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7-8.27호
그들이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 참관 보고
지난 6월 초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휴양지 발리섬에서 주빌리 사우스(Jubilee South)가 주최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매우 다양한 국가의 활동가들이 모였는데,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네팔, 대만,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브라질, 에콰도르, 한국 등, 참가한 활동가만 줄잡아 80명쯤 되었다. 이 회의명칭은 바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Asia-Pacific Ecological Debt Conference)’. 사실 ‘생태부채’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진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회의에 참가하는 동안 제3세계의 다양한 운동단체들에게 ’생태부채‘라는 개념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환경과 자연에 관한 부채라고 간략히 표현할 수 있는 이 개념은 지금까지 제3세계 민중들이 제기해왔던 외채의 불법성뿐만 아니라, 북반구 국가들이 제3세계 민중들에게 오히려 빚을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북반구 국가들이 주도해왔던 ’발전‘의 결과로 지구의 파괴와 ’저개발국‘ 민중들의 삶은 처참하다. 주빌리 사우스는 생태부채 개념을 통해서 현재 북반구 국가들의 발전 모델이 아닌 모든 민중들의 삶이 풍요롭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남반구의 풍부한 자원을 착취하고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어떠한 의미에서 생태 부채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회의는 진행되었다. 회의기간동안 삼림, 공기, 유독성 폐기물, 물, 바다, 땅, 광물, 생물다양성, 약품과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주제 속에서 생태 부채가 실제 어떻게 증가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각 국에서 사례들이 제시되었는데 그 사례를 통해서 현재의 북반구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발전이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제3세계 민중들의 생활과 공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그들을 죽음과 빈곤으로 내몰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회의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생태부채의 개념과 그 제기 배경, 목적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동안 남반구 국가에서 진행된 외채거부운동의 맥락을 잠시 살펴보자.
모든 외채는 불법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외채 때문에 제3세계 민중들이 커다란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반구 국가에 제공된 외채는 애초부터 북반구 국가들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60년대 패트로 달러, 유로 달러로 과잉된 은행 자본을 리사이클링하기 위해 북반구 국가는 남반구 국가에 외채를 투입하였고 이는 지금까지 남반구 민중들을 옥죄고 있다. 게다가 80년대 일방적인 이자율 상승으로 북반구 국가가 제공한 자금은 몇 배로 부풀었다. 이에 따라 남반구 국가는 원금보다 커져버린 이자를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반구 국가들은 원금의 6배나 되는 돈, 80년대 남반구에 투입된 자금은 5670억 달러인데, 상환된 금액은 3조4500억 달러에 이른다, 을 이미 상환했지만 여전히 2조700억 달러의 외채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는 것은 외채와 상환, 그리고 이를 명목으로 자행된 조치들이 제3세계의 발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것들은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증식과 깊은 상관이 있다. 선진국들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 기관들을 앞세워 외채상환 일정을 재조정한다는 허울좋은 이유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제하고 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재정긴축, 민영화, 탈규제화를 핵심으로 하는데, 이를 통해 선진국은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이에 따라 결국 교육, 의료, 공공 서비스에 지출되어야 할 재정이 외채 상환에 조달되고, 전기, 수도, 도로와 같은 공적 영역이 민영화되어 외국 자본에게 넘어가 버렸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외채를 빌미로 제3세계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마음대로 사용해왔다. 외국인 투자라는 명목으로 제3세계 국가에 들어오는 초민족적 기업들은 자연파괴, 생태계 파괴를 통해 온갖 질병을 유발하였고 민중들의 터전을 빼앗고 있다. 게다가 외채는 제3세계 민중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3세계 독재자들과 선진국들 사이의 일방적인 계약이었고, 독재자들의 부정 축재와 제3세계 초민족적 엘리트들의 이윤 추구에 부당하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외채를 민중들이 책임져야할 이유가 있는가?
제3세계 민중들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들은 ‘외채 거부 운동을 위한 네트워크’인 주빌리 사우스를 구성하여 99년부터 외채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하기 위해 꾸준히 투쟁해왔다.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대중운동을 벌여 외채의 불법성을 알려내고, 외채를 무효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외채문제를 가지고 국제민중법정을 열기도 하였다. 배심원들의 판결은 ‘모든 외채는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생태부채, 그들이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
주빌리 사우스는 지난 2년 동안 외채의 불법성을 제기하는 투쟁 속에서 제3세계 국가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외채까지도 무효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빈국이 선진국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상식(?)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빚을 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하고, 금융 부문의 사기성 짙은 채무를 역사적․생태적인 영역으로 넓힌다면, 답은 상식과 반대로 나온다고 주장했다. “북반구의 나라들이 제3세계 민중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답이고, 여기서 새롭게 나타난 개념이 ‘생태부채’다. 생태부채를 통해서 우리는 북반구 선진국들과 그들의 제도, 초국적 자본, 그리고 이들과 동맹 관계에 있는 남반구 엘리트들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생태부채를 제기하는 몇 가지 목적을 살펴보면, 우선 지구와 민중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현재의 발전모델을 중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에서 북으로 불평등하게 유출되는 에너지와 천연 자원 및 금융 자원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외채의 불법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생태부채의 내역은 크게 북의 국가들이 착취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자원, 환경파괴, 그리고 온실 가스나 유독성 폐기물과 같은 쓰레기 처리를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는 공간 등이다. 북반구 국가들은 지구의 환경을 남용하고,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발전 모델을 추구하며,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원을 채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에 대한 생태부채를 이행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생태부채는 500년 전의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몇 가지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증가해왔다.
우선 생태부채는 천연자원을 착취하면서 축적된다. 북반구의 국가들은 오래 전 식민지 시대 때부터 남반구의 풍요로운 자원을 자신들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음대로 채취했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채취 양태와 메커니즘은 다르겠지만, 제3세계 민중들의 삶과 생태적 환경의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식민지 정복 초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의 숫자는 7천만~1억8천만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숫자는 350만 명에 불과하다.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페루 등의 많은 나라의 탄광 지역은 수은 중독과 아황산가스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며, 착취의 방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생태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공평한 무역관계 또한 생태부채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선진국 및 그들의 기업에 의해 자행되는 자원의 채취는 남반구 국가 안에서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파괴를 수반한다. 그러나 교역에서 이러한 파괴는 비용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석유, 삼림, 유전학적 자원, 광물, 해양 자원 등 수많은 것들이 다량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남반구 국가가 얻은 것이라고는 삼림 파괴, 환경 오염 등으로 삶의 터전이 황폐해지는 것,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 그리고 역설적으로 늘어나는 외채뿐이다.
그리고 대규모 농업 기업이나 현대의 생명 공학 기술이 식물의 종자나 식물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독점하는 것도 생태부채를 축적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은 남반구의 자연과 풍부한 생물, 그리고 남반구의 전통 지식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 그러나 남반구 국가는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으며, 오히려 현재 논의 진행 중인 WTO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법률로 인하여 북반구 기업들의 특허권을 보장하기 위해 남반구 민중이 자기나라의 특산물과 자신의 전통지식을 이용하는 것조차 통제할 형편이다.
또한, 대기오염의 문제도 제기된다. 북반구 국가 특히 미국의 국민 1인당 화석 연료 소비량은 남반구 국가의 국민 1인당 소비량의 12배에 달한다. 이런 소비량의 차이에 비례하여 온실 가스 등 지구 대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의 배출량도 북반구 국가가 절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 인류의 공동 재산인 대기를 북반구 국가가 무단으로 점유한 채 파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남반구 국가에서 그리고 그 인근 해상에서 진행되는 화학무기와 핵무기 실험, 북반구가 배출하는 유독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남반구의 자연을 이용하는 과정도 생태부채를 축적시키는 과정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빌리 사우스는 이런 생태부채를 지속시키고 가중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별로 강제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꼽는다. 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인 제도를 통해서, 그리고 외국인 투자유치라는 명목 하에 남반구 국가에 강제된다. 그리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남반구 민중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 자신의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외채 경감을 위해 수출이 가능한 상품(자연자원)만을 생산할 것을 강제한다. 결국 남반구의 자연과 자원은 오로지 외채를 갚기 위한 수출에 조달되는 것일 뿐, 남반구 민중들이 놓여있는 피폐한 조건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생태부채를 지속, 가중시키는 메커니즘은 WTO와 같은 무역기구에 의해서다. 위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협상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의 논의와 의미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는 생태부채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틀 속에서 각 국의 사례가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10여개 국가에서 참가한 80여명의 참가자들은 공기, 삼림, 물, 에너지와 전력, 약품과 의료, 생물다양성, 토지, 농업과 식품 안전성, 탄광, 전쟁, 유독성 폐기물 등의 주제를 생태부채의 개념 하에서 조사하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각각의 문제는 결코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나라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 발제 때마다 확인되었다.
사실 생태부채가 제기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활동가들이 먼저 제기했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중들은 아직 이 개념이 생소할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생태부채의 문제를 가지고 회의가 개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아직은 많은 한계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생태부채가 단순히 현재 남반구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외채를 거부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되는 개념일 뿐인가. 아니면 실제 북반구 국가들이 지고 있는 생태부채를 수치화 해서 배상을 받는 것이 목적인가. 아직 지금은 외채 거부 운동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개념의 문제고 이번 회의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어떠한 전략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회의 마지막 날 진행된 ‘전략과 공동행동 제안’ 순서에서 참가자들은 생태부채 문제를 이후 대중화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남반구 민중들의 연계와 연대, 자료 축적 및 실태 조사, 생태부채 채권자들(남반구 민중들)의 요구를 정식화해내는 것 등 20여 개가 넘는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외채 때문에 2중, 3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제3세계 민중들의 투쟁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듯 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강고한 투쟁을 벌이자는 제안이 이루어졌다. 생태부채를 통해 외채를 거부하고 무효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 흐름의 선두에 서있는 각종 국제금융제도들, 초국적 자본들, 제3세계 국가의 엘리트들에 맞선 투쟁, 그리고 외채 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또 다른 세계를 좀 더 가까운 미래로 가져올 것이다. PSSP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남반구의 풍부한 자원을 착취하고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어떠한 의미에서 생태 부채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회의는 진행되었다. 회의기간동안 삼림, 공기, 유독성 폐기물, 물, 바다, 땅, 광물, 생물다양성, 약품과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주제 속에서 생태 부채가 실제 어떻게 증가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각 국에서 사례들이 제시되었는데 그 사례를 통해서 현재의 북반구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발전이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제3세계 민중들의 생활과 공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그들을 죽음과 빈곤으로 내몰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회의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생태부채의 개념과 그 제기 배경, 목적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동안 남반구 국가에서 진행된 외채거부운동의 맥락을 잠시 살펴보자.
모든 외채는 불법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외채 때문에 제3세계 민중들이 커다란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반구 국가에 제공된 외채는 애초부터 북반구 국가들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60년대 패트로 달러, 유로 달러로 과잉된 은행 자본을 리사이클링하기 위해 북반구 국가는 남반구 국가에 외채를 투입하였고 이는 지금까지 남반구 민중들을 옥죄고 있다. 게다가 80년대 일방적인 이자율 상승으로 북반구 국가가 제공한 자금은 몇 배로 부풀었다. 이에 따라 남반구 국가는 원금보다 커져버린 이자를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반구 국가들은 원금의 6배나 되는 돈, 80년대 남반구에 투입된 자금은 5670억 달러인데, 상환된 금액은 3조4500억 달러에 이른다, 을 이미 상환했지만 여전히 2조700억 달러의 외채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는 것은 외채와 상환, 그리고 이를 명목으로 자행된 조치들이 제3세계의 발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것들은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증식과 깊은 상관이 있다. 선진국들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 기관들을 앞세워 외채상환 일정을 재조정한다는 허울좋은 이유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제하고 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재정긴축, 민영화, 탈규제화를 핵심으로 하는데, 이를 통해 선진국은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이에 따라 결국 교육, 의료, 공공 서비스에 지출되어야 할 재정이 외채 상환에 조달되고, 전기, 수도, 도로와 같은 공적 영역이 민영화되어 외국 자본에게 넘어가 버렸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외채를 빌미로 제3세계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마음대로 사용해왔다. 외국인 투자라는 명목으로 제3세계 국가에 들어오는 초민족적 기업들은 자연파괴, 생태계 파괴를 통해 온갖 질병을 유발하였고 민중들의 터전을 빼앗고 있다. 게다가 외채는 제3세계 민중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3세계 독재자들과 선진국들 사이의 일방적인 계약이었고, 독재자들의 부정 축재와 제3세계 초민족적 엘리트들의 이윤 추구에 부당하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외채를 민중들이 책임져야할 이유가 있는가?
제3세계 민중들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들은 ‘외채 거부 운동을 위한 네트워크’인 주빌리 사우스를 구성하여 99년부터 외채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하기 위해 꾸준히 투쟁해왔다.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대중운동을 벌여 외채의 불법성을 알려내고, 외채를 무효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외채문제를 가지고 국제민중법정을 열기도 하였다. 배심원들의 판결은 ‘모든 외채는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생태부채, 그들이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
주빌리 사우스는 지난 2년 동안 외채의 불법성을 제기하는 투쟁 속에서 제3세계 국가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외채까지도 무효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빈국이 선진국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상식(?)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빚을 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하고, 금융 부문의 사기성 짙은 채무를 역사적․생태적인 영역으로 넓힌다면, 답은 상식과 반대로 나온다고 주장했다. “북반구의 나라들이 제3세계 민중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답이고, 여기서 새롭게 나타난 개념이 ‘생태부채’다. 생태부채를 통해서 우리는 북반구 선진국들과 그들의 제도, 초국적 자본, 그리고 이들과 동맹 관계에 있는 남반구 엘리트들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생태부채를 제기하는 몇 가지 목적을 살펴보면, 우선 지구와 민중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현재의 발전모델을 중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에서 북으로 불평등하게 유출되는 에너지와 천연 자원 및 금융 자원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외채의 불법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생태부채의 내역은 크게 북의 국가들이 착취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자원, 환경파괴, 그리고 온실 가스나 유독성 폐기물과 같은 쓰레기 처리를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는 공간 등이다. 북반구 국가들은 지구의 환경을 남용하고,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발전 모델을 추구하며,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원을 채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에 대한 생태부채를 이행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생태부채는 500년 전의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몇 가지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증가해왔다.
우선 생태부채는 천연자원을 착취하면서 축적된다. 북반구의 국가들은 오래 전 식민지 시대 때부터 남반구의 풍요로운 자원을 자신들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음대로 채취했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채취 양태와 메커니즘은 다르겠지만, 제3세계 민중들의 삶과 생태적 환경의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식민지 정복 초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의 숫자는 7천만~1억8천만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숫자는 350만 명에 불과하다.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페루 등의 많은 나라의 탄광 지역은 수은 중독과 아황산가스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며, 착취의 방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생태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공평한 무역관계 또한 생태부채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선진국 및 그들의 기업에 의해 자행되는 자원의 채취는 남반구 국가 안에서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파괴를 수반한다. 그러나 교역에서 이러한 파괴는 비용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석유, 삼림, 유전학적 자원, 광물, 해양 자원 등 수많은 것들이 다량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남반구 국가가 얻은 것이라고는 삼림 파괴, 환경 오염 등으로 삶의 터전이 황폐해지는 것,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 그리고 역설적으로 늘어나는 외채뿐이다.
그리고 대규모 농업 기업이나 현대의 생명 공학 기술이 식물의 종자나 식물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독점하는 것도 생태부채를 축적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은 남반구의 자연과 풍부한 생물, 그리고 남반구의 전통 지식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 그러나 남반구 국가는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으며, 오히려 현재 논의 진행 중인 WTO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법률로 인하여 북반구 기업들의 특허권을 보장하기 위해 남반구 민중이 자기나라의 특산물과 자신의 전통지식을 이용하는 것조차 통제할 형편이다.
또한, 대기오염의 문제도 제기된다. 북반구 국가 특히 미국의 국민 1인당 화석 연료 소비량은 남반구 국가의 국민 1인당 소비량의 12배에 달한다. 이런 소비량의 차이에 비례하여 온실 가스 등 지구 대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의 배출량도 북반구 국가가 절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 인류의 공동 재산인 대기를 북반구 국가가 무단으로 점유한 채 파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남반구 국가에서 그리고 그 인근 해상에서 진행되는 화학무기와 핵무기 실험, 북반구가 배출하는 유독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남반구의 자연을 이용하는 과정도 생태부채를 축적시키는 과정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빌리 사우스는 이런 생태부채를 지속시키고 가중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별로 강제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꼽는다. 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인 제도를 통해서, 그리고 외국인 투자유치라는 명목 하에 남반구 국가에 강제된다. 그리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남반구 민중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 자신의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외채 경감을 위해 수출이 가능한 상품(자연자원)만을 생산할 것을 강제한다. 결국 남반구의 자연과 자원은 오로지 외채를 갚기 위한 수출에 조달되는 것일 뿐, 남반구 민중들이 놓여있는 피폐한 조건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생태부채를 지속, 가중시키는 메커니즘은 WTO와 같은 무역기구에 의해서다. 위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협상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의 논의와 의미
아시아-태평양 지역 생태부채 회의는 생태부채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틀 속에서 각 국의 사례가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10여개 국가에서 참가한 80여명의 참가자들은 공기, 삼림, 물, 에너지와 전력, 약품과 의료, 생물다양성, 토지, 농업과 식품 안전성, 탄광, 전쟁, 유독성 폐기물 등의 주제를 생태부채의 개념 하에서 조사하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각각의 문제는 결코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나라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 발제 때마다 확인되었다.
사실 생태부채가 제기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활동가들이 먼저 제기했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중들은 아직 이 개념이 생소할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생태부채의 문제를 가지고 회의가 개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아직은 많은 한계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생태부채가 단순히 현재 남반구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외채를 거부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되는 개념일 뿐인가. 아니면 실제 북반구 국가들이 지고 있는 생태부채를 수치화 해서 배상을 받는 것이 목적인가. 아직 지금은 외채 거부 운동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개념의 문제고 이번 회의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어떠한 전략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회의 마지막 날 진행된 ‘전략과 공동행동 제안’ 순서에서 참가자들은 생태부채 문제를 이후 대중화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남반구 민중들의 연계와 연대, 자료 축적 및 실태 조사, 생태부채 채권자들(남반구 민중들)의 요구를 정식화해내는 것 등 20여 개가 넘는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외채 때문에 2중, 3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제3세계 민중들의 투쟁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듯 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강고한 투쟁을 벌이자는 제안이 이루어졌다. 생태부채를 통해 외채를 거부하고 무효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 흐름의 선두에 서있는 각종 국제금융제도들, 초국적 자본들, 제3세계 국가의 엘리트들에 맞선 투쟁, 그리고 외채 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또 다른 세계를 좀 더 가까운 미래로 가져올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