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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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어여쁜 딸아이 출산기

김도형 | 공동집행위원장
다들 알다시피 5월 8일은 어버이날인데, 올해는 음력으로는 우리 어머니 생신 날이 어버이날과 겹치게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 나에게 이 날은 딸아이의 생일이라는 의미를 아울러 지니게 되었다. 원래 우리 아기의 출산예정일은 메이데이인 5월 1일이었다. 그래서 예정일대로 아이가 태어나면 노동절 집회에 데려가 거기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다 네 생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거라고 한 동안은 사기를 쳐 볼 심산이었는데, 생일 밥 제대로 챙겨먹고 싶었는지 예정일이 지나도 아이는 태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려고 고른 날이 양력으로는 어버이날이고 음력으로는 제 할머니 생신 날이니 우리 어여쁜 아기로서는 정말 설상가상인 노릇일 터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 날을 골라서 태어난 사연을 알게 되면 왜 하필 이날을 골라 낳았다는 투정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다.
예정일이 지나자 의사선생님은 뱃속의 태아가 상당히 크다면서 유도분만을 하자고 권유하였고, 잘못하면 자연분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기에 나와 아내는 순순히 유도분만에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5월 6일에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입원 당일은 몇 가지 검사만을 하고 그 다음날 새벽 6시부터 분만에 들어가기 시작한다고 했다. 유도분만이 그저 분만촉진제 맞고 진통 서너 시간 겪으면 아이가 쑥 나오는 것으로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터이므로 우리 아이가 태어나는 날짜는 당연히 5월 7일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도분만을 시작한 지 만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태아는 세상 밖으로 나올 기미를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아내는 하루 넘게 계속되는 산고 속에서 완전히 지치게 되었고 힘들다며 우는데 남편으로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심정일 뿐이었다. 의사선생님도 유도분만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니 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아내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도저히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내가 먼저 수술해 달라는 말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들 포기하고 수술을 각오하고 있던 거의 마지막 순간에 태아가 산모의 골반으로 쑥 내려왔다. 그리하여 가까스로 자연분만에 성공하게 되었는데, 의사선생님도 이렇게 낳을 것을 수술했으면 정말 억울할 뻔했다며 산모가 고생을 잘 참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그 전날에 태어나라고 엄청난 산고를 참으면서 힘을 썼는데 아기가 어버이날이든 할머니 생신 날이든 상관하지 않고 굳이 이 날 제 생일 밥 챙겨 먹겠다고 하루를 꼬박 버티고 나오지 않았던 것인바, 자기 팔자대로 태어나는 날이 다 정해져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의 분만은 가족분만실에서 하게 되어 나도 아내 옆에서 우리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분만에 참여한 것은 애초에 내 계획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던 일이었다. 전부터 가족분만실에서 아이를 낳기를 희망하던 아내에게 그렇게 하자면서 내심 생각하고 있던 복안은 ‘장모님이 있으면 되겠지’ 라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분만에 직접 참여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 걸, 간호사들이 무슨 소리냐며 말도 안 된다면서 당연히 남편이 있는 거라면서 야단을 치는 통에 전혀 계획에 없었던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경험을 해보고 나니 아기가 태어날 때 아내 곁에 함께 있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로서는 결코 실감할 수 없지만 아이를 낳는 것이 정말 얼마나 힘든 일인가라는 것을 그래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여쁜 딸아이의 이름은 ‘현송’이다. 한자로는 빛날 炫에 나라 宋자를 쓴다. 원래 이 이름은 우리 누나의 어렸을 적 이름이었다. 전부터 나는 누나의 아명이 정말 예쁜 이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딸을 낳게 되면 이 이름을 붙여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터였다. 우리 부모님도 좋다고 하셔서 이렇게 우리 아이의 이름이 결정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 이름이 둘째를 아들 낳는 이름이라기에 누나가 태어났을 때 아버님이 거금을 들여 지어오셨던 이름이란다. 산고의 고통이 채 가시지 않은 아내가 이 말을 듣자 그럼 둘째 아이 낳으라는 거고 그것도 꼭 아들 낳으라는 거 아니냐면서 걱정을 내비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 심정에 아들손자 보고 싶어하시는 거야 어떻게 하겠냐며, 아이 둘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아이 낳는 게 이렇게 힘든 걸 알았으니 내가 둘째 아이 가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아내를 안심시켰는데, 단지 겉으로 하는 말뿐인 것이 아니라 아들이든 딸이든 간에 둘째는 낳지 못하겠다는 것이 정말 내 심정이다. 주변에서는 다 그때 생각이라면서 아이 둘 셋 다 잘 낳고 잘 키운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딸 하나 잘 키우면 되는 것이고 아들 없다고 결코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우리 딸이 엄마 닮아서 적당히 예쁘면 괜찮을 터인데 아빠 닮아서 너무 예쁘면 어떡할지가 걱정인데,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계시던 장모님은 딸아이 아빠 되면 저렇게들 반푼이 된다며 실없어 하시면서 나를 걱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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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의 공동집행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떠맡은 지도 어느덧 세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몸에 병난 거 핑계 대고, 나중에는 아내 산달이어서 집에 몸이 메이게 되었다고 둘러대고 그동안 제대로 활동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정말 열심히 고생하고 있는 상근활동가들에게는 미안한 심정일 뿐이다. 그 전에도 내가 뭐 열심히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힘든 일 속에서 지쳐 있는 동지들에게 술 한잔 사면서 기운 북돋아 주는 게 그나마 내가 한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 졸지에 내 몸이 술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관계로 근래에는 도통 어울리지를 못했으니 다들 여간 불만이 아닐 성싶다. 특히 새내기 활동가들이 여러 명이 들어왔는데 그들과는 제대로 이야기 한 번 나눠보지 못했다. 그 동안 조신하게 관리한 덕택에 몸도 많이 회복되었고 다행으로 건강한 딸아이도 얻었으니 이제는 얼굴 안내비칠 핑계거리도 없어져 버렸다. 어느덧 나태해져버린 내 자신의 풀려 있는 나사들을 다시금 조여야 하겠다. 비록 예쁜 딸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당장 달려가 보듬어 안고만 싶지만 말이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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