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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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봄날은 온다

장귀연 | 회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기억

우수수우수수 빗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떨구는 낙화처럼 봄날이 가고 있다. 5월이 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5월 18일 밤이다. 5․18기획단에 같이 가지 못했다.
1980년. 내가 아직 철모르는 아이였을 때다. TV에서 서울역 앞에 운집한 대학생들을 보여주었다. 대학생이던 막내삼촌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식구들이 밤을 샜다. 삼촌은 다음 날 돌아왔고, 그리고, 서울은 잠잠했다. 늦은 꽃소식처럼 남쪽에서 소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꽃소식이되 처절한 낙화의 소문이었다. 어른들은 소리 죽여 수군댔다. “…했대”, “…라데”…… 어른들은 말끝에 흠칫 주위를 살폈고 섬찟 몸을 떨었다. 어린 나는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길바닥에 검고 붉게 떨어진 꽃송이들을 떠올리며 어른들을 따라 흠칫했다. 사실 나의 1980년 당시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기억은, 이게 전부다.
1991년. 나는 다시 5월을 맞았다. 찾아볼 것도 없이 날짜를 기억한다. 4월 26일. 김세진․이재호 열사 추모일이어서 서울대에서는 추모집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대학 입학 후 1년여만에 처음으로 집회를 빠지고 학교 옆 철조망을 넘어 ‘강 건너’라고 불리는 관악산 계곡에서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늦은 산벚꽃이 계곡 위로 떨어져 흘러갔다. 4월 26일, 눈부신 봄날이었고, 나는 스무 살, 그지없이 발랄한 나이였다. 연애는 한창 열정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 세상은 맑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계곡 건너편 철조망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교문 안쪽 길에 학생들이 나가는 듯 다시 밀리는 듯, 그거야 일상 있던 일이니 여전히 수줍게 손 맞잡으며 데이트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어어, 군화소리도 정연하게 전경들이 열맞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일상적인 교투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전경들이 학교 안까지 이렇게 진입해 들어오는 일은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나와 당시의 내 애인, 옷이 찢기는 것을 돌보지 못하고 급하게 철조망을 넘었다. 전경들의 진압에 개미떼처럼 흩어지다가도 어느새 다시 모여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군중들 사이에서 다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 “죽었대”,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이야?”, “뜬소문이겠지”……. 정리집회 때에서야 학생회 간부 입으로 정확한 사실을 들었는데, 명지대에서 강경대라는 학생이 백골단에게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1학년이었다는 것, 맞아죽었다는 것, 스무 살 내 마음으로는 그게 가장 저려왔다. 그 순간에도 산벚꽃은 여전히 계곡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산 뒤로 넘어가는 마지막 석양빛이 찬란한 시간이었다.
다음날은 토요일, 원래 학번 야유회가 예정되어 있었던 날. 야유회 때문에 모였던 우리는 연세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 앞에서 출발하는 142번 버스에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이 사람들이 포개졌고, 기사 아저씨는 “연세대까지 논스톱으로 갑니다” 하더니 놀랄 정도의 속도로 시내를 가로질렀다. 연세대 정문에 전경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못미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수많은 학생들은 뿔뿔이 전경들을 피해 담을 넘었다.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더 길게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낮부터 밤까지 거리에서 지냈던 5월이었다. 갓 만들어낸 금화처럼 번쩍거리는 5월의 태양과 분무처럼 번지는 최루가스는 한 모금의 물을 그립게 했다. 그러나 거리는 전장이었다. 늦은 밤까지 도심에 차는 보이지 않고 함성과 콩 볶는 듯한 최루탄 발사소리가 대치했다. 바리케이트가 쌓였다. 부서진 보도블록이 널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 막차를 타면 객차 안의 사람들이 엉엉 울다시피 했지만, 미안하다고 내릴 수도 없었다. 엄마는 최루가스에 푹 젖은 내 옷을 눈물 콧물 훌쩍이며 빨면서도 모른 척 해 주셨다.(나는 나중에 동생에게 듣고 알았다.) 그리고 물론, 봄날의 태양보다 훨씬 뜨거운 불길로 몸을 휩쌌던 사람들. 시위 지도 마이크와 군중들 사이에서 울리던 소식들. 아아, 솔직히 말하면, 그 군중들 사이에 끼어 있던 나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야 하나, 정말 그래야 하나, 그렇게 목숨을 태워 얻고자 했던 것들이… 얻어질 수 있을까……
열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겠다. 당시의 그 안타까움은 솔직히 일종의 패배주의적 회의에 가까웠다. 신촌 로타리에서 서강대를 거쳐 만리동 고개를 넘어 서울역까지 뛰던 날, 후배 하나가 내 곁에서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누나, 곧 혁명이 일어날 거예요.” 나는 뛰면서 헛바람을 삼켰다. 혁명? 그래, 좋은 말이지. 좋은 말이야…… 회의주의자에 가까웠던 나는, 해방구 같았던 서울의 그 거리에서 혁명의 열정에 들뜨지 않았다. 논리적인 근거를 댈 수는 없다. 나는 지도부도 아니었고 거대한 군중 속의 한 명, 겨우 스무 살짜리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직감,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성격 탓에 돌릴 수 있을 뿐이다.
내 개인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어쨌든 결과는 이미 역사다. 87년 6월 투쟁이 한국 현대사의 한 획으로서 인정받는 것과는 달리, 91년 5월 투쟁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가끔씩, 강경대 추모사업회에서 책을 냈다거나 유서대필 사건 진상이 다시 논란이 된다거나 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잠깐 그때를 기억에서 되살려 올뿐이다.

5월 - 1980년, 1991년, 1968년

얼마 전 대학시절 사 모았던 책들을 정리했다. 대학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유행(?)에는 뒤지지 않으려고 애쓴 덕분에, 옛 책들을 보면 당시 유행했던 담론이 어떤 것이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대학가에서 혁명의 담론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하게 1991년 말이다. 그때부터 혁명운동이 아닌 시민운동론이 번성했고, 마르크스주의를 악의 축이라고 부르는 각종 포스트주의들이 거대담론이라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991년에 어떤 일이 있었던가. 5월 투쟁이 실패했고, 그리고 소련이 멸망했다.
그 당시, ‘그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문건이 나왔던 시절의 정서는 이런 거였을 것이다. 소련이며 사회주의가 망했는데 왠 혁명이냐? 5월 투쟁의 실패는 아마도 그러한 언명을 실증해 주는 증거로 보였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옛날과 같은 투쟁 방식은 안된다니까 그러네!
그리하여 ‘한 시기가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5월에서 시작하여 5월에서 끝났다. 1980년 5월의 꽃들은 처절한 숙연함과 부채감을 남겨주었다. 시작의 5월이었다. 실패한 혁명의 흔적에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5월의 기억을 갚아나가려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한 11년이 지났다. 그리하여 1991년 5월의 꽃들이 낙화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무엇인가? 다시 새로운 인식의 전환?
상황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사에서 비슷한 유비를 찾아볼 수도 있다. 월러스틴이 말하기를, 1848년의 실패한 혁명이 좌파를 만들어냈다면, 1968년의 실패한 혁명은 신좌파를 낳았다고 한다. 1848년의 산물인 구좌파, 그 한 시기는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1991년 5월은 서구의 1968년 5월과 유비될 수 있는가?
다른 차이점도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1991년의 5월은 새로운 인식의 시작이 아니라 인식의 폐기였다는 점이다. 1991년 5월은 80년대의 弔鐘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안되는 것의 최후의 단말마였다는 것이다. 1991년 5월에 대한 망각에는 그러한 집단적 무의식이 깔려 있다. 잊고 싶은 것이다. 폐기한다. 대신 허겁지겁 ‘새로운 시작’을 수입해 온다. 다시 그러한 11년이 지났다……. 그래, 묻노니, 망각에서 시작한 시간은 어디에 도착하였는가?

5월은 항상 다시 돌아온다

11년, 다시 11년. 1980년 어린아이였던 나는, 1991년에 푸른 봄의 나이가 되었고, 지금은 서서히 청춘을 접고 있다. 나는 그것을 성숙이라고 받아들인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듯이, 지금 벚꽃 흩날리는 스무 살의 데이트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남쪽에서 올라온 낙화의 소문을 귀동냥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리에 선 스무 살을 만들었음을 인정했듯이, 그 5월 거리가 또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기억 속에서 성숙한다. 나는 1991년 거리에서 혁명의 열정에 들뜨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곳에 있었다. 기억한다. 기억함으로써 지금도 그곳에 있다. 열정과는 상관없이, 기억에는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이다…….
창밖에서는 낙화처럼 봄날이 가고 있다. 5월이 간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아직 5월이지만, 책이 나왔을 때에는 5월이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5월은 항상 다시 돌아온다. 5월이 올 때마다 우리는 한 살씩 나이를 먹지만, 단지 그게 아니라 성숙해야 한다. 계절의 순환을 깨닫는 원시인처럼, 봄날이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안다. 봄날은 다시 온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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