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난쟁이' 노점상이여, 희망을 쏘아 올려라!
우리 시대의 난쟁이
키 117cm, 체중 32kg의 힘없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난쟁이. 70년대 우리는 난쟁이였다. 사회는 일대 변혁을 외치며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경제 발전이라는 '거인'에게 짓눌린 우리는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아주 작은 난쟁이였다. 그러나 '더 이상 압축할 수 없는 최소'에 분노한 난쟁이들은 전태일 열사와 YH 여성노동자들을 가슴에 안고 유신과 개발독재라는 거인에 맞서 힘차게 일떠 섰다. 충만한 집합적 열망은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여공'이 아닌 '여성'과 '노동자'로서 자기-호명을 가능케 하였으며 80년 광주와 '민주'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 시대가 쏘아 올린 거대한 희망은 어느새 "잔치는 끝났다"라는 자조와 회의로 둔갑하고, 덩달아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교양 텍스트로 전락(!)해버렸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난쟁이는 없다'라는 암묵적 동의가 역으로 우리를 짓눌렀던 90년대,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환상은 IMF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제3세계에 대한 '배제'와 '반주변부의 몰락'으로 드러났고, '난쟁이'는 다시금 한국사회의 전면에 등장했다. 20대 80의 사회, 절대적 빈곤이 일상화된 시대, 유독 '시상화석'과도 같이 불안정한 삶의 극단에 서있는 오늘의 난쟁이들을 다시 만난다.
노점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지난 3월 14일 신촌에서는 "월드컵게임을 빙자한 노점단속 저지"를 위한 백만 노점 1차 투쟁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천의 집회대오는 "노점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점생존권 희생하는 월드컵 성공 기만이다!" 등등의 구호가 선명히 적힌 붉은 머리띠를 동여 메고 신촌 거리를 가득 메웠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라는 하루살이, 날품팔이 인생의 처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점상들이 하루를 공치고, 더구나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화이트 데이'에 일손 놓고 모여든 것이다. 덕분에 늦은 점심을 때우려 떡볶이에 순대라도 먹을까 했던 나는, 한편으로 아쉽지만 놀라운 마음에 순순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회대열에 합류했다. 단체 명의와 소속을 표시하는 깃발이 '롯데', '이화여대' 등 자신의 노점이 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풍경이 사뭇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삶터인 것을...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노점상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길 어언 30년..." 김민기의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개사한 '노점상의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분위기는 한층 애잔하게 고조된다. 괜시리 감상에 젖지 않으려고 딴청도 피워보았건만 98년 도원동의 기억과 빈민연대활동에서 만난 수많은 도시 빈민들의 모습이 겹치며 목구멍이 울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빈민 탄압의 악순환
86년 아시안 게임, 88년 서울올림픽, 2001년 ASEM 및 '한국방문의 해' 등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행사는 그 화려함 이면에 가슴 아픈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상계동 올림픽'이 있었겠으며, '전시 행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까. 국가가 보호해도 모자랄 마당에 높으신 양반들이 지나시다 혹시나 볼까봐, 선진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할까봐, 노점상과 판자촌은 언제나 단속과 철거의 대상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지구적 축제라 불리는 월드컵이 개최된답시고 정부당국은 여지없이 단속과 철거의 칼날을 휘두르려 한단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최근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에서는 몇몇 386 세대 지식인들이 '88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찜찜했지만, 지금은 월드컵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했단다.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정부와 각 지방 단체는 "IMF 이후 노점상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결과 보행자 도로를 무질서하게 점유한 노점상들로 인해 시민들의 보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으며, 도시미관상 가로 경관도 해치는 한편 주변에서 영업하는 점포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유로,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2년 6월까지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버스정류장 주변, 지하철역 입구에서 노점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 과정에서 노점상 수의 감소와 규격화를 유도하겠다고 한다. 예컨대 '역사문화 탐방로'와 '걷고 싶은 거리'라는 명분으로 종로 2가에서 6가에 이르는 2.5km구간에 대해 노점상 규모를 1/3 수준으로 줄이고 12개 지역을 노점절대 상대금지 구역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시 거리질서 정비차원으로 과태료 부과를 강화함으로써 외형적으로 산뜻해진 한국의 거리미관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간 노점상 연합에서 자체적으로 펼쳐온 자율질서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일뿐더러 길거리 떡볶이 등 먹거리 음식물을 규제하고 있어 고유한 거리문화로서 노점상을 특화시키겠다는 정부의 주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한술 더 떠 정부와 각 지방단체들은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노점상을 전문적으로 단속하는 용역반을 발주해 폭력적인 단속과 철거를 일삼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기만 하다. '용역깡패'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이들이 이제는 각 시도구청과 공권력의 용역발주 하에 '노점상 대책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더욱 기가 찰 뿐이다. 지난 2월 21에 대전시 노점상 연규환·송전례 씨가 철거반과 용역깡패에게 3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월드컵을 앞두고 자행되는 폭력적인 철거와 단속은 전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는 근시 행정일뿐더러 행정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생존권을 박탈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확산
그러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으로 특징지어지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서 수반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거 노점상 등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고령, 비숙련 노동자이거나 여자의 경우 주부로서 생계유지수단의 하나로 노점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현재 노점에서 영업중인 상인 중 45%가 IMF 사태 뒤로 노점상을 시작한 것만 보더라도 불안정한 삶의 극단에서 노점이 선택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노점상을 둘러싼 갈등이 비단 도시빈민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임시직, 일용직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불안정 노동층이 언제라도 노점상과 같은 극한으로 내몰릴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노점상 중 고액소득자는 극히 일부분에 그치고, 대다수는 자구적 생계수단의 하나로 노점에 종사하고 있음에 비추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에도 미달한다.
이렇듯 현재 노점상 문제는 노점상 개개인의 무능이라기보다는 불안정 노동층의 확산과 절대적 빈곤의 증대라고 하는 구조적·정세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이 책임은 현재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 하에서 민중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에게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을 빙자한 민중탄압, 김대중 정권 퇴진하라!
이미 서울시 등 당국은 철거단속을 시작하고 있다. 월드컵까지 앞으로 남은 2개월 동안 노점상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전노련을 비롯한 '노점단속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에서는 '월드컵을 앞둔 노점상에 대한 탄압 저지'를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계획 중이다. 여기서 노점상 투쟁을 보다 보편적인 쟁점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단속 저지 투쟁을 통해 조직력을 강화하는 한편 노점상 문제를 지속적으로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제기하고, 이러한 모순 극복을 위한 개혁작업 없이 단속으로만 일관하는 정권의 반민중적 본질을 폭로하며 빈민운동과 노동자 운동 및 실업자운동들이 반신자유주의(반김대중)이라는 전체 기조 속에서 상호침투와 상호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난쟁이들이여 이제 우리의 희망을 쏘아 올리자.
키 117cm, 체중 32kg의 힘없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난쟁이. 70년대 우리는 난쟁이였다. 사회는 일대 변혁을 외치며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경제 발전이라는 '거인'에게 짓눌린 우리는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아주 작은 난쟁이였다. 그러나 '더 이상 압축할 수 없는 최소'에 분노한 난쟁이들은 전태일 열사와 YH 여성노동자들을 가슴에 안고 유신과 개발독재라는 거인에 맞서 힘차게 일떠 섰다. 충만한 집합적 열망은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여공'이 아닌 '여성'과 '노동자'로서 자기-호명을 가능케 하였으며 80년 광주와 '민주'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 시대가 쏘아 올린 거대한 희망은 어느새 "잔치는 끝났다"라는 자조와 회의로 둔갑하고, 덩달아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교양 텍스트로 전락(!)해버렸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난쟁이는 없다'라는 암묵적 동의가 역으로 우리를 짓눌렀던 90년대,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환상은 IMF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제3세계에 대한 '배제'와 '반주변부의 몰락'으로 드러났고, '난쟁이'는 다시금 한국사회의 전면에 등장했다. 20대 80의 사회, 절대적 빈곤이 일상화된 시대, 유독 '시상화석'과도 같이 불안정한 삶의 극단에 서있는 오늘의 난쟁이들을 다시 만난다.
노점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지난 3월 14일 신촌에서는 "월드컵게임을 빙자한 노점단속 저지"를 위한 백만 노점 1차 투쟁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천의 집회대오는 "노점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점생존권 희생하는 월드컵 성공 기만이다!" 등등의 구호가 선명히 적힌 붉은 머리띠를 동여 메고 신촌 거리를 가득 메웠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라는 하루살이, 날품팔이 인생의 처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점상들이 하루를 공치고, 더구나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화이트 데이'에 일손 놓고 모여든 것이다. 덕분에 늦은 점심을 때우려 떡볶이에 순대라도 먹을까 했던 나는, 한편으로 아쉽지만 놀라운 마음에 순순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회대열에 합류했다. 단체 명의와 소속을 표시하는 깃발이 '롯데', '이화여대' 등 자신의 노점이 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풍경이 사뭇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삶터인 것을...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노점상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길 어언 30년..." 김민기의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개사한 '노점상의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분위기는 한층 애잔하게 고조된다. 괜시리 감상에 젖지 않으려고 딴청도 피워보았건만 98년 도원동의 기억과 빈민연대활동에서 만난 수많은 도시 빈민들의 모습이 겹치며 목구멍이 울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빈민 탄압의 악순환
86년 아시안 게임, 88년 서울올림픽, 2001년 ASEM 및 '한국방문의 해' 등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행사는 그 화려함 이면에 가슴 아픈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상계동 올림픽'이 있었겠으며, '전시 행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까. 국가가 보호해도 모자랄 마당에 높으신 양반들이 지나시다 혹시나 볼까봐, 선진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할까봐, 노점상과 판자촌은 언제나 단속과 철거의 대상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지구적 축제라 불리는 월드컵이 개최된답시고 정부당국은 여지없이 단속과 철거의 칼날을 휘두르려 한단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최근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에서는 몇몇 386 세대 지식인들이 '88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찜찜했지만, 지금은 월드컵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했단다.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정부와 각 지방 단체는 "IMF 이후 노점상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결과 보행자 도로를 무질서하게 점유한 노점상들로 인해 시민들의 보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으며, 도시미관상 가로 경관도 해치는 한편 주변에서 영업하는 점포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유로,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2년 6월까지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버스정류장 주변, 지하철역 입구에서 노점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 과정에서 노점상 수의 감소와 규격화를 유도하겠다고 한다. 예컨대 '역사문화 탐방로'와 '걷고 싶은 거리'라는 명분으로 종로 2가에서 6가에 이르는 2.5km구간에 대해 노점상 규모를 1/3 수준으로 줄이고 12개 지역을 노점절대 상대금지 구역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시 거리질서 정비차원으로 과태료 부과를 강화함으로써 외형적으로 산뜻해진 한국의 거리미관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간 노점상 연합에서 자체적으로 펼쳐온 자율질서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일뿐더러 길거리 떡볶이 등 먹거리 음식물을 규제하고 있어 고유한 거리문화로서 노점상을 특화시키겠다는 정부의 주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한술 더 떠 정부와 각 지방단체들은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노점상을 전문적으로 단속하는 용역반을 발주해 폭력적인 단속과 철거를 일삼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기만 하다. '용역깡패'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이들이 이제는 각 시도구청과 공권력의 용역발주 하에 '노점상 대책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더욱 기가 찰 뿐이다. 지난 2월 21에 대전시 노점상 연규환·송전례 씨가 철거반과 용역깡패에게 3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월드컵을 앞두고 자행되는 폭력적인 철거와 단속은 전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는 근시 행정일뿐더러 행정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생존권을 박탈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확산
그러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으로 특징지어지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서 수반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거 노점상 등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고령, 비숙련 노동자이거나 여자의 경우 주부로서 생계유지수단의 하나로 노점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현재 노점에서 영업중인 상인 중 45%가 IMF 사태 뒤로 노점상을 시작한 것만 보더라도 불안정한 삶의 극단에서 노점이 선택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노점상을 둘러싼 갈등이 비단 도시빈민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임시직, 일용직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불안정 노동층이 언제라도 노점상과 같은 극한으로 내몰릴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노점상 중 고액소득자는 극히 일부분에 그치고, 대다수는 자구적 생계수단의 하나로 노점에 종사하고 있음에 비추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에도 미달한다.
이렇듯 현재 노점상 문제는 노점상 개개인의 무능이라기보다는 불안정 노동층의 확산과 절대적 빈곤의 증대라고 하는 구조적·정세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이 책임은 현재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 하에서 민중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에게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을 빙자한 민중탄압, 김대중 정권 퇴진하라!
이미 서울시 등 당국은 철거단속을 시작하고 있다. 월드컵까지 앞으로 남은 2개월 동안 노점상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전노련을 비롯한 '노점단속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에서는 '월드컵을 앞둔 노점상에 대한 탄압 저지'를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계획 중이다. 여기서 노점상 투쟁을 보다 보편적인 쟁점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단속 저지 투쟁을 통해 조직력을 강화하는 한편 노점상 문제를 지속적으로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제기하고, 이러한 모순 극복을 위한 개혁작업 없이 단속으로만 일관하는 정권의 반민중적 본질을 폭로하며 빈민운동과 노동자 운동 및 실업자운동들이 반신자유주의(반김대중)이라는 전체 기조 속에서 상호침투와 상호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난쟁이들이여 이제 우리의 희망을 쏘아 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