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위기에 빠진 정치를 구원할 수 있는가
정계개편, 위기에 빠진 정치를 구원할 수 있는가
―대선 정치지형 쟁점 분석과 비판
지배정치세력의 행보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장상 총리 서리 국회 인준 부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정몽준 대안론의 급부상 등 숨가쁘게 진행된 정국은 정치의 위기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현재 지배계급은 이를 재봉합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 자신들의 이념·노선적 지향을 전혀 밝히지 못한 채 퇴행적·반동적인 방식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나라당 역시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치 공동화' 현상에 우왕좌왕하며 동반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정국, 과연 지배 정치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는가.
총리인준부결과 병역비리 의혹을 둘러싼 정국파탄과 교착상태의 지속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민심이반이 광범하게 형성된 가운데 거듭된 부정부패로 인해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패하였고 그 결과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몰락과 개혁주의(세력)의 정당성의 해체, 붕괴로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613 지방선거에서의 대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은 다시 한번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7월 31일 장상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 재적의원 259명 중 244명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한 표결에서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찬성표가 출석의원 과반인 123표를 넘지 못해 부결 처리된 것이다. 장상 총리서리의 국회인준 부결로 말미암아 대선을 앞둔 정치적 역관계의 현저한 차이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같은 날, 김대업이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가 아들 정연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환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즉각 김대업의 배후로 현 정권을 지목하였고 공작정치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불사할 것임을 선언했다. 김대업 역시 자신에 대한 한나라당의 비난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제기하며 검찰에 맞고소·고발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자동적으로 병역비리 은폐사건에 대한 수사과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었고 상황의 불리함을 깨달은 이회창은 급기야 '대통령후보 사퇴와 정계은퇴'라는 최후저지선을 설치한다. 이어서 김대업이 한인옥씨가 아들의 병역면제 과정에 개입한 내용이 담겼다는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함으로써 정국은 수사 물증확보를 둘러싼 지리한 공방전에 돌입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다짐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하면서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였고 한나라당 역시 검찰과 법무부장관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청와대 개입-조작설) 장외시위로 공방을 가속화하였다. 사태는 한나라당의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과 민주당의 1천만 서명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이번에 지면 대선에 진다"는 인식 하에 대치 양상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여론은 극단적인 정치적 불신과 환멸을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의 실정에 대해 지지의사를 철회한 대중들은 한나라당의 보수주의적 반격에 부분적으로 조응하면서도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 인준 부결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타락상이 공개되면서 지배계급 전반에 대한 분노를 불러왔을 뿐더러 연이어 불거진 병역비리 공방 역시 결국은 정견과는 무관한 정치 공세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자명하게도 이회창과 노무현에 대한 지지율의 동반하락과 정몽준의 급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이회창 : 노무현 : 정몽준 / 7월 36.8% : 24.5% : 18.7% / 8월 31.8% : 19.3% : 30.9%). 그러나 그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은 바, 각 정치세력이 처한 구체적인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정계개편이 불러올 파장을 예측해보도록 하자.
8.8 재보선의 참패와 민주당의 해체
30%에도 미달하는 투표율 속에 지난 8일 실시된 재보궐 선거는 11대 2라는 일방적 스코어 속에 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 확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미니 총선'이자 '대선 전초전'으로 인식되어온 8·8 재보선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규모로 치루어진 역대 선거 중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현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극단적인 불신과 환멸을 다시 한번 반증한다. 집권 말기 국정의 안정적 운영(경제 안정+대선의 공정한 관리)이라는 기치를 내건 김대중은 월드컵 흥분의 여파를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선정적 슬로건으로 대체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할 뿐이었다. 장상 총리 국회 인준 부결과 병역 비리 공방은 대중들에게 지배계급 전반에 대한 공분만을 누적시켰고 그 결과는 투표율로 확인되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은 내우외환의 형국에 처했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형성된 당내 권력 쟁투는 급기야 노무현 후보사퇴와 신당창당, 심지어 분당 논의로까지 이어졌고 원내 단독 과반수를 확보한 한나라당의 외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위기를 타개할만한 구체적인 정책과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행보를 거듭할 따름이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호남지역 두 곳에서만 무소속 후보에 승리를 거뒀을 뿐 사실상 전 지역에서 완패함으로써 613 지방선거에 이어 다시 한번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로써 민주당은 해체 일로를 걷게 되었다.
8·8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개혁주의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져버린 반동·퇴행적인 정계개편 말고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지속시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613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 공방 속에서 어느 정도 가시화된 후보 교체론은 이제 노무현 자신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민주당은 즉각 신당창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노무현은 국민경선 형식으로 재경선을 수용할 의사를 밝혔으나 신당 창당 전에 사퇴를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였으며, 이인제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 진영은 노무현의 후보 즉각 사퇴와 민주당의 정치적 색채를 일절 배제한 (정몽준, 김종필, 박근혜, 이한동 등을 아우르는) 신당창당을 주장하였다(굳이 노선적 근거를 찾자면 "신당은 오로지 중도개혁과 국민통합신당"이라고 말한 민주당 김영배 신당추진위원장의 말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와중에 노무현과 민주당에 대한 여론의 급격한 하락과 대조적으로 수직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정몽준 대안설이 확산되며 신당 논란은 오로지 당선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 채, 모든 변수는 정몽준을 중심으로 하는 신당 창당의 가능성 여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정몽준이나 박근혜는 민주당이 제안한 신당창당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해왔고, 이들을 포섭할 것을 중심으로 구상된 신당 창당 흐름(특히 이인제 계열을 중심으로 한 노후보 先사퇴, 後창당론)은 일시적인 교착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어떠한 형식을 취하든 간에 노무현의 후보사퇴는 국민경선제의 부정(최소한의 형식-절차적 민주주의의 부정, 따라서 정당성의 상실)을 의미하며 이것이 직면하게될 정치적 부담은 민주당으로서도 쉽게 감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정계개편 논의의 새로운 흐름―'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4자 연대'를 중심으로 설정된 민주당의 신당창당 흐름이 일정정도 교착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개혁주의 진영의 재결집을 통한 하나의 중대한 전환이 시사되고 있다. 노무현은 후보 선출방법과 시한 등 신당에 관한 모든 것은 신당창당추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위임했다고 밝히며("나의 국민경선 주장은 살아있지만 신당을 잘되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을 들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기득권이 하나도 없다") 얼핏 보기에 후보 포기를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정몽준의 합류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정황 판단 속에서 오히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하는 범개혁주의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구체적 의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민주당 대표 한화갑 역시 정몽준이 '경선을 통해 후보될 뜻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처할 것이며 '정몽준 후보'가 없다고 당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새삼 민주당의 이니셔티브를 강조하고 나섰다. 더욱이 동반몰락을 경험하고 있는 이회창이 결정적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당 창당 흐름은 급속히 새로운 기류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조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노사모'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국민경선-노무현 후보 지키기 운동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현재 '노사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재활성화되고 있으며 노무현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정치개혁'의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치혁명과 국민통합을 위한 개혁적 국민정당'은 반부패(즉 '탈(脫) DJ')를 핵심 쟁점으로 하는 참여민주주의(CMS 당비제)·미래형(인터넷 활동)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과연 개혁신당 창당은 과연 개혁주의의 붕괴 이후 가시화된 반동·퇴행적 정계개편 논의를 적극적·발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현 시점에서 '개혁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개혁주의의 몰락은 단순히 부정부패로 인한 자동붕괴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들―예컨대 금융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물질적인 수혜를 얻은 신중간층(공기업 사유화 과정에서 형성된 소규모주식을 소유한 방대한 중산층이나 벤쳐기업의 수익을 누린)의 실리가 더 이상 확장 불가능한 조건―로 인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이를 역전시킬만한 특별한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게다가 소위 반민중적·반민주적인 문민정치로 말미암아 정치적 냉소주의가 심화되고 '개혁의 피로도'가 누적된 탓에 노무현의 '개인인기영합주의'는 분명 물질적인 한계를 지닌다.
더욱이 이들 '개혁신당'론이 전제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완성(보수-진보라는 양당 체계)은 일정한 개량의 구축과 안정적인 전국적 응집력이라는 (대중을 정치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현재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적 지향의 정치세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노동자 대중의 지지가 필수적이지만 이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의 집단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남한의 '자유주의' 세력은 계급적 동원보다는 뚜렷하게 '지역주의'에 기생(DJP연합)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와 386세대를 앞세운 김대중과 민주당이 시도한 '자유주의' 세력의 전국정당화 역시 좌초함으로써 안정적인 정당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
따라서 노무현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자유주의' 세력의 '개혁신당' 창당 흐름 역시 비록 '4자연대'와 같은 식의 반동적·퇴행적 정계개편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작전'일 뿐이다. 결국 개혁세력의 붕괴 이후 추진되고 있는 또 다른 '개혁주의'는 기존의 한계를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오히려 현재와 같은 사회적 위기와 정치의 위기를 반부패와 정치개혁이라는 허구적 쟁점으로 호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되래 더 반동적이다.
정몽준의 출마 여부―그 의미와 파장
이러한 상황에서 정몽준의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단지 민주당 신당 합류냐, 제3의 신당 창당이냐, 무소속 단독출마냐라는 방법상의 선택만 남은 듯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정몽준의 행보를 쉽게 점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특히 정몽준을 중심으로 한 정파연합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낙관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우선 정몽준이 무소속 혹은 독자신당을 창당해서 출마할 가능성은 애시당초 배제된다. 전자의 경우 대선이 요구하는 전국적 조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정확히 10년전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돈'으로 '배제'된 자들을 규합해서 국민당과 같은 종이정당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민주당에서 제안하는 신당창당에 합류하는 경우 역시 현재로선 그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여진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자면 이미 독자적으로도 당선 가능성이 확인된 마당에 굳이 '민주당'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게다가 승리 가능성을 점칠 수 없는 국민경선제를 수용하면서까지 민주당의 신당창당에 합류하기란 그리 탐탁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제3의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만이 현실적이다(실제로 지난 8월 15일 정몽준 스스로 이인제·박근혜 등과의 제휴방식을 통한 제3의 신당창당의사를 분명히 하였고 현재 9월 10일경 대선출마 여부를 공식 발표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 고려되어야 할 것은 과연 이렇게 창당된 신당이 전국적 조직력과 최소한의 내적 통합이나마 가질 수 있느냐라는 점이다. 이인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내 '반노'세력의 파괴력 자체도 장담할 수 없거니와 민주당 내 분파들이 제3당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정치인 개인의 인기에 의존한 창당의 한계는 자명하다. 더욱이 민주당을 포함하지 않는 제3의 신당 창당 흐름에 대한 부정적 여론(8월 22일 조선일보 발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신당창당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과반수(51.2%)를 넘었다)에도 불구하고 선뜻 사실상 정치적 낙오자에 불과한 이들과 연합하여 신당을 창당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신당 창당이 성사된다해도 '군소 지역 연합'에 불과하여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권력분점을 매개로 한 '반이회창-비노무현' 노선 자체가 지니는 한계(창당 명분의 부재)로 인해 이합집산의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정몽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반하락 추이를 관망하며(그의 아버지인 정주영이 너무 빨리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이 오히려 각종 검증작업에 노출되었음을 반추하며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출 것이다) 자신의 이니셔티브가 최대한 보장되는 선에서 출마 여부를 저울질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몽준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합종연횡의 성격이다. 실제로 정몽준은 "로마시대 귀족의 아들인 시저는 민중파에 속해 정치를 했고, 미국의 유명 재벌집안 아들인 케네디도 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 소속이었다"며 '부유한 정치인의 진보성'을 유난히 강조했던 바 있다. 노무현의 참신성에 기반한 개혁세력의 결집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정몽준 개인의 인기에 영합한 새로운 형태의 연합(노무현의 인민주의적 개혁주의와는 다른 미국적 형태의 엘리트적 개혁주의?)이 출현한다해도 이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상징조작을 통한 퇴행적·반동적 정계개편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모순을 재생산할 뿐이다.
한나라당의 위기 봉착 가능성의 증대
한편 '병풍' 공방으로 첨예화된 정국은 장대환 새 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동의 여부로 연결되며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검증과정에서 실제로 밝혀졌듯이 위장전입, 재산등록 누락, 세금탈루 등 도덕성에 하자가 있는 인사가 국무총리가 돼선 안된다는 여론이 팽배해있으며 이는 장상 전 서리 당시보다 더욱 부정적인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은 이번만큼은 통과시켜야 한다는 절박감 속에 지난번 표결 때와 달리 당론투표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경우 막판까지 총리인준안이 두 번 연속 부결될 경우 자칫 역공세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정치적 부담 속에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도 했다. 한편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각종 잘못된 관행과 부정부패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장 지명자는 총리 자격이 없"고 "장 지명자가 10여개의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며 국회인준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장상 총리 서리의 국회인준 부결에 대해 반발했던 여성계 역시 장대환 총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장상 총리의 그것에 비해 더욱 높음에도 불구하고 "28일 실시될 국회 표결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남성 총리지명자에게 장상씨와 다른 검증잣대를 들이대고 엄정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성차별로 규정해 정치권을 심판할 것"(한국여성단체연합)이라고 경고했다(이미 한나라당은 장상 총리 인준 부결 직후 즉각적으로 여성계의 반향을 우려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장대환 총리 임명동의안은 부결되었고 그 파장은 우선 같은 날 본회의에 보고된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문제와 겹치면서 정국을 파란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당장 인사권자인 김대중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하다. 집권 초 김종필 총리 인준 당시부터 '인사'에 관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대중으로선 총리직 장기공백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가야 할 처지가 된다. 원내 제2당이긴 하지만 '정책여당'을 표방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 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내홍의 불씨를 안게 되는 동시에 '병풍의혹'으로 일정정도 만회한 정국주도권을 상당부분 상실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미 민주당 내에 팽배한 무기력증과 각 계파간 갈등이 감출 것 없이 드러난 상태인지라 인준안이 계파 갈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며 오히려 DJ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마지막 호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국 대치상황이 가져올 파장은 한나라당에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과반수의 힘'을 유감 없이 발휘, 확고한 원내위상을 과시한다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거대야당의 거만'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수사에 대한 전략적 대처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당장 김정길 법무장관해임건의안 처리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인준안 부결에 이어 해임안 처리까지 강행할 경우 '다수당의 횡포'라는 여론의 반발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준안 부결로 정국이 급격히 경색된 상태에서 정기국회가 열려 국회가 '대선 격전장'이 되고 이에 따른 정국혼란이 가중되면 한나라당이 져야 할 책임도 '원내 과반수' 만큼이나 커지게 된다. 장기적 대치 상태에서 정기국회가 열리면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의 '5대 의혹'을 내세워 총공세를 펼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총리인준안 처리결과와 관계없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정면충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그 정치적 파장은 당분간 쉽게 진정되기 힘들 것이다. 이에 따라 이회창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객관적 사실 여부에 따라 역관계는 항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이다. 결국 9월 이후 본격적인 대선 행보가 시작되면서 지배계급 내의 공방은 지리멸렬하게 계속될 것이고 이는 대선 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지배 정치의 위기와 민중운동의 과제
전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의 파괴적 양상은 기존의 정치와 경제운영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는 흐름을 광범위하게 낳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1997년을 전후로 유럽 각국의 우파를 권좌에서 밀어내는 이변을 낳았고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제3의 길이었다. 영국 노동당 블레어와 프랑스 사회당 조스팽의 노선으로 상징되는 제3의 길은 기존의 사민주의의 혁신과 시민운동(NGO)의 결합을 주장함으로써 전체 노동계급의 사회적 응집성이 해체된 상황에서 이들의 일부를 재포섭하고 사회적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정치전략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동일한 시기, 김대중은 신자유주의와 코포러티즘을 절충하는 한편 시민운동 동원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발전이라는 전략 속에서 공공연히 제3의 길을 자신의 노선과 유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약한 자유주의적 토대는 DJP공조가 상징하듯 보수세력과의 부분적 공조와 지역주의 연합의 형태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었으며 그 결과는 항시적인 정치적 불안과 개혁주의 노선의 파탄으로 드러났다.
결국 장기-구조적 위기 속에서 위기와 개혁의 주기가 대통령선거 등과 같은 정치일정과 맞물리면서 위기의 해결과는 무관한 의사쟁점을 중심으로 정치세력 간의 이전투구가 일상화된다. 지배정치 세력의 정쟁은 사회전반의 위기와 모순의 심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자가 동시적 무능력에 빠진 상황에서 전개되는 정계개편이란 이념·노선을 상실한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 합종연횡에 불과하다. 그 결과 대중들은 해결되지 않는 삶의 위기 속에서 정치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환멸에 빠지고 정치 자체에 대한 반감(즉 反정치)으로 일관하곤 한다. 따라서 지배정치에 대한 비판이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를 조직하거나 외면하는 전략(즉 선거를 포함한 지배정치 일체에 대한 개입을 거부하는 '전무' 전략)으로는 불가능하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관건이다. 더욱이 지배 정치의 위기가 자동적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민중운동의 이니셔티브로 수렴되는 것도 아닌 바, 이러한 균열을 공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선거 자체에 매몰된 '전부' 전략).
바로 여기에 민중운동 진영이 대통령 선거에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민중운동은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선거 공간 내외부를 가로지르며 지배정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정치에 대한 지배적인 표상을 역전시켜내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민중운동 진영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강고한 투쟁과 조직을 형성함으로써 지난 시기 전개되었던 민중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전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이 낳은 파괴적 효과로부터 자승자박의 형국에 처한 지배정치의 균열을 확장하는 실천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
―대선 정치지형 쟁점 분석과 비판
지배정치세력의 행보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장상 총리 서리 국회 인준 부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정몽준 대안론의 급부상 등 숨가쁘게 진행된 정국은 정치의 위기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현재 지배계급은 이를 재봉합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 자신들의 이념·노선적 지향을 전혀 밝히지 못한 채 퇴행적·반동적인 방식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나라당 역시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치 공동화' 현상에 우왕좌왕하며 동반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정국, 과연 지배 정치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는가.
총리인준부결과 병역비리 의혹을 둘러싼 정국파탄과 교착상태의 지속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민심이반이 광범하게 형성된 가운데 거듭된 부정부패로 인해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패하였고 그 결과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몰락과 개혁주의(세력)의 정당성의 해체, 붕괴로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613 지방선거에서의 대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은 다시 한번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7월 31일 장상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 재적의원 259명 중 244명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한 표결에서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찬성표가 출석의원 과반인 123표를 넘지 못해 부결 처리된 것이다. 장상 총리서리의 국회인준 부결로 말미암아 대선을 앞둔 정치적 역관계의 현저한 차이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같은 날, 김대업이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가 아들 정연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환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즉각 김대업의 배후로 현 정권을 지목하였고 공작정치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불사할 것임을 선언했다. 김대업 역시 자신에 대한 한나라당의 비난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제기하며 검찰에 맞고소·고발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자동적으로 병역비리 은폐사건에 대한 수사과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었고 상황의 불리함을 깨달은 이회창은 급기야 '대통령후보 사퇴와 정계은퇴'라는 최후저지선을 설치한다. 이어서 김대업이 한인옥씨가 아들의 병역면제 과정에 개입한 내용이 담겼다는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함으로써 정국은 수사 물증확보를 둘러싼 지리한 공방전에 돌입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다짐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하면서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였고 한나라당 역시 검찰과 법무부장관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청와대 개입-조작설) 장외시위로 공방을 가속화하였다. 사태는 한나라당의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과 민주당의 1천만 서명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이번에 지면 대선에 진다"는 인식 하에 대치 양상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여론은 극단적인 정치적 불신과 환멸을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의 실정에 대해 지지의사를 철회한 대중들은 한나라당의 보수주의적 반격에 부분적으로 조응하면서도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 인준 부결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타락상이 공개되면서 지배계급 전반에 대한 분노를 불러왔을 뿐더러 연이어 불거진 병역비리 공방 역시 결국은 정견과는 무관한 정치 공세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자명하게도 이회창과 노무현에 대한 지지율의 동반하락과 정몽준의 급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이회창 : 노무현 : 정몽준 / 7월 36.8% : 24.5% : 18.7% / 8월 31.8% : 19.3% : 30.9%). 그러나 그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은 바, 각 정치세력이 처한 구체적인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정계개편이 불러올 파장을 예측해보도록 하자.
8.8 재보선의 참패와 민주당의 해체
30%에도 미달하는 투표율 속에 지난 8일 실시된 재보궐 선거는 11대 2라는 일방적 스코어 속에 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 확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미니 총선'이자 '대선 전초전'으로 인식되어온 8·8 재보선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규모로 치루어진 역대 선거 중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현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극단적인 불신과 환멸을 다시 한번 반증한다. 집권 말기 국정의 안정적 운영(경제 안정+대선의 공정한 관리)이라는 기치를 내건 김대중은 월드컵 흥분의 여파를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선정적 슬로건으로 대체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할 뿐이었다. 장상 총리 국회 인준 부결과 병역 비리 공방은 대중들에게 지배계급 전반에 대한 공분만을 누적시켰고 그 결과는 투표율로 확인되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은 내우외환의 형국에 처했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형성된 당내 권력 쟁투는 급기야 노무현 후보사퇴와 신당창당, 심지어 분당 논의로까지 이어졌고 원내 단독 과반수를 확보한 한나라당의 외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위기를 타개할만한 구체적인 정책과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행보를 거듭할 따름이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호남지역 두 곳에서만 무소속 후보에 승리를 거뒀을 뿐 사실상 전 지역에서 완패함으로써 613 지방선거에 이어 다시 한번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로써 민주당은 해체 일로를 걷게 되었다.
8·8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개혁주의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져버린 반동·퇴행적인 정계개편 말고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지속시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613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 공방 속에서 어느 정도 가시화된 후보 교체론은 이제 노무현 자신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민주당은 즉각 신당창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노무현은 국민경선 형식으로 재경선을 수용할 의사를 밝혔으나 신당 창당 전에 사퇴를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였으며, 이인제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 진영은 노무현의 후보 즉각 사퇴와 민주당의 정치적 색채를 일절 배제한 (정몽준, 김종필, 박근혜, 이한동 등을 아우르는) 신당창당을 주장하였다(굳이 노선적 근거를 찾자면 "신당은 오로지 중도개혁과 국민통합신당"이라고 말한 민주당 김영배 신당추진위원장의 말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와중에 노무현과 민주당에 대한 여론의 급격한 하락과 대조적으로 수직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정몽준 대안설이 확산되며 신당 논란은 오로지 당선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 채, 모든 변수는 정몽준을 중심으로 하는 신당 창당의 가능성 여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정몽준이나 박근혜는 민주당이 제안한 신당창당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해왔고, 이들을 포섭할 것을 중심으로 구상된 신당 창당 흐름(특히 이인제 계열을 중심으로 한 노후보 先사퇴, 後창당론)은 일시적인 교착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어떠한 형식을 취하든 간에 노무현의 후보사퇴는 국민경선제의 부정(최소한의 형식-절차적 민주주의의 부정, 따라서 정당성의 상실)을 의미하며 이것이 직면하게될 정치적 부담은 민주당으로서도 쉽게 감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정계개편 논의의 새로운 흐름―'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4자 연대'를 중심으로 설정된 민주당의 신당창당 흐름이 일정정도 교착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개혁주의 진영의 재결집을 통한 하나의 중대한 전환이 시사되고 있다. 노무현은 후보 선출방법과 시한 등 신당에 관한 모든 것은 신당창당추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위임했다고 밝히며("나의 국민경선 주장은 살아있지만 신당을 잘되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을 들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기득권이 하나도 없다") 얼핏 보기에 후보 포기를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정몽준의 합류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정황 판단 속에서 오히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하는 범개혁주의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구체적 의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민주당 대표 한화갑 역시 정몽준이 '경선을 통해 후보될 뜻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처할 것이며 '정몽준 후보'가 없다고 당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새삼 민주당의 이니셔티브를 강조하고 나섰다. 더욱이 동반몰락을 경험하고 있는 이회창이 결정적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당 창당 흐름은 급속히 새로운 기류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조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노사모'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국민경선-노무현 후보 지키기 운동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현재 '노사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재활성화되고 있으며 노무현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정치개혁'의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치혁명과 국민통합을 위한 개혁적 국민정당'은 반부패(즉 '탈(脫) DJ')를 핵심 쟁점으로 하는 참여민주주의(CMS 당비제)·미래형(인터넷 활동)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과연 개혁신당 창당은 과연 개혁주의의 붕괴 이후 가시화된 반동·퇴행적 정계개편 논의를 적극적·발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현 시점에서 '개혁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개혁주의의 몰락은 단순히 부정부패로 인한 자동붕괴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들―예컨대 금융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물질적인 수혜를 얻은 신중간층(공기업 사유화 과정에서 형성된 소규모주식을 소유한 방대한 중산층이나 벤쳐기업의 수익을 누린)의 실리가 더 이상 확장 불가능한 조건―로 인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이를 역전시킬만한 특별한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게다가 소위 반민중적·반민주적인 문민정치로 말미암아 정치적 냉소주의가 심화되고 '개혁의 피로도'가 누적된 탓에 노무현의 '개인인기영합주의'는 분명 물질적인 한계를 지닌다.
더욱이 이들 '개혁신당'론이 전제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완성(보수-진보라는 양당 체계)은 일정한 개량의 구축과 안정적인 전국적 응집력이라는 (대중을 정치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현재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적 지향의 정치세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노동자 대중의 지지가 필수적이지만 이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의 집단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남한의 '자유주의' 세력은 계급적 동원보다는 뚜렷하게 '지역주의'에 기생(DJP연합)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와 386세대를 앞세운 김대중과 민주당이 시도한 '자유주의' 세력의 전국정당화 역시 좌초함으로써 안정적인 정당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
따라서 노무현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자유주의' 세력의 '개혁신당' 창당 흐름 역시 비록 '4자연대'와 같은 식의 반동적·퇴행적 정계개편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작전'일 뿐이다. 결국 개혁세력의 붕괴 이후 추진되고 있는 또 다른 '개혁주의'는 기존의 한계를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오히려 현재와 같은 사회적 위기와 정치의 위기를 반부패와 정치개혁이라는 허구적 쟁점으로 호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되래 더 반동적이다.
정몽준의 출마 여부―그 의미와 파장
이러한 상황에서 정몽준의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단지 민주당 신당 합류냐, 제3의 신당 창당이냐, 무소속 단독출마냐라는 방법상의 선택만 남은 듯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정몽준의 행보를 쉽게 점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특히 정몽준을 중심으로 한 정파연합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낙관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우선 정몽준이 무소속 혹은 독자신당을 창당해서 출마할 가능성은 애시당초 배제된다. 전자의 경우 대선이 요구하는 전국적 조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정확히 10년전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돈'으로 '배제'된 자들을 규합해서 국민당과 같은 종이정당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민주당에서 제안하는 신당창당에 합류하는 경우 역시 현재로선 그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여진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자면 이미 독자적으로도 당선 가능성이 확인된 마당에 굳이 '민주당'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게다가 승리 가능성을 점칠 수 없는 국민경선제를 수용하면서까지 민주당의 신당창당에 합류하기란 그리 탐탁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제3의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만이 현실적이다(실제로 지난 8월 15일 정몽준 스스로 이인제·박근혜 등과의 제휴방식을 통한 제3의 신당창당의사를 분명히 하였고 현재 9월 10일경 대선출마 여부를 공식 발표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 고려되어야 할 것은 과연 이렇게 창당된 신당이 전국적 조직력과 최소한의 내적 통합이나마 가질 수 있느냐라는 점이다. 이인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내 '반노'세력의 파괴력 자체도 장담할 수 없거니와 민주당 내 분파들이 제3당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정치인 개인의 인기에 의존한 창당의 한계는 자명하다. 더욱이 민주당을 포함하지 않는 제3의 신당 창당 흐름에 대한 부정적 여론(8월 22일 조선일보 발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신당창당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과반수(51.2%)를 넘었다)에도 불구하고 선뜻 사실상 정치적 낙오자에 불과한 이들과 연합하여 신당을 창당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신당 창당이 성사된다해도 '군소 지역 연합'에 불과하여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권력분점을 매개로 한 '반이회창-비노무현' 노선 자체가 지니는 한계(창당 명분의 부재)로 인해 이합집산의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정몽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반하락 추이를 관망하며(그의 아버지인 정주영이 너무 빨리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이 오히려 각종 검증작업에 노출되었음을 반추하며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출 것이다) 자신의 이니셔티브가 최대한 보장되는 선에서 출마 여부를 저울질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몽준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합종연횡의 성격이다. 실제로 정몽준은 "로마시대 귀족의 아들인 시저는 민중파에 속해 정치를 했고, 미국의 유명 재벌집안 아들인 케네디도 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 소속이었다"며 '부유한 정치인의 진보성'을 유난히 강조했던 바 있다. 노무현의 참신성에 기반한 개혁세력의 결집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정몽준 개인의 인기에 영합한 새로운 형태의 연합(노무현의 인민주의적 개혁주의와는 다른 미국적 형태의 엘리트적 개혁주의?)이 출현한다해도 이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상징조작을 통한 퇴행적·반동적 정계개편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모순을 재생산할 뿐이다.
한나라당의 위기 봉착 가능성의 증대
한편 '병풍' 공방으로 첨예화된 정국은 장대환 새 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동의 여부로 연결되며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검증과정에서 실제로 밝혀졌듯이 위장전입, 재산등록 누락, 세금탈루 등 도덕성에 하자가 있는 인사가 국무총리가 돼선 안된다는 여론이 팽배해있으며 이는 장상 전 서리 당시보다 더욱 부정적인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은 이번만큼은 통과시켜야 한다는 절박감 속에 지난번 표결 때와 달리 당론투표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경우 막판까지 총리인준안이 두 번 연속 부결될 경우 자칫 역공세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정치적 부담 속에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도 했다. 한편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각종 잘못된 관행과 부정부패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장 지명자는 총리 자격이 없"고 "장 지명자가 10여개의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며 국회인준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장상 총리 서리의 국회인준 부결에 대해 반발했던 여성계 역시 장대환 총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장상 총리의 그것에 비해 더욱 높음에도 불구하고 "28일 실시될 국회 표결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남성 총리지명자에게 장상씨와 다른 검증잣대를 들이대고 엄정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성차별로 규정해 정치권을 심판할 것"(한국여성단체연합)이라고 경고했다(이미 한나라당은 장상 총리 인준 부결 직후 즉각적으로 여성계의 반향을 우려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장대환 총리 임명동의안은 부결되었고 그 파장은 우선 같은 날 본회의에 보고된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문제와 겹치면서 정국을 파란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당장 인사권자인 김대중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하다. 집권 초 김종필 총리 인준 당시부터 '인사'에 관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대중으로선 총리직 장기공백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가야 할 처지가 된다. 원내 제2당이긴 하지만 '정책여당'을 표방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 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내홍의 불씨를 안게 되는 동시에 '병풍의혹'으로 일정정도 만회한 정국주도권을 상당부분 상실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미 민주당 내에 팽배한 무기력증과 각 계파간 갈등이 감출 것 없이 드러난 상태인지라 인준안이 계파 갈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며 오히려 DJ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마지막 호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국 대치상황이 가져올 파장은 한나라당에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과반수의 힘'을 유감 없이 발휘, 확고한 원내위상을 과시한다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거대야당의 거만'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수사에 대한 전략적 대처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당장 김정길 법무장관해임건의안 처리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인준안 부결에 이어 해임안 처리까지 강행할 경우 '다수당의 횡포'라는 여론의 반발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준안 부결로 정국이 급격히 경색된 상태에서 정기국회가 열려 국회가 '대선 격전장'이 되고 이에 따른 정국혼란이 가중되면 한나라당이 져야 할 책임도 '원내 과반수' 만큼이나 커지게 된다. 장기적 대치 상태에서 정기국회가 열리면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의 '5대 의혹'을 내세워 총공세를 펼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총리인준안 처리결과와 관계없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정면충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그 정치적 파장은 당분간 쉽게 진정되기 힘들 것이다. 이에 따라 이회창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객관적 사실 여부에 따라 역관계는 항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이다. 결국 9월 이후 본격적인 대선 행보가 시작되면서 지배계급 내의 공방은 지리멸렬하게 계속될 것이고 이는 대선 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지배 정치의 위기와 민중운동의 과제
전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의 파괴적 양상은 기존의 정치와 경제운영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는 흐름을 광범위하게 낳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1997년을 전후로 유럽 각국의 우파를 권좌에서 밀어내는 이변을 낳았고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제3의 길이었다. 영국 노동당 블레어와 프랑스 사회당 조스팽의 노선으로 상징되는 제3의 길은 기존의 사민주의의 혁신과 시민운동(NGO)의 결합을 주장함으로써 전체 노동계급의 사회적 응집성이 해체된 상황에서 이들의 일부를 재포섭하고 사회적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정치전략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동일한 시기, 김대중은 신자유주의와 코포러티즘을 절충하는 한편 시민운동 동원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발전이라는 전략 속에서 공공연히 제3의 길을 자신의 노선과 유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약한 자유주의적 토대는 DJP공조가 상징하듯 보수세력과의 부분적 공조와 지역주의 연합의 형태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었으며 그 결과는 항시적인 정치적 불안과 개혁주의 노선의 파탄으로 드러났다.
결국 장기-구조적 위기 속에서 위기와 개혁의 주기가 대통령선거 등과 같은 정치일정과 맞물리면서 위기의 해결과는 무관한 의사쟁점을 중심으로 정치세력 간의 이전투구가 일상화된다. 지배정치 세력의 정쟁은 사회전반의 위기와 모순의 심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자가 동시적 무능력에 빠진 상황에서 전개되는 정계개편이란 이념·노선을 상실한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 합종연횡에 불과하다. 그 결과 대중들은 해결되지 않는 삶의 위기 속에서 정치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환멸에 빠지고 정치 자체에 대한 반감(즉 反정치)으로 일관하곤 한다. 따라서 지배정치에 대한 비판이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를 조직하거나 외면하는 전략(즉 선거를 포함한 지배정치 일체에 대한 개입을 거부하는 '전무' 전략)으로는 불가능하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관건이다. 더욱이 지배 정치의 위기가 자동적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민중운동의 이니셔티브로 수렴되는 것도 아닌 바, 이러한 균열을 공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선거 자체에 매몰된 '전부' 전략).
바로 여기에 민중운동 진영이 대통령 선거에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민중운동은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선거 공간 내외부를 가로지르며 지배정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정치에 대한 지배적인 표상을 역전시켜내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민중운동 진영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강고한 투쟁과 조직을 형성함으로써 지난 시기 전개되었던 민중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전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이 낳은 파괴적 효과로부터 자승자박의 형국에 처한 지배정치의 균열을 확장하는 실천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