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7-8.27호
2002년6월, 1987년6월
시청 앞에 있었다
대학원에서는 참여관찰 하러 간다고들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정세분석 하러 간다고들 했다. 놀랍다고들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들 했다.
축구가 핵심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50만에서 700만에 이르는 사람들 중, 코파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프로축구팀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쪽에서는. 새로운 변혁의 전망이 드러났다고 환호했다. 바로 이 자발적인 참여와 열광이야말로 새로운 주체의 특징이자, 새로운 시대의 운동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히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고 외치며 레드 컴플렉스를 박살냈다. 태극기를 패션화하면서 가증스런 엄숙주의를 깨 버렸다. 남녀노소 지역 구분 없이 환호하면서 바로 거리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끈질기게 2002년의 6월을 1987년의 6월과 비교한 <한겨레>의 지면에서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필자들이 이 열정의 방식과 뜨거운 공동체에 대한 감격을 토해냈다.
분위기에 휩싸여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걱정하고 우려하고 질타했다. 전국을 한 목소리로 뒤흔드는 ‘대~한민국’의 외침, 태극기에 절하고 입 맞추는 행위,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는 흥분에 찬 발언 등은 파시스트의 광기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하게 흔드는 태극기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외침은 위험한 민족주의적 심성을 자극한다. 또는,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은 허위의 공동체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억압과 분열과 배제를 스리슬쩍 덮어버리는 음험한 베일이며 몽혼한 마취약이다. 기껏 공차기에 열광하는 군중들의 뒤에 우민정책의 교활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오바’하지는 말자. 적어도 내가 참여관찰하고 정세분석한 결론은, 새로운 변혁의 가능성도 파시즘의 위험도 아니라는 것이다. 붉은 셔츠의 젊은이는 공산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을 뿐더러 전혀 관심도 없다. Be the Reds를 레드 컴플렉스와 연관시키는 구세대의 상상력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정말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태극기에 큰절을 올리는 젊은이는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면 그들은 이미 잘 간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짜증나는 현실에 침을 뱉을 수 있다. 암묵적인 상징적 의미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정도의 의미가 각인될 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축구를 핑계삼아 즐겁게 노는 것이다. 붉은 티셔츠도 태극기도 놀이의 소도구일 뿐이다. 까짓 것, 며칠씩 축제를 즐기는 나라들도 많다는데, 우리도 한 번 놀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끝이 나자, 조금은 덜 흥분된, 따라서 덜 오바하는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억압된 청소년의 정서적 탈출구라고 보기도 하고, 여성 지위의 향상에는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도 한다. 히딩크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인맥․학맥을 떨친 합리주의로 영웅이 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백인우월주의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월드컵 바람에 노동자 탄압은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는 한탄도 나온다. 그럴듯한 얘기도 있고 헛웃음이 나오는 말도 있다. 그에 대해서 일일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나 역시, 내가 집중해서 생각하고 고민했던 한 가지 얘기만 하겠다. 그건, 열정과 뜨거움의 공동경험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변혁에 반드시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의 비중인가 하는 점이다.
정말로 비슷했다
2002년 6월과 1987년 6월을 비교하는 것에 분개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생각을 수정해야 했는데, 사실 정말로 비슷했던 것이다. 1987년 당시 넥타이 부대 중 한 명이었던 한 선배는 데자뷰 현상에 갸우뚱하다가 문득 깨닫고 무릎을 쳤단다. 출근하자마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들뜬 수군거림. “엊저녁 어디 있었어? 그거 봤어?” “오늘 어디로 나갈 거야? 시청? 광화문?” 아, 생각해 보니, 1987년 6월이었단다. 나 역시, 거리의 사람들, 깃발들과 노래들, 많이 보던 광경이었다. 단, 깃발이 태극기요, 노래가 필승 코리아라는 점을 눈감으면 말이다. 아, 물론 꼭 같지는 않다. 최루탄과 화염병 대신 불꽃놀이와 폭죽 연기를 대치시키는 건 지나친 억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묘한 흥분과 감동, 낯선 사람과 어깨를 걸고 거리를 질주하는 뜨거움, 그 분위기 말이다. 비슷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뜨거운 공동체적 경험이라는 말을 인정하고야 말았는데, 사실 약간 가슴 쓰린 일이었다. ‘아, 대한민국’이라는 전두환 시절의 노래를 듣고 자란 나로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조차 의심쩍은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는, 따라서 심정적으로는 ‘이 무슨 망발이요, 광기냔 말이냐’라고 개탄하는 쪽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관찰과 정세분석의 객관적 결론은, 위에서 말한 대로, 감동할 것도 우려할 것도 없는, 별 것 아닌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유사성 때문에 나는 바로 ‘그날이 오면’ 그 순간 어떻게 될 지를 상상하게 되었다. 1987년의 6월, 그리고 감히 상상컨대 1980년의 5월 광주도 비슷한 분위기 아니었을까. 내가 느끼는 것을 내 옆의 사람도 느끼고, 아니, ‘우리 모두’ 느끼고, 참여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지만 동시에 이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것. 나와 밀착된 옆 사람의 느낌이 전염되고 그것이 다시 상승하고 확산되는 흥분의 나선형 발전 메카니즘. 이것만으로는 사실 군중심리에 불과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1987년과 1980년, 아니, 어떤 혁명의 순간도 군중심리가 폭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그러나 나는 그런 결론이 별로 기껍지는 않다. 내가 리버럴 개인주의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나는 군중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 혁명을 위해서는 그들의 ‘열정의 잠재력’에 불똥을 튕겨주면 되는가. 결국 나도, 월드컵의 6월 자체는 별 것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잠재력에서 희망과 감동을 보는 많은 <한겨레> 필자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란 말인가.
의식을 한다는 것은 존재를 거는 일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1987년 6월 경찰들은 우리를 구타하고 억압했지만, 2002년 6월 경찰들은 우리를 지켜주고 봉사했다는 것이다.
나는 탄압이 있어야 혁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아마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겠지만). 또는 비장함이 즐거움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예가 보여주듯 가장 극한인 경우 죽음에 이르는 위험이 있기도 했겠지만, 거리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다고 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 그 자체는 비장한 각오보다는 무용(武勇)의 흥분이 더 컸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의식(意識)의 계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일관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관된 세계관을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인 얘기다. 의식(意識), 단어 그대로 뜻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판단을 수반한다. 이것이 옳은가/그른가라는 가치의 판단, 내가 행동할 것인가/아닌가 하는 존재의 판단. 사르트르를 빌어 말하자면, 의식을 한다는 것은 존재를 거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탄압은 의식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계기가 반드시 탄압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정은, 비장(悲壯)의 경우도 있겠지만, 말한 대로 비장함이 아니라 즐거움일 수도 있다. 군중심리는 대중 혁명의 필요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며, 사실은 (필요)조건이라고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군중심리란 군중이 모인 곳에서라면 언제나 편재(偏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월드컵의 경험을 특이하고 새로운 현상으로 보아야 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핵심적인 것은 의식의 계기이며, 그것이 월드컵의 순간과 혁명의 순간을 갈라놓는 것이다.
1987년 6월,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탄압에 쓰러지는 일이 수많은 군중 중 하필이면 자신에게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나서지는 않았겠지만, 따라서 그다지 비장함을 느끼지도 않았겠지만, 아니, 오히려 함께 한다는 환희와 감동의 군중심리를 느꼈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거리에 나서기로 결단했을 때는 이미 독재정권과 민주화를 인식했던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경찰의 친절한 보호선 뒤에서 열심히 스크린을 쳐다보며 소리를 지르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순간, 그것에 무슨 의식이 필요한가. 당신은 노래방에 갈 때 당신의 존재를 거는가.
단추구멍을 꿰기 시작하다
나는 아주 고답적이고 요즘 무지하게 욕을 먹고 있는 계몽주의적-이성중심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의 해방적 잠재력’이라는 아름다운 명제에 딴지를 거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명제가 처음 출현한 맥락과는 상관없이 태극기 스커트처럼 매끈한 유행이 된 그 패션(fashion)을 눈꼴 시어 하는 것이다. 오바하지 말자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첫 단추구멍은, ‘즐겁냐/아니냐’가 아니라 ‘옳으냐/아니냐’이다. 즐거운 일을 같이 느끼고 행동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같이 느끼고 행동해서 즐거운 것이다. 이런 고답적인 얘기라니. 그러나, 단추를 엇갈리게 꿰는 것이 한때의 유행 패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옷 입는 법이란 건 유행을 넘어서 길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월드컵의 6월을 통해 증명된 열정의 잠재력에 불똥을 튕겨주는 것인가. 방향을 잘못 짚은 것이다. 월드컵의 6월에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정세에서, 질문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열정에 불 붙이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의식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이다.
노는 것에 시비를 걸 이유는 전혀 없다. 말했듯이, 까짓 것, 우리도 한 번쯤은 놀아보자. 그러나, 계속 놀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잘 알고 있는 일이란 거다. PSSP
대학원에서는 참여관찰 하러 간다고들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정세분석 하러 간다고들 했다. 놀랍다고들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들 했다.
축구가 핵심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50만에서 700만에 이르는 사람들 중, 코파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프로축구팀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쪽에서는. 새로운 변혁의 전망이 드러났다고 환호했다. 바로 이 자발적인 참여와 열광이야말로 새로운 주체의 특징이자, 새로운 시대의 운동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히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고 외치며 레드 컴플렉스를 박살냈다. 태극기를 패션화하면서 가증스런 엄숙주의를 깨 버렸다. 남녀노소 지역 구분 없이 환호하면서 바로 거리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끈질기게 2002년의 6월을 1987년의 6월과 비교한 <한겨레>의 지면에서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필자들이 이 열정의 방식과 뜨거운 공동체에 대한 감격을 토해냈다.
분위기에 휩싸여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걱정하고 우려하고 질타했다. 전국을 한 목소리로 뒤흔드는 ‘대~한민국’의 외침, 태극기에 절하고 입 맞추는 행위,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는 흥분에 찬 발언 등은 파시스트의 광기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하게 흔드는 태극기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외침은 위험한 민족주의적 심성을 자극한다. 또는,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은 허위의 공동체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억압과 분열과 배제를 스리슬쩍 덮어버리는 음험한 베일이며 몽혼한 마취약이다. 기껏 공차기에 열광하는 군중들의 뒤에 우민정책의 교활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오바’하지는 말자. 적어도 내가 참여관찰하고 정세분석한 결론은, 새로운 변혁의 가능성도 파시즘의 위험도 아니라는 것이다. 붉은 셔츠의 젊은이는 공산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을 뿐더러 전혀 관심도 없다. Be the Reds를 레드 컴플렉스와 연관시키는 구세대의 상상력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정말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태극기에 큰절을 올리는 젊은이는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면 그들은 이미 잘 간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짜증나는 현실에 침을 뱉을 수 있다. 암묵적인 상징적 의미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정도의 의미가 각인될 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축구를 핑계삼아 즐겁게 노는 것이다. 붉은 티셔츠도 태극기도 놀이의 소도구일 뿐이다. 까짓 것, 며칠씩 축제를 즐기는 나라들도 많다는데, 우리도 한 번 놀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끝이 나자, 조금은 덜 흥분된, 따라서 덜 오바하는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억압된 청소년의 정서적 탈출구라고 보기도 하고, 여성 지위의 향상에는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도 한다. 히딩크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인맥․학맥을 떨친 합리주의로 영웅이 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백인우월주의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월드컵 바람에 노동자 탄압은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는 한탄도 나온다. 그럴듯한 얘기도 있고 헛웃음이 나오는 말도 있다. 그에 대해서 일일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나 역시, 내가 집중해서 생각하고 고민했던 한 가지 얘기만 하겠다. 그건, 열정과 뜨거움의 공동경험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변혁에 반드시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의 비중인가 하는 점이다.
정말로 비슷했다
2002년 6월과 1987년 6월을 비교하는 것에 분개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생각을 수정해야 했는데, 사실 정말로 비슷했던 것이다. 1987년 당시 넥타이 부대 중 한 명이었던 한 선배는 데자뷰 현상에 갸우뚱하다가 문득 깨닫고 무릎을 쳤단다. 출근하자마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들뜬 수군거림. “엊저녁 어디 있었어? 그거 봤어?” “오늘 어디로 나갈 거야? 시청? 광화문?” 아, 생각해 보니, 1987년 6월이었단다. 나 역시, 거리의 사람들, 깃발들과 노래들, 많이 보던 광경이었다. 단, 깃발이 태극기요, 노래가 필승 코리아라는 점을 눈감으면 말이다. 아, 물론 꼭 같지는 않다. 최루탄과 화염병 대신 불꽃놀이와 폭죽 연기를 대치시키는 건 지나친 억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묘한 흥분과 감동, 낯선 사람과 어깨를 걸고 거리를 질주하는 뜨거움, 그 분위기 말이다. 비슷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뜨거운 공동체적 경험이라는 말을 인정하고야 말았는데, 사실 약간 가슴 쓰린 일이었다. ‘아, 대한민국’이라는 전두환 시절의 노래를 듣고 자란 나로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조차 의심쩍은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는, 따라서 심정적으로는 ‘이 무슨 망발이요, 광기냔 말이냐’라고 개탄하는 쪽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관찰과 정세분석의 객관적 결론은, 위에서 말한 대로, 감동할 것도 우려할 것도 없는, 별 것 아닌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유사성 때문에 나는 바로 ‘그날이 오면’ 그 순간 어떻게 될 지를 상상하게 되었다. 1987년의 6월, 그리고 감히 상상컨대 1980년의 5월 광주도 비슷한 분위기 아니었을까. 내가 느끼는 것을 내 옆의 사람도 느끼고, 아니, ‘우리 모두’ 느끼고, 참여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지만 동시에 이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것. 나와 밀착된 옆 사람의 느낌이 전염되고 그것이 다시 상승하고 확산되는 흥분의 나선형 발전 메카니즘. 이것만으로는 사실 군중심리에 불과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1987년과 1980년, 아니, 어떤 혁명의 순간도 군중심리가 폭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그러나 나는 그런 결론이 별로 기껍지는 않다. 내가 리버럴 개인주의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나는 군중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 혁명을 위해서는 그들의 ‘열정의 잠재력’에 불똥을 튕겨주면 되는가. 결국 나도, 월드컵의 6월 자체는 별 것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잠재력에서 희망과 감동을 보는 많은 <한겨레> 필자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란 말인가.
의식을 한다는 것은 존재를 거는 일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1987년 6월 경찰들은 우리를 구타하고 억압했지만, 2002년 6월 경찰들은 우리를 지켜주고 봉사했다는 것이다.
나는 탄압이 있어야 혁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아마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겠지만). 또는 비장함이 즐거움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예가 보여주듯 가장 극한인 경우 죽음에 이르는 위험이 있기도 했겠지만, 거리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다고 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 그 자체는 비장한 각오보다는 무용(武勇)의 흥분이 더 컸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의식(意識)의 계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일관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관된 세계관을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인 얘기다. 의식(意識), 단어 그대로 뜻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판단을 수반한다. 이것이 옳은가/그른가라는 가치의 판단, 내가 행동할 것인가/아닌가 하는 존재의 판단. 사르트르를 빌어 말하자면, 의식을 한다는 것은 존재를 거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탄압은 의식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계기가 반드시 탄압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정은, 비장(悲壯)의 경우도 있겠지만, 말한 대로 비장함이 아니라 즐거움일 수도 있다. 군중심리는 대중 혁명의 필요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며, 사실은 (필요)조건이라고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군중심리란 군중이 모인 곳에서라면 언제나 편재(偏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월드컵의 경험을 특이하고 새로운 현상으로 보아야 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핵심적인 것은 의식의 계기이며, 그것이 월드컵의 순간과 혁명의 순간을 갈라놓는 것이다.
1987년 6월,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탄압에 쓰러지는 일이 수많은 군중 중 하필이면 자신에게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나서지는 않았겠지만, 따라서 그다지 비장함을 느끼지도 않았겠지만, 아니, 오히려 함께 한다는 환희와 감동의 군중심리를 느꼈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거리에 나서기로 결단했을 때는 이미 독재정권과 민주화를 인식했던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경찰의 친절한 보호선 뒤에서 열심히 스크린을 쳐다보며 소리를 지르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순간, 그것에 무슨 의식이 필요한가. 당신은 노래방에 갈 때 당신의 존재를 거는가.
단추구멍을 꿰기 시작하다
나는 아주 고답적이고 요즘 무지하게 욕을 먹고 있는 계몽주의적-이성중심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의 해방적 잠재력’이라는 아름다운 명제에 딴지를 거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명제가 처음 출현한 맥락과는 상관없이 태극기 스커트처럼 매끈한 유행이 된 그 패션(fashion)을 눈꼴 시어 하는 것이다. 오바하지 말자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첫 단추구멍은, ‘즐겁냐/아니냐’가 아니라 ‘옳으냐/아니냐’이다. 즐거운 일을 같이 느끼고 행동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같이 느끼고 행동해서 즐거운 것이다. 이런 고답적인 얘기라니. 그러나, 단추를 엇갈리게 꿰는 것이 한때의 유행 패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옷 입는 법이란 건 유행을 넘어서 길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월드컵의 6월을 통해 증명된 열정의 잠재력에 불똥을 튕겨주는 것인가. 방향을 잘못 짚은 것이다. 월드컵의 6월에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정세에서, 질문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열정에 불 붙이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의식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이다.
노는 것에 시비를 걸 이유는 전혀 없다. 말했듯이, 까짓 것, 우리도 한 번쯤은 놀아보자. 그러나, 계속 놀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잘 알고 있는 일이란 거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