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여성대회와 여성노동자운동의 과제
여는 글
민주노총 주최의 3월 9일,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준비하던 중 몇몇 단위노조 간부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3월 7일 열리는 대회는 뭔가요?", "민주노총 집회가 10일 대학로 맞나요?"
4개의 각기 다른 3·8 기념 여성대회가 열린 2002년 3월은 여느 때보다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7일, 8일, 9일, 10일 연이어 개최된 대회 일정도 그렇거니와 대회를 전후로 나와 주변 여성간부들에게 쏟아졌던 또 다른 질문들 역시 그러하다.
"기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왜 여성단체와 함께 하지 않는가?", "다른 사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들까지 갈라져서야 되겠느냐?"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조직이, 각각의 정치적 요구를 사회화하고, 각각의 조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최하는 각각의 대회들이 나에겐 오히려 자연스럽고 다양한 차이와 연대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는데 말이다. 여성(노동자)운동의 향후 전망에 대한 정치적 차이를 단지 '여성은 뭉쳐야 산다'는 통상적인 편견으로 재단한다면 이는 또 한번 여성(노동자)운동을 둘러싼 논쟁을 가로막고 그 결과 여성(노동자)운동의 올바른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모든 대회를 경과한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해 중 하나이다.
2002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의 풍경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올해 3월에는 4개의 3·8기념 여성대회가 열렸다.
3월 5-11일, 전국 10개 지역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 주최로 열린 「2002년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노동자대회」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특수고용노동자 노동법 완전적용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요구로 내걸었다. 비정규 여성노동자 문제, 그 중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문제와 청소용역, 주방아줌마와 같은 파견용역노동자들의 생계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최저임금 문제를 쟁점화 한 것이다.
8일, 한국노총 강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주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및 조직화 △모성보호 정착과 법의 실효성 확보 △성평등 의식 제고 및 여성간부 확대를 기조로 치러졌다. 특히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에 주력하고 여성간부를 확대하여 조직을 강화한다는 조직내부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이 다른 대회와 달리 눈에 띄는 점이다.
8일-9일, 민주노총 주최의 「전국여성노동자대회」는 전국 7개 지역에서 열렸다.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 보호 현실화 △성차별·성폭력·성희롱 근절 △여성노동자 희생 강요하는 노동법 개악 저지 △성매매 근절, 호주제 폐지를 기조로 열린 대회에서는 주요 요구와 함께 여성 우선 구조조정 중단, 특수고용여성노동자 모성보호 실현 등 각기 다른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담아내었다.
마지막으로 10일, 대학로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 「제18회 한국여성대회」는 △호주제 폐지 △성매매 방지법 제정, △공보육 확충의 주요 요구와 비정규 여성노동자 차별철폐,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를 담은 2002 여성선언을 채택하였다. 여성부, 서울시의 공식후원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기존과 달리 여성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주최한 대회였다고 한다.
4개의 대회를 공통으로 가로지르는 요구는 모두 우리 사회 여성과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현실은, 비정규직 문제가 여성의 문제이며, 올 한해 여성노동자운동의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임을 드러냈다.
다만 「한국여성대회」가 특수고용여성노동자를 가장 앞장서서(?) 양산하고 유령노조를 만들어 학습지 교사들의 노조결성을 원천봉쇄하고, 최근에는 갖가지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여 문제가 되었던 '눈높이-대교' 협찬으로 열렸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그다지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현재 우리나라 여성(노동자)운동의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을 말하는 것
신자유주의 하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여성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제기한 이번 대회들을 언론은 '다채로운 행사', '세계여성의 날의 환호' 들의 수식어로 포장하였다. 그 절박하디 절박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부르짖음이 어찌 그들에겐 즐거운 환호성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일까?
세계여성의 날을 지내며 분명 지배세력이 원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선 투쟁을 '여성권익 신장'이라는 국가적 과제(!)로 교묘하게 통합해 내는 것이었을 게다. 이는 김대중 정권의 출범 뒤로 가장 큰 개혁적 성과로 치장되는 여성부 신설이 지난 1년 동안 발휘했던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 70% 이상이 김대중 정권 집권 뒤에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인식한다는 2001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는 여성부 신설을 통해 정부가 얻고자 했던 바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발표된 유엔개발계획의 여성권한지수가 64개국 중 61위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배세력에겐 그저 '아직 나아지지 않은' 현실의 반영일 뿐 '더 나빠지고 있는' 여성의 삶과 여성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국의 여성지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국회의원, 고위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의 여성 비율과는 무관하게 이미 빈곤의 여성화, 불안정노동의 여성화는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확산되고 있는 여성의 불안정노동과 가부장적 성별분업의 논리가 여성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날로 하락시키고 있는 전세계적 추세에서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여성을 보다 많은 고위직에 진출시켜 '외형적인' 여성지위를 향상시키고 젊은 여성, 주부 할 것 없이 주변부 노동시장에 밀어 넣음으로써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그 자체로도 함량미달이지만 열악한 노동조건과 성적 착취에 저항하는 여성주체 형성을 가로막고 이들의 분노를 무마시키는 더욱 악질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DJ 정권과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작년 11월 모성보호 조치 확대에 이어 또 다른 선물보따리(?)를 안겨주었다. 3월 6일 여성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3개 부처가 합동 발표한 '보육사업 활성화방안'이 그것이다. 이 방안은 맞벌이 부부가 야간이고 휴일이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특수보육시설을 확대하겠다는 잔인한 발상이다. 또한 보육료 규제완화, 가정보육모제도는 보육을 시장기능에 내맡긴 채 그나마 보장되지도 않았던 공공보육을 점차 포기해 나가겠다는 노골적인 방침을 담고 있다.
여기서 다시 되새겨야 할 바는 작년에 개악된 여성의 야간, 휴일, 연장노동 규제완화에 이어 현재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는 생리휴가 무급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주5일 근무와 연동된 노동법 개악안이 일관된 정부주도의 여성노동 유연화 과정이며, 이번 보육시설 활성화 방안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모성보호를 한 단계 진전시킨 것 마냥 치장되고 있는 90일 산전후휴가 확대, 육아휴직제도는 점점 늘어가는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며 보육에 시장논리를 도입하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주5일 근무를 빌미로 여성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제도화하려는 노동법 개악의 악영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과정에서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고 비정규직화 되어 가는 여성노동자들은 막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다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양태와 마찬가지로, 일면 모성보호 조치를 확대하고 (공적이든 사적이든 상관없이!) 보육시설을 늘리는 것과 함께 여성권·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의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이중전략은 여성노동자운동의 전망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와의 명확한 전선형성이냐, 아니면 은밀한 동거이냐의 위험한 줄타기를 강요하고 있다.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자!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딛고 신자유주의의 반여성성을 폭로하고 분명한 전선을 긋는 계기가 되어야 했다. 더욱이 각 운동주체들이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자신의 계획을 밟히고 실제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의 목소리, 자발적 행동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마련하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런 투쟁의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은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당연한 요구를 선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고 이 투쟁을 여성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민중의 연대투쟁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모든 투쟁이 그러하듯, 대중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대리되는 법제도 개선투쟁은 그 자체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지배이데올로기와 끊임없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투쟁을 전체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과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음 해에 열리는 3·8기념 여성대회가 올해보다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과 당당한 실천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올 한해 여성노동자운동의 주체들이 제법 묵직한 과제를 짊어져야 할 것 같다.
민주노총 주최의 3월 9일,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준비하던 중 몇몇 단위노조 간부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3월 7일 열리는 대회는 뭔가요?", "민주노총 집회가 10일 대학로 맞나요?"
4개의 각기 다른 3·8 기념 여성대회가 열린 2002년 3월은 여느 때보다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7일, 8일, 9일, 10일 연이어 개최된 대회 일정도 그렇거니와 대회를 전후로 나와 주변 여성간부들에게 쏟아졌던 또 다른 질문들 역시 그러하다.
"기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왜 여성단체와 함께 하지 않는가?", "다른 사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들까지 갈라져서야 되겠느냐?"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조직이, 각각의 정치적 요구를 사회화하고, 각각의 조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최하는 각각의 대회들이 나에겐 오히려 자연스럽고 다양한 차이와 연대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는데 말이다. 여성(노동자)운동의 향후 전망에 대한 정치적 차이를 단지 '여성은 뭉쳐야 산다'는 통상적인 편견으로 재단한다면 이는 또 한번 여성(노동자)운동을 둘러싼 논쟁을 가로막고 그 결과 여성(노동자)운동의 올바른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모든 대회를 경과한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해 중 하나이다.
2002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의 풍경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올해 3월에는 4개의 3·8기념 여성대회가 열렸다.
3월 5-11일, 전국 10개 지역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 주최로 열린 「2002년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노동자대회」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특수고용노동자 노동법 완전적용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요구로 내걸었다. 비정규 여성노동자 문제, 그 중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문제와 청소용역, 주방아줌마와 같은 파견용역노동자들의 생계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최저임금 문제를 쟁점화 한 것이다.
8일, 한국노총 강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주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및 조직화 △모성보호 정착과 법의 실효성 확보 △성평등 의식 제고 및 여성간부 확대를 기조로 치러졌다. 특히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에 주력하고 여성간부를 확대하여 조직을 강화한다는 조직내부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이 다른 대회와 달리 눈에 띄는 점이다.
8일-9일, 민주노총 주최의 「전국여성노동자대회」는 전국 7개 지역에서 열렸다.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 보호 현실화 △성차별·성폭력·성희롱 근절 △여성노동자 희생 강요하는 노동법 개악 저지 △성매매 근절, 호주제 폐지를 기조로 열린 대회에서는 주요 요구와 함께 여성 우선 구조조정 중단, 특수고용여성노동자 모성보호 실현 등 각기 다른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담아내었다.
마지막으로 10일, 대학로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 「제18회 한국여성대회」는 △호주제 폐지 △성매매 방지법 제정, △공보육 확충의 주요 요구와 비정규 여성노동자 차별철폐,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를 담은 2002 여성선언을 채택하였다. 여성부, 서울시의 공식후원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기존과 달리 여성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주최한 대회였다고 한다.
4개의 대회를 공통으로 가로지르는 요구는 모두 우리 사회 여성과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현실은, 비정규직 문제가 여성의 문제이며, 올 한해 여성노동자운동의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임을 드러냈다.
다만 「한국여성대회」가 특수고용여성노동자를 가장 앞장서서(?) 양산하고 유령노조를 만들어 학습지 교사들의 노조결성을 원천봉쇄하고, 최근에는 갖가지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여 문제가 되었던 '눈높이-대교' 협찬으로 열렸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그다지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현재 우리나라 여성(노동자)운동의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을 말하는 것
신자유주의 하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여성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제기한 이번 대회들을 언론은 '다채로운 행사', '세계여성의 날의 환호' 들의 수식어로 포장하였다. 그 절박하디 절박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부르짖음이 어찌 그들에겐 즐거운 환호성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일까?
세계여성의 날을 지내며 분명 지배세력이 원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선 투쟁을 '여성권익 신장'이라는 국가적 과제(!)로 교묘하게 통합해 내는 것이었을 게다. 이는 김대중 정권의 출범 뒤로 가장 큰 개혁적 성과로 치장되는 여성부 신설이 지난 1년 동안 발휘했던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 70% 이상이 김대중 정권 집권 뒤에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인식한다는 2001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는 여성부 신설을 통해 정부가 얻고자 했던 바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발표된 유엔개발계획의 여성권한지수가 64개국 중 61위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배세력에겐 그저 '아직 나아지지 않은' 현실의 반영일 뿐 '더 나빠지고 있는' 여성의 삶과 여성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국의 여성지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국회의원, 고위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의 여성 비율과는 무관하게 이미 빈곤의 여성화, 불안정노동의 여성화는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확산되고 있는 여성의 불안정노동과 가부장적 성별분업의 논리가 여성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날로 하락시키고 있는 전세계적 추세에서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여성을 보다 많은 고위직에 진출시켜 '외형적인' 여성지위를 향상시키고 젊은 여성, 주부 할 것 없이 주변부 노동시장에 밀어 넣음으로써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그 자체로도 함량미달이지만 열악한 노동조건과 성적 착취에 저항하는 여성주체 형성을 가로막고 이들의 분노를 무마시키는 더욱 악질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DJ 정권과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작년 11월 모성보호 조치 확대에 이어 또 다른 선물보따리(?)를 안겨주었다. 3월 6일 여성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3개 부처가 합동 발표한 '보육사업 활성화방안'이 그것이다. 이 방안은 맞벌이 부부가 야간이고 휴일이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특수보육시설을 확대하겠다는 잔인한 발상이다. 또한 보육료 규제완화, 가정보육모제도는 보육을 시장기능에 내맡긴 채 그나마 보장되지도 않았던 공공보육을 점차 포기해 나가겠다는 노골적인 방침을 담고 있다.
여기서 다시 되새겨야 할 바는 작년에 개악된 여성의 야간, 휴일, 연장노동 규제완화에 이어 현재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는 생리휴가 무급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주5일 근무와 연동된 노동법 개악안이 일관된 정부주도의 여성노동 유연화 과정이며, 이번 보육시설 활성화 방안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모성보호를 한 단계 진전시킨 것 마냥 치장되고 있는 90일 산전후휴가 확대, 육아휴직제도는 점점 늘어가는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며 보육에 시장논리를 도입하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주5일 근무를 빌미로 여성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제도화하려는 노동법 개악의 악영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과정에서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고 비정규직화 되어 가는 여성노동자들은 막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다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양태와 마찬가지로, 일면 모성보호 조치를 확대하고 (공적이든 사적이든 상관없이!) 보육시설을 늘리는 것과 함께 여성권·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의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이중전략은 여성노동자운동의 전망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와의 명확한 전선형성이냐, 아니면 은밀한 동거이냐의 위험한 줄타기를 강요하고 있다.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자!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딛고 신자유주의의 반여성성을 폭로하고 분명한 전선을 긋는 계기가 되어야 했다. 더욱이 각 운동주체들이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자신의 계획을 밟히고 실제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의 목소리, 자발적 행동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마련하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런 투쟁의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은 중소영세비정규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당연한 요구를 선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고 이 투쟁을 여성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민중의 연대투쟁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모든 투쟁이 그러하듯, 대중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대리되는 법제도 개선투쟁은 그 자체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지배이데올로기와 끊임없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투쟁을 전체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과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음 해에 열리는 3·8기념 여성대회가 올해보다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과 당당한 실천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올 한해 여성노동자운동의 주체들이 제법 묵직한 과제를 짊어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