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
<b><유병홍 공공연맹 정책부장과의 인터뷰></b>
<font color="#336699"> ● 최근 정부에 의하여 신지식인운동이 아주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쟁은 모두 지식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현장활동가로서 신지식인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font>
사실 현장에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정확히 그 말의 개념이 뭔지, 혹은 그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뭐고 하는 건 어려울 문제일뿐더러, 실제 현장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런데 막상 심형래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광고에 나오는 걸 보면 떠오른 느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또 시작하는구나" 정도죠.
매번 정권이 바뀌거나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런저런 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 예가 김영삼정권때의 '신한국인' 어쩌구 하는 것이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개념이나 배경이 아니라, 신지식인운동이라는 것이 현장에 어떻게 들어오고 있는가입니다. 심형래를 내세워 '안하니까 못하는 겁니다'라는 이야기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진취적 기상을 가지고 책임성있게 업무를 추진하라는 긍정적인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만 뒤집어 보면 모든 것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알수 있죠. "여러분들이 모두 잘살고 잘 먹을 수 있는데,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분발하십시요"라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나아가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사람을 보면 "몇억씩 연봉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네는 뭐하냐"라는 매도하는 문구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신지식인이 노동자들 내에서 무한경쟁과 신분상승에 대한 환상, 그 결과로 자기자신에 대한 환멸만을 불러 일으키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 아닐까요?
<font color="#336699"> ● 신지식인의 조건중에서 핵심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 혹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짧게 듣고 싶은데요.</font>
지식의 역할이요? 조금 어렵네요. 신지식인운동에 말하는 핵심은, 말씀하신대로, '고부가가치의 창출'입니다. 가치창출이라는 건, 모든 것들을 이윤창출과 관련시킨다는 것입니다. 곧 이윤이라는 것이죠. 물론 지식의 기능 중 하나가 이윤창출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습득을 통해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이로써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지식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지식습득, 가치창출은 자본주의 논리일 따름입니다. 지식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 중의 하나가 비판기능, 견제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읽어 본 신지식인운동 관련 자료에는 이에 대한 말이 단 한구절도 나오지 않더군요.
다시 말하면 왜곡된 지식인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보면 이 사회에서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지식인들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더군요. '심형래', '번개' 등이 새롭게 변하는 지식인상에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를 절대화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을 이윤창출을 위한 기계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font color="#336699"> ● 비슷한데 질문인데요. 신지식인운동은 어쩌면 기존 지식사회의 편협성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출발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기존 지식사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font>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70-80년대 폭압적인 정권에 맞서 싸워왔던 비판적 지식인들과 해외유학 다녀오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지식인을 똑같이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기존의 지식인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에서 노동문제를 고민하고 활동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풀어보지요. '산별노조', '정치세력화', '연봉제'와 관련해서 자체적으로 연구하다가 한계에 봉착하면, 대학교수나 관련 연구자를 찾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실망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십중팔구입니다.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들곤 합니다. 자기가 해외에서 공부한 것, 책 몇권 논문 몇편으로 "울궈 먹고"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궈먹는다'라는 말을 꼭 넣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현장에서의 고민꺼리를 이야기하면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은 솔직히 '모른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알고 있는 몇몇 단편적인 지식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실망스런 태도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보수적인 노동경제학자 뿐만 아니라 비교적 진보적이라 하는 교수님들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들을 보고 지식인 전체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존 지식인에 대한 현장사람들의 실망감이 상당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신지식인운동은 기존 지식인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내용도 잘 모르면서, '신선하다'면서 먹혀 들어가는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신창원이 의적이 아닌데도, 기득권 세력이 워낙 썩어 그가 영웅으로 부각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font color="#336699"> ● 그렇다면 현장활동가로서 생각하시는, 올바른 지식인의 상은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기존 지식인에 대한 불신도 말씀하셨고, 정부가 말하는 신지식인이라는 것도 허상이라고 하셨으니까요?</font>
지식인들의 의식과 활동의 한계가 그동안 너무나 뚜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지식인 그러면 '원래 별볼일 없는데 조금만 해주면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것은 현장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이 생성되어 왔던 과정에서도 유래한다고 봅니다.
현장에서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지식인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고 물으셨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비판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진보적이지 않아도 좋다 이겁니다. '제발 우리사회의 노동현장에서 대해서 알기라도 좀 해라'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정말로 진보·보수, 비판·어용을 다 떠나서 현장을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제일 바라는 바입니다. 너무 냉정하게 말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말씀드리자면, 저는 대학원까지 진학을 했다가 현장에 투신한 경우입니다. 학교 다닐때 저는 공부하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대학교수와 선후배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때 같은 부류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바라는 지식인의 상이 더욱 냉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font color="#336699"> ● 질문을 좀 바꾸어 볼까요. 신지식인운동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노동자 의식교육이나 강연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군대에서는 매일경제신문사 전문강사가 초빙되어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요.</font>
신지식인운동이 노동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현장에서는 '신지식인인'이라는 말 그 자체가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그것이 그 운동이 구체화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봉제 도입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연봉제의 핵심은, 신지식인운동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열심히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시키고, 그렇게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기술적 문제를 차치하고, 연봉제의 문제의식야말로 신지식인운동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연봉제는 증권사같은 곳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고, 이제는 공공기관으로까지 물밀듯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공공연맹 산하 사업장 중에 연봉제 문제가 현안이 되지 않는 사업장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공공부문의 특성상 연봉제 도입은 참 애매합니다. 증권사에서는 증권 약정액 얼마, 자동차 회사에서는 판매대수 얼마 등을 따질 수 있지 않습니까?
누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느냐를 측정하는 게 수치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공공부문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어떻게 부가가치를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연봉제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성과에 따른 연봉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노동자들 사이의 무한경쟁을 조장하여 파편화시키기 위한 것, '한 개인이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성공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무늬만 연봉제'입니다.
<font color="#336699"> ● '연봉제' 외에 다른 영향은 없나요?</font>
아닙니다. 신지식인운동은 현장에서 노조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돌리는 것이 신지식인이라고 했잖아요. 아시다시피 노동조합의 기본원리가, 노동자간의 경쟁을 줄이고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통하여 자본가계급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까? 신지식인운동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과는 정반대가 노조활동의 목표라는 겁니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이렇게 말하잖아요. "기능장 00씨는 중학교도 못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직업학교를 거쳐 00공장에 취직하였습니다. 00씨는 24시간 내내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 일년에 몇번씩 회사에 제안합니다. 그 제안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00씨는 지금 박사출신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들보다 더 나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00씨와 같은 사람이 정말로 신지식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하여 임금을 상승시키거나 단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노력으로 임금을 높이고 승진할 수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은 노조가 필요없다는 거 아닙니까? 결국 신지식인운동은 노조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font color="#336699"> ● 최근에 벤처기업이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에서도 첨단지식산업을 육성한다고 말하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구요.
혹시 현장에서는 벤쳐기업이나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font>
벤처기업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는 사람이 회사를 꾸리는 것이 벤쳐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드는군요. 최소한 대학원이상, 그러니까 석사학위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해도, 그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이런 현실을 말하지는 않고, 회사만 차리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기술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너네는 별볼일 없으니까 시키는대로 하라'는 복종의 논리를 주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벤쳐기업 가지고 정부가 떠드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과 아이디어가 있고 최소한의 자본이 있으면,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정부가 나서서 시끄럽게 떠들어까요? 그건 아까 말씀드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font color="#336699"> ● '신지식인운동'이라는 말로써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영향력이 현장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까 말씀하신 연봉제나 노조와해의 가능성 등이 말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어떤 방향으로 대응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font>
현장에서는 '신지식인운동이 이러저러하다'라는 걸 아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실천적입니다.
신문을 보거나 하면, 신지식인운동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지식운동을 반대하는 모습들이 '무기를 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무기'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무기를 통한 비판'일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신지식인운동을 깬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현장에서는 신지식인 논리가 그대로 투영되는 연봉제 논리를 막아내고,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정책을 깨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노동계급이 뭉쳐서 투쟁을 통하여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어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인 투쟁을 통해서 하나하나 성과를 얻고, 김대중정권의 정책기조를 바꾸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신지식인운동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 이론적 비판을 뛰어넘어,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한,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비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계급/계층, 즉 전국민이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싸우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요. 노동자들의 싸움만으로는 사실 역부족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빈민·학생·시민운동단체들·비판적인 지식인들 모두가 하나의 연대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신지식인이 말하는 왜곡된 지식인의 모습을 폭로하는 것 아닐까요? 동시에 현장에서의 자본의 논리도 깰 수 있는 것이구요.
<font color="#336699"> ● 최근 정부에 의하여 신지식인운동이 아주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쟁은 모두 지식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현장활동가로서 신지식인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font>
사실 현장에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정확히 그 말의 개념이 뭔지, 혹은 그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뭐고 하는 건 어려울 문제일뿐더러, 실제 현장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런데 막상 심형래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광고에 나오는 걸 보면 떠오른 느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또 시작하는구나" 정도죠.
매번 정권이 바뀌거나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런저런 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 예가 김영삼정권때의 '신한국인' 어쩌구 하는 것이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개념이나 배경이 아니라, 신지식인운동이라는 것이 현장에 어떻게 들어오고 있는가입니다. 심형래를 내세워 '안하니까 못하는 겁니다'라는 이야기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진취적 기상을 가지고 책임성있게 업무를 추진하라는 긍정적인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만 뒤집어 보면 모든 것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알수 있죠. "여러분들이 모두 잘살고 잘 먹을 수 있는데,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분발하십시요"라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나아가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사람을 보면 "몇억씩 연봉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네는 뭐하냐"라는 매도하는 문구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신지식인이 노동자들 내에서 무한경쟁과 신분상승에 대한 환상, 그 결과로 자기자신에 대한 환멸만을 불러 일으키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 아닐까요?
<font color="#336699"> ● 신지식인의 조건중에서 핵심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 혹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짧게 듣고 싶은데요.</font>
지식의 역할이요? 조금 어렵네요. 신지식인운동에 말하는 핵심은, 말씀하신대로, '고부가가치의 창출'입니다. 가치창출이라는 건, 모든 것들을 이윤창출과 관련시킨다는 것입니다. 곧 이윤이라는 것이죠. 물론 지식의 기능 중 하나가 이윤창출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습득을 통해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이로써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지식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지식습득, 가치창출은 자본주의 논리일 따름입니다. 지식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 중의 하나가 비판기능, 견제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읽어 본 신지식인운동 관련 자료에는 이에 대한 말이 단 한구절도 나오지 않더군요.
다시 말하면 왜곡된 지식인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보면 이 사회에서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지식인들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더군요. '심형래', '번개' 등이 새롭게 변하는 지식인상에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를 절대화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을 이윤창출을 위한 기계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font color="#336699"> ● 비슷한데 질문인데요. 신지식인운동은 어쩌면 기존 지식사회의 편협성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출발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기존 지식사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font>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70-80년대 폭압적인 정권에 맞서 싸워왔던 비판적 지식인들과 해외유학 다녀오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지식인을 똑같이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기존의 지식인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에서 노동문제를 고민하고 활동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풀어보지요. '산별노조', '정치세력화', '연봉제'와 관련해서 자체적으로 연구하다가 한계에 봉착하면, 대학교수나 관련 연구자를 찾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실망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십중팔구입니다.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들곤 합니다. 자기가 해외에서 공부한 것, 책 몇권 논문 몇편으로 "울궈 먹고"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궈먹는다'라는 말을 꼭 넣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현장에서의 고민꺼리를 이야기하면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은 솔직히 '모른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알고 있는 몇몇 단편적인 지식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실망스런 태도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보수적인 노동경제학자 뿐만 아니라 비교적 진보적이라 하는 교수님들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들을 보고 지식인 전체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존 지식인에 대한 현장사람들의 실망감이 상당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신지식인운동은 기존 지식인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내용도 잘 모르면서, '신선하다'면서 먹혀 들어가는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신창원이 의적이 아닌데도, 기득권 세력이 워낙 썩어 그가 영웅으로 부각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font color="#336699"> ● 그렇다면 현장활동가로서 생각하시는, 올바른 지식인의 상은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기존 지식인에 대한 불신도 말씀하셨고, 정부가 말하는 신지식인이라는 것도 허상이라고 하셨으니까요?</font>
지식인들의 의식과 활동의 한계가 그동안 너무나 뚜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지식인 그러면 '원래 별볼일 없는데 조금만 해주면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것은 현장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이 생성되어 왔던 과정에서도 유래한다고 봅니다.
현장에서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지식인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고 물으셨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비판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진보적이지 않아도 좋다 이겁니다. '제발 우리사회의 노동현장에서 대해서 알기라도 좀 해라'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정말로 진보·보수, 비판·어용을 다 떠나서 현장을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제일 바라는 바입니다. 너무 냉정하게 말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말씀드리자면, 저는 대학원까지 진학을 했다가 현장에 투신한 경우입니다. 학교 다닐때 저는 공부하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대학교수와 선후배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때 같은 부류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바라는 지식인의 상이 더욱 냉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font color="#336699"> ● 질문을 좀 바꾸어 볼까요. 신지식인운동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노동자 의식교육이나 강연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군대에서는 매일경제신문사 전문강사가 초빙되어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요.</font>
신지식인운동이 노동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현장에서는 '신지식인인'이라는 말 그 자체가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그것이 그 운동이 구체화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봉제 도입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연봉제의 핵심은, 신지식인운동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열심히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시키고, 그렇게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기술적 문제를 차치하고, 연봉제의 문제의식야말로 신지식인운동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연봉제는 증권사같은 곳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고, 이제는 공공기관으로까지 물밀듯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공공연맹 산하 사업장 중에 연봉제 문제가 현안이 되지 않는 사업장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공공부문의 특성상 연봉제 도입은 참 애매합니다. 증권사에서는 증권 약정액 얼마, 자동차 회사에서는 판매대수 얼마 등을 따질 수 있지 않습니까?
누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느냐를 측정하는 게 수치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공공부문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어떻게 부가가치를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연봉제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성과에 따른 연봉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노동자들 사이의 무한경쟁을 조장하여 파편화시키기 위한 것, '한 개인이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성공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무늬만 연봉제'입니다.
<font color="#336699"> ● '연봉제' 외에 다른 영향은 없나요?</font>
아닙니다. 신지식인운동은 현장에서 노조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돌리는 것이 신지식인이라고 했잖아요. 아시다시피 노동조합의 기본원리가, 노동자간의 경쟁을 줄이고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통하여 자본가계급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까? 신지식인운동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과는 정반대가 노조활동의 목표라는 겁니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이렇게 말하잖아요. "기능장 00씨는 중학교도 못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직업학교를 거쳐 00공장에 취직하였습니다. 00씨는 24시간 내내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 일년에 몇번씩 회사에 제안합니다. 그 제안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00씨는 지금 박사출신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들보다 더 나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00씨와 같은 사람이 정말로 신지식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하여 임금을 상승시키거나 단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노력으로 임금을 높이고 승진할 수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은 노조가 필요없다는 거 아닙니까? 결국 신지식인운동은 노조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font color="#336699"> ● 최근에 벤처기업이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에서도 첨단지식산업을 육성한다고 말하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구요.
혹시 현장에서는 벤쳐기업이나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font>
벤처기업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는 사람이 회사를 꾸리는 것이 벤쳐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드는군요. 최소한 대학원이상, 그러니까 석사학위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해도, 그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이런 현실을 말하지는 않고, 회사만 차리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기술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너네는 별볼일 없으니까 시키는대로 하라'는 복종의 논리를 주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벤쳐기업 가지고 정부가 떠드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과 아이디어가 있고 최소한의 자본이 있으면,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정부가 나서서 시끄럽게 떠들어까요? 그건 아까 말씀드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font color="#336699"> ● '신지식인운동'이라는 말로써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영향력이 현장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까 말씀하신 연봉제나 노조와해의 가능성 등이 말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어떤 방향으로 대응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font>
현장에서는 '신지식인운동이 이러저러하다'라는 걸 아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실천적입니다.
신문을 보거나 하면, 신지식인운동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지식운동을 반대하는 모습들이 '무기를 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무기'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무기를 통한 비판'일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신지식인운동을 깬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현장에서는 신지식인 논리가 그대로 투영되는 연봉제 논리를 막아내고,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정책을 깨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노동계급이 뭉쳐서 투쟁을 통하여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어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인 투쟁을 통해서 하나하나 성과를 얻고, 김대중정권의 정책기조를 바꾸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신지식인운동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 이론적 비판을 뛰어넘어,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한,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비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계급/계층, 즉 전국민이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싸우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요. 노동자들의 싸움만으로는 사실 역부족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빈민·학생·시민운동단체들·비판적인 지식인들 모두가 하나의 연대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신지식인이 말하는 왜곡된 지식인의 모습을 폭로하는 것 아닐까요? 동시에 현장에서의 자본의 논리도 깰 수 있는 것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