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26호
고용허가제를 둘러싼 쟁점과 이주노동자 운동의 방향
들어가며
프랑스의 르펜 파동 뒤로 네덜란드며 독일에서도 이주민의 봉쇄를 요구하는 극우파의 약진으로 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신자유주의자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극우파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유럽연합 차원에서 이민을 차단하는 정책을 갖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극우파의 인종차별주의 확산에 맞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대책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유럽의 사민당 정부들조차 이주민과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을 강화하는데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유럽과 자본주의 제국에서 이주민 문제는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때문에 어떤 정치세력의 성격을 판단하는데 이주민에 대한 정책이 기준이 되곤 하였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문제가 이제 한국에서도 남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는 대략 4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중에 30%는 산업연수생들이고 나머지 70%는 불법체류자로서 이들 모두 극심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는 단순한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그 제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 등 북반구에서 이주민의 문제는 생산력 격차에 따른 노동력의 이동(제국주의적 초과착취와 노동력의 이동)이 주요한 요인을 이루지만 한국에서 이주민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국정부의 외국인력 수입 정책의 문제로부터 발생하였다. 분명한 것은 지난 91년부터 한국정부가 산업연수제도를 명분으로 각 국에서 노동자를 수입해 들어왔고, 산업연수제도의 비인간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성격으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연수사업장을 이탈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연수제도가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불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일 뿐이라는 지적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끊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산업연수제도를 대체해 이런 비난을 모면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매우 미묘하고도 첨예하다. 블레어가 인종차별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이주민 제한 정책을 들고 나온 것처럼, 산업연수제도의 폐해를 막는 다는 목적으로 정부가 고용허가제라는 것을 도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용허가제에 대한 찬반이 일고 있고, 현재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를 놓고서 치열한 대립이 가속되고 있다.
이 글은 정부의 이주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현재 일부 외국인 상담소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 자진신고제에 대한 태도와 고용허가제 도입에 대한 태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 작성한 글임을 밝혀둔다.
쟁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전체 40만의 이주노동자 중 2002년 4월말 현재 17만의 산업연수생이 있으며 이중 5만 명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이른바 불법체류자가 되어 있다. 또한, 연수생 이탈을 포함하여 관광비자 등 비자만기 후 체류자, 밀입국자 등 26만여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살아가고 있다. 즉 이주노동자의 2/3이상이 이른바 불법체류 상태에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산업연수생제도와 정부의 단속추방 정책에 있다. 산업연수제도는 산업연수라는 명목으로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면서 사업장을 선택하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수의 산업연수생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불법체류자로 살아가야 했고,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은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주민 정책에 대해서 산업연수제도를 강화 혹은 변형하면서 그 기본 틀을 유지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단속과 추방정책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산업연수제도의 폐지는 모든 논쟁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이를 전제로 논쟁의 핵심 축은 불법체류를 구조화하는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주노동자의 합법화)과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산업연수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할 것인가, 노동허가제를 도입할 것인가 하는 논란과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즉, 사업장 이동(선택)의 자유와 노동기간의 문제로 압축되어 있다.
그러나, 운동진영 내부에서 쟁점은 항상 원칙론과 현실론의 형태로 대립된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일정기간 이상의 노동허가 기간이 보장된다면 좋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이른바 현실론자들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겠느냐고 지적한다. 그래서 제한적이나마 차선 혹은 차악의 정책들에 대해 합의를 보고 단계적으로 목적을 달성해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재 상태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방법 즉, 현실인식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점에서 현실론자들이 말하는 ‘현실’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는 현실론을 빌미로 운동의 노선과 정부에 대한 태도가 항상 교차해서 나타난다. 자진신고제를 둘러싼 논쟁은 바로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진신고를 둘러싼 논란 ; 과연 차악인가?
자진신고제도는 단속추방 정책의 보완책으로 예전부터 간헐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번 자진신고는 월드컵 등을 앞두고 불법체류자가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정부가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불법체류자 자진신고기간을 설정하고, 이 기간에 사업주의 출국보장과 귀국 비행기표를 소지하면 2002년 3월말까지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자진신고제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단속추방 정책에 비해 차악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록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는 토대와 원인에 대해서 본말이 전도되고 둘째,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될 것에 대한 미봉책이자 졸속적인 조치이기는 하지만 셋째, 시한부 사면 또는 시한부 양성화 조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한부 사면 조치라는 점인데, 어쨌든 10-12개월 정도는 강제추방의 위험 없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차라리 이번 자진신고와 출국유예조치를 차악 정도로 보면 되는 것”이고 “더 나빠지지는 않고 대신 한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자진신고제도를 거부하는 것은 ‘서툰 운동논리로 이주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데 첫째, 자진신고제를 전면거부 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이 없다는 점 둘째, 1년만이라도 맘 편하게 일하고 싶어하는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한다는 점 셋째, 무엇보다도 자진신고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강제출국 당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진신고 여부에 대해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정에 따라 도와준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진신고제는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차악’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진신고를 하면 강제추방의 위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1년이라도 이주노동자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다면 자진신고를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어차피 불법체류자 신세로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그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번 자진신고제의 목적은 출국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내년 3월까지 출국해야 하는 비행기표를 구비해야 하고, 그 때까지 사업장 이동을 해서도 안되며, 사업주의 출국보장이 있어야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단속추방의 대상이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업주들은 벌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출국보장을 해 줄 이유가 없고 그 때문에 자진신고율이 매우 저조했다. 그러다가 정부에서 사업주 보장이 없어도 등록을 할 수 있게 이른바 실업자 등록이라는 형태로도 자진신고를 받아 주었다. 그러자 자진신고율은 매우 높아졌지만 단속되면 추방되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또한, 실제 이주노동자 중에서 1년 이내에 귀국을 희망하는 이주노동자들이 10%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이 기간 중 비행기표를 반환해야 한다. 일례로 지난 5월 8일 자진신고를 마친 6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비행기표를 반환하고 나오다가 단속에 걸려서 강제추방을 대기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와 마찰이 있거나 혹은 자진신고를 빌미로 더 강화된 노동을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기간이나마 추방되지 않으려면 그 사업장에 남아 있어야 한다. 다행히 내년 3월까지 단속되지 않더라도 이 기간이 지나서도 계속 그 사업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왜냐하면 위치가 파악되어 있고 출국을 안 했으므로). 그래서 다시 다른 사업장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이 때 그 사업장에서 발생할 임금체불이며, 착취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처럼 자진신고는 1년 동안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아니며, 시한부 사면장도 아니다.
둘째, 실제로 자진신고를 하라고 종용하면서 이를 주장하는 외노협과 일부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는 자진신고에 따른 문제발생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자진신고를 설명해 주고 이주노동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책임전가다. 자진신고가 미봉책인데다 졸속적인 조치지만 나중에 출국유예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1년 동안은 맘 편히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자진신고를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자진신고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라고 한다. 이것은 자진신고를 하지 않아서 추방되거나 자진신고를 하고 추방되거나 똑같이 개인의 책임일 뿐임을 강조한다. 기껏해야 부도덕한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무척 부차적인 문제이다.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2003년 3월 말에 법무부가 전원 출국방침을 세울 경우 할말이 없어질 상황이 있으므로 자진신고제도 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적시”하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말은 이후 자진신고한 사람들이 강제출국을 당하더라도 이미 자신은 그 가능성에 대해 언질을 주었기에 책임이 없음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자진신고제를 통해 선별적 추방을 감행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를 알면서도 이 상황을 왜곡하였고, 정부의 의도에 협조하였다. 누구나 알 듯이 정부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체를 강제출국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26만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한꺼번에 강제출국 시킬 경우 중소기업의 도산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단속추방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이주노동자가 자진신고를 했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특정 인원을 추려서 추방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이주노동자의 자진신고를 유도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사업주의 출국보장이 없더라도 자진신고를 받아 주었으며, 그 결과 자진신고 등록을 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추방시킬 사람을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단속추방이 자진신고 기간에도 자행된 사실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자진신고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진신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추방이 유예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추방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자진신고가 시한부 사면장이라면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등록하게 하는 것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목표여야 했다. 또한,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등록할 수 있도록 자진신고기간의 연장을 요구해야 했으며, 나중에는 출국만료일의 연장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는 잡혀가고 누구는 잡혀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 즉, 정부의 단속추방 정책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넷째, 자진신고제가 이주노동자 운동을 탄압하는 빌미로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어차피 자진신고를 해도 잡아갈 사람들은 잡아갈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자진신고를 거부함으로써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는 이주노동자의 집단과 핵심을 고립시켜 나아가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더욱 노골화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4월 7일 이후 정부는 국정원, 경찰, 출입국관리소를 동원해서 자진신고를 거부하는 이주노동자를 탄압하였으며, 자진신고제가 끝난 현재에도 이주노동자 운동의 핵심적인 역량에게 지속적인 추방위협이 가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은 자진신고제 시행을 발표했을 때 정부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자진신고에 협조하는 우를 범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 지속적으로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데 외노협과 일부 외국인 상담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태도 ; 과연 차선인가?
자진신고제를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보면 이주노동자 운동과 관련된 노선적 대립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가 다시 산업연수제의 폐지와 이주노동자의 합법화에 대한 기본정책으로 간다면 여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쟁점과 대립이 나타난다. 흔히 산업연수생제도 / 고용허가제 / 노동허가제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논쟁 축이다. 산업연수생제도를 가장 완강히 고수하려는 집단은 무엇보다도 중소기업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 자본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이들은 어떠한 형태이건 산업연수생제도를 유지하여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대안이 현실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먼저, 고용허가제란 정부와 NGO 일각에서 이야기되는데, 한국인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신청하면 이를 허가해 주는 제도이다. 이 때 국내에 취업을 희망하는 이주노동자 중에서 고용주가 선택하여 고용을 하게 되며, 이런 이유로 그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한편, 노동허가제는 고용여부에 관계없이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을 허가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노동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제한적 혹은,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당연히 고용허가제보다 노동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더 잘 보장해준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 쟁점은 ‘고용’이냐 ‘노동’이냐 하는 것보다도(이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가 단순하면 좋겠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현재 산업연수생은 노동자로 완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의 경우 명목상 산업연수를 목적으로 들어왔지 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하기 위해서 들어 온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노동자성을 인정받는다. 불법체류의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불법체류자이지만 사실상의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노동자성은 인정이 된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들어온 산업연수생은 오히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업장을 뛰쳐나와 불법체류자가 된 이주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일부에서는 고용허가제로 산업연수제도가 폐지되면 현재의 산업연수생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형식적으로라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즉, 노동허가제보다는 못하지만 전체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는 차선의 정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쟁점을 보다 분명히 정리해 보자. 일단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나면 현재보다 더 낫다라는 것인데, 이것이 핵심적인 것일까? 대답은 사실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다. 연수생제도가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가를 돼 짚어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연수생이라는 지위보다도 연수라는 미명아래에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는 족쇄를 채워놓았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노예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단속과 추방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로서 사업장을 이탈해 갔다. (고용허가제가 차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사업장을 이탈해서 불법체류자가 되었는지 되물어야 할 상황이다.)
만약 명목상이라도 노동자성이 인정된다고 한다면 실효성이 없더라도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현재도 대법원에서 기왕의 연수생에 대해서는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당연히 실효성이 없다. 또한, 불법체류자 신세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일 뿐 만 아니라, 고용허가제 아래에서도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바로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명목상 합법화가 쓸모가 없게 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산업연수제도와 불법체류가 되는 원인의 가장 핵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고, 그것이 바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이다. 이것을 풀지 않으면 어떠한 노동자성도 인정될 수 없으며, 실질적 노동3권의 보장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두 번째의 쟁점은 노동허가의 기간에 있다. 여기에 노동권 보장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동안 제출된 정부의 안은 노동기간을 1년간 허가하고 매 1년씩 2년간 연장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3권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데,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연장신청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가 그것도, 한 사업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는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이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전혀 보장되지 못한다. 이는 정부가 더 잘 알고 있다.
“입국시 계약을 1년 단위로 하고, 2회까지만 연장(최장 3년)하도록 하면 집단행동 가능성 최소화 가능. 사업주의 경우 불성실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계약연장 없이 출국 조치할 수 있고, 외국인근로자 입장에서는 성실하지 않으면 주어진 취업가능기간(최장 3년)을 채우기도 전에 귀국 조치될 수 있으므로 집단행동에 참여할 유인이 거의 없음“ (외국인근로자 고용 및 관리대책 2000. 8. 24, 당정협의회 자료 중에서)
노동기간과 관련해서 고용허가제는 물론이고 노동허가제라고 하더라도 1년마다 갱신하는 방식으로는 노동권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 최대한으로 생각해서 이는 모든 한국인 노동자에게 1년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즉, 노동권에 근본적인 제약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업장 이동의 금지’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억압하는 노예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노동허가 기간을 1년마다 갱신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족쇄를 풀고, 노동권을 쟁취하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고용허가제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은폐하고 법의 형식적인 논리에 현실을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고용허가제 역시 산업연수생제도와 마찬가지로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끊임없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한다.
첫째,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둘째,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동허가의 방식은 최초 3년 간 노동허가를 인정하고 2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는 일반노동허가와 5년 이상 체류자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는 특별노동허가를 실시해야 한다. 셋째, 현재 체류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는 최소한 5년간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비자 발급을 요구해야 한다. 이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전제로 할 때, 현재 체류중인 이주노동자에게 특별노동허가를 부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요구가 과연 비현실적일까?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은 정부와 자본과의 힘의 관계에 있어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 근거가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정부와 자본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결정적으로 힘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의는 없다. 하지만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힘을 키워 나갈 것인가 하는 데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주노동자의 힘은 이주노동자의 요구와 처지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할 때 모아질 수 있다. 지난 4월 7일 합법화와 노동비자를 요구한 1,000여명의 이주노동자의 집회가 개최되고, 4월 21일 불과 2주일만에 5,000여명 규모로 이주노동자의 집회가 예정되었다. 안타깝게도 국정원과 경찰, 출입국 관리소의 단속추방의 위협이 있었고, 이에 대항하여 이를 엄호할 국내의 운동세력의 부재와 외국인 상담소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 집회는 개최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엄호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데 있는 것이지 이들의 요구를 삭감하라고 주장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위의 요구들은 서투른 운동의 논리가 아니라 합법화와 노동비자 발급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뿐이다.
또한 운동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주노동자 도와주기 운동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운동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외국인 상담소 또는 국내 단체에 의한 이주노동자 운동은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하는 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이주노동자의 요구가 이주노동자 집단과 조직에 의해서 모아지고 외쳐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주노동자 개인별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를 정부의 폭력 속에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이주노동자의 요구와 현실이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에도 이주노동자들은 강요된 노동, 억압과 차별 속에서 하나 둘씩 죽어 가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1달이 넘게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투쟁과 어떻게 연대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다시 합법화와 노동비자를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집회를 5,000 아니 1만이 모여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그곳에서 풀릴 것이다. PSSP
프랑스의 르펜 파동 뒤로 네덜란드며 독일에서도 이주민의 봉쇄를 요구하는 극우파의 약진으로 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신자유주의자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극우파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유럽연합 차원에서 이민을 차단하는 정책을 갖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극우파의 인종차별주의 확산에 맞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대책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유럽의 사민당 정부들조차 이주민과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을 강화하는데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유럽과 자본주의 제국에서 이주민 문제는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때문에 어떤 정치세력의 성격을 판단하는데 이주민에 대한 정책이 기준이 되곤 하였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문제가 이제 한국에서도 남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는 대략 4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중에 30%는 산업연수생들이고 나머지 70%는 불법체류자로서 이들 모두 극심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는 단순한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그 제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 등 북반구에서 이주민의 문제는 생산력 격차에 따른 노동력의 이동(제국주의적 초과착취와 노동력의 이동)이 주요한 요인을 이루지만 한국에서 이주민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국정부의 외국인력 수입 정책의 문제로부터 발생하였다. 분명한 것은 지난 91년부터 한국정부가 산업연수제도를 명분으로 각 국에서 노동자를 수입해 들어왔고, 산업연수제도의 비인간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성격으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연수사업장을 이탈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연수제도가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불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일 뿐이라는 지적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끊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산업연수제도를 대체해 이런 비난을 모면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매우 미묘하고도 첨예하다. 블레어가 인종차별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이주민 제한 정책을 들고 나온 것처럼, 산업연수제도의 폐해를 막는 다는 목적으로 정부가 고용허가제라는 것을 도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용허가제에 대한 찬반이 일고 있고, 현재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를 놓고서 치열한 대립이 가속되고 있다.
이 글은 정부의 이주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현재 일부 외국인 상담소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 자진신고제에 대한 태도와 고용허가제 도입에 대한 태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 작성한 글임을 밝혀둔다.
쟁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전체 40만의 이주노동자 중 2002년 4월말 현재 17만의 산업연수생이 있으며 이중 5만 명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이른바 불법체류자가 되어 있다. 또한, 연수생 이탈을 포함하여 관광비자 등 비자만기 후 체류자, 밀입국자 등 26만여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살아가고 있다. 즉 이주노동자의 2/3이상이 이른바 불법체류 상태에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산업연수생제도와 정부의 단속추방 정책에 있다. 산업연수제도는 산업연수라는 명목으로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면서 사업장을 선택하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수의 산업연수생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불법체류자로 살아가야 했고,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은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주민 정책에 대해서 산업연수제도를 강화 혹은 변형하면서 그 기본 틀을 유지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단속과 추방정책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산업연수제도의 폐지는 모든 논쟁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이를 전제로 논쟁의 핵심 축은 불법체류를 구조화하는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주노동자의 합법화)과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산업연수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할 것인가, 노동허가제를 도입할 것인가 하는 논란과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즉, 사업장 이동(선택)의 자유와 노동기간의 문제로 압축되어 있다.
그러나, 운동진영 내부에서 쟁점은 항상 원칙론과 현실론의 형태로 대립된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일정기간 이상의 노동허가 기간이 보장된다면 좋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이른바 현실론자들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겠느냐고 지적한다. 그래서 제한적이나마 차선 혹은 차악의 정책들에 대해 합의를 보고 단계적으로 목적을 달성해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재 상태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방법 즉, 현실인식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점에서 현실론자들이 말하는 ‘현실’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는 현실론을 빌미로 운동의 노선과 정부에 대한 태도가 항상 교차해서 나타난다. 자진신고제를 둘러싼 논쟁은 바로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진신고를 둘러싼 논란 ; 과연 차악인가?
자진신고제도는 단속추방 정책의 보완책으로 예전부터 간헐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번 자진신고는 월드컵 등을 앞두고 불법체류자가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정부가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불법체류자 자진신고기간을 설정하고, 이 기간에 사업주의 출국보장과 귀국 비행기표를 소지하면 2002년 3월말까지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자진신고제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단속추방 정책에 비해 차악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록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는 토대와 원인에 대해서 본말이 전도되고 둘째,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될 것에 대한 미봉책이자 졸속적인 조치이기는 하지만 셋째, 시한부 사면 또는 시한부 양성화 조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한부 사면 조치라는 점인데, 어쨌든 10-12개월 정도는 강제추방의 위험 없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차라리 이번 자진신고와 출국유예조치를 차악 정도로 보면 되는 것”이고 “더 나빠지지는 않고 대신 한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자진신고제도를 거부하는 것은 ‘서툰 운동논리로 이주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데 첫째, 자진신고제를 전면거부 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이 없다는 점 둘째, 1년만이라도 맘 편하게 일하고 싶어하는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한다는 점 셋째, 무엇보다도 자진신고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강제출국 당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진신고 여부에 대해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정에 따라 도와준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진신고제는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차악’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진신고를 하면 강제추방의 위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1년이라도 이주노동자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다면 자진신고를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어차피 불법체류자 신세로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그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번 자진신고제의 목적은 출국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내년 3월까지 출국해야 하는 비행기표를 구비해야 하고, 그 때까지 사업장 이동을 해서도 안되며, 사업주의 출국보장이 있어야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단속추방의 대상이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업주들은 벌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출국보장을 해 줄 이유가 없고 그 때문에 자진신고율이 매우 저조했다. 그러다가 정부에서 사업주 보장이 없어도 등록을 할 수 있게 이른바 실업자 등록이라는 형태로도 자진신고를 받아 주었다. 그러자 자진신고율은 매우 높아졌지만 단속되면 추방되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또한, 실제 이주노동자 중에서 1년 이내에 귀국을 희망하는 이주노동자들이 10%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이 기간 중 비행기표를 반환해야 한다. 일례로 지난 5월 8일 자진신고를 마친 6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비행기표를 반환하고 나오다가 단속에 걸려서 강제추방을 대기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와 마찰이 있거나 혹은 자진신고를 빌미로 더 강화된 노동을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기간이나마 추방되지 않으려면 그 사업장에 남아 있어야 한다. 다행히 내년 3월까지 단속되지 않더라도 이 기간이 지나서도 계속 그 사업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왜냐하면 위치가 파악되어 있고 출국을 안 했으므로). 그래서 다시 다른 사업장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이 때 그 사업장에서 발생할 임금체불이며, 착취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처럼 자진신고는 1년 동안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아니며, 시한부 사면장도 아니다.
둘째, 실제로 자진신고를 하라고 종용하면서 이를 주장하는 외노협과 일부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는 자진신고에 따른 문제발생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자진신고를 설명해 주고 이주노동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책임전가다. 자진신고가 미봉책인데다 졸속적인 조치지만 나중에 출국유예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1년 동안은 맘 편히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자진신고를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자진신고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라고 한다. 이것은 자진신고를 하지 않아서 추방되거나 자진신고를 하고 추방되거나 똑같이 개인의 책임일 뿐임을 강조한다. 기껏해야 부도덕한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무척 부차적인 문제이다.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2003년 3월 말에 법무부가 전원 출국방침을 세울 경우 할말이 없어질 상황이 있으므로 자진신고제도 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적시”하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말은 이후 자진신고한 사람들이 강제출국을 당하더라도 이미 자신은 그 가능성에 대해 언질을 주었기에 책임이 없음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자진신고제를 통해 선별적 추방을 감행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를 알면서도 이 상황을 왜곡하였고, 정부의 의도에 협조하였다. 누구나 알 듯이 정부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체를 강제출국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26만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한꺼번에 강제출국 시킬 경우 중소기업의 도산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단속추방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이주노동자가 자진신고를 했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특정 인원을 추려서 추방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이주노동자의 자진신고를 유도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사업주의 출국보장이 없더라도 자진신고를 받아 주었으며, 그 결과 자진신고 등록을 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추방시킬 사람을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단속추방이 자진신고 기간에도 자행된 사실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자진신고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진신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추방이 유예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추방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자진신고가 시한부 사면장이라면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등록하게 하는 것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목표여야 했다. 또한,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등록할 수 있도록 자진신고기간의 연장을 요구해야 했으며, 나중에는 출국만료일의 연장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는 잡혀가고 누구는 잡혀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 즉, 정부의 단속추방 정책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넷째, 자진신고제가 이주노동자 운동을 탄압하는 빌미로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어차피 자진신고를 해도 잡아갈 사람들은 잡아갈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자진신고를 거부함으로써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는 이주노동자의 집단과 핵심을 고립시켜 나아가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더욱 노골화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4월 7일 이후 정부는 국정원, 경찰, 출입국관리소를 동원해서 자진신고를 거부하는 이주노동자를 탄압하였으며, 자진신고제가 끝난 현재에도 이주노동자 운동의 핵심적인 역량에게 지속적인 추방위협이 가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은 자진신고제 시행을 발표했을 때 정부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자진신고에 협조하는 우를 범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 지속적으로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데 외노협과 일부 외국인 상담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태도 ; 과연 차선인가?
자진신고제를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보면 이주노동자 운동과 관련된 노선적 대립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가 다시 산업연수제의 폐지와 이주노동자의 합법화에 대한 기본정책으로 간다면 여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쟁점과 대립이 나타난다. 흔히 산업연수생제도 / 고용허가제 / 노동허가제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논쟁 축이다. 산업연수생제도를 가장 완강히 고수하려는 집단은 무엇보다도 중소기업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 자본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이들은 어떠한 형태이건 산업연수생제도를 유지하여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대안이 현실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먼저, 고용허가제란 정부와 NGO 일각에서 이야기되는데, 한국인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신청하면 이를 허가해 주는 제도이다. 이 때 국내에 취업을 희망하는 이주노동자 중에서 고용주가 선택하여 고용을 하게 되며, 이런 이유로 그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한편, 노동허가제는 고용여부에 관계없이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을 허가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노동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제한적 혹은,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당연히 고용허가제보다 노동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더 잘 보장해준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 쟁점은 ‘고용’이냐 ‘노동’이냐 하는 것보다도(이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가 단순하면 좋겠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현재 산업연수생은 노동자로 완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의 경우 명목상 산업연수를 목적으로 들어왔지 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하기 위해서 들어 온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노동자성을 인정받는다. 불법체류의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불법체류자이지만 사실상의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노동자성은 인정이 된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들어온 산업연수생은 오히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업장을 뛰쳐나와 불법체류자가 된 이주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일부에서는 고용허가제로 산업연수제도가 폐지되면 현재의 산업연수생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형식적으로라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즉, 노동허가제보다는 못하지만 전체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는 차선의 정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쟁점을 보다 분명히 정리해 보자. 일단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나면 현재보다 더 낫다라는 것인데, 이것이 핵심적인 것일까? 대답은 사실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다. 연수생제도가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가를 돼 짚어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연수생이라는 지위보다도 연수라는 미명아래에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는 족쇄를 채워놓았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노예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단속과 추방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로서 사업장을 이탈해 갔다. (고용허가제가 차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사업장을 이탈해서 불법체류자가 되었는지 되물어야 할 상황이다.)
만약 명목상이라도 노동자성이 인정된다고 한다면 실효성이 없더라도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현재도 대법원에서 기왕의 연수생에 대해서는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당연히 실효성이 없다. 또한, 불법체류자 신세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일 뿐 만 아니라, 고용허가제 아래에서도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바로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명목상 합법화가 쓸모가 없게 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산업연수제도와 불법체류가 되는 원인의 가장 핵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고, 그것이 바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이다. 이것을 풀지 않으면 어떠한 노동자성도 인정될 수 없으며, 실질적 노동3권의 보장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두 번째의 쟁점은 노동허가의 기간에 있다. 여기에 노동권 보장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동안 제출된 정부의 안은 노동기간을 1년간 허가하고 매 1년씩 2년간 연장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3권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데,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연장신청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가 그것도, 한 사업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는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이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전혀 보장되지 못한다. 이는 정부가 더 잘 알고 있다.
“입국시 계약을 1년 단위로 하고, 2회까지만 연장(최장 3년)하도록 하면 집단행동 가능성 최소화 가능. 사업주의 경우 불성실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계약연장 없이 출국 조치할 수 있고, 외국인근로자 입장에서는 성실하지 않으면 주어진 취업가능기간(최장 3년)을 채우기도 전에 귀국 조치될 수 있으므로 집단행동에 참여할 유인이 거의 없음“ (외국인근로자 고용 및 관리대책 2000. 8. 24, 당정협의회 자료 중에서)
노동기간과 관련해서 고용허가제는 물론이고 노동허가제라고 하더라도 1년마다 갱신하는 방식으로는 노동권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 최대한으로 생각해서 이는 모든 한국인 노동자에게 1년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즉, 노동권에 근본적인 제약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업장 이동의 금지’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억압하는 노예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노동허가 기간을 1년마다 갱신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족쇄를 풀고, 노동권을 쟁취하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고용허가제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은폐하고 법의 형식적인 논리에 현실을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고용허가제 역시 산업연수생제도와 마찬가지로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끊임없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한다.
첫째,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둘째,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동허가의 방식은 최초 3년 간 노동허가를 인정하고 2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는 일반노동허가와 5년 이상 체류자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는 특별노동허가를 실시해야 한다. 셋째, 현재 체류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는 최소한 5년간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비자 발급을 요구해야 한다. 이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전제로 할 때, 현재 체류중인 이주노동자에게 특별노동허가를 부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요구가 과연 비현실적일까?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은 정부와 자본과의 힘의 관계에 있어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 근거가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정부와 자본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결정적으로 힘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의는 없다. 하지만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힘을 키워 나갈 것인가 하는 데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주노동자의 힘은 이주노동자의 요구와 처지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할 때 모아질 수 있다. 지난 4월 7일 합법화와 노동비자를 요구한 1,000여명의 이주노동자의 집회가 개최되고, 4월 21일 불과 2주일만에 5,000여명 규모로 이주노동자의 집회가 예정되었다. 안타깝게도 국정원과 경찰, 출입국 관리소의 단속추방의 위협이 있었고, 이에 대항하여 이를 엄호할 국내의 운동세력의 부재와 외국인 상담소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 집회는 개최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엄호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데 있는 것이지 이들의 요구를 삭감하라고 주장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위의 요구들은 서투른 운동의 논리가 아니라 합법화와 노동비자 발급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뿐이다.
또한 운동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주노동자 도와주기 운동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운동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외국인 상담소 또는 국내 단체에 의한 이주노동자 운동은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하는 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이주노동자의 요구가 이주노동자 집단과 조직에 의해서 모아지고 외쳐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주노동자 개인별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를 정부의 폭력 속에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이주노동자의 요구와 현실이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에도 이주노동자들은 강요된 노동, 억압과 차별 속에서 하나 둘씩 죽어 가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1달이 넘게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투쟁과 어떻게 연대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다시 합법화와 노동비자를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집회를 5,000 아니 1만이 모여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그곳에서 풀릴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