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위기 비판의 관점 확보와 전선복구
대선 투쟁전략 수립의 논점
정치위기 비판의 관점 확보와 전선복구
: 대선 투쟁전략 수립의 논점
2002년 대선투쟁은 누구나 인정하듯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5년을 심판하고 경제위기를 비판하는 의의를 갖는다. 또한 IMF-DJ 체제의 성립 이래 계속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 대선투쟁을 규정하는 엄중한 제약을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왜냐하면 지난 5년 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곧 거듭되는 노동패배의 역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한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모델 자체의 파산이라는, 지배세력의 유례없이 심원한 실패와 위기가 동시에 피지배계급의 패배를 동반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배계급의 위기를 지나치게 크게 본 나머지 적을 가벼이 여긴 '경적(輕敵)의 우(愚)'인가? 아니면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폭발적이었던 기층대중의 투쟁을 좀더 좌익적이고 전투적으로 조직하지 못한 투쟁 지도부의 책임인가? 문제의 원인을 경적(輕敵)의 잘못에서 찾는 이들은 자연히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현실적인 개량의 추구와 사민주의적 지향을 노골화하고 있으며, 그 반대편엔 반개량주의·반사민주의에 입각한 카운터 대안으로서의 좌파결집을 사고하는 이들이 서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고색창연한 좌우대립에도 불구하고(혹은 바로 그 때문에) 양자 모두 지배계급의 실패가 자동적으로 피지배계급의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는 얼마간 기계론적인 낙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이 때문에 위기 자체와 대중이데올로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은 소홀하기 십상이고, 기껏해야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뿐이다.
냉정히 볼 때 사태는 우파의 사민주의적 후퇴마저 일정한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울만큼 비관적이고, 좌파의 결집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민중운동진영의 이번 2002년 대선 투쟁전략 역시 이같은 거울놀이를 되풀이하면서, 사민주의적 정당(후보)이냐 사회주의 정당(후보)이냐 혹은 선거투쟁인가 대중투쟁인가 따위의 대립을 증식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2002년 대선을 정치위기 비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번 대선투쟁을 통해 보수정치에 대당(couple)하는 진보정치의 세력화가 아닌 전선복구와 새로운 민중의 연합과 연대를 이뤄내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정치위기 비판의 관점을 세울 것에 대하여
자본주의는 민족국가형태와 정치/경제(국가/시민사회)의 분리라는 주요한 두 가지 계기 없이 자신의 신민(臣民)을 재생산할 수 없다. 민족국가형태가 소유없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민족(국가)의 틀로 통합시키는 계기라면,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와 같은 계기들과 함께 작동함으로써 민족국가(지배정치)로 통합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를 봉쇄한다. 전쟁과 경제위기는 이같은 지배정치 재생산 매커니즘에 내재된 결정적 결함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구조적 경제위기(공황) 시기에 (지배)정치는 착취체제의 내일을 책임질 민족적 사회적 통합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
IMF경제공황으로부터 금융세계화로 편입되기 시작한 한국정치는 이같은 근본적인 위기 국면에 처해 있는 전형적 사례라 할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제껏 남한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종속적인 반공-발전모델과 신식민지 파시즘의 붕괴 이후 달리 새로운 발전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채, 경제적 통제권과 자율성을 침식당한 상태로 금융세계화에 따른 미봉적인 위기관리책에만 의존하고 있다. 대중은 이전까지의 정치 불신에 더하여, 금융세계화로의 통합과정에서 되려 심화된 민생파탄, 민주압살과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의 결과에 분노하면서, 정치 자체의 혐오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으로 채색된 안경을 쓰고 본다면, 너무나 명백하고 거대한 계급투쟁전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배계급의 통치불가능성, 국제관계의 불안정성, 그 자신의 포퓰리즘(인민주의)의 모순들에 봉착하는 경향 등...
하지만, 이같은 위기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제도적 형태 즉 조직화한 계급투쟁의 해체와 탈(脫)정당화(正當化)라는 부정적 성공을 내포한다. 경제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재구성이나 계급투쟁전선의 복구로 저절로 이어지기는커녕, 지리적 장벽뿐 아니라 인종적, 세대적, 성적 장벽들로써 프롤레타리아화의 차별적 측면을 더욱 근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귀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배세력의 패배가 곧 피지배세력의 승리라는 거울쌍을 이루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에 앞서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종속적 발전전략의 파탄과 민간화를 경험한 뒤에 급작스러운 세계경제 위기에 빠져들어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겪었던 남미의 대다수 나라들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는 바이다. 이들 나라의 구조조정을 책임졌던 집권세력들은 하나같이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부패로 인해 몰락했고, 새로운 집권세력들 역시 권좌에 앉는 그날로 전임자가 걸었던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그렇지만 이같은 지배세력들의 반복된 교체와 몰락의 전과정 속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패배 또한 지속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몰락한 DJ정권의 무덤 위에서 춤추고 있는 다음 무덤의 주인공인 이회창과 함께 DJ 몰락의 과실을 다툴 때가 아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현실이 지배정치의 통치불가능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해체 경향인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역시 지배정치 위기의 반사이득을 어떻게 얼마만큼 추수할 것이냐 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IMF 위기 이후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대중들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스스로 꺠닫고 다양한 직접행동에 나섰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한편으로는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화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적 이상의 해체로 인해 교통과 연대의 가능성이 축소된 상황에서 더욱 심화되는 삶의 위기를 겪음으로써 심한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인 정념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렇게 됐을 때 대중은 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집단적 문제해결 방식보다는 실리적인 생존게임에 몰두하거나 무너진 과거의 어떤 이상(중산층적 삶, 혹은 발전주의적 대망)에 집착하게 된다. 대중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적합한 인식과 집단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찾지 못해 공통의 '집단적 미래'를 상실해 가는 상황. 이같은 위험이야말로 이번 대선투쟁을 통해 우리가 가장 시급히 타개해 나가야 할 현실이다.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정확히 이같은 위험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마주치게 될 최대의 난관은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일 것이다. 대중은 더 이상 정치와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곧 지배정치이므로, 이는 지배정치의 위기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배정치의 위기는 그것이 왜곡된 형태로나마 포섭하려 했던 정치적 보편성의 해체를 항상 동반하고, 이는 정치 일반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 지배정치의 위기가 진보정치의 해방으로 (약간의 굴곡은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진보주의적인 낙관은 냉소주의가 모든 정치의 무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과소평가한다. "나는 당신이 우리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지배정치의 무능과 부패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분노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정치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도 '어쨌거나' 정치인이 아닌가?(따라서 당신도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이렇듯 냉소주의에 빠진 대중은 지배정치의 헛된 약속이나 공염불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진보진영의 어떤 폭로나 선동에도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후자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현실적인 실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보다 타락했지만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더 '유능한' 정치인을 선호한다. 진보정치의 가장 대중적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적 국민정당의 386들이 표방하는 '감동과 희망의 정치'란 이 높은 문턱에 내걸린 진정한 넌센스일 것이다. 이러한 냉소주의는 몇몇 유별한 개인들의 품성 따위가 아니라 대중들의 객관적인 삶의 조건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상대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아주 일반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운동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실리주의'는 지도부의 타락으로 한정할 수 없는 대중적 냉소주의와 연관되어 있다(가장 완화된 형태의 실리주의-냉소주의는 "나는 당신의 말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와 다른 존재로 느껴지고, 따라서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다."의 논리를 취한다). 즉 이것이 바로 대중의 상태이고, 우리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고, 우리 역시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여기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원칙, 즉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비대칭성'만을 다룰 것이다. 애초에 프롤레타리아 정치란 지배정치와 같은 형식에 다른 내용을 지닌 무엇이 아니며, 그렇다고 그것과 전혀 별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지배정치에 의해 억압되어 그 안에 '비정치'의 영역으로 폐쇄되어 있으나, '지배정치 비판'과 결합한 대중정치라는 형상으로 지배정치를 내·외부로부터 파열시키면서 항상 다시 회귀하는 대중의 '봉기적 보편성'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 그 자체에 편승하는 반(反)정치나 대중의 탈정치적 이탈에 영합하는 입장과 엄격히 구별되면서도, 지배정치의 형상을 전화시키지 못하고 그것에 포섭되거나 (특히 현 정세에서) 지배정치의 위기 속에서 그것과 공명·공멸하는 진보정치 류의 입장과도 무한히 멀다.
이때 관건이 되는 것은 비록 허구적으로나마 봉기적 보편성을 포섭해 냈던 지배정치가 더 이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거나 심지어 '억압할 수 없는 최저한도', 예컨대 생존이나 민주주의, 평등-자유의 원초적 부정으로까지 내몰고 있는 구체적인 타락 지점을 비판·가격함으로써, 기존의 지배정치로부터 봉기적 보편성을 해방시키고 그에 근거하여 운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을 근대적인 민족국가형태를 매개로 포섭하여 형성된 민족적 시민('국민')이라는 주체성,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조직된 국가 및 사회가 지배정치의 통치가능성을 넘어 해체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대중을 압살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판과 투쟁을 조직하여 민중의 민주주의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경험과도 부합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정치는 발전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종속적 발전독재정권이 장악한 억압적 국가기구의 무력통치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로 인해 (대중)정치는 줄곳 과소결정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 (정권의 비정통성과 폭압성, 국가=정치동일성으로 대표되는) 이 '정치의 과소결정요인들'은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의 궁핍화 및 반독재민주화 전선이라는 보편적 상징과 결합할 때에는 노동자 민중의 '역설적인 정치'로서의 '대중정치'를 가능케 하는 '과잉결정요인들'로 작동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군사정권이 민간정권으로 바뀌고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이 건설되면서 반독재민주화 전선이 소멸하고, IMF 경제위기라는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삶의 문제를 얼마간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한국정치는 다시 과소결정 상태로 회귀하였다. 또한 개발독재의 경우 '국가'가 적어도 상상적으로는 모든 책임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달리, 신자유주의로 이행하면서 중립적이고 익명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시장'의 원리가 부각되면서 책임의 주체가 상대적으로 불분명해지고 사회의 통합력 역시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 시기 우리 운동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미 허구적 신화가 되어 버린 기존 운동의 (정치적) 성과들의 이합집산으로 정치적 계획을 대체함으로써 반복되어 온 (정세에 대한) 관성적인 정치적 무기력을 걷어내는 것, 지배정치의 위기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국면에 맞게 '운동성'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고 그 조건으로 실제적인 전선 형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의 '나쁜 방향'과 대결하고자 하는 강인한 사고 및 전략과 이론 없는 대중운동의 미확정적인 계기들로부터의 재출발이야말로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의회정치의 전화와 대중정치
오늘날 구조공황의 지속에 따른 재정상태 악화와 구조조정의 압력으로 인한 국가 예산구조의 방향 재편 및 국가개입의 변화는 유권자의 물질적 요구에 대한 대응능력과 함께 의회의 정당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지배(의회)정치의 위기를 재생산해낸다. 국가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위기관리와 갈등관리에 주력하게 되고, 정당들은 대체로 뚜렷한 이념적 지향보다는 모든 쟁점들에 대해 미봉책들에 의존하게된다. 신자유주의 집권자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이며 빠른 개혁을 위해서 민주주의는 걸림돌일 뿐이라고 여기며, 제국과 종속국 내외의 소수 엘리트집단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대중조작적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은 국가 폭력{{)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폭력은 1> (주로 배제된 지역에서의) 세계도처에서 끊이지 않는 국지전(도시전)적인 전쟁폭력, 2> 정보적 통제/폭력, 3>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행되는 직접적으로 사익화된 공권력의(구사대, 용역깡패화된) 폭력의 세가지 층위에서 날로 증대하고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의 과정에서 점점 더 증가하는 국가의 경찰적인(혹은 군사적인) 폭력수단에의 의존은 시민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권의 취약성, 즉 사회세력 중재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의 증대와 민주주의 후퇴의 과정인 것이다.
또한 작은정부라는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비대화되며, 구조조정의 신속하고 강력한 추진을 위한 각종의 행정권이 남용되는 가운데, 의회는 점점 정치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간다. 의회는 더 이상 정치의 공간이기보다는 절차적인 입법공간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다. '국민주권'이라는 의회정치의 보편적 가치는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의 의회정치는 군사독재정권 말기와 문민정권 출범 직후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과거 청산기를 거쳐 단 한번도 온전하게 실현됨 없이,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돌입함으로써 급속도의 위기와 전화과정에 돌입했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종속적이고 반동적인 특성에 근본적으로 기인하며 양대 문민정권의 취약한 정치적 토대로 드러났다. 양김정권은 공히 민간 개혁정부를 표방하면서(개혁/수구간의 갈등 위에 존재한다고 믿어진) '상대적 진보성'에 의존한 국민적 정당성을 명분으로 하여 권력기반을 구축하였지만, 이들의 역사적 기반인 개혁/수구간의 갈등은 이미 국가권력 내적인 타협을 통하여 왜곡된 지역갈등으로만 존재할 뿐이였다. YS와 DJ라는 대중적 지도자 1인중심의 포퓰리즘적(또한 탈의회적인) 정치행태만이 근거없는 이들의 국민적 정당성과 상대적 진보성을 유지시켜주는 대안이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양 문민개혁정권의 성립은 이들이 극복하고자했던 낡은 군사독재의 유물인 JP의 캐스팅보드를 유지시켜 주었다(현재 JP는 토사구팽 당한 처지이지만).
강한 지역적 한계와 자민련과의 불안정한 연합에 의해 출범한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고 강력한 행정부의 대응을 필요로 했던 IMF외환위기 사태는 의회정치의 위기와 전화를 결정적으로 강제한 계기이다. 즉 항상적인 위기와 구조조정의 반복적 재연, 개혁이데올로기로 특징지어지는 금융세계화의 정치·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독재정권과 비민주적인 (민족)국가체제를 시장의 불투명성을 초래하는 불안요인으로 인식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안정을 가져올 형식적 민주주의와 시장투명성의 확보를 위한 반부패와 경제적 자유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는 민중의 민주주의적 권리확보와 역사적 진보와는 전혀 무관한 조치들이며, 민족국가적 자율성의 제약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만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들에 있어 세계적 차원에서 일반화된 케이스이며, 그같은 여파는 의미있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대부분이 의회 외적인 투쟁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이는 많은 좌파 (의회)정당들이 실용주의화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대중운동들내에서의 실질적인 지도력과 중요성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왔던 남미와 유럽의 (의회주의적) 좌파들은 신자유주의 재편과정에서 대부분 이미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자유주의로 변질됐다. 경제위기로 인해 각종의 계급정치적 사안들은 넘쳐나지만, 이미 의회와 국가의 실패가 명확해진 상황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을 자신의 생존조건으로 하는 사민주의는 정작 자신의 이념적 지향인 계급정치와 자신의 존재조건 사이의 매울 수 없는 간극으로 인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생존을 위한 자유주의적인 변모의 길을 택했고, 그러한 실용주의적 변신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상당한 현실적인 이득을 얻어냈다.
그러나 (좌파의 생존을 위해) '유권자'로 동원된 대중은 지극히 수동화된 상태로,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에너지를 가지고 선거에 참여하기보다는 과거로부터 가져온 헌신성이나 연고관계 때문에 투표했다. 사회적 대결은 TV토론으로 대체되었으며, 중도좌파 정당은 자신의 정체성, 즉 다수 대중의 기본적 생활조건에 대한 불만의 판단기준이라는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근거를 상실하였다. 그 가운데 비정치적인 전문성과 법률적-대안적 진보주의를 내세운 관리주의{{) 여기서 관리주의란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는 용어에 기본적인 영감을 둔 개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이른바 법인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 혹은 관리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에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특히 DJ정권은 이 양자를 수렴시키면서, 노사정으로 대표되는 코포라티즘을 하나의 대안적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DJ의 코포라티즘적인 대안정책인 노사정은 경제위기상황을 관리하고자하는 한계적인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본래의 코포라티즘에 미달하는 허구성을 가지고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심한 불안정성을 가진다.
또한 관리주의는 "자유주의"의 변종의 하나이다. 관리주의는 갈등의 실존을 부정하지 않으며, 또 그것의 해결을 위해 보수적 회귀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관리주의는 갈등의 실용적 해결을 주요한 활동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지속적인 법률적 개정이나 전문적 지식의 대중화 등을 활용한다. 그 결과 법률주의나 전문가주의는 NGO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그것의 구조적 특성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그것이 계급투쟁의 관리와 동시에 대중의 지성, 혹은 대중의 지적 권리를 법률이나 전문성 등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적 NGO의 국가정치 보조적 기능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양 문민정권의 등장 이후 전선의 붕괴와 노동조합, 진보정당으로 수렴되어 버린 우리 운동, 역시 매 사안별로 개별화되고, 계급투쟁은 이론, 사상과 분리된 실용적인 정책대결로, 정치투쟁은 위기에 빠진 의회정치의 기반을 재확보하기 위한 '정치개혁' 투쟁으로 변형되는 경험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태는 IMF 경제위기 이후 더욱 고착화되어갔고, 대중과 분리된 운동은 지배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실리적 경향에 영합하는 실용주의적 변질을 겪는다. 운동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밑으로부터 붕괴되고 해체되고 있으며, 이 전과정을 아우르는 정치세력화라는 전략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급진적인 대중운동의 쇠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진보정당-노조의 쌍으로 결말지어진 지난 10년간의 정치세력화 프로젝트는 대중운동의 쇠퇴에 대한 대응 혹은 그것의 결과로 제기되어 왔고 또 현재도 그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대정치정당의 위기{{) 노동계급만의 이익보다는 다양한 사회세력의 이익을 골고루 대변하려는 전취정당(catch-all party)의 경향을 강화시켰고, 특정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와 그에 입각한 정권획득 자체를 목표로 삼는 선거전문 수권정당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필연적으로 정당조직에 대한 노동계급의 직접적 참여를 감소시켰고, 또 노동조합과 정당과의 관계 역시 점점 긴밀성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한편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거대 정당조직에 의한 정치적지지 동원화의 필요성을 현저히 감소시킴으로써 대중정당 조직의 쇠퇴를 또한 촉진시켰다. 당원의 감소는 당 재정의 당비 의존도를 서서히 줄여 갔으며, 서구 대중정당들은 그 대안으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확대시켜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서구 정당들은 시민사회와의 연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반면 국가에 대한 정당활동의 의존도는 보다 강화된 소위 담합정당(cartel party)적 특성을 보다 뚜렷이 띄게 되었다.
}}는 당노선과 구체적인 조직형태를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형태로부터 국민정당(catch-all party)과 수권정당을 거쳐 미디어-정책정당, 심지어는 담합정당(cartel party)으로 나가도록 강제하는데, 이같은 과정은 대중운동의 (정치적) 지도부와 대중운동의 지속적인 괴리 과정이며 대중정치에 대한 억압과 부정에 다름 아니다.
'대중정치'는 (지배)정치로부터 내부적으로 배제된(그러나 결코 제거할 수 없는) '비정치'인 생산과 대중의 삶을 대중 스스로의 정치로 변형(급진화)함을 통해 비로소 가장 진지하고 진정으로 현실적인 정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열려진 거리와 생산현장(및 재생산)의 정치적 공간들이야말로 지배정치에 대당하는 또 다른 (지배)정치가 아닌 대중의 반역이자 지배정치비판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태반(胎盤)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우리의 관점은 반(反)정치나 탈정치적 이탈을 옹호하는 입장과 구분되어야 하지만, (근원적인 위기에 빠진 지배정치의 지반을 공유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보수정치(혹은 자본가 정치)에 대당하는 이른바 '진보정치'(혹은 사회주의정치)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입장과도 전혀 다르다.
진보정당의 정치노선이라 할 수 있는 진보정치론의 요체는 보수-보수를 보수-진보의 구도로 바꾸자는 이른바 '제3의 세력론', 혹은 '천하삼분지계'에 입각한 정치(정책)개혁론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지배)정치의 구성을 다양화함을 통해 현재의 '정치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다. 그러나 만약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정치이외에 다른 정치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배정치와 같은 형상에 다른 내용(정책)을 가진 무엇일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지배정치를 종별화하는 근본적인 구분점은 지배정치의 존재근거를(민족국가형태와 정경분리) 기각하는 종별화된 정치의 형상으로서의 대중정치라는 존재형태이며, 이것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대체할 보완물이 아니라 지배정치 비판이자 생산양식의 변형을 자기 존재이유로 하는 변혁의 정치로서만 실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의 위기가 양산해내는 갖가지 계급정치적인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기획이다. (국가)정치에서 등장하는 정책이란 이미 자본축적과정에서 그 대략의 방향과 기조가 결정된 한도 내에서 조절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구조공황 상황에서 취해질 수 있는 '정책'적인 선택의 폭은 대단히 협소할 수 밖에 없다.
진보정당으로 결말지어진 정치세력화 운동의 문제를 '사민주의적 진보정당인가 사회주의적 진보정당인가'라는 논점에 의해 개조하려는 시도가 현시기 전선복구와 대중운동 혁신이라는 과제 안으로 인입되지 못한 채 일부 운동세력들간의 종파적인 이합집산 논쟁으로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이같은 맥락 위에 놓여있다.
대중투쟁과 선거투쟁
선거시기에 제출되는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결합'이라는 전술은 그 뜻을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진실이 없는 언술이다. 선거시기에 벌어지는 선거투쟁이 아닌 대중투쟁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고, 대중투쟁이 아닌 선거투쟁은 또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컨대, 선거투쟁 아닌 대중투쟁은 선거시기에 벌어지는 비정치적인(!) 조합적인 이슈와 집회일정 등을 일컫는 것이고, 대중투쟁 아닌 선거투쟁은 대중운동적·정세적 의의를 찾기 어려운 선거활동을 가르키는 듯하다. 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그같은 양자는 결합과 분리를 말하기 전에 우선 척결되어야할 경제주의적 실천과 정상배 정치일 뿐이 아닌가. 오히려 이 애매한 언술 뒤에 숨은 진정한 오류는 대중운동의 경제투쟁으로의 부당한 한계짓기와 (대중투쟁과의 결합을 빙자한) 정세적 해명 및 배치 없는 선거투쟁으로의 매몰이다.
특히 2002년 대선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우리는 2002년 하반기 투쟁과 2003년 이후 전선재편에 관한 해명없는 대선투쟁론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정세적 의미와 무관한, 대선을(혹은 2004년 총선) 위한 대선투쟁은 어떤 투쟁과 결합되건 선거참여자들의 집회참가 이상의 의미가 없다.(그 역인 경우의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그같은 결합관계가 양자 상호간에 득이 될 성과를 남길 리 만무하다. 관건은 선거투쟁의 의미를 분명히 함을 통해 선거투쟁 자체를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중투쟁은 어떤 공치사로 치장되더라도 실상은 선거운동의 동원대상에 불과할 뿐이며, 선거투쟁은 스스로가 개개의 대중투쟁에 대한 정치적 조직자라는 환상만을 품은채 선거를 위한 선거투쟁으로만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른바 '건강한 기층'으로, 진실 없는 '대중투쟁 우위론'으로 한껏 떠받들여지고 신비화된 채 정작 과학적 분석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비운의 군주이다. 우리는 대중(이데올로기)을 다시금 정세분석의 중심으로 복귀시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대중에 덮어 씌워진 괜한 공치사를 걷고, 한없이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성격으로 다양하게 분열되어 있으며 때때로 반동적이고 진보적이어서 그 진로를 알 길이 없는 이 역사의 주인공에게 그들의 말과 행동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그에 입각한 대중 공동의 행동계획으로서의 전술만이 이 비운의 군주 앞에 지켜져야 할 유일한 예(禮)이다.
보론1> 정치투쟁관의 정정
지난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우리운동의 대부분의 평가가 지적하고 있는 두가지 난점은 바로 생존권(경제) 투쟁의 고립분산성 극복과 경제투쟁의 정치적 조직화이다. 그리고 그같은 평가의 대부분은 첫째, 각각의 경제적 요구들에 어떤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부여할 것인가 둘째, 어떤 조직적 틀(들)로 각각의 고립분산적인 경제투쟁들을 묶을 것인가라는 쟁점을 낳았다. 그러나 막상 이같은 전술논쟁의 근거가 되는 우리 운동의 현실은 전투적인 현장중심주의가 경제주의와 공명하고, 조합을 넘어선 대사회(정권)투쟁을 강조하는 입장이 개량주의와 공명하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희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우리는 이 혼탁한 반신자유주의 전술논쟁의 근저에는 이른바 '정치·경제투쟁관'(이하 정경투관)으로 불리는 오랜 부르주아적 운동관의 폐해와 '당의 계획으로서의 전술'이라는 식의 위계적 운동관이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정경투관의 핵심은, 첫째, 생활 경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 경제투쟁인 반면 대국가 혹은 대정권관련 투쟁이 정치투쟁이라는 구분법과 둘째, 경제투쟁에 대한 정치투쟁의 우위 및 그에 입각한 상호결합의 원칙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국가투쟁의 실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 정경투간 결합의 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한 현격한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같은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투쟁의 소재 및 영역의 차이를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부르주아적 구분법에 입각하여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으로 나누고, 이 둘간의 결합이라는 틀로 운동의 배치 방법을 대체해버리는 관념은 자체로 타파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이같은 사고는 역사발전의 유일한 원동력인 '계급투쟁'을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라는 현실에서 그 근거를 찾기 매우 어려운 관념적인 두 운동으로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의 계급투쟁은 자본과 국가라는 두 머리를 지닌 자본주의의 지배계급과 자본주의 역사발전의 반작용으로 탄생한 프롤레타리아트간의 계급투쟁이 존재할 뿐이고, 다만 하나의 계급투쟁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이 존재하는데 이 둘간의 분리와 구분은 지배계급의 계급투쟁의 효과로 나타난 지배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은 그것이 자본과의 투쟁과 국가와의 투쟁으로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고 사멸해가는 자본주의의 양측면에 대한 투쟁으로서만 현실에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이같은 '정경투관'이라는 과학아닌 과학, 사상아닌 사상에 속박되어왔을까? 그 원인은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과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성장전화론'이 가지는 (레닌 자신의) 역사적 한계와 그것의 (우리의) 교조화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레닌은 [무엇을 할것인가](1905년)에서 당대의 경제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수행하면서, 경제주의자들의 정치활동을 조합주의적 정치투쟁으로 규정하였고, 그것의 본질을 경제투쟁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정경투관의 출발{{) 그러나 물론 이같은 레닌의 비판은 짜리즘타도와 국가권력 획득이라는 당대의 혁명적인 보편적 대의를 그르친 경제주의자들이 범한 정치활동상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함이였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분리를 창안하고자 함은 아니였다.
}}) 게다가 당시까지도 레닌은 당면 혁명의 성격과 목표를 사고함에 있어 BgR에서 SR로의 성장전화라는 단계론적 혁명전략을 버리지 못한 처지였다. 그로 인해 레닌은 정치투쟁을 짜리즘의 타도/민주공화정의 수립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활동'과 Bg혁명의 SR로의 성장전화를 담보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으로 나누어 사고하고 있었다.(1897년 [러시아사회주의자의 임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위계적인 결합 및 성장전화관계에 있는 차별적인 주제와 수위를 가지는 운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외부주입'테제로 대표되는 카우츠키류의 분열적이고 위계적인 대중(지도)관이 레닌주의의 이름으로 정형화되는 주요한 계기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당면 변혁을 위한 운동들이 정치/경제운동, 민주/사회주의 정치활동, 당(지도)/대중(피지도)라는 위계적인 결합과 분열적인 구조로 배치된 것이다.
레닌의 성장전화론은 1917년 4월테제를 계기로 하여 자기부정되기에 이르지만, 정작 혁명전략의 수정이 곧 성장전화론에 고유한 전술·정치활동관의 혁신과 일반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였다. 다만 비로소 '레닌이 된 레닌'이 4월이후 내전과 NEP기에 내놓은 구체적이고 풍부한 정치방침과 당조직/소비에트 및 노조 운동론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레닌적인 전술·정치활동관의 혁신적 면모들의 단편을 애써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사실상 레닌 '경제주의 비판'의 요체는 '정경투관의 창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주체)성장에 따른 당(주체) 과제의 성장"이라는 제2인터의 오랜 진화주의적 관념에 정면 대항함으로써, 당(주체)'과제'가 지니는 혁명적 보편주의는 자본주의 위기발전의 객관적 조건(정세)에 의해 과학적으로 분석되어 주어지는 것일뿐, 주관적 요인에 의해 선택되는 문제가 아님을 설파한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의 성장전화론은 제2인터의 대기주의적 진화론과 바로 이 지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에도 불구하고 당형태와 대중관 및 전술관등을 통해 잔존하고 있는 이 둘간의(진화론과 부정된 성장전화론) 친화성이야말로 레닌주의의 역사적 한계인 것이다.
한편 1871년의 맑스는 [런던에서 뉴욕의 볼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레닌과는 다른 정치투쟁(운동)관의 일단을 선 보였는데, 그는 정치운동이란 "보편적인 사회적 강제력을 가진 형태로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일체의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정치와 경제라는 투쟁의 소재를 중심으로 한 운동의 구분도, '경제투쟁의 정치투쟁으로의 상승발전'이라는 성장전화론적인 위계적 결합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정의의 핵심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은 "보편적인 사회적 강제력"를 띤 "~~을 관철하기 위한 일체의 운동"이라는 규정이다. 여기서 '보편적 사회적 강제력'이란 판단컨데,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힘과 정당성을 갖춘 '과학적 이성'과 '집단적인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주체적 조건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같은 주체적 조건이 전 프롤레타리아트적인 보편적 요구(이익)을 관철시키기위한 혁명적 성격과 결합된다면 그것이 바로 혁명운동, 혹은 혁명적 정치활동일 것이다.
당대의 레닌은 "~~을 관철하기 위한"을 짜르타도/민주공화정 수립이라는 전인민적인 과제로 보았던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위한 주체를 "전위당"으로 상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대항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예속됨 없이, 과학적 인식과 집단적 문제해결능력에 입각하여 스스로를(사상과 저항 이데올로기=곧 조직) 지키고 발전시키는 이른바 '봉기적 주체'는 곧 역사적으로 정형화된 '전위당'이 아니라 '능동적 대중'과 그들의 자발적인 '연합'에(전위당은 이같은 주체형태의 하나일뿐) 다름 아닐 것이다. 결국 (레닌에게 주어진 운동의 조건과 역사적인 제약을 감안하여 본다면) 우리의 전술과 정치활동관의 재정립에 있어 주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변화된 정세적 요인과 이로부터 객관적으로 부여되는 전인민적인 보편적 운동의 목표와 과제, 맑스의 일반적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주체적 조건 및 운동(조직)형태일 것이다.
대중의 공동 행동계획으로서의 전술 -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더 이상 '전술=(지도)당의 계획'이라는 관념은 전술수립과 실행의 난점이 아니라 현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의 하나일뿐이다. 전술은 해당시기에서 전략적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당면 투쟁의 전술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호, 투쟁형태, 조직형태를 결정하는 '운동주체의('능동적 대중'의 '연합') 실천계획'이다. 그러므로 전술은 언제나 '대중의 공동행동 계획'으로 받아들여지고 실현되도록 노력해야하며, 그같은 실현정도야 말로 전술평가의 핵심일 것이다. 또한 전술은 구체적 정세(분석)을 통해서만 도출될 수 있을뿐, 선제하는 전략적 과제로부터 자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건적인 문제는 정치활동이 그때그때의 사건들에 대한 협소하고 즉자적인 대응에 머물지 않토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중외곽에서 지도지침을 주입하는 위계적인 지도조직의 선험적 구축 혹은 자임!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맞는 '정치적 지도'의 의미를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실제로 확보하는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과정을 통해 그것은 1> 위기비판과 전화의 관점을 명확히 할것 : 운동의 전과정을 인식한 가운데 제반의 운동들이 전략적 방향과 목적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 2> 집단적인 분석(총화)능력의 조직을 통해 피착취 근로대중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고 조직하는 것, 3> 자기부정에서 자기긍정으로 : 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자기통치-자기해방'의 출발인 인민의 자주성을 옹호하며, 다수자 혁명의 사상에 입각하여 자기소유와 통제를 실현하도록 할 것이다. 이같은 세가지 원칙을 대중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조직적 구조를 마련하고 그것의 성과를 안정적으로 축적해가는 일이야말로 '부재한 당의 계획'으로 국한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시기 우리운동에게 주어진) '전술활동'일 것이다.
정치활동관의 정립
우리는 이상과 같은 논의에 근거하여 특히 현시기 '정치투쟁'이란 "제반의 위기관리기제와 주어진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역, 즉 대중의 '봉기적 주체'화와 대중 스스로의 자주적 연합(보편적 이해의 자기이해화)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기본관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1987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노조건설 운동은 비록 경제적이고 조합적인 소재를 요구하는 투쟁이였지만, 87년 정세에서 이 투쟁은 스스로 당대의 반파쇼투쟁의 주력을 형성해 내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순한 경제투쟁이 아니였던 것이다. 임금인상을 매개로 단결한 대중들은 '파쇼타도 없이 노조없다'는 즉자적인 이데올로기였을지언정 그같은 반역에 입각하여, 집단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조직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한 가운데 스스로 통치하고 스스로 해방하기 위한 조직적 거점으로서 민주노조를 축으로 한 계급적 단결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1> 정세를 초월하여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주체'화 경로와 그것에 반역하는 '봉기적 주체'화가 구분되는 것이며, (신자유주의 재편과 경제위기 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수동화와 그에 따른 실리주의적 경향, 민중운동의 실용주의적 퇴행화야말로 현시기 정치활동의 주요타격방향이다)
2>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허구적인 결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적인 해결방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조직적인 결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투쟁의 정치적인 성패를 가로 짓는 열쇠이다.
: 대선 투쟁전략 수립의 논점
2002년 대선투쟁은 누구나 인정하듯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5년을 심판하고 경제위기를 비판하는 의의를 갖는다. 또한 IMF-DJ 체제의 성립 이래 계속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 대선투쟁을 규정하는 엄중한 제약을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왜냐하면 지난 5년 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곧 거듭되는 노동패배의 역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한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모델 자체의 파산이라는, 지배세력의 유례없이 심원한 실패와 위기가 동시에 피지배계급의 패배를 동반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배계급의 위기를 지나치게 크게 본 나머지 적을 가벼이 여긴 '경적(輕敵)의 우(愚)'인가? 아니면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폭발적이었던 기층대중의 투쟁을 좀더 좌익적이고 전투적으로 조직하지 못한 투쟁 지도부의 책임인가? 문제의 원인을 경적(輕敵)의 잘못에서 찾는 이들은 자연히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현실적인 개량의 추구와 사민주의적 지향을 노골화하고 있으며, 그 반대편엔 반개량주의·반사민주의에 입각한 카운터 대안으로서의 좌파결집을 사고하는 이들이 서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고색창연한 좌우대립에도 불구하고(혹은 바로 그 때문에) 양자 모두 지배계급의 실패가 자동적으로 피지배계급의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는 얼마간 기계론적인 낙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이 때문에 위기 자체와 대중이데올로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은 소홀하기 십상이고, 기껏해야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뿐이다.
냉정히 볼 때 사태는 우파의 사민주의적 후퇴마저 일정한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울만큼 비관적이고, 좌파의 결집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민중운동진영의 이번 2002년 대선 투쟁전략 역시 이같은 거울놀이를 되풀이하면서, 사민주의적 정당(후보)이냐 사회주의 정당(후보)이냐 혹은 선거투쟁인가 대중투쟁인가 따위의 대립을 증식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2002년 대선을 정치위기 비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번 대선투쟁을 통해 보수정치에 대당(couple)하는 진보정치의 세력화가 아닌 전선복구와 새로운 민중의 연합과 연대를 이뤄내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정치위기 비판의 관점을 세울 것에 대하여
자본주의는 민족국가형태와 정치/경제(국가/시민사회)의 분리라는 주요한 두 가지 계기 없이 자신의 신민(臣民)을 재생산할 수 없다. 민족국가형태가 소유없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민족(국가)의 틀로 통합시키는 계기라면,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와 같은 계기들과 함께 작동함으로써 민족국가(지배정치)로 통합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를 봉쇄한다. 전쟁과 경제위기는 이같은 지배정치 재생산 매커니즘에 내재된 결정적 결함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구조적 경제위기(공황) 시기에 (지배)정치는 착취체제의 내일을 책임질 민족적 사회적 통합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
IMF경제공황으로부터 금융세계화로 편입되기 시작한 한국정치는 이같은 근본적인 위기 국면에 처해 있는 전형적 사례라 할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제껏 남한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종속적인 반공-발전모델과 신식민지 파시즘의 붕괴 이후 달리 새로운 발전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채, 경제적 통제권과 자율성을 침식당한 상태로 금융세계화에 따른 미봉적인 위기관리책에만 의존하고 있다. 대중은 이전까지의 정치 불신에 더하여, 금융세계화로의 통합과정에서 되려 심화된 민생파탄, 민주압살과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의 결과에 분노하면서, 정치 자체의 혐오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으로 채색된 안경을 쓰고 본다면, 너무나 명백하고 거대한 계급투쟁전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배계급의 통치불가능성, 국제관계의 불안정성, 그 자신의 포퓰리즘(인민주의)의 모순들에 봉착하는 경향 등...
하지만, 이같은 위기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제도적 형태 즉 조직화한 계급투쟁의 해체와 탈(脫)정당화(正當化)라는 부정적 성공을 내포한다. 경제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재구성이나 계급투쟁전선의 복구로 저절로 이어지기는커녕, 지리적 장벽뿐 아니라 인종적, 세대적, 성적 장벽들로써 프롤레타리아화의 차별적 측면을 더욱 근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귀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배세력의 패배가 곧 피지배세력의 승리라는 거울쌍을 이루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에 앞서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종속적 발전전략의 파탄과 민간화를 경험한 뒤에 급작스러운 세계경제 위기에 빠져들어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겪었던 남미의 대다수 나라들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는 바이다. 이들 나라의 구조조정을 책임졌던 집권세력들은 하나같이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부패로 인해 몰락했고, 새로운 집권세력들 역시 권좌에 앉는 그날로 전임자가 걸었던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그렇지만 이같은 지배세력들의 반복된 교체와 몰락의 전과정 속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패배 또한 지속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몰락한 DJ정권의 무덤 위에서 춤추고 있는 다음 무덤의 주인공인 이회창과 함께 DJ 몰락의 과실을 다툴 때가 아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현실이 지배정치의 통치불가능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해체 경향인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역시 지배정치 위기의 반사이득을 어떻게 얼마만큼 추수할 것이냐 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IMF 위기 이후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대중들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스스로 꺠닫고 다양한 직접행동에 나섰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한편으로는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화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적 이상의 해체로 인해 교통과 연대의 가능성이 축소된 상황에서 더욱 심화되는 삶의 위기를 겪음으로써 심한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인 정념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렇게 됐을 때 대중은 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집단적 문제해결 방식보다는 실리적인 생존게임에 몰두하거나 무너진 과거의 어떤 이상(중산층적 삶, 혹은 발전주의적 대망)에 집착하게 된다. 대중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적합한 인식과 집단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찾지 못해 공통의 '집단적 미래'를 상실해 가는 상황. 이같은 위험이야말로 이번 대선투쟁을 통해 우리가 가장 시급히 타개해 나가야 할 현실이다.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정확히 이같은 위험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마주치게 될 최대의 난관은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일 것이다. 대중은 더 이상 정치와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곧 지배정치이므로, 이는 지배정치의 위기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배정치의 위기는 그것이 왜곡된 형태로나마 포섭하려 했던 정치적 보편성의 해체를 항상 동반하고, 이는 정치 일반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 지배정치의 위기가 진보정치의 해방으로 (약간의 굴곡은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진보주의적인 낙관은 냉소주의가 모든 정치의 무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과소평가한다. "나는 당신이 우리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지배정치의 무능과 부패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분노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정치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도 '어쨌거나' 정치인이 아닌가?(따라서 당신도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이렇듯 냉소주의에 빠진 대중은 지배정치의 헛된 약속이나 공염불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진보진영의 어떤 폭로나 선동에도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후자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현실적인 실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보다 타락했지만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더 '유능한' 정치인을 선호한다. 진보정치의 가장 대중적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적 국민정당의 386들이 표방하는 '감동과 희망의 정치'란 이 높은 문턱에 내걸린 진정한 넌센스일 것이다. 이러한 냉소주의는 몇몇 유별한 개인들의 품성 따위가 아니라 대중들의 객관적인 삶의 조건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상대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아주 일반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운동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실리주의'는 지도부의 타락으로 한정할 수 없는 대중적 냉소주의와 연관되어 있다(가장 완화된 형태의 실리주의-냉소주의는 "나는 당신의 말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와 다른 존재로 느껴지고, 따라서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다."의 논리를 취한다). 즉 이것이 바로 대중의 상태이고, 우리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고, 우리 역시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여기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원칙, 즉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비대칭성'만을 다룰 것이다. 애초에 프롤레타리아 정치란 지배정치와 같은 형식에 다른 내용을 지닌 무엇이 아니며, 그렇다고 그것과 전혀 별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지배정치에 의해 억압되어 그 안에 '비정치'의 영역으로 폐쇄되어 있으나, '지배정치 비판'과 결합한 대중정치라는 형상으로 지배정치를 내·외부로부터 파열시키면서 항상 다시 회귀하는 대중의 '봉기적 보편성'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 그 자체에 편승하는 반(反)정치나 대중의 탈정치적 이탈에 영합하는 입장과 엄격히 구별되면서도, 지배정치의 형상을 전화시키지 못하고 그것에 포섭되거나 (특히 현 정세에서) 지배정치의 위기 속에서 그것과 공명·공멸하는 진보정치 류의 입장과도 무한히 멀다.
이때 관건이 되는 것은 비록 허구적으로나마 봉기적 보편성을 포섭해 냈던 지배정치가 더 이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거나 심지어 '억압할 수 없는 최저한도', 예컨대 생존이나 민주주의, 평등-자유의 원초적 부정으로까지 내몰고 있는 구체적인 타락 지점을 비판·가격함으로써, 기존의 지배정치로부터 봉기적 보편성을 해방시키고 그에 근거하여 운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을 근대적인 민족국가형태를 매개로 포섭하여 형성된 민족적 시민('국민')이라는 주체성,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조직된 국가 및 사회가 지배정치의 통치가능성을 넘어 해체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대중을 압살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판과 투쟁을 조직하여 민중의 민주주의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경험과도 부합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정치는 발전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종속적 발전독재정권이 장악한 억압적 국가기구의 무력통치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로 인해 (대중)정치는 줄곳 과소결정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 (정권의 비정통성과 폭압성, 국가=정치동일성으로 대표되는) 이 '정치의 과소결정요인들'은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의 궁핍화 및 반독재민주화 전선이라는 보편적 상징과 결합할 때에는 노동자 민중의 '역설적인 정치'로서의 '대중정치'를 가능케 하는 '과잉결정요인들'로 작동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군사정권이 민간정권으로 바뀌고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이 건설되면서 반독재민주화 전선이 소멸하고, IMF 경제위기라는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삶의 문제를 얼마간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한국정치는 다시 과소결정 상태로 회귀하였다. 또한 개발독재의 경우 '국가'가 적어도 상상적으로는 모든 책임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달리, 신자유주의로 이행하면서 중립적이고 익명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시장'의 원리가 부각되면서 책임의 주체가 상대적으로 불분명해지고 사회의 통합력 역시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 시기 우리 운동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미 허구적 신화가 되어 버린 기존 운동의 (정치적) 성과들의 이합집산으로 정치적 계획을 대체함으로써 반복되어 온 (정세에 대한) 관성적인 정치적 무기력을 걷어내는 것, 지배정치의 위기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국면에 맞게 '운동성'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고 그 조건으로 실제적인 전선 형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의 '나쁜 방향'과 대결하고자 하는 강인한 사고 및 전략과 이론 없는 대중운동의 미확정적인 계기들로부터의 재출발이야말로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의회정치의 전화와 대중정치
오늘날 구조공황의 지속에 따른 재정상태 악화와 구조조정의 압력으로 인한 국가 예산구조의 방향 재편 및 국가개입의 변화는 유권자의 물질적 요구에 대한 대응능력과 함께 의회의 정당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지배(의회)정치의 위기를 재생산해낸다. 국가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위기관리와 갈등관리에 주력하게 되고, 정당들은 대체로 뚜렷한 이념적 지향보다는 모든 쟁점들에 대해 미봉책들에 의존하게된다. 신자유주의 집권자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이며 빠른 개혁을 위해서 민주주의는 걸림돌일 뿐이라고 여기며, 제국과 종속국 내외의 소수 엘리트집단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대중조작적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은 국가 폭력{{)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폭력은 1> (주로 배제된 지역에서의) 세계도처에서 끊이지 않는 국지전(도시전)적인 전쟁폭력, 2> 정보적 통제/폭력, 3>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행되는 직접적으로 사익화된 공권력의(구사대, 용역깡패화된) 폭력의 세가지 층위에서 날로 증대하고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의 과정에서 점점 더 증가하는 국가의 경찰적인(혹은 군사적인) 폭력수단에의 의존은 시민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권의 취약성, 즉 사회세력 중재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의 증대와 민주주의 후퇴의 과정인 것이다.
또한 작은정부라는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비대화되며, 구조조정의 신속하고 강력한 추진을 위한 각종의 행정권이 남용되는 가운데, 의회는 점점 정치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간다. 의회는 더 이상 정치의 공간이기보다는 절차적인 입법공간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다. '국민주권'이라는 의회정치의 보편적 가치는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의 의회정치는 군사독재정권 말기와 문민정권 출범 직후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과거 청산기를 거쳐 단 한번도 온전하게 실현됨 없이,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돌입함으로써 급속도의 위기와 전화과정에 돌입했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종속적이고 반동적인 특성에 근본적으로 기인하며 양대 문민정권의 취약한 정치적 토대로 드러났다. 양김정권은 공히 민간 개혁정부를 표방하면서(개혁/수구간의 갈등 위에 존재한다고 믿어진) '상대적 진보성'에 의존한 국민적 정당성을 명분으로 하여 권력기반을 구축하였지만, 이들의 역사적 기반인 개혁/수구간의 갈등은 이미 국가권력 내적인 타협을 통하여 왜곡된 지역갈등으로만 존재할 뿐이였다. YS와 DJ라는 대중적 지도자 1인중심의 포퓰리즘적(또한 탈의회적인) 정치행태만이 근거없는 이들의 국민적 정당성과 상대적 진보성을 유지시켜주는 대안이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양 문민개혁정권의 성립은 이들이 극복하고자했던 낡은 군사독재의 유물인 JP의 캐스팅보드를 유지시켜 주었다(현재 JP는 토사구팽 당한 처지이지만).
강한 지역적 한계와 자민련과의 불안정한 연합에 의해 출범한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고 강력한 행정부의 대응을 필요로 했던 IMF외환위기 사태는 의회정치의 위기와 전화를 결정적으로 강제한 계기이다. 즉 항상적인 위기와 구조조정의 반복적 재연, 개혁이데올로기로 특징지어지는 금융세계화의 정치·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독재정권과 비민주적인 (민족)국가체제를 시장의 불투명성을 초래하는 불안요인으로 인식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안정을 가져올 형식적 민주주의와 시장투명성의 확보를 위한 반부패와 경제적 자유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는 민중의 민주주의적 권리확보와 역사적 진보와는 전혀 무관한 조치들이며, 민족국가적 자율성의 제약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만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들에 있어 세계적 차원에서 일반화된 케이스이며, 그같은 여파는 의미있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대부분이 의회 외적인 투쟁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이는 많은 좌파 (의회)정당들이 실용주의화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대중운동들내에서의 실질적인 지도력과 중요성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왔던 남미와 유럽의 (의회주의적) 좌파들은 신자유주의 재편과정에서 대부분 이미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자유주의로 변질됐다. 경제위기로 인해 각종의 계급정치적 사안들은 넘쳐나지만, 이미 의회와 국가의 실패가 명확해진 상황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을 자신의 생존조건으로 하는 사민주의는 정작 자신의 이념적 지향인 계급정치와 자신의 존재조건 사이의 매울 수 없는 간극으로 인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생존을 위한 자유주의적인 변모의 길을 택했고, 그러한 실용주의적 변신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상당한 현실적인 이득을 얻어냈다.
그러나 (좌파의 생존을 위해) '유권자'로 동원된 대중은 지극히 수동화된 상태로,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에너지를 가지고 선거에 참여하기보다는 과거로부터 가져온 헌신성이나 연고관계 때문에 투표했다. 사회적 대결은 TV토론으로 대체되었으며, 중도좌파 정당은 자신의 정체성, 즉 다수 대중의 기본적 생활조건에 대한 불만의 판단기준이라는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근거를 상실하였다. 그 가운데 비정치적인 전문성과 법률적-대안적 진보주의를 내세운 관리주의{{) 여기서 관리주의란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는 용어에 기본적인 영감을 둔 개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이른바 법인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 혹은 관리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에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특히 DJ정권은 이 양자를 수렴시키면서, 노사정으로 대표되는 코포라티즘을 하나의 대안적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DJ의 코포라티즘적인 대안정책인 노사정은 경제위기상황을 관리하고자하는 한계적인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본래의 코포라티즘에 미달하는 허구성을 가지고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심한 불안정성을 가진다.
또한 관리주의는 "자유주의"의 변종의 하나이다. 관리주의는 갈등의 실존을 부정하지 않으며, 또 그것의 해결을 위해 보수적 회귀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관리주의는 갈등의 실용적 해결을 주요한 활동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지속적인 법률적 개정이나 전문적 지식의 대중화 등을 활용한다. 그 결과 법률주의나 전문가주의는 NGO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그것의 구조적 특성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그것이 계급투쟁의 관리와 동시에 대중의 지성, 혹은 대중의 지적 권리를 법률이나 전문성 등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적 NGO의 국가정치 보조적 기능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양 문민정권의 등장 이후 전선의 붕괴와 노동조합, 진보정당으로 수렴되어 버린 우리 운동, 역시 매 사안별로 개별화되고, 계급투쟁은 이론, 사상과 분리된 실용적인 정책대결로, 정치투쟁은 위기에 빠진 의회정치의 기반을 재확보하기 위한 '정치개혁' 투쟁으로 변형되는 경험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태는 IMF 경제위기 이후 더욱 고착화되어갔고, 대중과 분리된 운동은 지배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실리적 경향에 영합하는 실용주의적 변질을 겪는다. 운동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밑으로부터 붕괴되고 해체되고 있으며, 이 전과정을 아우르는 정치세력화라는 전략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급진적인 대중운동의 쇠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진보정당-노조의 쌍으로 결말지어진 지난 10년간의 정치세력화 프로젝트는 대중운동의 쇠퇴에 대한 대응 혹은 그것의 결과로 제기되어 왔고 또 현재도 그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대정치정당의 위기{{) 노동계급만의 이익보다는 다양한 사회세력의 이익을 골고루 대변하려는 전취정당(catch-all party)의 경향을 강화시켰고, 특정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와 그에 입각한 정권획득 자체를 목표로 삼는 선거전문 수권정당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필연적으로 정당조직에 대한 노동계급의 직접적 참여를 감소시켰고, 또 노동조합과 정당과의 관계 역시 점점 긴밀성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한편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거대 정당조직에 의한 정치적지지 동원화의 필요성을 현저히 감소시킴으로써 대중정당 조직의 쇠퇴를 또한 촉진시켰다. 당원의 감소는 당 재정의 당비 의존도를 서서히 줄여 갔으며, 서구 대중정당들은 그 대안으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확대시켜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서구 정당들은 시민사회와의 연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반면 국가에 대한 정당활동의 의존도는 보다 강화된 소위 담합정당(cartel party)적 특성을 보다 뚜렷이 띄게 되었다.
}}는 당노선과 구체적인 조직형태를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형태로부터 국민정당(catch-all party)과 수권정당을 거쳐 미디어-정책정당, 심지어는 담합정당(cartel party)으로 나가도록 강제하는데, 이같은 과정은 대중운동의 (정치적) 지도부와 대중운동의 지속적인 괴리 과정이며 대중정치에 대한 억압과 부정에 다름 아니다.
'대중정치'는 (지배)정치로부터 내부적으로 배제된(그러나 결코 제거할 수 없는) '비정치'인 생산과 대중의 삶을 대중 스스로의 정치로 변형(급진화)함을 통해 비로소 가장 진지하고 진정으로 현실적인 정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열려진 거리와 생산현장(및 재생산)의 정치적 공간들이야말로 지배정치에 대당하는 또 다른 (지배)정치가 아닌 대중의 반역이자 지배정치비판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태반(胎盤)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우리의 관점은 반(反)정치나 탈정치적 이탈을 옹호하는 입장과 구분되어야 하지만, (근원적인 위기에 빠진 지배정치의 지반을 공유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보수정치(혹은 자본가 정치)에 대당하는 이른바 '진보정치'(혹은 사회주의정치)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입장과도 전혀 다르다.
진보정당의 정치노선이라 할 수 있는 진보정치론의 요체는 보수-보수를 보수-진보의 구도로 바꾸자는 이른바 '제3의 세력론', 혹은 '천하삼분지계'에 입각한 정치(정책)개혁론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지배)정치의 구성을 다양화함을 통해 현재의 '정치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다. 그러나 만약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정치이외에 다른 정치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배정치와 같은 형상에 다른 내용(정책)을 가진 무엇일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지배정치를 종별화하는 근본적인 구분점은 지배정치의 존재근거를(민족국가형태와 정경분리) 기각하는 종별화된 정치의 형상으로서의 대중정치라는 존재형태이며, 이것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대체할 보완물이 아니라 지배정치 비판이자 생산양식의 변형을 자기 존재이유로 하는 변혁의 정치로서만 실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의 위기가 양산해내는 갖가지 계급정치적인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기획이다. (국가)정치에서 등장하는 정책이란 이미 자본축적과정에서 그 대략의 방향과 기조가 결정된 한도 내에서 조절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구조공황 상황에서 취해질 수 있는 '정책'적인 선택의 폭은 대단히 협소할 수 밖에 없다.
진보정당으로 결말지어진 정치세력화 운동의 문제를 '사민주의적 진보정당인가 사회주의적 진보정당인가'라는 논점에 의해 개조하려는 시도가 현시기 전선복구와 대중운동 혁신이라는 과제 안으로 인입되지 못한 채 일부 운동세력들간의 종파적인 이합집산 논쟁으로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이같은 맥락 위에 놓여있다.
대중투쟁과 선거투쟁
선거시기에 제출되는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결합'이라는 전술은 그 뜻을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진실이 없는 언술이다. 선거시기에 벌어지는 선거투쟁이 아닌 대중투쟁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고, 대중투쟁이 아닌 선거투쟁은 또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컨대, 선거투쟁 아닌 대중투쟁은 선거시기에 벌어지는 비정치적인(!) 조합적인 이슈와 집회일정 등을 일컫는 것이고, 대중투쟁 아닌 선거투쟁은 대중운동적·정세적 의의를 찾기 어려운 선거활동을 가르키는 듯하다. 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그같은 양자는 결합과 분리를 말하기 전에 우선 척결되어야할 경제주의적 실천과 정상배 정치일 뿐이 아닌가. 오히려 이 애매한 언술 뒤에 숨은 진정한 오류는 대중운동의 경제투쟁으로의 부당한 한계짓기와 (대중투쟁과의 결합을 빙자한) 정세적 해명 및 배치 없는 선거투쟁으로의 매몰이다.
특히 2002년 대선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우리는 2002년 하반기 투쟁과 2003년 이후 전선재편에 관한 해명없는 대선투쟁론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정세적 의미와 무관한, 대선을(혹은 2004년 총선) 위한 대선투쟁은 어떤 투쟁과 결합되건 선거참여자들의 집회참가 이상의 의미가 없다.(그 역인 경우의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그같은 결합관계가 양자 상호간에 득이 될 성과를 남길 리 만무하다. 관건은 선거투쟁의 의미를 분명히 함을 통해 선거투쟁 자체를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중투쟁은 어떤 공치사로 치장되더라도 실상은 선거운동의 동원대상에 불과할 뿐이며, 선거투쟁은 스스로가 개개의 대중투쟁에 대한 정치적 조직자라는 환상만을 품은채 선거를 위한 선거투쟁으로만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른바 '건강한 기층'으로, 진실 없는 '대중투쟁 우위론'으로 한껏 떠받들여지고 신비화된 채 정작 과학적 분석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비운의 군주이다. 우리는 대중(이데올로기)을 다시금 정세분석의 중심으로 복귀시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대중에 덮어 씌워진 괜한 공치사를 걷고, 한없이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성격으로 다양하게 분열되어 있으며 때때로 반동적이고 진보적이어서 그 진로를 알 길이 없는 이 역사의 주인공에게 그들의 말과 행동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그에 입각한 대중 공동의 행동계획으로서의 전술만이 이 비운의 군주 앞에 지켜져야 할 유일한 예(禮)이다.
보론1> 정치투쟁관의 정정
지난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우리운동의 대부분의 평가가 지적하고 있는 두가지 난점은 바로 생존권(경제) 투쟁의 고립분산성 극복과 경제투쟁의 정치적 조직화이다. 그리고 그같은 평가의 대부분은 첫째, 각각의 경제적 요구들에 어떤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부여할 것인가 둘째, 어떤 조직적 틀(들)로 각각의 고립분산적인 경제투쟁들을 묶을 것인가라는 쟁점을 낳았다. 그러나 막상 이같은 전술논쟁의 근거가 되는 우리 운동의 현실은 전투적인 현장중심주의가 경제주의와 공명하고, 조합을 넘어선 대사회(정권)투쟁을 강조하는 입장이 개량주의와 공명하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희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우리는 이 혼탁한 반신자유주의 전술논쟁의 근저에는 이른바 '정치·경제투쟁관'(이하 정경투관)으로 불리는 오랜 부르주아적 운동관의 폐해와 '당의 계획으로서의 전술'이라는 식의 위계적 운동관이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정경투관의 핵심은, 첫째, 생활 경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 경제투쟁인 반면 대국가 혹은 대정권관련 투쟁이 정치투쟁이라는 구분법과 둘째, 경제투쟁에 대한 정치투쟁의 우위 및 그에 입각한 상호결합의 원칙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국가투쟁의 실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 정경투간 결합의 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한 현격한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같은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투쟁의 소재 및 영역의 차이를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부르주아적 구분법에 입각하여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으로 나누고, 이 둘간의 결합이라는 틀로 운동의 배치 방법을 대체해버리는 관념은 자체로 타파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이같은 사고는 역사발전의 유일한 원동력인 '계급투쟁'을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라는 현실에서 그 근거를 찾기 매우 어려운 관념적인 두 운동으로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의 계급투쟁은 자본과 국가라는 두 머리를 지닌 자본주의의 지배계급과 자본주의 역사발전의 반작용으로 탄생한 프롤레타리아트간의 계급투쟁이 존재할 뿐이고, 다만 하나의 계급투쟁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이 존재하는데 이 둘간의 분리와 구분은 지배계급의 계급투쟁의 효과로 나타난 지배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은 그것이 자본과의 투쟁과 국가와의 투쟁으로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고 사멸해가는 자본주의의 양측면에 대한 투쟁으로서만 현실에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이같은 '정경투관'이라는 과학아닌 과학, 사상아닌 사상에 속박되어왔을까? 그 원인은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과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성장전화론'이 가지는 (레닌 자신의) 역사적 한계와 그것의 (우리의) 교조화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레닌은 [무엇을 할것인가](1905년)에서 당대의 경제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수행하면서, 경제주의자들의 정치활동을 조합주의적 정치투쟁으로 규정하였고, 그것의 본질을 경제투쟁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정경투관의 출발{{) 그러나 물론 이같은 레닌의 비판은 짜리즘타도와 국가권력 획득이라는 당대의 혁명적인 보편적 대의를 그르친 경제주의자들이 범한 정치활동상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함이였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분리를 창안하고자 함은 아니였다.
}}) 게다가 당시까지도 레닌은 당면 혁명의 성격과 목표를 사고함에 있어 BgR에서 SR로의 성장전화라는 단계론적 혁명전략을 버리지 못한 처지였다. 그로 인해 레닌은 정치투쟁을 짜리즘의 타도/민주공화정의 수립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활동'과 Bg혁명의 SR로의 성장전화를 담보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으로 나누어 사고하고 있었다.(1897년 [러시아사회주의자의 임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위계적인 결합 및 성장전화관계에 있는 차별적인 주제와 수위를 가지는 운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외부주입'테제로 대표되는 카우츠키류의 분열적이고 위계적인 대중(지도)관이 레닌주의의 이름으로 정형화되는 주요한 계기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당면 변혁을 위한 운동들이 정치/경제운동, 민주/사회주의 정치활동, 당(지도)/대중(피지도)라는 위계적인 결합과 분열적인 구조로 배치된 것이다.
레닌의 성장전화론은 1917년 4월테제를 계기로 하여 자기부정되기에 이르지만, 정작 혁명전략의 수정이 곧 성장전화론에 고유한 전술·정치활동관의 혁신과 일반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였다. 다만 비로소 '레닌이 된 레닌'이 4월이후 내전과 NEP기에 내놓은 구체적이고 풍부한 정치방침과 당조직/소비에트 및 노조 운동론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레닌적인 전술·정치활동관의 혁신적 면모들의 단편을 애써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사실상 레닌 '경제주의 비판'의 요체는 '정경투관의 창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주체)성장에 따른 당(주체) 과제의 성장"이라는 제2인터의 오랜 진화주의적 관념에 정면 대항함으로써, 당(주체)'과제'가 지니는 혁명적 보편주의는 자본주의 위기발전의 객관적 조건(정세)에 의해 과학적으로 분석되어 주어지는 것일뿐, 주관적 요인에 의해 선택되는 문제가 아님을 설파한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의 성장전화론은 제2인터의 대기주의적 진화론과 바로 이 지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에도 불구하고 당형태와 대중관 및 전술관등을 통해 잔존하고 있는 이 둘간의(진화론과 부정된 성장전화론) 친화성이야말로 레닌주의의 역사적 한계인 것이다.
한편 1871년의 맑스는 [런던에서 뉴욕의 볼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레닌과는 다른 정치투쟁(운동)관의 일단을 선 보였는데, 그는 정치운동이란 "보편적인 사회적 강제력을 가진 형태로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일체의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정치와 경제라는 투쟁의 소재를 중심으로 한 운동의 구분도, '경제투쟁의 정치투쟁으로의 상승발전'이라는 성장전화론적인 위계적 결합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정의의 핵심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은 "보편적인 사회적 강제력"를 띤 "~~을 관철하기 위한 일체의 운동"이라는 규정이다. 여기서 '보편적 사회적 강제력'이란 판단컨데,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힘과 정당성을 갖춘 '과학적 이성'과 '집단적인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주체적 조건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같은 주체적 조건이 전 프롤레타리아트적인 보편적 요구(이익)을 관철시키기위한 혁명적 성격과 결합된다면 그것이 바로 혁명운동, 혹은 혁명적 정치활동일 것이다.
당대의 레닌은 "~~을 관철하기 위한"을 짜르타도/민주공화정 수립이라는 전인민적인 과제로 보았던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위한 주체를 "전위당"으로 상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대항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예속됨 없이, 과학적 인식과 집단적 문제해결능력에 입각하여 스스로를(사상과 저항 이데올로기=곧 조직) 지키고 발전시키는 이른바 '봉기적 주체'는 곧 역사적으로 정형화된 '전위당'이 아니라 '능동적 대중'과 그들의 자발적인 '연합'에(전위당은 이같은 주체형태의 하나일뿐) 다름 아닐 것이다. 결국 (레닌에게 주어진 운동의 조건과 역사적인 제약을 감안하여 본다면) 우리의 전술과 정치활동관의 재정립에 있어 주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변화된 정세적 요인과 이로부터 객관적으로 부여되는 전인민적인 보편적 운동의 목표와 과제, 맑스의 일반적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주체적 조건 및 운동(조직)형태일 것이다.
대중의 공동 행동계획으로서의 전술 -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더 이상 '전술=(지도)당의 계획'이라는 관념은 전술수립과 실행의 난점이 아니라 현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의 하나일뿐이다. 전술은 해당시기에서 전략적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당면 투쟁의 전술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호, 투쟁형태, 조직형태를 결정하는 '운동주체의('능동적 대중'의 '연합') 실천계획'이다. 그러므로 전술은 언제나 '대중의 공동행동 계획'으로 받아들여지고 실현되도록 노력해야하며, 그같은 실현정도야 말로 전술평가의 핵심일 것이다. 또한 전술은 구체적 정세(분석)을 통해서만 도출될 수 있을뿐, 선제하는 전략적 과제로부터 자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건적인 문제는 정치활동이 그때그때의 사건들에 대한 협소하고 즉자적인 대응에 머물지 않토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중외곽에서 지도지침을 주입하는 위계적인 지도조직의 선험적 구축 혹은 자임!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맞는 '정치적 지도'의 의미를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실제로 확보하는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과정을 통해 그것은 1> 위기비판과 전화의 관점을 명확히 할것 : 운동의 전과정을 인식한 가운데 제반의 운동들이 전략적 방향과 목적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 2> 집단적인 분석(총화)능력의 조직을 통해 피착취 근로대중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고 조직하는 것, 3> 자기부정에서 자기긍정으로 : 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자기통치-자기해방'의 출발인 인민의 자주성을 옹호하며, 다수자 혁명의 사상에 입각하여 자기소유와 통제를 실현하도록 할 것이다. 이같은 세가지 원칙을 대중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조직적 구조를 마련하고 그것의 성과를 안정적으로 축적해가는 일이야말로 '부재한 당의 계획'으로 국한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시기 우리운동에게 주어진) '전술활동'일 것이다.
정치활동관의 정립
우리는 이상과 같은 논의에 근거하여 특히 현시기 '정치투쟁'이란 "제반의 위기관리기제와 주어진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역, 즉 대중의 '봉기적 주체'화와 대중 스스로의 자주적 연합(보편적 이해의 자기이해화)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기본관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1987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노조건설 운동은 비록 경제적이고 조합적인 소재를 요구하는 투쟁이였지만, 87년 정세에서 이 투쟁은 스스로 당대의 반파쇼투쟁의 주력을 형성해 내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순한 경제투쟁이 아니였던 것이다. 임금인상을 매개로 단결한 대중들은 '파쇼타도 없이 노조없다'는 즉자적인 이데올로기였을지언정 그같은 반역에 입각하여, 집단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조직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한 가운데 스스로 통치하고 스스로 해방하기 위한 조직적 거점으로서 민주노조를 축으로 한 계급적 단결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1> 정세를 초월하여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주체'화 경로와 그것에 반역하는 '봉기적 주체'화가 구분되는 것이며, (신자유주의 재편과 경제위기 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수동화와 그에 따른 실리주의적 경향, 민중운동의 실용주의적 퇴행화야말로 현시기 정치활동의 주요타격방향이다)
2>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허구적인 결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적인 해결방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조직적인 결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투쟁의 정치적인 성패를 가로 짓는 열쇠이다.