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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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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세계화

기원, 비용 및 노림

박준형 | 기자
F. 셰네가 총론을 쓰고 브뤼노프가 첫 논문을 쓴 이 책은 프랑스에서 97년에 출간되었다. 금융세계화의 역사와 그 전개 과정, 양상을 전반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새로운 ‘금융주도 축적체제’를 분석하는 프랑스 경제학자 7인의 글을 모았다.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폭발하기 직전에 쓰여진 이 책은 다소 늦게 번역되어 출간된 느낌은 있지만, 금융세계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꼭 참고할 만한 논문들이 담겨있다. 원래 번역은 98년에 끝났지만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서 이제야 출간을 했다고 하니, 열악한 출판계 사정에 안타까울밖에.

<b>금융세계화의 역사</b><br>

셰네의 총론과, 다음 논문인 브뤼노프의 글은 금융세계화의 역사를 정리한다. 셰네는 금융세계화의 과정을 1960~1979년, 1980년~1985년, 1986년~1995년의 각 시기로 나누어 전개과정의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첫 번째 과정은 60년대의 제한적인 금융의 국제화가 60년대 말에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1971년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 가는 과정. 금융세계화의 두 번째 과정은 볼커의 미 연준 총재임명과 영국의 새처의 집권, 미국의 레이건 집권이 현재와 같은 모습의 세계화된 시장금융제도를 탄생시킨 시기이다. 86년 이후의 세 번째 시기에는 국민적 제도들의 상호 연계가 가속화되고 제3세계의 일부가 ‘신흥시장’으로 포섭되어 간다.
브뤼노프는 이러한 과정 중에서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과 변동환율제의 채택 이후에 국제저인 통화 불안정을 다루고 있다. 특히 변동환율제 하에서 미국의 달러가 가지는 특수한 위치는 무엇이며 어떠한 기반을 가지는 지를 보여준다.

<b>금융세계화의 양상</b><br>

이러한 금융세계화의 전개 과정에 대한 통시적인 분석에 이어, 저자들은 금융세계화의 양상들을 분석한다. 이런 양상들은 98년 이후 남한에서 더욱 급속하게 진행된 금융 구조조정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주로 조절이론적 접근을 보여주는 구트만의 논문은 금융자본의 변동을 통화의 조절 방식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포드주의적 축적 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도록 하는 데 국가가 관장하는 신용화폐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화폐의 변화가 축적체제의 변화에 미치는 역할을 보여준다. 저자는 ‘가상자본’의 극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전자화폐에 대해서도 진단한다.
이어지는 논문에서 폴리옹은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각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초래한 결과를 진단한다. 각국 정부의 금융제도 자유화 정책은 금리를 올리고 공공채무를 확대하고 말았는데, 금융제도의 ‘재규제’ 정책이 없이는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어지는 클로드 세르파티의 “경제의 금융화에 있어서 지배적 산업그룹들의 능동적 역할”이라는 논문이다. 초국적기업들이 스스로 금융화되면서 산업활동에서 이윤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하여 금융시장의 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상황을 분석한다. 초국적기업들은 “중앙집권적 재무관리”를 통해서 금융적 이윤을 확보한다. 이런 재무관리는 초국적기업의 핵심기능으로 최고위층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이 되었다.
이것은 초국적기업들이 ‘지주회사’로 변화하면서 사실상 산업활동과 금융활동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는 과정을 촉진시킨다. 이미 거대 초국적자본은 산업자본일 뿐 아니라 금융자본으로서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의 인수/합병도 금융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초국적 기업의 금융화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남한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주회사의 도입시도는 물론, 각 재벌들이 그룹 산하의 투신사 등을 통해 채권시장, 증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금융세계화의 최대의 수혜자인 연기금과 뮤추얼펀드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공공채권이나 증시에 주로 투자되는 이 자금들은 ‘유동성 선호’와 관련된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각 기업들에 대해서 “준거주주”로 등장해서 기업지배구조를 변화시킨다. 금융자본이 기업지배구조를 변화하고자하는 시도는 남한에서 집단소송제, 집중투표제 등의 제도 도입과 ‘소액주주운동’으로 동원하면서 드러났다.

<b>제3세계의 금융세계화와 노동의 유연화</b><br>

후반부에 실린 “배제적 금융화 : 라틴아메리카 경제들의 교훈”은 오늘날의 남한에도 여전히 시사적이다. 중심부 국가에서 금융화 과정의 효과가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반주변부에서는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흥시장’으로 규정된 라틴아메리카의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금융적 수탈은 국가의 금융정책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결국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로 나타난다.
저자는 산업자본에 대한 이윤압박으로 인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출과 노동의 유연화(신축화)라는 쟁점을 포착하고 보여준다. 투자율의 하락과 더불어 발생하는 이윤압박은 노동의 유연화로 연결된다. 고용이 불안정화도 이 과정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하지만 금융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서 이 논문이 제시하는 논리가 치밀한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 불안정노동연구>(문화과학)과 같은 책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글머리에 언급한 것처럼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너무 늦게 나왔다’는 점이다. 여전히 이 글이 쓰여질 당시에 금융화의 추세가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97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최근 몇 년간의 지속적인 금리의 하락, 유로화의 출범과 같은 과정을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지적하는 금융화의 여러 양상이 이미 남한에서 몇 년간 진행된 금융 구조조정을 거쳐 철저히 관철되면서 ‘대세’를 형성한 후라는 것이다. 중요한 투쟁이 이미 안타깝게 정리된 경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금융노련 총파업에서 전면화 한 “관치금융 철폐‘와 같은 주장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이미 사회진보연대도 지적한바 있지만, 이 책은 그러한 주장이 신자유주의적인 요구 자체라는 것을 제시, 비판하고 있다. 그 밖의 여러 쟁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금융구조조정 과정,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쟁점화 되었던 내용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전히 금융세계화에 대한 전반적 인식을 얻기에 적당한 책이다. 금융세계화의 역사와 전개 양상을 이해하고 남한 사회의 금융구조조정을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당장’ 제시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수준의 정책대안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금융 세계화 과정의 저지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예컨데 브뤼노프는 자신의 글을 아래와 같이 끝맺고 있다.

“외환체계의 가능한 개혁의 파장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현행의 통화 정책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임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일어나지 않거나 아니면 기존의 다양한 외환체제들을 주기적으로 종식시켰던 것과 같은 심각한 국제적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위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금융세계화의 모순이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할 정도로 누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상황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할 역할이 무엇인가, 그것이 문제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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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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