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0.29호
첨부파일
0210특집_이승철.hwp

브라질-임박한 노동자당 집권, 과연 좌파는 승리했는가

브라질 노동자당 대통령선거의 빛과 그림자

이승철 | 기자, 민주토총 편집차장
필자는 지난 9월14일부터 23일까지 브라질노동자단일동맹(CUT)의 초청으로 10월 대선을 앞둔 브라질 현지에서 좌파정당의 대선 전략을 살피고 돌아왔다. 이 정치연수에는 민주노총 5명과 민주노동당 10명 등 총 15명이 참가했다. 브라질 대선 현장과 안팎의 논쟁, 간략한 전망을 싣는다.



임박한 노동자당 집권, 과연 좌파는 승리했는가
브라질 노동자당 대통령선거의 빛과 그림자

이 승 철 | 기자, 민주노총 편집차장


거리는 온통 '붉은별'로 수놓여 있다. 차도 한복판, 중앙선에 혼자 서서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깃발을 하염없이 흔드는 것은 브라질의 전형적인 선거운동 방식 중 하나다. 브라질 노동자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의 상징은 'PT'를 흰색으로 새겨 넣은 붉은 별. 인파로 붐비는 시내 한복판에서 드높게 펄럭이고 있는 PT의 깃발을 보는 것은, 이국의 풍경이 주는 신비함 이상의 가슴뭉클함을 한아름 선사한다.
'룰라(Lul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PT 대통령 후보 '루이스 이나시우 다 실바'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거리 곳곳에서 발견된다. PT의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다니다보면,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리고 윙크를 하며 '룰랄라'를 소리내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이제 투표는 10월 6일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과연 브라질 민중은 '최초의 좌파정권'을 기쁘게 온몸으로 맞이할 것인가. 남미의 초강대국, 브라질 정치판에 온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여론조사의 추이로 보자면, 룰라의 당선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룰라는 올 초부터 줄곧 지지율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이 9월17일 조사·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룰라의 지지도는 42%대를 나타내고 있으며, 최고 48%까지 치솟은 바 있다. 반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여당후보 조제 세하(18%, PSDB, 브라질사회민주당)와 시로 고메즈(17%, PPS, 민중사회당) 후보는 20%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룰라 선본 관계자들의 관심은 '당락 여부' 보다는 오히려 '1차냐, 2차냐'에 쏠려있다. 브라질은 개표결과 50% 이상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위 후보들이 2차 투표를 벌이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2차 투표일은 3주 뒤인 10월27일로 예정돼 있다.
룰라가 지난 세차례의 대선과는 달리 높은 지지율을 줄곧 유지하며 앞서나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중 첫 번째로 소위 "좌파통합, 우파분열, 대선승리" 전략으로 칭해지는 '좌우연합 전술'을 꼽을 수 있다. 룰라 선본에서 미디어대책을 담당하고 있는 Giancarlo Summa는 브라질의 표심을 '좌파30%, 우파30%, 중도40%'로 크게 삼등분해 설명했다. 룰라는 이번 대선에서 '중도40%'를 끌어들이기 위해 전통적 제휴정당인 PCdoB(브라질공산당, 마오주의당)와 PCB(브라질공산당, 소비에트당) 이외에도 PL(자유당)을 포섭해 공동대응에 나섰다. 부통령 후보로 나선 섬유기업 사장(이른바 민족자본가) '조세 알렌카'가 속한 PL은 지금의 여당에서 분리돼 나온 이른바 '우파정당'이다.
이같은 룰라의 '변신'을 현지 언론들은 "룰라가 대립과 대결의 정치에서 사랑과 평화의 정치로 옮겨가고 있다"고 치켜올렸다.


물론, 이같은 연합 전술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Summa씨는 "10년 전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연합전술이 당선을 위해 펼쳐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함께 선거를 치르고 있는 PCdoB 관계자는 "솔직히 룰라가 당선돼도 문제"라고 덧붙인다. PT와 룰라가 오른쪽으로 눈을 너무 많이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PT 국제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Jean Tible도 "당내 우경화에 대한 이견은 없느냐"는 질문에 사견임을 전제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예컨대 '좌파'임을 자칭하며 출사표를 던져 지지율 3위를 나타내고 있는 시로 고메즈 후보는 FS(노조의 힘) 부위원장 출신이다. FS는 이른바 '실리주의적 노동조합주의를 추종하는 노총'. 즉 CUT를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에 비유한다면, FS는 한국노총쯤 되는 격이다. 과거 공산당 출신이자 민중사회당 후보로 나선 고메즈는 스스로 칭하는 것처럼 '좌파'라고 보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섬유회사 사장' 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PT는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PT는 이미 지난 1981년 9월 전국대회에서 사회주의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정통 맑스레닌주의나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 자신도 브라질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전환시키기 위한 완성된 전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평가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이들이 과연 국내 자본가들과 동침을 어떤 식으로 성사시켜 낼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에 대해 룰라를 공식 지지하고 나선 브라질 사용자단체 중 하나인 CIVES(주로 중소기업가들 중심, 회원 150여명 규모)는 "과거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대립적이었다면 이제는 국가경제 부흥을 위한 경제성장에 함께 노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주장한다. "PT가 사회주의 정당인 것은 알지만, 당장의 경제부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브라질의 특수한 경제상황이 놓여있다. 현재 브라질 중소기업 은행금리는 무려 60%대로, 대규모 외국기업과 투자기업의 은행금리 20%의 세배에 달하는 수치. 헤알 화폐가치 역시 급락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국내 중소 생산자본들로서는 IMF와 외국투기자본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현 정부보다는 '노동자 정당'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노동자 대 자본가'의 전선이 아닌 '투기자본 대 반(反)투기자본'의 전선이 형성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이 룰라의 공약 중 하나인 '최저임금 2배 인상' 등이 추진될 때 어떤 반응을 보여올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물론, 유연한(?) 정치동맹만으로 지지율이 급등하거나 당선권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 특유의 다당제 정치문화 때문에, 다른 후보들 역시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좌·우를 망라한 연합전술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룰라 선대본은 네차례의 도전 끝에 당선권에 다다를 수 있는 최대 이유로 바로 '정책과 경험'을 들고 있다.
귀바(Guiva) 브라질노총(CUT) 금속노조 위원장 겸 PT전국노동위원장은 룰라의 당선가능성에 대해 "경제회복을 약속했던 우파정권들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된 뒤, 경제회복과 투기자본 규제, 실업률 회복과 사회복지 증가 등 민중의 요구와 PT의 정책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브라질 일반인 대출금리는 80%에 다다르고 있으며, 신용카드 대출의 경우에는 250%라는 천문학적 수치에까지 이르렀다. 국가경제에 깊숙이 침투한 투기자본의 영향 때문이다. 상위20%와 하위20%의 소득격차는 25배까지 치솟았으나, 최저임금은 아직도 2백 헤알(8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월소득이 최저임금에 이르지 못하는 빈곤층이 5천3백만명에 이르고, 기아선상에 놓인 인구만도 2천3백만명 선이다.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우파정권은 IMF와 합의한 사항인 'GDP 3.88% 성장률 유지'를 위해 사회보장비용을 대폭 삭감했다. 석유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영기업이 이미 민영화됐다. 민중의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룰라는 △조세개혁 △토지개혁 △4년 이내에 실업률 반감·최저임금 2배 인상 △고용창출 △빈곤층 구제를 위한 주택건립과 기초생활보조제도(Food stamp program) △공공보건 강화 △공교육·사회교육 강화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의 75%가 정책전환을 원하고 있던 차에 룰라의 약속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룰라의 약속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룰라 선본에서 경제담당 조정관(executive coordinator)을 맞고 있는 프라도(Prado)씨는 "룰라가 당선되더라도 브라질과 IMF의 협약은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IMF협약 준수'와 '빈곤퇴치·소득재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이다. 이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를 위해 룰라가 내놓은 해법은 한가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고용창출과 소득증가'다. 하지만 현재의 브라질 경제상황에서 IMF의 협상내용을 모조리 유지하면서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룰라와 프라도는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현재 200헤알(8만원) 수준의 최저임금을 오는 2006년까지 두배로 인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각종 사회보장기금의 기준이 최저임금으로 설정돼 있는 상황에서, 안그래도 사회보장 확충을 주요공약으로 내건 룰라가 이를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는 모두가 갖는 의문이다. 프라도 경제담당조정관은 이에 대해 "2004년까지는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야 하겠지만, 어렵더라도 추진하겠다"는 '결의결사'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다른 공약들 역시 "재정확보가 우선"이라는 입장.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높은 수치의 경제성장을 유지하더라도, IMF와 투기자본이 요구하는 내용들을 충족시킨 뒤에야 이같은 약속들이 지켜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공약 자체의 후퇴도 있었다. 지난 89년 대선에서 룰라는 △외채에 대한 이자지불 중지 △기간산업 사유화 반대 등을 내걸었었지만, 이번 선거에선 이런 공약들을 찾아볼 수 없다. 프라도 경제담당조정관은 "IMF와의 재협상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공기업 재국유화에 대해서도 "계획 없다"고 털어놨다.
특히 공기업 사유화와 관련해 그는 △고용축소 △작업장 내 노동권 박탈·단협 무력화 △외국계기업의 기간산업 인수 뒤 재투자 전무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유발 등 '실제 드러나고 있는' 심각한 부작용을 지적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재정부담 등으로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난 대선까지만 해도 룰라의 당선을 결사 저지해오던 국제투기자본과 신용평가기관, 미국의 대응마저 유연해졌다. 지난 7월 이후 룰라에 대한 자본의 평가는 급격히 양분돼 "룰라가 당선되면 자본을 회수할 것"이라는 의견과 "룰라라면 믿을 수 있다"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다. 이른바 룰라의 '勞風'과 미국의 '北風'이 일으키던 격렬한 충돌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셈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70년대 후반 대규모 파업을 이끌며 민중의 희망으로 떠오른 뒤, 80년 PT창설을 주도하고 이번까지 네차례에 걸쳐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며 정치적 신뢰를 쌓아온 룰라. 어쨌든 룰라의 당선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브라질의 실험'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는 일단 더 두고볼 일이다. 당선 이후, 우경화 비판을 훌훌 털어내며 사회주의 좌파정당다운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인지, 아니면 국제투기자본과 IMF가 쳐놓은 그물을 걷어내지 못한 채, 또 하나의 실패한 모델로 귀결될 것인지는 (수많은 의혹과 비판, 그에 대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지수다. 브라질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할 것인가.
사회주의 정치실현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상황을 조급함 없이 지켜보며 우리 앞에 놓여진 길을 가야할 때다. PSSP



아래 내용은 <별도박스>로 처리해 주세요

PT는 어떤 당?

1980년 창당된 브라질 노동자당(PT)은 현장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70년대 후반 대규모 파업을 이끌었던 노동운동 세력이 주도해 창립한 브라질의 대표적 노동자 정당이다. 브라질 좌파정당은 PT이외에도 PCdoB(브라질 공산당, 마오주의당), PCB(공산당, 소비에트당), PDT(민주노동당) 등을 꼽을 수 있으나, PT가 가장 광범위한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받고 있다.
PT는 창당 22돌을 맞은 현재 주지사 3명과 상원의원 7명(81명 중), 하원의원 59명(513명 중)을 보유하고 있는 브라질 내 유력 정당으로, 당원 규모만도 30만에 이른다. 1년 예산 6천만 헤알(2백4십억원) 중 4천7백만 헤알(1백88억원)을 당원이 내는 당비로 충당하는 등 재정자립도도 높은 편이다.
PT는 우리나라의 울산지역에 해당하는 ABC지역 금속노동자들을 중심으로 79년부터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돌입해 1980년 2월 10일 상파울로 시온학교에서 7백5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대회를 가졌다.
PT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 역시 노동자다. 1980년 1월 전국임시위원회 11명 중 10명이 노조지도자로 구성된 것은 현장조직과 기층노동자의 참여를 중시해 온 당 전통을 보여주는 한가지 사례다. PT에는 이밖에도 재야인사와 지식인, 노동사목회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세력과 인권·여성·동성애운동 등 사회운동세력, 좌익학생운동세력 등이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을 움직이는 기초조직은 누클레오(Nucleos). 누클레오는 사회운동부문·지역·직업별로 구성되며, 모든 당원은 반드시 누클레오에 가입해야 한다. 따라서 PT에 가입한다는 것은 바로 지역이나 직장의 누클레오에 가입한다는 의미와 같다. 누클레오는 정기적 모임을 통해 당원교육과 조직, 대중동원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당에서 논란이 되는 문서는 누클레오에 배포돼 당원토론 자료로 이용된다.
PT는 총 81명의 전국집행위원을 선출해 주요 당무를 담당토록 하고 있다. 이 선거에는 각 정파가 출마, 득표결과에 따라 인원을 배분하는 이른바 '정파비례투표제'의 독특한 방식을 채택해 당내 분파대립을 해소하고 있다.
주제어
국제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