스크 독립운동 등)을 어떠한 개념으로 포괄할 것인가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즉,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분쟁의 근원을 모두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뭉뚱그린 채 넘어갔다.
여성주의 없이 또 다른 세계는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이든 군사주의이든, 가장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저임금) 노동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또한 여성은 전세계적인 보수화, 우경화 추세의 희생자가 되고 있으며, 탈레반 못지 않게 반여성적이고 무자비한 북부동맹의 악몽을 겪어야 하는 것도 결국 여성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반여성적 속성 때문에 여성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국제연대를 꾀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여성들의 국제적인 조직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발전했고 이러한 발전은 세계사회포럼에서 잘 드러났다. 여성들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토론이든, 전쟁 반대 시위이든, 대안에 대한 논쟁이든, 이 모든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체로 나섰으며 이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에 있어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일보진전'이다.
브라질여성연합, 경제 변혁을 위한 라틴아메키라 여성연합(REMTE), 세계여성행진(WMW) 등 페미니스트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여성주의적 대안에 관한 세미나와 워크샵을 개최하면서 가부장제와 더불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2월 2일, 여성의 빈곤화와 폭력을 규탄하는 집회, 문화 퍼포먼스와 낙태권 캠페인 등 세계사회포럼 동안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여성주의 없이 또 다른 세계가 불가능하고, 세계가 변해야 여성의 삶도 변한다'라는 기치로 세계사회포럼 조직위원회에 가입해있는 세계여성행진은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운동을 평가하거나 조망하는 모든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운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기도 했다. 실제로 세계여성행진의 촉구 및 '감시' 덕분에 각 세미나 주최측은 최소한 발제자의 남녀비율을 맞추는 데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올해 '외채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이 개최되었듯이, 내년에는 '여성폭력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개최가 계획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대운동에서 '주류'와 '비주류'
마지막으로, 그다지 큰 논쟁 지점으로 발전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필자의 머리 속에 맴돌고 있는 문제는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엔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상징적인 대규모 시위에 작지만 소중한 투쟁이 묻히고 있다는 걱정이 핵심이다. 특히 시애틀에서 최근 제노아 투쟁까지, 그 상징적 투쟁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모두 북반구에서 열렸었다는 점은 이 문제가 단순히 '규모'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 운동은 '사회운동'의 다양성을 장려하고 남반구의 전투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 영감을 받지만, 여전히 북반구 중심의 운동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힘들었다. 세계사회포럼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참여도가 여전히 미미하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사회운동에 대한 각종 회의에나, 필자가 결합했던 '결의문 작성위원회(drafting committee)'에 아시아 및 아프리카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다양성과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의 주최 단체 활동가들(주로 백인)이 매우 애를 썼고, 이러한 노력은 긍정적임에도 현실을 그대도 나타내기 때문에 씁쓸하기도 했다. 국가별, 대륙별 사회포럼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아시아 지역 연대의 필요성이 점점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풀려나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 국제연대'라는 관점이 견지되지 않으면 국제연대운동은 결국 몇몇의 북반구 출신 국제적 '명망가' 또는 '상층부'만의 운동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세계'를 위한 실험의 장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은 2월 4일 '사회운동의 마지막 회의'에서 기본적 민주주의 쟁취, 외채 탕감과 배상, 토빈세 등 투기 금융 통제, 여성권 증진 등을 주장하는 가운데,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4월 17일 세계 소농의 날, 5월 1일 세계 노동자의 날을 주요 국제 기념일에, 그리고 3월 15일 유럽연합 정상회담(스페인), 민주노총이 제안한 5월 31일 '평화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가칭)', 9월의 리우+10(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특정 계기와 국제 회의가 있는 시기에 국제연대 투쟁을 진행할 것을 결의했다.
130여 개 국에서 5만 명을 집결시킨 세계사회포럼은 1999년 뒤로 폭발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 운동의 집약된 성과이자,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기도 하다. 참가자 대부분은 이번 회의도 성공이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에스끼벨, 멘추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소말리아 ILO 사무총장,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등 국제적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것은 세계사회포럼, 나아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대중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 동안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대안이나 어떠한 제도적 기반도 없는 맹목적 비판이었다는 '누명'을 씻게 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이제 이 운동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세계사회포럼의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걱정과 한계에도, 세계사회포럼은 분명히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에 균열을 내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세계사회포럼은 이 두 세계 사이의 경계에 있는, 하나의 '장'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투쟁과 열린 토론의 여러 가지 공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큰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에 모였던 5만 명은 서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적 지향도 다르고, '다른 세계'에 대한 상도 다르다. 그럼에도 함께 '신자유주의 반대'와 '전쟁 반대'를 외쳤다. 세계경제포럼이 신자유주의의 첨병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고 다수를 빈곤의 굴레 속에 빠뜨리기 위한 전략을 짜는 연례 행사라면, 세계사회포럼은 이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등이 실현될 수 있는, 자본이 아닌 민중 중심의 대안적 세계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한 실험의 광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