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얘기
진짜 있었던 일인데, 옛날 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
옛날얘기입니다. “옛날 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로 시작되는 얘기 말씀입니다. “옛날얘기인 척 하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이번엔 정말, 옛날 어느 먼 나라 얘기입니다. 제가 지어낸 얘기는 아니지만, 원래 얘기란 것도 “진짜 있었던 일인데…“로 시작하는 것이 더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진짜 있었던 일인데, 옛날 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로, 시작하겠습니다.
특별한 아침,
1926년 5월 4일. 아침부터 뭔가 달랐다. 잠에서 깨어나 파자마를 입은 채 부스스 하품을 하며 습관적으로 현관문을 열어 본 사람들은 조간신문이 배달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새들은 변함 없이 짹짹대며 햇살을 반기고 있었지만, 항상 도시의 아침을 열곤 했던 부릉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큰길에는 버스가 지나다니지 않았으며, 기차역에는 열차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버스와 열차 대신 거리를 메운 것은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총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의 역사에서, 그 이전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총파업이었다. 영국을 세계의 굴뚝으로 만들었던 철강, 조선, 기계 공장은 여전히 우뚝우뚝했지만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았다. 발전소, 용광로, 부두에서는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항상 활기 넘치던 도시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도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시위대는 어깨를 겯고 거리를 누볐고, 가끔 경찰이나 군인들이 대체 투입되어 운전하는 버스 유리창이 시위대의 돌에 맞아 깨지기도 했지만, 어떤 도시에서는 경찰과 파업 시위대가 축구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기술이 필요한 열차는 거의 운행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설사 움직이더라도 사고와 연착이 다반사였다. 파업에 참여하기로 결의한 노조들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율은 100%에 가까웠다. 신문과 잡지는 인쇄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발행되지 못했다. 정부는 자신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 BBC 방송국에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인쇄 노동자들은 파업을 조직한 노총 산하 총평의회의 파업소식지를 인쇄했다.
총파업의 시작은 석탄 노동자들의 쟁의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지난 해 광산 소유주들은 임금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노동자측에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을 무조건 통보하였다. 광부 노조의 파업 위협에 직면한 정부는 석탄 합리화와 임금 삭감을 제시하였으나 합리화할 의사가 없었던 소유주와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노조 양자에서 거부당하였고, 석탄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미봉하고 있었다. 그런데 1926년 5월 1일 정부는 갑자기 보조금 지급 중지를 발표했고, 광산 소유주들은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 또는 직장폐쇄를 선언하였다.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광부 노조는 파업을 조직하면서 전국 노총에 지원을 요청했다. 전국 노총은 5월 3일부터 동맹파업이 시작될 것임을 선언하였다.
삼각동맹과 검은 금요일
영국의 노조들과 전국 노총이 광부들의 파업을 적극 지원한 것에는 사실 일종의 죄의식도 깔려 있었다. 몇년 전 기간산업의 사유화를 둘러싼 동맹파업 실패가 노동운동에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삼각동맹의 당사자는 광부 노조, 철도 노조, 운수 노조였다. 이 산업들은 명백한 국가 기간 산업들이었다. 산업화 경제의 동맥인 철도와 운수는 말할 필요 없고, 당시 모든 동력원이 바로 석탄이었음이 상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1차대전을 계기로 철도와 석탄 산업을 사실상 국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석탄 산업의 경우, 정부 용역 조사 보고서에서도 국유화를 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1921년 정부는 철도와 석탄 산업의 운영에 손을 떼고 재사유화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사유화되었을 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해지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특히 이윤이 저하되고 있었던 석탄 산업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노조는 파업으로 맞서기로 했다. 긴밀한 관계였던 세 노조는 삼각동맹을 결성하고 동맹파업을 결의하였다. 파업 시작 일은 4월 15일 금요일이었다. 그 전 막판까지 밤새도록 정부와 광부 노조측의 협상은 계속되었으나, 결과는 결렬이었다. 파업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각. 철도 노조와 운수 노조는 전격적으로 파업 철회를 결정하였다.
노조 지도부에게 파업 특히 동맹파업이란 항상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삼각동맹의 붕괴와 두 노조 지도부의 전격적인 이탈 결정은 영국 노동자계급에게 경악이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매우 극적으로 배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광부 노조는 홀로 3개월 동안 싸웠으나,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1921년 4월 15일의 배신은 영국 역사에서 ‘검은 금요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작업장으로 복귀하라?!
1921년의 배신과 패배는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뼈아픈 상처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의 연대와 공동투쟁을 위하여 전국 노총은 총평의회를 조직하였고, 1926년의 총파업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증명할 수 있는 계기였다.
파업의 규모는 전국적이었으며, 매우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런던의 전국 노총 본부와 지방파업위원회 사이에는 말을 탄 전령들이 시시각각 말고삐를 잡아당겼고, 파업소식지는 전국에 배포되었다. 정부는 불법파업은 결단코 엄단하겠다고 연설하였지만, 파업 대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날짜가 감에 따라 일부 이탈자가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노동계급 사이에 파업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굳건하였고 전체적인 생산도 위축되는 등 파업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총파업 9일째, 5월 13일. 전국 노총 지도부는 정부와의 교섭이 타결되었음을 선언하고 작업장으로의 복귀 지령을 내렸다. 어려운 상황과 협박에도 파업을 끌고 나가고 있었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노총 지도부의 발표는 “평화조항, 광부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거래가 보장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교섭안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부측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으며 애매한 언급뿐이었다. 직장으로 복귀한 석탄 노동자들은 탄압에 직면하였으며, 해고의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정부와의 교섭이란 순전한 항복이었음이 명백했다. 그것도 기층의 노동자 대오가 흔들리지 않고 있을 때, 전국 노총의 지도부는 갑자기 손을 들어 버린 것이었다.
지도부에게 파업 특히 동맹파업은 항상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 총파업의 동력이 도대체 얼마나 갈까? 정부가 계속 강경하게만 나오면 그 다음엔 어떡하지? 이 상황에서 혁명을 할 수도 없고… 영국의 전국 노총 지도부는 머리를 굴리고 굴렸다. 무엇보다도 지도부는 그들의 노동자 대중을 믿지 못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불신은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기층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항복을 해 버린 지도부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총평의회는 파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한 책임은 그들이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총파업은 더 이상 없었다.
그날, 나는…
2002년 4월 2일, 저는 언제나처럼 늦잠을 자고 점심때쯤 일어나 헉헉거리며 강의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나왔습니다. 지하철, 그리고 버스를 탔죠. 버스의 라디오 소리.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오늘 오후 총파업을 철회하였습니다.“ 오잉? 제 귀가 쫑긋 일어섰지만, “임동원 특사는…“이라는 다음 뉴스. 궁금한 마음이 두방망이쳤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강의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예, 짐작 가시죠? 저는 너무 당황하고 황당스러워 바로 사회진보연대 사무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뉴스를 곧이곧대로 잘 믿을 수가 없길래, 도대체 어떤 내막과 내용이 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사무실에서는 전화를 안 받더군요. 그래서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들어가 게시판을 보니까, 아직 기층 노동자들도 저처럼 어리둥절한 상태인지, 얼떨떨하고 당황해 하는 내용들이 올라와 있더군요. 물론 다음날부터는 육두문자 섞인 욕설과 비난 글들이 빗발쳤지만.
컴퓨터를 켠 김에 전날 열어보고 안 보았던 메일함도 열었죠. 새로 온 메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보내신 건데요, 메일 내용 중에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라는 글귀가 있더군요. 그걸 그 순간에 보는 제 가슴이 어땠을까요?
참을 수가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죠. 친구,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말 저말 하더니, “야, 그러다가 차츰 나아지겠지, 뭐. 시행착오를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 이 옛날얘기가 떠오르더군요.
며칠 동안을 허깨비처럼 다녔습니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길을 걸어도 허공을 헛디디는 것만 같고…. 지금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옛날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라는 옛날얘기만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PSSP
옛날얘기입니다. “옛날 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로 시작되는 얘기 말씀입니다. “옛날얘기인 척 하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이번엔 정말, 옛날 어느 먼 나라 얘기입니다. 제가 지어낸 얘기는 아니지만, 원래 얘기란 것도 “진짜 있었던 일인데…“로 시작하는 것이 더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진짜 있었던 일인데, 옛날 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로, 시작하겠습니다.
특별한 아침,
1926년 5월 4일. 아침부터 뭔가 달랐다. 잠에서 깨어나 파자마를 입은 채 부스스 하품을 하며 습관적으로 현관문을 열어 본 사람들은 조간신문이 배달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새들은 변함 없이 짹짹대며 햇살을 반기고 있었지만, 항상 도시의 아침을 열곤 했던 부릉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큰길에는 버스가 지나다니지 않았으며, 기차역에는 열차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버스와 열차 대신 거리를 메운 것은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총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의 역사에서, 그 이전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총파업이었다. 영국을 세계의 굴뚝으로 만들었던 철강, 조선, 기계 공장은 여전히 우뚝우뚝했지만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았다. 발전소, 용광로, 부두에서는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항상 활기 넘치던 도시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도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시위대는 어깨를 겯고 거리를 누볐고, 가끔 경찰이나 군인들이 대체 투입되어 운전하는 버스 유리창이 시위대의 돌에 맞아 깨지기도 했지만, 어떤 도시에서는 경찰과 파업 시위대가 축구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기술이 필요한 열차는 거의 운행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설사 움직이더라도 사고와 연착이 다반사였다. 파업에 참여하기로 결의한 노조들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율은 100%에 가까웠다. 신문과 잡지는 인쇄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발행되지 못했다. 정부는 자신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 BBC 방송국에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인쇄 노동자들은 파업을 조직한 노총 산하 총평의회의 파업소식지를 인쇄했다.
총파업의 시작은 석탄 노동자들의 쟁의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지난 해 광산 소유주들은 임금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노동자측에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을 무조건 통보하였다. 광부 노조의 파업 위협에 직면한 정부는 석탄 합리화와 임금 삭감을 제시하였으나 합리화할 의사가 없었던 소유주와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노조 양자에서 거부당하였고, 석탄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미봉하고 있었다. 그런데 1926년 5월 1일 정부는 갑자기 보조금 지급 중지를 발표했고, 광산 소유주들은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 또는 직장폐쇄를 선언하였다.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광부 노조는 파업을 조직하면서 전국 노총에 지원을 요청했다. 전국 노총은 5월 3일부터 동맹파업이 시작될 것임을 선언하였다.
삼각동맹과 검은 금요일
영국의 노조들과 전국 노총이 광부들의 파업을 적극 지원한 것에는 사실 일종의 죄의식도 깔려 있었다. 몇년 전 기간산업의 사유화를 둘러싼 동맹파업 실패가 노동운동에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삼각동맹의 당사자는 광부 노조, 철도 노조, 운수 노조였다. 이 산업들은 명백한 국가 기간 산업들이었다. 산업화 경제의 동맥인 철도와 운수는 말할 필요 없고, 당시 모든 동력원이 바로 석탄이었음이 상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1차대전을 계기로 철도와 석탄 산업을 사실상 국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석탄 산업의 경우, 정부 용역 조사 보고서에서도 국유화를 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1921년 정부는 철도와 석탄 산업의 운영에 손을 떼고 재사유화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사유화되었을 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해지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특히 이윤이 저하되고 있었던 석탄 산업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노조는 파업으로 맞서기로 했다. 긴밀한 관계였던 세 노조는 삼각동맹을 결성하고 동맹파업을 결의하였다. 파업 시작 일은 4월 15일 금요일이었다. 그 전 막판까지 밤새도록 정부와 광부 노조측의 협상은 계속되었으나, 결과는 결렬이었다. 파업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각. 철도 노조와 운수 노조는 전격적으로 파업 철회를 결정하였다.
노조 지도부에게 파업 특히 동맹파업이란 항상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삼각동맹의 붕괴와 두 노조 지도부의 전격적인 이탈 결정은 영국 노동자계급에게 경악이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매우 극적으로 배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광부 노조는 홀로 3개월 동안 싸웠으나,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1921년 4월 15일의 배신은 영국 역사에서 ‘검은 금요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작업장으로 복귀하라?!
1921년의 배신과 패배는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뼈아픈 상처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의 연대와 공동투쟁을 위하여 전국 노총은 총평의회를 조직하였고, 1926년의 총파업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증명할 수 있는 계기였다.
파업의 규모는 전국적이었으며, 매우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런던의 전국 노총 본부와 지방파업위원회 사이에는 말을 탄 전령들이 시시각각 말고삐를 잡아당겼고, 파업소식지는 전국에 배포되었다. 정부는 불법파업은 결단코 엄단하겠다고 연설하였지만, 파업 대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날짜가 감에 따라 일부 이탈자가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노동계급 사이에 파업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굳건하였고 전체적인 생산도 위축되는 등 파업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총파업 9일째, 5월 13일. 전국 노총 지도부는 정부와의 교섭이 타결되었음을 선언하고 작업장으로의 복귀 지령을 내렸다. 어려운 상황과 협박에도 파업을 끌고 나가고 있었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노총 지도부의 발표는 “평화조항, 광부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거래가 보장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교섭안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부측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으며 애매한 언급뿐이었다. 직장으로 복귀한 석탄 노동자들은 탄압에 직면하였으며, 해고의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정부와의 교섭이란 순전한 항복이었음이 명백했다. 그것도 기층의 노동자 대오가 흔들리지 않고 있을 때, 전국 노총의 지도부는 갑자기 손을 들어 버린 것이었다.
지도부에게 파업 특히 동맹파업은 항상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 총파업의 동력이 도대체 얼마나 갈까? 정부가 계속 강경하게만 나오면 그 다음엔 어떡하지? 이 상황에서 혁명을 할 수도 없고… 영국의 전국 노총 지도부는 머리를 굴리고 굴렸다. 무엇보다도 지도부는 그들의 노동자 대중을 믿지 못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불신은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기층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항복을 해 버린 지도부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총평의회는 파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한 책임은 그들이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총파업은 더 이상 없었다.
그날, 나는…
2002년 4월 2일, 저는 언제나처럼 늦잠을 자고 점심때쯤 일어나 헉헉거리며 강의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나왔습니다. 지하철, 그리고 버스를 탔죠. 버스의 라디오 소리.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오늘 오후 총파업을 철회하였습니다.“ 오잉? 제 귀가 쫑긋 일어섰지만, “임동원 특사는…“이라는 다음 뉴스. 궁금한 마음이 두방망이쳤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강의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예, 짐작 가시죠? 저는 너무 당황하고 황당스러워 바로 사회진보연대 사무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뉴스를 곧이곧대로 잘 믿을 수가 없길래, 도대체 어떤 내막과 내용이 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사무실에서는 전화를 안 받더군요. 그래서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들어가 게시판을 보니까, 아직 기층 노동자들도 저처럼 어리둥절한 상태인지, 얼떨떨하고 당황해 하는 내용들이 올라와 있더군요. 물론 다음날부터는 육두문자 섞인 욕설과 비난 글들이 빗발쳤지만.
컴퓨터를 켠 김에 전날 열어보고 안 보았던 메일함도 열었죠. 새로 온 메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보내신 건데요, 메일 내용 중에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라는 글귀가 있더군요. 그걸 그 순간에 보는 제 가슴이 어땠을까요?
참을 수가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죠. 친구,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말 저말 하더니, “야, 그러다가 차츰 나아지겠지, 뭐. 시행착오를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 이 옛날얘기가 떠오르더군요.
며칠 동안을 허깨비처럼 다녔습니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길을 걸어도 허공을 헛디디는 것만 같고…. 지금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옛날옛날에, 어느 먼 나라에…“라는 옛날얘기만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