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26호
6.13 지방선거에 대하여
6․13 지방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진보진영의 지방선거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올해 대선의 전초전적인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최초로 실시되는 제도적 이점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들의 선거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3김 정치의 자연사를 앞두고 그 공백을 메울 대안이 부재한 상황과 IMF경제위기 5년 동안 이루어진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그리고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환멸이 얽혀 대중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램이 크다는 점이 이번 선거에 참여한 진보진영 일반의 판단인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한 진보진영의 이와 같은 일반적 인식에 몇 가지 의문을 던지면서 이번 지방선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지방자치제
첫 번째 의문은 일반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 혹은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이라는 모토를 가지는 지방자치제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차원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하는 점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의문은 지방선거대응에 앞서 지방자치제 자체의 의미를 살피면서 전제되는 정세를 판단함과 동시에 6․13 지방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진보진영이 애초에 이러한 의문은 사장한 채 선거를 사고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강한 의미의 비판적 함의를 가진다.
1991년 부분 부활되고, 1995년 전면 시행된 지방자치제가 애초에 내세운 모토는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는 헌법상의 제도실현 자체를 막아온 군사정권의 파쇼적인 중앙집중적 시각에 대한 단순 반대론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지자제는 많은 이들로부터 중앙정부로 집중된 재정과 정치 행정적 권한을 지역적으로 분산 책임짐으로써, 보다 직접적인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유력한 기제로 인식되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지자제 전면실시 7년째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실상 지방자치제 부활의 본질적인 의미를 민주화 운동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지역 행정적 관철에서 찾을 수밖에 없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오늘날 지자제는 부분부활 10년 전면실시 7년 만에 심각한 제도적 파탄 상황에 직면해있다. 대중은 지자제선거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며, 투표율은 심각하게 저조(2000년 재보선시 20%대)하다. 또한 98년 출범한 광역단체장 3명 중 1명, 기초단체장 6명중 1명이 부패비리혐의로 사법 처리될 정도로 각종 이권개입과 청탁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지방자치 제도의 위기가 표출되는 현상형태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국민국가적 통합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계급계층간, 지역간 분리와 배제를 기본 작동원리로 하고 있고, 금융세계화와 그 일환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지방분권책으로 중앙정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지역불균형을 책임회피하고 방관 할 뿐 아니라 이를 정당화시켜주는 방패막이 구실을 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금융세계화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필요로 하는 광범위한 금융서비스와 관련 법률, 하부구조, 사업 서비스, 국제공황과 확고한 통신망을 갖춘 민족국가내의 초민족화된 중심지역, 이른바 ‘세계도시’를 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 외의 지역(도시)들의 분리와 배제를 요구하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족적 도시, 지역체계의 재편을 추동한다. 전에 없이 심각한 수준의 지역간 불균형이 구조화되고 배제된 지역의 분리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90년 이후 금융세계화에 급속하게 편입해 들어간 한국사회에서 지역적 불평등과 배제는 ‘세계도시’들간의 초민족적 위계 속에 새롭게 편입하기 위하여 세계도시화 하려는 서울 수도권과 다른 지역 간의 격차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 지역적 불균형 발전은 1960,70년대 재벌중심의 수출지향형 공업화시기부터 이미 3,40년 간에 걸쳐 (수도권과 영남의 몇몇 공업 물량지대 중심으로) 확립된 터이다. 거기에 IMF경제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대다수의 지역경제는 공동화될 처지에 놓인 채, 90년대 금융적 팽창을 축으로 한 정보화/서비스화 중심의 경제구조재편 과정에서조차 소외되었다. 이에 대다수의 지역들은 외지자본 유치를 통한 발전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또한 선택받은 몇몇 지역들에게나 한정된 방편이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기 지역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려 지역전체를 하나의 매력적인 상품으로 가꾸어 파는 소위 ‘장소마케팅’으로 외지자본유치에 혈안이 되는데, 이 ‘장소마케팅’의 유래는 영국의 대처정권이 이른바 ‘지방분권화’의 명목으로 중앙의 지원을 삭감하여 지방의 미래를 ‘시장의 원리’에 맡겨버린 신자유주의적 지역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특별한 자본유인구조가 부재한 지역상황에서 분권화 된 지역자치단체들과 지역유지들은 자기지역으로 개발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통제 강화, 각종 하부구조 공급, 조세와 자본규제완화, 사영화와 같은 조치를 앞다투어 실시했고, 그 결과로 영국의 몇몇 지역도시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대다수 도시들은 보다 철저히 몰락하여 지역 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지자제 도입이후 한국의 현실 또한 이러한 영국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고, 재원이 마땅치 않은 가난한 지역들은 외부로부터의 투자를 유치하고 지역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과다한 특혜와 혜택을 남발하였고, 열악한 재정자립도와 지방부채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자치에 의한 지역발전과 복리증진이라는 지자제 도입 애초의 목적보다는 무분별한 수익성 논리에 지방행정을 종속시켜버렸다. 실제로 2001년 현재 자치단체의 79%가 재정자립도 50%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며, 특별시/광역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의 재정자립도는 40%를 넘지 못한다.(예컨대 경북 봉화는 9.9%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정자립도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91년 66.4%에서 96년 66.2%, 01년 57.6%) 또한 이러한 사정에 따라 당연히 지방정부가 지니고 있는 채무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여 2001년 현재 각 지방정부가 지고 있는 부채는 모두 18조원 가까이 되는데, 그 상환의 대부분은 지방세와 기타 수익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지방 빚의 97%가 지역주민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가운데, 나날이 심각해지는 지역간 불균형의 모든 책임은 지방분권 지역자치의 이름아래 지역주민들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현실적으로 각 지방정부는 도로나 상하수도와 같은 극히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사업들마저 빚을 내서 겨우 집행하고 있는 실정이며, 주민복지나 주민자치 실현과 같은 지자제 본연의 과제는 무분별한 수익성 논리와 사활을 건 외지 자본유치에 밀려버리는 심각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중앙정부의 책임회피와 지방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생존의 악순환속에서 ‘분권 아닌 분권’, ‘자치 불가능’의 기형적인 형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경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내의 부정부패 독직 사건과 지역유지들과의 유착과 지역유지들의 각종 횡포와 전횡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지방분권이 가져온 필연적 결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보진영의 지방선거 대응의 문제점
그러면 이제 다시 눈을 돌려, 이상과 같은 지자제의 기만적인 본질 인식을 기초로 하여 진보진영의 6․13 지방선거 대응의 한계와 선거정책상의 몇 가지 쟁점에 관해 살펴보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쟁점이 지나치게 각 지역별 의제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후보와 정당별 지역별로 몇 가지 차이와 쟁점이 있긴 하지만, 이번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반부패와 투명예산과 참여예산, 복지예산 증액, 개발에 앞선 환경정책, 진보운동에 힘써온 인물론을 주된 선거이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과정에서 반부패와 복지예산, 지역별 환경정책을 말하지 않는 후보는 없다. 그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진보적인 성격도 보장되지 않는다. 도리어 투명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반부패정책, 사회적 안전망을 말하는 생산적 복지정책, 반동적이고(또 다른 발전개발주의로서) 지역이기주의적인 환경파시즘까지 횡횡하는 마당이다. 이렇게 제한된 의제로는 보수정치권과 차별화 할 수 없을뿐더러, 선거 외의 공간에서 진행중인 대중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채 선거투쟁을 분리시키는 경향을 고착화하는 한계를 노정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보진영은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투쟁의 전초전이냐 아니냐는 허구적인 쟁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이 쟁점은 대선중심이냐 지방선거중심 대응이냐는 선거투쟁론이기 때문이다. 요는 이번 지방선거투쟁의 의의는 지난 4월 투쟁의 패배를 가늠하는 가운데 민생파탄 민주압살 부패비리로 얼룩진 김대중 정권을 규탄하고, 온 민중을 도탄에 빠뜨린 신자유주의 개혁과 지역분할 정책에 대한 전국적 비판을 수행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진보진영이 선거정책을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적 지방자치제의 틀 내에서 고민하고, 그 내에서 어떤 급진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걱정한다.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현 지방자치제 자체의 구조적 한계와 반민중성에 대한 비판을 누락하고 있으며, 비판의 대상을 기존 지방자치단체와 (보수)정치세력들의 부정부패로 한정짓고 있다. 지방자치제는 자체로 반민중적이며, 신자유주의 개혁과정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된 지역 간 불균형을 각 지역(주민)의 책임으로 돌려 은폐하는 기제에 다름 아닐뿐더러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미 불가능해진 지역발전을 그 존립의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름만 남은 기만적인 제도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 선거는 진보세력이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선거투쟁의 장이 아니라 지역 간 계급계층간 분할과 배제를 강제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전국화 지역화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 지역토호들과 지방자치단체들에 대한 투쟁의 장이자, 신자유주의적 지역분할 정책에 대한 전면적 비판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반부패 정책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부패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자 누구나 약속하고 장담하는 가장 논란거리가 없는 듯한 쟁점이다. 진보진영의 많은 후보들 또한 아예 반부패를 최우선 모토로 삼고, 투명예산과 참여예산제 도입을 주요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예산 투명성 확보와 참여중심의 반부패 의제는 자칫 사안을 개인적 청렴성과 금융화 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행정적 도입으로 왜곡시킬 여지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도가 극히 불분명하다는 것을 넘겨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시행정 장악이후에 보수적인 시의회를 무력화시키는 방편으로 활용된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래시의 참여예산제가 가지는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특히 지난 부정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이나 행정당국과 시민 사회운동간의 공동의 행정예산 참여기구격인 부패방지위원회의 구성 참가안 등의 발상에서 드러나는 자유주의적 반부패 정책개혁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환경우선정책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어느 때보다 폭넓고 풍부한 환경우선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개발에 앞선 환경을 주장함으로써 녹색의제를 정치쟁점화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우선 평가되어야하겠지만, 아울러 지역현안 수준의 아이디어성 대책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적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 선택된 지역만의 또 다른 개발, 새로운 녹색(개발)불평등의 양산으로 결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연간 예산이 11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시장선거의 최대 쟁점인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 이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개발우선주의에 대한 대중적 비판을 제기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칫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서울의 환경개선사업을 벌이는 식으로 ‘환경 서울’을 사고하게 함으로써 또다른 지역적 분리와 지역간 불평등의 시발이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에게 있어 청계천 복원은 어디까지나 수도서울을 금융화 된 세계도시로 가꾸기 위한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사업’, ‘금융세계화의 환경인프라 구축사업’으로서 이는 또다른 의미의 반동적인 지역 발전주의에 다름 아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나고있는 인물론 혹은 계급성과 사상의 이미지화로 왜곡된 선거전략의 위험성을 지적하고자한다.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후보들이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쉽게 지나쳐버리기 어려운 지경의 출세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후보들의 개인적인 성향의 불분명함보다 더욱 걱정되어 경고하고자하는 바는 마침내 진보진영조차 빠져들기 시작한 ‘정치의 이미지화’이다. 타락한 386들의 87년이, 박정희의 망령을 뒤집어쓴 보수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진보진영의 이번 선거에서조차 우리는 도무지 어떤 내용도 진실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념의 정치’, 끊임없이 대중을 대상화하고 탈주체화함을 통해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직면한 위기의 혁명적 전화를 봉쇄해내는 ‘우민 정치’의 범람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의 확산은 어느 계급(이해)의, 어떤 사상의 이미지를 둘러썼는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떤 의지적 신념이나 그럴듯한 언사에도, 이는 형형색색의 ‘무지개 정치’를 조합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정치환멸에 빠진 대중을 재차 기만할 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으로 편입하는 것이고, 지배정치에 굴종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왕의 진보진영의 운동 성과들은 그 정치적 수렴경로를 심각하게 왜곡되고, 종국에는 그 모두를 유실하거나 반동적으로 변질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 정세에서 이런 행태는 각 정치세력들간의 내용 없는 종파적 분립을 심화시키는 해악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직시하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배정치의 틈새를 메울 ‘(보수정치와는) 뭔가 다른 진보정치’보다는 정치와 정치위기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다. 그들의 최종적 붕괴를 예고할, 메울 수 없는 균열의 창출을 위하여 PSSP
신자유주의 시대 지방자치제
첫 번째 의문은 일반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 혹은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이라는 모토를 가지는 지방자치제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차원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하는 점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의문은 지방선거대응에 앞서 지방자치제 자체의 의미를 살피면서 전제되는 정세를 판단함과 동시에 6․13 지방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진보진영이 애초에 이러한 의문은 사장한 채 선거를 사고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강한 의미의 비판적 함의를 가진다.
1991년 부분 부활되고, 1995년 전면 시행된 지방자치제가 애초에 내세운 모토는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는 헌법상의 제도실현 자체를 막아온 군사정권의 파쇼적인 중앙집중적 시각에 대한 단순 반대론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지자제는 많은 이들로부터 중앙정부로 집중된 재정과 정치 행정적 권한을 지역적으로 분산 책임짐으로써, 보다 직접적인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유력한 기제로 인식되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지자제 전면실시 7년째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실상 지방자치제 부활의 본질적인 의미를 민주화 운동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지역 행정적 관철에서 찾을 수밖에 없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오늘날 지자제는 부분부활 10년 전면실시 7년 만에 심각한 제도적 파탄 상황에 직면해있다. 대중은 지자제선거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며, 투표율은 심각하게 저조(2000년 재보선시 20%대)하다. 또한 98년 출범한 광역단체장 3명 중 1명, 기초단체장 6명중 1명이 부패비리혐의로 사법 처리될 정도로 각종 이권개입과 청탁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지방자치 제도의 위기가 표출되는 현상형태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국민국가적 통합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계급계층간, 지역간 분리와 배제를 기본 작동원리로 하고 있고, 금융세계화와 그 일환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지방분권책으로 중앙정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지역불균형을 책임회피하고 방관 할 뿐 아니라 이를 정당화시켜주는 방패막이 구실을 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금융세계화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필요로 하는 광범위한 금융서비스와 관련 법률, 하부구조, 사업 서비스, 국제공황과 확고한 통신망을 갖춘 민족국가내의 초민족화된 중심지역, 이른바 ‘세계도시’를 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 외의 지역(도시)들의 분리와 배제를 요구하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족적 도시, 지역체계의 재편을 추동한다. 전에 없이 심각한 수준의 지역간 불균형이 구조화되고 배제된 지역의 분리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90년 이후 금융세계화에 급속하게 편입해 들어간 한국사회에서 지역적 불평등과 배제는 ‘세계도시’들간의 초민족적 위계 속에 새롭게 편입하기 위하여 세계도시화 하려는 서울 수도권과 다른 지역 간의 격차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 지역적 불균형 발전은 1960,70년대 재벌중심의 수출지향형 공업화시기부터 이미 3,40년 간에 걸쳐 (수도권과 영남의 몇몇 공업 물량지대 중심으로) 확립된 터이다. 거기에 IMF경제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대다수의 지역경제는 공동화될 처지에 놓인 채, 90년대 금융적 팽창을 축으로 한 정보화/서비스화 중심의 경제구조재편 과정에서조차 소외되었다. 이에 대다수의 지역들은 외지자본 유치를 통한 발전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또한 선택받은 몇몇 지역들에게나 한정된 방편이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기 지역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려 지역전체를 하나의 매력적인 상품으로 가꾸어 파는 소위 ‘장소마케팅’으로 외지자본유치에 혈안이 되는데, 이 ‘장소마케팅’의 유래는 영국의 대처정권이 이른바 ‘지방분권화’의 명목으로 중앙의 지원을 삭감하여 지방의 미래를 ‘시장의 원리’에 맡겨버린 신자유주의적 지역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특별한 자본유인구조가 부재한 지역상황에서 분권화 된 지역자치단체들과 지역유지들은 자기지역으로 개발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통제 강화, 각종 하부구조 공급, 조세와 자본규제완화, 사영화와 같은 조치를 앞다투어 실시했고, 그 결과로 영국의 몇몇 지역도시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대다수 도시들은 보다 철저히 몰락하여 지역 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지자제 도입이후 한국의 현실 또한 이러한 영국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고, 재원이 마땅치 않은 가난한 지역들은 외부로부터의 투자를 유치하고 지역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과다한 특혜와 혜택을 남발하였고, 열악한 재정자립도와 지방부채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자치에 의한 지역발전과 복리증진이라는 지자제 도입 애초의 목적보다는 무분별한 수익성 논리에 지방행정을 종속시켜버렸다. 실제로 2001년 현재 자치단체의 79%가 재정자립도 50%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며, 특별시/광역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의 재정자립도는 40%를 넘지 못한다.(예컨대 경북 봉화는 9.9%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정자립도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91년 66.4%에서 96년 66.2%, 01년 57.6%) 또한 이러한 사정에 따라 당연히 지방정부가 지니고 있는 채무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여 2001년 현재 각 지방정부가 지고 있는 부채는 모두 18조원 가까이 되는데, 그 상환의 대부분은 지방세와 기타 수익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지방 빚의 97%가 지역주민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가운데, 나날이 심각해지는 지역간 불균형의 모든 책임은 지방분권 지역자치의 이름아래 지역주민들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현실적으로 각 지방정부는 도로나 상하수도와 같은 극히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사업들마저 빚을 내서 겨우 집행하고 있는 실정이며, 주민복지나 주민자치 실현과 같은 지자제 본연의 과제는 무분별한 수익성 논리와 사활을 건 외지 자본유치에 밀려버리는 심각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중앙정부의 책임회피와 지방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생존의 악순환속에서 ‘분권 아닌 분권’, ‘자치 불가능’의 기형적인 형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경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내의 부정부패 독직 사건과 지역유지들과의 유착과 지역유지들의 각종 횡포와 전횡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지방분권이 가져온 필연적 결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보진영의 지방선거 대응의 문제점
그러면 이제 다시 눈을 돌려, 이상과 같은 지자제의 기만적인 본질 인식을 기초로 하여 진보진영의 6․13 지방선거 대응의 한계와 선거정책상의 몇 가지 쟁점에 관해 살펴보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쟁점이 지나치게 각 지역별 의제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후보와 정당별 지역별로 몇 가지 차이와 쟁점이 있긴 하지만, 이번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반부패와 투명예산과 참여예산, 복지예산 증액, 개발에 앞선 환경정책, 진보운동에 힘써온 인물론을 주된 선거이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과정에서 반부패와 복지예산, 지역별 환경정책을 말하지 않는 후보는 없다. 그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진보적인 성격도 보장되지 않는다. 도리어 투명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반부패정책, 사회적 안전망을 말하는 생산적 복지정책, 반동적이고(또 다른 발전개발주의로서) 지역이기주의적인 환경파시즘까지 횡횡하는 마당이다. 이렇게 제한된 의제로는 보수정치권과 차별화 할 수 없을뿐더러, 선거 외의 공간에서 진행중인 대중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채 선거투쟁을 분리시키는 경향을 고착화하는 한계를 노정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보진영은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투쟁의 전초전이냐 아니냐는 허구적인 쟁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이 쟁점은 대선중심이냐 지방선거중심 대응이냐는 선거투쟁론이기 때문이다. 요는 이번 지방선거투쟁의 의의는 지난 4월 투쟁의 패배를 가늠하는 가운데 민생파탄 민주압살 부패비리로 얼룩진 김대중 정권을 규탄하고, 온 민중을 도탄에 빠뜨린 신자유주의 개혁과 지역분할 정책에 대한 전국적 비판을 수행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진보진영이 선거정책을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적 지방자치제의 틀 내에서 고민하고, 그 내에서 어떤 급진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걱정한다.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현 지방자치제 자체의 구조적 한계와 반민중성에 대한 비판을 누락하고 있으며, 비판의 대상을 기존 지방자치단체와 (보수)정치세력들의 부정부패로 한정짓고 있다. 지방자치제는 자체로 반민중적이며, 신자유주의 개혁과정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된 지역 간 불균형을 각 지역(주민)의 책임으로 돌려 은폐하는 기제에 다름 아닐뿐더러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미 불가능해진 지역발전을 그 존립의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름만 남은 기만적인 제도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 선거는 진보세력이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선거투쟁의 장이 아니라 지역 간 계급계층간 분할과 배제를 강제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전국화 지역화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 지역토호들과 지방자치단체들에 대한 투쟁의 장이자, 신자유주의적 지역분할 정책에 대한 전면적 비판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반부패 정책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부패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자 누구나 약속하고 장담하는 가장 논란거리가 없는 듯한 쟁점이다. 진보진영의 많은 후보들 또한 아예 반부패를 최우선 모토로 삼고, 투명예산과 참여예산제 도입을 주요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예산 투명성 확보와 참여중심의 반부패 의제는 자칫 사안을 개인적 청렴성과 금융화 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행정적 도입으로 왜곡시킬 여지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도가 극히 불분명하다는 것을 넘겨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시행정 장악이후에 보수적인 시의회를 무력화시키는 방편으로 활용된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래시의 참여예산제가 가지는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특히 지난 부정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이나 행정당국과 시민 사회운동간의 공동의 행정예산 참여기구격인 부패방지위원회의 구성 참가안 등의 발상에서 드러나는 자유주의적 반부패 정책개혁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환경우선정책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어느 때보다 폭넓고 풍부한 환경우선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개발에 앞선 환경을 주장함으로써 녹색의제를 정치쟁점화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우선 평가되어야하겠지만, 아울러 지역현안 수준의 아이디어성 대책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적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 선택된 지역만의 또 다른 개발, 새로운 녹색(개발)불평등의 양산으로 결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연간 예산이 11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시장선거의 최대 쟁점인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 이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개발우선주의에 대한 대중적 비판을 제기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칫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서울의 환경개선사업을 벌이는 식으로 ‘환경 서울’을 사고하게 함으로써 또다른 지역적 분리와 지역간 불평등의 시발이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에게 있어 청계천 복원은 어디까지나 수도서울을 금융화 된 세계도시로 가꾸기 위한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사업’, ‘금융세계화의 환경인프라 구축사업’으로서 이는 또다른 의미의 반동적인 지역 발전주의에 다름 아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나고있는 인물론 혹은 계급성과 사상의 이미지화로 왜곡된 선거전략의 위험성을 지적하고자한다.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후보들이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쉽게 지나쳐버리기 어려운 지경의 출세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후보들의 개인적인 성향의 불분명함보다 더욱 걱정되어 경고하고자하는 바는 마침내 진보진영조차 빠져들기 시작한 ‘정치의 이미지화’이다. 타락한 386들의 87년이, 박정희의 망령을 뒤집어쓴 보수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진보진영의 이번 선거에서조차 우리는 도무지 어떤 내용도 진실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념의 정치’, 끊임없이 대중을 대상화하고 탈주체화함을 통해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직면한 위기의 혁명적 전화를 봉쇄해내는 ‘우민 정치’의 범람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의 확산은 어느 계급(이해)의, 어떤 사상의 이미지를 둘러썼는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떤 의지적 신념이나 그럴듯한 언사에도, 이는 형형색색의 ‘무지개 정치’를 조합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정치환멸에 빠진 대중을 재차 기만할 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으로 편입하는 것이고, 지배정치에 굴종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왕의 진보진영의 운동 성과들은 그 정치적 수렴경로를 심각하게 왜곡되고, 종국에는 그 모두를 유실하거나 반동적으로 변질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 정세에서 이런 행태는 각 정치세력들간의 내용 없는 종파적 분립을 심화시키는 해악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직시하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배정치의 틈새를 메울 ‘(보수정치와는) 뭔가 다른 진보정치’보다는 정치와 정치위기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다. 그들의 최종적 붕괴를 예고할, 메울 수 없는 균열의 창출을 위하여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