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26호
프랑스 대선과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운동
세계은행에서 요르단강 서안까지(From World Bank to West Bank)
작년 9.11 이후 미 제국주의가 ‘대테러전쟁’이란 구실로 주도한 전세계적인 ‘공안 정국’에서도, 국제주의적 반(反) 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영토를 확장․심화시키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아프간 공습이 진행되자, 세계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미․반제, 반전․평화 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인 반전․평화 NGO들 뿐만 아니라, 반(反)IMF․세계은행/반(反)기업 세계화/반(反)WTO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파괴성과 반민중성을 주로 제기해 온 사회운동진영이 함께 연대했다. 또한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는 IMF와 세계은행의 연차총회를 계기로, 거대한 시위가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IMF․세계은행 반대 시위대, 미국의 콜롬비아 군사 개입 반대와 팔레스타인 민중과의 연대 행동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1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약 50만 명이 결집하여, EU 정상회담에 맞선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행동은 국제주의적 반(反) 신자유주의 투쟁이 ‘깨지기 쉬운’ 일시적 유행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측면에서 정치․군사적 측면까지 포괄하는 정치적 심화 과정을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르단강 서안에 등장한 이 운동은 다른 곳에서 벌어진 활동과 함께 발전했다. 수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들의 파괴적인 대외 정책과 ...다자간 기구들의 실패에 맞서 왔다.... 운동가들은 어느 때보다도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 즉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의 점령을 가능케 하는 돈과 무기를 공급하는 정부들에게 문제제기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IMF의 처방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미얀마 정부의 부족민들에 대한 대우, 또는 티벳인들에 대한 중국의 강제점령에 맞서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운동은 실천적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도 그 운동은 권력과 권력에 시달림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위치짓고자 한다.”
유럽의 ‘우향우’?
하지만... 이처럼 활발한 국제주의적 반(反) 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을 비웃는 듯, 지난해부터 이탈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등에서는 ‘집권 좌파’가 선거에서 패배하고, 급기야 올해 국민의 50%가 잠재적인 좌파 지지자라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펭이 결선에 진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유럽의 ‘우향우’, ‘우파․극우파 바람’, ‘장미 유럽의 종말’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승리했는가? 그동안 반(反)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자들은 공염불만 외친 꼴이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현상적으로는 분명 유럽 전역에서 사민주의적 ‘좌파 연합’ 정부가 ‘우파-중도우파 연합’ 정권으로 교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유럽 정치 지형의 ‘우향우’를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그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유럽의 주류 제도권 좌파(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가 그 어느 우파 정권보다도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던 세력이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이라는 조스팽 프랑스 전(前)총리는 스스로를 영국 블레어의 ‘제3의 길’이나 독일 슈뢰더의 ‘신중도’ 노선과 구별지어 왔지만, 그것은 이름의 차이일 뿐 실내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이전 두 명의 우파 총리 재임 시절 보다 더 많은 국영 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주35시간 노동시간 단축 법안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켜 거대 자본가에게 유리한 혜택만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었다. 또한 25세 이하 청년층 실업률이 20%에 달해, 유럽 내에서 가장 높고, 이들 청년층의 빈곤율은 1980년대 6% 미만에서 1990년대 말 9%까지 증가했다. 나아가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등 ‘일하는 빈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노동 인구의 15%를 넘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프랑스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프랑스는 기업 활동에 있어서 점점 ‘앵글로-색슨’ 식으로 변해왔다. 심지어 사회주의자 수상 집권 하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프랑스 국가 부문이 사적 자본 소유로 매각되었다. 노동 비용은 삭감되어 왔다.”(2002/04/20) 결국 조스팽 탈락, 그리고 유럽 제도 좌파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거부 정서인 것이다. 이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면밀히 뜯어보더라도 확인된다. 결선 진출이 좌절된 사회당의 조스팽은 16% 약간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1995년 대선에 비해 150만 표나 적고, 역대 프랑스 대선에서 주류 좌파 후보가 얻은 가장 낮은 수치이다. 또한 1위를 차지한 시라크 역시 20%를 넘기지 못했는데,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가장 저조한 득표율이었으며 1995년 대선에 비해 약 4백만 표나 줄어든 것이다. 한편, “극우 바람”의 주역인 르펭은 1995년의 15%에서 약간 상승한 16.9%를 득표했다. 여기에 비제도 좌파(3명의 트로츠키주의자 후보)인 노동자투쟁(LO)의 아를리떼 라기에(5.72%),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올리비에르 베쌍쓰노(4.25%), 노동자당(PT)의 다니엘 글뤽스타인(0.47%)의 득표가 10.6%에 달해 지난 1995년의 5.3%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극우 바람”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오히려 이번 선거 결과는 좌파든 우파든 집권정당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광범위한 불신의 표현이자, 나아가 지난 몇 년 간 그들이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좌에서 우로의 정권 교체만을 두고 ‘우향우’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 논리인 또 다른 이유는 유럽 부르주아 정치 질서의 이면에 존재하는 대중들의 저항의 힘이다. 아주 단적으로, 4월 21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프랑스 전역에서 ‘반(反)르펭 시위’가 자발적이고 즉각적으로 전개되었다. “르펭의 2차 투표 진출 발표 직후, 즉각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안티르펭’ 페이지로 개조한 후, ‘바스띠유에서 모이자’라는 즉각적인 시위를 제안했고, 이 소식은 인터넷과 핸드폰 등의 빠른 통신매체를 통해 퍼짐으로써 4월 22일 0시, 바스띠유 광장에 5천여 명이 집결하는 첫 시위가 시작됐다. 그 후, 프랑스 각지에서는 안티르펭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대중들은 ‘거리에서’ 르펭을 이미 심판하고 있었으며, 부르주아 정치질서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충분했다. 1차 투표 이후 터져 나온 ‘반(反)르펭’ 시위는 프랑스 사회운동의 또 다른 힘을 보여주었고, 프랑스 정치를 ‘우파 대(對) 극우파’로 바라보는 시각을 온 몸으로 거부했다. 또한 극우주의자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총리가 된 이후에, 지난 4월 3백만 명이 넘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여 총파업 투쟁을 벌였다. 이 거대한 규모의 저항 속에서, 우리는 유럽의 부르주아 정치 질서가 포섭해내기 벅차하는 저항의 힘이 파열음을 내고 터져 나오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재의 상황은 1980년대 초반 ‘신보수주의 바람’을 일으켰던 대처와 레이건 시기와는 차별적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북반구 노동조합 운동이 장기적으로 약화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국제주의적 사회운동 세력 역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은 지난 3월 바르셀로나에 모인 50만 명, 총파업에 참여한 3백만 명의 이탈리아 노동자, 1백 5십만 명의 반르펭 시위대 등 새로운 저항의 힘과 정치적 주체의 형성 가능성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유럽의 ‘우경화’는 이러한 부르주아 정치질서의 이면에 존재하는 새로운 저항의 힘과 주체 형성을 간과하고 있다.
반(反)세계화와 ‘극우파 바람’
하지만 동시에 사회운동 세력은 유럽에서 르펭을 비롯한 극우주의자들의 기반이 노동자․실업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프랑스 실업자의 38%, 공장 노동자들의 23%가 르펭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불법 이민자 즉시 추방, 사형제 부활, 외국인 범죄자 형 집행 후 영구 추방, 유로화 추방과 프랑화 복귀,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 핵전략 현대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 과정 르펭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유로-세계화(Euro-globalization)와 빈곤에 의해 몰락”했다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으로는 좌파, 경제적으로는 우파”, 그리고 “프랑스 부흥기”를 가져올 “애국자”라고 선동했다. 한편 독일의 극우정당인 민족민주당(NPD)의 강령에는 ‘민중의 경제 - 예! 세계화 - 아니오!’란 구호가 있다. 앞의 구호는 ‘게르만인’의 경제를 착취하고 있는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며, 후자는 고이윤을 위해 저비용 지역․국가들만 찾아다니는 기업가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극우파’ 선동의 핵심적인 기반 중의 하나는 ‘세계화’이다. ‘세계화’가 각자가 원하는 대로 정의할 수 있는 만큼, ‘반(反)세계화’ 역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극우파’와 ‘사회운동 세력’은 ‘반세계화’라는 정치적 의제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반(反)세계화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극우파는 ‘세계화의 피해자’를 ‘인종주의적․민족주의적’ 선동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처럼 극우파의 등장과 강화는 반(反)세계화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반세계화 경향의 우익적 현상”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국제주의적 사회운동 세력은 스스로의 논리와 주장 그리고 행동 과정에서 극우파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한다. 사실 ‘극우파와 위험한 결합’ 현상은 미국에서 특히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0년 4월 워싱턴에서 벌어진 반(反)IMF․세계은행 시위에서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는 조합원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그들에게 IMF나 세계은행의 제3세계 민중 착취는 뒷전이었고, 오히려 중국의 WTO 가입 반대가 주된 요구였다. 이 과정에서 극우주의자 뷰 캐넌을 연대 연설자로 초청한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극우파와 노동조합 사이의 ‘위험한 민족주의적․인종주의적 결합’은 완전히 단절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주의적 사회운동 세력들의 주장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반세계화”, “지구적 정의”, “국제주의”, “반인종주의와 복수주의” 등의 개념 등이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특히 반(反)인종주의는 반(反)신자유주의 세계화 저항 논리에서 부수적인 요구를 넘어 핵심적인 가치로 복원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적 차원에서 사회운동과 노동조합과의 결합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며, 국제주의적 시각과 행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극우파를 극복하는 것은 이러한 전반의 과정을 통해 가능할 것이며,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일국적․국제적인 저항 주체의 형성의 토대가 될 것이다.PSSP
작년 9.11 이후 미 제국주의가 ‘대테러전쟁’이란 구실로 주도한 전세계적인 ‘공안 정국’에서도, 국제주의적 반(反) 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영토를 확장․심화시키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아프간 공습이 진행되자, 세계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미․반제, 반전․평화 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인 반전․평화 NGO들 뿐만 아니라, 반(反)IMF․세계은행/반(反)기업 세계화/반(反)WTO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파괴성과 반민중성을 주로 제기해 온 사회운동진영이 함께 연대했다. 또한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는 IMF와 세계은행의 연차총회를 계기로, 거대한 시위가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IMF․세계은행 반대 시위대, 미국의 콜롬비아 군사 개입 반대와 팔레스타인 민중과의 연대 행동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1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약 50만 명이 결집하여, EU 정상회담에 맞선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행동은 국제주의적 반(反) 신자유주의 투쟁이 ‘깨지기 쉬운’ 일시적 유행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측면에서 정치․군사적 측면까지 포괄하는 정치적 심화 과정을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르단강 서안에 등장한 이 운동은 다른 곳에서 벌어진 활동과 함께 발전했다. 수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들의 파괴적인 대외 정책과 ...다자간 기구들의 실패에 맞서 왔다.... 운동가들은 어느 때보다도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 즉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의 점령을 가능케 하는 돈과 무기를 공급하는 정부들에게 문제제기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IMF의 처방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미얀마 정부의 부족민들에 대한 대우, 또는 티벳인들에 대한 중국의 강제점령에 맞서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운동은 실천적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도 그 운동은 권력과 권력에 시달림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위치짓고자 한다.”
유럽의 ‘우향우’?
하지만... 이처럼 활발한 국제주의적 반(反) 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을 비웃는 듯, 지난해부터 이탈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등에서는 ‘집권 좌파’가 선거에서 패배하고, 급기야 올해 국민의 50%가 잠재적인 좌파 지지자라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펭이 결선에 진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유럽의 ‘우향우’, ‘우파․극우파 바람’, ‘장미 유럽의 종말’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승리했는가? 그동안 반(反)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자들은 공염불만 외친 꼴이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현상적으로는 분명 유럽 전역에서 사민주의적 ‘좌파 연합’ 정부가 ‘우파-중도우파 연합’ 정권으로 교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유럽 정치 지형의 ‘우향우’를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그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유럽의 주류 제도권 좌파(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가 그 어느 우파 정권보다도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던 세력이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이라는 조스팽 프랑스 전(前)총리는 스스로를 영국 블레어의 ‘제3의 길’이나 독일 슈뢰더의 ‘신중도’ 노선과 구별지어 왔지만, 그것은 이름의 차이일 뿐 실내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이전 두 명의 우파 총리 재임 시절 보다 더 많은 국영 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주35시간 노동시간 단축 법안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켜 거대 자본가에게 유리한 혜택만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었다. 또한 25세 이하 청년층 실업률이 20%에 달해, 유럽 내에서 가장 높고, 이들 청년층의 빈곤율은 1980년대 6% 미만에서 1990년대 말 9%까지 증가했다. 나아가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등 ‘일하는 빈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노동 인구의 15%를 넘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프랑스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프랑스는 기업 활동에 있어서 점점 ‘앵글로-색슨’ 식으로 변해왔다. 심지어 사회주의자 수상 집권 하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프랑스 국가 부문이 사적 자본 소유로 매각되었다. 노동 비용은 삭감되어 왔다.”(2002/04/20) 결국 조스팽 탈락, 그리고 유럽 제도 좌파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거부 정서인 것이다. 이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면밀히 뜯어보더라도 확인된다. 결선 진출이 좌절된 사회당의 조스팽은 16% 약간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1995년 대선에 비해 150만 표나 적고, 역대 프랑스 대선에서 주류 좌파 후보가 얻은 가장 낮은 수치이다. 또한 1위를 차지한 시라크 역시 20%를 넘기지 못했는데,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가장 저조한 득표율이었으며 1995년 대선에 비해 약 4백만 표나 줄어든 것이다. 한편, “극우 바람”의 주역인 르펭은 1995년의 15%에서 약간 상승한 16.9%를 득표했다. 여기에 비제도 좌파(3명의 트로츠키주의자 후보)인 노동자투쟁(LO)의 아를리떼 라기에(5.72%),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올리비에르 베쌍쓰노(4.25%), 노동자당(PT)의 다니엘 글뤽스타인(0.47%)의 득표가 10.6%에 달해 지난 1995년의 5.3%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극우 바람”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오히려 이번 선거 결과는 좌파든 우파든 집권정당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광범위한 불신의 표현이자, 나아가 지난 몇 년 간 그들이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좌에서 우로의 정권 교체만을 두고 ‘우향우’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 논리인 또 다른 이유는 유럽 부르주아 정치 질서의 이면에 존재하는 대중들의 저항의 힘이다. 아주 단적으로, 4월 21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프랑스 전역에서 ‘반(反)르펭 시위’가 자발적이고 즉각적으로 전개되었다. “르펭의 2차 투표 진출 발표 직후, 즉각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안티르펭’ 페이지로 개조한 후, ‘바스띠유에서 모이자’라는 즉각적인 시위를 제안했고, 이 소식은 인터넷과 핸드폰 등의 빠른 통신매체를 통해 퍼짐으로써 4월 22일 0시, 바스띠유 광장에 5천여 명이 집결하는 첫 시위가 시작됐다. 그 후, 프랑스 각지에서는 안티르펭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대중들은 ‘거리에서’ 르펭을 이미 심판하고 있었으며, 부르주아 정치질서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충분했다. 1차 투표 이후 터져 나온 ‘반(反)르펭’ 시위는 프랑스 사회운동의 또 다른 힘을 보여주었고, 프랑스 정치를 ‘우파 대(對) 극우파’로 바라보는 시각을 온 몸으로 거부했다. 또한 극우주의자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총리가 된 이후에, 지난 4월 3백만 명이 넘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여 총파업 투쟁을 벌였다. 이 거대한 규모의 저항 속에서, 우리는 유럽의 부르주아 정치 질서가 포섭해내기 벅차하는 저항의 힘이 파열음을 내고 터져 나오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재의 상황은 1980년대 초반 ‘신보수주의 바람’을 일으켰던 대처와 레이건 시기와는 차별적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북반구 노동조합 운동이 장기적으로 약화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국제주의적 사회운동 세력 역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은 지난 3월 바르셀로나에 모인 50만 명, 총파업에 참여한 3백만 명의 이탈리아 노동자, 1백 5십만 명의 반르펭 시위대 등 새로운 저항의 힘과 정치적 주체의 형성 가능성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유럽의 ‘우경화’는 이러한 부르주아 정치질서의 이면에 존재하는 새로운 저항의 힘과 주체 형성을 간과하고 있다.
반(反)세계화와 ‘극우파 바람’
하지만 동시에 사회운동 세력은 유럽에서 르펭을 비롯한 극우주의자들의 기반이 노동자․실업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프랑스 실업자의 38%, 공장 노동자들의 23%가 르펭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불법 이민자 즉시 추방, 사형제 부활, 외국인 범죄자 형 집행 후 영구 추방, 유로화 추방과 프랑화 복귀,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 핵전략 현대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 과정 르펭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유로-세계화(Euro-globalization)와 빈곤에 의해 몰락”했다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으로는 좌파, 경제적으로는 우파”, 그리고 “프랑스 부흥기”를 가져올 “애국자”라고 선동했다. 한편 독일의 극우정당인 민족민주당(NPD)의 강령에는 ‘민중의 경제 - 예! 세계화 - 아니오!’란 구호가 있다. 앞의 구호는 ‘게르만인’의 경제를 착취하고 있는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며, 후자는 고이윤을 위해 저비용 지역․국가들만 찾아다니는 기업가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극우파’ 선동의 핵심적인 기반 중의 하나는 ‘세계화’이다. ‘세계화’가 각자가 원하는 대로 정의할 수 있는 만큼, ‘반(反)세계화’ 역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극우파’와 ‘사회운동 세력’은 ‘반세계화’라는 정치적 의제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반(反)세계화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극우파는 ‘세계화의 피해자’를 ‘인종주의적․민족주의적’ 선동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처럼 극우파의 등장과 강화는 반(反)세계화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반세계화 경향의 우익적 현상”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국제주의적 사회운동 세력은 스스로의 논리와 주장 그리고 행동 과정에서 극우파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한다. 사실 ‘극우파와 위험한 결합’ 현상은 미국에서 특히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0년 4월 워싱턴에서 벌어진 반(反)IMF․세계은행 시위에서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는 조합원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그들에게 IMF나 세계은행의 제3세계 민중 착취는 뒷전이었고, 오히려 중국의 WTO 가입 반대가 주된 요구였다. 이 과정에서 극우주의자 뷰 캐넌을 연대 연설자로 초청한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극우파와 노동조합 사이의 ‘위험한 민족주의적․인종주의적 결합’은 완전히 단절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주의적 사회운동 세력들의 주장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반세계화”, “지구적 정의”, “국제주의”, “반인종주의와 복수주의” 등의 개념 등이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특히 반(反)인종주의는 반(反)신자유주의 세계화 저항 논리에서 부수적인 요구를 넘어 핵심적인 가치로 복원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적 차원에서 사회운동과 노동조합과의 결합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며, 국제주의적 시각과 행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극우파를 극복하는 것은 이러한 전반의 과정을 통해 가능할 것이며,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일국적․국제적인 저항 주체의 형성의 토대가 될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